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며칠 전 불거졌던 한비야 인터뷰에 대한 갑론을박.
그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젊은이의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신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라는 이 부분.
물론 뭐 한비야씨가 뺨을 때렸겠는가 물리적으로 치명적 폭행을 했겠는가.
그저 그는 정신차려. 하면서 친한 이모의 얼굴로 팔뚝이나 한 대 찰싹 때렸을 것이다..라고 추정된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자, 한비야씨의 의도는 이런 얘기였다.
왜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511.html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젊은 세대를 거쳐온 나로서, 혹은 아직 그 젊음을 놓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런 화법이 매우 불편하다.

한비야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에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날 난민구호활동가로 변신해 여전히 전세계를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흡사 영웅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도를 붙여주셨다는 그녀의 일화나, 과감하게 높은 연봉의 직장을 때려치운 자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자화자찬의 힘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건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면 닥치게 될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 쉽게 말해 먹고 죽을 돈도 없어질 게 뻔한 상황을 내가 겪고 있던 시절에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요즘말로 해서 “열폭(열등감 폭발)”이 쩌는거라고 봐도 할 수 없다.

자, 그리하여 그녀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정신적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그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쌔고 빠졌다.
서른이 되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도 널렸다.
학자금 융자를 겨우 갚았는데 주변에선 결혼 안하냐고 눈치를 준다. 요즘, 대놓고 시집가라 장가가라 하진 않더라도 뭔가 도태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야근에 특근에 출장을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후배들이 있다. 이직을 준비했다가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일단 닥치고 여기 붙어 있어야겠다고 마음 접은 후배들도 있다. 뭔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족중의 누가 아프다. 뭔가 다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 중의 누군가 파산직전이다. 이혼한 형제의 아이를 떠맡는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부동산 붐의 마지막 버스를 탄 게 화근이 되어 온 가족이 대출이자를 갚아나간다거나, 애시당초 취직이 안되서 비정규직으로 도느라 학자금 융자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빚만 남겨놓은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가족들의 부채가 개인의 부채가 되고 물려지고 남겨지고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집 한 칸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뛰는 게 오히려 원망스럽다.
차라리 아무 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차라리 없었으면 얼마나 속이 편했을까. 예술따위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 같은 거 진저리 나게 싫어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네네 하고 집에 가서 티비 보고 자고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생활을 해도, 아 나는 참 행복해.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이나 꿈이나 가슴 뛰는 일은 커녕, 넓지는 않아도 자유로운 원룸 하나 구했으면 좋겠는 거다. 고시원도 지겹고 옥탑방도 싫고, 뭔가 좀 깔끔하고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맘에 드는 작은 소파 하나 놓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 세대의 꿈은 진즉에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쉽게. 너무 쉽게.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 잘 못 자란 탓이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군대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거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비정규직을 못 버티는거라고.
가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도 다 해봤다. 나도 뻥튀기 장사 노점상 다 해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에게, 아우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당신들이 만들어놓고 발 빼버린 이 세상에서 우골탑이 모골탑이 되는 기가 막힌 등록금을 빚까지 내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뭐가 나약한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한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이다. 기가막힌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머도 넘친다. 당신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네트워크에 우리는 찰싹 달라붙어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한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학교폭력도 애들 탓이고, 노스페이스을 입은 아이들도 다 아이들 탓이다.
요즘 애들이 이상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이 다 철이 없어서 그렇다.

어떻게 그게 다 아이들 탓인가.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보고 자랐다.

7급 공무원의 꿈이 왜 나쁜가.
그게 가슴뛰는 일이 되면 왜 안되는가.
스펙 쌓고 대치동 아파트에 살면서 포스코 옆에서 점심을 먹는 게 꿈이예요. 라는 게 왜 나쁜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준건 바로 우리들 아닌가. (나는 솔직히 빠지고 싶다만)

나도, 그런 이야기 듣고 살았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4당 5락,
니들이 조금만 참으면 남편 연봉이 바뀐다.
억울하면 공부해.
억울하면 의사해.
억울하면 판사돼.
억울하면 니가 선생해.

아무도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나중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라고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대학을 못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공부하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다.
공부만 하면 돈 벌어 좋은 아파트, 좋은 직장, 좋은 차를 타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공부를 통해, 그걸 수단삼아, 결국 돈을 얻는 것이었다.
넓은 아파트와 수입외제차와 명품가방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밀고 대기업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고 말해줬지 않나.

그렇게 주입 받고 자라 대학을 가보니 등록금때문에 결국 빚을 져야 하고
인생 최단기간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To do list 1순위는 학자금 대출 해결. 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 해결을 하고 나니 부모님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독립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병원비 약값 하시라고 용돈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여태 돈 못 모으고 뭐했냐 소리도 듣는다.
가끔 모아놓은 돈이 있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 비용으로 모두 날린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대출을 받아 혼수를 장만한다. 신혼 첫날밤 서로의 마이너스 통장을 깐다.
덜커덕 아이가 태어난다.
대출이자 갚기도 전에 애 교육비로 가계부가 뻥뻥 빈다.
노후대책 개뿔 같은 소리, 아이들은 다시 입시전쟁터로 내밀린다.
여기서 갈등한다.
다 엎어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이제 가슴이 뛰는 건 심계항진이다.
대출이자날짜가 돌아오면 가슴이 뛰고, 카드값 고지서가 날라오면 가슴이 뛴다.
연봉협상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뛴다.

가슴은 열심히 뛴다.

이런 상황에 한비야가 말하는 가슴이 뛰는 상황은,
7급 공무원이 되어, 대출이자 뻥뻥 갚아나가고 원금도 갚고, 이 집도 은행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거다.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냐. 눈물이 줄줄 나는 일이지.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지도자급이 되었으면,
왜 이 청년들이 가슴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늦게 온 게, 이 나라에 IMF가 온게 개인의 탓인가?
이 나라에 식민지가 온 게 개인의 탓인가?
당시의 청년들이 열나 빌어먹어서 식민지 됬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개인이 게을러서 꿈을 꾸지 못한다고 쉽게 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의 오류는 늘 존재한다.
그건 1%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만끽하기 위해 상식밖의 일을 수없이 자행할 때 벌어진다. 99%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1%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인 사회를 인정하고 99%를 도와야 한다.
한비야 그녀도 1%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나라의 대부분 25%쯤 되는 사람들이나 10%쯤 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1%나 된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1%는 대부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악이 되어, 블레어 위치의 정체모를 영혼처럼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비야의 다른 행보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의 꿈에 대해 비난한 그녀의 가벼움은 철저히 비난하고 싶다.

왜 모두가 성공해야 하고
왜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바닥에 좀 납작 엎드려서 편하게 사는 게 과연 죄가 되는가.
세상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순조롭게 돌아간다.

한반에 25명을 몰아넣는 유아학교에서 “리더십교육” 운운하는 것도 지랄하고 자빠진 일이다. 모두가 리더십 교육을 받아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간지옥이지 학교인가 사회인가.

얼마전 딸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태권도를 오래 했다.
전공은 정보컨텐츠학과인 실업계를 다니는 친구다.
전공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관심이 좀 있다고 했다.
하드웨어 쪽이냐 소프트웨어 쪽이냐 물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뭔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너도 안철수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원대한 꿈은 인생의 좌절을 더 크게 맛보게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많이 읽은 아이가 평생 과대망상증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해 준 말은 앞으로는 네트워크 보안쪽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와 태권도를 오래 했으니 알바도 쉽게 할 수 있겠다 라고 독려한 정도이다.

왜, 그게 나쁜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운동도 지속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행복 아닌가?

힘이 빠져 지쳐 자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숨 쉬고 조금만 일어나보라고 손만 잡아보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그 다음은 스스로 점진적으로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좀 가져주면 안되나.
당장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마라톤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모두 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라.
욕심없이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학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있다.
원대한 야망 따위 없이 그냥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사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무가치한가.

한비야씨는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죽지 못해 살아남아야만 해서 스펙이라도 쌓으면서 사는 거 조차 너무 힘든 인생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고 생각해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군대가서 자살한다” 라고 한 얘기와 자꾸 겹쳐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의 잘못된 기독교 윤리, 인간의 나약함과 긍정의 배신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2012. 1. 18. 

배틀로얄이 오고 있다.

1.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툭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 이 글은 영화 배틀로얄에 대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영화소개에 적힌 줄거리이다.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

옴진리교 사린가스테러 사건 이후
97년도에 사키키바라 살인사건이라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인한 사건 – 이후 범인은 2005년 풀려났다)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http://blog.daum.net/holongbool/8106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

배틀로얄은 2002년도 작품이다.
이 당시 일본은 이지매라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과 그 원인과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일명 “묻지마”살인사건의 유형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최근 벌어진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사건, 집단 따돌림 폭행으로 지적장애가 생긴 여학생의 사건, 집단성폭행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 보도된 바로 이 사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2/h2011122816580921950.htm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 집주인이 출국한 사이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들어간 아이들이 무단침입으로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2.

얼마 전 눈이 온 다음 날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과 함께 어울렸다.
작은 놈은 오늘부로 7살이 되었고 누나들이라고 좋아하며 노는데 지켜보니 떨어진 모자도 씌워주고 아이들이 동생이랍시고 잘 챙기는 듯 해서 기특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누나들이랑 우리집에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 집에 데리고 들어와 추운데서 놀았으니 장갑도 말리고 따뜻한 거 한 잔 마시고 가거라 하고 집이 어디냐 물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몇시까지 가야하느냐 묻고 엄마가 안 기다리시느냐 물으니 3시까지 가면 된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유를 덥혀 코코아를 타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토요일이었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조금만 놀고 돌아가거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고 그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남편이 사온 분식을 나눠 먹이고 작은 아이 방에서 같이 놀게 했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쉬는 사이 이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안마의자를 하고 싶다는 등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가 어딘지를 알리는 똑똑함을 보였으나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 예를 들어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다”, “안방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예절은 습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퇴근해서 쉬고 계시니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너무 쫒아다니면서 제재를 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랑 같이 갖고 논 모래놀이 통을 닦겠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통을 닦고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기까지 했던 것. 목욕탕에서 드라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인데 나에게 허락을 받거나 묻지 않고 여섯살 난 아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갔고 놀이터에서 아들과 조금 더 놀다가 갔다.
나는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누나들이 너랑 잘 놀아서 좋았는데 집안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듯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더라도 집에 놀러오는 것은 좀 곤란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3.

요즘 길을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멀리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담을 넘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딜 넘어다니냐- 하고 소리를 치면 대부분 부리나케 도망을 가긴 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면 위험한데 뭣들 하는 짓이냐 라고 했을 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저희 여기 안살아요 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이들,

차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야단쳤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흡연구역에 가서 피우라고 했을 때는 당신이 뭔데 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에 띄면 띄는대로 야단을 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내 자식같고 몇 다리 건너면 다 내새끼 친구겠거니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나에게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서 고등학생 쯤 되는 큰 아이들이 세명 이상 몰려 있을 때는 경비아저씨를 부르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긴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때문에 할머니나 엄마와 실갱이를 한다.
몇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고 학원 갔다가 다른 학원을 가야 하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는 등의 문제다.

엄마들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 지금까지 학원 안가고 왜 집에 있냐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어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그 시간 사이에 뭘 먹거나 다른 일을 볼 수 있다는 시간에 대한 계산에 능숙하고
엄마에게 행선지를 알리거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일에도 노련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취약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범주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공부하느라 피곤하니까 라고 넘어가기 일쑤이고
시간에 쫒기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이나 티비에 열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들에 대한 꾸중을 듣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교정할 시간따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몇 가지 실수를 그냥 넘어가거나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의 폭력성 성향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남의 집의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불쑥 들어가는 일에 유연한 사회,
사실 주변에도 친구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어가 이런 난장판을 벌이더라도 괜찮은가보다. 라고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인가, 그게 왜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파트 단지에서 내내 화단의 풀을 잡아 뽑으며 걷는 남자아이를 본 시동생이 이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한다는 대답이
저희 집은 전세 사는데요.
분명 초등학생이었단다.

우리는 높아지는 집값과 먹고 사니즘과 그로 인해 너희들도 안정된 직장과 연봉 얼마가 인생의 척도가 된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교 1등도 술마시고 담배 피워요.
전교 1등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우리는 정말
“그 따위 전교1등은 개나 줘버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내 친구를 죽였어요. 
왜요? 짜증나서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만만하니까 시켰다. 
그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성폭행도 하고 폭행도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의 성폭행과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질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괜찮다고 말할 것인가.
너는 강자이니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4.

가장 쉬운 계도책으로 나는 학교에서 상황극이나 심리극등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엄마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줌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성적에 목숨을 걸고 공부 하라고 안간힘을 쓰는 비인간적인 모성들인 것인가.

주변의 내 지인들 중엔 다행히도 무조건 인서울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는 없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고 자식의 깜냥따위 신경쓰지 않고 학원 커리큘럼 외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 하는 건 학부형들이고 학부형들음 학교와 사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시간만 보내며 말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부쩍 자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여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평촌이라는 곳은 나름 내 기준에선 “사교육의 메카”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형편이 뭐 대단히 좋아보이진 않는다.
다들 학원비에 허덕이고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래도 두 세개씩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체능등의 사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 아이가 학교공부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어에 소질이 있으니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치자.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천성이나 기질은 정말 달라서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할 놈은 하고 안 할놈은 안한다.
공부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취미가 있는 놈도 있고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머리쓰면 머리가 아프니까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꺼야. 라는 부모의 속단속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죽어버릴 거 같애. 라고 울고 있는거다.

학원에서 영업상 하는 말 “이 아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낚이지 마라. 그게 우리 학원을 면쭉 보내세요. 성적이 안 올라가면 아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러는거고 성적이 올라가면 우리 학원 덕분이예요. 라는 말이다.

공부나 성적 올리기에 취미가 있는 아이는 그 쪽으로 밀어주면 되고 그게 아닌 아이는 그 아이의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터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있는 교과목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개지랄 떨지 말고 정확하게 주어진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말 어이 없었던 일 하나는 딸아이의 중3 때 담임이란 여자가 (선생이라 칭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끝나면 전화기를 딱 꺼버리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니까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니 결국 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 3 아이들 입시 1달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며 인사도 없이 학교를 사직했다.
이런 선생. 하루 빨리 그만둬 주면 고맙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면, 모교를 아름답게 빛내는 게 아니라 교직원 이상 교장이나 이사장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것이니 남의 승진에 악용당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으나. ..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말하지 마라.
우리가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배우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아이들을 살펴보라.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답답한지,
내 아이가 수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많이 말하지 말고 많이 듣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내 새끼만 쳐다보니 말고 남의 새끼도 좀 쳐다보라.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휴지통에 넣으라고 말하라.
성적이 잘 나온 것을 칭찬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라.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이제 고2가 되고 곧 있으면 사회인이다.
난 이 아이가 지옥의 학창시절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리고 본인도 슬픈 시절을 지냈으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큰 아이의 졸업과 동시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간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적응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니들 밥그릇 생각 그만하고 일을 해다오. 일을.

5.

배틀로얄이 영화 같은가.
이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전쟁터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전쟁하는 게 좋으면 아프리카 내전지역 가서 자원봉사나 하든가.

2012. 1. 1.

앵그리버드의 진격

동네문방구에서 발견한 앵그리버드의 팬시/문구용품
저작권 문제가 현재까지 없을 것이라 추정.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 우리 아들도 앵그리버드를 시작했는데
승부욕 쩌는 이 놈이 이 게임을 하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이 문방구 옆의 동네 옷가게에선 앵그리버드 옷까지 팔고 있었는데. 
이 저작권 문제가 언제 터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을 모르는 아이들도 일단 캐릭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 
단순한 도형이라 아이들이 따라그리는 일도 잦다. 
이 게임은 승부보다 즐거움이 더 한 듯. 
게임산업에 대해 게임을 전혀 하지 않으므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분야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종합예술이 예전엔 연극이었다면
21세기엔 게임에서 종합예술을 구현할 수 있다. 
시나리오, 디자인, 미술, 음악, 영상미, 게다가 IT의 기술까지. 
쉽게 말해 고등학교 문과, 이과, 예체능의 모든 기능이 종합되어야 하는 것이 게임인데 
현재 우리나라처럼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하거나 
셧다운제 따위를 도입해서는
돌도끼들고 토끼나 잡으러 다니자는 거지. 
인터넷은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고 
사람이 모이지 않고 회원이 탈퇴하기 시작하면 
접속수가 줄어들고 그러다보면 광고수입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면
바로 망하는 것이다. 
검색결과 조작 루머가 돌고, 
인터넷에 글 올렸다고 사람을 구속하고
주민번호 등록으로 맘만 먹으면 신상터는게 껌인 이런 시스템으로는
아이폰, 앵그리버드, 구글등의 히트상품은 
나오기 힘들다. 
정부는 중국이 존경스럽나? 
2011. 12. 14. 

영화 도가니 _ 이후

트윗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인데, 
리트윗이 상당히 많이 된 부분이 있어서 
한데 묶어 정리합니다. 








영화 도가니. 그 이후. 




1. 아동성폭행 공소시효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당하고도 그게 뭔지 잘 모른다는 거다. 성폭행인지 성추행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후에 아. 그게 성폭행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2. 어른들은 쉽게 안좋은 얘기를 누가 물으면 “그만 얘기하자” 라고 덮고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사람들앞에서 증언을 하는 이유는 심장을 꺼내 내보이고 싶을만큼 피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기 때문이다. 더 잃을게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피해아이는 공책에 증언을 미리 메모할 만큼 열성을 보인다. 그건 그만큼 강력한 처벌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들은 법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다. 법이 그 마음을 외면할 때 아이들은 복수심에 불타기 시작한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파괴의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3. 미성년자 성폭행 합의의 경우 부모가 모든 역을 대리할 것이 아니라 피해당사자 50 / 두 명이상의 법정대리인 50 으로 나눠 100이 되었을 때 합의가 가능하도록 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부모가 합의금 꿀꺽하고 애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4. 자식이 그 꼴을 당했는데 합의를 해주냐는 비난도 가능한데 합의를 해주는 경우에 꼭 돈 때문이 아니라 나도 자식 여럿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자식 굳이 징역 살려야 하는가..하며 비밀리에 용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


‎5. 도가니에서 나타난 것처럼 후환이 두렵지 않은(강력한 보호자가 부재할 경우)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도 피해자가 되기 쉽다. 왕따를 지독하게 겪는 아이들이나 범죄에 빠지는 아이들중 쟤는 비호할 사람이 없다는 걸 가해아동이 알 경우 더 쉽게 타겟이 된다.


‎6. 아동성범죄의 합의불가 무조건 처벌규정이 만 13세인데.. 난 이 연령도 조금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 13세면 중학교 2학년이다. 아직도 한참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7. 요즘 학교폭력을 처벌하는 학교의 규정에는 폭력현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담자로 인정돼 가해자와 유사한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건 불의를 묵인방관하는 것은 공범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바닥에 대해서

1.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보수언론에서 미친듯이 쏟아내고 있다.
9시 메인뉴스에도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역겹다.

부산저축은행 관련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이 더 중요한 정권이다.

부산저축은행엔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
물론 그들은 못된 교육감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니 들 생각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대가성으로 금품을 건넨 게 사실이라면 응분의 처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수사가 끝난 뒤 밝혀질 내용이다.
본인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부끄러움이 없다 했으니 기다리겠다.

법적인 함정에 빠져서 설령 구속이 되고 처벌을 받고 사퇴를 하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당일날 2억원을 선의로 주었다고 밝힌 그 자세를 믿겠다.

오세훈으로 인한 후폭풍을 곽노현으로 덮겠다는 꼼수가 참으로 노골적이다.
박명기 후보자가 7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과 그의 법무법인이 바른이라는 것도 너무 빤해보인다.

처음 사건이 발표되었을 때,
애초에 정치를 비롯한 모든 선거와 투표에 관련된 그 바닥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바라서 곽노현을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관행일 수도 있고 그게 시대의 반영일 수도 있으므로.

대신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곽노현의 편을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 나는 곽노현을 비난하지 않는 것으로 자세를 잡기로 한다.

2.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에 반대했다.
그를 구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사돈이자, 순복음교회 집사인 강용석에게 그들은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쭉 초지일관 한나라당의 색깔을 명확히 표시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3.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곽노현 사퇴를 부르짖거나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프레시안에서 조차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진중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군가는 교육감 직선제까지 손 보려 할 것이니 꼬투리가 잡힌 이상 어서 사퇴시키고 명확한 진보성향의 대타를 내세워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과 함께 같이 승리하자. 라는 의도일 수도 있다.

물론 김어준의 지적대로 먼저 쫄아서, 혹은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다.
둘다 이해하겠다.

하지만 사퇴는 본인이 직접 하거나 수사결과 자격이 박탈당했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종용하고 싶지 않다. 법이 밝혀주거나 본인이 밝힐 것이다.

4.

일단 오늘은 한나라당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용석 의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고군분투 해주시기 바란다.
두달이 미처 못 남았다.

야권에서는 빨리 제대로 된 후보를 내서 선거전에 돌입했으면 좋겠다.
지금 곽노현을 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5.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은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깊게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 정권이다.
그래서 많이 배웠고 많이 읽었다.

가카의 꼼꼼한 배려와 국민교육에 대한 애정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2011.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