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빵, 마른 잎 

이한열열사의 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 노을이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치환이 나와 거칠고 익숙한 목소리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청 뒤 NPO센터에서 있을 행사에 가러 나온 길이었다. 

행사 시작전인 센터 안은 꽤 무더웠다. 냉방이 필요했는데 아직 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듯 했다.

북태평양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는 며칠, 바깥 바람이 상당히 시원했다. 

베이스와 낮은 드럼 소리의 진동이 거리를 쿵쿵 울리는 시청 뒷골목에 앉아 있었다. 

사위가 곧 어두워질 것이었고 아직 여기 저기 햇빛이 남아 있었다. 

선배를 만나 벤치에 앉아 일 이야기를 하다, 80년대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벤치 앞,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이면도로에 작은 원동기가 하나 섰다. 뭔가 들은 것 같은 비닐봉투를 안장에 얹은 작은 원동기에서 노인이 내렸다. 그는 내가 바라보는 방향의 가장 끄트머리 벤치에 앉았다. 주섬주섬 품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천천히 입에 쑤셔 넣었다.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가 빵을 먹는 모습이 자꾸 시야에 들어왔다. 70년대 학번들의 낭만과, 80년대 학번들의 전투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빵이 들어가는 노인의 입 매무새가 자꾸 눈에 들어와, 87년쯤, 저 사람은 몇 살이었을까, 딴 생각을 했다. 
칠순은 훌쩍 넘었을 거 같은 노인의 저녁은 시원한 북풍이 부는 시청 뒷골목의 벤치 위에서 마른 빵 하나. 오늘치 빵 하나의 노동은 어떠했을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대통령 탄핵을 거머쥐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오늘, 박종철과 이한열이 죽고 30년이 지난 지금, 노인의 삶을 얼마나 달라졌을까.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대오는 흩어져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스처럼 낮게 깔리는 귀신에 사로잡혀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마른 빵을 위해,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말라는 노래의 가사를 믿어도 될까. 
20170609

인덕원 고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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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다가 중년의 어느 날, 인생이 확 뒤엎어지는 고비를 겪곤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인생을 엎어치고 매치고 다시 일어났는지 궁금해졌다.
내 어머니는 땅에 침을 뱉는 것처럼 욕지거리를 하며 세상을 밀쳐내고 일어났고,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가 삶의 기준을 뒤틀었다. 누군가는 그때쯤, 가정을 잃고, 누군가는 그때쯤 자식을 잃고, 또 누군가는 그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잃고, 사랑을 잃기도 한다.
삶의 절반을 지배해 온 것들을 버리는 순간이, 누구나에게 오는 것일까. 모든 이에게 그런 날이 오던가, 그것이 궁금해졌다.

넥타이를 동여맸던 낮의 남자들이 소주에 불타는 고기를 입에 넣고 우적거리는 사이, 테이블 사이로 그릇을 나르는 여자들이 오간다. 그들은 모두 그 고비에 있거나, 그 고비를 넘겼거나, 어쨌거나 절반의 생을 살아낸 사람들로 보였다.

삶의 크레바스가 있다면 그 사이에 빠져 사라지지 말고 어떻게든 뛰어넘어 건너야만 하는걸까. 사는 건 그렇게 치열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사는 건 대체 얼마나 독한 놈이 고개를 쳐들 수 있는지 경쟁하는 과정일까.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고깃집에서 네가 말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라고. 살이 타는 냄새가 나고 모두가 우격다짐을 하고 있지 않냐고.
우리가 이 지옥을 빠져나가면 그때는 평화가 올까. 그런 일은 태초부터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크레바스에 빠져 죽지 않은 이들이 고기를 굽고 고기를 먹는 저녁에, 연두색 국빈관나이트 점퍼를 입은 남자들이 작은 비닐봉투에 명함과 주전부리를 넣어 테이블 사이를 돌며 인사를 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전도연이 <무뢰한>이라는 영화에서 저렇게 사탕을 돌렸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무뢰한>의 그녀. 삶의 모든 고통을 삼겹살 씹듯이 거침없이 삼켜버렸을, 그녀만 알고 있을 것 같은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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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인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