



중학교 2학년때였다.
초등학교 4학년무렵부터 의붓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던 사람이라 살갑게 굴었고, 나는 그가 싫지 않았다. 엄마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두 사람은 갈등이 깊어졌고 그 사이에 나와 내 동생이 있었다.
혼자 늦잠을 자던 일요일 아침에 그가 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왔고 여기 저기를 만졌다. 여기와 저기는, 내가 2차 성징이 시작되었다는 걸 명징하게 나타내주는 두 곳을 말한다.
그일 이후, 나는 다른 일로 그와 격렬하게 싸우다 몇 대를 맞고 집을 나가 밤을 새고 들어온 적이 있고, 그 이후로 오래 지나지 않아 엄마와 그 사람은 헤어졌다.
그때 나는 열 네 살이었고, 지금 나는 마흔 네 살인데, 칠순을 넘긴 우리 모친에게 이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 사실을 직접 엄마에게 말한다면, 그것으로 엄마의 인생이 물리적으로 깔끔하게 끝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신철석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중고등학교를 지나며 교사들의 적절치 않은, 지금으로 따지면 성희롱이나 그때로 따지면 음담패설에 불과했던 그 자잘하고 무수했던 이야기들은 차치하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제 음부를 내 엉덩이에 밀어대던 얼굴도 마주치지 못한 수많은 성기들과 학교 앞에서 제 성기를 내놓고 자위행위를 하던 눈도 마주치지 못한 그 성기들은, 존재가 아닌 그저 좆으로만 남았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동생과 단 둘이 살던 이대 앞 대흥동 자취방에 잠든 사이 들어와 불을 끄고 얼굴을 살피던 리바이스 청남방을 입은 그 놈과, 보광동 반지하방의 화장실 문을 열던 그 놈과, 현관 문이 열린 사이 거실에 들어와 팬티를 훔쳐가 골목 사이에 쌓아두던 놈과, 고시원 방에서 자꾸 여자들의 팬티를 훔치던 그 놈도,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스무 살이 넘어 만으로 스무 살이 되기 두 달전, 나는 라이브 호프집의 밴드 싱어였고, 내가 속한 밴드의 리더의 후배가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실직상태였는데 그 이전엔 유명가수의 소속사에서 로드매니저와 운전기사로 일했다고 자랑을 했다. 그 당시엔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로 유명한 젊은 가수의 매니저 자리를 따내려고 애를 쓰던 중이었고 호감인지 질척댐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을 자주 나에게 보냈다. 그가 업계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술자리로 불렀다. 나는 일감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그 자리에 동석했다. 경향신문사 길 건너 편의 작은 술집이었다. 그 자리에 와 있던 신문사 간부는 내 이력을 듣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주고 자리를 떴고 그 가수는 사실 나에게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나를 불렀던 연예계 종사자, 그 사람은 키가 180이 훌쩍 넘는 거구에 가장 완력이 좋을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술 자리가 파하고 집에 가겠다는 나에게 그는 화를 내며 길바닥에서 물건을 부수고 소리를 지르며 깽판을 쳤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수습하려는 나에게 여관이 들어가 눕는 것을 보고 가달라고 그가 애원했다. 서교동의 한 여관에 들어가자마자 그가 나를 때려 눕혔고, 나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으나 그에게 머리채를 잡혀 다시 바닥에 내다꽂혔다. 같이 입실을 하는 순간 강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그가 소리쳤고, 그는 허리띠를 풀어 온몸을 때렸다. 아, 그리고, 나는 그때 생리중이었다.
아침이 되어 인검이 나왔다. 경찰이 문을 두들겼고 나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보였다. 그때 내 표정이 어떠했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다. 경찰은 내가 미성년자라고 했고 그의 신분증을 조회하더니 기소중지 중인 사람이 미성년자 데리고 이런 데 와도 되냐고 비아냥 거렸다. 그리고 경찰은 나에게 “아가씨 빨리 집에 가요.” 라며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여관을 떴다.
그의 이름은 박명호다.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명확히 기억한다. 그의 커다랗던 몸의 무게도 가끔 기억난다. 나는 그 이후로 그를 몇 번 더 봤으나 밴드리더가 사기사건으로 잠적한 이후 나는 그를 다시 만난 적 없다.
그날 여관방에서 나온 정오쯤에 햇빛은 뜨거웠고, 한 여름이었다. 원피스를 입었는데 어깨끈이 찢어졌던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고시원으로 돌아가, 공동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했다. 마음대로 하루를 쉬거나, 아프다고 일을 거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후, 나는 그를 경찰에 고발하거나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서술한 적 없다. 그때를 회상하는 글을 쓸 때면 “성폭행을 당했다.” 라고만 적었다. 최근 벌어진 #미투운동을 보면서 자꾸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선명해졌다. 한 가지 더 추가된 것은, 내가 왜 그 일에 대해 괴로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세상을 등지거나 당시엔 우울증조차 겪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을 모두 꼬깃꼬깃 접어서 아무도 못 보는 곳에 쑤셔 박고 산 세월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후의 내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습관처럼 매일을 살았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만큼의 절망을 만났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습관처럼 사는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습관처럼 그 시절을 살아냈을 뿐이다.
그 이후에 있던 수많은 성희롱은 딱히 불쾌한 지경도 아니었다. 그저 같잖다고 느꼈을 뿐이다. 어쩌면 내 감정을 단단하게 만들면서 넘기고 넘겼을 것이다. 매번 닥칠 때마다 고통스러워 봤자, 나만 다친다는 걸 깨달은 동물적 감각일 것이다.
결혼 후, 애 엄마가 된 뒤에도, 마흔즈음에도, 공적인 자리에서, 일로 엮인 자리에서 한 차례의 성추행과 성희롱이 있었다.
한 사람은 지역행사에 왔던 젊은이였는데 술자리에서 옆에 앉은 사람을 쓰다듬는 것이 습관 같았다. 다음날 그의 선배였던 나의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엄중하게 경고하는 걸로 넘어갔다. 그의 선배는 나에게 깍뜻하게 최선을 다해 사과했다. 한 사람은 지역에서 알게된 엄마 또래의 지식인이었는다. 일 때문에 같이 회의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식사에서 그 분은 맥주 몇 잔을 했고 나는 어르신들이 많은 자리라 술을 삼가했다. 겨우 그 정도 술에 거나해진 그 분이 내 차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나에게 “한국 차는 키스하기가 참 안 좋다”는 둥, 부인하고 사이가 안 좋다는 둥, 으례 쓰는 촌스러운 멘트를 날려 피식 웃었다. 나는 그 이후로 그를 안 만났으나 그분은 아마 본인의 언행을 기억못할 것 같다. 상습법이기엔 너무 어설펐다.
미투운동은, 나도 당했다, 라는 것을 넘어 나도 고발한다, 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내가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 굳이 불편하게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글을 쓰려고 일주일 넘게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왜 그 사건을 고발하지 못했으며, 지금의 나는 왜 이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내려 하는가. 성폭행과 아동학대의 생존자는, 언론지상에 유사한 폭력사건이 공개될 때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묻어뒀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무의식적 가해가 다시 일어난다. 그 기저엔 죄책감도 있다.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죄책감 말이다.
며칠 전, 나의 늙은 개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엔 캣맘들의 밥을 얻어먹고 사는 씩씩한 길냥이들이 몇 마리 있다. 놀이터에서 놀던 남자 아이들이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던 노란점박이 고양이를 발견하고 고양이를 뒤쫒았다. 아이들은 내가 늙은 개의 목줄을 잡고 걸어다닐 때면 자기가 서 있던 자리에서 “강아지다. 아 귀엽다. 만져보고 싶다.” 라고 하지만 쉽게 접근하지 않는다. 내가 목줄을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늙은 개만큼이나 덩치도 큰 길냥이들은, 아이들이 쉽게 쫒아가고 쉽게 접근하고 쉽게 위협한다. 아무도 그 옆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고양이와 친해지고 싶어서인지, 괴롭히고 싶어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가까이 가도 되기 때문이겠지. 옆에 서 있는 보호자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고양이에게 돌을 집어던져도, 숨어 있는 고양이에게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대도, 길고양이의 밥그릇에 신나를 부어 같이 살던 고양이가 죽어도, 살아남은 고양이는 먹어야 한다. 그 하루를 위해서, 먹이를 찾고,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그때 내가 고발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런 것이었을 거다. 내 옆에 보호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테고, 나는 그날도, 그 다음날도 살아야 했으니까.
이어지는 미투고발은 대부분 이름을 가진 자들에 대한 폭로다. 내가 고발할 수 있는 그자들은, 내가 이름을 기억하지만, 전혀 유명하지 않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고, 이미 다른 죄로 구속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커녕 얼굴도 제대로 못 본 가해자들도 수두룩하다. 그들에 대한 고발도 얼마만큼의 사회적 가치를 가질까. 나는 그 부분을 고민했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나의 가해자는 유명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굳이 이런 사소한 얘기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며 기억을 다시 쑤셔 박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가해자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알량한 권력이 있었다. 더 큰 권력 앞에서 개처럼 꼬리를 내릴 비겁한 권력이었고, 그 좁쌀만한 힘 앞에 무너졌다는 게 나를 분노케 한다. 프레임 논쟁따위가 끼어들만큼 여유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인간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인생을 뒤집었고 삶의 기준점을 바뀌게 하며 숨 쉬는 방법과 걸음걸이를 바꾼다.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으로 산다. 이 분노와 수치심이 모여, 세상을 뒤엎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건은 절대 없던 일이 되지 않으며, 우리는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다.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
2018. 2. 27.
#metoo #withyou
#싸우는우리가이긴다
덧붙이자면, 부탁하건데, 피해자를 불쌍하게 보거나, 어줍잖은 위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컬링 VS 팀추월>
올림픽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수백년된 나무를 베어내는 걸 몰랐더라도, 순실이가 개입했다는 걸 몰랐더라도, 난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드라마 따위에 관심을 잃은 지 꽤 되었다. 교훈적인 이야기는 진부했고, 현실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귀찮았다.
올림픽 개막식이 이슈가 되고,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북한이 온다는 것 하나.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올림픽을 이끌어가는 건 아닌가 의심도 했다.
그러던 중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두 가지 일어났다.
여자 컬링이 사상 최초로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것.
그 안에 숨은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동네 언니와 친구가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시작한 취미생활이 국가대표까지 오르게 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1일 저녁, 여자 컬링 대표팀은 조별 예선 7승 1패로 현재 덴마크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경북 의성의 의성여고 출신인 네 명은 잘 알려진대로 영미랑 영미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로 구성된 지연과 혈연의 팀이다.
의성은 마늘로 잘 알려진 고장이기도 하지만 몇 달전 발표된 조사결과에 의하면 인구소멸도 1위로,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 1위이기도 하다. 시사인에서 취재한 기사를 보면 의성엔 산부인과가 없고 노인인구만 남아 의성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사람들도 인근 대도시로 다시 나가야 하나 고민한다는 얘기가 있다.
의성 사람들은 설령 인구소멸가능성이 1위더라도,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런 도시에서 세계 1위를 할 지도 모르는 여성 스포츠팀이 나타났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체육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 동네 언니, 동네 친구가 뭉쳐 올림픽까지 왔다는 건, 수년간 인기를 끈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비슷해 보인다. 이 팀의 인기는 혈연과 지연으로 꽉 짜여진 이 나라의 정서에 맞아 떨어지면서도 그들이 비수도권출신으로 성공스토리를 써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과거사를 밝힌 의성의 전 구의원의 글도 이슈가 되었는데 가정형편이 부유하거나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칠판에 <컬링 배울 사람> 이라고 쓴 글을 보고 하나씩 모여들었다는 건, 보는 사람들에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나만큼 평범한 친구”를 만나 말도 안되는 도전을 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단언컨대 이번 동계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컬링여성대표팀이며, 그 이유는 영미와 영미친구와 영미동생과 영미동생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컬링팀의 인기가 치솟는 사이에 여성 팀추월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팀추월이 무슨 경기인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팀워크를 이루지 못하고 한 사람을 따돌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 흥분했다. 한 명의 주자를 이끌지 못하고 낙오시킨 채 결승점을 통과하고, 실소를 뿜은 한 선수가 있었다. 밤새 대표팀 자격박탈과 빙상연맹 해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일어났고 이틀밤이 지난 오늘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의 숫자가 50만명이 넘었다. 분노를 금치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놀라웠다.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는 이야기와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에 이어 빙상연맹의 오래된 파벌문제와 전명규 부회장의 공과논란이 엘리트체육교육에 관한 성토로 이어졌다.
하룻밤새 30만명 넘게 청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몇 개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따돌림 당한 것으로 보이는 노선영 선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고 그 사연에는 각자 겪었던 공동체 내에서의 따돌림 경험이 섞여 있었다. 수십개의 게시글을 읽고 나서 나는 분노의 원인을 여럼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라인을 잘못타면 망하기 십상이고, 알량한 권력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쉬우며 자기 의사를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어느 편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억울한 경험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기억속에 쌓여 있었다.
2016년부터 이어져 결국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촛불혁명의 불쏘시개는 정유라였다. 최순실과 정윤회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특혜를 받았던 아이. 그래서 달그락 훅, 하는 것으로 명문대학을 다녔고, 수십억의 기업체 후원을 받았으면서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던 정유라에게 사람들이 분노했던 건, 특혜였다.
안 그래도 출발선이 다른 아이가, 특혜까지 받았다는 것, 평등과 호혜를 거스르는 일이다. 꽤 많은 인류가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더 넓은 평등과 더 많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함인데, 돈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이가 그 이유로 특혜까지 받는다면 수많은 민중이 민주주의를 지향해봤자 다 헛거다.
동료가 쳐진 것을 두고도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인터뷰에서 피식 웃어버린 김보름 선수에 대한 비난을 보며 사람들은 정유라를 떠올렸을 것 같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엘리트체육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동계올림픽을 보는 사람이라면 아는 일이고, 게다가 대학과 파벌로 나뉘었다는 얘기까지 알려지면서 이 집단감정의 오버랩은 점점 강화되는 듯 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적폐는, 평등과 자유를 저해하는 수많은 집단의 구조일 것이다. 팀추월을 보며 화를 낸 이유도, 컬링을 보며 환호하는 이유도, 모두들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본다.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행운 따위를 말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이 두 사건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가 무엇이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았을 뿐이다.
2018년 지금 이 나라 민중들의 원하는 스토리가 무엇인지, 왜 무한도전이 수년간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게 미래를 만든다고

1.
몇 년전 주민참여예산의 지역위원으로 있을 때 (자원해서 하는 거니 별 거 아닌 그냥 오지랖) 동네 유지쯤 되는 분이 오래된 놀이터를 리모델링해서 크리켓장을 만들자 했다.
나는 원래 놀이터를 리모델링할거면 놀이시설을 보강하고 그 앞의 아파트 아이들도 쓰게 하면 어떻냐고 의견을 냈는데
그이 왈.
그 동네는 애들도 없고 놀이터 나와 놀 애들도 없고
요즘 애들은 다 자기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니까
놀이터는 더 필요없다며 노인복지에 치중하는 게 옳다고 밀어부쳤다.
나는 그 사람과 입씨름 하고 싶지도 않고 너무 얼척이 없어서 입을 닫았는데
대부분 그 사람 말이 옳다 하더라.
그 대부분이라 함은,
지역에 땅이나 집이나 상가를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부동산 소유자들이었고
동네에서 오래 산 권력층이었다.그 주장을 펼친 사람은 다음해에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해 그 동네 시의원이 되었다.그 사람이 말한,
그 동네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파트는 아주 오래된 곳이라 놀이터가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다른 친구네 아파트에 가서 놀았는데 2천세대쯤 되는 대단지의 놀이터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지만 3-4백 세대만 사는 작은 놀이터엔 들어가기 어려웠다. 들어가는 문마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비싼 아파트는 아파트입구부터 어딘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다.
2.
그때쯤 옆 동네에 새로 초대형 단지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건너편에 원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 것 같아 지자체에서 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를 새로 지었다.
새로 지은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연립주택 아이들과 분리배정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작년엔가 과천의 어느 동네에서는 지역아동센터의 이전을 놓고 동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 가난한 집, 빈곤계층 아이들이 드나드는 것이 싫다는 이야기로 비춰졌다.
어떤 보도에서는 개인주택에서 운영되는 지역아동센터가 마을에 들어오면 “아이들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유가 주된 것이었다. 내부의 사정은 알 수 없었다.
3.
집 앞 상가건물에 여호와의 증인 선교회관 간판이 있는 걸 보았다.
고등학교때, 우리 반에 여호와의 증인인 친구가 있었다. 우리학교는 기독교계 학교라 종교시간도 있고 예배시간과 각 학급에 신앙부장이 있었다. 내가 그 신앙부장이었고 조회 종례때 간단한 묵상을 진행했다. 그 친구는 기도하지 않았는데 그때의 나는 상당한 골수신자였음에도 그의 종교를 이해하고 싶었다.
전체 주간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애국자를 파트로 나누어 불러야 해서 음악시간에 연습을 했다. 그 친구는 애국가를 부를 수 없었기에 입을 닫고 있었고, 음악선생이 그 친구의 따귀를 때렸다. 친구가 울었고 나는 친구를 꼭 안아줬던 기억이 있다.
4.
얼마 전 만난 중학교 아이들은 친한 친구, 가족일수록 자기 외모에 대한 품평을 많이 한다는 불만을 말했다.
“대체 인권의식이라는 건 있지도 않은 것 같아요. 나는 불편하지 않은데 왜들 그러는 건지 너무 화가 나요.”
“스무 살까지는 화장하지 말라고 하면서 스무 살이 넘으면 민낯으로 다니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건 너무 웃기지 않나요? 구시대적이예요.”
5.
수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빈부, 나이, 성별, 외모, 종교에 의해 우리는 사다리 아래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서로를 가른다. 장애는 그 중에 하나다. 타인을 재단하고 차별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재된 폭력은 무심하게 온다. 내 하루의 24시간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구별짓고 사는가.
정신을 차리고 산다는 게 과연 가능이나 할까. 알 수 없다.

<스크롤의 압박>
1.
꿈의학교는 2015년부터 시행된 경기도교육청의 주력사업으로, 이제정교육감이 시작한 사업이다. 학교안과 밖을 모두 아울러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학교를 꾸려간다는 컨셉으로 현재 세 종류의 꿈의학교를 운영지원하고 있다.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 학교는 – 공모사업주체(성인으로 구성된 개인이나 단체)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1개 학기 혹은 1년을 운영하며 예산지원은 최대 4천만원까지. 고르고 다양한 배분을 위해 대체적으로 1천만원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확대하는 추세다. 비영리단체를 우선선발하며 개인자격으로도 지원가능하다. 종교단체나 사교육업체, 이익집단의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 교육단체나 기관에서 자체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서류를 꾸미는 경우는 공모금지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 심사과정에서 걸러진다.
학생이 만들어가는 꿈의 학교는 – 역시 공모사업이지만 여기는 기획과 운영 모두 학생 스스로 해나간다는 것. 이를테면 아이들이 기획안과 예산서까지 세워서 제출해야 한다. 역시 대체적으로 1천만원 이내의 예산이 필요한 학교를 선발지원한다. 여기서 “학교”라는 개념은 배우는 단체를 말하는 것으로 기존 “동아리”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마중물 꿈의 학교는 – 위 두 개 꿈의 학교보다 그 숫자가 적으나 마을교육공동체를 운영하거나 운영하고자 하는 단체들을 선발, 운영비를 지원하며 대략 300만원 가량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이 운영지원금은 혁신교육지구의 경우 지자체 지원과 도교육청 지원금이 공동으로 들어가고 비혁신교육지구의 경우 도교육청 지원금이 들어간다. 혁신교육지구인 경우 더 많은 꿈의학교가 개설될 수 있다.
2017년의 경우 이 사업에 총 31억원 정도가 투입되었으며 약 300여곳을 모집하지만 예산규모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다. 안양시의 경우 2017년 약 40여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2. 꿈의학교 사업의 목적은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진로교육,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고 배워가는 주체가 되는 것으로 방과후 학교, 동아리, 꿈다락문화학교 등과 차별화되어야 한다. 창의적인 주제를 가지고 열린 커리큘럼을 제시해야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코스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꿈의학교 취지에 어긋난다. 성인들도 학생들도 이 컨셉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 대부분 가져오는 프로그램들은 방과후학교나 학원 커리큘럼과 유사했다.
이 사업의 성과는 아이들이 진짜로 자기들이 원하는 수업을 만들어 그 부분에 필요한 강사나 지도자를 섭외하고 창의적인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넘나드는 관계를 형성하고 추후 마을이해와 진로교육으로 확장된다는 것. 실제로 이를 통해 진로를 결정하는 아이들이나 자기 취미의 전문화를 꾀하기도 하고 사회봉사등 재능환원으로 교육공동체의 토양을 형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3. 터놓고 말하기 토론회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지난 주 토요일 안양시 율곡연수원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주최 꿈의학교 터놓고 말해요 토론회에서는 온갖 칭찬이 오갔다. 내가 그 자리에서 칭찬을 더 보탤 이유는 없어 그간 운영지원단으로 활동했던 것을 토대로 몇 가지 지적을 한 부분을 정리한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더니 좋은 얘기들만 오가길래.
1) 교육중독과 과잉 진로교육의 사회
무슨 일만 있으면 교육과 수업, 연수로 해결하려는 교육중독 사회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진로교육을 받아 직업과 취미를 이분화 해 미래를 설계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싶은지 묻지 않고 “뭐 해 먹고 살거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초등 저학년부터 현실적인 미래설계를 하고 뭐 해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꿈의학교의 원 취지를 살리자면 초/중등의 꿈의학교와 고등학생 연령대의 꿈의학교의 진로교육은 차별화되어야 한다. 초, 중등은 더욱 넓은 분야로 가치관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력하고 반면 고등학생 연령대의 꿈의학교는 노동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웨딩플래너와 축제기획을 하는 학교의 경우 잘 운영되고 있으나 이는 수많은 아이들을 비정규직 무한경쟁 사회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획자들은 아이들에게 직업의 특성과 기술을 말할 것이 아니라 노동문제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 직업을 시작할 것인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2) 마을이 책임지는 교육이 될 수 있는가
원 취지는 방과후 아이들을 마을에서 키우자는 취지였으나 이 목표는 모든 기관과 단체가 거듭 실패하는 주제다. 꿈의학교도 그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스케줄 하나를 더 보태주는 결과가 되었다. 지역교육네트워크의 출발도 그랬으나 사교육이 공교육만큼 필수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계속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다. 결국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주말과 방학으로 꿈의학교 스케줄이 집중되었고 아이들은 주말에도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찾아 다녀야하는가. 이것은 과도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가 헛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곤고한 성벽을 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예 깰 필요 조차 없는 성벽앞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인가
3) 과도기적 부작용
꿈의학교 참여가 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는 것에 대해 논의가 많았다. 애써 시간을 내 특별한 기획과 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좋은 평가를 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치맛바람이 만만치 않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일례로 파주의 출판학교에는 고양시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경우가 있었고, 안양지역에서는 기획회의에 아이가 학원을 가야 한다며 대리 출석을 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기획안을 제출하거나 교육청 예산으로 개인 인건비를 챙기기 위해 지원하는 단체들도 있다. 본 사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면서도 의도를 훼손치 않을 방법은 이 사업이 계속된다면 교육지원청의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본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교육공무원들은 이 사업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정도 물 흐리는 일은 과도기에 거칠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4) 네트워크의 미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모사업이 그렇듯. 초기에 쇼미더스쿨과 같은 워크숍을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도 정기적 모임과 협력은 부족하다. 사업 후반부가 되면 행정서류와 영수증, 통장에 찍힌 이자까지 정산하느라 운영기관마다 정신이 없다. 네트워크를 지속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는 이 나라 대부분의 공모사업자들이 가진 어려움이다. 왜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5) 장애인, 다문화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없는가
통합교육이 절실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도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다. 부모가, 교사가, 학생 스스로가 정보를 많이 가진 집단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좋은 교육을 무료로 받고 그렇지 못한 집단은 아무리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져도 늘 그 열외에 있다. 장애학생들도 같이 운영할 수 있는 발상은 비장애인들이 쉽게 하지 못한다. 다문화를 수혜의 대상으로 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성적이 낮은 청소년들에게 진로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꼴사나운 발상도 숱하다. 정보의 계층화에 대해 지자체와 교육지원청이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한다.
6) 없으면 못하나
시설과 기자재, 정보의 부족으로 선의를 가지고도 꿈의학교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구)안양서여중을 리모델링하는 안양율곡연수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주체들이 꿈의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장에 논을 만들어 생태교육을 실현할 수 있고, 학교 뒷산의 풍부한 산림자원은 교육과 여가, 치유의 터가 될 수 있겠다. 맞벌이 증가, 1인가구 증가로 요리에 대한 교육 수요가 늘어난다. 요리실이 1개로 되어 있는데 아마 필요한 기관은 점차 늘어날 것이니 이를 고려해주기 바란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뭐니뭐니 해도 댄스다. 아이들 스스로 동아리를 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분야다. 이를 학부모나 교사가 제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필요한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3. 안양율곡연수원 리모델링안
안양 관내 학생수 감소로 안양서여중을 신안중학교와 통합하고 폐교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 위에 적은 대로 대중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진다. 버스정류장에서 연수원까지 들어가는 길은 도대체 예전에 애들이 학교를 어떻게 다녔나 싶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안전문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며 지자체 예산을 들여서라도 셔틀버스 운영이 필수겠다. 또한 정문에서 본 토론장까지 오는 길 내내, 그리고 화장실과 지금 이 토론장의 저 무대까지, 여기는 모조리 건강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장애인접근성을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리모델링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접근성을 고려한 설계는 결국 비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되어 있다.
연수원까지 오는 길을 재설계하거나 연수원을 지역에 개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꿈의학교 운영진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도 좋겠다. 각 기획단을 꾸려진 연수원 리모델링 기획단과 운영, 홍보 기획단을 꾸리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혁신교육지구인 안양시는 지자체의 적절한 지원으로 그럭저럭 별 일없이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눈에 띄는 부작용등은 자체적으로 자정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꿈의학교보다 더 시급한 상담교사, 학교복지사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결론은 돈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정말 공교육은 돈이 너무 없다. 정부는 공교육에 돈을 쏟아부어달라. Show me the money.

+어쨌거나 내 역할은 어딜가든, 나눠준 김밥 우적우적 먹으며 지적질만 진탕 하고 재수없는 자가 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걸로.
+ 지금은 여러 할 일이 산적해 있으므로 문장이 너저분한 것은 그냥 좀 넘어가는 걸로. 퉁.
| 이하나 (안양,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
*2017년 6월 22일 경기도박물관에서 있었던 경기도교육청 주최 “교실 속 시민교육 이야기”에 발제한 원고입니다.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3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서두에 밝혔듯이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아이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
이한열열사의 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 노을이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나와 거칠고 익숙한 목소리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청 뒤 NPO센터에서 있을 행사에 가러 나온 길이었다.
행사 시작전인 센터 안은 꽤 무더웠다. 냉방이 필요했는데 아직 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듯 했다.
북태평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는 며칠, 바깥 바람이 상당히 시원했다.
베이스와 낮은 드럼 소리의 진동이 거리를 쿵쿵 울리는 시청 뒷골목에 앉아 있었다.
사위가 곧 어두워질 것이었고 아직 여기 저기 햇빛이 남아 있었다.
선배를 만나 벤치에 앉아 일 이야기를 하다, 80년대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벤치 앞,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이면도로에 작은 원동기가 하나 섰다. 뭔가 들은 것 같은 비닐봉투를 안장에 얹은 작은 원동기에서 노인이 내렸다. 그는 내가 바라보는 방향의 가장 끄트머리 벤치에 앉았다. 주섬주섬 품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천천히 입에 쑤셔 넣었다.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가 빵을 먹는 모습이 자꾸 시야에 들어왔다. 70년대 학번들의 낭만과, 80년대 학번들의 전투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빵이 들어가는 노인의 입 매무새가 자꾸 눈에 들어와, 87년쯤, 저 사람은 몇 살이었을까, 딴 생각을 했다.
칠순은 훌쩍 넘었을 거 같은 노인의 저녁은 시원한 북풍이 부는 시청 뒷골목의 벤치 위에서 마른 빵 하나. 오늘치 빵 하나의 노동은 어떠했을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대통령 탄핵을 거머쥐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오늘, 박종철과 이한열이 죽고 30년이 지난 지금, 노인의 삶을 얼마나 달라졌을까.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대오는 흩어져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스처럼 낮게 깔리는 귀신에 사로잡혀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마른 빵을 위해,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말라는 노래의 가사를 믿어도 될까.
20170609

사람들은 살다가 중년의 어느 날, 인생이 확 뒤엎어지는 고비를 겪곤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인생을 엎어치고 매치고 다시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내 어머니는 땅에 침을 뱉는 것처럼 욕지거리를 하며 세상을 밀쳐내고 일어났고,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가 삶의 기준을 뒤틀었다. 누군가는 그때쯤, 가정을 잃고, 누군가는 그때쯤 자식을 잃고, 또 누군가는 그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잃고, 사랑을 잃기도 한다.
삶의 절반을 지배해 온 것들을 버리는 순간이, 누구나에게 오는 것일까. 모든 이에게 그런 날이 오던가, 그것이 궁금해졌다.
넥타이를 동여맸던 낮의 남자들이 소주에 불타는 고기를 입에 넣고 우적거리는 사이, 테이블 사이로 그릇을 나르는 여자들이 오간다. 그들은 모두 그 고비에 있거나, 그 고비를 넘겼거나, 어쨌거나 절반의 생을 살아낸 사람들로 보였다.
삶의 크레바스가 있다면 그 사이에 빠져 사라지지 말고 어떻게든 뛰어넘어 건너야만 하는걸까. 사는 건 그렇게 치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사는 건 대체 얼마나 독한 놈이 고개를 쳐들 수 있는지 경쟁하는 과정일까.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고깃집에서 네가 말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라고. 살이 타는 냄새가 나고 모두가 우격다짐을 하고 있지 않냐고.
우리가 이 지옥을 빠져나가면 그때는 평화가 올까. 그런 일은 태초부터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크레바스에 빠져 죽지 않은 이들이 고기를 굽고 고기를 먹는 저녁에, 연두색 국빈관나이트 점퍼를 입은 남자들이 작은 비닐봉투에 명함과 주전부리를 넣어 테이블 사이를 돌며 인사를 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전도연이 <무뢰한>이라는 영화에서 저렇게 사탕을 돌렸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무뢰한>의 그녀. 삶의 모든 고통을 삼겹살 씹듯이 거침없이 삼켜버렸을, 그녀만 알고 있을 것 같은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2017년 6월 8일 인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