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않는 사과

⒞Hana Lee_120424 @Gwanyangdong

봄빛은 찬란한데 당신 마음은 여전히 지옥이구나
누군가에게 갖고 있는 욕심들이 그대를 지옥에 몰아넣는구나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인정받고 싶고, 숭앙받고 싶은 당신의 노력들을
매일 매일 입으로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따듯한 눈빛으로 안아주길
수고했다고 어깨를 쓰다듬어 주길
따스한 밥상을 함께 하길
당신이 원하는 것들은 그리 큰 것들이 아닐 것이다.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리하여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고맙다고 말할 시간을 놓쳤고
수고했다고 말할 시간을 놓쳤다.

놓쳐버린 시간이 너무 가슴아파 술에 취해 울고 있는 것이지.
눈물은 수치라서
화를 내고 있는 거지.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언제나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신이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를 일으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일어나는 것은 그대 스스로 해야한다.
내가 일으켜 주는 것은 언젠가 당신이 다시 무너질 수 있음을 말한다.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깨우치지 못하면
다음 번에 쓰러졌을 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때 당신은 일어날 수 없으므로.

당신의 마음을 봐야만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버겨워도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마음을 사랑하라.

모든 것이 다 그대만의 잘못은 아닐진대
그리하여 나는 오늘 이렇게 억울함을 조금 가라앉히는 것이다.

2012. 4. 27.

_ 블로그에 이렇게 줄바꿈을 해서 쓰는 것은 가독성과 쉽게 쓰기 위한 블로그 작성의 특유한 글쓰기 입니다. 詩라고 오인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혼으로 글을 쓰는 詩人들을 모독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버리는 것 버려지는 것

전복을 먹어봐야 전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소고기를 먹는다고 내가 도축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먹는 먹거리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먹는 콩나물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내가 먹는 시금치가 어디서 왔는지, 비가 잦아서 작년 시금치 농사가 나빴다는데, 수퍼와 마트엔 어떻게 줄줄이 시금치가 나와 있는지.
규격을 맞추기 위해 비닐봉투 안에서 자라는 애호박을 보며 간혹 참담함을 느낀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추운 날 잿빛 교복을 어쩔 수 없이 입고 베개만한 쿠션을 끌어안고 강당으로 줄줄이 걸어가던, 거세된 젊음이 자꾸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세일하는 전복을 샀다가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전복은 나에게 오기 전에 푸른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살았겠지. 어린 아기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빨판으로 뭔가를 먹으며 몸을 키웠을테고 내가 잘라내 버린 빨간 입으로 바다의
파도를 마셨을것이다.
전복의 사이사이에 낀 검정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며 그간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과 죄책감을 함께 씻는다.. 라고 적어도 괜찮겠다.

무언가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고등어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 있고, 갈치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엔 그 떠오르는 사람들이 헤어진 옛 애인이거나,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슬픈 사연의 어떤 여인..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기억의 연상의 대상들은 세월이 지나고 내 삶의 변화에 발맞추어 다른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제는 갈치를 보면 생각나던, 파출부 다니며 일수써서 까르띠에 가방을 사던 너무나 무거운 삶을 살던 정아언니가 아니고, 갈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내 아들이다.
샤브샤브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은 육수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시동생이고, 고등어를 더 이상 못 먹게 된 남편이 생각나고, 계란을 보면 계란하나로 대여섯가지의 요리를 만드는 열여덟살 딸아이다.

그리고 이제 전복은 나에게 시어머니를 부른다. 시어머니의 부엌 씽크대엔 전복껍데기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엔 날긋한 초록색수세미가 있다.
“너무 고와서 버리기가 아깝잖니” 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전복죽을 끓인다.
그리고 나도 전복껍데기에 붙은, 내가 미처 떼어내지 못한 살점들을 뜯어낸다.

묻는다.
무엇이 되겠느냐.
너희들의 살점은 병든 육신에 큰 힘이 되길 기원하니, 너희들의 고운 껍데기는 누군가에게 칠보가 되어, 장롱이 되기도 하고, 미술품이 되기도 하고, 화장대가 되기도 하고, 귀중한 것들이 된다고.

나는 칠보를 만들 줄 모르니, 수세미라도 올려놓고 너희를 기억하려고.
그리고 그 고운 빛 볼 때마다..
지나간 젊은 어느 날, 담양의 대나무숲에서 바람 맞고 앉았을 내 딸래미만한 열여덟의 어느 처녀를 생각하며.
전복껍데기를 보며, 너무 예뻐서 버리기가 아깝다는 시들지 않은 젊음을 꼭 기억하리.

2012.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