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비둘기

#지난글 #과거의오늘

52008503_2470986542913054_8519775755758993408_o엄마 비둘기 머리에 뭐가 많이 붙어있어?
– 다친 거겠지.
저거 봐봐. 머리가 막 삐쭉삐쭉해.
– 뜯긴 거 같기도 하다.

아이가 가르키는 비둘기들은 살이 쪘지만, 그 모양새가 엉망이었다. 머리깃털은 길이가 다르고 일부는 뜯겨나간 듯 삐쭉삐쭉했다. 그 옆의 비둘기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비둘기 서너 마리에 모여 맨홀에 고인 물을 마신다.
아이가 비둘기를 보며 말했다.
“쟤네 저기서 물 마신다.”

아이는 요즘 퇴행중이다. 중학교 1학년은 갑자기 아기가 되어 혀짧은 소리를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가끔 길에서 손을 잡았다가 또래 아이들이 있으면 손을 쑥 빼곤 하지만, 혀 짧은 소리로 “엄마 미워!”하고 토라질 때처럼, 엄마 저기 봐봐, 엄마 이거 봐봐, 엄마 내 얘기 들어봐. 라고 종알댄다.

아이가 가리킨 곳에 유해조류, 혐오동물이 된 비둘기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알량한 멘홀 위의 물방울.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우리는 이제 정당하게 비둘기를 혐오할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비둘기들은 대부분 건강 상태가 안 좋을 거라고 말해줬다. 나는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아이는 얼마 전에 들은 88올림픽 때 비둘기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고 그 이후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 사람들이 미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러 묻지 않았다.

몇 해전 인덕원역 커피숍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회의를 하다가 다가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바퀴에 깔려 납작해져버린 비둘기를 보고 아무 말도 못 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계절도 이맘때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겨울이 더디 왔다.
오리와 닭이, 돼지가 병들지 않아서 그 노동을 하지 못해서, 돈을 못 벌어서, 생명을 죽이고 받던 꽤 괜찮은 수입이 없어서, 겨울 내내 다른 일거리가 없어서, 오늘 밤 병들어갈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이 그리 다른가.
모두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나아졌으면 좋겠다.

 

2019. 2. 17. #지난글

비둘기 두 마리 

사람들이 북적이는 어느 지하철역 길거리가 훤히 보이는 커피집에 앉았다. 

사람들이 오가고 차가 지나가는 좁은 골목의 입구 비둘기 몇 마리가 좀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먹고 있다. 

일행은 계속 비둘기를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좀처럼 비키지 않는 비둘기는 혐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나는 차마다 비둘기때문에 속도를 늦추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종이를 놓고 펜을 하나씩 들고 중요한 계획을 서로 조정하는 중이었다. 비둘기를 눈여겨보던 일행이 탄식을 뱉었다. 

“엇. 아… 저거 뭐야.”
좁은 골목에 깃털이 마구 날렸고 결국 비둘기 두 마리가 납작해졌다. 
오전엔 4년 반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의 수기를 읽었다. 독방에 살던 징역수는 비둘기 둥지를 만들고 비둘기 알을 기다리고 알에서 깬 비둘기가 다시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길바닥에 납작하게 깔릴 비둘기 두 마리는 아직 있는가, 이미 없는가. 

세상은 복잡하게 움직이고 우리의 수명은 조금씩 줄어드는데 비둘기라도 애타게 기다리던 간절함은 여기에 있을까, 거기에 있을까. 
올겨울은 유난히 쓸쓸하게 온다. 

누군가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술에 취해 졸고 싶은 밤이다. 
11월의 마지막 토요일 

인덕원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