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오후, 늦게 일어난 탓에 끼니를 거르고 약속장소로 갔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60번쯤 겨울을 겪은 사람.
그가 대부분 잊었을 17년전 기억을 끄집어내어 상기시켜주어야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공공기관의 2층에 있는 무인까페.
미리 보내준 서류를 읽지 못했다기에 출력해 간 같은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가 집중해서 서류를 읽는 사이, 나는 1500원을 카드로 결제하고 큰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뽑아왔다. 내가 커피를 가져온 후에도 그는 진지하게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공간의 정중앙에 놓인 TV가 보이는 자리였다. TV는 켜져 있었고, 몽골로 보이는 화면이 흘러갔다. 어린아이가 초원을 뛰어놀았고, 여자와 남자들, 염소인지 산양인지 모를 짐승들이 지나갔다.
고개를 잠깐 숙였다가 들었더니 화면 속의 사람들이 흰털의 그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벌겋게 드러낸 짐승의 속살, 화면이 바뀌어 내장을 꺼내고 그 안에 고인 피를 사람들이 쓰는 양동이에 옮겨 담았다.
내가 그를 만난 이유는, 17년 전 시작된 일이 왜 이제야 완성이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욕망들이 오갔는지, 찬성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또렷하고 단순한데, 반대하는 이들의 명분은 왜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었는지, 그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는 반대자들의 이유를 알지 못해도 그만이지만, 알고 싶었다. 욕망의 실마리를 잡아보려고 간 자리에서 살아있던 생명이 고기가 되어가는 압도적인 화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창밖에 내리는 흰 눈을 맞으며 멀리 달아나고 싶어졌다.
약속장소 바로 앞엔 샤니 빵공장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인터넷에서 본 곳인데, 여태 경험한 중에 가장 최악의 근무지였다고, 샤니에서 보름을 견디면 어디든 견딜 수 있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는 택배상하차가 생기기 전의 글이었던 거 같다. 보름을 견디면 어디든 견딜 수 있는 곳의 어디는, 어디일까?
집에 오는 길, 운전을 하던 박부장이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을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갔던 곳 중, 눈이 와야 더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나, 도담삼봉같은 곳 말이다.
한 지역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몇 가지 승자와 패자의 규칙을 찾았다.
첫 번째는 며칠전에 적은대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던 사건들은 결국 10년이나 20년을 두고서라도 그 물증들이 나타나는거다. 스스로의 행동이 물증이 된다. 대부분 올바르지 않은 행동들이라, 결국은 잘 드러난다. “의심스럽던 자들”은 욕망을 감춰서 이슈를 이슈로 덮는 데는 능숙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 덮을 이슈가 없어지거나 궁극적으로 욕망을 실현해야만 하니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두 번째는, 내부총질을 하는 자는 필패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내부고발과 내부총질은 다르다. 공익을 위한 고발이나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 앞서 가는 자를 추월하고 싶어서, 등 뒤에서 “저 자에게 구린내가 난다”고 떠들어대던 자는 부활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단순하고 정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유로 싸우는 사람들이 이긴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것은 공익과 꼭 연결되지 않는다.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고, 어쩐지 의심스러운 이유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지키려 했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소멸하고 만다.
내가 찾은 이 싸움의 논리들이 완전히 틀려먹었을수도 있을테니, 앞으로도 잘 지켜봐야겠다. 어떤 싸움들이 결국 승리하는지, 알고 싶다.
갑자기 징기스 칸이 생각나네.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은행 창구에서 일을 보기 위해서 꼭 챙겨야 할 것이 있죠? 바로 신분증!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거나 깜빡했더라도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학생증이나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등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은행에서 본인 계좌를 통해 어떤 일을 하려면 꼭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25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은행 갈 때마다 매번 신분증 들고 가니 귀찮아요.
우리 서민들까지 실명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1996년에 정부 제정기획원에서 만든 홍보영상에서 나온 시민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오해는 1993년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이후에도 수년간 시민들이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겨났는데요. ‘금융실명제’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개인이 거래를 할 때에 차명이나 가명이 아닌 ‘실명’으로만 거래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요?
금융실명제 발표 다음 날 신문 (출처 : 국가기록원)
예금과 적금의 비밀을 보장한다
금융실명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그 이전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1년 7월 29일, 무기명·가명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는 “예금, 적금 등의 비밀보장에 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1993년까지 우리나라의 금융거래는 꼭 본인 이름이 아니어도 가능했습니다. 쉽게 말해, 남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수도 있고 가짜 이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쉽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재산을 공개하기 꺼리는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쌓아두게 되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을 남의 명의로 모아두면 개인의 자산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세금을 부과할 수도 없죠. 급여가 투명하게 공개된 소시민들만 올바로 세금을 내고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은 정부에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있기 전엔,
부정한 돈들이 은행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금융거래에 실명을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정부에서는 예금과 금융거래를 장려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정한 돈이 쌓이고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으며 거대한 금융사기사건도 발생했습니다.
퍼스트펭귄들, 불공정한 경제정책 개선에 뛰어들다
1987년 6월 항쟁을 지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았습니다. 개발 우선 정책에 밀려 부동산 투기가 광풍을 일으켰고 이로 인한 노동의 대가로 얻는 보수 이외의 불로소득이 높아지며 도시무주택서민들의 고통이 커졌습니다.
1989년,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퍼스트펭귄들이 모여 시민운동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줄여서 경실련으로 부르는 이 단체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 경제적 공의를 추구하기 위해 자유, 평등, 민주 사상을 토대로 불공정한 경제정책 개선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
전두환 대통령 때에도 금융실명제는 한번 언급이 되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취임 후 1989년 4월 금융실명제 실시단을 구성해 1년 동안 준비하다가 여건이 여의치 않다며 준비단 자체를 해체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부터 경실련은 ‘제반 경제개혁조치의 후퇴를 경계한다’는 구호를 시작으로 금융실명제 실시를 촉구하였습니다. 경실련은 그간 쌓아온 운동의 전문성과 역량을 끌어 모아 계속 보도자료와 성명서를 내고 언론을 통해 이를 이슈화 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경실련이 분위기를 띄우며 시민여론을 주도하자 정치권에서도 본격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캡션 입력1991년 경실련의 활동을 보도하는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두 번째 대통령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대통령 공약으로 앞세웠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성장률이 높았지만 차명계좌를 통한 정재계의 불법자금 조성, 경영권 상속의 문제, 주가조작, 어음거래 사기, 불법거래 등이 만연했습니다. 80년대 초반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수천억 대 거액 어음사기사건도 차명계좌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나쁜 짓을 저지르기 좋은 여건이 있다면 정책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옳습니다.
끝까지 보안을 지켜라!
금융실명제는 한국 현대사에 기록할 만한 사건이라 평가받습니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 정재계 반발이 엄청날 것을 예상하고 극비리에 금융실명제를 준비합니다. 경제부총리와 재무부 장관을 불러 철저한 보안을 요구했습니다. 이경식 부총리와 홍재형 장관은 실무자들을 모아 극비리에 과천에 모였습니다. 이 팀은 한 달간 집에도 못 들어가고 해외출장을 가는 것으로 위장했다고 합니다. 팀에 합류한 공무원도 특별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실제로 해외출장을 가는 줄 알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집니다.
왜 이리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했을까요? 그만큼 시중에 불투명한 돈들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금융실명제 전면 실시를 기습 발표하는 故김영삼 前대통령
드디어 1993년 8월 12일 오후 8시. 예금인출을 막기 위해 저녁시간을 고른 김영삼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합니다.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합니다. 아울러, 헌법 제47조 3항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심의·승인하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합의와 개혁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비추어 국회의원 여러분이 압도적인 지지로 승인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발표를 진행했던 12일은 목요일이었습니다. 13일 오전부터 명동사채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고 은행과 금융권도 모두 비상체제에 돌입하였습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은 실명확인이 안 될 경우 예금 인출을 금지하고, 순인출 3천만원 이상의 경우 국세청에 통보하여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3일 금요일은 이에 대한 각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준비를 위해 오후 2시부터 금융기관 업무를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은행을 방문해 직접 실명확인을 시연하는 故김영삼 前대통령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계속되는 노력
두 달 사이 전국의 예금 실명전환율은 97.4%까지 올라갑니다. 전환금액은 6조 2천 379억원에 달했습니다. 경실련은 일단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조기정착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제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기존 차명계좌에 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계속 지적하며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캡션 입력경제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처 : 정책 브리핑)
금융실명제는 시행 당시 기존의 제도를 완전히 뒤엎어 혼란이 우려된다는 전망도 있었으나, 현재는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금융실명제도를 정부가 시행하도록 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지지한 시민들 모두가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금융실명제를 통해 검은돈, 부정한 돈, 숨기고 싶은 돈이 은행으로 숨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아직도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차명통장을 사용하고 부정한 돈을 숨기는데 급급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정의 실현이 앞으로도 쭉 지속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경제 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힘이 필요합니다.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뜨거운 피자보다 중요한 청년들의 안전
한국의 대도시는 24시간 어디서든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습니다. 바닷가 방파제도, 대학의 잔디밭도, 음식이 못 가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더 따뜻한 피자와 식지 않은 치킨을 제공하기 위해 오늘도 배달노동자들은 빠른 속도로 도시를 누빕니다.
2010년, 피자를 배달하던 최 모씨가 사거리에서 택시와 부딪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주일간 사경을 헤매던 청년노동자 최 모씨는 결국 목숨을 잃었고,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청년 알바생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의 안전보다
뜨거운 피자가 중요할 수는 없죠.”
“빠른 배달로 누군가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에 처한다면
과감하게 30분 배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불편함을 택하겠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누비는 배달 오토바이
함께 외쳐요! #노30분서비스
피자배달노동자 최 모씨의 사망 이후, 청년 알바생들의 노동 인권 향상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이 사건을 계기로 ’30분 배달보증제 폐지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청년 노동 인권을 위한 여러 시민단체들의 노력]
사람들이 SNS에 #노30분서비스 라고 해시태그를 달며 동참했고, 업체는 여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30분 배달제’는 주문을 한 순간부터 30분 내에 고객에게 배달을 완료하는 제도인데요. 주문을 확인하고 피자를 만드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피자는 매장을 나선 후 10분 이내로 고객의 손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상황이라면, 배달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배달노동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불합리한 구조였는데요. 목숨을 걸고 달려가 배달을 해도 30분이 넘어가면, 배달노동자가 고객과 가게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했습니다.
도미노피자의 30분 배달보증제 폐지
사장님, 주휴수당 알고 계신가요?
2011년, 모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은 알바생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직원 교육 때는 전혀 듣지 못한 이야기였는데요. 그는 청년유니온에서 주최하는 노동법 세미나에 참석해 주휴수당 규정을 알게 되었고, 일하던 곳의 사장에게 주휴수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커피전문점의 사장도 몰랐던 이야기라며 본사에 알아보았고, 주휴수당 규정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그동안 받지 못한 주휴수당은 172,800원이었는데요. 커피전문점 사장은 모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이 청년에게만 주휴수당을 지급하였습니다.
청년유니온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각 커피 전문점의 주휴수당 지급률을 조사했는데요. 7개 브랜드, 251개 매장의 알바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휴수당 전체 지급비율은 11.5% 였습니다. 청년유니온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커피전문점들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주요 언론사에서 이 소식을 다룬 덕에 크게 이슈가 되었습니다.
청년 아르바이트의 기본 조건
청년유니온은 그동안 구직자인 조합원이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 허가를 받지 못했으나, 2011년 조직을 재정비해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아 커피전문점 측과 노사교섭을 맺게 되었습니다다. 이 교섭의 결과로 카페베네와 커피빈은 그간 주지 않은 주휴수당을 지급했는데요. 이는 청년들의 비정규직 노동, 아르바이트의 실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청년 아르바이트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고 청년 아르바이트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가입, 최저임금 준수, 주휴수당 제공이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작용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이 최소한의 법 준수와 권리 보호를 위해 오늘도 청년들은 일하면서 저항합니다.
최저시급은 청년들에게 적절한 급여일까요?
최저시급이 적정시급은 아닙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보다 적게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면 안 된다’는 최저의 기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적정임금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라는 이슈가 언론에 의해 강조되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죠. 2013년 알바연대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의 단체는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를 만들어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올리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와 최저임금연대가 합류해 더욱 적극적인 운동을 펼쳤고, 이후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에도 주요 공약으로 나타났습니다.
1시간을 일한 돈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밥 한 그릇 마음 놓고 사 먹을 수 있는 현실적인 최저시급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는 정권 내에 최저시급 1만원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으나,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어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그동안 오르지 않았던 최저시급은 논란이 거세지면서 적정시급이나 최고시급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그동안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를 감안했을 때, 지금의 최저시급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노동현장을 위해
2018년 한 신문사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청년들은 응답자의 50.1% 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들은 그 인구수가 확연히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싼 노동비를 받으며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상승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노동 환경이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의 노동이 공정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 실습의 위험성, 저임금 고노동으로 인한 건강문제, 산업재해 등이 이제야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없었던 일이 갑자기 생겨난 걸까요? 퍼스트펭귄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제야 청년 아르바이트가 수면 위로 올라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존중받는 날이 올 때까지, 함께 관심을 가져주세요.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1993년,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마트가 들어섰습니다. 바로 이마트 1호점인데요. 이때부터 창고처럼 커다란 매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모두 한 번에 사는 방식의 쇼핑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거대한 매장에 들어서면서 산처럼 쌓여 있는 물건에 압도되고, 식품부터 생활용품과 의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한 곳에 모아놓은 편리함에 매료되었죠. 사람들이 대형마트에 익숙해지면서, 1995년 18개에 불과했던 대형마트는 1996년 이후 급격히 증가합니다. 또한,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야간에도 문을 여는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없는 게 없는 대형마트의 정갈한 내부
하지만, 우리 동네의 정다운 가게들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지역의 작은 가게들은 맥을 못 추고 쓰러졌습니다. 작은 가게를 꾸리는 상인들은 대량 물량공세로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가지는 대형마트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업은 초반에 당장의 매출이 일어나지 않아도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형마트는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을 투입해 매장을 운영할 수 있고, 창고에는 물건이 가득 쌓여 있어서 부족한 물건이 없습니다. 반면, 대부분 가족단위가 같이 경영하는 작은 가게들은 24시간 운영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은 초기에 큰돈을 들여 대형 매장을 짓고 넉넉한 주차장도 제공합니다. 생긴 지 오래된 재래시장은 뒤늦게 정부의 도움으로 천막을 치고 주차장을 지었지만 대기업의 물량공세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대형마트의 등장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로 무너지는 지역경제
그뿐 아니라 기업은 SSM(Super Supermarket)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슈퍼마켓을 만들어 골목상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선한 식료품을 밤늦게까지 살 수 있는 슈퍼마켓의 골목진출은 소상공인 생계의 위기가 되었습니다. 2006년부터 중소기업청과 지식경제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 매해 실시하는 조사 결과, 해가 갈수록 전국 전통시장, 중소유통업체, SSM 주변 중소유통업체 모두의 고객 수와 매출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사례로, 홈플러스 청주점의 경우 지역 주민들의 완강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을 열게 되었는데, 이후 반경 5km 내의 슈퍼마켓 337곳 중 72곳이 폐업을 했습니다. 3년 사이, 지역상권의 30% 정도가 날아간 셈입니다.
지역 내 경제순환의 중심이 되는 시장
게다가 대형마트는 벌어들인 돈을 모두 본사로 보냅니다. 골목에서,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그 지역에서 다시 소비하여 지역경제를 순환시키는 소상공인들과는 다르죠.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물품 역시 그 지역에서 생산되기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배송됩니다. 대형자본을 가진 기업은 지역의 것을 지역에서 팔지 않고, 지역의 것을 지역으로 돌려주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함께 사는 경제공동체를 위해
2009년 5월, 각 지역별로 대응해오던 전국의 중소상인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모여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를 결성했습니다. 점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조직에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해, 각 전통시장상인회를 중심으로 한 전국의 상인연합회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진보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함께하였습니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창고형 할인마트를 표방한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후 지역경제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퍼스트펭귄들이 모여 전국적인 연합체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는 대형 유통업체가 확장해가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의 상생 경제공동체를 위한 노력]
‘중소상인살리리네트워크’가 진행하는 사업들은 크게 중소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법률의 재개정을 추진하는 것, 대형마트와 SSM의 합리적 규제를 도입하는 것,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고, 폐업 중소상인의 실업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2011년, 대기업들은 대형마트의 출점 자제와 월 2회의 의무휴업에 합의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2012년, 합정동에 입점이 예정되어 있던 홈플러스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지역 주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많은 마포구 주민들과 망원시장을 비롯한 주변의 중소상인들의 참여가 큰 힘이 되어 망원시장 인근의 홈플러스 SSM은 폐점하였고, 처음으로 중소상인들과 협의하여 협의가 된 품목을 제외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막아낸 대형자본의 지역경제 침투
또한, 2012년에는 전통시장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문전성시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전통시장을 살리려는 시민들이 전통시장 안에서 캐시몹(cash mob)이라는 이벤트 퍼포먼스가 참여하였습니다. 캐시몹이란 SNS 등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같은 상점에 모여 함께 쇼핑을 하는 플래시몹의 한 종류로, 지역 또는 상점의 활성화를 위한 의미와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입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캐쉬몹 참여 포스터
자본에 억눌리지 않는 삶을 위해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 퍼스트펭귄이 되어 네트워크와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대형마트뿐 아니라 대형자본이 마을의 삶을 점령하는 일을 반대해왔습니다. 이 퍼스트펭귄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대형마트의 입점 반대가 아닙니다. 상생과 공존의 방법을 찾자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대형자본이 마을의 생태계를 지배하면 중소상인들은 결국 자기 가게를 그만두게 됩니다. 대형마트가 들어와 지역의 인재를 채용하는 일도 일부 판매직에 국한될 뿐 그 효과가 미미합니다. 유통대기업이 지역의 상권과 경제공동체를 지배하는 형국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소상공인과 더불어 사는 경제공동체를 꿈꿉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영업일을 규제하는 것은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쉴 수 있는 권리를 지키며 거대한 자본에 의해 약자들이 내몰리지 않는 사회가 마련되어야 지역의 경제공동체도 지속 가능합니다. 골리앗이 되려는 욕심이 없는 작은 사람들이 모여 조화롭게 맘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퍼스트펭귄들은 앞장섭니다.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외부 일정이 많아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 단말기 할부 값까지 월 10만 원 정도를 통신비로 지출합니다. 휴대폰은 이제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매달 돈을 쓸 수밖에 없죠. 어떻게든 이 비용을 줄여보려고 새로 휴대폰을 개통할 때마다 판매직원과 이런저런 요금제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쥐어짠 기억이 있을 겁니다.
2018년 7월 기준,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6천4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다고 해요. 한국의 가계당 통신비는 2016년 기준 월 14만 4천 원으로 전체 가계소비의 5.6%에 이릅니다. OECD 34개국 가운데 가계통신비의 부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매달 지출하는 통신비는 과연 적절한 수준일까요?
휴대폰 없이 외출할 수 있나요?
우리나라의 통신 역사를 되짚어보면, 공공성을 가진 ‘통신비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참여연대는 1994년 의정 감시와 공익 소송, 인권 등 시민사회 전반에 걸친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입니다. 사회정의, 사회복지, 정치, 사법, 경제, 노동, 인권, 평화 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통신비 공공성 확보’를 위해 참여연대에서 어떠한 노력을 하였고,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요?
[참여연대의 정보통신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
시티폰을 기억하시나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는 삐삐를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버지 역할의 성동일 씨가 시티폰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요. 시티폰은 1997년경 한국통신에서 시작한 새로운 통신수단이었습니다. 휴대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수신은 불가능하고, 공중전화 기지국의 통신망을 써서 공중전화 주변에서만 발신이 되는 휴대전화였죠. 당시 시티폰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삐삐로 호출이 오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해야 하는데, 공중전화는 줄이 길고 전화를 걸 매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통화품질이 엉망인 탓에 소비자 불만이 속출했고, 3년 만에 사업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이 원인은 어디 있었을까요?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중전화박스
참여연대에서는 기본요금을 시민들로부터 다 받은 한국통신이 기지국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시티폰의 통화 품질이 엉망이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대해 기본요금 환불을 요구하는 “시티폰 가입자 권리 찾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국가의 기간시설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있는 정보통신 대기업들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지 주목했습니다. 이후 통신업체의 책임을 문제 삼아 더 많은 정보통신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애써왔습니다.
본격적인 통신비 인하 운동
초기 휴대폰 사업은 한국통신의 기지국과 전파를 사용해서 전파법에 따라 3개월마다 3천 원씩 모든 가입자에게 일괄적으로 휴대전화 사용료를 받았습니다. 참여연대는 이 부분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하여 “전파사용료부과취소”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부터 휴대폰 사용 요금에 포함되어 있던 전파 사용료는 사라졌습니다.
1990년대 말 700만 명 수준이었던 휴대전화 가입자가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를 넘어섰습니다. 통신업자의 이익은 대폭 늘어났는데, 비싼 통신요금은 전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2001년 소비자들의 불만을 모아 “거품요금 인하 100만 인 물결운동”에 돌입했고, 이 결과로 전체 이동통신요금이 8.3% 가량 내려갔습니다.
2007년, 참여연대는 ‘이동통신요금 인하운동 시즌2’를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통신업체들을 대상으로 이동통신요금에 대한 원가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4년이 지난 2011년에 이르러서야 서울행정법원은 원가산정자료 등 중요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통신업체들의 항소로 소송은 대법원까지 넘어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휴대폰 가격을 부풀린 후 할인해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대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는데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이를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사기사건’으로 규정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오늘도 통신사는 치열한 경쟁 중입니다.
이동통신, 시민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수단
“이동통신은 전 국민이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었으므로
이제 공공성이 필요합니다.”
“국가기간산업인 전파와 통신을 이용하는 이동통신사는
이에 대한 공익성을 지켜줘야죠.”
2014년 단말기 유통법이 제정되면서 단말기 보조금을 33만 원으로 제한하는 게 가장 소비자들에게 와 닿는 부분이었는데요. 통신요금 인하도 없었고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데도 실패해 국민들은 부담이 커지고 통신사는 장사가 안 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처음 취지는 혼탁한 통신시장 개선,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좋은 명목이 있었지만, 이 법안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기업에 유리한 것이 더 많았습니다.
참여연대는 지금도 이동통신사의 가격구조를 투명하게 밝히고 기본요금을 폐지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통신업체들의 항소로 시작된 7년의 법적 공방 끝에 2018년, 드디어 대법원이 원가산정자료 등 중요정보를 공개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 모바일 기기는 필수품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정보통신의 기회를
통신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전파 통신망을 이용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전 국민이 이동통신을 사용하고 있으며 통신망은 고속도로만큼 우리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줍니다. 또한 통신은 사람들의 소통을 편리하게 만들어 의견과 여론을 펼칠 수 있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통신 요금 인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이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퍼스트펭귄들은 확신합니다. 이제 퍼스트펭귄들의 도전에 여러분도 함께해 주세요.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정책과 제도들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의 스토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기획연재 입니다. 해안가의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2018년 8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인 커피.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숍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에 드디어 정부가 제동을 걸게 된 것이지요.
매장 내에선 1회용컵을 사용할 수 없어요
손님이 많아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귀찮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남발하던 일회용 플라스틱컵. 여름마다 곳곳에 쌓이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시다 남은 음료수가 들어있는 일회용컵은 거리의 위생까지 위협했기 때문이지요. 건물마다 거리마다 쏟아지던 일회용컵은 환경미화원들의 일손을 두 세배로 힘들게 했습니다.
2018년 8월 1일부터 시행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해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할 경우 최소 5만원에서 최대 200만원까지의 과태료를 내야합니다. 단속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합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이 법을 혹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니면 왜 이제야 이런 강력한 규제가 생겼는지 의아해 하신 적은요?
알고보면, 무려 20년 전에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퍼스트펭귄,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있었습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날로 심각해지는 쓰레기 문제를 정부와 시민 모두가 참여하고 협력함으로써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하여 1997년 설립된 민간협력기구입니다.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일회용컵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왔는데요. 그간에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알아볼까요?
[히스토리] 일회용컵 사용 규제를 위한 자원순환사회연대의 노력
20년 전, 일회용품 아웃을 처음 외치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은 1994년에 제정되었습니다. 무려 24년 전의 일이지요. 1995년에는 매립지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되었습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사용하게 되면서 시민들은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품을 분리배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점에서는 분리배출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정부와 시민들은 패스트푸드 업체가 자발적으로 분리배출과 쓰레기 절감에 신경 쓰길 기다렸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20년 전인 1999년, 패스트푸드점의 일회용품 사용에 대해 시민사회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을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과 분리배출 실태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일회용품으로 포장된 패스트푸드
일회용품 안쓰는 패스트푸드 1호점, 그러나…
가장 먼저 응답한 곳은 롯데리아 서울 관철점이었습니다. 2001년 롯데리아는 자원순환사회연대의 제안을 받아들여 롯데리아 관철점을 ‘일회용품 안 쓰는 패스트푸드 1호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는 자발적 협약이었지 법적인 규제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답니다. 이후 계속해서 인식개선에 힘쓴 결과 2002년도에는 몇몇 업체들과 ‘패스트푸드, 커피전문점 일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고 일회용 컵에 50원에서 100원의 보증금을 걸어 일회용품을 줄이는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회용품 보증금제도가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미환불금의 사용용도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자발적 협약이 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업계의 반발이었던 것이죠. 2009년, 결국 일회용컵의 사용량이 높게는 50%까지 증가하고 말았습니다.
“시민들은 매일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해내려고 애쓰는데
정작 시민들이 돈을 벌어주는 기업들은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여요.”
“설거지를 하면 세제를 쓰기 때문에
환경보호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어요.”
“환경보호의 기본원칙은 덜 만들고 덜 쓰는 것입니다.
일회용컵을 덜 만드는 기본 원칙을 지키려면 덜 쓰는 것밖에 없어요.”
일회용품이 지구를 뒤덮고 있습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포기하지 않고 인식개선운동과 협약업체들의 실천을 모니터링 했습니다. 환경부, 기업과의 간담회등을 통해 계속해서 일회용품컵을 왜 줄여야 하는지 설득해 나갔습니다.
두번째 도전, 이번엔 커피 전문점
첫번째 패스트푸드업체와 함께 했던 시도가 흐지부지되고, 다시 시도한 이번 도전에는 한국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고 있던 스타벅스가 가장 먼저 응답했습니다. 2011년 1월 스타벅스는 환경부, 자원순환사회연대,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와 함께 일회용컵 없는 매장 50개를 지정하고 매장 안에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에게 다회용 컵에 커피를 내었습니다. 이후 3월에는 110개로, 6월에는 전 매장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러자 그해 7월에는 할리스커피, 카페베네, 엔제리너스에서도 일회용컵 없는 매장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매년 일회용컵 없는 매장을 늘리겠다는 약속도 했죠.
그러나, 시민사회와 기업체 간의 협약은 강제성이 없다 보니 은근슬쩍 빠지는 기업도 생기고, 감시와 처벌의 기능이 없으니 그저 기업체를 믿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이번에도 다시, 일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재개정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실현된 일회용컵 아웃!
2018년 봄, 중국에서 플라스틱 수입 중단을 선언하자 대한민국의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대책이 없었는지 시민들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일회용컵은 그 재질이 다양하고 페트병에는 본드가 붙여져 있어 재활용으로 쓰기 어렵다는 정보도 시민들 사이에 많이 퍼졌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회용품 줄이기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부에서 강력한 규제정책을 들고 나오고 나서야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단한 일회용품컵은 플라스틱컵에 한해서입니다. 규제가 시작되자 많은 업체들이 플라스틱컵을 대체하는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종이컵도 일부는 코팅이 되어 있고 일부는 재활용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워 실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1회용품이 금지라고 하지만 종이컵은 예외입니다. 종이컵의 뚜껑은 플라스틱인데요.
2018년 발생한 쓰레기 대란, 이미 시민사회단체는 24년 전부터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계속해서 노력해왔습니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체의 운동에 동참한 것은 의식 있는 시민들뿐이었고 기업체는 아니었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만약 올 여름에서야 시행된 일회용품 규제가 자원순환사회연대가 문제제기를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1999년에 바로 시행되었더라면, 우리의 삶은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의 일상에 일회용품이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에 조금만 더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었을까요?
지금 우리는 미래를 외면하고 현재에 충실합니다. 계속해서 미래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지요. 현재와 미래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원순환을 통해 최대한 환경파괴를 미루는 것입니다.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것은 결국 인류의 수명을 연장할 것입니다. 자원순환사회연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겠죠. 오늘도 퍼스트펭귄들은 남은 과제를 위해 검푸른 바다에 뛰어듭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시민사회단체와 공익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문제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의 미래를 한층 밝게 만들 수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지금, 우리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세상의 모순을 찾아주세요. 시민사회단체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