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다미선교회

모태신앙이던 내가 교회를 멀리하게 된 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동네에 알려졌다. 엄마는 가끔 교회에 충성했고 가끔 냉담했는데 본인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때 교회에 집착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 엄마가 교회에 충성하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엄마가 주일예배 전에 교회 앞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안내를 맡았다. 건너편에서 같이 안내를 하던 다른 집사가 엄마에게 “이집사, 이혼했다며?”라고 물었다. 그게 84-5년도 쯤이었다. 이혼한 싱글맘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시선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현존하는 모든 여성혐오의 총체쯤. 그래서 엄마는 그길로 교회를 그만뒀다. 나도 자연히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다. 엄마는 종교를 포기할 수 없었는지 말이 적다는 천주교로 옮겨갔다. 나는 세례를 받으려고 여러 번 애를 쓰다가 번번히 실패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쯤, 어찌저찌해서 친해지게 된 아이들과 함께 갑자기 교회열풍에 휩쓸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광신도가 되었다. 집안사정이 정신없이 흔들렸고 매일 다툼과 폭력이 난무하던 때였다. 집에서 학교를 제외하고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은 당시에 흥하던 단과학원과 교회였다. 합법적으로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토요일에는 청소년부 예배가 있어서 하루종일 교회에 있었고 일요일에도 교회에 있었다.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방학때 교회오빠들에게 기타를 배웠다. 그때가 CCM이 막 퍼져나가던 때였다. 주찬양선교단이 봄여름가을겨울만큼 흥했고 송명희와 최덕신은 청소년기독교도들의 아이돌이었다. 기타를 가르쳐주던 오빠와 찬양집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찬양집회만 다녔겠나. 연애도 했다. 우리는 신앙으로 똘똘 뭉친 강력한 커플이 되었다. 화요일에는 동대문 근처에 있는 무슨 교회의 찬양집회에 나갔고 가끔은 온누리교회 두란노 찬양집회에 갔다. 토요일,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찬양집회를 주도했다. 내 남자친구는 기타를 쳤고 나는 탬버린을 든 보컬을 하거나 키보드를 치면서 노래를 했다. 우리 둘은 매일 아침마다 큐티도 했고 주말에는 수유역에 있는 아멘서점에서 책과 음반을 골랐다. 그때 락음악을 사탄의 노래로 규정한 무리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 영향을 받아 몇 년동안 모은 모든 테이프를 죽죽 잡아빼서 가위로 싹둑싹둑 오려 버렸다. 엄마는 방문을 열고 내가 테이프를 다 망가뜨리는 걸 보더니 “어머, 저 미친년.”이라 말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연애초기, 내 남자친구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친구에게 연애질이 들통나 무리에서 왕따가 되었고, 학교에서는 남녀공학에서 계집애가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이유로 남자애들에게 물을 뒤집어쓰기도 했고, 새아버지와 엄마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 집안꼴은 개판이었다.

모든 상황이 악화일로이던 때에 남차친구가 다미선교회 책을 내밀었다. 지금은 그 책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파란색 표지에 한 가운데 무슨 사진인지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휴거가, 사춘기에, 혼란스러운 집구석에, 외롭던 나에게 한줄기 구원이었다.

다 망해버려라. 나도 망해가고 있으니 다 같이 망하고 나도 하늘나라 가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한 성경통독을 두 번 마치고 구약이 지겨워 신약을 다시 읽고 있었다. 새로 나온 만나성경을 사서 주석까지 훑어가며 읽으면서도, 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의 책을 있는 대로 찾아 읽으면서 휴거론에 푹 빠졌다.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미친 것 같다.”라고 했는데 나는 “미쳐도 모자라지 않겠니.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이라고 대답했던, 그게 중3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찬양 선교단의 테이프를 다시 듣는데 이런 가사가 들렸다. “누가 아는가, 주님이 오실 그날을.” 이건 성경에 있는 구절인데, 다미선교회의 말과 상반되는 것 아닌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성경을 다시 펼쳤고 요한계시록을 다시 읽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다들 “너무 미친 거 같아서” 나를 멀리할 때, 다시 성경을 통해 휴거에서 벗어났다.

곧이어 가족에게 큰일이 생겼고 나는 잠시 학교를 쉬게 되었다. 내가 다미선교회에서 벗어나면서 남자친구와도 멀어졌다. 남자친구는 다시 나에게 찬양집회에 나가자고 했는데 “오빠는 한가하냐? 나는 이제 바쁘다. 공부해야하거든.”이라고 시건방지게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완전히 헤어졌다. 오빠는 교회였고, 교회가 오빠였으니까. 일체된 두 가지 존재를 같이 밀어냈다.
6개월 후에 학교에 복학한 나에게 선생님과 아이들이 “신앙부장” 안 하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종교에서부터 멀어졌고 중창단에 복귀해 노래연습하고 공연다니며 잘 지냈고, 그 이후로는 어떤 종교와도 가까워지지 않고 있다. 회피한다기 보다, 모든 게 납득이 잘 안된다. 가끔 진보적인 신학서적을 읽을 때는 있다.

사춘기에 술 담배 폭력으로 일탈하지 않은 건 교회때문인데,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데가 그때는 교회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어려서는 매우 금욕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내가 교육받은 범위내에서 정당하게 일탈할 수 있는 한계는 다미선교회까지였을 것이다. 차라리 그때 예체능에 집중했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성경을 두 번이나 읽는 기염을 토하진 못했겠지. 성경을 읽은 건 서구문화와 문학을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종교가 필요한 시기라 종교에 몰입했고, 그 종교에게 기복을 원할 때 위험해진다. 기복신앙으로 바라보던 종교가 나에게 답을 주지 않을 때, 사이비에 빠지는 건 아닐까.

사회적 자아를 키우고 싶은 욕망을 가진 부류가 있을 것이다. 사이비에 빠지는 저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 사연도 모두 안타깝고 구구절절할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겠나 싶은 일들이, 많을 것이다. 매몰차게 거절할 줄 모르고, 자기 이득을 우선시 할 줄 모르는, 적당히 손해보고 싸움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 이 나라니까. 그 개개인 모두가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것이다. 들어보면 모두 그럴만한 사정일 것이고, 모두 이해할 만한 사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용납되는 것은 다르다. 저간의 사연은 이해해도 좋지만, 그렇다고 “불법감금이나 개인의 결정권을 침해하거나 지능적으로 노동력과 금전을 갈취하는 등의” 비윤리적 행위는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건, 스티븐 핑커가 <빈서판>에서 한 얘기다.

2020. 2. 25.

사람은 지혜가 있대

엄마 나는 태권도 쭉 해서 상장도 받고 트로피도 받을거야.
응. 아주 좋은 생각이야. (상상이 안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나름대로 친절한 대답 잘 해줌)
엄마도 좋다고 생각해?
그럼. 근데 예환아, 예환이는 공부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어?
있어!
그래?
근데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해?
음.. 누나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싶으면 가는 건데, 근데 사람이랑 동물이랑 차이점이 뭔지 알아?
알아!
뭔데?
지혜! 사람은 지혜가 있어!
그래, 동물은 본능만 있지? 사람은 지혜가 있어. 왜냐하면 문자가 있어서 그걸 기록하고 나눠갖고 책을 읽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응!
그러니까 사람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늘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아. 그렇겠지?
응. 책도 읽고!
그래. 늘 생각하고. 그러니까 공부가 언제끝날까 이런 생각은 하지 마.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인거야.

2013. 12. 21.

사람구경

1.

나는 사람을 믿지 않지. 라고 쉽게 말하곤 했다.
그게 아마 작년까지였는지, 올 여름까지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지. 라고 지금은 바꿔 말할 수 있다.
영 능력이 안되는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뒷심을 크게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매우 잘 해낼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바닥을 기는 경우도 본다.

사람들의 진정성, 순수성, 자율성, 자치적 능력들을 전혀 믿지 않으며 살아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인간의 조건 중의 하나는 “절실함”이었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도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점검하는 것들 중에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집단이 힘을 모아내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게으르고, 안주하길 원하며,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건, 생존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모든 동물에게 두려운 일이고, 스트레스고, 도전이다.
“나는 쉴 새 없이 변하는 게 좋아.” 라는 건 그 바닥에 터져 나오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끝없이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구석에 몰리고, 위기에 봉착하면 힘을 발휘한다. 안전한 상태에서 굳이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할 필요가 무엇일까. 위기라는 건 생계나 생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서, 자존감, 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존엄에도 위기는 찾아오곤 한다.

“에이 썅 내가 본때를 한 번 보여주겠어! ”
이게 바로 자존감의 위기를 맞이할 때 하는 말들일게다.

2.

올 해도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든 역동의 이유를 들여다 보기도 했고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나날이 사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지는 듯 한데, 이런 건 참 위험한 일이라, 섣불리 나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으나, 나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정으로 발휘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해마다 일기장을 새로 열며
“삶은 치열해야 한다” 라고 적었다. 그렇게 적은 게 20여년이 되었다.

어제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힘들게 살지 말자.
지나치게 치열하게 굴지도 말자.
힘을 차곡차곡 쌓아야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변함없이 버티는 일,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정말 매년 다짐처럼 치열하게 살았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이삼십대는 그렇게 살면서 바닥을 굴러보는 게 나았을 게다.

인간의 숭고함을 철석같이 믿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그럴 때는 쓰레기장에서 재활용을 줍다가 밖으로 나온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만났던 YMCA 꿈프로젝트 친구들에게 마무리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더 한없이 악랄하고 저열하고 폭력적일 수 있으나, 또 그 똑같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숭고함은 신과 닿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3.

딸아이가 낮에 절친이라 하기 어려운, 아는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실종된 지 3주가 됬다는데 소식도 없고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했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인데 두루두루 아이들과 친하지만 딱히 친한 친구는 없으며 가정환경도 복잡한 것 같다 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배타러 갔을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에?? 새우잡이?” 라고 대답하는 아이한테
“뭐 세상만사 귀찮고 정붙일 사람도 없고 배타고 돈 벌고 그런 생각 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냐. 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그렇잖아.”

아이는 다른 이야기들을 연이어 꺼내놓았는데 우리는 결국 “개천에서 용난다” 이야기까지 발전했다.
딸아이는 “되게 열심히 살고 훌륭한 아이들이 있는데 식구들 때매 신세 망치는 것 같은 애들이 꼭 있어. 걔들은 그런 가족이 없으면 더 잘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고 하길래
“그런 가족이 있어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훌륭해 지는 지도 모르지.”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날 봐라. 내가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막 존나 우아하고 선량한 집구석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으면, 엄마가 지금 이만큼 왔겠냐?”
아이는 피식 웃었다.

4.

원인을 찾는다는 게, 찾다 보니 원망이 쌓이고 그게 분노가 되고 되려 홧병이 되어 덮쳐 오기도 했다. 원인을 찾았으면 해결방법을 찾으러 가야 했는데 원인을 찾고 나니 해결방법을 찾기 전에 너무 쇼킹해서 눈은 멀어버리고 정신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몰랐던 건 약으로 때우면 되지만 알게 되면 개복을 해야 된다는 얘기인가..
(잘도 갖다 붙이고 있다)

5.

암튼 그랬다.
오늘도, 어제도 나는 매일 매일 사람구경을 한다.
한 사람의 표정과,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슬픔에 대해서. 어두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왜 엄마가 안 오지. 하고 혼자 별의 별 상상을 다 지어내어 훌쩍이고 있던 세상 모든 늙어버린 아이들에 대하여.

오늘도 내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치덕치덕하게 끈적한 크림을 바르는 동안 “엄마 안아줘.”를 반복해서 옹알거리다 잠든, 서캐낀 대구빡의 내 새끼에 대하여도.

+ 요즘들어 자꾸 의심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내가 믿어온 가치관, 옳다, 아니다. 라고 판단했던 그 당시의 생각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거다. 아주 어렸을 때도 “이건 아니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한데 그게 과연 모두 다 객관적으로 검증해봐도 그렇게 볼 만한 사안인가. 하는 것들이다. 흠.

+ 그래서 내가 간혹 탈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가치관의 전복,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부정. 그게 가져오는 충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2013. 11. 18.

인간의 조건 2

청소하기
빨래하기
신발빨기
설거지하기
물건분류하기
망치질하기
전동드릴로 벽에 못 박기
못 뽑고 구멍메우기
형광등갈기
변기고치기
가죽구두 닦기
다림질하기
가죽소파 왁스질하기
화분키우기
동물돌보기
펜치로 철사구부려 모양만들기
기본 공구 다루기
티비 관련기기 연결하기
컴퓨터 포맷하기
고장난 빨래건조대 고치기
아이폰 동기화하기
블루투스 사용하기
물건 분류해 정리하기
나만의 책장 생각의 흐름별로 정리하기

– 이게 오늘 결심한 내 아들이 스무살 되기 전에 가르칠 것들이다.

대학을 가는 게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