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원입니다

정의당원입니다.

 

시민이지만 여기저기서 의견을 낼만한 위치에 있다보니 선거를 앞두고 당적을 밝힙니다.

 

어려서부터는 민주당을 오래 지지해왔습니다. 민주당도 미통당 만큼이나 이름을 바꾼 적이 많지만 모두 통칭해 민주당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에 대해서 “이의있습니다”를 외쳤을 때부터 민주당을 지지해왔습니다. 아주 어릴 때지만, 용기있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무서운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라면,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랐습니다.

2012년 총선은 당시 나꼼수의 열풍으로 민주당이 다 이길 줄 알았지만 애석하게 새누리당보다 의석수를 적게 얻었습니다. 다 깔아놓은 판이었는데 민주당도 잘못 판단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을 욕하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내가 민주당에 해준 게 없는데 욕하는 것도 우스워보이더군요. 당원이 아닌 입장에서 정당을 욕할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 정당은 내부결정을 통해 외부에 의견을 개진합니다. 그 당을 바꾸고 싶다면 그 당의 당원이 되어야 하고 내부에서 역할을 해야 정당할 것입니다. 민주당원으로 가입하지 않았지만 항상 민주당을 응원하고 지지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고 2017년 조기대선으로 민주당이 결국 정권을 다시 잡았습니다. 기쁜 일이었죠. 또한, 2017년 이후 우리의 정치지형이 바뀌길 바랐습니다. 자유당계열의 세력들이 정치판에서 완전히 소거되고 민주당이 제자리를 잡아 중도보수의 역할을 해주면서 극우로 쏠려 있던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중심을 잡아가길 바랐습니다. 이제 바라던 대로 조금씩 이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노회찬 의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분과 비통함을 참을 수 없었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함께 만드는데 일조하기 위해 정의당에 가입했습니다.

개인적 명분은 언제나 제1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1야당은 명확히 얘기하자면 자유당에 뿌리를 둔 미통당이겠지만, 저는 미통당을 정당조직으로 보지 않습니다. 썩어빠진 봉건영주카르텔이거나 비즈니스를 위한 사이비집단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웅을 만들고 그에 줄서서 신탁을 받기 원하며 개인의 영달과 이득을 위해 어떤 파렴치한 짓도 서슴치 않으며, 공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제1야당은 정의당입니다. 제1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치지형이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장 선 야당을 지지하고 그에 힘을 실어주되, 그 다음 번 판이 펼쳐지면 또 다음 제1야당을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여러 실수를 했듯, 정의당도 여러 실수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여론이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먹는 욕은 내가 먹는 욕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가 소속된 집단이 욕 먹는게 쪽팔리니 탈당하는 것이 옳겠는가. 내부자로서 어떻게든 잘해보도록 의견도 내고 내부에서 싸우기도 해야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내가 힘 보태는 게 없더라도, 같이 욕받이라도 하려고 들어간 겁니다.

 

노동당이나 민중당, 녹색당의 정책과 철학이 저와 맡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대단히 진보적이지도 않고요. 정의당은 내부에서 보면 경제활동으로 봤을 때 소상공인과 비정규직에게 맞는 정당입니다. 저의 사회적 정체성과도 맞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심재철 미통당 원내대표가 5선째 지역구 의원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왜 우리 지역구 사람들이 계속 심재철을 찍어주느냐, 타 지역에서는 동안을 지역주민들이 똥멍청이라 그렇다고 비난도 합니다. 중앙에서 인정받는 정치인이 지역에서 낙선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구에서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에서는 잘 하는데 중앙에서 영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그동안 민주당이 제대로 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한 면도 있지만, 심재철이 그만큼 지역구 관리를 티나게 잘 해왔습니다. 과장도 있고 특유의 수단도 있지만, 어쨌든 지역에서 큰 불만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에 안양에서 민주당의 다선 의원 두 명이 경선에서 떨어졌습니다. 안양시민들의 결정입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저는 우리 지역구 사람들이 정말 똥멍청이라 계속 심재철을 찍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대중은 정치인을 잘 부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써먹을 만 하니 찍어준거고 써먹을 게 없으면 버리는 겁니다. 저는 언제나 시민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기가 막힌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미통당 정치인들은 시민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말없이 투표장에서 그들을 뽑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 그 지역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대구 경북이 촛불이후에도 계속 자유당계열이 승리하는 것도, 그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일반 시민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 비난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의 투쟁과 역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분명히 여당입니다. 의원수도 가장 많고, 대통령도 있습니다. 미통당을 제거하기 위해 여야연합을 한다는 게 과연 민주적인가 생각합니다. 제일 큰 권력을 가졌는데 ‘우리 힘으로 역부족’이라는 말은 부끄럽습니다. 국민 모두가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지금도 지지하고 있습니다. 미통당을 반대할 수 있지만 미통당을 지지하는 시민들까지 모두 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진보진영에서 늘 주장하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20년 현재, 정의당원입니다. 회비를 내는 권리당원이고요. 욕 먹는다고 도망갈 생각 없고요. 당원으로 남아 같이 욕을 먹을 겁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게 성향에 맞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더 잘 해주길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시민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에 있습니다. 촛불로 이룬 정권도 잘 감시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한 가지 더,

저는 전 국민이 당원이고 조합원이고 단체 회원이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숨죽여 말도 못 꺼내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기 위해, 모두가 정당인이고 조합원이고 회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페친이 너무 많아요. 먼저 끊어주시면 감사.

전교조가 생각났다.

89년도였다.

그 때 매우 이상한 계기로 학교 (당시 중딩)에서 소요가 일어났는데, 계획하던 백일장및 사생대회 날짜를 자꾸 학교측에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연기하는 건 맞는데 다른 때 같으면 그냥 갈 정도의 비였는데 두 세번정도 연기가 되니 불만이 생긴 것.

근데 이런 일로 소요가 일어나기엔 너무 사소하지 않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3학년들이 갑자기 학교를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3학년들을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교사들이 뛰쳐나와 아이들을 말렸지만 1500명의 학생을 교사 몇 명이 제지하기엔 어려웠다.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회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로 인해 학교에서 누군가 파면당하고 해직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3학년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알았던 모양이고 교문출근투쟁들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어명의 선생님이 해직되었고 나는 그 선생님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백일장 문제로 아이들이 튀쳐나갈 때 어떤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되었던 장모 선생님이 나중에 TV에 전교조 임원으로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별 생각없이, 학교를 다녔고 학생회 임원을 지속했다.

당시 89년도 나는 그 학교의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부회장 당선시 교실 환경미화 학습신문을 만들 때 “왜 학생회 임원은 교사회식을 준비해야 하나” 라는 사설을 실어 6개월동안 교사들과 심한 충돌을 빚었다. 결국 담임교사의 지시로 그 학급신문은 교실에서 떼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격하게 반항을 하기도 했다. 일부 교사는 대놓고 수업시간 내내 나를 째려보는 짓거리까지 했는데, 고의적인 왕따를 유발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역력했고 이유없는 체벌과 차별대우도 감내해야 했다.

당시 학교내에서 벌어지던 스승의 날 선물 문제를 없애고자 이럴바에 각 학생들의 푼돈을 모아 공동으로 선물을 드리고 개별 선물을 없애버리자는 안을 내어 이를 학생회에서 통과시켰고, 이 부분을 추진하다가 촌지와 다름없다며 일부 선생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무산되었다.
내가 그 때 추진했던 것은 전교생 500원씩 내기였다.

3학년이 되어 학생회장이 되자마자, 작년 스승의 날 선물문제로 나에게 너는 선생을 뭘로 보냐고 언성을 높였던 가정선생이 당선인사를 하러 교무실을 방문하자 마자
“어머 이하나 회식은 언제 해?” 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 교사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사각형의 턱으로 남았다.
나는 교사회식을 추진하지 않았고, 모친 역시 이에 동의해 자동으로 맡게 되는 육성회장(당시 육성회장은 학생회장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맡게 되어 있었음)이 되어 육성회 자리에서 육성회장이라는 이유로 60만원을 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고 1/n 해서 각자 5만원씩 더 내면 되겠다. 라고 발언했다.

3학년 학생회장을 지내는 동안 남자아이들이 여학생이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지나가는 나에게 양동이에 물을 담아 뿌리기도 했고 좀 짖궃고 유치한 장난들을 많이 쳤다. 그 해에 각 학교마다 교복을 입는 게 유행이 되기 시작해 개방적이던 당시 백.. 모모 교장선생님과 학생회 임원들간의 상의를 거쳐 교복을 디자인을 선택했고 (근데 지금보니 안 예쁘더라. 후배들 미안), 임원 간선제였던 학생회장 선출안을 수정해 전교생 직선제로 돌리는 데 공을 들였다.

중딩인데..
참 거국적인 일 했다. ㅎㅎㅎ

아무튼 그 이후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좀 조용히 지내고 서클활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학교에도 파란많은 전교조 역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89-90년도에 수많은 교사들이 해직되면서 나의 여고에도 해직과 파면의 바람이 불었는데 이에 대해 학교의 학생들이 항거를 표시하는 의미의 행동을 했다는 얘기 몇가지였다.
교복자율화로 사복을 입던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등교했고,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복도에 내놓고 단식투쟁을 했단다.
당시 그 학교에선 반장/부반장을 교사 직권으로 임명하는 제도였는데 학생들이 이에 반발해 반장/부반장을 무효화시키고 각 반에서 두 명씩 임원을 투표를 통해 재신임해 30인회를 결성(당시 15반) 교장실과 이사장실에 항의방문과 투서를 전달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여,..
나의 자랑스러운 그 선배들의 모교는,
그 엄청난 대지에 여고/여상/여중이 설립된 그 땅에서.. 여고에서 매점까지 왕복 빠른걸음으로 15분이 걸리는 그 거리를.. 주파하든 말든 학교에서 14시간을 보내는 여고생들에게 절대 매점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시 돌던 루머로는, 이사장이, 여고에서 전교조가 가장 먼저 발생했으니 매점따위의 편의시설을 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음…

쓰다가 보니 고등학교의 이야기는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장황하게 썼던 지라.
네이버 블로그 싹 다 막아뒀는데.
다시 열어보겠다.

그리고 링크나 걸어야지..

엊그제, 관악을 이정희 후보의 문자소동으로
여러가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운동권에 입성한 적 없는 내가 귀동냥으로 들은 여러가지 정보들이 뒤죽박죽하다가 이제 겨우 정리가 되어가는데, 그저 생각나는 건, 그 때의 분위기다.

고등학교 때 갔던 연세대 노천극장에서의 전교조 집회.
전교조 우리의 희망 – 이라고 불렀던 노래.

그 때는, 사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있으면,
학교에서 따귀를 맞거나, 육격포탄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학생회 임원이 되도 빚내서 회식시키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반장이라고 도시락 두 세개 싸가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촌지를 내지 못해 얻어맞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조건 외우는 주입식 교육도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 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학생인권조례 당연히 필요한 거 이제서야 생겼다.
근데, 많이 변했다.

당시의 사람들도 권력을 알았고, 진영을 떠나 모두 늙어간다.
세월은 가고 고인 물을 썩고, 욕심들을 늘어가고 곪은 상처는 터진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게 2012년이 가고 있고, 나는 그냥 그 옛날의 그 공기가 좀 그리웠을 뿐이다.

http://tankhana.blog.me/120120468921

 – 오래전에 썼던 폭력학교에 대한 포스팅 6개나 됨 ㅋ

2012.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