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5 – 성욱

세상 모든 만물은 다 이유가 있다.
수긍할 수 없는 말이었다. DJ박스에 한참을 앉아 있던 성욱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컨트리음악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성욱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혼자 그 말을 두 번 중얼거렸다.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며칠 째 하고 있었다. 낮에는 바텐을 보는 영상이가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성욱이 음악을 틀면서 교대하고 있었다. 컨트리 음악의 LP는 약 3천장쯤 되었다. 여태 작업한 양은 500장도 되지 않았다. PC통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컴퓨터가 과연 삶에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의심하던 처지였다. 자기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하는 사장이 이 일을 지시했다. 이 집에서 일을 한 지 6개월이 되었다.
낮에는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다. 11시쯤 출근을 하면 일찍 나온 동료들이 햄버거 패티를 한 장씩 싸고 있었다. 냉동된 패티를 불판에 올리고 간혹 스테이크를 굽기도 했다. 저녁에는 주방장이 출근하기 때문에 주방에 있던 성욱은 DJ 박스로 돌아가고 영상이는 바로 들어갔다.
하루종일 이 햄버거 가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큼큼한 고기 누린내는 익숙해졌다. 간혹 관심이 가는 웨이츄리스가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학연수를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성욱에게 이 곳은 매우 좋은 어학연수기관이었다. 사장내외는 한국인 여자와 미국 남자였는데 남자 사장은 단어가 현란하지 않으나 매우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음악을 틀고 있다 보면 DJ 박스에 와서 신청곡을 말하며 이런 저런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욱은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되물었다.
“두 유 노우 메탈리카?”

컨트리음악을 주로 틀기 때문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시대착오적인 옷을 입은 남자들도 꽤 드나들었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엔지니어라고 대답했다. 거의 다 엔지니어였다. 경영을 전공하는 성욱은 그들이 어떤 회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지도 궁금했다. 음악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음악을 틀어달라고 CD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로움, 15년이 넘은 지하 햄버거 가게에 눅진하게 늘러붙어 있는 정서였다.

9시가 되었다.
웨이츄리스들이 바 앞으로 모여 줄을 맞췄다.
미스박이 매일 노래를 정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새로 들어온 웨이츄리스들에게 미스박이 춤을 가르쳤다. 짧은 자주색 치마를 입은 젊은 웨이츄리스들이 라인댄스를 췄다. 매일 세 곡의 라인댄스를 췄는데 미스박은 오늘도 귀여운 글씨로 메모지에 노래 세 곡을 적어줬다. 이미 MP3로 만들어 저장해 둔 곡들이었다. 성욱은 오케이~! 라고 호기롭게 대답하며 노래를 틀었다. 새로 들어온 어린 웨이츄리스는 춤을 출 때마다 힘이 넘쳤다. 얼굴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춤추는 여자들은 모두 즐거워보였다. 성욱은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배워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세 곡의 라인댄스가 끝나고 바 앞으로 자리를 옮겨 춤을 구경했던 손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바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주방쪽으로 가는 새로 들어온 어린 웨이츄리스에게 성욱이 말을 걸었다.
“현아?”
눈이 동그란 아이는 성욱이를 빤히 보았다.
“바닥 꺼질 거 같애.” 성욱은 말이 끝나자마자 목소리와 안 어울리게 요란하게 웃었다.
여자애는 사람 좋게 씩 웃었다.
“너 성격 좋지? 그래 보인다.”
“성격 좋은 게 뭘까아요.?” 현아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주방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귀엽다. 10시가 넘어 손님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자 성욱은 음악을 걸어놓고 창고쪽으로 갔다. 주방에 있던 세 명의 청년도 창고쪽으로 나왔다. 목장갑을 끼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까만 봉투에 하룻동안 밀린 쓰레기를 쑤셔박았다. 빈 맥주병과 콜라병도 옮겨야 했다. 햄버거 가게는 지하 1층인데 창고쪽 문을 열면 골목의 계단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검은 쓰레기봉투를 전봇대 옆에 차곡차곡 쌓고 청년 넷이 쪼그려 앉아 별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며 담배를 피웠다.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만나기 힘든 친구들이었다. 화장실에 들러 손을 닦고 DJ 박스에 들어가 앉아 헤드폰의 한 쪽만 대고 있는데 현아가 DJ 박스 앞에 서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글씨를 적을 곳은 DJ박스 외에도, 여러 곳에 있었다.

“많이 벌었어?”
“아직 얼마 안 됬으니까 별로 없죠. 아까 스테이크 손님 있었는데, 3천원 주고 갔어요. 오늘의 빅팁.” 현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작은 수첩에 숫자를 적고 있었다. 성욱은 현아의 글씨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오빠.”
“응?”
“성욱이오빠죠?”
“아. 내 이름 몰랐어?”
“성욱이오빠. 오빠 송승헌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죠?”
성욱은 얼굴이 벌개지며 크게 웃었다.
“되게 쑥스러워하네.” 현아는 수첩을 들고 씩 사라졌다.
뻘쭘해진 성욱이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현아가 다시 나타났다.
“숱댕이 눈썹 성욱이 오빠. 오빠 고대 다닌다면서요?”
“아.. 휴학중이야.”
“고대 다니는 사람이 왜 이런 데서 일해요?”
성욱은 다시 요란스럽게 웃었다. 쑥스러워요 라는 문장이 성욱에 얼굴에 반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재밌잖아.” 현아의 표정이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성욱의 얼굴은 씨벌겋게 달아올랐다.

물이나 마시려고 DJ박스의 쪽문앞으로 문을 숙였다. 선반이 길게 놓여 있고 그 아래 공간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몸을 잔뜩 웅크려야 했다. 쪽문을 나와 몸을 일으켜는데 다시 현아가 나타났다.
“오빠 되게 쉬운 사람이구나?” 성욱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멈춰 있었다.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곳이 아니면 저런 여자애는 어디가서도 만날 수 없을 것이었다. 눈이 길고 얼굴이 호빵처럼 동그란 저 아이는 어디서 왔을까. 성욱은 자기가 안암동이 아닌 조치원 캠퍼스라는 걸 얘기해도 모를 거라고 확신했다.
성욱은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들며 바로 가서 영상이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했다. 영상이 맥주컵에 물을 따라줬다. 단 숨에 물을 들이킨 성욱이 영상이를 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연애나 해야겠다.”
영상이 성욱을 빤히 바라보며 정색하고 대답했다.
“미친놈. 너하고 안 해 이 개새끼야.”
성욱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영상을 쳐다봤다.
“너… 너.. 게이야?”
“아니야 이 미친년아 물마셨으면 꺼져.”

#한사람이야기

 

2014. 7. 2.

한사람이야기 4 – 곤화

유리로 된 샷시문은 닫을 때마다 불안했다. 유리창에 반짝, 소주케틀이라는 맞은편 가게의 글자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험한 골목에 가게를 낸 것은 염려하지 않았으나 가게 문을 닫을 때마다 불안이 다시 떠오르곤 했다. 골목이 험하다는 건 드나드는 사람들이 험하기 때문이다. 험한 사람들이 드나들어서가 아니라 흥분한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흥분한 이유는 어두운 밤 좁은 골목길 현란한 간판과 더불어 소주케틀이라는 술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젊었다. 소주케틀은 과일맛이 나는 탄산음료에 소주를 부어 만든 소주 칵테일이다. 커다란 1.5리터 페트병의 윗부분을 잘라내어 탄산음료를 절반정도 담고 소주를 한 병 붓는다. 간단한 제조법으로 만든 소주케틀은 1개의 페트병에 2000원에 팔렸다. 주말에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샀다. 머리가 짧고 얼굴은 하얀, 더러 여드름도 난 미국병사들이 소주케틀을 들고 골목에 가득했다. 헌병은 맨 위 디스코클럽 앞에 서 있고 아이들이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청년들이 담배를 물고 주말을 가득 채웠다. 곤화는 소주케틀을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이 만 20세가 안 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곤화의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다. 2천원의 소주케틀로 밤을 홀라당 보낼 수도 있는데 4천원짜리 병맥주는 아이들에게 고급술이 되었고, 2천원짜리 라면을 먹으러 들어오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아직 골목은 반쯤 차 있었다. 반쯤 비어있다는 얘기도 된다. 다른 주말엔 새벽 4시까지 문을 열어놓지만 오늘은 일찍 닫는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곤화는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고 되묻는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하이, 하고 손 흔드는 아이들이 있다. 곤화의 치즈라면을 먹어본 아이들인 모양이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등뒤로 넘어가면 붉은 조명이 켜진 작은 바들이 아직 영업중이다. 더러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아주 오래전, 곤화가 이 골목에 들어서기 전에 저 바 뒷부엌에서 한 여자가 끔찍하게 죽었다. 곤화는 가끔, 그 여자의 꿈을 꾼다.

골목이 끝나자 다시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길을 메웠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에 얼굴색과 머리색이 다른 사람들이 서 있었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한 손은 호주머니에 꽂은 남자들이 많다. 곤화는 골목을 내려가 시장통으로 직진했다. 시장통 끝에는 기가 막힌 만둣국을 파는 집이 있다. 오늘도 만둣국집 아이들이 가게에서 자고 있다. 곤화는 어디선가 잘 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한다. 눈물 따위. 라고 입을 다물어도, 눈물이 마른 것은 아니다. 만둣국집을 지나 살인사건이 났던 햄버거집 2층으로 올라간다. 생각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죽었다. 유명해지는 죽음이 있고, 잊혀지는 죽음이 있다. 호텔 뒤에서 칼부림이 나 세 명이 죽었다는데 소문만 무성하고 보도되지 않았다. 어느 클럽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경찰은 오지 않는다.

머리를 양갈래로 내려 묶은 젊은 여자 앞에 곤화가 앉았다. 둘은 카스 맥주를 시켜 몇 병을 비웠다. 곤화 앞에 앉은 여자가 울었다. 곤화는 냅킨을 달라고 해서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곤화는 여자에게 올 해 몇 살이냐고 묻는다. 곤화의 얼굴근육은 움직이지 않는다. 너 많이 어렸구나 라고 말했다. 여자가 피식 웃는다. 눈가가 벌겋다. 곤화는 종업원을 불러 하이네켄 두 병을 시킨다. 여자와 곤화는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더러 웃기도 한다. 곤화가 가슴을 펴고 등을 의자에 바짝 붙인다. 앞에 앉은 여자와 거리를 만들고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곤화는 몸을 다시 숙여 젊은 여자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 본다.

“정말 돈 벌고 싶어?”
“벌어야 돼요.”
“너 먹고 사는 것만 벌면 되잖아.”
“동생 학교 보내야죠.”
“내년에 졸업이라며.”
“내년에 엄마가 출소해요. 방도 구해줘야 되고. 한 달에 삼백만원만 벌면 금방 될 거 같아요.”
“정말 그렇게 벌어야겠어?”
“안 그러면 어떡해요. 방법이 없는데.”
“그렇게 벌 수 있는데가 있긴 해.”
곤화는 맥주잔 앞에 놓인 땅콩을 입에 넣었다. 오물거리는 곤화의 입술이 더욱 작아보였다. 곤화는 땅콩접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 쉬는 날도 없고. 낮에도 일을 해야 되고.. 밤에는 더 바쁘고..내가 그걸 한 4년 했어. 그래서 지금 사는 집 전세잖아. 4-5천 정도는 모았지… 집을 살 정도까지 버는 건 아니고..”
“어딘데요?”
“말해주기 싫다.”
“예전에 저 아는 언니가 빠찡꼬에서 동전바꿔주는 거 하면 돈 많이 번다던데. 손님들이 잭팟 터지면 팁도 막 준다면서요.”
“……. 그런 거 아니야.”

곤화는 땅콩을 다시 입에 넣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랗고 붉은 네온사인들이 더러 꺼지고 더러 반짝였다. 곤화가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자 앞에 앉은 여자는 더 묻지 않고 맥주를 마셨다.

“언니는 그 루즈가 되게 잘 어울려요.”
“그래?” 곤화가 활짝 웃었다. 속쌍커풀진 눈은 강아지를 닮았고, 코도 입도 작았다. 하얀 피부에 굵게 말은 파마가 잘 어울렸다. 씨익 웃는 곤화의 표정은 매우 천진했다. 내일은 즐거운 소풍날, 이라고 말하는 듯한 웃음이다. 곤화는 젊은 여자와 이야기를 하다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웃을 때마다 빨간 립스틱이 반짝거렸다. 맥주잔에 묻은 곤화의 립스틱 자국도 반짝거렸다.

하늘끝이 파래졌다. 둘이 마신 맥주병이 창가에 나란히 서 있었다.
“야 해뜬다.”
곤화는 계속 땅콩을 먹고 있었다. 서너개를 한 번에 집어 입주변에 손을 대고 하나씩 까넣었다.
“미경언니 왔을라나..?”
“처 자고 있겠지뭐. 요새 만나는 사람도 없잖아?”
“스테디는 없지” 젊은 여자가 재미난 일이 생각난다는 듯이 웃었다.
“가자 야. 나 피곤하다.” 파란 하늘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파란 청바지를 입은 곤화는 계산서를 들고 빨간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사람이야기

2014. 7. 1.

한 사람이야기 3 – 정아

“에휴. 이러고 살아서 뭐하나 모르겠다.”
“같이 죽어. 같이 죽어? 엄마 우리 같이 죽어?”
다섯 살 짜리 아들이 정아의 손을 잡았다. 정아는 신발을 신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길고 작은 정아의 눈은 또 초승달이 되었다.

“뭘 같이 죽어? 쪼끄만게!”
“엄마 맨날 죽어?” 정아는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하였다. 약 3초간.
“너 어디 할머니 앞에 가서 그 소리 해봐라. 뭐라 그러나.”
등 뒤에 선 여자는 다문 입을 열었다.
“애들 앞에서 숭늉도 못 마신다더니.”
“이러니 내가 살겠니?” 정아는 얼굴도 들지 않고 아이의 신발을 신기며 말하였다.
“이모 안녕.” 아이가 집안에 선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여자가 말했다.
“얘 맡기고. 일찍 나갈게.”
“조심해서 가. 엄마 말 잘들어?”

아이는 신발을 신고 뭐가 좋은지 폴짝 한 번 뛰었다. 현관에 놓인 어지러진 신발 때문에 아이가 미끄러질까 염려되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정아의 왼손목에 샤넬팔찌가 찰랑. 움직였다.

정아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반지하를 벗어나려면 몇 칸의 계단이 필요하고 그 집의 대문을 나서면 다시 내리막길이다. 골목을 벗어나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난다. 정아의 집까지는 몇 개의 계단과, 몇 번의 오르막을 더 올라야 할 것이다.

“엄마 돈 많이 벌어?” 아이가 말했다.
“그럼. 엄마 돈 많이 벌지. 아빠보다 더 벌지.”
땀이 송글송글 돋아났다. 아무리 화장을 진하게 해도 기미는 쉽게 눈에 띄였다. 눈두덩이에 깊은 아이라이너가 번질까, 새로 산 마스카라로 길게 올린 속눈썹이 번질까 걱정되었다. 정하는 땀을 닦지 않고 길을 걸었다.

“벌어야지 그럼.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아이는 땅바닥의 불규칙한 무늬를 보며 제 나름대로의 규칙을 가지고 건너 뛰며 말했다. 애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정아가 피곤에 찌들은 얼굴로 인상을 쓰고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나갈 때 아이 할머니는 나가는 정아의 뒷모습에 대고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 아들이 사고만 안 쳤어도 이러고 안 살아.” 정아는 쏘아붙이는 것도 아니고 뇌까리는 것도 아닌 말투로 대답하곤 했다. 아이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부엌의 쪽문에서 바로 길로 떨어지는 정아의 맨다리를 보며 문을 닫곤 했다.

오늘도 같은 말을 할까. 문득 정아는 간밤에 들어오지 않은 남편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냉면이나 한그릇 먹었으면 좋으련만 마음 뿐이었다. 사람들이 간혹 줄을 서기도 하는 허름한 냉면집을 지났다. 아이는 별 말 없이 순순히 걸었다.

“재윤이 놀이방 재밌어?”
“어.” 아이는 계속해서 바닥만 바라보고 걸었다. 불평이 없는 아이다. 그게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은 고단하기만 했다. 아침 9시에 나와 밀린 설거지를 하고 가스불을 올려 자갈을 달궜다. 10시부터 주방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11시 반부터는 점심시간 손님들이 몰려왔다. 집게를 들고 몰아치는 전표를 확인하며 고기를 구웠다. 뜨거운 접시에 이력이 난 손은 물집도 잡히지 않은지 오래, 굳은 살 덕에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손끝이 고마울 때가 있다. 오늘은 점심시간을 마치고 잠시 집에 들렀다. 혜선이가 3시부터 6시까지 대타를 뛰어주기로 했다. 대타를 뛰는 혜선에게는 시간당 3천원씩 9천원을 줘야 한다. 지갑에 그만한 돈은 있을터. 4시쯤 되면 점심손님이 빠져나가고 저녁손님도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라 일수쟁이가 들렀다. 정아는 매일 꼬박꼬박 도장을 찍었다. 오늘은 6시쯤 보자고 이미 전화를 했다. 나가자마자 일수쟁이부터 만날터였다. 남편은 동창과 영동에 주점을 열겠다고 설치고 다니고 있다. 포장마차 해먹은 게 언제라고 또 날뛰기 시작한다. 말릴 기력도 없고 그저 안보고 싶을 뿐이다. 정아는 요즘 이혼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헤어지면 이 동네를 떠나고 싶고, 아이는 키울 자신이 없고, 시어머니가 젊으니 아이를 맡기고 훌훌 떠나는 게 가장 좋을 성 싶다. 얼마 전 사람을 통해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들었다. 파출부 생활 5년에 설거지만 2년이다. 밤에는 업소에서 설거지를 했고 낮에는 업소 청소를 했다. 가서 무엇인들 못할까 정아는 지금보다 그 어떤 것도 나을 것이라 확신했다.

터번캣을 쓴 남자들이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걸어오고 정아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시댁에 당도했다. 내년에는 이혼해야지. 정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샷시문을 열었다.

출렁. 하고 유리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엄마” 정아는 시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정아의 어깨에 매달린 까르티에 배낭도 한 번 출렁였다.

2014. 6. 30.

한 사람이야기 2 – 김언니

김언니는 오늘도 소방서 앞에서 골목을 올라간다.
어이 김언니 오늘도 한 잔?
호객을 하는 사내가 웃으며 말한다. 김언니의 눈동자는 이미 풀어졌고, 머리도 길게 풀어졌다. 앞이 흔들리는지 걷다가 눈을 부릅떴다. 김언니는 눈이 컸다. 눈썹도 짙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인데 얼굴크기도 작지 않았다. 걸을 때는 늘 팔자로 걸었다. 작지 않은 키에 어깨가 단단하여 힘이 좋아 보이는 체형이었다. 김언니를 보고 다들 남자같다고 했다. 매우 선명한 이목구비에 단단한 몸, 종아리와 장단지도 보기 좋은 운동선수 같았다. 목소리도 크고 우렁찼으며 손을 들고 인사를 할 때뿐 아니라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을 때도 늘 당당했다. 술에 취해 손을 들어 경례를 붙이며 크게 말하곤 했다. “꼬메시따아쓰!” 술이 더 취하면 크게 웃으며 갑자기 정색을 하곤 “아스딸라 비스따 베이베!” 라고 말하곤 했다. 김언니가 하는 말은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에서 6년간 학교를 다녔다 했다. 그 누구도 김언니가 어느 과정을 공부했는지 알지 못했다. 김언니가 졸업을 했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들은 자가 없었다. 김언니와 같이 살던 룸메이트는 김언니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김언니가 한인교회에서 학생회를 이끌었다는 증거를 여럿 찾아내었다. 김언니는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지 않았고 술을 마셨다. 그건 룸메이트가 김언니를 만나기 전부터였을 것이다. 처음 만난 날에도 카스 한 병을 들고 와 따라 마셨다.
“나는 나발은 안 불어. 맥주는 컵에 따라 마셔야지.” 김언니는 맛있게 맥주를 마셨다.
햄버거를 나르고 스테이크를 굽는 저녁이 끝나면 김언니는 짧은 치마 유니폼에 붙은 돈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네 장을 꺼내 바에 올려놓았다. 바텐더 여자는 아무 대답 없이 카스 맥주와 시원한 맥주잔을 내어주었다. 딱 한 병을 마시고 김언니는 옷을 갈아입었다. 가게를 나서 높은 언덕을 올라가 다른 바에 도착했다. 담배를 물고 춤을 추다가 다시 바에 앉아 카스맥주를 마셨다. 언제부턴가 김언니는 500cc 맥주 한 잔과 조니워커 레드를 같이 시켰다. 조니워커 레드 한 샷이 술이면 생맥주는 안주였다. 집열쇠는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에겐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동생은 매일 저녁 집에 있었으므로, 집 열쇠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김언니! 신발은?”
검은 조끼를 입은 나이트 웨이터가 김언니를 불렀다.
김언니는 술이 너끈히 취한 듯 커다란 눈을 끔벅거렸다. 길게 풀어헤진 웨이브진 머리는 아주 까맸다. 이마에 손을 얹더니 씨발…이라고 읖조렸다. 웨이터는 더 말을 걸지 않고 김언니를 가만히 보았다.
김언니가 맨발로 언덕을 올라갔다. 웨이터가 옆에 선 사내와 김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뭐라고 말을 했다. 길가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이 김언니를 알았다. 아무도 김언니에게 신발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멍하니 김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왓쎱?!하고 웃으며 지나가는 흑인들도,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는 백인들도 김언니가 휘청대며 팔자걸음으로 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김언니가 언덕을 올라 맨 꼭대기 작은 샤시문을 열었다. 이목구비가 아주 조밀하고 작고 예쁜 여자가 굵은 파마 머리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형광등이 밝게 켜진 바에 앉은 여자가 김언니를 빤히 보았다.
 “미친년. 신발은 어쩌고?!”
 “씨발…” 김언니는 탁자위에 엎드렸다. 담배를 피우던 여자는 카스 맥주 한 병과 맥주컵을 하나 꺼냈다. 엎드린 김언니의 앞에 앉은 여자가 맥주잔에 맥주를 따랐다.
밖에는 소란스런 음악소리가 들렸다. 김언니는 코를 골기 시작했고 여자는 잔에 따른 맥주를 마셨다.
2014. 6. 29.

한 사람이야기 1- 김여사

김여사가 3층에 옥탑하나를 얹은 건물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1층에는 서너개의 점포에 세를 주고 2층엔 살림집이 세 가구 정도 들어올 수 있었다. 지하도 꽤 평수가 넓어 어떻게든 세를 낼 수 있을터였다.
동네엔 평수 작은 빌라들이 촘촘히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퍼와 시장이 생겨났다.
근처엔 더러운 개천이 흘렀고 옥상에 올라 보면 산이 보였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어도 그리운 것은 변함 없었다. 구태여 그립다는 단어로 표현할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한가롭지도 않았다. 돈을 쌓아놓고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라 어느정도의 부채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부쩍 자라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할 터였다.

옆 건물엔 두서너살 많은 여자가 1층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올린 머리를 한화려한 여자였다. 건물을 올릴 때 일꾼들 찬을 해다 나르곤 하면 힐끔힐끔 들여다 보는 게 영 거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건물이 한복판에 들어선다며 입방정을 떠는 모양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그닥 싫지도 않았다.

건물을 다 짓고 아들 셋을 앞세우고 이사하는 날 옆 집의 올린머리 여자는 빤히 식구들이 짐을 나르고 일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내리 보고 있었다. 어찌됬든 이웃간이니 인사나 나눠볼까도 싶었지만 놀란 괭이눈 같기도 하고 째진 메기입같기도 한 게 영 밥맛이 떨어져 아는 척 할 맘이 싹 가셨다.

일 년쯤 지난 뒤에 옆 집 여자는 김여사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고 때때로 불쾌한 말을 서슴치 않았으나 지척에 사는 입장에 쓴 소리 하거나 얼굴 붉히기도 싫어 참 특색있는 인물이다 생각하고 지냈다.

“나는 자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세상에 저 여자는 뭔 복이 있어 저렇게 새파란 나이에 이런 삐까뻔쩍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오나 하고 빤히 봤다니까.”

옆집여자가 1년쯤 지나 김여사에게 칭찬이랍시고 한 얘기였다. 올 때마다 빈 손으로 와서 이런 저런 동네 흉이나 늘어놓고 가는 옆집 여자였지만 김여사는 새파란 나이에 뭔 복이 있어, 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그간 부엌없는 집에서, 화장실 없는 집에서 전기 아껴가며 애들 눈 버려가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옆집여자에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편하게 살아온 여편네로 알아주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김여사는 헤헤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 치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소란스런 옆집 여자가 감색 자켓을 하나 빌려서 돌아가고 난 뒤였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다 큰 아들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빈 집으로 긴 햇살이 들이치는 날이었다.

– 하루종일 생각나는 이야기라 휴대폰으로 적어봄..
좀 진지하게 써볼 걸 그랬나..

 

2014.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