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을 봄

더위가 시작되었다. 
귀한 사람과의 이별에 마음은 덕지덕지 끈끈하다. 
온 도시에 선거용 현수막이 펄럭인다. 예전처럼 노래하며 외치는 선거운동이 없다는 것도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 

선거에 나온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유심히 본다.
사람들의 사진을 자주 찍게 된 게 2년여, 되었다. 
이전의 내 사진엔 사람은 단 한 명도 들어있지 않았는데. 
한 사람을 보내는 자리에 쓰인 내가 찍은 사진이 나에게 던진 파문은 크다. 

버스전용차선에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가 움직인다. 
민소매에 붉은 색 등산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그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거나, 추워지거나, 그런 것은 먹고 사는 것을 지체시키지 않는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하는,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오전을 보냈다. 저 노인은 누가 기억해줄까.

귀중한 사람이 갔다.
그 분이 들으면, 누구 하나 귀중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햇빛이 뜨거워도 쓸쓸함을 녹여주진 않더라.

얼굴과 손이 짭쪼름해져도, 스산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지치도록 잔혹한 이 봄, 징그럽고 지겨운, 이 봄이 간다.
사라진 사람은 영원해진다 해도, 이 봄은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2014. 5. 27.

만날 수 없던 사람, 만날 수 없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였다. 
추도 예배 내내 훌쩍이는 소리와 견딜 수 없어 터지는 탄식이 있었다. 
추도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유족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모두들 가슴 속에 불 한 덩어리 크게 얹혀 있었을 것이다. 

뻔히 아는 길을 가면서 계속 직진만 하느라 길을 뺑 둘러갔다. 
어쩌면 그 장례식장에 영원히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어떤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해도 
모두가 황망하고, 화가 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악수만 하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팔을 쓰다듬으며 인사했다.
꼭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 큰 남자들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토해냈다.
누군가 무너질 것 같아 걱정만 더해졌다.

장례식장이 있는 그 병원 로비와, 고인의 장례식장에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키가 크고 안경을 쓰고, 자켓을 입은 남자를 볼 때 멈칫했다.

고인의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 속에서 고인을 찾고 있었다.
머리로, 괜찮다고 쓰다듬어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득 문득, 모두가 그렇게 얘기하듯이 나도 그 분이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며 환하게 웃어줄 것만 같다.

내가 2년전 찍어드렸던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
원본이 필요하다는 말도 전해듣지 못했다.
얼마나 서로 경황이 없었다는 얘기였을까.

유족의 손을 잡고 이럴려고 찍었던 사진이 아니라고 했으나,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괜찮다고, 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10년을 같이 한 사람도, 33년을 같이 한 사람도 있는데 나의 황망함은 비교할 수 없다고 그러니 나는 금방 일어날 거라는 말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내일까지, 통곡하고 울고 나면.
이 귀한 분을 보낼 수 있을까.

이 세상을 살면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사람. 그래서 그 분은 하늘의 것이었나.

故 문홍빈 사무총장

아직은 명복을 빈다는 말도 할 수가 없다.

 

120614_Nikon 107

세월호 사건일지

노후한 배가 있었다. 
정부정책이 바뀌어 사용기한을 늘려주었다. 
불법 증축과 개조를 했다. 
화물을 3배나 더 실었다. 
그 화물을 결박하지도 않았다.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다. 
그러나 출항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탑승했다. 
탑승자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침몰했다.
선장와 선원들이 먼저 탈출했다.
구명정이 펴지지 않았다.
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안내 방송은 없었다.
해경은 40분이 지나 도착했다.
신고한 아이에게 GPS 위치를 물었다. 아이는 GPS를 몰랐다. 

해경의 구명정은 선장과 선원을 구출하고 더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구한 것은 민간인과 어업지도선이었다.
중대본부가 꾸려지지 않았다.
기자들이 몰려왔다.
친구가 죽은 걸 알고 있냐고 살아남은 아이에게 물었다.
안행부 장관이 와서 참모들과 치킨을 시켜먹었다.
밤이 되었다.
구출된 선장과 선원들은 해경의 개인소유 아파트에서 첫 날밤을 보냈다.

민간잠수사들이 몰려 왔으나 지휘체계가 잡히지 않아 내려갈 수 없었다.
선주와 해경이 계약한 업체가 독점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민간잠수사들은 “독점계약”에 가로 막혀 수중진입에 실패한다.
업체와 자원봉사, 그 사이의 해경은 타협하지 못한다.
한 쪽은 사람의 목숨을 우선시 하는데 한 쪽은 실적과 계약, 윗선의 눈치를 중시하니 타협점은 없다.
교육부 장관이 내려와서 사발면을 먹었다.
총리가 내려와서 물병을 맞았다.
대통령이 내려왔다. 어떤 부모들이 무릎꿇고 빌었다. 책임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천명하고 돌아갔다.
해경 대변인이 발표를 하던 중에 예비역 중령이 나타나 왜 입수를 방해했느냐고 따진다.
구조가 지지부진하자 부모들이 행진을 시작한다.
경찰 수백명이 나타나 잽싸게 가로막는다.

분향소가 차려진다.
정부주도 분향소의 이전 사실을 죽은 아이들의 단체카톡방에 통지한다.
대통령이 조문을 했다.
신원미상의 조문객이 대통령의 등뒤에서 접근했으나 안전사고는 없었다.

알바생의 장례비는 지원할 수 없다는 발표가 있었다.
구조작업중이던 잠수사의 바지선에 해경선박이 충돌했다.

한 번도 실종된 적 없이 갇혀 있던 아이들이 시신이 되어 4km 밖에서 발견되었다.
사고가 난 지, 17일이 지났다.

– 가만히 있으라, 기다리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17일째 되는 날, 지하철이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 승객들은 안내방송을 기다리지 않고 침착하게 빠져나와 스스로를 구했다.
이제 그 어떤 재난이 닥쳐도 그 누구도 안내방송을 믿지 않을 터이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 이게 국가를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