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 다녀오다

거기 가면 따뜻하겠지.

날씨 앱을 꺼내 보며 생각했다. 숫자가 말해주는 온도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그 숫자를 기록했던 어떤 날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숫자는 언제나 막연하다.

두 번째 남도로 가는 길. 남도에 얽힌 이야기는 숱하게 많다. 스물 한 살부터 스물 세 살까지 살았던 고시원에는 모두 남도 사람들이었다. 전라도 순천, 벌교, 목포, 장흥, 고흥, 보성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왁자지껄 했는데 전주 사람은 북도는 껴주지 않는다고 찬밥이었다. 남도에 대한 환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을 다녀온 지난 가을, 그 풍요로운 땅에 홀딱 반했다.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바다와 산이 가깝고 그 사이에 들이 펼쳐졌다는 것은, 불편함을 담보로 하되 이런 풍광은 댓가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먼 곳의 여행을 할 때마다 기가 막힌 경치가 늘 신기했다. 그 풍경들은 그만큼 먼 길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게 자연이 가까이 오겠느냐 묻는 것에 대한 댓가라 생각했다. 운전을 해서 가는 남도는 대여섯시간이 걸렸다. 피로따위, 참을 수 있는 길. 고흥에 간다는데, 운전 따위 못하겠느냐고 실실 웃었다.

상위에 차려진 음식은 언제나 싱싱했다. 냉동창고에 들어가 본 적 없는 풀과 물고기가 그대로 상 위에 음식이 되어 올라오는 곳, 파도가 거세 양식도 어렵다 했다. 험난한 자연환경이 외려 득이 되는 곳. 고흥에 다녀오면 바다와 들을 멀리 하고 사는 것이 이렇게 비루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햇살이 좋은 오전, 그 집에 갔다. 마당에 있는 작은 나무에 노란 것이 달렸다. 제주도 귤나무를 심으셨다는데 열매가 열렸고, 그냥 따서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귤을 집에서 따 먹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동네에 유자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딸 사람이 없어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땅에 떨어지면 고양이나 들쥐의 먹이가 될 것이고, 나무에 달린 감은 까치의 밥이 되겠지. 문득 까치 같은 날짐승도 유자를 먹을까 궁금해졌다. 시큼할텐데.

한 식구가 먹을 만큼만 심은 작은 밭에 무와 배추가 커다랗게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누구 먹으라고 나란히 놓았을까. 누군가 먹으라고. 와서 달라고 말하지 못할 누군가를 위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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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도 매달린 채 말라비틀어지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삼시 세끼 밥을 먹고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서 이 모든 작물을 거둬들이는 일은 작정해야 할 일이다. 고향집에 간 아들은 아무도 따지 않은 유자나무위에 올라가 유자를 따기 시작했다. 유자나무에는 가시가 있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 일일이 거둬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 만든 것을 만나보지 못한 유자는 작고 쪼글쪼글했다. 겉껍질은 시꺼멓고 울퉁불퉁했다. 검게 변한 귤도 마찬가지였다. 내다 팔기에 애매한 과일이다.

충청도의 힘이라는 책을 쓴 저자는 자이랑 식품에서 일하는 남덕현이라는 사람이다. 작은 책이라는 잡지에 젓갈 담그는 얘기를 쓴 걸 읽었다. 보기에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가라앉는 새우 단백질 때문에 팔리지 않는 젓갈이 속상한 이야기다. 유자를 생각했다. 보기에 좋지 않아 아무도 돈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 집의 작은 마루엔 유자냄새가 가득했다. 70년을 해로한 두 노인은 유자 껍질을 잘게 잘라 마당에 내놓고 말리고 있었다. 한약방에서 약으로 쓰기에 내다 판다 하셨다. 그게 뭐 얼마나 큰돈이 되겠는가. 그냥 버리기에 아까워 햇빛에 맡겼을 터.

냉난방이 완벽하고 햇빛도 걸러 받아들이는 아파트에 사는 나는 버리기에 아까운 모든 것들을 노란 비닐봉투에 담아서 내다 버려야 한다. 햇빛에도, 바람에도 맡길 수 있는 게 없다. 모두 다 입으로 들어가 똥이 되지 않으면, 씨앗 하나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도시.

남도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수산시장에서 갓잡은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을 사온 그날 밤, 우리집은 쓰레기장이 되었다. 스티로폼 박스는 네 개가 넘었고, 그 안의 물건들을 포장한 퍼런 비닐과 녹아가는 얼음을 씽크대에 버리고 생선 뼈다귀, 내 옷에 붙은 들풀의 씨앗 하나 모두 다 떼어내 쓰레기통에 곱게 넣어야 한다. 먹고 남은 게껍질은 가위로 잘게 잘라 노란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더 많이 들어간다. 생선을 나누어 담는다고 나는 지퍼백을 다섯 개나 꺼냈고 냉동실 칸칸마다 각종 비닐로 쌓인 먹을 것들이 가득한 걸 알아챘다. 냉동실은 블랙홀, 이제 하루가 지나, 돌바지락이라 부르는 살조개는 다 먹어버렸으니 남은 꽃게를 차곡차곡 냉동실에 잘 넣거나 쪄먹어 치워야 할 일이 되었다.

 

순천을 지나오면서부터 추웠다. 집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란다엔 유자냄새가 가득한데 그 집에서처럼 향긋하지 않다. 신바람이 나서 꽃게를 4kg 정도 사왔는데 언제 먹나 싶다. 잎새주를 사왔는데 남편은 웬지 당기지 않는다며 냉장고에 그대로 두었다. 식탁 위엔 며칠 전에 사온 식빵이 굴러다니고 냉장고엔 일주일된 스타벅스 케잌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그 사이 식구들은 컵라면과 봉지라면을 사다 찬장에 쟁여놓았다.

남도의 것을 사온다고 내 집이 남도가 되지 않는다. 장소가 바뀐 먹거리들은 짐짝처럼 물러가겠지. 아쉬울 뿐인가. 슬프기까지 하다.

그 동네의 편의점에서도 원두커피를 찾아 캡슐원액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에 거 참 커피 맛대가리 없다고 마실 때, 옆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전화통화 하던 걸 들었다.

“돗돔을 하나 잡았는디. 먹을 사람이 있는가?” 하던 얘기.

어쩌다 생기는 것에 대한 반가움, 우리 집엔 그런 게 있던가.

어쩌다 생기는 게 뭔가, 생각나면 주문하면 될 일이다.

동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지, 물건은 언제나 움직일 수 있다. 돈만 내면,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고,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구할 것은 오로지 돈. 그러니 무엇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도시에선 아무도, 아무 것도, 그 어떤 음식도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다.

뜬금없이 걸려 올라온 돗돔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온다. 나는 남은 꽃게를 냉장고에 넣을 것인가, 냉동실에 넣을 것인가, 얼음팩에 넣어 딤채에 넣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2013. 11. 24.

오늘의 숙제

1.

 

오래 묵은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멀리 여름나라에 살다 와서 아이 겨울 옷을 물려주려고 같이 옷을 정리하고 개고 싸고 하던 중에 작은 놈 같은 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숙제 프린트 했냐고 묻는다.

무슨 숙제?

그거 숙제 있잖아. 사진 붙여 가는거.

어.. 나는 모르는 일인데.

우리 아들이 알림장도 잘 안 가지고 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숙제를 해 가는지 안 해가는 지 잘 모르지만 가끔 점검은 한다. 숙제 점검을 하더라도 대부분 해 지고 난 다음이고 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오후 2시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멀찌감치 팽개쳐두고 티비 리모콘부터 잡는다. 일단 런닝맨이나 정글의 법칙을 한 편 보고 방과후 일과를 시작하는 습관이 들었다. 두 편 세 편 넘어가고 유난히 시끄럽게 들리는 날엔 그만 보라고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래 너도 학교 댕겨왔으면 쉬어야지. 하고 냅두는 편인데 사실은 잔소리 하기 귀찮고 애하고 씨름하기도 귀찮아서 그렇다.

 

2.

 

친구 엄마의 얘기는 오늘 숙제로 가고 싶은 국내 여행지를 골라 사진을 프린트해서 선없는 종합장에 붙이고 그걸 발표하는 게 있다는데 집 프린터가 안되더란다. 몇 명이랑 통화를 한 끝에 다들 안된다 혹은 잉크가 떨어졌다 하길래 우리 집은 프린터가 웬지 잘 돌아갈 거 같아 도움을 구하려고 전화를 했단다. 안그래도 며칠전에 잉크패드도 갈고 프린터 점검을 마친 상태. 그러면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면 내가 프린트를 해주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세 명분을 부탁했는데 독도, 제주도, 불국사, 석굴암, 우도의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프린트만 해 주면 되는 일어었다. 친구 엄마는 집에만 있다 보니 컴맹 된 거 같다며 제대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다시 전화를 했길래 메일함을 열어보니 네이버 백과사전 링크가 걸려 있다. 사진은 따로 저장이 안되서 일일이 캡쳐를 떴는데 PNG로 저장했다가 프린터에 안 잡혀 다시 JPG로 다 돌렸다. 여섯장 정도 된다. 캡쳐 떠서 크기 조절해 프린트를 하고 있는데 내가 이게 남의 숙제를 해 주고 있는 꼴인가 싶었다.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내가 아이패드로 즐겨 하는 게임은 SIMS Play 라는 건데, 집 짓고 사람 캐릭터 만들고 마을을 꾸려가는 게임이다. 여러명이 공동으로 사는 집을 짓기도 하고 혼자 사는 집을 만들기도 한다. 공동주택, 즉 Share hous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지 책도 한 권 나온 걸 봤다.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남의 숙제를 해주고 있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찰라.

그래 집집마다 프린터를 다 한 대씩 두고 있을 필요가 있나. 이런 게 나누는 거 아닐까. 어찌 보면 대행해 주는 거 같아 보이는 일과 누군가 물질적/비물질적 재산을 가지고 공유하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다른가 궁금해졌다.

 

오래전엔, 누군가 손으로 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남의 옷을 지어주기도 했을 것이고 큰 일은 돈을 받았겠지만 친분이 있다면 단추 하나 달아주는 일 정도는 거저 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나에게 프린터가 있고 내가 화면캡쳐를 할 줄 알고 파일명을 변경할 줄 알고 사진크기를 변경할 줄 안다면 (업계에 계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이런 작업도 꽤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 재주와 물적 자산을 공유한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대신, 상부상조, 할 필요는 있을 거다.

 

4.

 

아들의 작아진 옷가지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생명을 연장할 것이다. 보따리가 많아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프린트한 사진을 전해줄 엄마들을 만났다.

나까지 아이 엄마 넷.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얘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숙제 이야기를 한다. 시 외우기, 쓰기 숙제, 수학숙제 얘기를 하다가 종합장은 원래 유선, 무선 두 가지를 챙기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나는 할 말이 없는 거다.

멀뚱하니 있다가

“나는 몰라. 홈페이지 보면 숙제가 뭔지 있지만, 뭐 알림장도 안 가져오는 놈 챙겨주면 뭐해. 지 말로는 쉬는 시간이나 아침에 가서 한다고 하던데. 확인은 안되고.” 라고 했더니 옆에 엄마가 우리 아들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니 뭔 걱정이냐며 좋겠다고 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 글쎄 그 자식이 알아서 하는지 뻥을 치는지는 모르는 일이지.” 라고 했지만 아마 알아서 잘 할 거란다.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긴 하냐고 물으니 검사는 다 하시고 스티커 받아오는 거 보면 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노무 스티커판이 알림장에 있는데 이 놈은 알림장을 안 가져온다니까. 그리고 이제 관심없대. ”

“예환이는 알아서 할 거야. 아침에 가서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다른 거야.” 란다.

 

태권도 마칠 시간이랑 교묘하게 맞아 떨어져 먼저 가겠다 하고 도장 앞에서 아이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있는 사범에게 우리 아이가 나왔나 물었다. 2층에 있는 도장까지 젊은 사범이 올라갔다 오더니 어머님 오신다고 얘기 없었으면 아마 혼자 갔을거라고 한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차 타고 다니면 빙 돌아서 오래 걸린다며 혼자 뛰거나 퀵보드를 타고 다닌 지 1년이 되어간다. 집에 왔더니 아들놈이 도복도 안 갈아입고 게임하고 있다.

 

“야. 니네 뭐 시 외우기 숙제 있다매?” 나는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어. 다 했어. 도토리. 근데 싸인받아야 되는데.”

“오올..다 했어?”

“어. 진작에 다 했지. 근데 싸인 안 받았어.”

“엄마가 알림장에 싸인해주는거?”

“응.”

“얌마 니가 알림장을 가져와야 싸인을 해주든가 말든가.”

“니네 뭐 쓰기 숙제도 있다매.”

이 자식이 말이 없다.

“너 안하고 엄마한테 얘기 안할라 그랬지!!” 했더니 아들놈이 씩 웃는다.

“너 숙제 안하면 선생님한테 안 혼나?”

“안 혼나. 스티커 뺏기면 돼.”

“그럼 스티커 많이 뺏겨라.”

“눼~~”

 

5.

 

잔소리 하기 귀찮고 싸우기도 귀찮다. 방치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내 머릿속엔 아이 숙제보다 다른 것들이 더 많을 뿐이다. 내가 야단치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 흠씬 깨지고 올 것이고, 선생님한테 야단맞고 친구들한테 놀림받기도 할거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다쳐보고 넘어져보고 틀려보고 울어보지 않으면 절대 절실하게 느낄 수 없다고 믿는다. 얼마 전 큰 애가 동생의 친구관계 문제를 얘기하며 동네 형들이 제 동생을 이용해 먹는 거 같지 않냐는 말을 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만 놀게 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래서 너는 내가 그만 놀으라 하니까 네 하고 그만 논 적 있드냐? 라고 되물었다.

지가 깨져보고 지가 당해보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 건데 그걸 뭘 지가 좀 당해봐야 아는 거 아냐? 라고 다시 물으니 큰 애는 에휴. 하며 돌아앉았다. 뭔 한숨인지 모르겠다. 복합적인 거겠지. 그렇다고 해서 큰 애가 그 때 나 좀 말려주지, 또는 말리지 말지라는 원망은 아직 한 적 없다.

6.

 

아이는 동네 형들이 놀러와 딱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고 아직 숙제 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배는 부른 모양이고 나는 앉아서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 내가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 것도 없고 그저 아이들은 모두 각자 역량과 기질이 다르다고 믿을 뿐이다. 집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밖에서 배우는 게 많고, 집에서 굳이 꾸짖지 않아도 밖에서 욕 먹는 일도 많고, 싸돌아다니고 아이들과 패를 지어 불량하게 껄렁거리며 돌아다니더라도 길바닥에서 쓴 맛 보는 일이 더 많다는 것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 성적이 좋다고 꼭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니며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도 아니며,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그게 철밥통인 것도 아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고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거다.

공부는 내내 뒷전이다 이제와서 원서쓰기에 혈안이 된 큰 아이에게도 이번에 못 가도 그만, 대학 안나와도 그만, 니가 필요하면 서른에 가도 되고 마흔에 가도 되는 게 대학, 어딜 가나 너만 잘하면 그만, 그렇지만 네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기질이 있다는 건 인정. 이 정도로 얘기하며 타협중이다.

그저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이는 닦아야 남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집에 와서는 무조건 손을 씻어야 감기에 덜 걸린다는 확실한 사실 두 가지다.

부담되는 교육비를 투자하는 대신 내 앞가림이나 잘 해 부양의 부담을 주지 않는 부모로 늙는 게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내가 내 앞가림 잘 하고 지내면 아이들도 그럭저럭 보고 배울 거라고도 믿는다. 이건 그저 믿음이다. 제도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대안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그럭저럭 무리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부담되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게 목표일 뿐이다.

 

7.

긴 이야기를 적은 것은 매일 매일 부모교육, 부모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기사와 글이 SNS에 차고 넘쳐서이다. 나 역시 외면하기 어렵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의 구성과, 나눔과 공유, 누군가의 몰빵 또는 독박쓰기, 혹은 대리자와 대표자의 역할, 상부상조와 품앗이,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 굳이 첨언하자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지 2시간을 넘기기 전에 꼭 집에 도착하려고 한다. 혹은 대리인이라도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한다. 이유는 숙제 때문이 아니고, 배가 고프다며 울면서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오후 2시쯤이 되면 어디에 있던 열심히 달려 집에 도착한다. 아직은 이 아이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는 배가 고플 때이기 때문이다. 

 

 2013. 11. 13. 

 

거래의 시작과 끝

#1.

며칠 전 강의를 듣다가 과천이 지방자치제 자급율 1위의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다. 경마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권수입에 대한 것이 지방세로 잡혀, 말하자면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장소인 경마장의 부지를 내주고 그만큼의 세수를 걷어가는 거래가 생겨났으며 그로 인해 풍족한 재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예산낭비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으나 대부분의 예산은 언제나 부족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무원 사회가 얼마나 부족한 예산때문에 쩔쩔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경주에 방폐장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일게다. 시설이 들어서지 않으면 세수가 줄어들고 세금이 걷히지 않는 지역은 기반시설 확충보수설립이 모두 어렵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날 것이고 사람이 없는 도시는 더 황폐화되는 악순환이 예상되는 바, 지자체들은 반대를 무릎쓰고 뭔가를 지어 수입을 늘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일까.
성장을 그만두고 함께 사는 신나는 마을을 만들려면 나의 편안함을 기꺼이 내놓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진 것을 움켜쥐고 저것이 뵈기 싫으니 반대하거나, 가진 것을 움켜쥐고 저것이 돈이 되니 강행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중도들은 입을 다문다. 편을 들지 않으면 비난 받는 것이 나라의 질서인 듯 하다. 화해와 조정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성장에 대한 비난도, 성장반대에 대한 비난도 아직 모두 성급한, 미성숙한 사회일 뿐이다.

#2.

EBS 인문학특강 최진석 교수의 첫 강의는 공감되는 게 많았다. 특히, 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할 때에는 법과 정치가 각광받는 학문이며 그 다음이 우리가 한 때 인기있었던 상경계열이나 사회언론쪽이 자리를 잡은 뒤,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나라로 진입하느냐의 문제는 철학과 인류학 등 인문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꽃 핀다는 것이었다.
기업체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생존과 연관이 있으며, 월급받는 사람과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의 통찰력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기업체를 운영하는데에 단 한 사람의 결정권자가 있다면 그 한 사람의 결정에 적게는 백여명 많게는 수만명의 명운이 갈라진다.
기업총수의 가족과 직원뿐 아니라 대리점과 하청업체 거래처등 에지간한 중소기업 하나가 자빠져도 수백명이 타격을 받는다. 목숨을 걸고 걷는 사람들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생명을 걸고 일한다며 위험수당을 주지 않는다.

#3.

감기에 걸리지 않는 지 1년이 되어간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감기몸살이 오지 않는다. 식탁위에 줄지어 서 있던 항생제도 사라졌고 염증도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간다.
대신 전 날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하루종일 정신없이 자는 날이 더러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런 날은 다 저녁때 일어나 입에서 당기고 기운이 날 것 같은 음식을 사오거나 만들어 푸짐하게 먹고 다시 일찍 잔다. 자기 전엔 매일 챙겨먹지 않는 비타민과 프로폴리스와 오메가3 따위의 각종 의학적 논란이 분분한 영양제를 잔뜩 쑤셔넣는다. 방금도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나름대로 버티는 방법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는 일이 몇 가지 생겼기 때문이며, 하루를 미뤄서는 이틀을 더 투자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수백명의 생계를 걱정하는 나와 같이 사는 남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기 때문에 잠을 깨었다.
모기는 언제나 나를 물지 않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가니 집을 주로 관리하는 나는 집에 모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모기에 물리더라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참으로 둔한 통점 때문이기도 하다.

#4.

숭고한 일은 그닥 많지 않다. 대단해 보이는 일들은 대부분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결핍이 원동력이 되어 독한 심성을 만들고, 지독한 외로움이 승부사가 되게 하기도 한다.
어린 아들이 학교에서 주는 상을 단 한 번도 못 받은 것에 불만을 토로한 것을 생각해봤다. 나는 상이 귀하던 그 시절에도 학교의 모든 상을 휩쓸던 아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내가 받은 상장은 60개가 넘었다.
그건 내가 월등하거나 성실하거나 뛰어난 아이라서보다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고 상을 받아가야 엄마의 시선 한 번, 엄마의 칭찬 한 번, 엄마의 웃음 한 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아주 간절한 일이었다. 나는 상을 가져가고 성적표를 가져가며 엄마와 거래를 했다. 내가 이만큼 해왔으니 이제 나를 좀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주는 건 어떤가 하고 말이다. 거래는 내가 먼저 제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거래가 그렇듯이 거래는 깨지기 마련이다.
생일떡을 해주고 싶었다며 절편 한 박스를 해오고 그 투자비용의 몇배 되는 등산용품을 사가는 엄마와의 거래는 완벽하게 종료된 듯 보이나, 언제 다시 재개되지 않으리라는 법 없다.

#5.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시간과 돈의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다. 인간의 모든 분쟁은 돈과 치정(영역과 자존심)에서 비롯된다 생각한 적 있다.
지금은 그 생각들을 관철할 의지가 없다. 세상은 알 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고 나는 매일 매일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 절감하며 지낸다.
오늘도 나는 맛있는 식탁과 시간을 맞바꿨으며 아이의 웃음과 남편의 만족을 기대했고 업무를 잠시 잊는 고결한 노동이라 여겼다. 늘 대부분의 것을 맞바꾸며 산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내 것을 내어놓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지껄인 대신 밤에 아이의 손톱을 깍아주는 일이 너무 너무 힘들어진 것처럼.

2013. 10. 3.

어느 하루의 일기

#1.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야. 너 그런 거 알아?
여기가 그냥 낭떠러지라고. 발 한 번 헛디디면 죽는 거란 말야.
#2.
언제 힘들지 않은 적 있었나 잘 생각해보아.
그런 일은 없었지. 그저 다른 것으로 덮으면서 지내왔을 뿐.
힘겨운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드문드문 몰려오기도 했을 뿐.
그 때 그 때 그 일들을 덮을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서 늘 덮으며 걸어왔지.
때로는 폭발을 했고 때로는 영원히 잊혀지는 듯 보였어.
뱃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들은 안에서 썩어문드러지기도 하고 어떤 건 잘 익어서 튀어나오기도 했어.
꼭 나쁜 일들만 벌어지진 않았지만, 잘 감추고 있던 걸 거꾸로 토해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야.
#3.
언제나 “힘”을 이용했군요.
그렇다.
물리적인 힘, 근력뿐 아니라, 언어가 통하는 세상에서는 언어를, 시선이 필요한 세상에서는 시선을, 권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권력을, 언제나 장악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기 원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땅따먹기였으며, 물건이 제자리에 없으면 화가 났다. 내 통제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물건을 배열하고 언제든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서 다시 꺼낼 수 있게 두는 것은, 나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일련의 통제과정이라고 봤을 때, 내 뜻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뜻대로 되는 게 있었나요?
절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세상은 어긋나고 이지러졌다. 계획을 세우라 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인생의 계획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비아냥거렸다. 세상일은 절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현명하다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은 박탈감을 가져왔고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통제를 해야 했다.
그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끝없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하고, “남다른” 자가 되어야 했어요. 눈에 띄어야 했고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고 확신했죠.
세상이 우스운 것은 어쩌면, 그 어떤 도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습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역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그 무엇이 되더라도 바닥의 돌맹이라도 주워 던져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가을이 되었다.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는 일은 덜하겠지.
문득 문득 영혼이 내 어깨를 친다. 이봐. 알고 있지? 라고.
2013. 10. 2.

알 수 없는 사람

명확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건 본인의 신념이 갈 곳을 잃어서가 아닐까. 
자기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그 욕구가 부끄럽기 때문일까. 그래서 자꾸 덧칠하고 가면을 쓰려고 하는 걸까.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들여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알 수 없는 사람, 모호한 사람에게 우리는 의심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곤 한다. 
신뢰를 얻지 못한 이 모호한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를 주목하라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바짝 세우는데, 거기에 달린 꼬리표에는 “알 수 없으니 조심할 것” 이라 적혀 있곤 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3. 8. 20. 

마을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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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많은 도시민들은 도시의 시스템에 기생하여 살아가지 않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처럼 밀려오는 시스템에 거부감만 느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엉겨붙어 기생하고 있지 않나.
기생하여 사는 것은 그만큼의 불편함과 수치심을 동반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불평하지 않았던가. 도시가 나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고.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주인이라 느낀 적 없다.
나는 언제나 도시의 세입자였으며, 내 땅 한 칸 주장한 적 없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정책은 파도처럼 늘 도시를 에워싸고 돌았으며 나는 그 안에서 늘 밀려났다.
내 집이 무너진 적 없다. 내 집을 가져본 적 없으므로.
언제나 나는 어디에서부턴가 떠나온 사람이며, 떠나갈 사람이었다.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해야 할 이유를 느낀 적 없으며, 고향은 언제나 이동 가능했다.
내 의지가 아닌 이유로 이동해야 한다면 나는 이동하는 호모노마드가 되려 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 어느 곳도 깊이 사랑한 적 없다.
끊임없이 나의 오늘을 부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지우기 바빴다. 나에게 의미있는 장소는 타인에게도 같았다. 구태여 내 것만 아름다운 적 없다.
이제 기억속에 남은 그 거리들이, 나에게 과연 콩알만큼의 안정이라도 가져다주었는가 알 수 없다.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살아가던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새로운 적응과 질서를 요구한다. 뜯어내고 고쳐내고 바꿔가는 것은 인간에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된다 한다.
늘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온 자에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은 익숙하다. 집의 유통기한은 2년이며, 언제든지 보따리를 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외롭다고 말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처럼, 낯설어서 어렵다고 말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내가 나 자신에게.
삶의 일부분을 지우는 것, 끊임없이 나는 뒤돌아서서 내 그림자를 흙으로 덮었다. 삶의 공간을 잊고 끊임없이 떠도는 것, 천막 치고 사는 유목민의 고향은 땅이요 자연이지만, 1.5톤 트럭에 의지하는 도시민의 고향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질 눈부시게 발전하는 조국의 빌딩숲이다. 모험과 도전은 돌아갈 곳이 있을 때만 즐겁다. 부유하는 불안정함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지운다.
새롭게 쓰기를 반복한다는 건 끊임없이 지워야 한다는 거다.
어느 날 문득 내 목덜미가 스산해 지는 것은 “나 자신”이 낯설어서이다. 나를 모두 잊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2013. 7. 7.

7시 42분

# 1.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글쎄요. 라고 운을 떼기 시작할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았지요. 라고 시작할 것이다.
누구 때문이라고, 어떤 환경때문이었다고, 이제는 그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모든 일들은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나에게 다가왔고 그 과정속에서 내가 한 생각, 내가 내뱉은 말들과 엉켜 사건이 되었다.
그런 하루 하루가 뒤섞여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의 때와 땀이 섞여 내가 되었다. 지금 여기, 세상 그 어떤 고통도 신음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평화로운 순간의 나.

#2.

미뤄둔 것들이 있다.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와 내가 반찬을 꺼내 뚜껑을 열어주어야만 하는 늙어가는 남자가 있다.
내 한 마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돌아와 산책을 나가길 간절히 기다릴 늙어가는 개도 한마리 있다.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을 미루고 싶다.
왜냐하고 물으면, 글쎄요. 라고 시작할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요.
나는 때로 도망치고 싶으니까요.
나도 때로는 모든 책임을 던지고 싶으니까요.
나도 때로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3.

유모차에서 내려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그 아이를 터질 것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혈육이 저녁을 즐기고 있다.
인조잔디와 기계적으로 서양음악에 맞춰 압력을 달리하는 사람이 만든 분수 앞에서도 사람들은 쉴 줄 안다.
내 어린 아이도 저 앞에서 춤추며 흠뻑 젖기를 좋아했었다. 이 곳은 그래서 늘 비현실적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분쟁, 오늘도 더위에 땀흘리며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피부가 하얀 젊은 엄마들이 침을 질질 흘리는 아가들을 따라다닌다. 그 아이들은 때로 내 곁으로 와 낯선 존재를 빤히 바라보다 떠난다.
태초의 인간을 생각한다. 그 어떤 수치심도 책임감도 모르는 작은 인간들.

#4.
코오롱등산장갑을 낀 나이 먹은 여자 옆에 젊은 애기 엄마와 뽀얀 남자아이가 있다. 늘씬하게 키가 큰 애기엄마와 그니의 친정엄마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지만 나 역시 이 인조잔디에 앉아있다. 이건 사실이며 바로 지금이다.
다른 사람은 어찌 그 세월들을 견뎠는가 생각하기 전에, 나는 왜 여기 앉아 있는가 누가 묻는다면, 쉼없이 실패하고 끊임없이 좌절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도 될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쩔은 내가 나는 허름하고 더러운 바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이 사치스럽지 않으나 과도하게 평화로워 낯선 숲속으로 퍼진다.
이렇게 나는 오늘 여기서, 금요일의 저녁 7시 42분을 흘리는 중이다.

2013. 7. 5.

어떤가요 여기는

그래도 일기를 한 줄이라도 쓰고 나면 낫다.
상황을 적고 그럼 이제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적는다.
매일 매일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오늘은 어제 움켜쥔 것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적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람에게 공들이며, 보상이 올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던 어리석은 마음을 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것은 칭찬도 보상도 아닌 추억뿐이다.
때로 그 추억은, 매우 왜곡되기도 하고 재해석되기도 한다. 다시 끼어들어갈 틈도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과거를 다시 만나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며 자꾸 미래만 만나는 것은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안타까운 노력이다.

과거의 모든 행위를 아까워하지 않고 이제는 씁쓸한 맛이 나는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이제 그 과거를 위해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극복이라 믿고 싶다.

문득, 늙어가는 여배우 정윤희의 목소리로 들었던 그 시의 첫문장이 생각난다. 어떤가요 그곳은. 이라던 문장.
나는 묻고 싶다. 어떤가요. 내가 살아온 것은.
정말 그렇게 힘에 부쳤던 건가요. 아니면, 내가 그렇게까지 깜냥이 안되는 인간이었던 것을 여태 내내 속이며 살아왔던 건가요. 라고.

2013. 7. 1.

일을 말하다

#1.

동네 수퍼에 못 보던 아가씨가 캐셔를 보고 있다.

고운 얼굴에 피부도 깨끗한 것이 20대 초반같다.
아이라이너도 섬세하게 번짐없이 잘 그렸다.
참 예쁜 얼굴인데 표정은 좋지 않다.
일부 배달부탁드리구요 비닐봉투 하나 주세요. 라는 나의 말에 “네?” 하고 되묻는다.
방금 전 잠시만요 하고 내가 물건을 놓고 저쪽에 가서 크리넥스를 가져온 것이 못마땅했나 생각하게 되었다.
배달용 포장봉투에 물건을 넣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각이나 크기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비닐이 찢어질 지경으로 구겨넣고 있다.
이 아가씨 일 하기 싫군. 속으로 생각하며 눈치를 살핀다.
한 마디라도 상냥하게 하려는 습관이 불거져 나오려는 찰나다.
배달물품을 들고 가려는 아저씨에게 지난 번에 배달오신 분께서 주소를 헛갈리셨다던데 말을 하니
이 아가씨는 듣고 싶지 않은 건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건지 마음의 거리가 멀다.
배달포장을 번쩍 드는 아저씨는 초보라 그렇다며 괜찮을거라고 믿음직스럽게 대답해주신다.
일하기 싫구나. 하는 순간.
그 캐셔 자리 위의 공기를 살폈다. 혹시 더운가. 문이 열려 있어서 답답한가.
이 아가씨가 이렇게 일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뭔가.
고운 얼굴에 이 자리가 어울리지 않다고 본인도 생각해서인가. 궁금했다.
수퍼에서 나오는 길에 엊그제 다시 봤던 “베를린”에서의 한석규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는 당신이 여기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정우가 한석규를 보며 말한다.
그러자 별 시덥잖은 얘기를 한다는 듯이 한석규가 인상을 지푸리며 말한다.
“일이잖아 일. 일이니까 하는 거지 일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
#2.
당신은 전공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해?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냐.
남편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들고 나온 건 김훈이었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생활을 모두 다 마친 후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소설 쓰는 일과 자전거 타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떳떳하게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은 너무 가볍게 세상을 날아다녔다.
#3.
이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가 맞다.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자본을 천시하는 태도를 모두 다 가슴에 품고 있다.
자기가 번 돈을 자유롭게 쓰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 윤리를 지켜주길 소망한다.
돈으로 착취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비난한다.
사회정의를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이나 이 나라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무언가 부정한 일을 분명히 저질렀을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정당하게 돈을 버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전후 급속도로 성장한 이 나라의 경제구조는 한 방에 일확천금이 가능한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 기회를 잡은 자들이 쉽게 부자가 되었으며 정치의 부침속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일도 자주 있어왔다.
그러나 그 안에서 꾸준하게 법을 지켜가며 세금을 모두 내가며 돈을 벌어 떼부자는 아니더라도 부를 누리는 사람을 몇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누리는 경제적 부유함엔 분명히 운도 작용했다. 그 운을 잡기 위한 대단히 빠른 감각은 필수였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절약하거나 아끼지 않는다.
검소한 것은 쪼잔한 것이 되었다.
이 나라에서 사치는 필수고, 정기적인 해외여행과 비싼 가방같은 사치품들은 누구나 하나쯤 가져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외국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 놀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모두 다 부자뿐이라는 것이다.
#4.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는 TV이다.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전국민에게 중계된다. 그들도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일 뿐인데 스타라는 이유로 더 화려하게 살기를 종용받는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기를 동일시 한다. 현실의 남루함을 지우기엔 가장 쉬운 마약이다.
어느 날부터 전체주의를 몰아내는 풍조가 시작되면서 이상하게 방향은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말이 “나는 누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되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던 전쟁 직후의 청교도 정신은 모두 스파게티 면발에 말아 먹었는 모양이다.
#5.
청교도 정신이 필요한 건 아니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디서부터인가 꼬여있다는 것이다.
밥벌이를 지겹도록 해보지도 않은 자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논하고
돈에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자가 돈을 천시하고
노동에 소금꽃을 피워보지 않은 자가 노동을 기피한다.
모두 다 간접경험만을 가지고 세상을 다 아는 체 하며 세상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가. 왜 우리는 계속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는 것인가.
#6.
1963년도에 김수용은 혈맥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1947년 해방직후에 극작가 김영수가 써서 1948년 공연된 작품이다.
해방 직후 성북동 방공호에 모여살던 이북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극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눈에 띄였던 것은 두 형제다.
형은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다. 그 형의 일을 돕다가 부인은 병에 걸려 (납중독으로 추정) 운신하지 못하고 늘 머리를 싸매고 있는 노모와 포탄해체 과정중에 폭발로 다리를 다친 딸과 동생을 부양하고 있다. 동생은 그 와중에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룸펜이다.
그리고 동생은 조국의 진정한 해방을 부르짖으며 형은 돈의 노예라고 비난한다.
얼마 전 리메이크하여 예술의 전당 자유연극시리즈에서 공연된 이 작품에서 두 형제는 무대위를 뒹굴며 육탄전을 벌인다.
그럼 니 입에 들어가는 밥은 어디서 나옴매
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공부하고 밥 처먹은 인간이 누구냐 묻는다.
#7.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치던 마르크스는 노동을 숭고하게 여기라 하였지
노동을 천시하여 모두 다 곡괭이를 집어 던지고 피둥피둥 놀면서 자본을 비난하라 하지 않았다.
매우 기괴하게 뒤틀린 2013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혈맥의 동생, 1963년 영화에서 최무룡이 분했던 원칠이를 본다.
어떤 이유로든 지쳐버린 수많은 원칠이들은, 그저 쉬고 싶은 것인지 놀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내 안에 숨은 원칠이는 매일 아침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하는 원팔이가 벌어오는 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2013. 6. 30.

내게 거짓말을 했던 시간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심하다는 건 어떤 느낌이죠?
언제나 단순한 표현에 대해서 끝없이 캐묻는게 정신분석이다.
음. 그건 마치 뭐랄까..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같이 이야기하고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이게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구요. 약간 뭐랄까.. 유아틱? 하다는 느낌이죠. 그러니까 심심해~ 라고 하는 건 마치 저희 아들이 집에서 분명히 놀고 있는데도 뭔가 더 재미난 거를 찾고 싶다고 말할 때,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같은 건데요.
아무튼 저는 심심하다는 말을 써보거나 누구에게 말해보거나 문장이 되어서 머릿속에 떠돌아 다녔던 기억도 없거든요. 무척 생소한 느낌인데 그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알긴 아는데 뭔가 제가 꺼렸던 표현이랄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안 써 본 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심심하다 외롭다 무섭다 세 가지 정도. 그 중에서 외롭다, 라는 말은 글에는 많이 썼을테고 무섭다 라는 건 누가 어떤 게 제일 무섭냐고 물었을 때 글쎄, 난 별로 무서운 건 없는데.. 라고 서슴없이 대답한 편이었죠. 심심하다는 건, 심심해 본 적이 없다는 건데 늘 뭔가.. 하고 있었고 할 게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어제 느낀 그 심심하다 라는 감정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것과,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듯한 제 자신에 대한 허가? 같은 건데.. 음.. 그러니까 이건..
투정이죠. 네. 투정같은 거요. 애들 투정.
– 그럼 기억이 있을 때부터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어요. 애교를 부려서 뭔가를 더 얻어낸다거나 투정을 부린다거나 하면.. 맞으니까.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맞는거죠.
징징대면 맞고 화내면 맞고 울면 맞고 투정부리면 맞고 울음 참으려고 애쓰고 있으면 그게 더 꼴뵈기 싫다고 맞고 뭔가 되게 경직된 것에 익숙했달까.
모든 관계의 의사소통은 사무적이었다. 용돈을 더 받기 위해서 혹은, 필요한 학용품을 찾기 위해서 다 쓴 학용품의 증거물을 제출하고 16절지 종이에 청구서 라고 적어야 했다. 연필 12자루를 다 사용하였으므로 새로 한 다스가 필요합니다. 이에 용돈 1200원을 청구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1200원을 줬다.
무척 권위적이고 사무적이면서, 약간 군대식 같기도 하네요. 라는 말에 기억을 더 더듬어본다.
경찰대를 가라는 얘기도 하셨고, 여군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셨죠. 단순히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보다는 어떤 힘에 상징에 대한, 로망같은 게 있지 않으셨을까 해요. 군대라는 강한 조직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랄까. 그런 자리에 제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심심해, 무서워, 겁난다, 라는 말을 써보지 않았던 3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무섭다라는 말을 작년부터 써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로는 “나 오늘 삐짐” 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나이값 못하고 삐진다 라든가, 무섭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불안과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였다는 것을 늘 잊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 때는 감정을 표출하기만 하면 폭력이 들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생존이 더 급했고, 그게 더 절박해서 모든 것을 닫기 시작했고, 닫다 보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이제 완전히 막혀버린,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그렇지만 요즘 들어서 그런 정서를 느낀다는 건, 회복이 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로 보이네요.
우리 자매의 어린시절을 회고할 때 엄마는 늘 너희들은 말을 참 잘 듣는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늘 덧붙였다. 니가 질질 짜는 거 빼고. 물론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동생은 말이 늦었다. 7살이 되어서야 겨우 한 문장을 말할 줄 알았다.
나는 내 동생이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그림을 지나치게 잘 그려 이상한 천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동생은 감정을 몸과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걸 그림으로 풀어낸 것 뿐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감정이 복잡하여 언어보다 그림이나 노래로 더 먼저 표현하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감정의 표출이었다.
돌아오며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라고.
성격이 좋다. 품이 넓다. 대인배다. 그릇이 넓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고 그런 칭찬은 그런 행동을 강화시켰다.
그런데도 문제는 다 풀리지 않았다.
단순히 어린 시절에 감정표출을 하지 못해 성격 좋은 아이가 되었던 것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가 내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떠올리는 나를 친구가 발견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 집에 들어오기 귀찮아 하는거 같은데 피곤하겠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어쭈 어디 외박을 하려고 감히.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그가 말했다.
“그건 남의 감정을 먼저 읽는거잖아. 자기 감정은 뒤로 제껴놓고.”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사람은 남의 감정을 빨리 읽어내는 능력이 발달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나는, 내 감정은 일단 뒤로 제끼고 남의 감정을 먼저 읽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걸 그 친구의 발견으로 깨달았다. 그게 며칠 전이다.
그 한 마디로 많은 문제가 갑자기 풀렸다.
힘없고 약한 어린 아이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거나 생명의 위협을 수시로 느끼며 살아오는 와중에 책임질 것이 늘 있었다.
그럴 때 내가 택한 방법은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어 벌어지는 감정의 교류를 먼저 수습하는 일이었다.
나의 감정은 뒤로 제쳐 놓아야 화가 나서 나를 위협하는 상대에게서 나를 보호하고, 그리고, 나의 동생을 보호할 수 있었다.
언제나 돌아서서 다시 생각하면 내가 화를 냈어야 하는 정당한 부분에서 화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늘 깨닫곤 했다.
그래서 억울했다. 왜 그 때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이런 것들은 내가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서 조금씩 해결되었지만, 지금도 남의 감정을 먼저 읽는 습관은 쉽게 내 몸을 떠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살과 감기를 앓았다. 정신분석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의 감기몸살도 앓지 않았다.
이 날 나는 그 간 내가 해마다 앓았던 몸살감기들이 쉬고 싶은데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위장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쉬면 안된다는 것. 쉴 수 없었다. 내 일기장의 첫 머리는 늘 “삶은 늘 치열해야 한다” 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으므로.
하루 종일 내 마음의 바닥에서 요동만 치다가 겉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감정들은 그 날의 일기가 되었고 그 날의 글이 되었다.
때로는 사진이 되었고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되면 그게 꿈이 되었다.
언제나 꿈을 꾸었고 그 꿈속에는 하루종일 미뤄두었던 내 감정들이 총천연색으로 스펙타클하게 펼쳐지곤 했다.
잠은 언제나 모자랐고 꿈은 언제나 생생했다.
30년이상 묵은 감정들이 터지기 시작했을 때는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낮에도 끝없이 백일몽을 꾸고 하루 종일 허공을 헤맸다.
꼭 이렇게 불규칙한 잠의 원인들이, 단순히 당시의 환경이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30년만에 긴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도 나처럼 꿈을 잘 꾸는 사람이며, 그 역시 총천연색으로 된 꿈을 주로 꾸며, 꿈을 메모하기 위해 곁에 펜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결론은 한 가지 원인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서나 적용된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 단 한 가지의 환경적 원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내가, 더 이상 표출되지 못하는 감정들이 내 안에서 좀비처럼 나를 거꾸로 잡아먹는 일을 그만두려면 이제부터라도 꺼내놓아야 하기에, 아마 그래서 작년엔 트위터에서 그렇게 정치인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던  것이다. 대상을 압축시켜 원망을 쏟아내면 어느 정도 급한 소갈은 가능하므로.
분노보다도, 가볍게 웃을 줄 아는 감정부터 연습하기가 쉽다. 그게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좋을 것이다.
웃기면 웃고, 내가 크게 웃는다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이제는 집에서 크게 웃고 가볍게 깔깔대고 아이를 간지럽히고 하릴없이 누워있는 연습도, 하고 있다.
이야기너머 자기역사쓰기 특강을 하셨던 “김민영”선생님이라는 분이 자기 역사의 글 맨 앞에 이런 소제목을 달았던 게 기억난다.
마흔 – 이제는 솔직해야 할 시간.
내년에 마흔이다. 나 역시,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 지기 위해, 서른 아홉을 걷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2013. 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