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마을만세 – 마을은 어디에 있나

마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마을 관련 사업을 하고 그동안의 활동내용을 공유하는 사이에, 마을에서 더 멀어진 거 같기도 하네요.

#민중의소리

#마을만세#칼럼

https://vop.co.kr/A00001672089.html

[수요일엔 마프]마을에서 민주시민으로 살기

지역에서 어떤 사안을 놓고 의견을 수합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는 ‘민주주의는 어렵다’는 것이다. 협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여간 복잡하고 까다롭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다수결의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수결은 폭력적이고 소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인권, 다양성, 환경에 대한 의견은 때로 곳곳에서 충돌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어느 바닷가 지역에 나무로 된 데크를 깐다. 장애인도 휠체어로 바다구경을 할 수 있다. 환경우선주의자들은 생태를 해치는 행위라 비난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장애인권을 보장하는 설치물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대놓고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일상생활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문제가 있다. ‘계단으로 다니면 전기를 아낄 수 있어요.’는 장애인은 전기를 아낄 수 없으니 환경을 파괴하는 게 되느냐는 반발에 부딪힌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주장하는 강도의 수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지만, 반면 상호 조율과 양보, 타협이 가능하다.

생태환경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장애인의 이동권리가 더 우선하는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버리면 더 이상의 타협은 어려워진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모두 중요하다.

경기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수요일엔 마프>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전문은 https://ggmaeul.or.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30&boardNo=10034&menuLevel=2&menuNo=56&fbclid=IwY2xjawIbqNJleHRuA2FlbQIxMAABHXrZCZ1LwvnHWiA9_nfdNmHcwlB0uXsMVDKkUkXNFh1acAWKxWw79fng6w_aem_wZW7_VQIBghtQVqrjZ7usQ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다양한 마을관련 소식과 데이터를 전달합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2024 경기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 기고 칼럼 모음

은퇴한 네트워크 노동자의 P;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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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신도시 공동주택 문제 -꿈의 도시, 희망은 남아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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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마을에서 열 번째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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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행복마을관리소의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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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살던 경기도 : 양주편 / 반짝이던 마을, 일곱 살의 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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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경기도 : 의정부 / 가장 뜨거운 것부터, 가장 차가운 것까지
https://ggmaeul.or.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30&boardNo=9849&searchCategory=&page=1&searchType=&searchWord=&menuLevel=2&menuNo=66

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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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나는 얼마짜리입니까

한겨레6411의 목소리를 담은
<나는 얼마짜리입니까>가 #창비 에서 나왔습니다.
우연찮게 저도, 비영리단체 활동가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고생 많은 활동가들의 일상에 누가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이 책에는 소리없이 살아가는 이땅의 다양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밥풀같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널리 울려퍼지길 소망합니다.

원래 기고했던 칼럼 제목과 책 안의 제목이 다릅니다. 제가 기고했던 칼럼 제목은 #나는걸어가는밥풀이오 입니다.

노회찬재단기획 / 창비 펴냄 / 6411의 목소리 지음

[칼럼]조건부 인생의 연대기

창비주간논평에 저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저출생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숫자와 통계로 이루어져 있어, 저는 저출생에 이른 한국사회의 연대기로 접근해봤습니다.
전문은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magazine.changbi.com/MCWC/WeeklyItem/1813

[기고]나는 걸어가는 밥풀이오

함께 걷는 지역활동가동지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길.

한겨레신문 / 6411의목소리 / 나는 걸어가는 밥풀이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7657.html?fbclid=IwAR1JLgJMz6jBVQW8nA4j5XmDONp8FZSLoOLEZwcjPzAaZrCvlBIYV4phcEk

[창비주간논평] 팬데믹, 세 번째 개학

https://magazine.changbi.com/20210303/?cat=2466


팬데믹의 세 번째 개학을 맞아, 창비 주간논평에 칼럼을 싣게 되었습니다.
열 분이 넘는 교사들의 의견을 듣고, 학생당사자, 학부모들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사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항상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썼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1년 3월 3일 발행

[칼럼]집에가자 : 재택근무를 그만두며

한국노총 발행지 <노동과 희망>에 청탁을 받고 기고한 글입니다.

한국노총 노동과희망 바로 가기

 

어릴 적 상상했던 2020년에도 오늘의 풍경이 숨어있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화상회의와 화상전화교육, 팔다리가 가늘고 머리통만 커진 인간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없지만, 비대면 업무와 온라인학습은 뜻밖의 바이러스 때문에 앞당겨졌다. 강제 재택근무에 돌입한 사람들은 초반에는 가족들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더니, 거리두기 권고가 3주를 넘기자 집중력이 떨어져 업무시간이 늘어지고 출퇴근이 없으니 밤낮없이 일만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월요일 오전 8시 50분이면 메시지창이 열린다

2005년, 결혼과 임신을 하면서 재택근무를 시작한 나는 2020년 지금까지 재택근무중이다. 가족사업과 작은 회사 두 개 거치면서도 절반은 재택근무를 했다. 독립해서 프리랜서를 거쳐 개인사업자를 낸 지금까지도 굳이 사무실을 얻지 않았다. 사무실 월세도 부담이지만, 대리돌봄이 불가능한 육아문제가 가장 컸다. 아침을 먹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9시부터 거래처들의 업무가 시작된다. 나도 그 시간에 맞춰서 책상에 앉는다. 월요일 오전이 되면 8시 50분, 또는 8시 이전부터 메세지창이 열리기 시작한다. 일을 하기 싫어도 시작해야만 하는 외부의 압박이 온다. 점심시간에도 전화기가 조용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일 그만하고 놀자’고 조르기도 했고, 친구들을 우루루 데리고 와서 소란스럽기도 했다. 친구들과 집에서 놀고 있으면 먹을 것만 챙겨준 뒤 신경을 안 써도 되지만 어느 순간 분란이 일어나면 일을 중단하고 일어나 중재도 해야 한다.
사무실이 없으니 회의를 할 때면 항상 내가 상대방의 장소로 찾아갔다.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꽤 든다. 하루에 회의 세 건이면 하루가 몽땅 날아갔다. 작년부터는 이동시간을 아끼자며 온라인 미팅을 하는 팀도 생겼다.

 


▲재택근무를 하는 이하나씨의 책상

 

아이가 잠든 후 반 11시에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재택근무에서 어려운 것은, 업무와 일상의 분리다. 육아 때문에 재택근무를 선택했으니 육아와 살림은 당연히 함께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순간적인 집중력을 높이는 기능을 발달시켜야만 한다! 아침 9시부터 커피 한 잔 내려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업무를 시작하고 가족이 없는 시간엔 절대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모든 살림살이를 다 뒤로 미룬다. 눈앞에 설거지가 쌓여있는 걸 못 참는다면 재택근무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전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나면 점심시간엔 뇌가 지치는지 졸음이 쏟아진다. 여기서 재택근무의 장점이 발휘된다. 내 멋대로 점심을 걸러도 되고, 다른 직장인들이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에 낮잠을 잔다.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간식을 내놓으라고 외친다. 아이가 오기 전에 기력을 회복해두어야 늘어지는 오후에 아이도 돌보고 일도 하는 것이다. 저녁 시간에 내가 어질러놓은 것까지 밀린 집안일을 하며 업무로부터 한 번 더 쉰다. 저녁을 해 먹이고 아이를 재운 뒤 다시 책상에 앉는 시간이 밤 11시였다. 혼자 집중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이가 잠든 이후인 11시부터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다년간의 재택근무를 거치면서 내가 찾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오전 9시 전에 일어나 샤워하고 머리도 감고, 아침을 먹고 커피도 내리고 언제든지 미팅을 나갈 준비가 된 채로 일을 시작한다. 옷은 굳이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다.

2. 오전 9시 이전에는 되도록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하루 일정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본다. SNS도 괜찮다.

3. 업무 관련 장비는 가장 좋은 것으로 쓴다. 장시간 앉아 있게 되고 수시로 야간작업에 돌입하기 때문에 키보드, 마우스, 마우스 패드, 의자는 능력치 내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른다. 나는 MS의 스컬프트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고 있는데 의자는 PC방 의자로 바꾸고 싶다.

4. 하루를 마무리 짓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저녁 7시까지는 어렵더라도 밤 10시라든가. 연장근무는 아무래도 새벽 2시에는 끝낸다거나.
5.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한다면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 다른 걸 한다. 안 그러면 화장실 갈 때 말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점점 의자가 나인지 내가 의자인지 모르는 지경이 된다. 이때 스트레칭을 하면 더 좋겠지만 게으른 자는 자기 성향에 순응하도록 한다.
6. 수시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절친과 간간히 메신저로 채팅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혼자 일한다는 건 고립되기 쉬운 일이라 절대적으로 SNS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택근무의 함정은 끊임없는 셀프착취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상당히 파악한 지금이 이르러서야, 나는 다음 달에 사무실을 얻기로 결정했다. 집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넓어져서 가족들이 앉을 자리도 없어졌다. 정리정돈을 못 하는 성향이라 온 집안이 내 업무의 잔해들로 가득하다. 가정을 지키며 돈도 번다는 유세를 떨 수 있으나 집안의 고요한 폭군의 입지에 오른다. 당사자인 나는 끝도 없이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해도 되지만, 습관이 되면 회의도 가기 싫어진다.

 

재택근무는 끊임없는 셀프착취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출퇴근길을 오가며 보게 되는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을 모르고도 랜선으로만 일을 하며 업무에만 몰입할 수도 있다. 시간을 아끼려 화상회의를 하고 업무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며 효율을 잔뜩 높일 수도 있다. 아파트 단지안의 빈집의 대낮은 산사만큼 고요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공포가 되는 시대에, 다시 밖으로 나가겠다는 결단을 한 것은 사람을 부딪히고 싶어서다. 누군가 나의 공간에 편하게 찾아오고 그에게 커피를 내려주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는 시간, 모르는 사람들이 밥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창가에 서서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거슬리는 옆 사무실의 큰 소리나, 공동공간을 두고 일어나는 자잘한 신경전도 적당한 자극과 활기가 될 지도 모른다. 침체된 채 저녁도 새벽도 없는 자기노예화에서 벗어나, 매일 돌아갈 곳, 매일 그리운 곳을 두고 ‘집에 가자’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모든 일은 사람이 만나야 이루어지니 말이다.

 

#재택근무 #업무와일상의분리 #셀프착취

[쓰다]민주시민입니까?

2019년 2월 20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입니다.

이하나

엊그제는 지역의 교사들이 모여 민주시민교육연구회라는 걸 만들었다고 연락이 와서 참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가 뭘 하고 어떤 걸 해왔는지 설명하고, 네트워크 내의 각 단체와 연대회의의 시민단체들도 소개했다. 시민교육을 하고 있는 안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의 각 특성을 얘기하고 교안개발의 중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면서 질문 있냐고 물으니,

교사들은,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무슨 질문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민단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자기들은 저항을 해 본 적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건 알겠지만, 마을교육공동체를 교육청에서 떠들어댄 지 몇 년이지만, 그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교사들에게 생협에서 장을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섯 명정도 모인 자리였는데 절반이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금이 총회 시즌인데, 총회 안 가시죠?”
다들 웃었다.
“그런 모임이 있다고 연락은 오는데 오전에 있어요…”
“총회는 오전에 잘 안 합니다. 그런데 모임이 오전에 있어서 그게 불만이면 사무국에 전화해서 저녁모임도 해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아…”하는 탄식이 흘렀다.

하라는 대로, 그렇다는 대로, 원래 그렇다 하니,
그대로 따라서 살아온 사람들.

시민사회단체는 백명이면 백명의 의견이 있어 통일이나 완전 합의, 만장일치가 잘 안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건 각자 자기 불만을 먼저 털어놓고 민원제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모임에 나온 교사들은, 학교를 벗어난 사회에서 저항의 경험이 너무 적어서, 문제점을 발견해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장학사에게 카카오같이가치에 연재했던 퍼스트펭귄 링크를 보내줬고 이 내용을 공유하면 시민사회단체가 무엇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올거고 이런 일을 했거나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민교육을 지난 십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해왔다고 얘기해주면 될 거라고 얘기하며 헤어졌다.

이미 상당히 진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교사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교양있는 시민들이 사는 배려 넘치는 사회쯤으로 인식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교육공무원의 경우,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정치성이 드러나는가 늘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몇 해전에는 어느 토론회에서 “자기 자신이 민주시민인가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인데, 시민은 덕망과 교양을 갖춘 존재로만 인지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 자격을 갖추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착한 어린이는 울지 않아요. 착한 어린이는 싸우지 않아요. 라는 노랫말처럼 자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저항하고 기득권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하면 곧바로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착한사람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프로파간다.

“말 들어야지” .. 말을 왜 들어. 왜, 들을만 해야 듣지.
말을 안 들으면 니 말이 개똥이라 못 들어주겠다는거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런 교육을 잘 이수해야 4대보험을 직장에서 내주는 주류로 편입할 수 있으니. 그렇게 사는 게 어쩌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 시민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되는 면이 있는데, 몇 년을 해와도 아직도 20년 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 무슨 자치를 논하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명랑할매

https://www.vop.co.kr/A00001466408.html

2020년 2월 7일, 민중의소리 발행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복지관이었다.

생애사쓰기를 하러 온 노인들이 스무 명 넘게 앉았다. 각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미 있었다. 연금생활자가 많았다. 먹고 사는 데 큰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노후가 편안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직자 출신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다수 그랬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은 중간에 IMF를 비껴가지 못했다. 장사하던 사람들은 더했다. 어떻게든 IMF 이전에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센 풍파에 밀려 다 한 번씩 쓰러졌다.

복지관의 위치나 평소 이용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생애사쓰기 프로그램에 모이는 사람들도 달라진다. 사회복지사가 일일이 연락해서 프로그램 설명도 잘 듣지 못한 채로 교실에 와서 앉아 있는 경우는 저소득층이 많지만, 자발적으로 모집공고를 보고 오는 사람들은 경제적 형편이 낫다. 저임금 고노동에 몰입해서 하루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다는 말이다. 아껴 쓰면 큰 문제 없이 산다는 것이고, 자녀들이 일정한 소득을 유지해서 부양의무에서 벗어난 이들이기도 하다. 이 복지관은 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아껴 쓰고 근면하게 일해 중산층에 진입한 이들이다. 이들이 처음 공기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매번 생활비가 모자라 빚을 얻어 쓸 정도로 공무원 급여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퇴직할 때쯤에는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 정확한 신분보장이 되니 은행대출도 쉬웠고 정보도 빨리 얻었고 따박따박 고정적인 급여가 나오니 맘만 먹으면 집은 살 수 있었다. 저항하지 않아도, 어쩌면 저항하지 않아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보수적인 생활태도를 가졌다.

계속 “[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명랑할매”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