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취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건의사항, 문제점을 파악해서 적어보라 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기사쓰기의 기초를 가르칠 시간도 조건도 되지 않고
동네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그칠 듯 하다.
아이들의 주된 요구는 위생과 안전이다.
아래 그림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리해 준 내용.
부산역에 도착해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커다란 엘리베이터에 나와 내 일행뿐인가 했는데 한 소년과 허리가 살짝 굽고 관절염이 오래된 듯한 할머니가 같이 탔다.
소년의 옆모습이 낯익다.
가만히 고개를 움직여서 소년의 얼굴을 살펴보다 내가 말을 걸었다.
“너, ㅇㅇ 중학교 찬수 아니니?”
소년이 나를 빤히 보며 침묵하더니
40초쯤 지난 후에야
아.. 마을기자단 선생님이다. 라고 했다.
소년은 웃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 야외로 나가는데 실내화를 안 신고 양말채로 신발만 들고 나가길래 지저분해지면 엄마에게 혼날텐데, 라고 했더니 “엄마 없어요. 이혼했어요.” 라고 말하던 그 아이.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대전인가 대구를 가려다가 뭐가 잘못되어 부산까지 왔다 하셨고 아이가 방과후 수업에 잘 나오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 아이를 한 번밖에 본 적 없지만, 아주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소년은 머쓱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인사했다.
세상에 미운 것이 많은 아이, 징기스칸을 듣던 아이, 야구배트를 들고 어른들과 맞짱 뜬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던,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 이번엔 내가 분명히 너를 주목해서 보게 될 것이라 예감했던 아이를.
부산 가는 길에서 마주치다니, 이 세상은 어쩌면 마법으로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찬수는 가명입니다.)
2015. 6. 7.
A중학교 마을기자단 수업
학기초 연락이 오지 않아 내가 다른 스케줄을 잡아버렸고, 다른 강사분을 추천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하차.
이어 받기로 하고 빈 시간은 다른 분께서 2회 마을탐사로 진행.
사회복지사 선생님 안내로 교실에 들어가니 남자 아이 셋이 있었다. 교실 시설은 기가 막힌데, 한 놈은 휴대폰으로 노래 듣고 있고 (게다가 듣는 노래가 징기스칸이었다), 한 놈은 뭐가 문제인지 칠판 뒤에 숨어 있고 (이건 또 뭔가..), 한 놈은 컴터 좀 다룬다며 내가 준비해 간 동영상을 제가 틀어주겠다고 프로젝터와 노트북 세팅을 했다.
아이들이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고 참여도가 떨어진다 들었다.
수업시간 5분이 지나도 아이들이 더 오지 않아 수업을 시작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음악을 듣던 아이에게 뭐가 맘에 안 들었냐 물으니 학교도 싫고 급식도 맛이 없고 오늘 아침엔 가족들과 싸우고 나왔단다.
아이들에게 마을기자단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각자 이 동네의 맘에 안드는 점을 적어서 이야기 해보자 했다.
여자 아이 셋이 땡땡이를 쳤다가 복지사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늦게 도착했다.
아이들은 공원과 같은 휴게, 여가공간에 대한 바람과 불만을 먼저 이야기했다.
지저분한 거리, 알 수 없는 이유의 너저분함, 공원에서 술 마시는 아저씨들, 뒹구는 막걸리병쓰레기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수업 중 버스정류장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 버스정류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정류장 보도블록이 깨져 있어서 발을 다쳤다고 했다. 해당 정류장에 도착해 뭐가 문제인지 따져보았는데 아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인도를 늘리거나 주차단속을 강화하거나 보도블록이나 싱크홀 정비를 하거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오가는 길에 징기스칸을 듣던 아이가 자기네 집은 이혼을 해서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30분 먼저 봤다고 남자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음 주부터는 마을 지도를 그리고 안전문제를 점검하기로 했다. 6주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다.
2015. 6.3.
주업무가 아닌데 주업무처럼 5월을 보낸 학교 수업 몇 가지.
도망다니고 싶지만 도망다닐 수 없는 입장, 그렇다면 여기가 가장 낮은 현장이라 생각하고 놀다 오는 마음으로 나간다.
같은 안양 내에 있는 몇 개 중학교, 몇 개 초등학교, 몇 개 고등학교, 기관의 프로그램을 신청한 아이들, 다양한 안양의 아이들을 만난다.
같은 학년이라도 학교에 따라 다르고, 같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에 따라 다르다.
당연히 마음에 걸리는 건 아프고, 약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잘 훈련되어 자기검열에 완전히 적응된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아프다.
몇 군데 학교를 돌아보며, 경제적 조건이 아이들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안양의 초등학교 3학년,
어떤 아이는 엄마의 승용차로 학원가에 있는 학원에 가서 비이커와 플라스크를 놓고 라면의 나트륨 함량을 구하고, 비싼 교구를 들고 로봇만들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학원가 센터를 드나든다.
어떤 3학년은 원어민 선생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거나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다녀온다.
어떤 3학년은 아직 한글을 다 떼지 못했다.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으로 살이 찌고 벌써 가슴이 나온다. 빨지 않은 실내화가 꼬질꼬질하고, 자주 화를 낸다. 친구들이 자꾸 자기를 쳐다보며 수근거려서 매일 매일이 속상하다.
어떤 3학년은 하루종일 학원을 돌다가 형과 라면을 끓여먹고 엄마가 오기 전에 잠이 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조건과,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욕심과,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은 불안과, 한 푼이라도 더 투자하고 싶은 허영이 만나 도시를 만든다.
술렁거리는 공기가 아이들의 영혼을 잡아먹는 것 같다. 두렵고 무섭다.
외로운 아이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와,
늘 화가 나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
2015. 5. 29.
토요일 초등학교 독서클럽 수업
늘 우는 은서, 교실로 올라가는데 마주쳤다.
기운빠진 목소리로 보건실에 간다했다.
교실에 들어오더니 보건선생님이 안 계시단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상담선생님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안경을 들어올리고 한 손의 소매깃을 길게 빼서 눈물을 연신 훔치며 흐느끼고 있었다. 수업시작 15분 전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
상담선생님이 너무 힘들면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여러 반이 한꺼번에 강당이나 시청각실로 움직이는 일이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이 밀치거나 신체적인 접족이 있으면 그 날 하루종일 못 견뎌한다 했다. 은서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매우 갸날프다.
은서가 집에 가버린 교실.
아이들이 약간 반기는 거 같아 씁쓸했다.
오늘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교실에 있는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교실에 있는 색연필과 크레파스, 매직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필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가지고 다녀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 연필까지 한 자루씩 다 깍아서 나눠줘야 하는 판이다.
주인공은 동물, 사물, 사람 중에 하나씩 골라서 마음속으로 정하는거야.
앞으로 우리가 만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야.
나를 그리라는 게 아니고, 내가 만드는 거야. 나는 오늘 신이다!
자 이제 그럼 마음속으로 정한 주인공을 그려보자!
아이들이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 분란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쟤가 내꺼 훔쳐봐요.
선생님 쟤가 내꺼 베껴요.
선생님 저 안 베꼈어요.
선생님 저 그만하면 안돼요?
선생님 저 다했어요!
다 그린 사람은 옆에다가 주인공의 이름을 지어주고 성격과 특징을 적으라고 했다. 무슨 말을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누구랑 같이 살고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싫어하는 것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
기쁠 땐 어떤 행동을 하나? 등등을 적으라고 했다.
내가 주력한 것은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겨우 겨우 수업을 끝내고 자기가 그린 걸 발표하게 했다.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자기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생님이 구분할 수 있도록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제출하고 가라 했다.
아이들이 다 간 다음 그림을 모아놓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사회복지사선생님(상담선생님)께 알려드렸다.
솔미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지난 번에도 스토리를 줄줄줄 만들어 냈다. 오늘 솔미는 구미호족을 그렸다. 자기는 주인공보다 악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악당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일반 아이처럼 다니다가 가끔 변신을 하는 구미호인데, 초능력을 가졌고 피가 묻은 꼬리를 백개 넘게 달고 다닌다. 솔미가 말했다.
얘는요, 엄마 아빠를 이미 죽였어요. 악당이거든요. 얘는 델포이에 사는데요, 왕권을 물려받으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죽여버렸어요.
늘 밝게 친구들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하고 잘 달래주는 유정이가 남긴 그림을 보았다. 싫어하는 것. 술. 화가 나면, 도로로 끌고 가 죽여버린다.
귀여운 머리띠를 하고 와서 정말 예뻐서 눈을 떼기 힘든 서희의 주인공은 미완성이다. 화가 나면, 때린다.
어떤 아이는, 얘는 화를 나지 않아요. 화 내는 거 싫어요. 아주 아주 착하거든요.
얘는 화가 나면, 옆에 있는 햄스터가 빨개져요.
본인은 괜찮고? 네. 얘는 표시나지 않아요.
얘는 초능력 눈이 있어요. 화가 나면 눈이 뾰족하게 튀어나와요. 가족이 있는데 혼자 살고 있어요.
어른도 마찬가지, 마음의 비밀은 숨길 수 없다.
모두 다 들통나기 마련.
아이들의 비밀을 엿보는 일이 가슴아프다.
+ 수업중에 아이들과 매번 적잖은 갈등을 일으키는 하윤이가 내 무릎에 앉아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었다. 스쳐가는 아이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지기 위해, 더욱 건강해야 한다.
2015. 5. 15. 기록
“아무리 그래도 저는, 가르치는 일에 대해선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수업은 똑같이 하는데 무슨 말인지 저는 어제 내내 속상했어요. 정말 기분 나빴거든요.”
다음 주까지 수업을 하기로 한 중학교의 국어선생님이 점심식사중에 하소연을 쏟아냈다.
내가 2주간 수업을 하게 된 이 학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별로 없고 학교 예산도 넉넉하여 여태 외부 예산을 끌어오거나 외부 강사를 부른 일이 거의 없었단다.
나에게 수업제안을 한 선생님이 첫 케이스인데, 지원사업을 한 적이 없으니 행정실도 첫 케이스인 셈이다.
외부강사가 학교에서 밥을 먹을 경우 식대를 지불하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점심식사 2700원.
이 연락을 받은 두 선생님이 황당해 하다 한 분이 총대메고 나에게 전달을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의 행정은 어이없을 수 있다. 극강의 편협함과 궁극의 답답함을 펼칠 수 있는 게 학교다. 누구의 의도도 아닌, 다른 일을 시도하기 귀찮은 자들은 세금으로 굴러가는 모든 기관에 존재한다.
식대 얘기를 듣고 내가 바로 생각한 건, 오.. 나가서 순대국 먹을까. 였다.
담당교과 선생님이 얼굴을 붉히며 이 이야기를 전하자 사업을 꾸린 선생님이 자기가 행정실장과 이야기를 했고 주임선생과 교장에게도 이야기를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에게 거듭 사과했다.
“안 해본 걸 하려니까, 이런 일도 생겨서 민망하고요.. 수업 똑같이 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가요. 여기 학부모 봉사 오시는 분들도 그냥 식사하실 수 있거든요. 교직원 내부에서도 외부강사를 차별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어제 정말 속상했어요. 적어도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러면 안돼죠. 안되는 거예요. 그쵸?”
모든 시스템은 느리게 변한다. 그 안에서 힘든 사람들은 시스템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쳐 떨어져나가지 않는 세상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일게다.
2015. 5. 14. 기록
아가들 데리고 마을 탐사를 한 시간 정도 진행했다.
인덕원 지구대에 가기로 했는데 지구대장님이 나와서 안내해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총도 보여주심 ㅋ
여경언니도 둘이나 있고 훈남 순경들도 있고 아이들이 이런 저런 거 물어보는 것도 귀여웠다.
오늘도 은서가 울었고 제니도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일이 어렵다. 그게 내가 못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케줄이 많아 정신이 없고 친구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중요한 모양이다.
저 아이가 나를 어떻게 쳐다봤고 무슨 뒷담화를 하는 ‘것 같으며’ 나에게 어떤 (말로) 공격을 가했는지, 이게 하루를 지배하는 모양이다.
모두 여자아이들이라 그런가.
어렵다.
2015. 4. 24. 기록
내가 어케 수업을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려고 캠코더를 가져가서 돌려놨는데 아이들이 금방 알아차렸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독서클럽 회의라며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안건을 냈다.
나는 학교를 없앨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달라고 했으나 아이들은 “잘 없애면 된다”고 하며 웃었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아이는 내내 무기력하던 아이인데 저 날은 펄펄 날았다.
세 번째 수업, 아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말을 많이 한 두 번째 시간, 은서가 울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블럭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선생님 사진 찍어주세요.” 나는 어디가 문이냐고 물었다.
다음 주에 있을 수업내용을 결정하는 회의를 했다.
다음 주엔 탐사를 할 예정이었다.
아이들에겐 실내화를 갈아신고 나가야 하는가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가야 하는가가 가장 치열한 토론문제였다.
적극적인 발표로 탐사준비회의는 매우 기분좋게 마쳤다.
학교는 앉아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왜 앉아야만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학교는 흡사 동물쇼의 조련실과 같다.
훈련이 잘 된 아이들이 많을수록, 그 학교에 대한 평가는 좋아진다.
아이들이 떠들고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학교는 정녕 불가능한가.
2015. 4. 19.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