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담회]완전히 새로운 시민교육

2015년부터 경기도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해온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서 홍보부탁드립니다. 윤석열정부와 경기도의 임태희교육감이 삭제한 민주시민교육을 회복시키고자 현황공유, 향후 완전히 새로운 시민교육을 설계하고자 온라인 집담회를 추진합니다. 이룸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약 3천여개의 학급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해왔습니다. 극우놀이를 일삼는 학교현장에서 노동권을 상실한 교사들이 다시 힘을 내어 시민교육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민주시민교육을 기획, 실행했던 분이나 관심있는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bit.ly/2025시민

이미 무너진 폐허에서

처참한 마음이 가라앉을때까지 기다렸다가 쓸까 하루종일 서성였습니다만,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더 늦어질 거란 생각만 듭니다.

교권추락, 공교육 붕괴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학교 내의 각종 교권침해 사례와 인권침해 사례는 굳이 더 보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폭력적 교육현장의 문제는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학교폭력뿐 아니라 마녀사냥도 이어집니다. 폭력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작은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이고 그 외부자들은 모두 내 공동체에 엎드려 조아려야 마땅하다는 이기주의입니다. 이 문장의 적용범위는 학교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에 해당됩니다.

학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그 가족은 이 사회의 시민입니다. 시민들은 각자의 번뇌를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귀가한 가족들은 사회에서 받은 수많은 모멸과 차별을 품고 있습니다. 아주 더러운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갑니다. 사회의 모든 그림자가 담긴 보따리 옆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은 보따리에서 흘러나온 지꺼기를 몸에 묻힌 채 학교로 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는 이 사회에 흘러다니는 혐오, 물화, 차별, 배제, 모욕이 뒤섞였다가 정화되었다가 다시 폭발하는 곳입니다. 응축된 감정의 쓰레기장입니다. 교육은 이 쓰레기들을 씻어내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사회가 더러울수록 학교가 해내야 할 일은 너무 많아집니다.

공교육은 1980년대보다는 행정시스템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더욱 지독해졌습니다. 사회의 부패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교실 안은 아수라장입니다. 사회가 집약되어 있으니까요. 반면, 규율과 질서를 잘 지키고, 인내심이 강하고 수행능력이 뛰어나며, 체제적응을 잘 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위 덕목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공직자도 될 수 없습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은 체제를 꾸려가는 정부의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이번 서이초 교사가 처음이 아닙니다. 2018년 전라남도 구례에서도 비슷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초등교사였고 혼자 3개의 공모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업무과중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시에도 개인의 우울증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2018년에는 많이 외면했습니다. 구례의 교사는 “학교는 지옥이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이후 5년 동안 수많은 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사이 학교는 딱히 대단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공교육이 과연 붕괴된 것일까 다시 질문합니다.

붕괴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은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해 분쇄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세상은 변했어요. 아이를 때리면 안되고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직업에 귀천을 두면 안되고 차별적인 말을 하면 안됩니다. 성적대로 줄을 세워도 안되고 가부장을 내세워도 안됩니다.

반면, 노동으로 돈 벌기 힘들어진 세상이고 부자되기 어렵습니다. 계급사다리는 부서진 지 오래고 금융자본은 전세계를 잡아먹고 있어요. 세상은 더욱 더 양극화가 심해져서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지 않아요. 이제 금융자본으로 돈 벌 수 없는 노동자들끼리 부여안고 팔짱 끼고 걸어야 살똥 말똥한 세상입니다.

교권추락은 어떤가요. 교사의 역할이 지금 교사가 할 일이 맞나요?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가르치는 사람인가요? 지금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들인가요? 아니예요. 지금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르칠 수 없어요. 교사는 행정업무를 하는 사람이고 기간제교사를 채용하고 내보내는 사람이며, 돌봄교실을 배정하는 사람이고, 공모사업에 기획서를 제출하고 행정실에 예산지급 품의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학부모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서 아이문제로 학교에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읍소해야 하며, 민원을 받아야 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검은색으로 가려야 하는 사람이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폭력적인 아이를 달래야 합니다. 급식에 알레르기유발물질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아이들의 콧물도 닦아줘야 합니다. 초등교사는 가르치는 일보다 행정과 돌봄을 더 많이 챙겨야 합니다. 선배들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체육관 물품을 정리하고 과학실 도구를 닦아야 합니다. 교사는 누구인가요?

사회는 학교에 너무 많은 것을 밀어넣었습니다. 학부모들도 그걸 원합니다. 학교는 무너지는 이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학교는 30년전과 완전히 다른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 공교육계는 여전히 30년전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교권추락, 공교육 붕괴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작살났기 때문에 여태 버티던 학교의 담벼락은 이미 무너졌어요. 이번에 크게 보였을 뿐입니다.

각 교실에는 폭력적 성향의 학생뿐 아니라, 별도의 돌봄이 필요한 학생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3년간 퇴행을 보인 학생들도 있고, 미숙아로 태어나 힘겹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학교에 온갖 정책이 쏟아져 들어왔고, 돌봄의 크기가 커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상상도 못할 민원이 있습니다. 담임교사의 연락처는 공개되어 있고 SNS는 수시로 사찰당합니다.

만약, 방법이 있겠냐고 묻는다면 여태 몇 년간 해왔던 이야기와 비슷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1개 학급에 2명의 담임이 필요합니다. 생활지도와 교과지도가 분리되어야 합니다.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교사를 줄여서는 안됩니다.

행정실무자와 시설관리자는 각 학교에 더 많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특별교실을 관리하고 방역을 책임지고 학교시설을 지킬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공모사업 등 별도의 행정업무를 전담할 수 있고 결정권도 가진 행정실무사가 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학교에 1명 이상의 상담전문가와 사회복지사가 필요합니다. 보건소와 정신건강보건센터와 빠르게 연락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민원업무는 교사가 아닌 전문가가 처리해야 합니다. 또는 각 학교의 민원창구를 만들어 별도의 기관이 받아내야 합니다.

법률자문도 필요합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학교내 비정규직의 노무문제와 교직원 노동권에 대한 해석을 해줄 사람과 학교에 붙어올 민원을 법적으로 해석해줄 기구도 필요합니다.

학교의 급식지도는 급식의 영역에서 따로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특히 급식실이 없는 학교에서 교사는 식사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는 가르치기만 하는 공간으로 남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말그대로 시민을 길러내는 복합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주권도 분산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주도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교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냐고요? 위에 언급한 일이 교사에게서 분리되면, 그때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겠죠. 교안을 개발하고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따로 지도하거나 발표연습을 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시도할 수도 있고 아이들과 재미난 프로젝트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인들과 구성원들의 노동권을 고려하고 지역사회와 연대할 길을 만들 수 있겠죠. 학교에 교사외의 직군이 많아지면 그 자체로 학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육청을 압수수색해봤자, 답은 없을 겁니다.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지금의 시민은 자기가 맡은 일 외의 다른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기엔 너무 바쁩니다. 세상이 그렇잖아요. 죽도록 벌어도 대출이자 갚기 바쁘고, 아무리 모아봤자 좋은 집으로 이사가기 힘들어요. 세상은 약한 자들을 계속 갈아넣다가 결국 죽여버리는데, 내가 왜 예정에 없던 일을 다 감당해야 합니까. 다들 똑같지 않습니까? 서로를 물어뜯지 않으면 내가 언제 갈려버릴지 모르는 세상에서, 혐오로 무장하는 게 살길이라고 터득한 사람들이 드글댑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힘으로 버텨야 하는 한국사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모두 자멸을 향해 힘껏 폭주하는 레밍과 같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교사의 글을 읽습니다. 울지 말아야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통한 마음으로 함께 빕니다.

[쓰다]민주시민입니까?

2019년 2월 20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입니다.

이하나

엊그제는 지역의 교사들이 모여 민주시민교육연구회라는 걸 만들었다고 연락이 와서 참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가 뭘 하고 어떤 걸 해왔는지 설명하고, 네트워크 내의 각 단체와 연대회의의 시민단체들도 소개했다. 시민교육을 하고 있는 안양지역의 시민사회단체의 각 특성을 얘기하고 교안개발의 중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면서 질문 있냐고 물으니,

교사들은,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무슨 질문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시민단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자기들은 저항을 해 본 적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건 알겠지만, 마을교육공동체를 교육청에서 떠들어댄 지 몇 년이지만, 그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교사들에게 생협에서 장을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섯 명정도 모인 자리였는데 절반이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금이 총회 시즌인데, 총회 안 가시죠?”
다들 웃었다.
“그런 모임이 있다고 연락은 오는데 오전에 있어요…”
“총회는 오전에 잘 안 합니다. 그런데 모임이 오전에 있어서 그게 불만이면 사무국에 전화해서 저녁모임도 해달라고 요청하셔야 합니다.”
“아…”하는 탄식이 흘렀다.

하라는 대로, 그렇다는 대로, 원래 그렇다 하니,
그대로 따라서 살아온 사람들.

시민사회단체는 백명이면 백명의 의견이 있어 통일이나 완전 합의, 만장일치가 잘 안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건 각자 자기 불만을 먼저 털어놓고 민원제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모임에 나온 교사들은, 학교를 벗어난 사회에서 저항의 경험이 너무 적어서, 문제점을 발견해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장학사에게 카카오같이가치에 연재했던 퍼스트펭귄 링크를 보내줬고 이 내용을 공유하면 시민사회단체가 무엇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올거고 이런 일을 했거나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민교육을 지난 십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해왔다고 얘기해주면 될 거라고 얘기하며 헤어졌다.

이미 상당히 진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교사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교양있는 시민들이 사는 배려 넘치는 사회쯤으로 인식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교육공무원의 경우,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정치성이 드러나는가 늘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몇 해전에는 어느 토론회에서 “자기 자신이 민주시민인가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인데, 시민은 덕망과 교양을 갖춘 존재로만 인지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 자격을 갖추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착한 어린이는 울지 않아요. 착한 어린이는 싸우지 않아요. 라는 노랫말처럼 자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저항하고 기득권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하면 곧바로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착한사람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프로파간다.

“말 들어야지” .. 말을 왜 들어. 왜, 들을만 해야 듣지.
말을 안 들으면 니 말이 개똥이라 못 들어주겠다는거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런 교육을 잘 이수해야 4대보험을 직장에서 내주는 주류로 편입할 수 있으니. 그렇게 사는 게 어쩌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 시민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되는 면이 있는데, 몇 년을 해와도 아직도 20년 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 무슨 자치를 논하나. 착한 사람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