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허나, 민중은 대다수이니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선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대표자를 뽑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 대표자는 새로운 강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복수심에 가득 차서 훨씬 더 잔혹하게. 언젠가 자신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민중의 무서운 잠재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직적인 말살까지 곁들여서… 종이 채를 잡으면 형문(刑門)부터 한다지 않아요? 종이 종한테 상전 노릇하는 것은 더 무섭지요. 형님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약한 자들이 형성한 권력, 이들은 또 다른 계급을 형성할 게 아닙니까? 이미 그들은 어제의 약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권력을 가진 집단으로 강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탄압당하는 계급이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겨날 것이고.

말하자면,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게 그것 아닙니까. 형님의 내심에는 이름만 바꾼 독재자적인 교묘한 야심이 숨어 있단 말씀입니다.“

(중략)

“그래서?”

“과연, 진정한 평등 사회가 이 땅 위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이상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미물 곤충도 강한 놈은 약간 놈을 잡아먹습니다. 물론 사력을 다하여 강적과 싸워 내는 놈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한 것, 한 번은 이기겠지만 돌아서면 다른 놈한테 결국 잡혀먹힙니다. 하다못해 잡초, 들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지요.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가 억센 놈은 생명력이 약한 풀뿌리를 죽게 합니다. 약한 놈이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연이고 인간 사회고, 약한 놈은 학대받아야 합니다. 학대받고 일찍이 죽어야 한다고요… 곤충, 미물, 잡초의 생리마저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에 이르러 무슨 말을 더 합니까?”

“그렇지 않다.”

강태가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랐다.

어서 일어서자고 하던 때와는 달리 그는 차갑게 말꼬리를 내린다. 그의 말꼬리에 묻은 찬 기운이 시리다.

“너는 혁명의 아름다움을 아느냐?”

강태는 바늘 같은 눈빛으로 묻는다.

반대로 강모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퍼져 오른다.

그는 지금 알 수 없는 열기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꿈꾸고 있는 세계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것은 과거의 모반(謀反)같은 것이 아니지. 지난날의 반란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달성한 것, 말하자면 옛 권력층에 대한 새로운 권력층을 형성한 것이었어. 허나, 오늘날 우리의 혁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대수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명제이다.”

“과연 거기서 형님의 역할은 무업니까? 지도자를 따르는 민중입니까? 민중을 지도하는 지도자입니까?”

“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고 있는 중이다.”

“거 보십시오. 벌써 형님은 하나의 계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평등을 목표한다는 형님의 이론에서도 민중과 지도자라는 구분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명칭이고 역할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 동지야.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해방하고 전 민중을 해방한다. 그 해방을 통해서만, 인류 사회는 비로소 착취 없는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거다.”

“착취, 착취, 도대체 착취가 아닌 관계도 있을 게 아닙니까? 이 세상이 그렇게 극단적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 집안의 할머니도 착취자란 말씀인가요?”

“그렇지.”

(하략)

최명희 – 혼불 제 3권 58쪽 – 60쪽

 

설국열차의 감상편은 이 것으로 대체한다. 영화 내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구체적인 시대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태의 콘서트가 유행이라던데 공연장에까지 앉아서 남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그 누구보다 언어를 많이 사용하며 살고 있지만, 때로는 그 모든 언어들이 다 부질없어서 굳이 말로 이루어지 않은 것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목소리로 말을 하지 않고 알아들을 문장을 전달하지 않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을 수 있고,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듣고 싶은 만큼만 들어도 되는 그런 형태의 소리로 많은 것을 함축 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들어도 말이 많은 것은 일부러 피했는데 그 반면 나는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였다.
내 얘기만 들어달라고 하는 거였는지 아직 잘 알 수 없다.

오늘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박제동 화백을 모신 토크콘서트 형태의 국악콘서트가 있었다.
80분 공연에 음악 공연은 30-40분 정도로 할애하고 나머지는 정은아의 사회로 이루어졌다.
박제동 화백은 입담이 좋은 사람이었다. 객석에서 간간히 폭소가 터졌고 나 역시 프로그램북으로 입을 가리며 웃곤 했다. 그의 화법은 숨김이 없고 솔직하고 정직했다. 샘이 나고 화가 나고 오기가 나고 질투가 나는 인간의 칠정을 모두 무대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관객들이 웃는 부분은 바로 거기였다. 길들어지지 않는 인간의 건강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때 말이다.

행복했어요. 오기가 났지, 화가 나서, 미치겠는거야. 어쩔 줄을 모르겠지, 부끄럽죠. 대체 어떻게 이런 짓거리를 했을까, 막 질투가 나지요. 아 나는 어떻게 하지,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질투가 나서 미치겠는거지. 그래서 어디 너 두고보자 하고 오기를 부렸어요.

오늘 그 공연장에서 박화백이 말한 자신의 감정들이다. 인간의 오욕 칠정을 숨김없이, 그렇지만 뻔뻔하지 않게, 솔직하지만 염치있게 말하는 것이 듣기에 즐겁다는 것을 알게 했다.

말과 음악이 같이 공연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생소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들은 더 이상 구체적이지 않은 것을 고스란히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지하는 시대다. 개나 소나 스토리텔링- 이라는 비아냥조도 떠돈다. 나 역시 이야기를 발굴하고 쌓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온 이야기들은 구체적이거나 노골적이라기 보다 상징적이며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케 하는 가사없는 노래같은 특성이 있다.
소리를 더한 극을 하고, 그 극을 해설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느끼는 것보다 알고 머릿속에 집어넣기를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유홍준의 “아는 만큼 보인다”가 그 출발점이었을 거다. 알지 못해도 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눈썰미” 라는 것인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할 만큼- 바쁘다.

그리하여 시대는 추상과 이별하고, 극사실과 해석, 해부와 분석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박제동 화백의 그림으로 부족하고 그가 덧붙인 글씨를 읽는 것도 부족하여 그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고 거기에 걸맞는 음악을 연주해 특정한 느낌을 잡아넣고 그 음악에는 구체적 대사와 이야기까지 넣어 확장까지 시키는 시대.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시대는 모든 예술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2013. 6. 26.

3월의 눈- 국립극단

130311_iphone5 030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며 살지만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보며 웃고,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표현한다.

남들의 입과 손, 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나 그림,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뭐라고 해야 할 지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폼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술을 대할 때 감정의 찌꺼기를 밀어낼 수도 있고 더불어 나의 이야기가 더 가치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예술가라 불리는 직업은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3월의 눈은, 노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 본 이 연극의 이야기는 작년 가을 이별한 나의 시어머님과 빈집에 혼자 살고 계신 나의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 대신, 그분들 대신, 나에게 해주었다.

작은 극장이라 울음을 참았으나 통곡할 수 있는 상태였고, 주변에 앉은 모든 여성동지들의 울음을 참는 소리가 끝이 나지 않았다.

주연은 변희봉선생인데,
화를 내라는 아내의 말에
“누구한테??!!!” 라고 말을 하고 침묵을 지키는 몇 분간, 침묵으로도 관객의 오장육부를 뒤집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이 연극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2013.3. 10.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용산역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중이다…

자기 역사를 지우다 – 드라마 야왕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모가 자살기도 하는 것을 목격하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죽는 현장에서 한 남자가 엄마를 구해낸다.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재혼한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온다.

성폭행을 일삼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간다.

지병으로 엄마가 죽는다.

소녀는 어리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이 때 이웃의 한 청년이 나타나 소녀를 돕는다.

소녀는 결심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세상으로 나갈 길은 공부.

소녀는 영민한 머리로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간다.

가난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소녀를 돕던 청년은 학비를 대기 위해 기술직을 버리고 유흥업소의 접대부로 일을 한다.

이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남편이 부끄럽다.

여자는 이제 과거와 정체성을 지우고 싶다.

입사면접에서 가난의 흔적, 오해, 독한 기질 때문에 탈락한다.

여자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남편이 호스트로 일하는 돈으로 여자는 미국유학을 감행한다.

타고난 미모, 영민한 머리로 재벌의 아들의 사랑을 얻어낸다.

거칠 것이 없어진 여자는,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폭주를 시작한다.

손이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나 들어갈 수 없는 성벽,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가 가진 무기를 꺼내 들은 여자는

처참하게 모멸 당하고 버려진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지만,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이 여자아이의 가정이 가난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 어머니와 아이가 구출되었을 때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면,

여자아이가 성폭행으로 유년시절을 거듭해야 했을 때 누군가 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면,

성폭행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살해하게 된 것이 법으로 절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여자와 연인에게 있었다면.

정당한 기술을 배웠던 여자의 연인이 그 직업으로 여자가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혹은 여자의 배경 없는 신분과 독기 어린 눈빛도 품어줄 수 있는 기업의 리더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권력의 상층부까지 상승했을 때, 그 집안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이제는 평생의 적이 된 그녀의 옛 남자는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산동네의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가라고.

권력과 돈의 맛을 본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우고 다시 만든다.

역사를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여자는 보수적 사회적 통념 하에서

아비를 죽이고 딸을 죽이고 남편을 죽이는 악녀로 재탄생한다.

여자는 산동네의 소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녀를 환영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녀는 이제 다시 혼자다.

어떤 것을 평생 사랑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평생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은, 인간이 해내기 조금 쉬운 일이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여자는 사회적 피해자와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걷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독한 가해자로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이제 관성과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

정체성을 지우고 자기 역사를 다시 쓰는 일.

그녀 안에 숨은 나를 본다.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왜 그녀가 산동네의 주다혜로 돌아가야 하는지, 나는 그 말이 더 밉다.

yawang_suae

블랙박스

대형전시회 그 중 현대작을 소개하는 곳에 가면
어둡게 칸막이가 막혀있고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는 곳이 있다.
완벽한 어둠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어둠에 가까우려고 노력한 그 곳에서

멍하니 몇 분간의 비디오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24시간동안 상영을 하는 24시간짜리 Time 이라는 작품을 다 보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는다.

어둠과 가까운 이 곳은 집중이 잘 되어,
마음속의 모든 상념을 떨치고
작가가 하는 말만을 들을 수 있다.

오늘 갔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호주 현대작가 전시회 TELL ME TELL ME
에서 이름을 적어오지 않은,
호주 작가의 존재..운운 했던 비디오물이 인상깊었는데
사실 그 미디어의 예술성 보다는
그 아래 흘러가는 자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자에 익숙한 나는 문자와 그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
그림에 전혀 몰입하지 못하고
모든 신경을 문자에 쏟곤 하는데
아무튼,
벗어나라 어쩌고..하다가 From YOU 라는 글자가 크게 나와서.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tell me tell me 전시회는 별로였다.
도록은 4만원이 넘고.
뭔가 .. 일관성이 있을라다가 말아서.
차라리 아예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면 모를까.

그래도,
그 비디오가 상영되는 그 공간.
거기가 있어서 좋은 것.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과 오래된 미래 2011. 10. 1.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오래된 미래의 오프닝
보현사 스님들의 반주/연주와 지역주민들의 노래자랑
보현사 스님밴드 
석수시장 중앙광장
바닥에 새긴 석수시장

미샬로프(Mishalov)로부터 온 편지 / 박찬응


68-69년 석수동의 모습을 간직한 미군병사의 사진
당시의 사진속 주인공들을 찾습니다.

벽화작업
자전거벽화에 받침대 설치한 것이 아주 굿. 

10월 23일까지 이어지는 석수아트축제페스티벌
레지던스 작가 작업실 앞

스톤앤워터
네온사인 들어오는 삽! 

Anak & Moneperro 의 오프닝 석수신령 퍼포먼스
벽면 작업도 있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못 찍음

Cafe Lizard 도마뱀까페

김덕영 점진적 확장

2076 안양 / Luiz roque

때 생성소 Creation Studio Of Dead Skin / by 오아영

벽면에 있는 흑연을 지우개로 지우며 창작을 해내가는 참여전시 – 구석엔 쌓인 지우개때가 산처럼 쌓여있다.

춤추는 요리사 작가 작업실

맥아더 동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소철 입주작가
경기 영아티스트 기획수상작가
회화작업인데 매우 내 취향 ㅎ 

http://cafe.naver.com/2010gyaprojec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41&
작품소개 

오프닝풍경
스톤앤워터 주최
http://www.stonenwater.org/bbs/view.php?id=notice&no=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