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조사서라는 솥뚜껑

내일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학교 입학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고 지냈다가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위해 검토를 했다. 학교에서 나눠준 유인물 묶음에 입학식에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가정환경조사서 / 예방접종증명서 / 저녁 돌봄 지원서 세 가지다.

저녁 돌봄은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 취학통지서를 받고 준비해 온 예방접종증명서를 민원사이트에서 출력했다. 각종 전염병에 대해서 미리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인데, 입학식 전에 미리 접종을 받은 기관과 연락을 취해서 전산망에 올려달라고 요청을 해야 했다. 이런 서식은 최근에 전산화가 되었기 때문에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어느 정도의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펴놓고 가족사항을 적는데 짜증이 밀려왔다.

아마 그 전에 봤던 학교 유인물에 영어와 한자가 마구 뒤섞여 있었던 것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다른 이유의 몇 가지 사건 때문에 좀 짜증이 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 말이 있다.

살면서 다들 그렇게 말하듯이, 옛 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

이 속담은 매우 쉬운 말로 전하고 있지만 그 말은 사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다.

가정환경조사서는 나에게 트라우마다.

내가 초등학교 즉, 그 때 말로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는 80년대였다. 그 시대에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 사람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같이 살지 않는 편이 각자에게 훨씬 좋은 경우이다. 더 같이 억지로 살았다가 어떤 불행이 펼쳐졌을 지 예상할 수 없다.

이혼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별에 대해서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미 한국이라는 이 고리타분한 보수의 나라에서, 조선조 이상하게 왜곡된 유교사상이 깊이 물들어 있는 이 환경에서, 이혼만은 절대 불경스러운 일이라며 참고 지내다가 결국 더 큰 불행을 앞두고, 아니면 이미 불행해 질대로 불행해 진 상태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혼은 단지 두 사람만의 관계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이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지는 결혼부부들은 이 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이 국가의 결혼은 수많은 인간관계와 불필요한 친족관계 때문에 얼기설기 꼬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되도록이면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인간의 일부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따져본다면, 그 역시 주장의 논거는 희박하다. 단순히 그런 거 아닌가.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원래 그래 왔으니까. 글쎄 그 보다는 사회체제가 더욱 복잡해 지지 않았으면 하는 암묵적 동의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성장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지만, 문제는 그 당시에 이혼녀의 딸로 살면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이다. 정작 당사자는 오죽했겠는가. 교회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시간에 사람들 많은 데서 “이집사 이혼했다며?” 라는 말도 들은 사람이 모친이다. 그게 그 때는 수모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내가 늘 의아했던 것은 담임선생님에게 살짝 귀뜸한 일이 왜 전교에 소문이 퍼졌는가 하는 거다. 내가 고의적으로 누설을 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이혼자녀”라는 것이 매우 흔치 않은 사례였다. 전교에 단 두 명이 이혼자녀로 알려져 있고 그건 꼬리표가 되었다.

“쟤 엄마 이혼했대.” 라는 말.

가정환경조사서에 억지로 아빠를 적어 넣기도 했다. 아빠라는 존재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지 같이 살지 않을 뿐이었고 자주 만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환향녀가 화냥년이 되던 세상을 지나, 사람이 죽어도 열녀가 났다고 숭앙하던 극악무도한 세상을 지나, 전쟁을 거쳐 수많은 남자들이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척을 지는 것은 대단히 불손한 일로 여겨지던 세상에서, 이혼은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강요했으며, 결핍된 것은 모자란 것이고, 그 모자란 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일이며,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옳지 않다는 폭력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흔히들 결손가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결손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좋지 않다며 굳이 그런 낱말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국가와 사회가 정해놓은 가족의 이미지는 아빠 엄마 자식 둘로 이루어진 것이 정상, 그 외의 것은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규칙이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동일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할 수 있고, 다른 것들과 같을 수 없다. 다양성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지만, 정치가 시작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범주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통치하기 쉬운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줄을 세워, 이 줄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은 이방인이라고 말을 하면, 그들은 법이 굳이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다. 조르주 아감벤이 말했던 호모사케르의 존재 이유와 법철학이라고 하는 어려운 이름의 학문의 요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법은 법 안에 있는 사람만 보호할 수 있고, 법 밖에 존재하는 것들은 외면해도 되는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 그 편이 통치하기에 편하다. 누구도 반발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법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되지 않고 법 안에 속한 존재가 되어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불안할수록 사람들에게 법은 마치 커다란 성채처럼 느껴진다.

그 성채 안에 들어간 자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규칙과 윤리, 도덕과 원칙, 이 것들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성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폭력이 가득한 성채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 안에서 떨궈져 나오면 어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이용하면 사람들은 “고분고분” 해진다.

 

사회적 질서를 위해, 사회적 문란함을 없애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정해놓았던 “올바른 가족상”에서 벗어났던 나는, 지금 그 “올바른 가족상”에 또 얼마나 멀리, 혹은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모르겠으나, 가정환경조사서에 남편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적으면서 학력을 적는 란이 없다는 것을 새삼 희한하게 느꼈다.

 

없어야 마땅한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세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지 않으면 보호해 주지 않을테야. 이 나라는 전쟁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나라니까. 게다가 삼면이 바다니 도망갈 데도 없고, 그 위엔 당신을 잡아 먹으려는 괴수들이 드글거리거든” 이라는 협박을 들으며 고분고분 줄 서던 기억.

 

가정환경조사서, 부모의 화목 정도와 내 집의 경제를 책임진 자들이 기업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는지 확인했던 그 고리타분한 서류가 30년을 돌아 나에게 다시 왔다. 내가 학부형이 되면 실내화를 빨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꿈이었으며, 이제는 학교에 경찰관이 나타나 학교폭력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움츠러진 몸씨, 주눅든 말씨, 머뭇거리는 마음씨가 모두 문제가 된다고 했던 것은 정해진 매뉴얼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는 읽었다.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굳이 그가 덧붙여 읽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쫄면 피해자가 되니까” 라고.

가해자가 되지 말라는 말보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조금 뻔뻔한 태도를 가지라고, 조용하거나 얌전한 성격은 법으로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법과 폭력의 반복이 거듭되는 동안, 이제는 피해자가 될 성격과, 가해자가 될 성격의 유형이 나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싫어. 저리 가. 하지 마”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의 폭력이 사라지는가.

 

이 사회는 사회의 조직보다 언제나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고, 사회가 개인을 지배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잘해야 국가가 잘할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다.

 

대체 이 파렴치한 구조의 사상은 언제쯤 끝이 날까.

의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는 무사도 아닌, 징징대며 삥이나 뜯는 골목상권의 양아치 같은 이 조직은, 예전엔 자라였고 여태 솥뚜껑으로 남아 있다. 거리 곳곳이 솥뚜껑이다. 밥도 짓지 않은 무겁기만 한 솥뚜껑이, 솥은 어디로 간 지 뵈지도 않은 채 여기 저기서 날아다니고 있다. 이 나라의 전쟁과 테러는 솥뚜껑들이 해내고 있다.

 

2013년 3월

386은 꿈이다

나에겐 386세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가 겨우 초등학교를 다닐 때쯤 종로에 나가면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고 학생들은 늘 “데모” 중이었다. 
비싼 등록금 내주고 소팔고 논팔아 학교 보내줬더니.. 하는 세대는 그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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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의 작업, 그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엄마와 강북시중심을 돌다보면 늘 백골단과 마주쳤고 최루탄이 어디 터지나 신경써야 했다. 
 
나의 엄마는 67학번쯤 되는데, 야간통행금지에 걸렸다가 풀려난 이야기, 닭장차라고 하는 저 탈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박정희가 화폐개혁을 또 한다더라 는 말을 포장마차에서 했다가 막걸리보안법에 걸려 몇 달동안 생사를 모르다 다리를 못 쓰게 되어 나타난 거래처 아저씨의 인야기를 전하며, 이 나라에서 데모를 하는 것은 삼대가 망할 일을 애써 도모하는 것이며, 여자의 경우 성고문도 비일비재 하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는데, 오히려 엄마가 이야기를 전하는 그 어법은 무용담과 같아서 나에겐 환상적인 저항의 문법이 되었다. 
 
사람을 마구 잡아가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정부가 있다고 알려준 것은 역설적으로 “절대 데모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강조했던 엄마였다. 그 때 엄마의 언어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도 뭔가 그 “데모꾼” 들에 대한 호의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용기와 체제전복에 대한 꿈과, 사생활과 가족의 생계보다 더 큰 대의를 생각할 수 있는 그들에게 계급이라는 것을 덧붙여 나와 다르지만 그 팔자도 나름 부러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나의 모친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밥그릇을 포기하고 대의를 택할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늘 자신의 생활과 자신의 몇 안되는 혈육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어떤 대의가 사회적으로 실천될 때, 약간의 혜택을 조금 더 특별하게 받고자 했다. 그건 본인이 끊임없은 불가항력의 힘에 이끌려 인생의 파도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것이 억울함으로 남았고, 그에 대한 미미한 보상을 세상에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결과적으로 나에겐 엄마가 투쟁해야 할 권력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엄마의 규칙대로 살길 바랐던, 그것도 매우 강경하고 카리스마가 심한 사람이었으므로, 나에겐 저항의 문법이 필요했다. 어릴 때는 욕지거리를 배워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이후엔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메커니즘이 얽히고 설켜 결국 내 삶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낀 건 아마 중학교 때쯤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거였다. 그게 내가 열 네살쯤 때의 일이었다. 전교조가 시작되었고, 6월 항쟁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당시 시사저널은 좋은 언론이었고, 한겨레가 창간되기 전이었다. 그 때 선두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386이었다. 전교조를 시작한 나의 선생님들은 1960년 생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그 분들의 “애제자” 로 쉽게 발탁되었다. 그 분들이 읽어보라고 적어준 책의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태일 평전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고, 그들이 즐겨 읊는 시가 따로 있었으며, 그들에게 가치가 있는 작가는 따로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답습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은 저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386의 정서를 많이 흡수한 것은 내가 만났던 그 세대의 사람들이 줄곧 나에게 친절했기 때문이다. 
 줄곧 그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 했고, 나는 기쁘게 그것들을 받아들였으며, 더욱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다시 그들에게 환영받는 입장이 반복되었다. 
 그들이 대열에서 벗어나 각자 흩어지고, 우리세대는 한총련의 마지막을 맞이했으며, 나는 그 입시전쟁에서 복합적 이유로 밀려나 그 대열에 끼지도 못했는데, 대열은 연세대 사태로 와해되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조국을 휩쓸었다. 대학 가서 뭔가 해 볼 것 같던 친구들은 취업에 몰두했고, 그들은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자격증을 따기 위한 삶을 살아갔다. 나 역시, 그런 대의나, 저항에 대해서 잊고 살았다. 그 때, 우리가 저항했던 적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적들은 땅으로 스며들어 우리들이 마시는 물까지 오염시켰다. 그게 바로 경쟁과 경제위주의 삶, 약육강식, 적자생존,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시기가 2002년 월드컵과 노무현을 어깨에 메고 시작되었다. 
 
 2002년 종로서점의 폐점이 이 시대의 시작을 울리는 경고였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이 열리고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레드컴플렉스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컴플렉스를 극복했다기 보다, 이념을 버리고 소비를 택한 소비자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이 대선에 승리한 것으로 진보진영이 한 발 나선 것처럼 보였지만, 그 때 부터 사람들은 선거나 투표권이 소비자의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만일, 전두환이 이 시점에 다시 출마를 해, 숨겨둔 돈이 100억조 정도 있는데, 그돈으로 시장경제를 다시 활성화 시키고 당신들의 아파트값을 유지해주며 해외정복을 시작해 부동산 경기를 재 점화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실천을 시작한다면. 나는 전두환도 재선에 이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광주에서는 곡소리가 이어지겠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괘념치 않는 사회 아닌가. 북한 주민들을 그리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5월마다 제사상이 이어지는 광주를 잊고, 대추리를 잊고, 노근리를 잊고, 자살자가 가장 많은 동두천을 외면하고 지내지 않던가. 
 
 이 시대가 진보가 그나마 밥술 좀 얻어먹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시대는 위험사회(율리히 벡), 그리고 고도성장이 멈춘 것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 그리하여 더 이상 발전하거나 팽창하지 않을 각자의 재산에 대해서, 그 재산을 빼앗기면 가난과 죽임과 파산과 종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시대, 그래서 이 사람들은 더욱 더 보수保守적일 것이다.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한 것. 그 지키기 위한 방패로 누군가는 진보를 택하고 보수진영을 택할 뿐, 진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는 진보나 보수라는 구분 자체가 모호한 상태이다. 성장을 하기 위해 파괴를 서슴치 않아야 한다는 종(縱)적 팽창에 대한 주장인가, 혹은 성장을 멈추더라도 나누면서 가야한다는 횡(橫)적 팽창을 꿈꾸는가 그 정도의 차이다. 
 
 나에게 꿈과 저항을 알려준 386세대는 지금 50대가 되었고, 이번 대선을 지나면서 극명한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시사인에 만화를 그리는 굽시니스트는 “50대 이상 평범한 엄마들이 아는 유일하게 친근하고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으로 박근혜의 당선이유를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대선이후 멘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뒷짐을 지고 있다. 이리 저리 여러곳에서 모두 실망한 사람들은 대통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국민수준이 더 중요하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386이 대열에서 벗어날 때쯤, 신자유주의, 혹은 경기 부양의 마지막 정점을 향해 그래프를 바짝 끌어올리는 총력전을 벌이고 있을 때, 이들은 후배들을 양성할 시기를 놓쳤다. 많은 후배들이 대열에서 벗어나 어학연수를 떠났고, 혹은 돌아오지 않았고, 혹은 학위를 따서 금의환향했다. 
 어떤 50대가 나에게 말했다. ‘가난과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지도 않은 세대 아닌가. 중학교 입시와 고등학교 입시가 사라졌던 세대가 아닌가.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렇게 쉽게 간 세대가 단군이래 없었을 것이다. 취직도 얼마나 쉽게 되었던가. 학교 앞에 대기업의 차가 와서 학생들을 모시고 가던 세대다. 취업을 하고 나서 경기는 얼마나 좋았나. 10% 성장율까지 보인 고도성장의 세대다. 세계 역사상 그런 유래가 없을 만큼 실컷 먹고 잔치 벌린 가장 풍족한 세대가 아닌가. 그러면서 뭐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도 50대지만, 우리는 정말 편하게 살았다.’ 라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바로 다른 50대가 “그건 당신 생각”이라고 일갈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었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덤으로 억울함이 솟구쳐 올라오기도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적어도, 
 기본 규칙과 규율이 있고, 그에 대해서 변치 않는 적용이 있고, 열심히 하면, 이렇게 가면, 성실히 하면, 이 길이 正道다. 라는 룰이 지켜져야 하지 않나. 
 이제 인생의 절반정도를 살았는데 지금 느끼는 것은 나보다 어린 세대, 혹은 내 자식들이 엄마 이 길이 正道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글쎄..어떤 인간이 정권을 잡고 누가 교육감이 되고 누가 입시제도에 손을 대느냐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 
 
아랫세대들에게 정답과 규칙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세상. 그 때 그 때 다르다고, 융통성있게 살아야 한다고. 정답은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오늘의 현실. 
 
공분을 논하기 바쁜 인터넷 場에서 조만간 “경상도 50대 개새끼론”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용어에 광분하지 마시라. 한 때 20대 개새끼론이 유행이었다.) 
저항할 게 없어서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그냥 맥이 빠져버린 것이다. 
 
저항은 언제나 지속된다. 운명에 대해, 관습에 대해, 삶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권력에 대해, 내 욕구에 대해, 인간은 끊임없이 저항해야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저항이 모든 이에게 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저항은, 저항하고 싶은 자에게만 가치가 있다. 
 
그런데, 맥 빠져 버린 이 나라 사람들은 왜 몇 백년전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 “레 미제라블”에 이렇게들 광분하시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에 장발장에게 투영한 그 부글거리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지, 들여다 본 적 있는가. 
 
  
 
 
 

The strongman and his daughter

노무현때부터, 별 차이 없는 득표율로 대통령들이 당선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절반으로 쪼개져 각자의 투쟁을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유신의 망령은 그 공포가 얼마나 강렬하였던지, 유신에 태어난 모든 자들의 영혼을 잠식했다.
반정부적 생각을 스스로 검열하는 무의식속에 그들이 늙어간다. 베이비붐 세대는 죽을 때까지 투표권을 가질 것이고, 그들의 새마을 운동은 무덤까지 추억으로 회자될 것이다.
20대 이하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이 나라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다. 고려장을 부활하고 싶을 만큼 세대간 이견이 벌어질 수 있고, 이제 젊은이들의 삶을 그들이 볼모로 잡고 있다.

새누리당에겐 승리의 공을 세운 것은 변함없이 똥물에 발담그고 있는 민주당이다. 이제 민주당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진보의 싹과 풀뿌리의 힘까지 앗아가고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이 “이기고 싶다” 는 마음을 갖는 순간 망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김문수가 탄생한다. 함께 하겠다. 낮은 자리에 있겠다 라는 마음이 퇴색되는 순간 절대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 애시당초 민주는 중도보수파이지 진보도 아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 그들은 자존감을 잃은 지 오래되어 자력갱생은 기억조차 없다. 강력한 지도자가 독재를 펼쳐 이 시궁창에서 절벽으로 떨어지지만 않기를 바란다.

이제 새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동북아 파시즘의 라인업이 완벽구성되었다. 성장의 정점을 찍은 체제를 다시 부활시키는 길은 전쟁으로 체재를 쇄신하는 극단의 방법이 남아 있다. 성장이 끝난 자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면 있던 것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이다.

세계의 흐름이 그러할 진대, 이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투쟁은 언제나 지속되며, 역사는 투쟁과 분쟁을 거듭하며 발전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모두 다 행복한 세상은 언제나 유토피아에 머물러 있다. 진보와 민주에 대한 열망은 바람으로 충분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본질이며 본분이다.

이번 기회로 민주당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겠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 국민을 저버린 민주당은 헤쳐모여 하여 새누리와 합당하라. 내가 당신들을 온전히 버릴 수 있도록.

메이저 언론은 더욱 더 돈벌이에 혈안이 될 것이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진정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 친일과 파시즘, 유신의 떨거지들은 이거 먹고 떨어지기 바란다.

이제 군소언론, 지방지, 풀뿌리들로 더 게릴라처럼 함께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 굴하지 말고 끝까지 개기리라. 죽기밖에 더하겠나.

서울시 교육감 재선으로 서울의 아이들은 더욱 더 괴로워질 것이고, 그 아이들을 품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일게다.

다시 시작이다.

더불어, 이 쪽팔린 역사의 현장을 또렷이 기억해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이명박 설사 골고루 청소 잘 해주길 바란다. 더 싸질르지나 말길.

+ 덧붙여, 이 곳은 원래 이런 나라였다. 노무현을 뽑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뽑았던 나라.
박정희에게 고문받은 사람들이, 그의 딸을 추대하는 나라
홍반장의 부활을 축하하며, 김두관 전지사의 혁혁한 공로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전교조가 생각났다.

89년도였다.

그 때 매우 이상한 계기로 학교 (당시 중딩)에서 소요가 일어났는데, 계획하던 백일장및 사생대회 날짜를 자꾸 학교측에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연기하는 건 맞는데 다른 때 같으면 그냥 갈 정도의 비였는데 두 세번정도 연기가 되니 불만이 생긴 것.

근데 이런 일로 소요가 일어나기엔 너무 사소하지 않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3학년들이 갑자기 학교를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3학년들을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교사들이 뛰쳐나와 아이들을 말렸지만 1500명의 학생을 교사 몇 명이 제지하기엔 어려웠다.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회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로 인해 학교에서 누군가 파면당하고 해직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3학년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알았던 모양이고 교문출근투쟁들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어명의 선생님이 해직되었고 나는 그 선생님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백일장 문제로 아이들이 튀쳐나갈 때 어떤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되었던 장모 선생님이 나중에 TV에 전교조 임원으로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별 생각없이, 학교를 다녔고 학생회 임원을 지속했다.

당시 89년도 나는 그 학교의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부회장 당선시 교실 환경미화 학습신문을 만들 때 “왜 학생회 임원은 교사회식을 준비해야 하나” 라는 사설을 실어 6개월동안 교사들과 심한 충돌을 빚었다. 결국 담임교사의 지시로 그 학급신문은 교실에서 떼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격하게 반항을 하기도 했다. 일부 교사는 대놓고 수업시간 내내 나를 째려보는 짓거리까지 했는데, 고의적인 왕따를 유발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역력했고 이유없는 체벌과 차별대우도 감내해야 했다.

당시 학교내에서 벌어지던 스승의 날 선물 문제를 없애고자 이럴바에 각 학생들의 푼돈을 모아 공동으로 선물을 드리고 개별 선물을 없애버리자는 안을 내어 이를 학생회에서 통과시켰고, 이 부분을 추진하다가 촌지와 다름없다며 일부 선생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무산되었다.
내가 그 때 추진했던 것은 전교생 500원씩 내기였다.

3학년이 되어 학생회장이 되자마자, 작년 스승의 날 선물문제로 나에게 너는 선생을 뭘로 보냐고 언성을 높였던 가정선생이 당선인사를 하러 교무실을 방문하자 마자
“어머 이하나 회식은 언제 해?” 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 교사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사각형의 턱으로 남았다.
나는 교사회식을 추진하지 않았고, 모친 역시 이에 동의해 자동으로 맡게 되는 육성회장(당시 육성회장은 학생회장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맡게 되어 있었음)이 되어 육성회 자리에서 육성회장이라는 이유로 60만원을 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고 1/n 해서 각자 5만원씩 더 내면 되겠다. 라고 발언했다.

3학년 학생회장을 지내는 동안 남자아이들이 여학생이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지나가는 나에게 양동이에 물을 담아 뿌리기도 했고 좀 짖궃고 유치한 장난들을 많이 쳤다. 그 해에 각 학교마다 교복을 입는 게 유행이 되기 시작해 개방적이던 당시 백.. 모모 교장선생님과 학생회 임원들간의 상의를 거쳐 교복을 디자인을 선택했고 (근데 지금보니 안 예쁘더라. 후배들 미안), 임원 간선제였던 학생회장 선출안을 수정해 전교생 직선제로 돌리는 데 공을 들였다.

중딩인데..
참 거국적인 일 했다. ㅎㅎㅎ

아무튼 그 이후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좀 조용히 지내고 서클활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학교에도 파란많은 전교조 역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89-90년도에 수많은 교사들이 해직되면서 나의 여고에도 해직과 파면의 바람이 불었는데 이에 대해 학교의 학생들이 항거를 표시하는 의미의 행동을 했다는 얘기 몇가지였다.
교복자율화로 사복을 입던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등교했고,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복도에 내놓고 단식투쟁을 했단다.
당시 그 학교에선 반장/부반장을 교사 직권으로 임명하는 제도였는데 학생들이 이에 반발해 반장/부반장을 무효화시키고 각 반에서 두 명씩 임원을 투표를 통해 재신임해 30인회를 결성(당시 15반) 교장실과 이사장실에 항의방문과 투서를 전달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여,..
나의 자랑스러운 그 선배들의 모교는,
그 엄청난 대지에 여고/여상/여중이 설립된 그 땅에서.. 여고에서 매점까지 왕복 빠른걸음으로 15분이 걸리는 그 거리를.. 주파하든 말든 학교에서 14시간을 보내는 여고생들에게 절대 매점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시 돌던 루머로는, 이사장이, 여고에서 전교조가 가장 먼저 발생했으니 매점따위의 편의시설을 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음…

쓰다가 보니 고등학교의 이야기는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장황하게 썼던 지라.
네이버 블로그 싹 다 막아뒀는데.
다시 열어보겠다.

그리고 링크나 걸어야지..

엊그제, 관악을 이정희 후보의 문자소동으로
여러가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운동권에 입성한 적 없는 내가 귀동냥으로 들은 여러가지 정보들이 뒤죽박죽하다가 이제 겨우 정리가 되어가는데, 그저 생각나는 건, 그 때의 분위기다.

고등학교 때 갔던 연세대 노천극장에서의 전교조 집회.
전교조 우리의 희망 – 이라고 불렀던 노래.

그 때는, 사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있으면,
학교에서 따귀를 맞거나, 육격포탄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학생회 임원이 되도 빚내서 회식시키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반장이라고 도시락 두 세개 싸가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촌지를 내지 못해 얻어맞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조건 외우는 주입식 교육도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 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학생인권조례 당연히 필요한 거 이제서야 생겼다.
근데, 많이 변했다.

당시의 사람들도 권력을 알았고, 진영을 떠나 모두 늙어간다.
세월은 가고 고인 물을 썩고, 욕심들을 늘어가고 곪은 상처는 터진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게 2012년이 가고 있고, 나는 그냥 그 옛날의 그 공기가 좀 그리웠을 뿐이다.

http://tankhana.blog.me/120120468921

 – 오래전에 썼던 폭력학교에 대한 포스팅 6개나 됨 ㅋ

2012. 3. 21.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조금.

1.

민주주의의 원칙이 다수결이라고 한다면, 다수는 늘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 명제를 전복시켜야 지배가 용이하다. 대중은 우매하며, 함부로 휩쓸린다는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2.

대중의 무지함과 잔혹함을 역설하기 위해선 소수지배계층이 이 의견과 여러 사례들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당신들이 의견을 모아봤자 모두 쓸데없다고. 그리하여 사회적 잔혹뉴스가 유통되면 그들에게 좋다. 신문의 사회면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이 부각될 수록 대중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스스로 차별화 하여 고립된다. 대중의 고립과 상호간의 불신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3.

(1)대중이 우매한 권력자를 선택하거나 잘못된 주권행사 (투표/선거)를 하는 경우는 숱하게 많다. 이 상황의 원인중 하나로는 권력층에게 독점된 정보의 폐쇄성에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은폐, 왜곡, 즉 거짓말이 정의(定意)로, 명제로 유통되고 점령하는 것이다.

4.

국가권력의 지도자가 올바른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기 위해선 지도자를 앙망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스템이 확고해야 한다. 이 경우 (2)지도자가 절대 善을 추진할 수 없음도 감안해야 한다. 훌륭하고 능력있고 선량한 지도자가 그러한 정책만을 펼친다는 것은 환상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그 어떤 지도자도 독단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음을 말한다.

5.

그리하여 법(헌법)과 중재, 감시기관이 모든 권력을 철저히 나눠갖고 이 시스템이 그 어떤 폭력적 정권이나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체계가 되는 법을 누가 정하느냐와 감시기관이 특정계층에 의해 장악당했을 경우 민주주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1), (2)는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에 나온 문장의 차용입니다.
이건 책을 읽으며 한 생각들이고, 앞으로 더 좋은 생각이 나면 또 정리해보겠습니다.

2012. 3. 10.

강권하고 싶은 책 – 백년만의 북 리뷰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 교양인 펴냄 / 13,000원

영어 원제는 Why some politicians are more dangerous than others.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학자인데, 미국에선 violence와 preventing violence를 집필하여 출간한 바 있는 정신의학자이다. 

 굳이 이 책들의 표지까지 갖다 붙인 것은 듣보잡이라고 공격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소개 : 1966년부터 2000년까지 34년간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뉴욕대 정신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수십 년간 폭력 행동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폭력 예방책을 연구해 온 폭력 문제의 권위자이다. 
하버드대 법정신의학 연구소 책임자로서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매사추세츠 주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폭력 예방을 위한 사회심리학적 프로젝트를 실시해 교도소 안의 살인율과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1년 하버드 대학에서 ‘폭력의 뿌리’라는 주제로 강의한 뒤 그 내용을 정리해 <폭력: 국가 전염병에 관한 성찰>로 펴냈다. 이 책은 폭력의 심리적, 사회적 원인을 분석한 문제작으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폭력 연구에서 교과서적 저작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2000년에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으로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를 총괄했으며, 2005년에는 국제연합(UN) 총회에서 발표된 아동 폭력에 관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 알라딘 출처 

이 책은 폭력치사 (자살과 살인)와 각 정당의 집권기에 이상한 수치 변화가 있는 것을 관찰한 정신의학자의 보고서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실과 수치를 토대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집중한다. 


간단하게 말해, 제임스 길리건이 표시한 수치의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공화당이 집권하는 시기, 폭력치사 수치는 상승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시기, 폭력치사 수치는 하강한다. 

이러한 공통된 통계가 나오는 이유는 두 정당의 정책 때문이다. 
사람들은 개인을 보고 투표하는 경우가 있으나 명백하게 정치인은 정당에 속해 있으며, 이 두 정당의 정책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폭력성을 증대시키기고 감소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길리건이 대전제로 깔고 가는 것은 살인과 자살은 같은 종류의 폭력행위라는 것이다. 
사실 살인이라는 대범위안에 나는 타살과 자살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공격성이 내면으로 향하는 자는 자살을 하는 것이고, 외부로 나가는 사람은 타살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신의학자는 아니자만)
폭력성과 공격성을 띈 심리상태에서 타해(폭행)을 가하는 사람이 있고 자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것은 폭력과 공격성의 분출 방향이 다를 뿐이지 그 기저는 같다고 생각하는 바이므로, 나는 제임스 길리건의 대전제에 동의한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이러한 여러가지 통계수치들을 이야기하고 책의 중반부에서 그 차이점이 벌어지는 이유를 말한다.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과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의 차이점은 죄책감과 수치심의 차이로 정리한다. 언뜻 보면 이 두가지 심리는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심리상태이다. 


수치심의 윤리는 수치와 굴욕이, 다시 말해서 불명예와 치욕이 가장 큰 악덕이고 수치의 반대, 곧 자부심과 명예(존경)가 가장 큰 미덕으로 통하는 도덕 체계다. 죄의식의 윤리는 죄가 가장 큰 악덕이고 죄의 반대, 곧 순결이 가장 큰 미덕으로 통하는 자부심 (교만)이다.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누르고 겸손을 품는 길의 하나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하고, 반대로 수치심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누그러뜨리는 길의 하나로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을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고 수치심의 윤리에 젖은 사람은 강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132-133쪽) 


그러니, 이러한 성향이 정당 지지에 대해 확연한 차이점을 가져오는데다가 극 정당을 구성하는 인력들의 기본 정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은 경쟁을 부추키고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며,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 시켜 상류층을 역으로 보호하는 정책 “이중정복(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로마의 대표적 정책)”을 사용한다. 


정치경제학자 더글러스 힙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민주당 정부는 실업을 줄이고 성장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팽창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 높은 물가 상승률을 무릅쓸 가능성이 공화당 정부보다 높다.(중략) 1951년 이후 일어난 여섯번의 불황 중에서 다섯 번이 .. 공화당 정부때 일어났다. 이 경기 위축은 하나 같이 .. 인플레이션과 싸우느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기업가집단이 상당히 폭력적이고 경쟁위주에 익숙해, 진보집단과의 윤리 도덕적 결정에 대해 상이한 차이점을 보이고, 보수집단은 기업가 집단과 유사함을 예로 든다. 다시 말해 이러한 보수집단은 폭력치사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반면 진보집단은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공론화 시키는 경향이 크다는 주장이다. 

공화당 집권기에 폭력치사 사건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개인의 실업률과 빈부격차의 차이에 크게 주목하는데, 보수집단을 지지하는 지도를 그려봤을 때 옛남부(Old South)와 거친 서부(wild West)로 집중된다. 이것은 ‘카우보이와 인디언’이라는 역사적 유산과 상징과 결부된 주들이 여기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보수집단 – 권위주의적 인격 – 수치심에 젖은 사람 – 경계선 성격장애, 나르시시즘, 편집증, 반사회적, 우파권위주의의 인격구조 – 노예제도가 있던 11개 주(옛남부), 켄터키, 오클라호마 같은 2개 접경주, 서부 산악 주와 사막 주, 대부분의 중서부 대평원 

진보집단 – 평등주의적 인격 – 죄의식에 젖은 사람 – 우울증, 강박관념, 도덕적 마조히즘 유형 – 두 해안지역, 태평양 연안주와 북대서양 연안 주, 뉴잉글랜드와 위스콘신, 미네소타 (스칸디나비아 유산이 강한 북중부), 일리노이, 미시건 등. 

공화당은 경제에 강하고, 민주당은 경제에 약하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실업률과 실업지속도가 단 한 번의 예외없이 모든 공화당 정부때 올라갔고 모든 민주당 행정부 때 내려갔다는 것을 말한다. 
불황의 경우, 민주당의 불황은 86개월, 공화당은 246개월의 수치가 나타났으며 공화당은 정권을 잡은 동안 민주당보다 매년 2.3배나 더 긴 불황을 가져왔다는 통계수치를 이용한다. 
“공화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물려받은 단 한 번의 불황은 111년동안 1921년 단 한 번 일어났는데 겨우 4개월만에 끝난 반면, 민주당이 네 명의 공화당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4번의 불황은 끝나는 데 모두 27개월이 걸렸다. “

말하자면 저자가 인용한 내용 그대로 “공화당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높은 소득세, 높은 자본 이득세, 높은 법인세, 높은 사망(상속)세와 과도한 규제로 경제 성장을 질식시키는 경쟁자 민주당과는 달리 자기네 정당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정당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은 모두 개 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차이가 실업과 불황을 가져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개인의 수치심과 죄책감을 증폭시켜 자살과 살인같은 폭력치사가 전염병처럼 창궐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저자는 상당한 진보주의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정치적인 것보다는 이 사람은 정신의학자로서 폐쇄된 교도소에 대한 긴 연구기간, 그리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연구를 하다 보니 인간은 폭력에 노출될 수록 폭력적이 되고 (비폭력적인 범죄자를 가장 폭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교도소 수감이다. 라는 주장) 그 폭력은 인간의 취약한 심리, 수치심과 죄책감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에 대해 연구를 지속하다 보니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연구가 민주당이나 미국내 진보세력들에게 상당히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은 뻔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라고 생각해봤으나, 
기껏해서 50년 남짓 된 공화제 정부(민주주의라고 보긴 어렵다) 체제하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은 말하자면 김영삼 정부때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고작 네 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어떤 특정한 통계를 갖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 중에 과연 진보정당이라고 할 것이, 김대중, 노무현..정부도 과연 진보정당집권기였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혹자들은 박정희 시대에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이 나라가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일일이 수치와 통계와 그 후의 벌어진 후폭풍 (지금까지도 이어지는)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2-3일 가둬놓고 가르쳐도 모자랄 판이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이제서야 갑론을박 하고 있는 진보타령에 대해서도, 사실 진보.. 라기 보다는 중도진보..라든가 대부분이 보수우파인 나라에서, 과연 좌파..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이건 물론 상대적인 기준을 갖다 대면, 우리나라에서 그만하면 좌빨진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좌파의 원류인 유럽에 갖다 대면 당신은 국수주의자요.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 적용하긴 어렵다. 

그러나! 

최근들어, 불거지는 여러가지 이익집단(이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만, 개개의 분열된 사회문제들)들의 갈등에 대하여,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보적 성향을 띈다.이 현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진보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게 발달한 사람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제임스 길리건은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고 정리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경쟁을 선호하고 강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본인은 전혀 상류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수치심을 더 강하게 느끼는 성향을 타고 났거나, 살면서 발달된 것일 뿐.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것이지만, 
사회가 적어도 살만하게 돌아가려면 보수집단의 집권이 그닥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2010년에 발표된 이 나라의 통계 하나를 적어보겠다. 

한국인 2010년 한 해동안 1만 5,566명 자살, 
인구 10만명당 31.2명 자살 OECD 1위, 
세계 2위(1위가 궁금한가. 1위는 리투아니아였다. 평균 남성 70명, 여성 14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10-3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출산율 222개 나라중 217위

이 책을 번역한 이희재씨의 글이 읽을 만 하여 뒤에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분할 정복 전략이 주효하려면 범죄율이 높게 유지되어야 한다. 범죄는 주로 못 사는 사람이 저지르고 그 피해도 주로 못 사는 사람이 입는다. 잘사는 사람은 사설 방범업체가 철통같이 지켜주므로 범죄율이 올라가도 피해를 별로 보지 않는다. 절대 다수의 못사는 사람들은 범죄에 그대로 노출되므로 범죄를 저지르는  똑같이 못사는 사람에 반감을 품고, 말로만 범죄 엄단을 내세우는 공화당을 찍게 마련이다. 

길리건 박사는 미국의 중산층과 서민 99퍼센트가 좀 더 사람답게 살려면 1퍼센트의 분할 정복 전략에 휘둘리지 말고 어떤 당이 99퍼센트를 위한 정책을 내놓는지를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추구하는 정책이지 인물이 아니다. 

[2010년 통계 인용] 한국은 잘 사는 사람에게는 천국이고 못 사는 사람에게는 지옥임을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이 말해준다.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를 지금은 자살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자진(自盡) 이라는 말을 썼다. 진이 빠져서 당하는 죽음, 어쩌면 한국인의 자살은 배경없고 힘없는 개인에게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기면서 극단적 경쟁을 강요하고 소수의 상층부에게는 권력과 금력의 무경쟁 세습을 무한정 허용하는 불공평한 경쟁 지상주의 사회에서 버틸대로 버티다가 탈진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2012.2.28.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민주통합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아 물론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도 절대 진보정당이 아니다. 
여기까지. 

나꼼수를 생각한다.

최근들어 불거지는 나꼼수에 대한 이슈와,
그로 인해 분열이니 통일이니에 대한 얘기들과
생각을 주로 같이 하는 한 트친의 트윗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다.

길게 수식하지 않고 최대한 간결하게 적겠다.

1. 나꼼수의 공적 인정. 

– 정치에 대한 관심, 주류언론에 대한 비판, 해적방송의 위대할 손 (위대할 수 있다), 애플본사에서 한국을 특별방문할 정도로 팟캐스트의 위상을 드높인 점.
(더불어 아이폰 판매도 증가했는가? – 김어준 왈 “씨발 그건 내 알바 아니고” 까지)
여러가지 진보진영에 대한 담론 증가.
이 모든 공적 인정.

슬로건 –
정치도 유쾌할 수 있다 – 전국민의 가벼운 정치로의 접근,
쫄지바 씨바 – 전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 회복
정치가 생활의 스트레스다 – 전국민의 향햑열을 불태운 점 (가카와 같은 공적)

이 모두 인정. 

2. 나꼼수의 정체성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는 순간, 이 방송과 김어준의 목적과 정체성을 알 수 있다.
“노무현의 노제에서 소방차 뒤에 서 울며, 내 남은 시간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께요.”
라고 했던 그의 결심, 여태 검은 넥타이를 메고 다니는 김어준의 행보,
오로지 가카만을 위한 방송을 통해 이미 드러나는 정체성.

– 이 방송은 노무현을 위한 진혼곡이다.
복수를 꿈꾸는 김어준, 그를 위한 방송을 준비하고 딴지일보와 본인 특유의 특성을 드러낸다.

– 이 방송은 “편들어주기”를 지향한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 때 이미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김어준이 어떤 경로로 “편들어주기”로 정립했는지 나는 김어준이 아니라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무 편도 없어서 무참하게 개박살나고 망신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 노무현을 보낸 사람으로 “편들어주기”로 누군가가 망신당하는 것이라도 막고 싶었던 것일게다.

나꼼수는 노무현을 편들어 주지 못한 자괴감에서 시작해
곽노현 편들기와 정봉주 편들기로 이어진다.

3,

유시민의 말대로 (그 사람이 거기 있었고 민중이 그를 발견한 것 – 이거 참 명언이다)
나꼼수가 거기 있었고 사람들이 찾아서 들었고 알아서 열광했고 모두들 편을 들어주었다.
모든 시스템은 정점을 찍으면 내려오게 되어 있다.
나꼼수의 곽노현 편들어주기에서 시작된 논란이 비키니 사건을 거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4.

나꼼수의 1회분은 BBK 관련이다.
이 때 주진우는 출연하지 않았고, 김용민은 말이 없었다.

나꼼수는 이 정권 전부를 까기 위한 방송이 절대 아니고
오직 가카만을 위한 방송이 맞다.
하다 보니 여기 저기서 요구가 들어와 몇 가지 손을 내민 적은 있으나
다시 KTX 민영화와 1026 부정선거 (혹은 선관위 디도스 사건)에 대해 집중하는 점을 보여준다.
이 방송은 가카가 폐기처분되면 같이 사라질 방송이다.

방송이 시작된 2011년,
김어준이 다 지난 (다 지났다고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BBK사건을 끄집어 내고 나와
BBK 저격수 중에 역사상 가장 경박하고 유쾌한 정치인인 정봉주와 함께 시작한 것.
여기 BBK 저격수로 활동했던 박영선이 영입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라.
– 재미가 없자나!

5.

일각에서 나꼼수가 한명숙 밀어주기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현 시점에서 가카에게 노무현에 대한 가장 큰 복수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명숙이다.
정동영은 아니다.
나꼼수의 정체성은 약간 흐트러지긴 했으나 목표점은 하나다.
그건 변치 않은 듯 하다.

6.

방송의 한계다. 
모든 방송은 초반엔 시대와 대중을 끌다가 폭발적인 시민대중의 참여와 혓바닥에 의해 결국 대중에게 이끌려 가고 만다.
(이게 일종의 인간역학을 연구하는 인간들이 말하느 멱함수나 BURST 현상과도 어우러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7.

나꼼수는 이제 봉주 편들어주기에 집중하며
봉주와 대척점에 있는 가카에게 다시 집중한다.
그리하여 자기들로 인해 희생당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정봉주를 위해 프로그램명도
“봉주 X회” 로 변경한다.

8.

가장 빠른 대선 레이스는 오세훈과 김어준의 합작품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고,
2011년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가 시작하였다.
김어준은 가장 빠른 대선 레이스가 오세훈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라고 말하지만
나꼼수가 깔아놓은 자리에 오세훈이 불을 지른 것이다.
자리를 펴줬더니 춤을 추는 자가 있었던 것.

9.

왈가왈부 할 것도 없다.
나꼼수는 정봉주가 출옥할 때까지, 혹은 가카가 폐기될 때까지.
봉주 X회, 혹은 나는 꼼수다. 라는 목적을 가지고 오로지 가카만을 위해
오직 가카 한 분을 위한 방송을 계속 할 것이다.

이들의 자세도 이제 더 이상 “소설을 써봅니다.” 혹은 “라고 추정!” 이라고 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꼼수는 복수와 승리를 거머쥘 대상을 찾을 것이고 오로지 가카에게 집중해야 할 시점에 도착했다.

10.

아무도 듣지 않아도 그만일 방송이었다.
그러나 알아서 찾아들은 방송이고 떠날 때도 말없이 떠나든가 말든가 상관없다.
나꼼수에게 무엇을 기대할 순 없다.
물론 기대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대해봤자 실망만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들은 수차례 방송에서 언급하듯이
다시 가카에게 집중. 하려고 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떠날 자는 떠나고,
함께 할 자는 함께 하면 된다.

그리고 떠날 때
그동안 고마웠다. 라고 한 마디 해주면 참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동안 고마웠다,
나는 이제 뉴스타파로, 이털남으로, 반민특위로, 희뉴스로, 저공비행으로, 등등등등.
으로 간다. 빠이.라고.

11.

나?
나는 계속 들을 것이다.
난 김어준을 오랫동안 좋아해왔고 편은 들어주지 못해도 매우 냉정하고 까칠한
친구같은 마음으로 그냥 같이 하고 싶으니까.

2012. 2. 26.

나꼼수를 까는 것도
옹호하는 것도
모두 개인의 자유다.
그로 인해 갑론을박이 이어져도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봐서는 긍정적이다.

비난하는 자를 비난하는 것도
옹호하는 자를 옹호하는 것도
모두 괜찮다.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하여 세상이 다양해져야 우리 뿐 아닌 인류가 가진 전체주의공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극뽀옥!

그 바닥에 대해서

1.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보수언론에서 미친듯이 쏟아내고 있다.
9시 메인뉴스에도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역겹다.

부산저축은행 관련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이 더 중요한 정권이다.

부산저축은행엔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
물론 그들은 못된 교육감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니 들 생각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대가성으로 금품을 건넨 게 사실이라면 응분의 처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수사가 끝난 뒤 밝혀질 내용이다.
본인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부끄러움이 없다 했으니 기다리겠다.

법적인 함정에 빠져서 설령 구속이 되고 처벌을 받고 사퇴를 하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당일날 2억원을 선의로 주었다고 밝힌 그 자세를 믿겠다.

오세훈으로 인한 후폭풍을 곽노현으로 덮겠다는 꼼수가 참으로 노골적이다.
박명기 후보자가 7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과 그의 법무법인이 바른이라는 것도 너무 빤해보인다.

처음 사건이 발표되었을 때,
애초에 정치를 비롯한 모든 선거와 투표에 관련된 그 바닥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바라서 곽노현을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관행일 수도 있고 그게 시대의 반영일 수도 있으므로.

대신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곽노현의 편을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 나는 곽노현을 비난하지 않는 것으로 자세를 잡기로 한다.

2.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에 반대했다.
그를 구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사돈이자, 순복음교회 집사인 강용석에게 그들은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쭉 초지일관 한나라당의 색깔을 명확히 표시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3.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곽노현 사퇴를 부르짖거나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프레시안에서 조차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진중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군가는 교육감 직선제까지 손 보려 할 것이니 꼬투리가 잡힌 이상 어서 사퇴시키고 명확한 진보성향의 대타를 내세워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과 함께 같이 승리하자. 라는 의도일 수도 있다.

물론 김어준의 지적대로 먼저 쫄아서, 혹은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다.
둘다 이해하겠다.

하지만 사퇴는 본인이 직접 하거나 수사결과 자격이 박탈당했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종용하고 싶지 않다. 법이 밝혀주거나 본인이 밝힐 것이다.

4.

일단 오늘은 한나라당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용석 의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고군분투 해주시기 바란다.
두달이 미처 못 남았다.

야권에서는 빨리 제대로 된 후보를 내서 선거전에 돌입했으면 좋겠다.
지금 곽노현을 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5.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은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깊게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 정권이다.
그래서 많이 배웠고 많이 읽었다.

가카의 꼼꼼한 배려와 국민교육에 대한 애정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2011.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