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없는 통영국제음악제

통영국제음악당의 콘서트홀은 1층에서 외부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마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을텐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라 외부 주차장에 대고 올라가느라 내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콘서트홀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니 주차장에서 올라오리라 생각했다.

약 3층 높이의 콘서트홀의 풍광은 꽤 멋졌다.

입장권을 늦게 예매한 탓에 표가 몇 장 없어 5층 객석을 예매한 것을 발권하고 나서 알았다. 객석이 5층씩이나 되나 싶어 엘리베이터를 찾았는데 객석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는 없다고 했다.

입장권을 확인하고 있는 직원에게 5층까지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5층까지 걸어올라갈 수 없는 사람이고 내려올 때는 더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말 연결 통로가 없느냐고.

이 직원은 없다고만 대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나는 10년 넘게 관절염을 앓고 있다. 2층 정도는 불가피하게 계단을 쓰기도 하지만 에지간하면 계단은 피하는 게 내 건강에 좋다. 하루 5-6천보가 한계이고 1만보를 걷게 되면 다음 날 후유증이 오래간다. 반월상연골판 파열로 시작된 무릎문제는 연골이 닳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어지고 남들보다 무릎 주변 근육을 훨씬 더 쓰기 때문에 피로도가 상당하다. 특히 제일 안 좋은 건 계단을 내려올 때 받는 충격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니, 그러면 장애인과 노약자는 아예 입장 불가라는 말인가 싶어 황당해 하고 있으니 체격이 좋은 젊은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제가 관절염이 심해 5층까지 걸어갈 수 가 없어요. 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줄 상상도 못하고 예매를 잘못했네요. 무슨 방법이 없겠어요?” 물었더니 이 직원은

“아.. 네 고객님. 저희도 그 문제로 민원도 많아 들어와서요. 문제긴 하죠. 저희도 시설 보완을 준비중인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지만…”

“아니 그러면 저는 공연을 못 보겠네요? 아니 국제음악당이라는 데가 어떻게 이렇게 설계를 하죠? 이건 인권위에 진정을 넣어도 되겠네요.”

라고 화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티를 냈다. 젊은 직원은 잠깐 침묵하더니 통영 억양이 섞인 표준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표를 바꿔보겠습니다. 1층에 잔여좌석이 있는지 살펴보고 바꿔드리면 어떨까요?”

이보다 좋은 제안이 있을 수 있나. 나는 반색을 하며 당연히 그러면 좋겠다고 고마워했다.

직원이 매표소로 들어가 한참을 안 보이더니 표 두 장을 가지고 나왔다.

박부가 직원이 나오는 걸 보고 다가가 표를 받으려고 하자 직원이 나에게 꼭 직접 설명을 드리겠다고 하더란다.

로비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온 그는 그 옛날 패밀리레스토랑의 직원처럼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꿇어 앉더니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시설 문제가 있어서 불편을 겪게 되셔서 죄송하고요. 지금 1층은 표가 없다고 해서 제가 2층 좌석을 구해봤는데 2층도 어려우실까요?” 라고 했다.

청년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 얘기하는데 괜히 승질부렸다 싶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만 남겨서 “아닙니다. 2층은 제가 갈 수 있어요. 2층 정도는 괜찮습니다. 선생님 배려해주신 건 제가 꼭 기억할게요. 선생님 잘못은 아니죠. 건물 설계를 잘못한 건데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그가 가져온 표 두 장과 내 표 두 장을 바꿨다.

공연장은 사진과 같다. 5층은 아니고 4층이었을거다. 통영의 숙소들도 4층이 없었다. 아직 4자를 쓰지 않는 거다. 2층의 객석도 2층에 도착하면 반층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영화관도 그렇듯이. 

공연이 끝나고 나는 어셔에게 휠체어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맨 앞이나 맨 뒤에 자리를 마련한다고 대답했다.

오늘 공연은 2층 합창석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객석에 앉아 휠체어없이 밖을 다닐 수 없는 내 친구를 생각했고 의족을 쓰는 지역 선배를 생각했다. 다리가 휠대로 휘어 서 있으면 양쪽 다리가 마름모를 만들던 통영활어시장의 회뜨는 할매도 생각했다. 뇌병변을 앓거나 뇌성마비가 있거나. 당장 이 자리에 있다면, 나와 같은 일을 겪을 사람은 떠올려보면 한 두명이 아니다.

어딘가 객석을 몇 개만 뜯어내면 될 일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인권과 인류애가 없는 공연장에서 국제음악제라니 어불성설이다. 다 개소리들이다.

2022 통영트리엔날레

통영국제음악제에 이어 통영국제트리엔날레가 개막했다. 올해가 1회.

운좋게 날짜가 맞아 예상도 안한 통영트리엔날레를 볼 수 있었다.

지역연계와 섬연계 기획전 등 다양한 연계전시가 이어진다. 섬연계라니 나같이 도시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자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 섬연계까지 볼 수는 없어서 주제전과 지역연계전인 전혁림 특별전만 보고 왔다.

통영시내 셔틀버스는 있는데 섬 셔틀배는 없다고. ㅎ

주제전은 구 산아SB(조선소) 연구소 건물에서 진행된다. 주차장이 널직하고 진행요원들도 충분히 배치되어 있다. 마당에는 사진처럼 각 섬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보시다시피. 뭐 딱히 우와. 하긴 쫌.

주제전은 바다, 생명, 시간을 주제로 한 Take Your Time.

일반 성인 입장료 12,000원.

마지막 티켓팅은 5:15이고 전시는 6시까지 관람 가능한테 – 이 내용이 홈페이지에 없다!

* 직관적 홈페이지 디자인 좋은데 제발 정보를 중요하게 만들자.

전시장은 모두 컴컴하다. 사방이 까맣다. 작품이 돋보이고 집중도가 높다.

1층부터 7층까지 전시가 이어지는데, 그렇다. 계단에도 미디어아트 설치가 있어서 계단으로 올라야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다행히 층마다 다른 전시는 아니고 한 작품이 1층부터 7층까지 이어진다.

한 층 올라 각 층의 보통 2개실의 전시를 보고 또 한 층을 오르는 식이다. 엘리베이터는 차단봉을 설치해뒀는데 진행요원에게 엘베를 쓰겠다고 하면 차단봉을 열고 엘베 버튼까지 눌러준다.

(일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다 분노하고 왔으니 여기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엘베를 타봤더니 엘베는 환한 형광등 그대로다. 그야말로 전시를 보던 분위기를 홀딱 깨주는 것. 전시에 집중하기 위해 올라갈 때는 엘베를 포기했다.

대부분 관람객들은 7층까지 천천히 걸어올라갔다가 엘베를 타고 내려왔다. 중간에 미디어아트 관람실에 낮은 빈백의자가 있어서 쉴 수는 있겠으나, 충분하지 않다. 

4층인가 5층에 미디어아트 모니터만 대여섯대가 전시된 방이 있는데 한 작품을 표현한 모니터에 빛비침이 심해서 반대편 작품과 좌우 양측의 미디어 작품이 계속 반영되었다.

작가가 이걸 봤을까. 작가도 허락한 일일까? 무지하게 궁금했다.

전반적으로 주제가 명확히 반영된 작품들이 있었고 나쁘지 않았으나 주제전이라기엔 통영이라는 지역성을 조금 더 강조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쉽게 말해, 바다와 생명, 시간은 알겠는데 그 안의 사람과 노동의 이야기가 쏙 빠진, 잘 정돈된 느낌이 강했던 건지, 내 기대가 촌빨인건지 모르겠고.

7층에서 엘베를 기다리며 서울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휠체어를 빌려볼까 생각했다. 등록증이 없으면 못 빌리지 않을까. 눈높이도 안 맞겠지 등등 여러 생각을 했다.

보행약자의 삶의 질은 이렇게 곤두박질친다.

아무튼.

엘베를 쓸 수 있으니 엘베 내부 조명을 어떻게든 너무 홀딱 깨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고.

전시 기획에 장애와 안전은 뒷전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건강하고 튼튼한 자들을 위한 예술잔치.

• 전혁림미술관도 마찬가지다.

3층까지. 엘베 없다.

• 트리엔날레 정보는 검색하시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보가 많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