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구역으로 가세요

노40대존 캠핑장이 뉴스소재가 되었다. 오늘자 JTBC뉴스였다. 업주는 “아무래도 40대 이상 고객들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아서.”라고 하는 말을 듣고 혼자 킥킥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범죄율도 40대가 늘 제일 높다. (이건 몇 년전 포스팅을 한 번 한 적 있다.) 지명수배 전단도 잘 보면 항상 40대가 제일 많다.

뉴스는 노40대존에 이어 부산대 노교수존도 다뤘는데 그 역시 킥킥대고 웃을만했다. ‘다른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니까’ 라는 게 그 이유였다.

처음 노키즈존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차별과 배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뿐이다. 아이를 데리고 매장에 방문하는 것은 매출은 적고 업주 입장에서 귀찮을 일이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치자. 그래 그렇다고 치자.

처음 특정 연령대를 배제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애 딸린 여성들이 “맘충”이 되어갔다. 이 사회에서 업장에 제일 민폐 끼치는 게 중년이상의 남성들인데 왜 “노아재존”은 없고 “노키즈존”만 있는가, 아무래도 구매력때문일거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가 만들어낼 매출액과 그 매출액에 상응하는 내 노동력의 가치만 생각한다면 차별과 혐오는 모든 곳에서 정당해진다. 허름한 옷을 입고 매장에 들어가니 쳐다도 보지 않더라, 는 경험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대놓고 “돈 없는 자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80년대에 아들이 둘이거나, 아이가 둘 셋이면 집을 빌려주지 않는 임대업자가 있었다. 임대업은 자기 입맛대로 임차인을 고르려는 욕구가 강해서 요즘도 아예 “반려동물 안됨”, “싱글 여성만”, “혼자 사는 남자분 안됩니다.”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뉴스는 이어서 서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을 인터뷰하며 한국은 연령대에 따라 즐기는 문화도 구분되어 있는 것 같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20대는 헌팅포차, 30대는 감성주점, 중년은 나이트, 노년은 콜라텍이라는 거다. 안양만 해도 일번가는 10대, 범계는 2-30대, 평촌은 중년, 인덕원은 중년이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키즈존을 그대로 두었더니 연령과 직업에 따라 배제하고 혐오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배제당하는 당사자인 나도 무감해졌다. 연령대에 따라 들어오지 말라는 암묵적인 매장분위기, 키오스크만 설치한 곳, 외국어로 된 매장이름, 영어로 된 아파트이름, 66사이즈 이상의 옷을 만들지 않는 기업,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별과 배제에 길들여지는 사람들, 어떤 매장에서 어떤 업종에서 누가 고객이 될 수 있을까. 소비에도 계급이 생기고 있다.

어떤 체격에 어떤 외모와 건강을가졌고 어떤 연령대에 어떤 소득수준에, 어느 정도의 학력을 갖췄는가에 따라, 돈을 쓸 수 있는 구역이 세분화되고 있다. 계급에 따른 구역설정, 새로운 제국의 등장, 자본이 지배하는 식민지의 탄생이다.

코로나 혐오

이 상황에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개학 후 각 교실에서 펼쳐질 혐오였다.
중국교포나 이민자들의 아이들은 각지에 흩어져있다. 지역과 학교마다 다르듯이 아이들의 경제상황과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도 세밀하게 나눠져있다.

부모 중 누가 중국인이라도, 한국어를 곧잘해서 아이들이 유아교육부터 한국어를 잘 가르쳤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중국친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더러 학부모회도 잘 참석하고 책도 읽어줄 수 있는 중국인 부모도 있다.

하지만, 경제형편이 어렵거나 한국어가 어려운 경우는 뻔한 혐오와 차별이 기본세팅되어 있다. 문제는 교사들이라고 모두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모두 인권의식이 뛰어나고 젠더감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이 나라의 보통시민이다. 이 사회 전반의 타자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수준이고 외부로 나타나는 본인의 공적인 행동을 구분할 줄 알아서 실수가 적은 것뿐이지,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대해 교육자가 강경하게 응대하지 못하고 본인의 속내를 들키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왕따 당하는 애들은 이유가 있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교사라는 직군이 엘리트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계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말 한 번 안 섞어봤을 법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면 그 자신도 괴로울 것이다. 도무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어낼 지는 경험한 자도 잘 모를 일이고 경험했다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때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2020.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