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필요한 나라

2020년 4월 11일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나니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꿈꾸고 자기 공동체에서 정당한 댓가를 받는 경제 시스템까지 구축하길 원하는 정서가 매우 오랫동안 발현되어 왔다고 느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시스템이라 부르건간에, 사민주의나 민주주의나, 때로는 어떤 공산주의적 요소도 충분히 함의하고 있는 공동체들이 있었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구원자에 의해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길 오랫동안 염원해온 것이다.

정치와 반체제적 혁명 주체들이 이를 소화하지 못했을 때, 사이비종교가 나타나 그들을 구원한다며 나꿔채갔고 그들은 자기들만의 왕국에서 최면에 취한 채 살아갔다.
그 왕국은 부실하게 지어진 것이라 외부와 내부의 균열로 깨어지곤 했고, 세상에서 고립된 사람들의 공동체가 박살나면서, 갑자기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신천지와 그 이전의 종교들이 보여왔던 행태를 보면 분명 공산혁명, 또는 주체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일부의 형식만 빌려 왜곡된 형태로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1990년대에 시민운동의 한 갈래가 급진적 환경생태운동으로 분파되었을 때, 교조주의적이고 종교적인 기이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들 중 일부가 분명 신흥종교에 들어가 브레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의심한다. 유물론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겠는가 질문한다면, 내가 아는 한 87세대에서 유물론이나 막시즘을 잘 이해한 사람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저 시대 정서가 그랬기 때문에 합류한 얼치기들도 많았다.

사이비를 비롯한 신흥종교가 대를 이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욕구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마음을 사는 데 정확한 대응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판에서도 한 리더를 신화속 주인공쯤 되는 영웅으로 만들어 한없이 선량하고 깨끗한 그분으로 만드는 정서가 있다. 우리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추종자들이 그렇고 문재인을 지키는 것이 공적 약속이라고 말하는 일부의 문재인 지지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이전에도 도처에 있었다. 정치인을 하나의 권력지향적인 자연인으로 보지 않고 마치 신탁을 받아 아버지의 칼 반쪽을 가지고 대모험을 떠나는 어린 유리왕으로 보는 것이다. 권력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반인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암투를 견디고 버텨야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순전무결한 우리의 왕을 찾는 사람들은 신흥종교와 정서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시민으로서 가장 적절한 정치인을 찾는 것은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더 낫게 만들만한 무기를 찾는 것이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캐릭터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승률이 가장 높거나 내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뽑아내고 나는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 그 캐릭터를 길러내면 되는 것이지, 그 캐릭터를 숭배하거나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일부 열혈 정치 지지자들은 무단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은 단톡방에 초대해 집단 제사를 지내자며 울며 읍소한다.
그러나 언제나 선거판에서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캐릭터를 쓰고 버릴 각오를 하고 투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정의로워졌는가.
예전보다 부정한 것을 적발하기 쉬운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가. 싫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며 운명공동체다. 거래를 하며 사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거다. 그들을 어떻게 내 편으로 끌어당길 것인가는 각 신흥종교의 흥망성쇠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2020년 4월 12일

범죄와 민폐

아침을 못 먹고 길을 나섰다.

요즘은 끼니를 거르면 속이 쓰려서 약속장소에 15분 먼저 도착하자마자 먹을 걸 사 먹을만한 곳을 찾았다. 커피집이 문을 열긴 했는데 샌드위치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다시 나왔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자 물품을 가져온 사람이 냉장고 앞에서 진열을 돕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점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냉장고 앞에 서서 주저하자 친절한 말씨로 손님 쇼핑 좀 하시게 잠깐만 비켜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샌드위치가 세 종류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 햄에그샌드위치와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차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서서 먹는 스탠드에서 얼른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미 한 청년이 뭔가 뚜껑을 열고 있었다. 청년이 먹는 건 비빔밥이었다. 각종 채소가 들은 용기가 밥 위에 얹어져 있었다. 아침 9시 45분에 편의점에 서서 비빔밥을 먹는 청년은 하루가 끝난건지 시작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 초등학생쯤 된 통통한 사내아이가 창문에 붙은 포스터를 한참 보다가 갔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선거 입후보자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커피로 입을 가시며 서둘러 약속장소로 갔다. 약속시간보다 7분 정도 늦은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알아봤다. 그는 늦어져 미안하다며 오래 기다렸냐고 물었다. 그는 얇은 선거운동 점퍼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가방이 두 개쯤 들러져 있었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시간이 촉박한 줄 알았다면 약속을 조금 여유있게 잡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들어선 그가 성급히 테이블위에 널부러진 것들을 치웠다.

“제가 요즘 아침에 선거운동하느라고요. 근데 애들이 어려서요. 아침인사 끝내고 집에 가서 애들 밥을 차려주고 나와야 해서요. 아휴.”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같은 커피 드리퍼까지 가져와서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제대로 된 드립주전자가 없다는 걸 부끄러워했고 동료가 새로 가져온 원두인데 맛있다고 했다며 그럴싸하게 대접하지 못해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그는 컵을 뜨거운 물로 덥혀보려고 했지만 사무실 안에 개수대가 없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가 내려준 머그잔은 절반은 차갑고 절반은 따뜻했다. 커피는 대단히 맛있지 않았으나 그래도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국회의원 입후보를 할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있었고, 신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0% 득표율을 넘지 못해 공탁금을 홀라당 날릴지도 모른다. 그의 얇은 잠바를 보고 있자니 다른 후보들이 입는 두꺼운 점퍼도 생각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데 그가 서둘러 책을 두 권 챙겨주었다. 후원자가 수 십권을 사서 보내줬다는 “거래된 정의”와,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운동에 관한 책자였다. 사무실 밖 공간에는 몇 몇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를 시작했다. 나는 손님이 있으니 멀리 나오지 마시라 했으나 그는 굳이 문 밖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도 아침밥을 차려야 하는 나라에서, 61세의 여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모르고 전국으로 돌아다녔다는 뉴스가 하루종일 떠돌았다. 60년을 산 여자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가야했던 이유와 교통사고로 입원중에도 자기 종교의 예배에 참석했던 이유가 뭔지 나는 잘 모른다. 밤늦게 틀었던 한 보도영상에는 재벌가의 아들에게 프로포폴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여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법적으로 그의 집에 가서 프로포폴 주사를 놓았던 간호조무사는 “엄마는 쓰러지시고, 아빠는 수술해야 하고,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라고 했으며, 그 간호조무사의 상사인 병원 원장은 “우리집도 상황 안 좋아. 감옥가서 좀 쉬다 오지 뭐. 의사하기도 지겹다.”고 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은 “내가 너를 믿고 의지한 결과가 이거니?”라고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어요.”

무엇이 범죄이고, 무엇이 민폐인가.

아침 9시 45분의 편의점 비빔밥은 또 뭐란 말인가.

 

2020.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