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쓰는 생애사 – 아홉번 째 이야기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 동화로 쓰는 생애사
9번째 수업 (7월 24일분)
지난 주의 “자기소개하기”에 이어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적어보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생애사쓰기에 들어가는 셈인데, 자기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먼저 꺼내고 참가자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아팠던 기억과 그 것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해보고 난 다음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 내가 정말 대단한 주인공이 되었던 경험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세 가지로 나눠놨지만 사실 한 가지 주제다. 가장 잘 하는 것을 했을 때, 그리고 타인의 주목을 받거나 칭찬을 받았을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생애사쓰기는 대부분 연대기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섣부르게 연대기적 기술을 하다 보면 특정한 한 시점에 얽매이는 경우도 있고 나이가 많거나 기억력이 첨예한 사람은 시작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글쓰기 능력에 따라 이야기를 분할해서 적어보는 게 좋다. 이건 수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몇 회기 내에 끝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획한 수업은 여유있게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자기 기억을 전반적으로 꺼내본 다음엔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이들은 지금 모두 20대니까, 초등학교때,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이야기를 하나씩 나눠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억이 세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폐 성향으로 이미 했던 이야기들을 반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과정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조금 단단해지면 내가 가장 화났을 때나 슬펐을 때를 얘기할텐데 이 학우들은 자기가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부분도 같이 적어봐야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주 수업이 끝난 뒤 미술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하루에 글쓰기와 그림을 나눠서 하기에 무리일 거 같다며 하루는 글쓰기만 하고 그 다음 주에 미술수업만 집중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미술 선생님은 똑같은 기법으로 그리는 것보다 점점 다양한 방법들을 끌어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물론 나도 다양한 기법의 글쓰기를 해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진행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고, 시점이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이야기를 과거의 이야기처럼 하거나 과거의 이야기 중에 오늘 머릿속에 박힌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릴레이 글쓰기나 이론적인 수업을 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해 이 학우들은 꽂히는 것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해서 그날 그 주간에 무엇에 꽂혀 있느냐가 이야기의 중점이 된다. 주제를 정했을 때 쉽게 받아들이는 것만 어려울 수 있는데 아무래도 글쓰기가 주는 엄숙함과 강박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시간이 여유있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잘 하는 것을 써보자고 했는데 뚜렷한 특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금방 찾아 써냈다. 각자 쓴 내용이 참으로 멋졌다. 수영씨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작곡도 하는데 나에게 들려주는 노래가 상당히 멋졌다. 내가 유명한 음악프로듀서를 찾아서 곡을 보내보면 어떻겠느냐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유명해지면 악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하죠? 라고 물으니 그렇다면 유명해지는 건 싫다고 완강하게 대답했다. 노래가 정말 좋다. 아깝다. 이 노래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기현 씨는 예의 그렇듯 한 문장씩 물어가며 썼다. 혜은 씨는 설거지를 잘한다고 적었고 채영 씨는 춤을 잘 춘다고 적었다. 감성적인 글을 잘 쓰는 수정 씨가 좋은 글을 썼길래 시를 잘 쓰는 법에 대해서 적어달라고 했더니 귀감이 될 만한 글을 적어주었다. 승민 씨는 며칠 전 복지관을 찾아온 인디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무용도 오래 했는데 연기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은혜 씨는 자기가 만들 줄 아는 빵의 이름을 나열했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다 쓴 뒤에 천천히 일어나 한 명씩 돌아가며 읽었다.
글을 다 읽은 후에는 앞에 앉아 있는 친구를 응원하는 편지를 썼다. 상대방의 칭찬할 점을 적고 응원메세지를 적어보자고 하자 모두들 묻지도 않고 능숙하게 잘 적었다. 평소 글쓰기를 전체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나열하는 형태로 쓰던 혜은 씨가 재대로 된 편지를 적었고, 나에게 일일이 문장을 묻던 기현 씨도 쓱쓱 편지를 적어내려갔다.
그 다음 주에 있었던 그림 수업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고 담당 복지사 선생님이 결과물 사진을 보여줬다. 자기가 잘하는 것에 연관된 사물을 그려 붙이고 관절이 움직이는 종이인형을 만든 모양이다. 다들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씩 있으니 참 좋다. 학우들의 오늘은 오랜 교육과 훈련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이들이 받는 교육 중에 비장애인에게도 필요한 교육이 많다. 자기 재능을 살리는 일, 화가 났을 때 대처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자주, 비장애인들이 장애등급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 오만하게 자기 삶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에게는 과도하게 많은 규칙들을 요구하고 비장애인들은 그 많은 규칙들을 깨버린다.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세상의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임금노동이 가능한가에서 왔나? 한 사람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인간의 활용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인간을 이용하겠다는 또 다른 인간세력에 의해, 우리는 생산을 강요받고 노동을 유지하는 부품으로 살아가게 된 것일까. 이 생각도 편견일지 모르겠다.
두 주 동안 이 수업은 쉰다. 2주간의 방학이다.
다음 수업은 8월 14일에 있다.
이 뜨거운 여름을 다들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궁금하다. 모두들 시원한 곳에서 잘 견디고 있길.
7월 24일의 수업 내용을 밀리고 밀려 8월 5일에 적다.

계절을 두 배로 견디는 일

최악의 무더위라지만, 나는 올 여름을 정말 편케 보냈다.
땀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교실의 특강은 7월 20일로 끝났는데 그 주의 월요일부터 폭염이 시작되었으니, 그나마 나는 여름 노동을 아주 짧게 하고 마친 셈. 이후로는 대부분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만 남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름 넘게 잘 지내고 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어도 더위를 견디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차를 가지고 나갔다. 창문을 잠깐 열때마다 도로의 열기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사실 나같이 편케 지내는 사람이 덥다고 불평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몫으로 돌아가지만 적어도 과거의 나를 생각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은 20년전의 나에게도 너무 미안한 일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못하던 시절에 르몽드 디플라마티크에 실린 글 하나가 내 명치끝을 후벼봤는데, 더위와 추위는 빈부격차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때 나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2010년도에 지어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집안의 붙박이 장과 집안 곳곳에 배관이 설치되어 있어 집안의 미세먼지를 외부로 내보내는 닥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등록된 차량이 아파트 단지안으로 진입하면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라는 안내음이 울렸고 입주할 때 준 작은 기기를 주머니나 가방에 가지고 있으면 공동현관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호출되었다. 500여세대가 사는 작은 단지에 지하주차장은 2층까지 되어 있어서 주차난이 없었다. 그런 시설에서 내가 7년을 살면서 갖게 된 새로운 습관은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아주 얇은 옷을 입지 않고, 우산을 잘 챙기지 않게 된 것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삶을 살게 되면, 추위도 더위도 모두 피한 채, 인간이 설정해 놓은 온도, 18도에서 25도 사이의 삶을 계속 영유할 수 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나 더위와 추위를 실감했다. 만일 내가 그 집에 살면서 골프연습장과 백화점만으로 외출을 한정지었다면 일부러 산책 할 때 외엔 외부 공기에 노출될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엄청난 전력을 써대며 하이브리드 차를 사서, 양심을 달랜다. 3중 유리창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서 액자 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그 아파트는 지역 열병합발전소에서 직접 전기를 끌어오는데다가 태양열에너지가 수시로 저장되어 있어 전력난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섯 살부터 그 집을 떠난 적 없는 내 아이는 정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며칠 전 우리집에 왔을 때 정전이 되었는데, 전자렌지에 햇반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는 어이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겐 무엇이 전기고 무엇이 전기가 아닌지, 그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그 집을 나와 나는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하주차장 한 켠에 관리사무실을 만든 사람들이 골프동호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보스턴백과 골프가방을 들고 나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쏟아져 나온 폐기물이 너무 고급스러워서 주워오고 싶어도 그 부피가 상당해 내가 가져올 수도 없는 그런 물자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사는 지금의 이 아파트는 93년에 지어진 신도시1기의 아파트. 제일 넓은 평수가 전용면적 12평. 에어컨이 없는 주민들은 평상에 나와 밤바람을 기다리고 겨울엔 눈이 얼어붙어 주차장이 위험하고 늘 주차공간이 부족해 보도블록위에 차를 걸쳐야 해서 보도블록은 죄다 깨져 있다. 나무 아래 차를 대면 새똥이 매일 매일 새롭게 떨어져 있고 나무 수액도 떨어져 차문이 끈적한 이곳은, 사시사철 계절을 감각할 수밖에 없다.

94년의 더위는 열람실에서 보내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늘 더웠다.
고시원의 강력한 에어컨 바람은 방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휴게실과 외부로 떠돌았고, 옥탑방의 열기는 동생을 탈진하게 해서 응급실까지 가게 했다. 반지하에 살 때는 더위보다 곰팡이, 바퀴벌레, 쥐가 수시로 들락거렸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 안전문이 없던 시절 지하철에서는 들어오는 열차도 열기를 뿜었다. 어쨌거나 늘 더웠다. 그 노동이 끝나는 순간 나는 더위를 견디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되었다. 피할 수 없어서 견뎌야 하는 것들은 도처에 있으니까,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어지간하면 피하겠다고 결심한 셈이다.

폭염은 갈수록 더할 것이고, 홑겹의 베란다 유리문만 있는 지금 내 집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울 것이다. 올 겨울에도 세탁기가 얼까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겠지.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온난화의 책임이 더 크다면, 그 책임의 부채는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독하게 겪게 된다. 에너지 빈곤은 계절을 두 배로 힘겹게 만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 정책에 결정권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질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힘들게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이유다.

2018년 8월 4일
(며칠 만에 밤 온도가 29도로 내려간 날)
사진은 2004년. 60년만의 최악폭염을 기록한 상하이, 내가 살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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