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무너진 폐허에서

처참한 마음이 가라앉을때까지 기다렸다가 쓸까 하루종일 서성였습니다만,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더 늦어질 거란 생각만 듭니다.

교권추락, 공교육 붕괴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학교 내의 각종 교권침해 사례와 인권침해 사례는 굳이 더 보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폭력적 교육현장의 문제는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학교폭력뿐 아니라 마녀사냥도 이어집니다. 폭력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작은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이고 그 외부자들은 모두 내 공동체에 엎드려 조아려야 마땅하다는 이기주의입니다. 이 문장의 적용범위는 학교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에 해당됩니다.

학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그 가족은 이 사회의 시민입니다. 시민들은 각자의 번뇌를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귀가한 가족들은 사회에서 받은 수많은 모멸과 차별을 품고 있습니다. 아주 더러운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갑니다. 사회의 모든 그림자가 담긴 보따리 옆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은 보따리에서 흘러나온 지꺼기를 몸에 묻힌 채 학교로 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는 이 사회에 흘러다니는 혐오, 물화, 차별, 배제, 모욕이 뒤섞였다가 정화되었다가 다시 폭발하는 곳입니다. 응축된 감정의 쓰레기장입니다. 교육은 이 쓰레기들을 씻어내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사회가 더러울수록 학교가 해내야 할 일은 너무 많아집니다.

공교육은 1980년대보다는 행정시스템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더욱 지독해졌습니다. 사회의 부패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교실 안은 아수라장입니다. 사회가 집약되어 있으니까요. 반면, 규율과 질서를 잘 지키고, 인내심이 강하고 수행능력이 뛰어나며, 체제적응을 잘 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위 덕목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공직자도 될 수 없습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은 체제를 꾸려가는 정부의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이번 서이초 교사가 처음이 아닙니다. 2018년 전라남도 구례에서도 비슷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초등교사였고 혼자 3개의 공모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업무과중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시에도 개인의 우울증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2018년에는 많이 외면했습니다. 구례의 교사는 “학교는 지옥이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이후 5년 동안 수많은 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사이 학교는 딱히 대단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공교육이 과연 붕괴된 것일까 다시 질문합니다.

붕괴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은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해 분쇄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세상은 변했어요. 아이를 때리면 안되고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직업에 귀천을 두면 안되고 차별적인 말을 하면 안됩니다. 성적대로 줄을 세워도 안되고 가부장을 내세워도 안됩니다.

반면, 노동으로 돈 벌기 힘들어진 세상이고 부자되기 어렵습니다. 계급사다리는 부서진 지 오래고 금융자본은 전세계를 잡아먹고 있어요. 세상은 더욱 더 양극화가 심해져서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지 않아요. 이제 금융자본으로 돈 벌 수 없는 노동자들끼리 부여안고 팔짱 끼고 걸어야 살똥 말똥한 세상입니다.

교권추락은 어떤가요. 교사의 역할이 지금 교사가 할 일이 맞나요?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가르치는 사람인가요? 지금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들인가요? 아니예요. 지금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르칠 수 없어요. 교사는 행정업무를 하는 사람이고 기간제교사를 채용하고 내보내는 사람이며, 돌봄교실을 배정하는 사람이고, 공모사업에 기획서를 제출하고 행정실에 예산지급 품의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학부모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서 아이문제로 학교에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읍소해야 하며, 민원을 받아야 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검은색으로 가려야 하는 사람이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폭력적인 아이를 달래야 합니다. 급식에 알레르기유발물질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아이들의 콧물도 닦아줘야 합니다. 초등교사는 가르치는 일보다 행정과 돌봄을 더 많이 챙겨야 합니다. 선배들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체육관 물품을 정리하고 과학실 도구를 닦아야 합니다. 교사는 누구인가요?

사회는 학교에 너무 많은 것을 밀어넣었습니다. 학부모들도 그걸 원합니다. 학교는 무너지는 이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학교는 30년전과 완전히 다른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 공교육계는 여전히 30년전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교권추락, 공교육 붕괴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작살났기 때문에 여태 버티던 학교의 담벼락은 이미 무너졌어요. 이번에 크게 보였을 뿐입니다.

각 교실에는 폭력적 성향의 학생뿐 아니라, 별도의 돌봄이 필요한 학생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3년간 퇴행을 보인 학생들도 있고, 미숙아로 태어나 힘겹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학교에 온갖 정책이 쏟아져 들어왔고, 돌봄의 크기가 커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상상도 못할 민원이 있습니다. 담임교사의 연락처는 공개되어 있고 SNS는 수시로 사찰당합니다.

만약, 방법이 있겠냐고 묻는다면 여태 몇 년간 해왔던 이야기와 비슷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1개 학급에 2명의 담임이 필요합니다. 생활지도와 교과지도가 분리되어야 합니다.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교사를 줄여서는 안됩니다.

행정실무자와 시설관리자는 각 학교에 더 많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특별교실을 관리하고 방역을 책임지고 학교시설을 지킬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공모사업 등 별도의 행정업무를 전담할 수 있고 결정권도 가진 행정실무사가 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학교에 1명 이상의 상담전문가와 사회복지사가 필요합니다. 보건소와 정신건강보건센터와 빠르게 연락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민원업무는 교사가 아닌 전문가가 처리해야 합니다. 또는 각 학교의 민원창구를 만들어 별도의 기관이 받아내야 합니다.

법률자문도 필요합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학교내 비정규직의 노무문제와 교직원 노동권에 대한 해석을 해줄 사람과 학교에 붙어올 민원을 법적으로 해석해줄 기구도 필요합니다.

학교의 급식지도는 급식의 영역에서 따로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특히 급식실이 없는 학교에서 교사는 식사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는 가르치기만 하는 공간으로 남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말그대로 시민을 길러내는 복합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주권도 분산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주도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교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냐고요? 위에 언급한 일이 교사에게서 분리되면, 그때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겠죠. 교안을 개발하고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따로 지도하거나 발표연습을 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시도할 수도 있고 아이들과 재미난 프로젝트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인들과 구성원들의 노동권을 고려하고 지역사회와 연대할 길을 만들 수 있겠죠. 학교에 교사외의 직군이 많아지면 그 자체로 학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육청을 압수수색해봤자, 답은 없을 겁니다.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지금의 시민은 자기가 맡은 일 외의 다른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기엔 너무 바쁩니다. 세상이 그렇잖아요. 죽도록 벌어도 대출이자 갚기 바쁘고, 아무리 모아봤자 좋은 집으로 이사가기 힘들어요. 세상은 약한 자들을 계속 갈아넣다가 결국 죽여버리는데, 내가 왜 예정에 없던 일을 다 감당해야 합니까. 다들 똑같지 않습니까? 서로를 물어뜯지 않으면 내가 언제 갈려버릴지 모르는 세상에서, 혐오로 무장하는 게 살길이라고 터득한 사람들이 드글댑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힘으로 버텨야 하는 한국사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모두 자멸을 향해 힘껏 폭주하는 레밍과 같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교사의 글을 읽습니다. 울지 말아야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통한 마음으로 함께 빕니다.

마을이야기 만들기 – 10. 찰리찰리

다음 주가 마지막시간이다.

몇 몇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책을 다 만들었다. 성글게 만든 아이들은 일찍 끝났고 조밀하게 하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대하드라마를 짰다가 난관에 봉착한 아이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건 결과물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본인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자기 뜻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펼침 9면을 메꿔나가는 일을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기승전결이 있고 위기와 절정이 있는 일을 만드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전문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아이들이 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열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일도 사실 버겁다.

사실은 한 명 한 명 따로 따로 봐줘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선을 잡아주면 잘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각자 간단하게 책만들기 소개글을 만들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매 번 수업을 해내기가 어려워보이지만, 또 막상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아이들 통제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예산이 다 떨어졌는지 간식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자,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시간이야.

아이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늘 하기 싫어하는 듯 하더니 은근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주에는 상담교실에 있는 각종 교구들을 이용해서 우리 마을을 만들어 보는 걸로 마무리를 할 것이라 했다. 그림책을 다 못 끝낸 아이들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게 될 것이다.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별도로 맞춤지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시 학원처럼 소수정예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현관 앞에 앉아 찰리찰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되는 분신사바 놀이다. 10살과 11살, 아이들이 공포를 배우는 나이가 아닐까.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가위눌림과 귀신을 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찰리찰리를 해봤냐고 물어서 선생님은 그런 거 안해도 귀신이 다 보인다고 했더니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찰리찰리를 하던 은서가 갑자기 막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은서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저 다이소 갈거예요.

어디 있는 다이소? 인덕원에 있는 거?

모르겠어요. 같이 가요 선생님.

음. 선생님은 바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가겠는데, 대신에 같이 가는 길까지 같이 가자.

은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외숙모네 놀러간 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잔 일, 사촌동생이 몇 살이고, 그 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선생님은 왼쪽. 다이소는 저쪽에 있던데, 저기까지 갔다가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가면 다시 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돼요. 갈 수 있어요.

그럼 여기서 너는 길을 건너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은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어서 손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은서에겐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이는 놀란 듯이 바쁘게 뛰어갔다.

길을 건넌 은서가 손을 흔들고 다이소를 향해 갔다.

나는 개천을 건너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갸녀린 팔다리와 무거워보이는 가방, 아이들에게서 나는 큼큼한 냄새.

나는 홍콩할매귀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의정부 버스터미널 뒷골목의 10살이 되어 서 있다. 내가 빼앗아 타던 상미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앞 집의 미군아저씨가 소풍이라고 가져다 줬던 프링글스가 사각거리는 듯 했다. 나의 열 살은 지독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만 같아 나는 매번 슬프다.

 

2015. 6. 19.  기록

마을기자단 3.

 

 

 

 

지난 수요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취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건의사항, 문제점을 파악해서 적어보라 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기사쓰기의 기초를 가르칠 시간도 조건도 되지 않고

동네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그칠 듯 하다.

아이들의 주된 요구는 위생과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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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리해 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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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자단 2.

부산역에 도착해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커다란 엘리베이터에 나와 내 일행뿐인가 했는데 한 소년과 허리가 살짝 굽고 관절염이 오래된 듯한 할머니가 같이 탔다.

소년의 옆모습이 낯익다.
가만히 고개를 움직여서 소년의 얼굴을 살펴보다 내가 말을 걸었다.

“너, ㅇㅇ 중학교 찬수 아니니?”
소년이 나를 빤히 보며 침묵하더니
40초쯤 지난 후에야
아.. 마을기자단 선생님이다. 라고 했다.
소년은 웃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 야외로 나가는데 실내화를 안 신고 양말채로 신발만 들고 나가길래 지저분해지면 엄마에게 혼날텐데, 라고 했더니 “엄마 없어요. 이혼했어요.” 라고 말하던 그 아이.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대전인가 대구를 가려다가 뭐가 잘못되어 부산까지 왔다 하셨고 아이가 방과후 수업에 잘 나오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 아이를 한 번밖에 본 적 없지만, 아주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소년은 머쓱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인사했다.

세상에 미운 것이 많은 아이, 징기스칸을 듣던 아이, 야구배트를 들고 어른들과 맞짱 뜬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던,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 이번엔 내가 분명히 너를 주목해서 보게 될 것이라 예감했던 아이를.

부산 가는 길에서 마주치다니, 이 세상은 어쩌면 마법으로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찬수는 가명입니다.)

2015. 6. 7.

마을기자단 1.

A중학교 마을기자단 수업
학기초 연락이 오지 않아 내가 다른 스케줄을 잡아버렸고, 다른 강사분을 추천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하차.

이어 받기로 하고 빈 시간은 다른 분께서 2회 마을탐사로 진행.

사회복지사 선생님 안내로 교실에 들어가니 남자 아이 셋이 있었다. 교실 시설은 기가 막힌데, 한 놈은 휴대폰으로 노래 듣고 있고 (게다가 듣는 노래가 징기스칸이었다), 한 놈은 뭐가 문제인지 칠판 뒤에 숨어 있고 (이건 또 뭔가..), 한 놈은 컴터 좀 다룬다며 내가 준비해 간 동영상을 제가 틀어주겠다고 프로젝터와 노트북 세팅을 했다.

아이들이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고 참여도가 떨어진다 들었다.
수업시간 5분이 지나도 아이들이 더 오지 않아 수업을 시작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음악을 듣던 아이에게 뭐가 맘에 안 들었냐 물으니 학교도 싫고 급식도 맛이 없고 오늘 아침엔 가족들과 싸우고 나왔단다.

아이들에게 마을기자단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각자 이 동네의 맘에 안드는 점을 적어서 이야기 해보자 했다.

여자 아이 셋이 땡땡이를 쳤다가 복지사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늦게 도착했다.

아이들은 공원과 같은 휴게, 여가공간에 대한 바람과 불만을 먼저 이야기했다.

지저분한 거리, 알 수 없는 이유의 너저분함, 공원에서 술 마시는 아저씨들, 뒹구는 막걸리병쓰레기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수업 중 버스정류장에서 다리를 다쳤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 버스정류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정류장 보도블록이 깨져 있어서 발을 다쳤다고 했다. 해당 정류장에 도착해 뭐가 문제인지 따져보았는데 아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인도를 늘리거나 주차단속을 강화하거나 보도블록이나 싱크홀 정비를 하거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오가는 길에 징기스칸을 듣던 아이가 자기네 집은 이혼을 해서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30분 먼저 봤다고 남자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음 주부터는 마을 지도를 그리고 안전문제를 점검하기로 했다. 6주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다.

2015. 6.3.

어떤 고민

주업무가 아닌데 주업무처럼 5월을 보낸 학교 수업 몇 가지.
도망다니고 싶지만 도망다닐 수 없는 입장, 그렇다면 여기가 가장 낮은 현장이라 생각하고 놀다 오는 마음으로 나간다.

같은 안양 내에 있는 몇 개 중학교, 몇 개 초등학교, 몇 개 고등학교, 기관의 프로그램을 신청한 아이들, 다양한 안양의 아이들을 만난다.

같은 학년이라도 학교에 따라 다르고, 같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에 따라 다르다.

당연히 마음에 걸리는 건 아프고, 약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잘 훈련되어 자기검열에 완전히 적응된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아프다.

몇 군데 학교를 돌아보며, 경제적 조건이 아이들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안양의 초등학교 3학년,

어떤 아이는 엄마의 승용차로 학원가에 있는 학원에 가서 비이커와 플라스크를 놓고 라면의 나트륨 함량을 구하고, 비싼 교구를 들고 로봇만들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학원가 센터를 드나든다.

어떤 3학년은 원어민 선생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거나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다녀온다.

어떤 3학년은 아직 한글을 다 떼지 못했다.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으로 살이 찌고 벌써 가슴이 나온다. 빨지 않은 실내화가 꼬질꼬질하고, 자주 화를 낸다. 친구들이 자꾸 자기를 쳐다보며 수근거려서 매일 매일이 속상하다.

어떤 3학년은 하루종일 학원을 돌다가 형과 라면을 끓여먹고 엄마가 오기 전에 잠이 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조건과,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욕심과,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은 불안과, 한 푼이라도 더 투자하고 싶은 허영이 만나 도시를 만든다.
술렁거리는 공기가 아이들의 영혼을 잡아먹는 것 같다. 두렵고 무섭다.

외로운 아이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와,
늘 화가 나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

2015. 5. 29.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8.

은서가 그린 그림.
은서는 집에 가는 길에 늘 화물운송 사무실 앞에 들른다.
거기엔 잘 씻기지 않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산다. 지난 번 마을탐사할 때 은서의 소개로 다 같이 가서 봤다.

오늘은 릴레이동화를 지었는데 은서가 새끼 낳은 개를 그렸다.

미술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오는 길, 계속 은서 생각을 했다.150531_iphone6+ 232

2015. 5. 22.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7.

토요일 초등학교 독서클럽 수업

늘 우는 은서, 교실로 올라가는데 마주쳤다.
기운빠진 목소리로 보건실에 간다했다.
교실에 들어오더니 보건선생님이 안 계시단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상담선생님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안경을 들어올리고 한 손의 소매깃을 길게 빼서 눈물을 연신 훔치며 흐느끼고 있었다. 수업시작 15분 전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
상담선생님이 너무 힘들면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여러 반이 한꺼번에 강당이나 시청각실로 움직이는 일이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이 밀치거나 신체적인 접족이 있으면 그 날 하루종일 못 견뎌한다 했다. 은서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매우 갸날프다.
은서가 집에 가버린 교실.
아이들이 약간 반기는 거 같아 씁쓸했다.

오늘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교실에 있는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교실에 있는 색연필과 크레파스, 매직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필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가지고 다녀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 연필까지 한 자루씩 다 깍아서 나눠줘야 하는 판이다.

주인공은 동물, 사물, 사람 중에 하나씩 골라서 마음속으로 정하는거야.
앞으로 우리가 만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야.
나를 그리라는 게 아니고, 내가 만드는 거야. 나는 오늘 신이다!
자 이제 그럼 마음속으로 정한 주인공을 그려보자!

아이들이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 분란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쟤가 내꺼 훔쳐봐요.
선생님 쟤가 내꺼 베껴요.
선생님 저 안 베꼈어요.
선생님 저 그만하면 안돼요?
선생님 저 다했어요!

다 그린 사람은 옆에다가 주인공의 이름을 지어주고 성격과 특징을 적으라고 했다. 무슨 말을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누구랑 같이 살고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싫어하는 것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
기쁠 땐 어떤 행동을 하나? 등등을 적으라고 했다.

내가 주력한 것은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겨우 겨우 수업을 끝내고 자기가 그린 걸 발표하게 했다.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자기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생님이 구분할 수 있도록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제출하고 가라 했다.

아이들이 다 간 다음 그림을 모아놓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사회복지사선생님(상담선생님)께 알려드렸다.

솔미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지난 번에도 스토리를 줄줄줄 만들어 냈다. 오늘 솔미는 구미호족을 그렸다. 자기는 주인공보다 악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악당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일반 아이처럼 다니다가 가끔 변신을 하는 구미호인데, 초능력을 가졌고 피가 묻은 꼬리를 백개 넘게 달고 다닌다. 솔미가 말했다.
얘는요, 엄마 아빠를 이미 죽였어요. 악당이거든요. 얘는 델포이에 사는데요, 왕권을 물려받으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죽여버렸어요.

늘 밝게 친구들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하고 잘 달래주는 유정이가 남긴 그림을 보았다. 싫어하는 것. 술. 화가 나면, 도로로 끌고 가 죽여버린다.

귀여운 머리띠를 하고 와서 정말 예뻐서 눈을 떼기 힘든 서희의 주인공은 미완성이다. 화가 나면, 때린다.

어떤 아이는, 얘는 화를 나지 않아요. 화 내는 거 싫어요. 아주 아주 착하거든요.

얘는 화가 나면, 옆에 있는 햄스터가 빨개져요.
본인은 괜찮고? 네. 얘는 표시나지 않아요.

얘는 초능력 눈이 있어요. 화가 나면 눈이 뾰족하게 튀어나와요. 가족이 있는데 혼자 살고 있어요.

어른도 마찬가지, 마음의 비밀은 숨길 수 없다.
모두 다 들통나기 마련.
아이들의 비밀을 엿보는 일이 가슴아프다.

+ 수업중에 아이들과 매번 적잖은 갈등을 일으키는 하윤이가 내 무릎에 앉아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었다. 스쳐가는 아이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지기 위해, 더욱 건강해야 한다.

2015. 5. 15.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6.

아이들이 그린 마을지도
조별로 마을지도 그리기를 했다.
상상력이 가득 들어간 지도도 있고
정확한 축척을 맞추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지도도 있고
곱고 예쁘게 그린 지도도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리고 30분동안 발표했다.
중간에 툭탁대기도 했지만 큰 싸움 없이 정리.

은서는 오늘 울지 않았는데
자기 맘에 안 드는 아이와 한 조가 되었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으니.

201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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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5.

아가들 데리고 마을 탐사를 한 시간 정도 진행했다.
인덕원 지구대에 가기로 했는데 지구대장님이 나와서 안내해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총도 보여주심 ㅋ

여경언니도 둘이나 있고 훈남 순경들도 있고 아이들이 이런 저런 거 물어보는 것도 귀여웠다.

오늘도 은서가 울었고 제니도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일이 어렵다. 그게 내가 못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케줄이 많아 정신이 없고 친구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중요한 모양이다.
저 아이가 나를 어떻게 쳐다봤고 무슨 뒷담화를 하는 ‘것 같으며’ 나에게 어떤 (말로) 공격을 가했는지, 이게 하루를 지배하는 모양이다.

모두 여자아이들이라 그런가.
어렵다.

2015. 4. 24.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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