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고3이 되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나는 졸업을 하지 못해서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
나보다 어린 아이들과 교복을 입고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갑자기 주가를 올리게 된 바로 그 지역) 그 학교로 돌아간다. 담임선생이 나를 아이들에게 소개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고 얘기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나는 때로 그 아이들의 담임보다 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새해 첫 날
갑자기 스무살 무렵의 여러가지 공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잠이 들었다.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저 나는 남들이 사는 이십대을 지내지 못했을 뿐이다.
매일 출근을 해야했고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더 구해야했고 한 달에 한 번씩 구치소에 면회를 가야 했다.

그런데 어제 꿈에는 난데없이 내가 살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고시원이 나타났다. 빨래를 들고 세탁실 앞에 순서를 시다리고 있었다.
고시원의 낡아빠진, 혹은 낡아빠질 수밖에 없는 세탁기 앞에서 우리는 빨래를 줄을 세워 다른 사람의 빨래가 끝나길 기다렸고 축축한 빨래들을 창문이 없는 방에 널곤 했다.

냄새나는 냉장고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스레인지가 있는 휴게실도 등장했다.

잠에서 깬 나는 내 마음 어디가 아픈가를 하루종일 생각했다.

시간이 가서 그렇다.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은 자라면 떠난다.
내가 부모를 떠난 것처럼.

큰 아이는 성인식을 할 것이고 더 이상 인생이 버겹지 않은 날 술도 마실 것이다. 작은 놈은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나에게 조숙한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남편의 귀밑머리는 더 이상 하얗게 될 자리조차 남아있지 않다.
싱그럽던 스물 셋의 후배들이 서른을 넘겼다. 아이들이 엄마가 되고 시간은 지난하게 흘러간다.

삶이 지리멸렬하다고 불평할 시간따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소원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하여
흙을 밟은 지 너무 오래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잠든 한 밤에 궁색해지는 신체를 탓하면서도 깨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겪어야 할 일이나, 먹어야 할 음식이 정해져 있다는 글을 읽었다.

정말 나는 너무 오래 걷고 뛰고 서 있었다. 이제는 앉아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쉬고 싶다.

2012. 1. 2.

지나가는 길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모든 게 좋다고
모든 게 순조롭다고
늙어가는 어깨를 보며 혼자 말했다.

도로마다 움푹 패인 곳이 있다.
차가 덜컹거리는 길이 있고
바람이 심해 작은 나의 차가 흔들리는 구간도 있다.
고속도로도 있고. 속도제한 구역도 있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길에서 삶을 배운다고 말한 적 있다.
귀밑머리가 희끗해지는
또 한 명의 늙어가는 아비가 서 있다.

지금 나는 천천히 국도를 달리는 중.

모든 것은 지나가고
기억이 되고 풍경이 된다.

이루었다는 마음이 남는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미련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가라앉아 어딘가에 숨어있는 나의 감정들이 언젠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긴 터널을 이미 지나왔으므로.

-15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다시 송별하고 돌아오는 날.

앵그리버드의 진격

동네문방구에서 발견한 앵그리버드의 팬시/문구용품
저작권 문제가 현재까지 없을 것이라 추정.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 우리 아들도 앵그리버드를 시작했는데
승부욕 쩌는 이 놈이 이 게임을 하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이 문방구 옆의 동네 옷가게에선 앵그리버드 옷까지 팔고 있었는데. 
이 저작권 문제가 언제 터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게임을 모르는 아이들도 일단 캐릭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 
단순한 도형이라 아이들이 따라그리는 일도 잦다. 
이 게임은 승부보다 즐거움이 더 한 듯. 
게임산업에 대해 게임을 전혀 하지 않으므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분야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종합예술이 예전엔 연극이었다면
21세기엔 게임에서 종합예술을 구현할 수 있다. 
시나리오, 디자인, 미술, 음악, 영상미, 게다가 IT의 기술까지. 
쉽게 말해 고등학교 문과, 이과, 예체능의 모든 기능이 종합되어야 하는 것이 게임인데 
현재 우리나라처럼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하거나 
셧다운제 따위를 도입해서는
돌도끼들고 토끼나 잡으러 다니자는 거지. 
인터넷은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고 
사람이 모이지 않고 회원이 탈퇴하기 시작하면 
접속수가 줄어들고 그러다보면 광고수입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면
바로 망하는 것이다. 
검색결과 조작 루머가 돌고, 
인터넷에 글 올렸다고 사람을 구속하고
주민번호 등록으로 맘만 먹으면 신상터는게 껌인 이런 시스템으로는
아이폰, 앵그리버드, 구글등의 히트상품은 
나오기 힘들다. 
정부는 중국이 존경스럽나? 
2011. 12. 14. 

용돈

고 1인 딸아이가 용돈이 모자라다고 계속 투덜거린지 몇 달여.
교통비 포함 주 4만원을 주고 있는데
어떤 주에는 괜찮고 어떤 주는 모자라다는 것이다.

정확한 용돈기입장을 만들어서 제출하면 검토하고 같이 상의해서 조정하자고 하였으나
아이는 용돈기입장 만드는 것을 어려워했다.

결국 지난 주엔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다니고 있는 애견미용학원을 일주일 쉬고
친구들과 빵집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지출액이 더 커져서 돈이 많이 모자란다고 하였다.

두 달여전쯤 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네가 배우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노동이고 그에 따라서는 상응한 댓가를 받는 것이 옳으니 우리집에서 키우는 개 목욕을 시키면 1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는 쉬는 날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개 목욕을 시키고 1만원을 받아가곤 했다.

용돈에 대해서 갈등을 오래 빚을 필요가 없어서
네가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별도의 방안을 강구한다면 지켜보겠느냐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트윗에 이 내용을 올렸더니 필수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살림살이 예를 들어, 청소나 설거지 빨래 개기 등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과 그보다 개념을 조금 바꿔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상금을 부여하는 게 어떻겠냐는 고견을 들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때쯤에 아이에게 청소하면 얼마, 쓰레기 버리면 얼마 이런 상금제도를 만들었다가 이후 제 방청소를 하면 얼마를 줄꺼냐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어서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돈으로 환전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하여 미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아이가 토요일 오후에 일주일간 용돈을 사용한 내역을 아주 작은 노트에 적어왔다.

학교 끝나고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학원을 가거나 바로 친구들과 공부를 하러 가는 일이 잦은 것은 집에 들러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 버스비와 먹거리를 사먹는 돈이 비슷하고 중간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의 이야기였는데
집에 오면 조금 더 양질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의견이고 그 의견을 굳이 관철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여,
아이와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교통비 포함 주 4만원은 기본으로 하되 (주당 교통비가 최소 12,000원정도가 든다)
용돈기입장 일주일치 기록에 1만원 상금.
개목욕에 1만원, 발톱깎는 것에 5천원. – 이건 노동의 댓가
– 아이말로는 발톱 깎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으나 매주 개발톱을 깎을 수는 없으므로 목적은 아이에게 돈을 더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 이라 매주 해야 하는 목욕에 1만원, 2-3주에 한 번정도 해야 하는 발톱깍는 일엔 5천원으로 조정하기로 합의 –
200쪽이상의 책을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면 1만원 상금
재활용쓰레기 한 소쿠리 버리는 것에 2천원 상금.

으로 결정하고 합의했다.
모든 절차는 내가 제안하고 아이가 승락하는 방식으로 했고
독후감의 경우 200쪽이상의 책이라는 것에 대해 아이가 기준을 정하기 애매했는지 나보고 권장도서를 정해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럴 경우 엄마가 재밌다고 생각한 책을 너에게 강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엄마의 사고방식을 네가 답습할 수 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너도 옳다고 생각하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에 좋지 않은 듯 하니 네가 스스로 판단해서 즐겁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스스로 고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한 200쪽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짧은 책이라도 더 감동이 올 수 있으나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글을 읽고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므로 다수의 글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기 위해 200여쪽 이상의 책으로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아이가 수락했다.

해서 아이는 어제 오늘 이틀 사이에 개목욕을 시키고 1만원을 벌고, 일주일치 용돈기입장을 적어 1만원을 받아갔다.
집에 재활용쓰레기가 쌓였는데 그건 하지 않았다.

큰 아이의 성격적 특성상,
무조건 그러모으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딱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구하는 스타일이라 돈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책을 하루에 두 권씩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나같은 인간형이 할만한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최근들어 돈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6살 작은 놈인데
내가 저 나이 때에는 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기질인지 환경인지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돈에 대해서 매우 민감히 반응하고
모든 물건의 가격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보면 매우 흥분하며 자기가 가져도 되냐고 좋아할 정도이고,
또한 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는데
아이의 목적은 포켓몬카드를 사기 위해서이다.

5장들이 포켓몬카드 한 세트가 500원이므로 아이에겐 500원이 상당히 가치가 큰 돈이다.
얼마 전 할머니가 주신 용돈과 내가 줬던 천원짜리등이 모여 저금통에 들어가지 않은 돈이 1만원이 되었는데 이 돈으로 포켓몬카드를 사겠다고 해서
“가진 돈을 한번에 다 써버리면 안돼지”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1만원 중에 6천원만 쓰고 4천원은 저금통에 넣겠다고 스스로 대답했다.

– 나에겐 매우 감동적인 경제개념이다. 나란 인간은 이게 매우 부족한 인간형 –

아이는 이래 저래 여기 저기서 용돈이 생길 때도 있고 아직 혼자 다니지 않으니 용돈을 줄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포켓몬 카드나 슈팅바쿠간 같은 장난감을 사는 것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는 조금 고민해 볼 문제.
청소를 하면 천원을 달라고 하거나 구두를 닦으면 돈을 줄 것이냐고 묻는데
이걸 이렇게 대체해도 되는가 고민중이다.
(엄마 아빠가 주로 구두를 신지 않아 닦을 구두가 없다는 게 함정)

아무튼 그 외에도 6살짜리 작은 놈은
내가 휴대폰을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 앵그리버드를 몰래 깔아놓은 것이 발각되어
앵그리버드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길래
기적의 계산법 한 페이지에 20분으로 거래를 했는데
아직까지는 먹히고 있다.
(자랑같으나 이 아이는 덧셈 뺄셈 하는 걸 매우 즐기는 유형이다. 음..자랑 맞군. 암튼)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늘 경제개념 때문에 곤란한 일을 많이 겪은 엄마로서
아이에게 경제교육을 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큰 아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나는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계산도 느리고 개념도 부족해
일부러 너희에게 좀 인색하게 굴 지도 모른다. 절대 너희들이 나를 닮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애가 웃었다. 허허허;;

뭐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좋은 의견이 있으시다면 거침없이 알려주시면
경제개념 무탑재인 에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2011. 12. 11.

목욕탕 단상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체질상 당분간 온몸을 담그는 탕목욕이나 사우나를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쭉쭉 빼는 걸 좋아한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제일 조용한 찜질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디가 막혔는지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몇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60℃의 방에서 중년남녀가 다리를 베고 누워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어디를 놀러갈까 이야기를 한다.
정상적 부부관계로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 씁쓸하다.
부부가 된 지 10년이 된 사람들이 저리 다정한 경우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가 일종의 “경제공동체”의 속성을 더 많이 띄고 있다는 얘기다.

2.

찜질방에서 여탕에서 이어지는 통로에 여성 전용 수면방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는 자리가 있고 불가마가 있다.
여기까지는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 못하는데 많은 중년여성들이 불가마를 좋아하는 듯 하다.
불가마에서 막바로 나왔는가 웃통을 벗고 앉아 있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 목욕탕에서는 속옷을 파는 곳도 더러 있는데 이 공간에도 그런 곳이 있다.
속옷판매대의 윗쪽에 전기공사가 필요한 모양인지
아저씨 하나가 입구에서 뻘쭘거리다 전기공사를 하러 들어간다.
여자들은 등을 돌렸으나 옷을 입진 않았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여성성 따위, 이제 모두 개나 줘버린 모습인가.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판단을 하진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성욕을 일으키는 가슴이 아니라 생명을 낳아 기른 어미의 젖이 된 늙어가는 여자들이
쳐진 젖가슴을 내놓고 땀을 식히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연옥의 어느 한 복도처럼.

3.

목욕탕으로 내려가 작은 노천탕에 앉아 쉼호흡을 한다.
보호자 명목으로 최근 병원을 하도 다녀서인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심장이 계속 벌렁거려 전신을 담그지 않는다.
복식호흡만 잘해도 몸이 많이 좋아진대..하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3.

벗은 몸의 사람들을 가만히 본다.
사람의 몸을 봐도 저 사람은 어딘가가 아프구나, 혹은 아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싶다.
잘 발달된 정강이를 가진 여자,
눈썹과 아이라인에 문신을 한 여자,
가슴이 납작한 여자
출산후 군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여자
보기에도 싱그러운 어린 여자
그리고

모두가 벌거벗어 똑같이 평등한 가운데서도
멋스럽게 커다란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리고
금색의 천을 허리에 두르고 걷고 있는 날렵한 40대 후반의 여자가 있다.
다 벗었어도 멋을 부리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능력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설령 본인의 컴플렉스의 발현이거나
삶의 즐거움이거나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가치라 하더라도.
그저 그럴 뿐이다.

4.

세신관리사, 혹은 목욕관리사라고 이제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우리는 그녀들을 때밀이아줌마라고 불렀다.
때밀이아줌마들은 검은 레이스로 된 속옷을 입는다.
구분을 하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젖은 몸, 축축한 곳에서, 아무리 레이스로 되었다 하더라도, 속옷을 입고 있는다는 건 에지간히 익숙해지기 전엔 곤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가끔, 아니 가끔보다 조금 더 자주,
나는 전문가에게 내 몸을 맡긴다.
내 엄마도 이렇게 나를 샅샅이 씻겨주진 않았지.
그렇다고 무슨 모성따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들의 노동이, 매우 숭고하다는 생각을 한다.
돈과 노동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이다지도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노동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는가 늘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 삶이 너무 느슨해져 있기 때문인가.
아니, 늘 분주하나, 내 스스로의 성취감을 이룰 일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환경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전투적으로 뛰어드는 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

문제는 내가 체력을 되찾지 못해서인가
혹은 내가 정신적으로 해이해져서인가.

얼마나 많이 버려야 하는가,
벗겨져 나가는 묵은 시커먼 때들처럼.
얼마나 많이 새로워져야 하는가
얼마나 다시 치열해져야 하는가.

과연 나는 오늘 이따위로 살아도 되는건가.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왜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려 항아리에 담기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에 쫒기고 길에 쫒기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가.

생로병사의 한 가운데서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인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도
아직은 어렴풋할 뿐이다.

5.

갓 돌지난 어린아기가 탕속을 아장아장 걸으며 좋아한다.
한 손엔 뽀로로를 한 손엔 크롱인형을 들고 제 엄마에게 걸어갔다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가 그저 그 걸음마 하나 하나가 즐겁다고 까르르 웃는다.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벗는다.

나의 생명력이 어디선가 줄줄 새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처연하다.

나는 아직 서른일곱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많이 걸어왔고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고 고달프다.

2011. 11. 28.

그 어느 꿈속에서

낯선나라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고현정을 만났다.
얼큰하게 취한 그녀와 낯선 이국의 거리를 헤매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
아마 중국이나 대만 어디쯤..
음주후였으나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한 잔 더 할까 생각이 든 나는 고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RS팬서비스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마음을 접었다.
붉은 색 나의 차에 홍콩이나 상해에 있는 연립주택 지하, 남의 집 철문옆에 묶여있는 나의 자전거를 풀어 차에 실었다. 그 건물의 1층에 묶여있던 나의 개를 풀었다. 운전을 하려는데 네이버에 다니는 후배가 남편과 나타나 술을 먹었으니 운전을 대신해주겠다 했다. 후배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고 갑자기 나에게도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후배와 내가 뒷좌석에 비좁게 앉았다. 주인을 잃은 듯 귀를 붙이고 떨던 개를 불러 트렁크에 넣었다.
후배의 신랑이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이, 지금 나의 집인지, 엄마의 집인지, 우리의 나라인지 알 수 없었다.

FTA, 조약 날치기, 포털의 조작, 삼성.
오직 나만의 것들을 지키려던 혈혈단신.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다.
깨고 나니 밤 12시 28분이었다.

무엇을 하였는가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이따우로 살고 있는 게 모두 내 탓이냐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다.
너 때문이라고
당신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나는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을 하였다.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좌절하였고 노력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또 다시 원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하는
그 원점이다.

겨울이다

내가 한 번 일어섰던 그 겨울
다시 붙잡고 일어서야 할 겨울이 온다.

2011. 11. 17.

블랙박스

대형전시회 그 중 현대작을 소개하는 곳에 가면
어둡게 칸막이가 막혀있고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는 곳이 있다.
완벽한 어둠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어둠에 가까우려고 노력한 그 곳에서

멍하니 몇 분간의 비디오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24시간동안 상영을 하는 24시간짜리 Time 이라는 작품을 다 보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는다.

어둠과 가까운 이 곳은 집중이 잘 되어,
마음속의 모든 상념을 떨치고
작가가 하는 말만을 들을 수 있다.

오늘 갔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호주 현대작가 전시회 TELL ME TELL ME
에서 이름을 적어오지 않은,
호주 작가의 존재..운운 했던 비디오물이 인상깊었는데
사실 그 미디어의 예술성 보다는
그 아래 흘러가는 자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자에 익숙한 나는 문자와 그림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
그림에 전혀 몰입하지 못하고
모든 신경을 문자에 쏟곤 하는데
아무튼,
벗어나라 어쩌고..하다가 From YOU 라는 글자가 크게 나와서.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tell me tell me 전시회는 별로였다.
도록은 4만원이 넘고.
뭔가 .. 일관성이 있을라다가 말아서.
차라리 아예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면 모를까.

그래도,
그 비디오가 상영되는 그 공간.
거기가 있어서 좋은 것.

이해의 과정

오전,
휴대폰을 급하게 열어 메모장을 폈다.

“이해하고자 하지 않으면 세계는 고립된다.”

이 말을 적은 이유는, 오늘 아침 갔던 11시 콘서트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쉬는 시간에 서울대 김은혜 교수 얘기를 하면서 어디 선생을 고발하느냐.. 는 투의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김교수의 인권유린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는 듯 했지만 그녀들의 논점은 김교수의 행위보다 선생을 고발하고 신고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 때는 더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지 뭐.. 우리는 순진했던 거야. 여기서 사고가 끝날 것 같았다.
사유가 거기서 끝나버리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철학이 시작되고 사유가 시작되고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박경철의 “자기 혁명”에 낯선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유라는 말이 나온다.
뭔가 생경한 것, 낯선 것, 익숙치 않은 것에서 사고가 시작된다.
사유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사유하는 자의 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원죄론적 인간형이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나는 언제나 당하고 살았으며 적당히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에 익숙해진 인생이다.

살다 보면, 많이들 그렇게 된다.
먹고 살기 지쳐서, 세상 풍파에 내 식구를 감싸기 바빠서.
그러나 아주 쉽게 말하면, 부지런하지 않아서이다.
머리를 열심히 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다른 세대를, 다른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나의 세계 안에서 은둔하게 된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나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해 버리면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될 것 같을 때,
나의 선택에 의심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나의 자부심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두게 된다.

아주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나”는 아이폰이 좋다. 그리하여 아이폰을 구입한 나의 선택에 자긍심을 가지고 싶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해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충분히 설명할 구실이 필요하다. 아이폰의 우수성과 애플의 철학과 애플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시대의 영웅이 되어 주면 설득력은 더욱 큰 힘을 가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나의 아이폰에 대해서 반격을 가했을 때, 그리고 그가 만일 삼성이나 LG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는 나보다 못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너는 바보이고, 너는 멍청하고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 라는 논리를 갖추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은 힘을 추구한다.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한 지위, 그것은 사회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은 그저 힘을 향해 내달린다. 그건 동물적 본능이다. 힘에 대한 욕구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각자 인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오늘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어버이연합의 모욕적인 관 퍼포먼스도 그런 맥락이다.

http://www.vop.co.kr/A00000447906.html

이 자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방식을 택했다.
구석에 몰린 쥐는 물게 되어 있다. 이들은 구석에 몰렸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납득해주지 않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세상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힘을 과시하고 싶다. 그들을 조정하는 자가 그 누구이건 간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노인”으로 폄하되는 그들은 여기에 동참했고 행동했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한 자는 선동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그렇다.

만일 내가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물론 그들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규명이 가능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으나,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일반화라는 가장 흔한 오류와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物과 思의 관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이들의 오류는 인간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인간의 사고력을 비하하는 것이므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고 갈쿠리 손을 휘두르던 상이군인회, 재향군인회를 연상케 한다. 이들 중엔 간혹 그런 복장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집단엔 그 옛날 전쟁에 나가 희생을 하고도 국가에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인원들도 중복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는 그들의 원한과 희생에 대한 댓가를 돌려주지 못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분노했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내가 팔다리를 희생하며 빨갱이와 싸워 지켜온 이 나라”를 다시 빨갱이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이들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내 삶을 다시 전복시키는 공포, 내 팔과 다리를 다시 내바쳐야 할 지도 모르는 공포, 혹은 내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 자식잃은 어버이가 될 지도 모르는 그 공포.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평생을 지배당한 이들에게 국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들을 규합하고 달래고 높이 치하하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분노하고 궐기하고 반대하고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가서 경찰과 비슷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들은 분기탱천하여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논리적 이해와 감성적 이해는 다르다.
논리적 이해는 이성적 분석이 동반되지만 감성적 이해는 행위의 용납과 허용까지 포함한다.

내가 만일 이 행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감성적 이해까지 하게 된다면.

내가 믿고 있던 유교적 윤리관 – 망자에 대한 예의부터 시작해,
노무현이 가져다 주었던 희망과 열망,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의 카타르시스, 저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하던 기대감, 그리고 그를 선택하고 지지함으로써 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데 작으나마 힘이 되었다는 자부심, 군부와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과 상충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와 꿈꾸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심각할 정도로 깊은 괴리감을 느껴 가치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그 절정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관념의 집단은 그들을 배척하고 저주하여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왜 그들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가와 그렇다면 저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서 멈추면 된다. 그들은 인간이 갖춘 이성적인 모든 명예와 숭고함을 쥐똥처럼 던져버렸다.

그리고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정도인가 알릴 수 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너의 처지에선 그럴만 하다, 나의 처지에선 이럴만 하다. 라는 뜻이지, 너의 주장도 옳고 그에 상치되는 나의 주장도 옳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신체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욕을 하며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만방에 떨치듯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시 이 똥밭같은 세상에 끌어내려와 짖이기고 못박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2011. 11. 10.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 309일째 농성이 끝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