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왜 좋고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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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었어. 아기 기저귀에 쓰는 노란고무줄이 있었어. 그걸로 가속페달을 묶어놓은 버스를 상상해봤어? 내가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는 그런 버스였어. 그 버스가 기울어질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탔어. 그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던 길에 시비가 붙으면 버스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욕을 했어.

“씨발 내가 너 따위 죽이고 깜빵 한 번 더 가면 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깔깔대던 열일곱 열여덟 아이들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순간이었지. 그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이었어. 순수했고 착했어.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었고, 청천벽력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안정된 성품의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수였어. 모험심이 많거나, 책임감이 적은, 바람같은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보다 그 반대편이 사는 데는 훨씬 수월했겠지. 몰아치는 폭풍을 헤치고 나갈 에너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자기를 가꾸는 데 쓸 수 있거든.

바다에 배가 가는데, 자꾸 폭풍이 몰아치면 무슨 기운으로 고기를 잡겠어. 근데, 날씨가 계속 좋으면.. 고기도 잡을 수 있고, 하늘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도 있거든. 폭풍만 만나면서 살면, 그런 여유는 없지. 하루 하루 버티고 견디는 게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그래서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공부를 잘한다고 말하기도 하는거야. 맨날 집에 뭐가 박살나는데 뭔 정신으로 책을 들여다보나. 그런 집구석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숨죽이며 버티는 거거든. 그 와중에 공부를 하는 애들은, 유별난 독종이라고들 하는데, 뭐 꼭 그게 독종이라 그러겠어? 그건 그냥 그 아이가 버티는 방법인데 사회에서 좀 좋아하는 방법을 고른 것 뿐이잖아. 책에다 코 박고 있으면 집중이 잘 되는 뇌를 가지고 태어났나보지. 그게 뭐 꼭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폭풍이 쉴 새 없이 불던 날이 있었어. 이번엔 정말 큰 건이 터진거야. 그 때 내가 열일곱살이었는데. 와 정말 살다 살다 결국 이런 일도 터지는구나. 싶더라고. 욕이 절로 나와. 씨발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지?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난 하라는대로 다 하고 살았잖아. 내가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집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냐. 열일곱의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지각도 안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 게다가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 때 욥의 심정이 뭔가 생각했어. 와 정말 좆같겠구나. 씨발.

내 생일이 8월 말인데.

그 날 학교에 자퇴서를 쓰러 갔지.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인지 다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년에 만나자고 힘내라고 다 격려를 해줬어.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 마을버스를 탔어. 나는 사복을 입고 있었지. 나는 학교에 소속된 아이가 아니니까. 사복을 입고 싶었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외치고 싶었던 거 같애. 내가 이만저만한 그지같은 일이 생겨서 학교에 못 다니게 됬다구요!! 라고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원망을 퍼붓고 싶어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난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자퇴서를 써야 되냐고!!

그건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억울할 만한 일이거든.

그래 그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안에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거야. 자리가 비었더라고. 애들은 다 학교에 있었거든. 게다가 내 생일인데 말야. 날씨가 겁나게 좋은거야. 진짜 허벌나게 좋더라고. 햇빛이 막 미치게 내려쬐고 말야. 8월 말, 내 생일 즈음엔 주로 태풍이 오지. 그게 참 이 엿같은 팔자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던 나이였는데. 와 .. 날씨는 왜 좋고 지랄. 약올려?

날씨 좋으면 놀러가고 싶잖아. 사람들의 표정도 좋잖아. 길에 웃는 사람들도 많잖아. 나는 미치겠는데 말야.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햇빛이 짱짱해. 태양이 비웃는 거 같은거지.

그건 니 문제야. 나는 멀쩡하단다.

슬펐지. 그래서 그 날 어디 쪼그리고 앉아서 뭘 적었을 거야.

내 세상이 무너지는 날, 누군가는 빨래를 널고 세탁소에 옷을 맡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가 죽기도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회사에 가고 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겠지. 수박을 사오는 누군가의 엄마도 있을 것이고 아이스크림을 베어먹으며 골목을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다.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건 내 세상만 무너진 일이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비록 내가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거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

비참하지. 나 없이도 조직이나, 세상이나, 내가 속했던 사회가 돌아간다는 게 진짜 짜증나잖아. 그게 얼마나 슬퍼. 나 없으면 죽을 거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인간은 그냥 그렇게 먼지같은 존재야. 근데 그걸 깨달았는데도, 그 때 한 생각은. 아 나는 정말 무용지물. 여기서 끝났거든.

근데..나는 무용지물이다 – 에서 모든 인간은 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용지물은 아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발전하는데.. 20년이 걸린 거 같애. 뭘 억지로 해서 티비에 나오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그 경박한 욕심을 버리는데 말야.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걸까. 한심한가? 근데 또 그것도 아니거든. 뭐가 한심해. 인간은 원래 다 한심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더 한심한 인간도 다 잘 살아. 밥 잘 먹고 잘 자고 똥만 잘 싸고 잘 살아.

날씨를 뭐 어떻게 할꺼야.

날씨 좋다고 하늘에 돌 던지면 나빠지나.

아니면 돈이 많아서. 내 기분이 맞는 날씨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가나? 갔는데 거기 날씨가 바뀌면? 그럼 말짱 꽝이잖아.

기분이 나빠. 날씨 좋아서 더 나빠. 날씨가 나빴으면 좋겠어. 비가 주룩주룩 왔으면 좋겠어. 그럼 뭐..기다려야지. 비 오는 날까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적는거야.

와..오늘은 정말 좆같은 날이었습니다. 씨발. 오늘을 최악의 개같은 날로 정하면, 내일은 덜 개같겠지요. 하하하. 잠이 오나. 잠이 안 오겠지. 안 오면 뭐 못 자는거지 뭘 어떻게 하나. 꼭 자야되나. 하루 안 잔다고 죽지 않아. 그냥 내일 좀 피곤할 뿐이야. 세상에 .. 그렇게 큰 일은 없어. 다 어떻게 보면 그냥 먼지같은 일이야. 할매들한테 어떻게 사셨나요? 물어봐봐. 그 새털같이 많은, 개털보다 많은 날들이 한 줄이 되거든. 그 해에는 애를 낳았지. 2년이 넘어가고 그 해에는 둘째를 낳았지. 아마 큰 애가 아팠던가.. 안 죽었으면 다 별 일 아닌거가 되는 거 같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잖아. 안 죽으면 됐지. 뭐. 살아있으면 언젠가 억울하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혹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살려두는 게 나을 거 같애. 언젠가 붙잡고 말해줘야지. 너 때매 뒈져버리는 줄 알았어. 알고는 있냐? 라고.

2013. 3. 15.

 

근데 그 때 그렇게 억울했는데 말야.

그 때 내가 꼭 그렇게 억울해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 자퇴서를 안 쓰는거야. 버티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거든. 근데 나는 내가 더 비참해지는 방법을 택한거지. 누가 알아줄까봐. 그냥 훈장 하나 달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훈장을 달았지. 트라우마. 내 트라우마. 내가 골라서 내 가슴속에 새긴거야. 그냥 학교 버티고 다녔으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혹시 알아. 학교에서 장학금을 줬을 수도 있어. 그 일은 생각보다 무척 금방 해결됬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 때 왜 자퇴서를 썼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그냥 내가 그런 인간이구나. 깨달은 걸로 만족이야. 어쨌거나 쉬는 동안 공부를 좀 해서 성적을 올리고 다음 해에 당당히 재입학을 했고 학교도 잘 다녔으니까. 그게 막 가슴아파할 일은 아닌거 같애. 내가 그냥.. 모르는 길이 있으면 일단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랄같은 성격때문이겠지 뭐. 내 트라우마, 내 상처ㅡ 그런 거 말야. 뭐든지, 일단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왔을 때, 결국 어느 방의 문을 여는가는. 내가 선택하는 거더라고. 등 떠밀려 들어갔어도, 나올라면 나오는거지 뭐.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아닌 이상.

비오는 밤

기억이 잊혀지는 게 구슬프다.
내가 잊어가는 것도 구슬프다.
빗소리는 더 이상 양철지붕을 때리지 않는다.
곱게 화단에 내려 앉아 값비싼 향나무를 적시고 비싼 개밥을 먹고 사는 개들의 똥무덤을 적실 것이다.

하나씩 잊혀져 가는 게 구슬프다.
온 몸을 감싸던 외투를 벗는 계절이라 슬프다.
태양이 빛나고 꽃이 피더라도 답답하던 옷에 배어 있던 체취가 그리운 날이 있더라.
갑자기 눈이 왔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날이 흩어진다.

올 겨울은 너무 길었지. 올 겨울은 너무 힘들었지, 그래서 빨리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꽃은 기다릴 수가 없네.

그 겨울의 시작부터 믿기지 않았으니까. 결국은 그래도 겨울은 가고 봄은 오는 건데, 이렇게 쉽게 가고 이렇게 쉽게 와도 되는 건가..
이렇게 쉽게 가고, 이렇게 쉽게 올꺼면 왜 그렇게 잔혹했나.. 싶은게지.

곧 저 멀리 남쪽 마을엔 산수유가 핀다는데, 삼중창 유리밖에 잘 들리지도 않는 빗소리가 들린다고 우기면서, 갈 봄 여름없이 꽃피네 꽃피네. 라고 중얼중얼.
개 한마리 애기 하나 드르렁 거리는 애매한 계절의 비오는 밤이다.

2013. 3. 13.

3월의 눈- 국립극단

130311_iphone5 030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며 살지만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보며 웃고,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표현한다.

남들의 입과 손, 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나 그림,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뭐라고 해야 할 지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폼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술을 대할 때 감정의 찌꺼기를 밀어낼 수도 있고 더불어 나의 이야기가 더 가치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예술가라 불리는 직업은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3월의 눈은, 노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 본 이 연극의 이야기는 작년 가을 이별한 나의 시어머님과 빈집에 혼자 살고 계신 나의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 대신, 그분들 대신, 나에게 해주었다.

작은 극장이라 울음을 참았으나 통곡할 수 있는 상태였고, 주변에 앉은 모든 여성동지들의 울음을 참는 소리가 끝이 나지 않았다.

주연은 변희봉선생인데,
화를 내라는 아내의 말에
“누구한테??!!!” 라고 말을 하고 침묵을 지키는 몇 분간, 침묵으로도 관객의 오장육부를 뒤집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연극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2013.3. 10.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용산역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중이다…

옛이야기속의 계모

매일 하나씩 읽어주는 옛이야기보따리.
아이가 재미가 붙었는지 읽어달라고 한다.
오늘은 계모얘기를 읽었는데,

생각해보니 전통설화/신화/전래동화 , 즉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1.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고
2. 아버지와의 애정관계는 불분명하며
3. 계모가 등장함과 동시에 아버지는 사라지거나 역할이 미미해지거나,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식을버려두고 계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4. 이를테면, 새로 들어온 계모들의 역할은 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보모 및 육아담당으로 들어오고, 밥벌이는 하지 않는다.
5. 다시 말하면, 아내가 없는 홀아비는 계모를 들여와 생계를 해결해주고 보육을 맡기는 기능으로 “사용” 하는 듯 보인다.
6. 여권신장따위 개도 안 물어갈 소리였던 전근대 사회에서 부계사회와 일부일처제였던 사회적 제도에서 홀로된 여자가 자식을 키우는 일은 경제적 궁핍이 당연했으되
7.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해야만 했던 홀아비들은 육아를 전혀 담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8. 이렇게 짝을 잃은 남과 여는 단순한 계약관계 및 자식육성을 위해 결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를 띈다.
9. 가족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대부분 이런 이야기에 임무로 수여받은 “남자의 자식”에 대한 육아를 게을리 하는 계모들은 그 사실이 발각되면 곧 쫒겨나고 만다.

말하자면 옛이야기에서의 계모는 그저 밥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는 새로운 취직자리를 얻어 자기 자식을 데리고 “주거이동”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늘 밖에 나가 있으니 “부부”의 기능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새로운 일자리는 홀아비의 아이를 키우는 일인데 그 일을 게을리 하였으므로 당연히 해고되는 것이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계모가 아니라 그저 새로 들인 보모를 계모라고 통칭하였던 것은 아니었던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속의 “새어머니”라는 존재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무관한”, 그저 양육을 맡았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이름을 잠시 빌려쓴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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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서정오선생님의 글모음인데 이야기가 구어체로 되어 있어서 마치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이 읽어줄 수 있다. 옛날 이야기를 머리맡에서 해주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이솝우화나 삼국유사를 다시 읽고 내가 이야기를 가공해 해주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어주는 건 게으른 방법이긴 하지만, 워낙 우리말을 맛깔나게 잘 쓰시는 분이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7살까지만 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올 초부터 부쩍 매일 하나씩 읽어달라고 하고 있다.

읽다보면 아이가 잘 모르는 입말의 낱말들이 상당히 많이 나와서 우리의 옛풍속, 즉 장작이 한 짐, 쌀이 천 석, 이런 표현이 나오면 질문이 술술술 이어진다.

이 중 “두꺼비서방님”이라는 옛이야기는 허물을 벗고 근사한 낭군이 된 두꺼비의 허물을 태워버린 색시가 서방님을 찾아 갖은 모험을 다 하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이야기로도 충분히 <반지의 제왕> 못지 않은 대형 스펙타클 서사 판타지 영화가 가능할텐데..라는 상상을 해봤다.

2013. 3. 8.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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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조사서라는 솥뚜껑

내일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학교 입학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지냈다가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위해 검토를 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유인물 묶음에 입학식에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가정환경조사서 / 예방접종증명서 / 저녁 돌봄 지원서 세 가지다.

저녁 돌봄은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 취학통지서를 받고 준비해 온 예방접종증명서를 민원사이트에서 출력했다. 각종 전염병에 대해서 미리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인데, 입학식 전에 미리 접종을 받은 기관과 연락을 취해서 전산망에 올려달라고 요청을 해야 했다. 이런 서식은 최근에 전산화가 되었기 때문에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펴놓고 가족사항을 적는데 짜증이 밀려왔다.

아마 그 전에 봤던 학교 유인물에 영어와 한자가 마구 뒤섞여 있었던 것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다른 이유의 몇 가지 사건 때문에 좀 짜증이 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 말이 있다.

살면서 다들 그렇게 말하듯이, 옛 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

이 속담은 매우 쉬운 말로 전하고 있지만 그 말은 사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다.

가정환경조사서는 나에게 트라우마다.

내가 초등학교 즉, 그 때 말로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는 80년대였다. 그 시대에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 사람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같이 살지 않는 편이 각자에게 훨씬 좋은 경우이다. 더 같이 억지로 살았다가 어떤 불행이 펼쳐졌을 지 예상할 수 없다.

이혼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별에 대해서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미 한국이라는 이 고리타분한 보수의 나라에서, 조선조 이상하게 왜곡된 유교사상이 깊이 물들어 있는 이 환경에서, 이혼만은 절대 불경스러운 일이라며 참고 지내다가 결국 더 큰 불행을 앞두고, 아니면 이미 불행해 질대로 불행해 진 상태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혼은 단지 두 사람만의 관계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이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지는 결혼부부들은 이 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이 국가의 결혼은 수많은 인간관계와 불필요한 친족관계 때문에 얼기설기 꼬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되도록이면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인간의 일부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따져본다면, 그 역시 주장의 논거는 희박하다. 단순히 그런 거 아닌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원래 그래 왔으니까. 글쎄 그 보다는 사회체제가 더욱 복잡해 지지 않았으면 하는 암묵적 동의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성장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지만, 문제는 그 당시에 이혼녀의 딸로 살면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이다. 정작 당사자는 오죽했겠는가. 교회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시간에 사람들 많은 데서 “이집사 이혼했다며?” 라는 말도 들은 사람이 모친이다. 그게 그 때는 수모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내가 늘 의아했던 것은 담임선생님에게 살짝 귀뜸한 일이 왜 전교에 소문이 퍼졌는가 하는 거다. 내가 고의적으로 누설을 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이혼자녀”라는 것이 매우 흔치 않은 사례였다. 전교에 단 두 명이 이혼자녀로 알려져 있고 그건 꼬리표가 되었다.

“쟤 엄마 이혼했대.” 라는 말.

가정환경조사서에 억지로 아빠를 적어 넣기도 했다. 아빠라는 존재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지 같이 살지 않을 뿐이었고 자주 만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환향녀가 화냥년이 되던 세상을 지나, 사람이 죽어도 열녀가 났다고 숭앙하던 극악무도한 세상을 지나, 전쟁을 거쳐 수많은 남자들이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척을 지는 것은 대단히 불손한 일로 여겨지던 세상에서, 이혼은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강요했으며, 결핍된 것은 모자란 것이고, 그 모자란 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일이며,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옳지 않다는 폭력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흔히들 결손가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결손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좋지 않다며 굳이 그런 낱말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국가와 사회가 정해놓은 가족의 이미지는 아빠 엄마 자식 둘로 이루어진 것이 정상, 그 외의 것은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규칙이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동일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할 수 있고, 다른 것들과 같을 수 없다. 다양성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지만, 정치가 시작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범주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통치하기 쉬운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줄을 세워, 이 줄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은 이방인이라고 말을 하면, 그들은 법이 굳이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다. 조르주 아감벤이 말했던 호모사케르의 존재 이유와 법철학이라고 하는 어려운 이름의 학문의 요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법은 법 안에 있는 사람만 보호할 수 있고, 법 밖에 존재하는 것들은 외면해도 되는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 그 편이 통치하기에 편하다. 누구도 반발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법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되지 않고 법 안에 속한 존재가 되어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불안할수록 사람들에게 법은 마치 커다란 성채처럼 느껴진다.

그 성채 안에 들어간 자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규칙과 윤리, 도덕과 원칙, 이 것들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성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폭력이 가득한 성채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 안에서 떨궈져 나오면 어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이용하면 사람들은 “고분고분” 해진다.

 

사회적 질서를 위해, 사회적 문란함을 없애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정해놓았던 “올바른 가족상”에서 벗어났던 나는, 지금 그 “올바른 가족상”에 또 얼마나 멀리, 혹은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정환경조사서에 남편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적으면서 학력을 적는 란이 없다는 것을 새삼 희한하게 느꼈다.

 

없어야 마땅한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세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지 않으면 보호해 주지 않을테야. 이 나라는 전쟁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나라니까. 게다가 삼면이 바다니 도망갈 데도 없고, 그 위엔 당신을 잡아 먹으려는 괴수들이 드글거리거든” 이라는 협박을 들으며 고분고분 줄 서던 기억.

 

가정환경조사서, 부모의 화목 정도와 내 집의 경제를 책임진 자들이 기업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확인했던 그 고리타분한 서류가 30년을 돌아 나에게 다시 왔다. 내가 학부형이 되면 실내화를 빨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꿈이었으며, 이제는 학교에 경찰관이 나타나 학교폭력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움츠러진 몸씨, 주눅든 말씨, 머뭇거리는 마음씨가 모두 문제가 된다고 했던 것은 정해진 매뉴얼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는 읽었다.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굳이 그가 덧붙여 읽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쫄면 피해자가 되니까” 라고.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말보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조금 뻔뻔한 태도를 가지라고, 조용하거나 얌전한 성격은 법으로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법과 폭력의 반복이 거듭되는 동안, 이제는 피해자가 될 성격과, 가해자가 될 성격의 유형이 나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싫어. 저리 가. 하지 마”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의 폭력이 사라지는가.

 

이 사회는 사회의 조직보다 언제나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고, 사회가 개인을 지배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잘해야 국가가 잘할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다.

 

대체 이 파렴치한 구조의 사상은 언제쯤 끝이 날까.

의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는 무사도 아닌, 징징대며 삥이나 뜯는 골목상권의 양아치 같은 이 조직은, 예전엔 자라였고 여태 솥뚜껑으로 남아 있다. 거리 곳곳이 솥뚜껑이다. 밥도 짓지 않은 무겁기만 한 솥뚜껑이, 솥은 어디로 간 지 뵈지도 않은 채 여기 저기서 날아다니고 있다. 이 나라의 전쟁과 테러는 솥뚜껑들이 해내고 있다.

 

2013년 3월

2009년 12월 쓰다 –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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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 벌어야만 한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되었건간에, 모든 사람들은 제 밥을 벌기 위해, 혹은 제 가족의 밥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 밥벌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것은 소설가 김훈 선생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 단어에 매혹되어 그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사서 읽었고, 밥벌이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나는 이제 더 이상 밥벌이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에게 언제 네가 제대로 된 돈을 벌어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 나는 치열하게 밥을 벌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일부는 떼서 저축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혹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그런 돈 말고, 나는 그 때 매일 매일 밥만 벌었다. 하루 먹고 살기 위해, 일주일을 버티기 위해, 또 한달 치 월세를 내기 위해, 나는 그 때 밥을 벌었다. 밥벌이가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치가 떨리던 그 시절에, 나는 마음속이 헛헛해지면 마포에 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10년도 훨씬 더 전에, 그 설렁탕 집엔 지긋한 나이의 노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해방 이후, 혹은 전후부터 그 자리에서 설렁탕을 끓여대지 않았을까 싶은 양반이었다. 10년이 훨씬 더 지나, 그 자리에 다시 가보니 그 집은 여전히 설렁탕 냄새를 골목 자욱히 풍기고 있었고,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은 30/40대의 젊은 사내로 바뀌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전과 다름없는 설렁탕 한 그릇을 내게 내어주었다.

설렁탕에 대한 미련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기원한다. 중학교 때 나를 총애, 아니 편애 하시던 한 선생님이 나에게 중학교에 다닐 동안 읽어야 할 리스트라며 파란 메모지 몇 장을 건네 주셨다. 그 중에 한 편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나 역시 그 선생님을 편애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책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삼중당문고의 후예뻘인 어느 출판사의 작은 문고판으로 현진건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운수 좋은 날엔 가난한 인력거꾼이 밥을 벌러 다닌다. 그의 아픈 아내는 그가 일을 나서기 전에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싶다고 한다. 인력거꾼은 억세게 운이 좋은 일진을 맞아 손님을 태우고 경성거리를 미친듯이 달린다. 그리고 설렁탕 한 그릇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지독히도 운 나쁜 여편네는 이미 이 세상을 버렸다. 나는 그 때 설렁탕. 이라는 음식에 모든 삶의 비애와 고통과 팔자를 담아 버렸다. 얼마 전 읽은 문태준의 느림보 마음이라는 산문집에는 릭샤 운전수에 대한 비애가 담긴 글이 한 편 읽었다. 나 자신이 그 릭샤에 앉아서 묻어 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는 시인의 착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문태준의 느림보 마음을 모두 설렁탕 한 그릇에 응축 시키기로 했다.

 비오는 거리에서 인력거를 끈다고 생각해보자. 집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퀭한 눈을 하고 아비를 기다린다. 병들어 아픈 여편네는 설렁탕 한 그릇이 먹고 싶다고 한다. 인력거꾼은 오늘도 밥을 벌기 위해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사지 육신이 메말라 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린다. 뚱뚱한 귀부인이 인력거에 올라타 그 인력거가 휘청하더라도 별 수 없다. 귀부인은 팁까지 얹어서 돈을 내고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설렁탕이다. 설렁탕을 몇 그릇을 사야 할 것인가. 돈 벌어오는 자가 가장 단 한 명뿐인 가족구조라면, 가장은 설렁탕을 보며 침을 꿀떡 삼키고 포장을 해가야 할 것이다. 가장은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아는가, 그 당시에는 알았으나 일선에서 물러 나고 난 뒤 금세 잊었다. 단지 중국에 있던 유학시절동안 인력거를 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은 있다.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되었다. 나의 양심은 알량한 돈 몇 푼에 그의 팔다리를 욱신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의 밥벌이였다. 내가 그의 인력거를 타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인력거를 타지 않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서 나는 늘 갈등했다.

 비가 오는 날, 속이 헛헛한 날이면 설렁탕집을 찾는다. 이제는 아이를 데리고 설렁탕집을 찾는다. 해방 이후부터 설렁탕을 끓여낸 커다란 솥이 있는 작은 집이 아닌, 대형체인점으로 가서 어린이 설렁탕을 한 그릇 시켜주고 나도 한 그릇 시켜 먹는다. 아이와 먹는 설렁탕은 급하다.

대신, 혼자 먹는 설렁탕은 어쩐지 슬프다.

나는 그 마포의 그 작은 설렁탕 집에서 고깃내를 실컷 맡으며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설렁탕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 설렁탕 집으로 나를 데려가 설렁탕을 사 먹였던 늙었던 그 남자를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마포에서 설렁탕을 먹을 때 마다 아버지를 다시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마포를 떠나 다시 그 집에 가서 설렁탕을 먹으려면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는 이미 이 나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마포에까지 가서 설렁탕을 먹지 않는다. 그저 커다란 체인점에서 급하게 밥을 먹을 뿐이다.

밥을 벌었는가. 오늘 나는 충분한 밥을 벌었는가. 나를 위해 밥을 벌고 있을 그 사람을 위해, 또 한 때 나를 위해 밥을 벌었을 두 사람을 위해, 나는 가만히 설렁탕을 바라본다.

 

2009. 12. 

 

이성복 새 시집 – 래여애반다라

빛에게 

빛이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빛은 왔어 

균열이 드러났고

균열 속에서 빛은 괴로워했어

저로 인해 드러난 상처가 

싫었던 거지

빛은 썩고 농한 것들만 

찾아 다녔어

아무도 빛을 묶어둘 수 없고

아무도 그 몸부림 잠재울 수 없었어

지쳐 허기진 빛은 

울다 잠든 것들의 눈에 침을 박고,

고여 있던 눈물을 빨아 먹었어

누구라도 대신해

울고 싶었던 거지,

아무도 그 잠 깨워줄 수 없고

아무도 그 목숨

거두어 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그 눈물 마르면

빛은 돌아가겠지,

아무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아무도 태어나지 않고

다시는 죽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빛이 있을까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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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2013. 3. 

MADE IN CHINA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후배들을 만났다. 후배 한 명은 우울증이 온 것이 아닌가 고심하고 있었고, 다른 한 후배는 그런 정신적 괴리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에게는 대화를 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의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못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장소를 옮기면서 후배와 함께 잰 걸음으로 호텔의 상가에 들어갔다. 그 호텔의 상가는 남대문 시장의 수입상가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므로, 적당한 가격에 아이에게 어울리는 장난감을 사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핸드백과 스카프, 빅사이즈 옷과 셔츠나 넥타이를 파는 점포를 지나 나는 장난감 가게 앞에 도달했다. 환호성을 지른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멋진 자동차를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도 있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중장비 자동차도 있었지만, 내가 고른 것은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 적당한, 성인 남자의 엄지 손가락만큼 작은 자동차 6대가 한 개의 비닐지갑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 약국에서 산 어린이용 비타민제에 끼워져 있는 자동차와 동일한 제품 같아 보였다. 아이는 자동차가 맘에 들었는지 제 손에 들고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잃어버릴까 봐 – 라고 말하며 자동차를 쉽사리 꺼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비닐 지갑 속으로 자동차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분주한 식당에서 속사포 같은 이야기들을 쏟아 내며 자꾸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드문드문 대화를 빠르게 이어갔다. 후배와 식사를 마침과 동시에 우리는 대화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아이는 제 손에 자동차를 들고서 쫄랑 쫄랑 나를 따라 걸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자동차들을 제 아빠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슝- 하고 나가는 자동차가 신기했던지 한 참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그 많은 미니카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지 책장 사이에 쑤셔 박아 나름대로 숨겨 놓기도 했다.

 장난감을 산 지 이틀이 지난 날, 나는 아이와 자동차를 함께 가지고 놀았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전적으로 아이가 같이 놀자고 매달렸기 때문이었는데, 몇 개의 자동차는 이미 더러 고장이 나 버려서 뒤로 당겼다가 놓아도 앞으로 가지 않았고, 몇 개의 자동차들은 회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나는 자동차들을 들어 올려 꼼꼼히 살펴 보았다. 작은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고 어떻게 조립을 했을까 싶을 만큼 작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자동차의 아래쪽엔 MADE IN CHINA 라는 글씨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화학물질 냄새를 맡아 가며 이 자동차를 조립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삐뚤게 붙여진 자동차들의 스티커들을 보다가 손톱보다 작은 스티커를 사람 손으로 붙였을 거라고 확신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왔다.

 누군가 이 자동차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집으로 돈을 부쳤으리라, 누군가 그 냄새에 코가 마비되어 피를 토했을 지도 모르겠다. 인권유린의 사각지대라는 말 따위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 것을 만들었으리라.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도 우리 돈으로 3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좋다고 신명 나게 웃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오래 전 나는 사탕을 먹을 때마다 신경숙의 소설을 생각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짝꿍의 엄지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뒤틀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이 그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짝꿍은 나는 사탕공장에서 일하는 데 하루에 몇 백 개씩 사탕을 리본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뒤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조용히 손을 내려놓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리본 모양으로 묶여진 사탕을 먹을 때마다,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에 달콤함이 저만치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자동차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차가워진다. 누군가 생산을 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빠르게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 그 어떤 단상도 할 수 없는 삶이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과연 나는 그들이 만든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자들의 인권을 위해 내가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인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쳐들어 왔다. 나는 자동차를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이걸 봐봐. 이걸 만든 사람들을 생각해봐. 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고질병은 고칠 수 없는 것일 게다. 즐거움 속에 숨겨진 인생의 비애를 포착해 내는 기질은 사춘기시절 감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수반된 것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런 삶에 버거워 하고 있다. 왜 나는 좀 더 단순하게 살 수 없는가, 그저 이건 MADE IN CHINA 니까 벌써 고장이 나버렸잖아. 하고 넘겨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과연 양심의 소리인 것인가, 아니면 한동안 생업의 현장에서 밥벌이를 했던 나의 비애가 가져다 주는 자기 연민의 확대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아프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주는 기쁨도 있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그들이 행복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아이와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뒤로 힘껏 당겼다가 손을 놓는다. 자동차는 급회전을 하면서 저 멀리에 가서 부딪히곤 했다.

 이미지

20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