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지나간 저녁

 
지난 밤에 공씨디를 사러갔던 대형전자상가에는 내가 찾는 공씨디가 없었다. 지난 금요일쯤 그 곳에 갔을 때 남아있는 19장의 씨디를 모두 챙겨나왔는데, 그 빈자리 그대로였다. 빈자리 그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어젯저녁 심한 돌풍과 비가 내렸던 그 축축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왔었다.
 
집 근처에 있는 다른 전자상가는 흡사 용산전자상가의 축소판 같았다. 공씨디를 여러종류 쌓아놓고 파는 집이 많이 있었다.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 양질의 씨디를 스물 다섯장 사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하늘이 어두웠고, 명확하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는 내 시야안으로 비구름이 분명히 몰려오고 있었는데, 나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단순히 귀찮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비를 맞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 비를 한 참 맞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린다고 했다. 소설이나 영화속의 주인공들은 유난히 나약한 탓에 폐렴에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 죽는 주인공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 적당히 집에 걸어들어가도 그리 많이 젖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자주 가던 국수집에 들어가 만두국을 한 그릇 시켰다. 이 집은 여름에 냉만두국과 더운 만두국을 같이 파는데, 문 앞에 멍한 눈으로 서 있던 종업원은 찬 거? 더운 거? 라고 생뚱하게 들리지도 않는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만사가 귀찮은 그 태도, 내 깊숙한 곳을 보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50원짜리 지폐를 내고 잔돈을 퉁명스럽게 거슬러 받으며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서 비가 쏟아지는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 새 오색의 비옷을 챙겨입고 자전거 위에서 페달질을 하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아늑하고 가난한 집으로.
 
방금 전 내가 돌아온 그 길 어귀엔 대형 극장의 공사가 몇 개월째 계속 되고 있었다. 저 멀리 내가 다니던 헬스장도 보였다. 그 어귀에서 쇠그릇을 앞에 놓고 얼후를 연주하던 남자가 얼후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내가 어젯밤 이 길을 지났을 때 주머니를 뒤져 1원을 건네줬던 그 남자 같았다. 대머리가 살짝 벗겨진 그 남자가 앉아있는 그 자리엔 바로 뒤 극장을 짓는 공사장에서 나오는 독성 가득할 법한 시궁창 냄새가 올라오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남자는 더럽고 낡은 바지를 걷어올렸다. 갈색 슬리퍼를 입은 그 남자의 발은 비를 맞는다 해도 도무지 깨끗해질 것 같지 않았다. 호주머니에서 누렇게 변색된 수건을 꺼내 남자는 벗겨진 머리와 얼굴을 닦았다. 그 남자에게 뛰어가 5원짜리 지폐를 건네주고 싶었다. 5원이면, 밥도 한 그릇 먹을 수 있고, 1원을 보태면 어느 욕실에 들어가 샤워라도 한 차례 할 수 있는 돈이다. 10원이면, 내일 아침도 먹고 내일 점심까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습기 가득찬 통유리창이 달린 그 헬스장을 다녔을 때 그곳까지 가는 곳에 앉아있던 서너명의 얼후를 든 남자들과, 구부러진 다리를 가진 남자 아이와, 머리가 하얗게 탈색된 남자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를 기억했다. 그 때, 나는 매일 매일 그 길을 지나며, 매일 매일 그들을 외면했다. 이제 나의 가난이 그들의 가난을 동정하게, 그들의 가난을 이해하게 한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쌀 한 톨 건네주지 않는다는 진실도. 그 사람에게 내가 돈을 주고 싶다는 생각은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한 끼와 그의 한 끼가 동일해지도록, 나의 근원없는 억울함과, 그의 이유있을 억울함에 대해서 공감을 형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내가 만두국을 반쯤 먹고 나서 양이 많다고 느꼈을 때쯤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전 나에게 살기 싫은 표정을 보여줬던 그 여자 종업원은 내 뒤에 바로 들어온 두 명의 젊은 사내들에게 농지거리를 하며 살살 거리고 있었다. 남자라는 존재가, 그녀의 삶을 바꿔놓는가. 때로 여자는 남자를 살게 한다. 그리고 때로 남자가 여자를 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무슨 이유로 잣대를 들이미는가. 사람은, 동물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인데.
 
자신의 밥줄을 가만히 들고 서서 비를 맞고 있던 그 남자가 사라지고, 나의 만두국 그릇속의 만두도 남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단 한 번도 비오는 하교길에 누군가의 우산속에 뛰어든 적도, 누군가가 마중을 나온 적도 없었다. 비가 조금 더 많이 온다면, 그래서 지금 추레하게 슬리퍼를 끌고 나온 나에게 누군가 우산을 씌워준다면 그 사람이 당황할 만큼 그 우산속에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다행스럽게, 비는 그쳤고, 나는 울 기회를 놓쳤다.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길엔 풀과 물이 만난 냄새가 가득했다. 상해의 그 고단한 여름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길에는 시원한 바람, 비 온 뒤에 산책을 해야겠다는 그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공기만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그래도 혼자 자기엔 조금 넓은 침대가 있고 에어컨까지 달린 작은 집이 있다는 사실이 더 할 수 없는 사치로 느껴졌고, 그 사치를 영유하고 싶었다.
 
요즘은, 해가 너무 늦게 진다.
 
2004. 7. 13.

자전거 타는 아이

며칠 전에 본 풍경이다.
집 앞에 나서면 좁은 4차선 도로가 있고 500미터쯤 나가야 16차선쯤 되는 대로가 나온다.
내가 어딜 가든 항상 대로앞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게 마련이고 대로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다. 신호등이 잘 안 보일 때가 있고 여기까지는 동네골목이나 마찬가지라 늘 천천히 움직인다.
가끔 버스가 뒤에서 엄청 빵빵거리지만.

저녁이었다. 7시쯤 되었다. 사방이 완전히 어두웠고 저녁의 동네마트는 북적거렸다. 나는 그 날 우회전을 하려고 뼈다귀해장국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췄다. 보행신호가 시작되었고 마트에서 장을 본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그 중에 자전거를 탄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엄마 아빠와 함께 마트에 다녀오는 듯 했다. 아빠의 손엔 마트 비닐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횡단보도에 못 미쳐 아이가 자전거 안장에서 미끄러졌다. 요즘 나오는 어린이 자전거엔 짐칸이 없다. 아이의 궁둥이가 주루룩 빠지면서 바퀴 바로 위의 플라스틱 받침대에 엉거주춤하게 걸쳐졌고 아이는 중심을 잃었는데 신호등이 짧다보니 애 아빠가 애 손과 자전거를 같이 잡고 질질 끌기 시작했다. 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일찌감치 건너 호주머니에 손 넣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애아빠는 왼손엔 마트봉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중심 잃은 자전거와 아이를 한꺼번에 질질질 끌고 있자니 아이가 드디어 꼬라지가 났다.

으앙! 하고 한 쪽 다리가 하늘로 한 번 올라갔다가 바닥에 완전히 자빠지려던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거세게 울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이었고 신호는 이미 끝났다.

애 엄마는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뭐라 뭐라 말을 했고 아빠는 한 숨을 쉬는 사이 아이가 도로로 돌진했다. 나는 우회전을 할 수 있도록 신호가 바뀌었지만 불안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애 아빠가 아이를 거세게 잡아당겼다. 나는 아이를 덥썩 들어올려주길 바랐으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고 아이는 두 번째 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창문을 내리고 “애를 좀 안아요!” 라고 하고 싶어서 창문을 살짝 내렸는데 애 아빠가 아이를 인도 안 쪽으로 깊숙히 밀어넣고 한 손으로 마트봉투와 자전거를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울었고 애엄마는 아이 등짝을 두 번 후려갈기고는 다시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아빠는 보따리와 자전거를 끌고, 아이는 엉엉 울며 제 부모를 따라갔다.

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멋지게 건너는 미션을 수행하지 못해 엄청나게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매일 매일이 도전이고 그래서 힘겨워한다. 아이에 따라 다르지만, 도전을 즐기는 정도도, 실패했을 때 악다구니를 쓰는 정도도 모두 다르다.

그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주면 좋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자마자 나는 얼마나 그러고 있는지 점검해보았으나 역시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투정과 계속대는 깐족댐에 화를 냈다. 왜 그러는 지는 화를 내고 난 다음에 알게 된다. 사과를 하지 못하고 아이를 재웠다. 자기 전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홉살을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처리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건 어른이고 애고 미성숙한 인간에겐 언제나 난제다.

오늘은 많이 미안했다.
어떤 한 가지 사건이,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세지가 수십가지여서 그게 어렵고 버겨울 때 아이들은 짜증을 내고 깐족대고 장난을 치고 약을 올리고 말을 안 듣고 주제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가 곤히 자고 나니, 자전거를 못 타서 분통이 터지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2014.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