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어느 택시

제가 운전 12년 했거든요.

지난 주에 3일은 사납금도 못 채웠어요.

기본급 60만원이니까 거기서 까겠죠.

200요? 어휴. 이번 달은 백만원도 안 될 거 같은데요.

다들 힘드니까요. 나만 힘든 거 아니니까 버텨야죠.

제가 원래 선거 같은 거 안 했던 사람이거든요. 근데 지난 번엔 문재인 찍었죠. 이번엔 무조건 야당 찍을거예요.

이재명? 이재명 나오면 이재명 찍고. 근데 이재명 못 나올 거 같던데요.

토요일 10시 코로나 4단계. 어느 택시.

입이 없는 세상

사무실에서 300미터 정도 가면 한신냉면이 있다.

이 집은 냉면이 다른데보다 1천원정도 싸고 콩국수도 먹을 만 해서 점심시간에 자리가 없다. 가게 주인이 방역수칙도 철저히 지켜서 음식 나오기 전에 마스크도 못 벗게 한다.

오늘은 콩국수를 한 그릇 시키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예닐곱살 쯤 된 여자아이가 들어와 주인여자에게 뭐라 뭐라 하는데 둘 다 마스크를 끼었고 손님들이 왁자하니 주인여자가 크게 망해서 내 귀에도 말이 다 들렸다.

“콩국수 포장? 응. 엄마가 사오래? 엄마 전화번호 알아? 여기 전화번호 적어야 해. 아줌마가 적어줄테니까 불러봐. 응. 공일공. 땡땡땡땡. 호계동 사는 거 맞지? 응. 금방 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인여자가 나에게 와서 앞좌석에 아이가 잠깐 앉아 있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흐뭇한 기분이 들어 괜찮다고 했다.

아이가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주인여자가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 빨대를 꽂아 주었다.

아이는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마셨다.

콩국수를 입에 쑤셔넣던 나하고 눈이 마주쳐서 내가 슬쩍 웃었다.

“학교 다녀요?”

“네.”

“몇 학년이예요?”

“1학년이요.”

아이는 말을 할 때는 마스크를 올렸고, 요구르트를 먹을 때는 마스크를 내렸다.

“엄마가 국수 사오라 했어요?”

“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도 국수 먹을 줄 알아요?”

“네.”아이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야?”

“윤아요.”

“응. 윤아. 착하네. 심부름도 잘 하고.” 나는 꼰대같은 말을 해버렸다.

써보니 귀찮게 많이도 물어봤네.

아이는 요구르트를 다 먹고 주인여자에게 다가가서 “아줌마. 요구르트 다 마셨어요.”라며 빈 병을 내밀었다. 주인여자는 빈병을 받아들고 금방 나올테니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아이의 포장 국수가 나오기 전에 내가 국수를 다 먹어버리면, 아이의 국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포장국수가 먼저 나왔다. 주인여자는 비닐봉투에 국수를 담아 아이에게 들려주고는 “조심해서 잘 들고 가라.”고 일렀다. 혼자 가는 길이 멀진 않겠지.

마스크 위로 반짝이던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예뻤다. 말을 할 때는 마스크를 올리고, 요구르트를 먹을 때는 마스크를 내리던 아이의 얼굴이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입이 없어진 세상에서 아이들의 언어는 얼마나 달라질까.

좋은 날 다시 오면

1.

아침일찍 욕실공사를 맡은 업체 사장님이 와서 콜타르와 비슷한 방수액을 바르고 갔다.
새벽까지 이제훈, 최우식, 박정민, 안재홍이 나오는 <사냥의 시간>을 절반정도 보다가 잤다. 첫 장면에 황폐해진 서울의 소공로가 나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저 풍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길 건너 목욕탕은 찜질방에 없어 한 번도 안 가봤다. 들어가니 매표소에 사람은 없고 무인발권기가 있었다. 아무리 코로나시대라도, 매일 목욕탕을 들르지 않으면 밥을 굶은 것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오늘도 너댓명의 직원과 너댓명의 손님이 있었다. 정기권을 끊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직원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목욕탕은 어딜가나 늘 뉴스를 틀어놓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3단계로 빨리 가야 한다고 봐.”
“뭐 먹고 살으라고.”
“딱 2주만 하고 빨리 잡자는거지. 홍콩이 그렇게 잡았잖아.”
“교회가 문제야 교회가.”
“교회 소모임을 다 못하게 해야돼.”
“아니 근데, 지금도 응? 이 와중에도 자기들은 병이 안 걸린다고 하잖아. 교회 다니는 분들은 그래.”
“아휴 그러게나 말이야. 교회를 싹 다 닫게 해야돼.”

격한 발언은 없었지만, 교회가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걸 들으니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하면서 침 튀기는 사람은 이 안에 없겠구나.
기독교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니, 이제 이 나라의 기독교는 끝까지 온 거 같다.

2.

원두가 떨어져서 고심 끝에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가서 블렌드 원두를 샀다. 블렌드 원두는 200g에 오천원이다. 이집은 원두를 살 때마다 커피 한 잔을 내려준다. 오늘도 뭘 드릴까요? 묻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았다. 신 나서 사진도 한 방 찍고 편의점에 들렀다. 아침거리로 간단하게 뭘 살까 고민하다가 마땅한 게 없어서 담배만 두 갑 샀다. 사장님이 아이와 통화중이었다.
“일어났어? 밥 차려놓은 거 먹고. 수업 듣고, 영어 숙제 하라고.”
나는 씩 웃음이 나서 우리 아들은 아직도 자고 있다고 얘기했다.
중학생라 새벽 서너시까지 안 자고 오후 한 시나 되야 일어난다고 했더니 “밥 차려놔도 챙겨먹질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편의점을 나왔더니 자전거가 무거운 가방 때문에 자빠져 있었다. 소중하게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바닥에 다 뿌려졌다.
자전거를 일으키는데 노년의 남녀가 헤어지며 “코로나 끝나면 밥 한 번 먹자.”는 대화를 하는 게 들렸다.

사무실에 들어와 쏟아진 아메리카노를 대신해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데 교육지원청 담당장학사에게 카톡이 왔다.
“국장님, 뉴스 들으셨지요? 9.11까지 원격수업이요. 저희도 방송을 통해 본 거라, 학교에서도 지금 고민이 많을 거 같습니다.”

3.

우리는 절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를 차차 늘려나갔고, 대면이 불필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도 청자의 표정이 보이면 어떤 생각을 하며 듣고 있는지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느끼는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게 긍정적이라 볼 수 있을까.
모두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수도권 병상이 7개 남았다는 뉴스 속보가 도착했다.
본 게임이 시작된 느낌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의 전쟁인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은 자꾸 “좋은 날 다시 오면”이라고 말한다.
그 좋은 날은 이제 끝난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광복절 이후의 창동역

7시 30분, 지하철역 플랫폼에는 지하철이 도착하면 열릴 문 앞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두 줄로 서 있었다. 모두들 서울로 가는 사람들일 거다. 이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 강의 북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열차가 도착했고, 나는 휴대폰 화면을 또릿하게 보고 있는 원피스 입은 아가씨 앞에 섰다. 지하철 안에서 누가 먼저 내릴 것인지 예측하고 싶었다. 내 모든 지략을 동원해도 당장 내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의 아가씨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내린 삼각지역에서 일어섰다. 거기서 내려 6호선을 갈아탈지도 모른다. 사당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내렸던 건 지하철이 4호선까지 있었을 때의 이야기였나보다. 동대문을 지나자 지하철이 한산해졌다. 자리가 많은데도, 한 여성노인이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봇짐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몸의 방향을 비틀어 노인을 등지고 앉았다.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그 옆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노인은 교회에 다닐 것 같았다. 그는 마스크를 코까지 잘 아무려 쓰고 있었다. 나는 다른 자리에 가서 앉고 싶었다.

불안했다.

미아삼거리역은 미아사거리역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거기는 내가 살 때도 미아사거리였던 것 같다. 객차 안에 자리가 더 많이 생겼다. 나는 입구쪽에 있는 텅 빈 자리에 맨 끝에 가서 손잡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았다. 노인이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살갑게 노인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했고,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다들, 다들, 악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몇 개로 서서히 쪼개지고 있었다. 창동역에서 내려 내가 좋아하는 루꼴라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스타벅스를 찾았다. 스타벅스는 이마트 안에 있었다. 물건을 정리하던 이마트 직원에게 출입구를 물으니 그 시간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백번 드나들던 그 동네는,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도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그 흔해빠진 스타벅스가 이마트 안에 단 하나 있었다. 나는 충전된 스타벅스 카드로 샌드위치를 사먹을 야심찬 계획을 포기하고 김밥을 수십 개 말아 쌓고 있는 분식집에 들어가 2500원짜리 잔치국수로 아침을 먹었다. 국수엔 요즘 비싼 애호박도 들어있었다.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쯤, 마을버스를 탔다. 다시 내린 창동역 광장에는 남자 노인이 색스폰을 연주하고 있었다. 저 멀리 야외탁자 두어 개를 붙이고 말라가는 고추를 바라보며 뭐라 뭐라 말하는 노인 몇 명이 보였다. 역 주변을 돌았는데 마땅히 점심을 먹을 데를 못 찾았다. 나는 반대편 출구로 나가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집이 몇 곳 있었는데 집집마다 “생맥주 있습니다.”, “생맥주는 홀에서 드실 수 있어요.”, “테라 생맥주 팝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는 떡볶이 집에 들어가 3천원짜리 떡볶이 1인분을 시키고, 잠깐 참을까 하다가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떡볶이가 먼저 나왔는데 맥주를 기다렸다가 맥주를 먼저 한 모금 마셨다. 역 주변을 도는 사이 이미 지쳤다. 떡볶이 한 개를 긴 꼬치로 집어 입에 하나 넣었다. 홀 안에는 둘이 앉아 점심으로 떡볶이와 분식을 먹는 같은 옷을 입은 남녀가 있었고, 노트북을 놓고 혼자 앉은 남자가 있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2인석에 앉았는데 내 바로 옆 2인석에 한 남자노인이 와서 앉았다.

“아이구구구. 하아…”

노인이 되면 소리가 많아진다. 앉는 소리, 일어나는 소리, 물건을 내려놓을 때, 의자를 끌 때, 물을 마실 때, 음식을 먹을 때, 씹은 음식을 삼킬 때, 모두 소리가 난다.

노인은 떡볶이 1인분을 시키고 맥주는 시키지 않았다. 그가 나를 흘끗 보는 게 느껴져서 나는 휴대폰에 코를 박고 떡볶이를 씹었다. 노인은 모자를 벗어 테이블에 올려놨다. 마스크도 벗어 모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나와 너무 가까이 앉았다. 노인이 물을 뜨러간 것인지, 오뎅국물을 가지러 간 것인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노인의 테이블을 보았다. 세탁한 지 오래된 듯 흔적이 있는 모자위엔 적어도 하루이상은 쓴 것 같은 꼬깃꼬깃한 마스크를 올려두었다.

노인이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떡볶이와 맥주를 번갈아 먹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말을 시작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는 ‘네 어르신 요즘 힘드시죠.’라고 교실 안에서 살갑게 웃던 나를 꺼내야겠지. 노인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할 것이다. 남성노인이니 대통령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씩 웃고 서둘러 입을 닦은 후 자리를 떠야겠지.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떡볶이를 입에 넣은 채 말할 지도 모른다. 침이 튈 것이다.

노인은 몇 살쯤 되었을까. 칠십대 중반정도로 보였다. 그렇다면 내 부모의 나이와 비슷한 또래다.

거기, 창동이라는 넓은 동네 중에 중랑천과 각을 이루는 큰 도로에서 산쪽으로 오목하게 파인 지형에 새롭게 생긴 동네라 ‘신창동’이라고 부르던 곳이 있었다. 버스정류장의 이름이 ‘양조장앞’이거나 ‘신창시장’이었다. 내 친구들의 부모들은 신창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어느 집 지하에 있는 공장에 다니거나, 양조장에 다니거나, 샘표간장에 다녔다.

거기, 그 창동역은, 87년, 그 동네로 이사한 뒤, 신창동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신창동에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방학역 부근의 중학교를 다니다 월계역 부근의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수시로 드나들던 몇 개의 지하철역 중의 하나다. 창동역 부근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국내 최초 대형마트인 하나로마트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떡볶이를 먹는 저 노인은 내가 모르는 내 동창의 아버지일수도 있다. 떡볶이를 다 먹고 맥주도 다 마시고, 노인과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났다. 몸을 돌리자 가게의 문 앞에 노인과 거의 흡사한 모습의 다른 노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테이블엔 튀김접시와 맥주가 있었다. 맥주 3천원, 떡볶이 3천원의 값을 치렀다. 휴대폰으로 ‘6천원, 점순이하우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열려 있는 문 밖에는 모자를 쓴 한 쌍의 남녀노인이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백색의 SUV가 노인들의 뒤를 바짝 쫓았다. 남자가 오른손으로 머리가 허연 여자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 차를 막는 시늉을 했다. 여자의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노인과 바짝 붙어 앉아 점심을 먹는 일은 흔치 않다. 창동역엔 노인이 많았다. 김밥 한 줄은 우리 동네보다 2천원이 쌌다. 인근에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있지만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쓰지도 않을 노트북을 가지고 간 데다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마스크가 이미 홀딱 젖었다. 돌아오는 열차에서는 남녀노인한쌍이 내 옆에 앉았다. 분홍색 천마스크를 쓰고 있던 내 옆자리의 여성노인이 기침을 다섯 번 정도 했다. 에어컨을 틀어서 목이 건조해졌을거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번화가로 들어가 상가건물 1층의 화장실에서 비누로 손을 박박 닦았다.

내가 복지관 교실 안에서 이야기를 듣던 노인들과 오늘 만난 노인들은 달랐다. 그들을 느끼는 내가 달라졌다. 웃을 수 없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퍼부을 것만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마주친 그 수많은 노인들 가운데 단 한명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일주일내내, 노인들의 삶에 관한 칼럼의 마감날짜를 넘기면서, 절망하고 있다. 나에게 남았던 모든 이야기들이 증발해버린 것만 같다.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조금 나았을까. 모르겠다.

[이룸]비접촉식 체온계를 공동구매했습니다.

[공식 경과보고]

코로나19의 감염전파로 사회적거리두기를 유지하느라 공교육마저 온라인으로 진행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방역당국과 시민들의 협조로 집단감염이 줄어들면서 생활속 방역체제를 유지하며 경기도교육청은 예정되었던 2020 ‘경기 꿈의학교(이하 꿈의학교)’ 운영을 6월 20일경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심사를 통해 ‘꿈의학교’로 지정된 곳은 안양과천 포함하여 모두 87개, 안양시 내 꿈의학교는 총 74개다. ‘꿈의학교’는 지역주민들과 단체들이 ‘마을의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의미로 운영하는 학교 밖 학교다. ‘꿈의학교’는 애초 3-4월 중 개교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개교가 연기되면서, 인원수 조절, 교육횟수 조절로 방역지침을 준수하기로 했다. 꿈의학교는 참여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기본 방역물품을 구비해야 한다. 마스크, 손소독제, 비접촉식 체온계가 필수품이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4월부터 물량공급이 원활해 문제가 없었으나 비접촉식 체온계가 문제였다.

교육장소에 입장할 학생들의 체온을 관리하기 위한 비접촉식 체온계는 온라인 구매의 경우 20만 원이 넘기도 하고 아예 물건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운영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상황. 기존의 사업예산 내에서 구매해야 하여 일일이 개별구매를 해야 하는 것도 난제였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서는 비접촉식 체온계 생산기업이 안양시에 있는지 시청을 통해 파악했다. 안양시 최대호시장 비서실을 통해 연락을 받은 안전총괄과 정광호 팀장은 우수한 품질의 비접촉식 체온계를 생산하는 안양 소재 기업 ㈜휴비딕에 연락하여 안양지역 ‘꿈의학교’ 운영자들을 위한 특가 공동구매를 제안했다. 안양시는 이미 지역 내 교육기관에 시 예산으로 ㈜휴비딕의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매해 배포한 바 있다.

㈜휴비딕은 생산물량이 한정되어 있어 본사에서도 물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으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마을교육의 취지를 이해하고 저렴한 가격에 ‘꿈의학교’ 운영자들에게 체온계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의 협조를 얻어 안양지역 ‘꿈의학교’ 자율운영진인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공동구매를 희망하는 ‘꿈의학교’ 운영자들의 수량을 파악하고 6월 15일 오전 ㈜휴비딕에 방문해 총 58개의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매해 ‘꿈의학교’ 운영자들에게 배포했다. 소문을 들은 군포와 의왕의 ‘꿈의학교’ 운영자들 중 일부도 공동구매를 신청해 시청과 시민단체의 협조로 저렴한 가격에 비접촉식 체온계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안양시와 시민단체의 긴밀한 업무 분담과 ㈜휴비딕의 사회적공헌으로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며 마을교육을 실천하는 ‘꿈의학교’ 운영진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되었다. ㈜휴비딕은 만안구에 위치한 의료기기 생산 전문기업이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2015년부터 안양 내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주도해 온 시민단체 협의체이다.

*후기

모든 공공기관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꿈의학교는 개교를 강행하는 것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는 대규모로 운영되는 것을 당장 바로잡기 어렵지만, 꿈의학교는 소규모로 분반하고 강의시수를 줄이면서 운영이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이 모두 문을 닫아 수업장소를 구하지 못하는 꿈의학교가 많습니다. 이 문제는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꿈의학교 개교 소식을 듣고 많은 운영자들이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교육청 자문위원이라 담당 장학사와 통화하며 비접촉식 체온계 구매를 문의했으나, 예산으로 지원하기 어려우니 개별적으로 구입하되 사업비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 예산변경을 허용하겠다고 하더군요. 만들어가는 꿈의학교에는 학생들이 운영자인지라 비접촉식 체온계를 지급할 수 있으나 찾아가는꿈의학교는 예산이 크기 때문에 이것까지 지원하기 어렵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도교육청의 입장을 듣고 각 지자체에서 예산으로 구입해 각 사업자들에게 나눠주거나 일부 지원을 해주길 바랐으나, 이미 재난소득등으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이어져 구입지급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대신 안양시청에서는 시장 비서실을 통해 안전총괄팀을 연결해줬고, 안전총괄과의 팀장님이 업체에 공동구매 제안을 전하며 최저가를 협상해주었습니다.

이룸에서는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과 같이 사업자들의 사업비 카드를 일일이 걷어서 구매수량을 확인해 엑셀작업을 하고 하루 날을 잡아 (주)휴비딕에 방문해 약 50여장의 사업비카드로 모두 개별 전표를 끊었습니다. 사업비를 입금받아 일괄처리하면 (주)휴비딕에서는 세금계산서를 일일이 별도로 발행해줘야 하는데, 물품공급업체에 과도한 업무가 할당되니 이룸을 제외한 기관과 업체의 실무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카드와 전표를 모두 별도로 묶어 구매수량별로 봉투에 넣어 다시 환경운동연합과 이룸 사무실에 물건을 비치하고 개별포장해서 각 운영자들이 받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애써주신 안양시청 시장비서실, 안전총괄과 팀장님, (주)휴비딕 담당 과장님,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 실무자, 그리고 카드제출과 물품 수령까지 귀찮았을텐데도 모두 고맙다고 말씀해주신 안양과천군포의왕의 꿈의학교 운영자 선생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이하나

코로나 혐오

이 상황에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개학 후 각 교실에서 펼쳐질 혐오였다.
중국교포나 이민자들의 아이들은 각지에 흩어져있다. 지역과 학교마다 다르듯이 아이들의 경제상황과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도 세밀하게 나눠져있다.

부모 중 누가 중국인이라도, 한국어를 곧잘해서 아이들이 유아교육부터 한국어를 잘 가르쳤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중국친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더러 학부모회도 잘 참석하고 책도 읽어줄 수 있는 중국인 부모도 있다.

하지만, 경제형편이 어렵거나 한국어가 어려운 경우는 뻔한 혐오와 차별이 기본세팅되어 있다. 문제는 교사들이라고 모두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모두 인권의식이 뛰어나고 젠더감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이 나라의 보통시민이다. 이 사회 전반의 타자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수준이고 외부로 나타나는 본인의 공적인 행동을 구분할 줄 알아서 실수가 적은 것뿐이지,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대해 교육자가 강경하게 응대하지 못하고 본인의 속내를 들키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왕따 당하는 애들은 이유가 있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교사라는 직군이 엘리트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계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말 한 번 안 섞어봤을 법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면 그 자신도 괴로울 것이다. 도무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어낼 지는 경험한 자도 잘 모를 일이고 경험했다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때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2020.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