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하러 와

멀리서 날아온 친한 동생을 만나기 위해 남산에 있는 모호텔에 갔다. 비행기 도착하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그런 거 없이 그냥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그 비싸고 유명한 호텔방이 얼마나 클래식하던지.. 1980년쯤 되는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로 수십년을 버티는 호텔임이 분명했다.
걸어서 남산을 돌아 명동까지 내려가 아주 오랜만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노점을 기웃거리며 뭔가를 주섬주섬 사기도 했다. 각자의 기억에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는 커피집에 들어가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음악이 사라진 명동에서 우리가 다시 잡은 세월은 아마 12년이 넘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온 동생은 만날 사람이 있어 거기서 헤어지고 나는 가방을 호텔 로비에 맡겨두었기 때문에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올라갔다. 가방을 찾으면서 투숙객이 아니라 하니 찾아가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한다.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를 적은 다음 주차권을 내밀어 동생방 호수로 얹어달라고 했다. 직원이 다섯 시간 무료주차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돌아서서 묵직해진 가방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방향을 찾아보고 있는데 누가 어정쩡한 자리에서 나를 자꾸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정복을 입은 호텔 직원인데, 아까 가방을 찾는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고 회전문 앞에 서 있을 일은 없는데 가방 찾는 데스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보고 있으니 뭔가 이상해보였다.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최근 들어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이름도 자꾸 잊는 통에 한 10초 정도, 정말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나는 연두색 등산점퍼에 주황색 가방을 거의 둘러메다시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사람은, 1995년부터 1997년경까지 내가 살던 서울역 뒤 동자동의 장학고시원에서 그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이었다. 나보다 늦게 고시원에 들어와 나보다 일찍 고시원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스물 여덟 정도 되었고, 고시원을 나가 고시원 바로 앞에 쪽방을 하나 얻어 살다가 차근차근 돈을 모아 월세방으로 나갔다는 것까지만 안다. 곱상한 얼굴이고 피부가 참 흰 사람이었데 그 당시에 그 호텔에서 벨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 웬일이야. 세상에 아직도 여기에 있어?” 나는 반갑게 그의 팔을 툭 치며 인사를 했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서로 묻는 것은 뻔했다. 잘 살지? 결혼은 했지? 애 몇 살이야? 와 우리 몇 년만이지? 한 15년 됐나? 그래 15년 된 거 같다고 이야기하고 돌아나오니 15년도 더 된 일이었다.
“우리는 여기 오래 있어. 25년 30년까지도 근속을 하니까. 오래된 사람들은 잘 안나가.”
평덕이오빠. 전라도 어디메에서 올라왔었다. 느릿하고 구수한 사투리를 쓰던 그는 말투는 조금 빨라졌고 머리숱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가 본 나는 피부가 매우 거칠어졌고 살이 많이 쪘겠지. 알아보기 어려웠을거다. 내가 가방을 찾으며 이름을 적지 않았으면 그는 알아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여기 있으니까, 커피 마시러 와.”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 반갑다고 하면서 또 보자고 하고 돌아나왔지만 나는 그에게 가방에 있는 명함을 건네지도 않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지도 않았다.

그런 시절이 있다. 나에게는.
내가 힘껏 밀며 버티는 거대한 벽. 고통과 가난이 가득한 영혼들이 아우성치며 나를 잡아채가려고 하는 거대한 검은 벽. 무너지면 절대 안된다고 내 등뒤로 힘껏 밀어대며 사람들 앞에서 하하호호 웃고 있는 거대한 벽. 그 시절의 사람들을 만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 벽이 다시 내 등을 후려치며 와르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벽.

많이들,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사는데 나 혼자 너무 멀리 도망온 것 같은 느낌. 죄책감은 아닌데, 내가 누군가를 배신한 것만 같고, 내가 너무 동떨어져 온 것 같고, 어딘가 모르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

말하자면, 가만히 서 있는 기차에서 혼자 내려 뚜벅뚜벅 걸었다가 운 좋게 누군가의 승용차에 무임승차를 한 것 같은 느낌. 절대로 나는 무임승차 하며 살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렇게 느껴지는 불편함. 그리고, 내가 앞서 달려왔다는, 내가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얻었다는 오만함도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함. 더불어 밀려오는 불길함. 그 벽이 무너질까봐. 다시 그 때로 돌아갈까봐.

6층이나 되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호텔뒤의 골목으로 우회전과 좌회전을 해서 맞딱뜨린 곳은 다시 그 서울역, 벽산빌딩 앞이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과거는 다시 오고 또 재현되고 골목어귀에 숨어 있다가 어깨를 툭툭 친다. 낙엽 하나 떨어지는 무게에 놀라 죽을 수도 있고, 그것 참 곱다 하며 책갈피에 끼울 수도 있을텐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호텔에 전화를 하여, 오늘 그 사람이 근무하는 날이냐 묻고 커피 한 잔 하러 가겠다고 그래서 “추억”이라는 걸 나눴을 때 내 벽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2014. 10. 25. 141025_iphone5s 1093

The Way We Were







1973년 시드니 폴락 감독의 The way we were
바브라 스트라이잰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이다. 
멜로영화로 알고 있었던 게 잘못이다. 
이 영화는 멜로가 아니라 정치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매카시즘이 미국을 뒤 흔들던 1950년대.
그들이 다시 만난 시점이다. 
그들이 대학생이었을 때는 스페인 내전이 한참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에 시작되어 39년에 종결되었다. 
조지오웰이 작가로 활동하며 내전에 참가해 “카달로니아 찬가”를 쓴 시대다.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쉽게 말해 운동권이다. 
진보정치의식을 가진 그녀는 늘 바쁘게 살며 생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허블 가드너(로버트 레드포드)는 어찌보면 도련님,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학생이다. 인생을 즐겨. 라는 모토로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얻는 Americanism의 상징. 글재주가 좋아 교수에게 인정받고 결국 훗날 작가가 되는 인물이다. 
집회를 이끄는 대학생때의 케이티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했던가. 
인생관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결혼까지 골인한다. 
두 사람은 30대가 되어 케이티는 내조를 하는 주부가 되고 허블은 헐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 케이티의 정치적 성향도 조금 누그러지는 듯한 시대가 왔을 때 매카시 열풍이 불어닥치고 헐리우드의 10인 사건에 케이티가 결국 개입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사람의 정치관은 두 사람의 세계관이다. 
케이티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허블은 그래봤자 똑같은 인간들이고 누군가 희생타가 되어 감옥에 가고 삶을 잃고 그러다 설령 그들이 다시 복귀해 삶을 살아가더라도 추잡하고 이기적인 권력자로 부활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허블은 세상은 변치 않아 인간은 원래 그런거니까 – 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고 케이티는 우리는 늘 싸워야 하고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립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 
이 둘은 삶의 영역보다 사상의 영역이 훨씬 더 컸던 조합이다.

케이티는 허블을 만나기 전 생활인이 되기 위해 곱슬머리를 펴고 허블의 요구에 맞춰 정치적 행동도 줄이지만 정치는 그들의 삶에 끼어들고 다시 케이티가 나서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조정하게 되어 있다. 
보수와 아메리카니즘의 아이콘인 허블은 케이티와 헤어지고 좋은 승용차를 타고 TV쇼의 작가가 된다. 케이티는 그 앞에서 반핵운동을 전개중이다. 머리는 펴지 않고 다시 곱슬머리인 채. 그들은 헤어진 대신 그들 본연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을 떠올렸다.
김주원은 허블과 유사한 인물이다.
부잣집 도련님에,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정치나 생활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백화점의 매출, 잘 나가는 인생에 관심이 있을 뿐.
뭐 길라임이 케이티를 반영하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너무 가난해서 정치색채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고 매일 매일 먹고 사느라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시크릿 가든에 대조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갈 길을 인정하고 같이 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허블이 바로 미국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반영한 아이콘적인 인물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90년대 최진실, 이후 장동건, 배용준, 이영애, 심은하 등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의 아이콘 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고심했다.

트윗을 올려 의견을 받아본 바, 현빈, 이외수, 이효리 정도가 물망에 올랐다.
이번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딱 현빈이 분한 김주원 같은 아이들이 투표율 높은 지역에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라면, 이는 매우 난감하다.

80년대의 대표주자는 반항아의 상징, 이덕화(지금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최재성, 최민수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반항의 정서가 있었다. 연예인과 당대 가요는 시대를 반영한다. 7080을 지배한 정서는 반항이었다. 그만큼 정부에서 내리누르는 게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금은 풍족한 자들은 풍족하고 가난한 자들은 내몰리고 풍족한 것이 상징이 되고 뭇사람들에게 동경이 된다. 줄줄이 쏟아지는 신데렐라 드라마와 패륜과 불륜이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와 곱상한 이미지의 이승기나 현빈이 주가를 올리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쌓아올린 부를 지키기 위한 보수층으로 포위되어 부유층이 아닌데도 거기에 멍청하게 끌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삼신할미 랜덤에 걸려 곱게 살아가는 계층이 인기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진보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좀 암담하다.
경쟁하고 떨어뜨리고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게 트렌드가 아니라 정설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왔던 The way we were는, 묘연하게 행방을 감춘 것은 아닐까.

2011.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