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통일국민협약 도출을 위한 사회적대화

보수, 중도, 종단, 진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시대의 평화통일 민간운동의 방향을 구상합니다.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경기지역 민간평화통일운동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범시민 토론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신청 마감 접수 8월 19일 월요일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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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 소개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약칭 통일비전 시민회의) 소개

▶분단현실은 우리 일상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우리의 삶의 질, 행복한 미래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모든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하여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여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
이 중요합니다.
▶통일비전 시민회의는 전국 각지의 각계각층 시민이 정파를 초월하여 참여하는 사회
적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촉진, 형성해 나가기 위해
2019년 4월 30일 발족했습니다. 통일비전 시민회의에는 7대종단과 보수‧중도‧진보
시민사회단체가 고르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통일비전 시민회의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합니다.

▶한반도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를 다양하게 전개합니다.
▶지역과 부문은 물론 다양한 대화 주체를 구성합니다.
▶대화의 의제 방법론 등을 개발‧보급합니다.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사업을 시행합니다.
▶소통과 협력에 기반한 문화‧사업‧제도를 만들어 갑니다.

◎통일국민협약(가칭) 소개

◎통일국민협약 사업 개요

▶통일국민협약(가칭)은 통일문제에 관한 국민의 약속입니다.
그동안 통일·대북정책은 △정부·전문가 주도로 수립되고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전
달됐고, 정책의 국민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미흡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통
일·대북정책은 일관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통일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사회협약(가칭 통일국민협약)으로 공식화해야 한다는 제안을 지속적으로 해왔
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제안을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에 반영했고, 현재는 국정과제로
선정되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사회협약은 시민의 참여와 소통을 바탕으로 만들어 질 것이며, 구체적인 내용과 명칭도 시민들에 의해 직접 결정될 것입니다.

◎통일국민협약이 왜 필요한가요?

▶분단국가의 통일정책은 일관된 원칙 아래 지속적 추진이 중요합니다
우리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은 정부, 전문가 등 소수 엘리트를 중심으로 수립되고,
국민에게는 일방적으로 전달되기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 교체시마다 정책의 방
향과 내용이 크게 바뀌었고, 정쟁의 대상이 됨으로써 일관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통일·대북정책이 국민의 참여와 합의에 기초해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통일·대북정책에 대한 생산적인 정책토론이 어렵게 됨으로써 국민은 정책에서
배제되고 소외됐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정책논의에 참여하여 통일·대북정책에 대
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고 지속 가능한 정책 추진의 토
대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입니다.

◎통일국민협약은 어떻게 추진되나요?

▶통일국민협약은 민간이 중심이 되고 정부는 지원의 역할을 합니다
통일국민협약은 민간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됩니다. 현재 정
파·이념·종교·세대 등을 초월하는 범국민대화기구인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
국시민회의」(약칭 통일비전 시민회의)가 구성되어 활동 중입니다.
시민의 숙의에 기반한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추진합니다
▶통일·대북정책 관련 대표성·공정성·신뢰성 있는 공론을 형성하기 위해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숙의하는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만들어갑니다.
▶‘사회적 대화’는 다양한 국민이 모여 ‘차이’ 보다는 ‘공통점’에 초점을 두고 상호 이
해하고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일국민협약은 어떻게 활용되나요?

▶시민의 합의로 도출된 통일국민협약은 한반도 평화·통일정책의 준거가 됩니다
앞으로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시민사회 차원의 통일국민협약 기본안
을 마련하게 되며, 시민사회 협약안에는 △통일의 필요성과 원칙 △통일방안 △남북
교류협력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등 통일·대북정책 추진의 핵심 사항에 대한 합의
내용과 시민사회 내 주요 의견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이후 시민사회의 협약안에 대해서 국회 및 정부 등과 논의를 거쳐 통일·대북정책에
대한 ‘사회적 협약’의 형태로 발표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협약’은 통일·대북정책의 목표, 가치, 방법 등에 대해 국민과 정부, 국회 등
이 모두 합의한 ‘국민적 약속’으로, 통일문제에 대한 ‘사회적 규범’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본 협약은 기존 통일논의와 법제 등에 민주성, 균형성 등의 가치를 보완
하는 만큼, 통일·대북정책의 국민적 합의기반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협력과 상생의 성공적인 대화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사회통합의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통일부 공식 홈페이지 가기 

 

경기도 지역 통일국민협약 도출을 위한 사회적 대화 세부 프로그램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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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경기중부 공식블로그 가기 >> https://blog.naver.com/ybshin0615

월요일엔 생애사쓰기

 

바늘을 가지고 하는 짓이니 바늘질이라고 썼을 뿐이다.
않다, 에 왜 ㅎ이 붙는지도 이해할 수 없고, 돼와 되는 왜 꼭 그렇게 다른지. ㅋㅌㅍㅎ은 별로 발음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ㅋ이 붙으면 어렵다. 부억은 왜 부엌이라고 쓰는가, 갔다, 왔다, 했다에는 꼭 쌍 시옷인가.
나는 휴대폰을 열어 “한국인이 잘 헛갈리는 맞춤법”을 찾아 왠지, 웬지, 돼, 되, 않고, 습니다, 읍니다, 를 설명해나갔다.

“한국어는 주어와 서술어로 되어 있지만,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요.
했어. 라고 해도 알아듣죠. 하지만 내가. 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묻죠. “왜 말을 하다 말아?””
할매들이 웃었다.

선생님, 이라고 불렀더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지청구를 들은 다음 나는 그냥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학생여러분, 이라고 하면 활짝 웃는다. 월요일 생애사쓰기 수업시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은 한 문장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힘들어했다. 글쓰기가 어려워서라기 보다, 나는 목울대까지 꽉 차오른 이야기들이 아우성이라 그렇다고 느낀다. 말 나올 곳은 한 곳인데 수백가지 것들이 튀어나오려 겨룬다. 나는 송창식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아 에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너무 많은데. 할매들이 웃는다.

그새 혼자 부지런히 글을 써 온 사람들이 노트를 내민다. 한 분은 일기장이라며 초등학생 노트 네 권을 비닐에 담아왔다. 나는 이번 주에 이 글을 읽을 예정이다.

살아온 이야기들이 대부분 비슷하다.
이 교실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저학력의 여성노인들은 비슷하게 살았다.

어릴 때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가 보내주지 않았다.
집에서 동생을 보거나 조카를 돌봤다.
오빠가 장가를 들면서 올케언니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조카를 줄줄이 낳고 올케언니를 도와야 한다고 막내인 나를 학교 보내지 않았다. 혹은, 전쟁통에 아버지는 죽고 엄마는 유복자를 낳았는데 엄마가 일을 하러 가야 하니 막내를 업고 혼자 울었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나무를 하고 나물을 캤고, 목화솜다래를 뜯어먹었다.
참외나 복숭아서리도 했지만 늘 배가 고팠다.

집에는 늘 어쩔 수 없는 가족이 있었고 스무살이 갓 넘어 결혼을 한다.
얼굴 한 번 안 본 사내의 집으로 간다. 결혼 전에는 시집만 가면 팔자 펼 것처럼 어른들이 얘기했지만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사는 장남이거나, 참전용사다. 집안에는 상이군인이 있거나 알콜중독자가 있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거나, 고의적으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술을 마신다. 식구가 많으면 열 둘 정도 되고, 아침에 일어나 새벽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 점심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농사일을 하고 나면 저녁을 차려야 한다.
남편은 잘 지내다가 어딘가에 몰입한다. 밖으로 나도는 남자들은 도박을 하거나 여자를 찾아 다닌다. 집안에 머무는 남편들은 이유가 있어서 때리고 이유가 없어서 때리거나, 집안에서 술을 마신다.
그 와중에 꼬박꼬박 아이는 들어서는데, 한 둘쯤 뱃속에서 죽거나, 태어나서 죽는다.

살자고 집을 나오거나 살자고 남편과 헤어진다. 또는 술에 쩔은 남편이 먼저 죽기도 한다.
아이들과 살다가 연탄가스 중독 사고를 겪고, 아이들 중 한 둘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살아보려고 갖은 일을 다 한다. 파출부도 해보고 행상도 해보고, 청소일도 해본다. 직장을 구하면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하고 도시락을 대여섯개씩 싸고 버스를 타고 새벽일을 나갔다.

다 늙을 때까지 같이 사는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은 이제서야 빨래도 좀 하고, 밥도 가끔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제 밥벌이 하며 살고 손주들도 잘 자란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옛날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한다.

패턴이다.
목화솜다래, 어린 동생을 업어 키우는 일, 학교를 못 가는 일, 배가 고팠던 것, 억울하게 죽은 가족, 폭력을 휘두르는 가족, 알콜중독, 도박중독, 연탄가스, 파출부, 행상, 내 가게.

일할 곳이 없던 여성들이 세월을 견뎌온 일.
그나마 어찌저찌 집 한 칸 마련하고 지금은 공부하러 다니니 좋을 것 같지만 공부하러 오는 것도 매번 부끄럽다.

저기에 가면 국문을 깨쳐준다는데, 이 동네에서 30년을 살아서 내가 글자를 모르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다들 내가 여고 나온 줄 아는데 행여 나 때문에 아이들이 망신당하지 않을까, 아직도 쩡쩡한 시댁식구들이 창피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말할 수는 없어. 그런데 말하고는 싶어. 그러니까, 선생님만 보셔. 내가 다음 주까지 써올테니까.”
“저는 비밀을 많이 간직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시간이 있다면 한 사람마다 10시간씩 이야기를 들어도 부족할 판이지만, 글쓰기 수업이니까, 어떻게든 한 문장이라도 써보자고 한다.
힘들다고 얼굴이 울상이 되고, 손이 떨려서 쓸 수가 없다고 해도, 다 괜찮으니까 한 번만 써보자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이런 것도 써보네요.”라고 맨 앞줄에 앉은 분이 말했다.
“저도 많이 배워요. 그리고 저는 돈도 버는 걸요.” 라고 말했다.

학교를 못 가고, 공부를 못 한게, 억울하다면 모를까.
왜 자꾸 부끄럽다는 걸까. 속이 터진다.

 

2019.7.2.

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전반적으로 죄책감이 뿌리깊게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 4학년 미디어수업에서 새로 바뀐 유튜브 스트리밍 정책을 말하며, 왜 14세 미만 어린이들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을까? 물었다.

아이들은

“애들이라 뭘 모르니까요.”

“쓸데없는 거 하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반응은 작년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했을 때도 느낀 거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 차단당하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남의 아파트를 더럽혀서’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쓰레기 버리지 말기’ 캠페인을 벌였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이런 식이었다.

매년 500명에서 1천명의 어린이들을 수업을 통해 만난다. 올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하면 1천 5백명 정도를 수업을 통해 만날 것 같다. 세어 놓고 보니 엄청난 숫자다. 지난 2013년동안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몇 명일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천명은 될 거 같다. 3천 여명의 죄책감은 나를 짓누른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

우리는 잘 못하니까.

우리는 떠드니까.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우리는 말을 안 들으니까.

14세 미만 아동이 방송규정이 생긴 건 소아성애범죄 탓이 크다. 아이들이 통학로를 돌아가게 된 것은 어른들의 쓸데없는 이기주의 때문이었다. 술 먹고 담배꽁초 버리고 오줌싸는 어른들이 더 많지, 아이들이 버리는 과자 껍질 몇 개는 비할 게 아니다.

오늘 아이들은 14세 미만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건 신문에 날 정도의 빈도다. 고의적으로 세입자의 전세금을 떼어먹는 부동산 사기꾼은 방송을 타고 그를 바라보며 동경하고,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건 어른들의 대부분이다. 자기 감정을 실어 아이들을 억압하고 윽박지르고 ‘다 너희가 잘못하니까.’라고 덮어 씌우는 것도 어른들이 잘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고민할 때, 되물은 것은 어떻게 말을 안 듣느냐는 거다. 누굴 때렸나? 사람을 찔렀나? 동물을 괴롭히나?

기껏해야 이 안 닦고, 벗어놓은 옷 정리를 안 하고, 숙제를 안 하고, 게임하느라 정신이 팔려 과자를 흘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사회가 자신들을 억압할 때 “우리가 잘못하니까.”라고 구속과 억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너희는 미숙하니까,

너희는 뭘 모르니까,

너희는 잘못하니까,

너희는 떠들고 지저분하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미숙하고, 뭘 몰라야 하고, 잘 못하는 게 많고, 떠들어야 하고, 지나치게 청결하지 않아야 한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야 언어가 발달하고 잘 못하는 게 많아야 배운다. 뭘 몰라야 궁금해지고 더러 코딱지도 먹어야 사회적 매너를 배운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어른이라는 것들은 그저 나이만 처먹은 게 전부이고, 나이가 벼슬일 뿐인데 아이 때 맘껏 하지 못한 못된 짓을 머리 굵어졌다고 더 지능적으로 하고, 아이 때 맘껏 하지 못한 더러운 짓을 숨어서 한다.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걸 알아버려서, 어떻게 하면 잡히지 않을까 골몰하고, 들키지 않게 타인을 괴롭히는 일에 익숙해진 어른이란 존재들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라는 게 “너희가 잘못해서.”인가.

아이가 자유의지로 성관계를 동의했다 하고, 아이의 몸이 커서 성인인 줄 알았다고 하고, 아이가, 아이가, 아이가 따라갔으니 피해자라 말할 수 없다는 그 더러운 어른들이, 결국 너희는 괴롭힐 노리개가 필요한건가.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소아성애자의 타겟이 되는 어린이들에게, 그래도 “너희가 잘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빌어먹을 세상에 더러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이 나라에 아이들이 숨 쉴 곳은 없으니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