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유튜브의 시대, 작은 도서관의 역할

지난 6월 26일에는 인천 청학연수도서관에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유튜브의 시대, 작은 도서관의 역할을 확인하는 특강 “책, 읽을까 볼까”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진행했는데요. 담당자께서 강의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갑자기 빔 프로젝터의 렌즈가 작동하지 않아 약간 어수선한 상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준비해준 도서관 담당자와 강좌에 참석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께서 경청해주셔서 기분 좋은 강의가 되었습니다.

유튜브로 모든 콘텐츠가 집중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죠.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은 읽지 않고 유튜브만 봐서 큰일이라고 하지만, 실제 통계상으로는 아이들은 적어도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현실을 파악한 뒤 작은도서관이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책을 준비해와 종이책이 가진 물성에 대한 짧은 발표도 해봤습니다.

이 수업은 온라인에서 간단한 신간소개글을 작성하고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댓글로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까지 이어집니다. 아주 잘 설계된 프로그램이죠.

여타 공공기관에서는 강사가 한 번 다녀가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은데, 청학연수도서관에서는 강사와 수강생이 일시적이지만 후속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도서관측에서 후속작업에 대한 인건비도 책정해서 여러모로 세심하게 배려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안양에서는 평생교육이 뒷전으로 밀리고 도서관 운영에 참신한 면이 없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연수구 도서관에서는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이 직접 신간소개 책자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실제로 책자도 펴내고 있더군요. 무척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천연수구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들이 마을의 거점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에게 제가 소개한 필독서가 있는데요, 김성우, 엄기호 씨가 쓴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권합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10점
김성우.엄기호 지음/따비
강의 시작 전, 각자 준비해 온 책을 들고 사진을 찍어봤어요.
연수구립공공도서관에서 펴낸 신간추천 책자입니다.

[강의]주민참여예산제 – 청소년위원회

코로나19로 여러 공적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수원시 주민참여예산제의 청소년위원회 강의는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참가학생들은 수원시온라인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하고, 강사만 수원시청 온라인회의실에 도착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원시는 주민참여예산제에 청소년위원회를 두어 정책을 제안하고 주민참여예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범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히응에서도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청소년위원회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시민들의 저력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 이어지는 만큼, 2020년 주민참여예산제 청소년위원회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청소년의 힘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라 적잖이 지루했을텐데 열심히 참여해주신 청소년위원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사진은 2019년 주민참여예산 청소년위원회 예산학교 장면입니다. 올해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었네요.

2020년 6월 6일

[강의]마을에서 같이 놀기

문화공동체 히응이 잘 하는 강의 중의 하나는, 마을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입니다. 각 단체나 공동체마다 마을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데,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강의를 요청해옵니다. 각 사업주체마다 소재를 정해놓고 문화공동체 히응과 구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번의 특강만 주어졌다면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초계획을 함께 짜보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작년에 이어서 “평촌 청소년문화의 집”에서는 마을에서 세대공감을 이뤄내는 청소년활동을 기획했습니다. 2019년에는 큰 상도 받았다더군요. 올해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청소년문화의집에 방문해 ZOOM으로 활동할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세대공감은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번에도 작년과 같이 청소년들이 노인정이나 경로당을 방문해 마을에서 함께 공감하며 다양한 활동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저는 노인들의 생애사 강의 경력을 활용해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들을 공유하고, 인터뷰와 취재의 기본을 설명했습니다.

평촌동에서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나갈 청소년들을 응원합니다.

2020년 5월 30일, 평촌청소년문화의 집 강의장면

[강의]환경정의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에서 수돗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 강사선생님들과 환경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구재 개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환경전문가이거나, 환경운동가는 아닙니다만, 해왔던 몇 가지 작업중에 느끼게 된 환경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셔서 민주시민으로 환경정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과 환경정의라는 단체에서 진행했던 청소년환경교육의 결과를 놓고 불평등한 사회적 조건에 의해 더욱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환경문제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초대해주신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 고맙습니다.

이번에 문화공동체 히응은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의 교구재도 함께 협의하며 개발할 계획입니다.

청계 달팽이 자연학교에서 진행한 환경운동연합 특강 모습

2020. 5.

지역 민주화인사 구술채록

문화공동체 히응은 안양군포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회원이자, 운영위원입니다.

우리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며, 언제나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사업들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함께 고민해온 것 중의 하나가 지역 민주화인사 구술채록사업입니다.

1980년대가 가장 활발한 민주화운동의 시기였다면 사실 그 이전에도 뿌리가 될 운동들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지역을 지키며 묵묵하게 지역의 민주주의를 위해 애써오신 선배님들의 삶을 통해 우리 지역의 민주화운동역사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2020년에 민주화운동사업회의 회비로 자체예산을 마련해 지역 민주화인사 구술채록의 시범사업을 시작합니다. 문화공동체 히응에서는 영상과 녹음기록, 원사료 취득을 맡았습니다. 구술채록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채록사협동조합의 권형택 대표님께서 원고를 집필하기로 했습니다.

안양군포의왕 지역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만, 우선 가장 폭넓고 오랫동안 지역의 민주주의를 지켜오신 임정조 회장님을 만나 삶으로 가꾸어 온 지역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술을 허락해주신 임정조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020년 5월

[퍼스트 펭귄] 12. 50년, 호주제 폐지에 걸린 시간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89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1914년 태어난 이태영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두 오빠 밑에서 자랍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태영은 공부에 뜻을 품어 1931년 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됩니다. 독립운동가 정일형과 결혼 후 남편의 지지에 힘입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1932년 이화여전에 입학하고 1946년 서른세 살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서울대학교 최초의 여대생이 됩니다.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범과에 합격해, 사업 시험 역사상 첫 합격자가 됩니다. 

김병로 대법원장이 이태영을 판사 임용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마디로 이를 거절합니다. 

“여성은 아직 이르니 가당치 않다”

 
여성차별의 피해자였던 이태영은 이후 변호사가 되어 1953년 가족법 초안을 만들 때 여성계 인사들과 함께 법전편찬위원회에 남녀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헌법 정신에 맞게 민법을 제정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합니다. 1957년 국회 공청회에서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와 호소문을 발표했으나, 1958년 새 민법은 호주제를 비롯한 남녀 성차별적 조항을 담은 채로 발표되고 맙니다.
1989년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대회 관련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와 여성계 전체가 50년을 넘게 싸워온 가족법과 호주제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가족 내 성평등을 위해 애써온 지난 50년, 다음과 같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내 성평등을 위해 여성계가 싸워온 시간들]


 
1948년 이후, 호주제를 채택했던 유일한 나라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제도입니다. 당시의 민법은 ‘가족’의 범위를 ‘일가의 계통을 승계하는 자이며 호주와 같은 호적인 자’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호주제는 일제 시대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1947년 가족법 개혁으로 호주제를 없앴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호주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쓰는 우리나라에서는 일가의 계통을 승계하는 것이 남성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한 가족을 거느리며 부양하는 일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잇는 남자를 호주로 정했습니다. 호주가 될 수 있는 순위는 아버지 > 아들 > 결혼하지 않은 딸 > 아내 > 어머니 > 며느리 순으로 정해졌습니다. 여성의 경우,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호주가 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가 되어야 했습니다.
 
현실에서는 친아버지만을 호주로 정해 이혼가정의 자녀들은 친부의 동의 없이 여권발급이나 은행거래도 쉽게 할 수 없었고, 학교 입학에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생부, 생모의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재혼가정과 입양가정의 경우 법의 한계 때문에 겪어야 할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1999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대한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호주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기에 다수의 국민들도 폐지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쉽게 제도가 바뀌기는 어려웠습니다. 호주제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배한 제도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헌법 제36조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죠.
 
이태영 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평생을 투쟁했지만 1998년 끝내 호주제 폐지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6개월 뒤 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해 그간의 투쟁을 통합하고 더욱 구체적인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큰 물결
 
1997년은 수많은 연인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동성동본금혼 위헌 소송에 헌법 불합치 판정이 있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2000년 말부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주축으로 호주제 위헌소송을 이어 나갔습니다. 
 
한국씨족총연합회,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대한독립동지회, 대한노인중앙회 등으로 결성된 ‘정통가족제도수호 범국민연합’은 가족법 졸속 개악 반대 총궐기대회에 이어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1천만 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호주제 폐지는 종북이라고 이념논쟁을 벌였습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정통가족수호 범국민연합
(출처 : 신권화정)
 
“호주제가 없으면 한국 인구 상당수가 쌍놈!”
“온 나라가 콩가루 집안이 되고 우리 민족이 개돼지와 다름없이 되는 꼴을 못 보겠다!”
 
이들의 과격한 언쟁은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실패하고 역효과만 불러일으킵니다.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의 신문광고 (출처 : 신권화정)
 
조한혜정, 고은광숙, 이이효재, 오한숙희 등 여성학자, 여성운동 활동가들이 먼저 ‘양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모의 성을 함께 쓰고 상징적으로 호주제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과 사이버 시위 등을 벌여나가며 토론회와 의원간담회를 체계적으로 열어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호주제 폐지가 실현될 수 있는 기틀을 잡아나갔습니다.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듯, 누구나 호주가 될 수 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해 싸워온 긴 세월. 드디어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포함해 모든 당의 대선후보들이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2003년 법무부는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헌재는 다섯 번의 변론 끝에 헌법불합치 결론을 내렸습니다. 호주제는 2008년 완전히 폐지되었고 가족 구성원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관계 등록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자녀는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고,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족 내 성평등을 위해서는 남아있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자녀가 우선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한 민법상 781조의 ‘부성주의원칙’에 대해서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에서 우리나라에 수차례 철회 요구를 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관습과 사회적 이견 등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였고 이 조항은 유보된 채 남아 있습니다.
 
호주제 대신 가족관계 등록법이 시행됐지만 기본 내용이 호주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외국인 남편을 둔 여성만이 자녀의 성 선택이 자유롭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가족관계는 한국인 남성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행을 ‘처남, 처제’로 부르는 성차별적 가족 호칭에 대해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 되는 ‘가족’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모습을 갖춰간다는 것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일차적인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퍼스트 펭귄들이 호주제에 반대해 싸워온 것은 기존의 권리를 가져오겠다는 것보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어떤 이유로든 기본적인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의지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퍼스트 펭귄들의 활동에 함께 해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신권화정 (사단법인 시민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가족 호칭 개선에 대한 에세이(한국여성민우회) : https://goo.gl/PR4whC

👉🏻 가족법개정운동본부 : http://www.newfl.or.kr/

👉🏻 한국여성단체연합 : http://women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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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단체 활동 지원 모금함 바로가기 >>

[퍼스트 펭귄] 11. 우리는 일터의 꽃이 아니다!

2018.11.14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87

예쁜 알바 뽑습니다 

‘예쁜 알바 뽑습니다’

‘외모에 자신 있는 분 우대’

‘결혼 예정 시기 표기 필수’

‘신장 165cm 이상’

보는 순간 매우 기분이 상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지 않은 문구들입니다. 고용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인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런 차별적 채용 공고 문구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고용 과정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시위 (출처 : 알바노조)

직장 내 성희롱, 임금 차별뿐 아니라 임신을 하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순서대로 임신하라는 지령까지. 일하는 현장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Metoo 물결이 파도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이 제정되었을 때, 이미 남녀평등과 남녀의 동등한 근로권을 보장하였고 1953년 근로기준법에 여성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산업은 남성 중심으로 움직였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역할에 그쳤습니다. 고용평등의 조치는 40여 년간 별 효과 없는 ‘말로만 법률’이었던 것이죠.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일하는 여성들의 문제는 여성들 스스로가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차별을 일삼으며 불평등한 회사 운영을 하는 회사측에 항의하고 여성은 산업의 보조인력이라는 사회 분위기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이 문제를 스스로 소리 높여 외치고 사회에 알렸던 퍼스트 펭귄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긴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직장 내 성평등을 위한 긴 싸움]

나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70년대 이 나라의 여성들은 산업현장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1970년 근로기준법을 외쳤던 전태일 열사도 여공들의 처참한 삶에 주목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노동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여성들의 노동운동도 힘차게 일어섰습니다. 『열세 살 여공의 삶』이라는 책에는 공안당국자가 “한글도 모르는 여공 따위”라는 모멸을 서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전에 여성노동자들은 ‘몇 번 시다, 몇 번 미싱사’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며 이름을 되찾았다고 기억합니다.

1970년대 여공들의 근무모습 (출처 : 구로구청)

1980년대 들어서 여성주의 의식이 확산되고 여성근로자들의 노조운동도 더욱 활발해지면서 고용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 모성보호를 명시한 고용평등법의 제정이 대두되었습니다.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노동자 전체의 권익보호를 위해 여성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는 끊임없이 남녀고용의 평등을 주장해왔습니다. 그 결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어 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정년, 퇴직 및 해고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의 등장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고 

모성 보호와 여성 고용을 촉진하여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함과 아울러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었어도 성차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애매하고 법 실행의 강제규정도 없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추진해 온 퍼스트 펭귄들은 법 제정에 안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흡한 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캠페인에 대한 한겨레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평등한 노동, 건강한 모성”, “평생 평등 노동권 확보”라는 슬로건으로 여성단체들은 1990년대 새로운 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결혼과 임신으로 인한 고용 중단, 아이를 돌봐야 해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회적 조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산전 후 휴가제도 도입과 남편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법제화할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남녀고용평등을 외친 퍼스트 펭귄들은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정마다 육아분담을 해야한다고 개인에게 강조하기 보다 육아분담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남녀 모두가 가정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노동환경이 갖춰질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잘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일, 가정이 모두 지켜질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 · 가정의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그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름은 법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지킬 수 있는 노동조건이 필요하다는 시대적인 요구가 반영되었습니다. 일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죠.

여성이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시점엔 차별이 적더라도, 결혼 후 가사노동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사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남녀가 모두 함께 일하고 가정을 책임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제안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미처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반영해 취업부모들의 일과 가정생활이 양립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체화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해왔습니다.

여성 노동에 대한 단체들의 목소리 (출처 : 한국여성단체연합회)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으로는 성차별뿐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1993년 서울대 신교수가 조교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일삼은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여성단체들은 현장 활동을 토대로 수많은 사례를 듣고 수집하였습니다. 법 개정과 제정을 위해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안했고요. 여성단체들은 정부가 여성노동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해왔습니다. 2018년 들어 여성 응시자를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경영자는 징역형을 받기도 하고, 개정된 성범죄 특례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을 엄단하는 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남녀모두 평등한 노동권을 보장받는 것은 헌법에 적혀 있는 평등권을 지키는 일이며 인권보장의 기본입니다. 노동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서 자기 성취와 사회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유용한 수단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성별과 능력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시작한 노동운동,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퍼스트펭귄들은 성별로 편을 갈라 싸워온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노동의 권리와 기회를 빼앗아가려는 눈에 보이는 않는 불평등과 싸워온 것입니다. 퍼스트펭귄들이 꿈꿔온 오랜 바람이 이제야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유일영 (더 이음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국립여성사박물관 : http://eherstory.mogef.go.kr/

👉🏻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 http://www.yeono.org/ 

👉🏻 한국여성노동자회 : http://kwwnet.org/

[퍼스트 펭귄] 10. 감시만으로는 더딘 정치개혁, 사람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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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대 지방선거를 앞둔 2000년 1월, 경제정의실천연합은 공천부적격자 167명의 명단을 공개합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1989년, 이 땅에 경제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퍼스트펭귄들의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줄여서 경실련으로 부르는 이 단체는 법과 정책을 바꾸어가는 제도적 개혁을 추구하는데요, 경제뿐 아니라 민생을 책임지고 국민세금인 예산을 사용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정감시를 주도했습니다. 의정감시란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맞게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시민의 정당한 권리로 예산을 정하는지 검토하는 일입니다.

경실련은 선거를 앞두고 공직자, 즉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추려냈습니다. 부정부패에 연루되었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예산을 마구 낭비한 사람들을 찾아냈는데요. 이 명단에 오른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국민회의 50명, 자민련 32명, 한나라당 66명, 무소속 16명으로 전현직 의원과 출마예정자까지 두루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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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낙선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선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사진:이하나)

전국의 퍼스트펭귄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국회에서내보내려고 50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퍼스트펭귄들이 모여 총선시민연대를 만들고 1월 27일 ‘유권자가 알아야 할 15대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89명의 명단을 발표합니다. 숨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2월 2일에는 2차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합니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처음엔 긍정적인 태도였지만 몇 번씩 국회의원을 했던 의원들조차 명단에 있는 걸 보고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의 항변이 이어졌습니다.

야당인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명단을 발표한 총선시민연대에 집권여당인 민주당 사람도 있다며 자기들을 음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총선시민연대가 여야 가릴 것 없이 동등하게 의원들을 평가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대의를 대행하는 슬픈 증언

제도적으로 권한이 없는 시민사회단체가 제도적으로 권한이 있는 정당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는 일은 ‘대의를 대행하는 슬픈 증언이자 처절한 요구’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보다 정치적 목소리에 집중했는데요. 권력자들이 그간 민주주의를 어떻게 방해했는지 역사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운동 이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법적으로 지키자는 시민들의 열망이었습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공직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낙천낙선운동까지 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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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정보의 평등도 중요합니다.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주권회복을 앞당기다

2000년 1월 30일 총선연대는 성명서 <유권자 선거혁명으로 가는 길>을 발표하고 시민사회가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과정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민단체는 지난 10년간 공정선거 감사운동을 해왔고 정치제도 개혁운동도 펼쳐왔지만 낡은 정치권의 물갈이 없이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시민단체들은 제도개혁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룬다는 입장이지만 국회의원들에게 맡겨 놓은 결과 아무것도 된 게 없다. 이제 정치개혁은 인적 청산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다.”

요컨대 시민사회단체는 정치권력을 쥔 정치가들이 자기들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시민들을 대리하기 보다 군림한다고 본 것입니다. 당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에 참여한 이태호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감사와 평가 모두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의정 모니터링 활동도 의원들이 잘 협조하지 않으니 더 적극적으로 밀어 부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차병직 변호사가 쓴 <월간 참여연대>에 연재한 <참여연대 20년 20장면 – 거리의 신화, 시민불복종>에 따르면 총선시민연대에는 2주 동안 2억원 가까이 후원금이 들어오고, 수백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했습니다. 이정현의 “바꿔”라는 노래가 주제가처럼 울려퍼지고 ‘총선연대 칵테일’을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이 생겼습니다. 먹거리를 배달해주는 시민들이 있었고 얼굴이 알려진 총선연대 임원들 중에 택시를 공짜로 타는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드디어 2000년 4월 13일, 16대 국회의원을 뽑는 전국총선거가 있었습니다. 86명의 낙선대상자 중에 59명(68.6%)이 떨어졌고, 22명의 집중 낙선 대상자 중에 낙선자가 15명(68.2%)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20명의 낙선 대상자 중에 19명이 무더기로 떨어져 낙선운동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총선연대의 2000년 낙천낙선운동 타임라인

낙선낙천인포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보복

그러나 욕을 잔뜩 먹은 정치권에서는 불만을 적극적으로 법을 이용해 표시했습니다. 정치인들은 30명의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고발 했습니다. 이 활동을 했던 퍼스트펭귄들은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아 손해를 입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8월 “총선연대의 낙선, 낙천 운동을 금지하는 현행 선거법은 합헌”이라고 판결하여 시민들의 낙선낙천운동이 불법이라 정리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87조는 “기관, 단체는 그 명의 또는 대표의 명의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지지, 반대하거나 지지, 반대하는 것을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판결에 힘을 얻은 정치인들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퍼스트펭귄들이 지나친 행동을 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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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이 불러온 탄핵과 2017년 조기 대선 (사진:이하나)

그들이 법을 만든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7조는 ‘기관 단체의 대표자와 임직원, 그리고 구성원등은 그 기관과 단체의 명의 또는 그 대표의 명의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도 동호회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단체는 환경에 대한 적극적 정책을 가진 후보를 드러내놓고 지지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은 더 엄격하게 함부로 지지인명단에 이름을 쓰거나 특정 정치인의 후원회원도 될 수 없죠.

그들이 법을 만든다

그들이 국회에 앉아 있다

플라톤도 읽지 않은 그들이

(노르웨이 시인 올라브 하우게)

정치가 지겹다며 관심을 갖지 않을수록 권력자들은 편해집니다. ‘다 똑같다’면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릅니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정당에서 후보자를 결정해 선거에 내보냅니다. 유권자는 각 정당에서 뽑아놓은 명단 중에 골라야 합니다. 정당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후보자조차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과연 모든 정당은 국민을 대리할 적합한 사람을 후보로 내세우고 있을까요?

낙천낙선운동은 특정인이나 정당을 공격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퍼스트펭귄들은 정보가 잘 공유되지 않던 시절에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유권자의 권리를 되찾는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낙천낙선운동의 결과로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청렴도와 부정부패를 사전에 걸러낼 필요를 깨달았고 누가 국민을 대리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정치권도 스스로 청렴하고 공정한 결과로 유권자들의 표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시민이 참여하는 정치는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각자의 지위와 직업에 따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른 것은 여전히 괜찮은가요? 퍼스트펭귄들은 이제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퍼스트펭귄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

퍼스트펭귄들은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지금의 선거구제도와 비례대표제도 개선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선거제도가 한국실정에 잘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http://wouldyouparty.govcraft.org/p/political-reform 정치개혁공동행동 범서명운동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정치개혁 목요행동을 시작합니다. 민의가 그대로 선거제도에 반영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세요.

참여연대 정보링크 http://www.peoplepower21.org/Politics/1590190

 

[퍼스트 펭귄] 09. 미인대회는 왜 공중파에서 사라졌을까?

2018.11.08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지덕체를 갖춘 여성을 뽑는다고요?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참가자에게 묻습니다.
 

“데이트를 하다 보면 식사를 하러 갈 수 있잖아요?

밥 속에 돌이 들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먼저 얌전하게 빼내고요.

애인한테도 조심하라고 얘기해줄 거예요.”

 
대답을 하는 여성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네요.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어떤 자리일까요? 바로 1987년 미스코리아선발대회 결선입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기억하시나요? (출처 : shutterstock)

수영복을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부풀린 머리를 한 여성들이 긴장된 발걸음으로 무대 위를 걷습니다. 한 손은 허리에 올리고 온몸을 곧게 펴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미스코리아 대회.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는 만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고졸 이상의 지덕체를 겸비한 여성을 선발하는 것이 미스코리아 대회의 기준이었습니다.
 
1996년의 미스코리아 대회 선발기준 중 일부를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 얼굴이 크지 않아야 하며, 양 어깨가 넓으면 안 되고 어깨선이 부드러워야 한다.
– 가슴의 크기, 위치, 선 그리고 엉덩이의 사이즈, 선, 모양을 고려한다.
– 몸에 상처가 있거나 큰 점이 있으면 안 된다.
 
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은 대회 주관사에서 결정했습니다. 지덕체를 가진 여성을 뽑는다면서 신체적 기준을 특정하게 맞춰놓은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만 18세 이상의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는 여성을 뽑는다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뜻일까요? 
 
사람을 잣대에 놓고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 게다가 후보자들의 신체조건을 평가하기 위해 여성들이 파란색의 동일한 수영복을 입고 몸매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TV 채널이 몇 안되던 2000년대 이전, 미스코리아 대회는 매년 전국으로 생중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퍼스트 펭귄들이 있었습니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와 그에 대한 반대 운동]

 

미스코리아가 뭐길래 

 
미스코리아 대회는 1957년 한국일보사의 주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는 공개적으로 외모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미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참가를 만류했다는데요. 이후 1972년부터 공중파에 생중계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는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미스코리아에 뽑힌 여성이 바로 방송과 연예계로 진출하는 풍토가 생기자 대회의 경쟁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 것입니다.
 
1980년대, 여성유권자 연맹은 미인대회 폐지를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여러 여성단체들이 이에 동참하였습니다. 1989년 여성신문에서는 “노예시장 같은 미인대회를 차 버리자 – 미스코리아 대회는 굴욕적이고 반여성적인 추태”라고 논평을 하기도 했지요. 
 
물론 주최 측은 외모만으로 미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선발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서구적 기준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을 수치와 외양으로 평가하고 우열을 가리는 일에 돈까지 끼어들자, 미스코리아 대회는 더 이상의 명분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여성들에게 번호와 점수를 매겨 외모를 평가하는 미인대회

미스코리아를 시작으로 전국에는 각종 미인 선발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지역특산품과 연결시킨 OO 미인 선발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농산물을 들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죠. 이러한 미인대회들은 대부분 미스코리아 선발기준을 비슷하게 따르고 있었습니다. 
 
미인대회에서 선발되면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많은 젊은 여성들이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외모를 바꿔나가기도 했습니다. 키가 커야 하고 날씬해야 하며 몸에 상처가 없고 피부가 매끄러워야만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걸까요? 여성의 기준이 외모에 집중되기 시작하자 초등학생들도 장래희망을 ‘미스코리아’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미인대회를 반대한다

 
미스코리아가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경쟁이 심화되자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특정 미용실에서 수천만 원을 받고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시키거나 수억 원의 뒷돈이 오고 갔다는 비리가 밝혀지고 나이와 학력을 위조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1993년 심사위원들의 뇌물수수 사건이 드러나자 미스코리아 대회를 반대하는 여론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를 냈습니다. 
 
“돈거래로 얼룩져 세계무대에 나갈
한국미인을 선발한다는 명분도 잃었으며,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대회를 폐지하라”
 
대회도 대회지만, 매년 미스코리아 대회는 공중파를 통해 전야제부터 본 대회까지 모두 생중계가 되었습니다. 1996년 여성단체연합은 MBC 방송국 앞에서 방송 중계를 중지하라고 시위를 하였고 1999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이달의 나쁜 방송’으로 MBC의 미스코리아 중계방송을 선정하였습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획일적 미의 기준, 외모지상주의,
여성상품화, 연예계 등용문으로의 전락 등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중파 방송사가 이를 생중계해 정당화하고 있다”

1999년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에 대한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스코리아 반대 움직임을, 남성들은 ‘못생긴 여자들의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비웃기도 했는데요. 이를 통해, 미의 기준을 미스코리아의 기준에 이미 맞춰버린 대중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라고?!

 
1999년 페미니스트 매거진 ‘이프’는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이 행사는 2009년까지 매 해 열렸습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는 기존의 미스코리아 대회에 맞서 정형화된 미인이 아닌 행사 취지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를 통해 10살 된 어린이, 20대 남학생, 트랜스젠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 여성 축구 선수, 남자 간호사 등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였습니다. 

1999년 1회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한겨레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당시 방송인 홍석천 씨, 영화감독 변영주 씨, 가수 백지영 씨 등 유명인들의 참여도 이어져 많은 시민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그 취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결국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오랫동안 생중계했던 MBC도 내부 비평 프로그램을 통해 미스코리아 대회 방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고 2001년 MBC가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2002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는 공중파에서 중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퍼스트 펭귄들이 10년 넘게 싸워 얻은 작은 결과였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2000년대 후반에는 문화관광부의 요청으로 지역 미인대회가 하나씩 폐지되었습니다. 미인대회가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하자 미인대회 반대에 대한 목소리도 조금 줄어들었는데요. 대신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식도 일반화되었습니다.
성형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들
(출처 : 여성민우회 트위터)
 
하지만 지금도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대중문화는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폐지 요구로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되었습니다.
 
날씬하고 얼굴이 예쁜 여성만이 아름다운 것일까요? 어느 누구도 외모를 포함한 보이는 모습으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각자의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존중받는 날까지, 퍼스트 펭귄들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박수연 (서울시NPO지원센터)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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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 08.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가 있습니까?

2018.11.06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80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가 있습니까?”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한 국회의원이 대답합니다.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북한입니다. 선진국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인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진보성향이 남아 있기 때문에…”

2014년의 JTBC 뉴스룸 인터뷰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한 국정교과서 채택안. SNS상에서 인터뷰를 한 국회의원의 말이 퍼져나가면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학생들이 잘 공부하고 있던 다양한 교과서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주장은 왜 제기되었을까요?

교육은 국가의 미래입니다. (사진 : 이하나)

갑자기 튀어나온 국정교과서

국정교과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검정제 교과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교과서 검정제는 국가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민간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만들고, 각 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에 반해 교과서 국정제는 교육부 장관이 저작권자로, 국가에서 채택한 교과서 1종으로만 공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던 우리나라는 1973년 ‘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따라 국정화가 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국사과목은 국가에서 만든 한 가지의 교과서만 사용했습니다. 80년대 이후 교과서는 다시 차츰 검정교과서로 바뀌어나갔고 2003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새로 만들며 검정화를 채택했습니다.

점차 모든 교과서를 검정교과서로 바꿔나가는 움직임에 갑자기 제동을 건 것은 박근혜 정부였습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교과서 제작이 기획되었고 2015년 진짜로 시행할 움직임이 보이자 전국적으로 여러 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국정교과서 기획부터 폐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교과서에 친일 성향이나 과거 독재 정부에 대한 미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만약 편향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자기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는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편향되었다는 교과서들은 이전에 교육부에서 합격시켰던 교과서들이었습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동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2010년 서서히 대두되었습니다. 교과서에 대한 좌우의 성향이 자꾸 논란이 되자 2011년 시민단체들은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결성했습니다. 2013년 9월엔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 한국사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가 교학사의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바 있습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본격적인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대해 서울대 소속 역사학과 교수 382명이 국정교과서 집필 불참을 선언하며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서울대와 고려대를 포함한 전국 70여 개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반대 및 집필 거부 선언으로 확산되었고 479개의 시민단체에서 국정화를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사진 : 이하나)

기독교 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교사 실천 선언’을 발표했고 교사들은 불복종 선언을 발표하며 “정부가 스스로 올바른 교과서라고 지칭한 교과서는 빗나간 역사관을 반영하며 왜곡과 오류가 극심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기본적인 역사관에 입각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것인데 다양한 해석이나 논쟁을 원천 봉쇄하는 국정교과서 1종을 가지고 전국의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합의 없는 정책은 폐기만이 답 

2016년 11월 28일 공개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관점과 객관적 사실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오류가 나타났습니다. 교육부는 그제야 국정 역사교과서 전면 실시를 유보하고 2018년부터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 혼용을 제안했습니다. 학계와 교사 단체, 학부 모모임, 시민사회, 시도교육감협의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단체들이 국정교과서 반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학계는 한국사뿐 아니라 서양사학과 동양사학도 동참하며 2016년에 들어 참여단체가 두 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또한 2015년 JTBC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이 44.7%이었지만 2016년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67%, 찬성 17%로 여론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결국 2017년 5월 31일, 조기 대선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지되었습니다.
(출처 : 정책브리핑)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관계자들의 주도로 시작되었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집필진의 자질 논란과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예산의 무분별한 사용 등 진행과정에서의 허점도 하나씩 밝혀졌습니다. 충분히 전문가들과 시민들과의 논의 과정이 없었던 정부의 일방적 결정은 결국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은 전국의 다양한 계층이 함께하면서 몇 가지 성과를 냈습니다. 첫 번째는 정부의 일방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국정화 시도를 완전히 무산시켰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참여 단체의 확장으로 유기적인 연대와 협력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합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던 정책을 무산시켰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소득이 되었습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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