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 기적의도서관에 가봤다. 며칠 전 박은하 기자님이 공유해주신 기사를 보고 가봐야 할 도서관을 지도에 찍어두었다. 올해는 좀 집중해서 다녀볼 요량. 인제 기적의도서관은 감동 그 자체. 바로 옆에 박인환문학관이 있고 동네서점도 하나 있다. 요기는 인제군청 부근이고 (댓글 참고해 추가하면) 용대리에 시집박물관과 만해마을도 있다.
인제군은 작가레지던시 하면 문학도시로 거듭나기 좋을 듯. 책 읽고 쓰는 걸 주업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겨울 산속에 갇혀서 매일 도서관에 출근만 해도 평생 못 잊을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특징적인 걸 나열하면
도서관 구조는 원형 – 탁 트인 느낌이라 답답하지 않아 오래 머물기 좋음. 다양한 형태의 의자와 탁자가 있음.
읽고 공부하기도 좋은데 커뮤니티 공간도 세심
강좌를 열 수 있는 사랑채공간이 자바라 문이 아닌 한옥 미닫이로 구분된 점이 인상적
적당한 마당과 전통한옥을 가까이 지어 교육용으로 좋음.
장서도 안양시같은 곳에서는 ’비싸서 못 사준다‘ 하는 책도 꽤 있음.
어린이실 등 인테리어 곳곳의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가 즐거움
규모가 아주 크진 않으나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있음. 한가지 아쉬운 건 1-2층 연결이 엘리베이터 외 슬라이드로는 불가능했을까. 왜 건축가들은 건강한 사람을 디폴트로 놓고 설계하는지 늘 의문임.
지난 주 일요일과 월요일, 1박 2일로 봄이 오기 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강원도를 자주 가는 편이다. 분기에 한 번은 가게 된다. 동해바다의 역동적인 파도를 좋아한다. 주로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속초-강릉-동해시를 넘나들다가 온다. 이번에는 오래 안 찾은 고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속초와 가깝고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숙소의 바다경치는 끝내줬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설마 4층짜리 숙박시설에 엘리베이터가 없겠어?’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나는 관절염을 앓은지 15년이 넘었다.
지방 여행을 다니다보면 아주 흥하는 몇 개 도시 외에는 저녁 8시 이후에 밥 사먹기도 힘든 곳이 많다. 고성도 비수기라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인근에 대학도 있고 편의점도 둘이나 있었다. 해산물 파는 집은 활어회센터에 집중된 것으로 보였다. 거리에는 온통 육고기를 재료로 하는 식당들 뿐이었다. 남편과 걸어서 활어회센터에 갔다. 관절염환자여도 여행을 하면 보통때보다 더 걸으려고 애를 쓴다. 회센터에는 몇몇의 손님들이 횟감을 고르고 있었다. 여기도 1층에서 활어를 골라 회를 떠주면 2층에 올라가 먹는 식이다. 1층에서 어느 집에 뭐가 있나 보고 있는데 상인이 뭘 찾느냐고 묻는다. 뭐가 좋냐고 반문했다. 그날 들어오는 배가 뭘 갖고 왔느냐에 따라 추천할 횟감이 있을 수 있으니 보통 오늘 뭐가 좋냐고 묻는다. 상인은 가격을 먼저 말하지 않고 어종을 먼저 이야기했다. 남편과 나는 2017년부터 집중적으로 바닷가를 다니며 매번 회센터에서 회를 사 먹었는데 가격 먼저 말하지 않고 어종 먼저 말하는 경우엔 부르는 게 값이다. 사람 보고 값을 부르는 느낌이라는 뜻이다. 상인의 답을 기다렸더니 광어와 밀치 정도를 얘기하며 15만 원을 달라고 한다. 스끼다시도 많이 주고 여기는 ‘초장집이 아니라 횟집이다’라고 한다. 초장집은 스끼다시라고 부르는 전채음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상추, 간장, 초고추장까지 모두 1-2천 원을 주고 사는 식이다. 우리가 보통 회센터에서 먹던 값이 있어서 너무 비싸다 하고 옆의 옆집으로 갔다. 그랬더니 비슷한 어종을 말하고 이번엔 12만 원을 부른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남편을 잡아끌고 나와서 카카오택시를 불러 가까운 속초의 A항으로 갔다.
A항은 워낙 자주 가서 노련해졌달까. 넷이 가면 8만원~12만원, 둘이 5만원~8만원 선에 서너마리를 받게 된다. 우리가 지난 번에 갔던 집이 좋았던 거 같다며 남편이 해당 호수 앞에 섰다. 회센터 1층은 이름도 붙어있지만 호수도 붙어 있다. 남편이 그 호수의 주인을 찾으니 자리를 비웠다면서 옆 상인이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에게 대꾸를 해준 상인에게 괜히 미안해져서 “꼭 여기서 안 사도 돼요.”라고 했지만 “기다리면 더 많이 준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옆집 상인이 안쪽으로 들어가 주인을 찾았지만 답이 없다. 옆 호 상인은 “주인도 없으니까 내가 그냥 막 퍼줘야겠다.”라며 몇 가지 어종을 추천하고 너댓마리를 후루룩 담고는 멍게와 새우도 두어개 줬다. 회뜨는 곳으로 움직이며 한 마리를 더 부어줬다. 옆 호 상인은 우리에게 “내가 팔아도 되지만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니 찾아온 데서 사 드시라.”한다. 나는 “담엔 사장님한테 올께요.”했는데 “마음만 받아도 고맙다.”고 한다.
앞서 갔던 고성의 B항은 속초의 A항에 비해 손님이 적었다. 우리도 A항이 훨씬 더 익숙했다. 상인들이 사람 보고 가격을 부른다고 치자. 그 판단은 불과 5초 이내에 하게 될거다. 몇 초 안에 사람을 파악하고 가격을 부르는 게 사실일까. 상인들에게 직접 묻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허나, 분명히 같은 어종에 항구마다 다른 가격인 건 맞다. 나의 말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때도 있다. 꼭 사람에 따라서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많고 장사가 잘 되는 곳, 예를 들어 통영의 활어시장 같은 곳은 기본가격대가 저가에 형성되어 있다. 지도앱의 후기도 천차만별이다. 별점 1점부터 5점까지. 리뷰를 쓴 사람들이 사진을 올리기도 하는데 3만원에 둘이 배터지게 먹었다는 얘기부터 15만원 냈는데 먹을 게 없다는 등, 극과 극이다. 리뷰는 얼마나 주관적인가.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쓰는 이의 행간에서 어떤 ‘감’을 잡아내야 한다.
회는 풍성했고 맛도 좋았다. 흥성흥성한 회센터 2층의 분위기도 좋았다. 속초는 언제부턴가 늘 밤늦게까지 손님이 많다. 나는 회를 씹으며 불편해졌다. 남편이 B항에서 바가지 쓸 뻔 했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손님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라.”라고 얘기하며 종이컵에 맥주를 따랐다. 우리처럼 회센터에 자주 가는 사람들, 바닷가 출신이고 한때 바다낚시를 즐기던 남편과 횟감을 고를 때 편안하다. 나는 물고기를 잘 모르고 최근 들어 처음 먹어본 것도 많다. 주변 지인들도 회센터에 갈 때는 ‘물고기를 잘 아는 사람’과 같이 가는 걸 선호한다. 내륙도시에서만 산 사람들은 고기 종류도 구분을 잘 못하므로 파는 사람이 그렇다 하면 그런 셈이다. 왜 가격이 다른지는 알지 못하겠다. 시장이라고 모두 가격이 동일할 필요도 없지 않나. 나는 여기서 ‘물고기를 구분할 줄 알고 흥정을 잘 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구조가 마뜩치 않았다. 왜 여기서도 능력이 필요한가. 청담동의 회는 비싸도 되고 강원도의 회는 싼 게 마땅한가? 그것도 이상하다. 평생 살며 바다 한 번 못 보고 생을 마칠 수도 있다. 과거에는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 인생에 어떤 일이 생겨 처음으로 바닷가 회센터에서 회를 골라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들과 같은 횟감을 고르고 더 비싼 값을 치른 사람은 ‘어리숙해서 당했다’는 핀잔을 듣는다. 왜 어리숙하면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할까. 내 기억에 한국사람들은 ‘어리숙해서 당한 것’에 대해서 그 어리숙한 사람을 비웃거나 핀잔을 주는 게 우선이고, 그를 속여먹었거나 바가지를 씌운 사람에게 분노하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물고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잘못인가? 흥정을 잘 하지 못하는 게 잘못일까?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물건에 관해서 파악하고 있어야 할까? 회센터는 아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시장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가격 정찰제가 자리잡으면서 편리하게 느껴진 건 바로 이런 이유였다. 물건에 대해서 잘 몰라도 되고, 흥정하려고 기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구매자가 판매자를 이겨먹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승부는 정해져 있는 싸움이다. 인간은 간혹 이런 경쟁과 싸움, 소소한 분쟁으로 성장한다. 일종의 게임처럼, 규칙을 정하거나 그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 각축을 벌이는 건 건강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리숙한 사람이 억울해지는 게임은 별로 달갑지 않다. 회를 먹으며 지도 앱에 달려있는 억울해진 사람들의 리뷰를 본다. 가족들과의 모처럼 나들이를 망쳤다는 분노를 읽으며 이 나라는 살기가 빡세다는 생각만 했다.
안동신중앙시장은 오늘 장날이었다고 한다. 아침 10시에 그렇게 인파가 몰렸으니 아마 장날인가보다 생각만 했었다. 시장을 둘러보면 식당도 있겄거니 싶었다. 좁은 골목에 보리밥, 칼국수 간판이 보이길래 서둘러 들어갔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식당이 대여섯개 줄지어 있었다. 그 중에 보리밥이라고 생긴 곳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괜찮지만 남편은 쌀을 좀 먹어줘야 하는 사람이라 밥을 먹자고 했다. 들어가니 장날이 뭘 팔러온 거 같기도 하고 사러 온 거 같기도 한 할매 몇 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오봉이라 불러야 그 맛이 나는 커다란 꽃무늬 쟁반위에 놓인 그릇은 간단한 보리비빔밥이었다. 혹시 다른 메뉴가 있냐고 물으니 보리밥만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벽면에는 오랫동안 3천원을 받았는데 올해부터 4천원으로 올린다는 글씨가 두 군데나 붙어 있었다. 금세 밥상이 나왔다. 얼갈이배추와 부추, 콩나물, 치커리, 미역줄기를 담은 보리밥에 고추장, 아주 진한 된장, 멸치, 삭힌 고추조림, 보리밥 숭늉이었다. 어떻게 먹냐고 물으니 옆에 앉은 할매가 멸치 넣고 고추넣고 된장은 많이 넣지 말라고 일러줬다. 우리는 쓱쓱 비벼 우걱우걱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치 한 조각 없는 밥상에 양파가 달았다.
“딸같은 며느리, 다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할매들의 며느리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한 할매는 ”우리 애는 정말 안 그래. 세상 그런 애가 없어.”라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제사도 지가 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옵니다. 지도 바쁘고 힘들어예. 우리 아들하고 사업을 세 개를 하거든. 그래도 한 번도 싫다 소리가 없어. 나한테 엄마라고 부릅니다. 아주 잘해예. “ 그러자 다른 할매가 “어무니 아들이 잘하는갑지예.”라고 한다. “그렇지. 우리 아들도 그댁에 잘 하죠. 우리 아들이랑 사업도 하고 좋은 차도 타게 해주고, 뭐 돈 모자란 거 없게 해주니께네. 아주 군소리가 없어. 한 마디도 안해.” “거 다 아들이 잘 해야 되는 겁니더. 요새는 무조건 아들덜이 잘 해야됩니더.” “매느리가 그만치 하면 어무니 아들도 처가에 그만치 한다는 얘깁니더.”
우리는 마주보며 웃거나 인상을 쓰면서 할매들의 이야기를 감상했다. 밥을 다 먹고 밥값이 너무 저렴해 거스름돈을 안 받고 싶다고 했더니 절대 그러면 안된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경북출신의 나이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경상도지방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철저한 가부장제, 남녀차별에 관한 인식을 자주 접한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그저 관찰할 뿐이다. 나는 거기 살지 않으니까. 나는 수도권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는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 없다. 중국에서 잠깐 산 기간에도 국가 최대의 대도시에 살았으니 나는 대도시가 아닌 곳의 정서를 전혀 알 도리 없다. 남성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약자를 존중한 적 없는 문화가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는 것에도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모른다. 멀리 에스키모에게는 이런 문화가 있다더라, 얘기하면서 이제 우리는 ‘그들이 미개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인류의 공생을 위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 인권의식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한 지역의 오래된 문화를 폄훼할 수는 없다.
경상권에 갈 때는 이천 – 여주를 지나 충북을 거쳐 가게 된다. 첩첩이 산중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과 들, 사방이 막힌 것 같이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 안에 골짜기마다 숨어있는 사연들에 대해서 나는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닫기로 한다. 안동시는 1,522km2의 면적으로, 안양 면적 58.46km2의 26배이다. 서울은 605km2이라 하니 서울과 비교해도 두 배다. 안양의 인구는 저 면적에 55만 정도 되는데 안동인구는 16만에 조금 못 미친다. 현황의 숫자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다를지 사실 감도 잡기 어렵다.
그저, 시장통에 앉아 내내 고구마줄기를 까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한다.
통영국제음악당의 콘서트홀은 1층에서 외부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마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을텐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라 외부 주차장에 대고 올라가느라 내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콘서트홀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니 주차장에서 올라오리라 생각했다.
약 3층 높이의 콘서트홀의 풍광은 꽤 멋졌다.
입장권을 늦게 예매한 탓에 표가 몇 장 없어 5층 객석을 예매한 것을 발권하고 나서 알았다. 객석이 5층씩이나 되나 싶어 엘리베이터를 찾았는데 객석으로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는 없다고 했다.
입장권을 확인하고 있는 직원에게 5층까지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5층까지 걸어올라갈 수 없는 사람이고 내려올 때는 더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말 연결 통로가 없느냐고.
이 직원은 없다고만 대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나는 10년 넘게 관절염을 앓고 있다. 2층 정도는 불가피하게 계단을 쓰기도 하지만 에지간하면 계단은 피하는 게 내 건강에 좋다. 하루 5-6천보가 한계이고 1만보를 걷게 되면 다음 날 후유증이 오래간다. 반월상연골판 파열로 시작된 무릎문제는 연골이 닳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어지고 남들보다 무릎 주변 근육을 훨씬 더 쓰기 때문에 피로도가 상당하다. 특히 제일 안 좋은 건 계단을 내려올 때 받는 충격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니, 그러면 장애인과 노약자는 아예 입장 불가라는 말인가 싶어 황당해 하고 있으니 체격이 좋은 젊은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제가 관절염이 심해 5층까지 걸어갈 수 가 없어요. 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줄 상상도 못하고 예매를 잘못했네요. 무슨 방법이 없겠어요?” 물었더니 이 직원은
“아.. 네 고객님. 저희도 그 문제로 민원도 많아 들어와서요. 문제긴 하죠. 저희도 시설 보완을 준비중인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지만…”
“아니 그러면 저는 공연을 못 보겠네요? 아니 국제음악당이라는 데가 어떻게 이렇게 설계를 하죠? 이건 인권위에 진정을 넣어도 되겠네요.”
라고 화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티를 냈다. 젊은 직원은 잠깐 침묵하더니 통영 억양이 섞인 표준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표를 바꿔보겠습니다. 1층에 잔여좌석이 있는지 살펴보고 바꿔드리면 어떨까요?”
이보다 좋은 제안이 있을 수 있나. 나는 반색을 하며 당연히 그러면 좋겠다고 고마워했다.
직원이 매표소로 들어가 한참을 안 보이더니 표 두 장을 가지고 나왔다.
박부가 직원이 나오는 걸 보고 다가가 표를 받으려고 하자 직원이 나에게 꼭 직접 설명을 드리겠다고 하더란다.
로비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온 그는 그 옛날 패밀리레스토랑의 직원처럼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꿇어 앉더니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시설 문제가 있어서 불편을 겪게 되셔서 죄송하고요. 지금 1층은 표가 없다고 해서 제가 2층 좌석을 구해봤는데 2층도 어려우실까요?” 라고 했다.
청년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 얘기하는데 괜히 승질부렸다 싶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만 남겨서 “아닙니다. 2층은 제가 갈 수 있어요. 2층 정도는 괜찮습니다. 선생님 배려해주신 건 제가 꼭 기억할게요. 선생님 잘못은 아니죠. 건물 설계를 잘못한 건데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그가 가져온 표 두 장과 내 표 두 장을 바꿨다.
공연장은 사진과 같다. 5층은 아니고 4층이었을거다. 통영의 숙소들도 4층이 없었다. 아직 4자를 쓰지 않는 거다. 2층의 객석도 2층에 도착하면 반층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영화관도 그렇듯이. 
공연이 끝나고 나는 어셔에게 휠체어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맨 앞이나 맨 뒤에 자리를 마련한다고 대답했다.
오늘 공연은 2층 합창석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객석에 앉아 휠체어없이 밖을 다닐 수 없는 내 친구를 생각했고 의족을 쓰는 지역 선배를 생각했다. 다리가 휠대로 휘어 서 있으면 양쪽 다리가 마름모를 만들던 통영활어시장의 회뜨는 할매도 생각했다. 뇌병변을 앓거나 뇌성마비가 있거나. 당장 이 자리에 있다면, 나와 같은 일을 겪을 사람은 떠올려보면 한 두명이 아니다.
지역연계와 섬연계 기획전 등 다양한 연계전시가 이어진다. 섬연계라니 나같이 도시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자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 섬연계까지 볼 수는 없어서 주제전과 지역연계전인 전혁림 특별전만 보고 왔다.
통영시내 셔틀버스는 있는데 섬 셔틀배는 없다고. ㅎ
주제전은 구 산아SB(조선소) 연구소 건물에서 진행된다. 주차장이 널직하고 진행요원들도 충분히 배치되어 있다. 마당에는 사진처럼 각 섬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보시다시피. 뭐 딱히 우와. 하긴 쫌.
주제전은 바다, 생명, 시간을 주제로 한 Take Your Time.
일반 성인 입장료 12,000원.
마지막 티켓팅은 5:15이고 전시는 6시까지 관람 가능한테 – 이 내용이 홈페이지에 없다!
* 직관적 홈페이지 디자인 좋은데 제발 정보를 중요하게 만들자.
전시장은 모두 컴컴하다. 사방이 까맣다. 작품이 돋보이고 집중도가 높다.
1층부터 7층까지 전시가 이어지는데, 그렇다. 계단에도 미디어아트 설치가 있어서 계단으로 올라야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다행히 층마다 다른 전시는 아니고 한 작품이 1층부터 7층까지 이어진다.
한 층 올라 각 층의 보통 2개실의 전시를 보고 또 한 층을 오르는 식이다. 엘리베이터는 차단봉을 설치해뒀는데 진행요원에게 엘베를 쓰겠다고 하면 차단봉을 열고 엘베 버튼까지 눌러준다.
(일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다 분노하고 왔으니 여기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엘베를 타봤더니 엘베는 환한 형광등 그대로다. 그야말로 전시를 보던 분위기를 홀딱 깨주는 것. 전시에 집중하기 위해 올라갈 때는 엘베를 포기했다.
대부분 관람객들은 7층까지 천천히 걸어올라갔다가 엘베를 타고 내려왔다. 중간에 미디어아트 관람실에 낮은 빈백의자가 있어서 쉴 수는 있겠으나, 충분하지 않다. 
4층인가 5층에 미디어아트 모니터만 대여섯대가 전시된 방이 있는데 한 작품을 표현한 모니터에 빛비침이 심해서 반대편 작품과 좌우 양측의 미디어 작품이 계속 반영되었다.
작가가 이걸 봤을까. 작가도 허락한 일일까? 무지하게 궁금했다.
전반적으로 주제가 명확히 반영된 작품들이 있었고 나쁘지 않았으나 주제전이라기엔 통영이라는 지역성을 조금 더 강조했으면 어떨까 싶었다. 쉽게 말해, 바다와 생명, 시간은 알겠는데 그 안의 사람과 노동의 이야기가 쏙 빠진, 잘 정돈된 느낌이 강했던 건지, 내 기대가 촌빨인건지 모르겠고.
7층에서 엘베를 기다리며 서울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휠체어를 빌려볼까 생각했다. 등록증이 없으면 못 빌리지 않을까. 눈높이도 안 맞겠지 등등 여러 생각을 했다.
보행약자의 삶의 질은 이렇게 곤두박질친다.
아무튼.
엘베를 쓸 수 있으니 엘베 내부 조명을 어떻게든 너무 홀딱 깨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고.
전시 기획에 장애와 안전은 뒷전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건강하고 튼튼한 자들을 위한 예술잔치.
새벽에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가겠다던 내 남자친구는, 현금을 안 뽑아와서 선주에게 계좌이체가 되냐고 물었다. 선주의 부인이 좋다고 했다. 도시락이 있냐고 물으니 과자뿐이라면서 계란이 좀 있는데 가져가라 한다. 건담이가 4개니 2천 원 정도 받으시겠냐고 물었고 선주의 부인은 뭘 그런 걸 돈을 받냐고 쑥스러워했다. 천원짜리 두 개를 테이블에 얹어놓고 배를 타고 나갔다. 바다 갯바위 부근에 묶어놓은 뗏목까지 데려다주는 건데 돌아갈 생각이 들면 선주에게 전화를 하면 다시 데리러 온다. 일종의 택시 같은 거다.
몇 시간이 지나 딱히 회 쳐먹기도 어려운 것들만 걸리는데 옆 뗏목에서 철수하는 걸 보니 의욕이 떨어졌다. 아이가 낚시를 하고 싶어한다고 전화도 한데다가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 낚시를 접었다. 선주에게 전화를 하니 아침에 데려다준 노인 말고 젊은 남자가 와서는 요즘 고기가 잘 안 잡힌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음에는 더 좋은 포인트를 찾아놓을테니 꼭 다시 오라는 말도 했다. 건담이가 나를 기다리는 동안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낚싯배를 운영하는 아침의 그 선주 부인이 버스정류장을 쪼르르 달려나왔다.
“버스 기다리시나예?”
“아뇨. 짐이 이리 많은데 버스를 우예 탑니까. 데리러 올낍니다. 아를 데려왔는데, 아가 낚시를 해보고 싶다케가 저쪽 가서 칠라고 접었심다.”
“아, 내는 버스 타고 오셨는지 알고. 새벽에 혼자 오셨길래. 여는 버스타고 오시는 분들 많아예. 택배로 짐 부치고 몸만 왔다가, 택배로 다시 짐 부치고 몸만 가는 분들도 있어예. 내는 버스 타고 가시는지 알고, 아침에 현금이 없다카길래 차비 갖고 나왔는데.”
“아이고 차비를 아지매가 왜 주심니꺼? ”
“요새 현금들 안 들고 다니잖아예. 아침에 현찰이 없다케가 그 생각이 나가꼬. 곤란할까봐 가꼬 나왔지예.”
“고맙심더. 담에 꼭 올께요.”
남친은 아지매가 좋다고 호들갑이었다.
2.
아이와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돼지국밥집을 발견한 아이가 돼지국밥을 먹자고 했다. 딱히 믿음이 가지 않는 간판이었다. 아무래도 체인점인 것 같았는데 근처에 신뢰가 가는 간판이 안 보였다. 우리는 들어가 돼지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정은정샘이 애정하는 문양의 쟁반에 반찬이 담겨져 나왔다. 양파와 풋고추를 담은 그릇을 빼고 사진을 찍었다. 다른 반찬을 가져다 주러 온 주인 아저씨가 내가 빼놓은 그릇을 다시 쟁반위에 턱 얹었다. 자기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사람일거라 짐작했다.
돼지국밥은 맛이 없었다. 돼지잡내가 심하게 났다. 아이는 오랜만에 먹는 돼지국밥이 반가운지 공기밥을 턱 말아 신 나게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때쯤 가림막이 높아 안 보이던 옆 홀에서 남자 넷이 일어났다. 검은 피부의 외국인이 작업복을 입고 일행과 함께 나갔다. 항구가 바로 앞에 있었다.
3.
국밥을 먹고 난 뒤 내리 쫄쫄 굶은 남친 주려고 충무김밥을 샀다.
순식간에 2인분이 포장되어 나왔다. 방파제에 김밥을 펴놓고 아이에게 먹으라 했더니 한 점 먹고 안 먹는다.
“왜 안 먹어? 맛없지?” 아이에게 그게 맛있을리 있나.
“이거 진짜 김.밥.이네. 맛없어.”
“이거 여기 오징어랑 같이 먹는거야.”
“안 먹어. 나 라면 먹을래.”
지금의 아이들에겐 어색한 맛. 어른들에겐 한 시절을 관통하는 음식일지도.
4.
몇 시간 후 마을 어귀에서 여러 팀이 낚시를 하고 있는 방파제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갯지렁이를 끼우고 낚싯대를 던지며 줄을 풀어보기도 하고 제법 잘 따라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다음 바람을 피해 한 번 방향을 바꿔보고 난 뒤였다.
“헐. 내 지렁이.” 아이가 내 남자친구에게 자기 지렁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낚시용품을 파는 낚시방에 가면 갯지렁이를 큰 다라이에서 꺼내 작은 종이박스에 담아준다. 아이는 지렁이박스를 바닥에 두고 고양이 밥도 주고 라면도 뽀개먹고 난 다음이었다.
저쪽에 앉아 수조에 물을 채우러 온 횟집 차가 후진을 하는데도 꼼짝도 안 하던 여자의 일행이 왔다 갔다 자리를 몇 번 옮기고는 낚싯줄이 다른 사람들과 엉켜 안 좋은 소리도 나더니만 우리는 그 일행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와 훔쳐갈끼 없어서 아 지렁이를 훔쳐가노. 인성 쓰레기네. 그것도 어린이날에. 미친 거 아이가.” 남친이 그들보고 들으라는 듯 화를 냈다.
통영시내 활어시장에서 그 일행을 다시 만났다. 길막고 서 있는 걸 보니 그들이 지렁이를 훔쳐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사람 사는 건 다 그래야 구색이 맞는 거라고, 지금 사는 이 집에 이사한 지 얼마 안됬을 때 경비아저씨가 했던 말을 내내 기억하고 있다. 이날 우리는 뽈락이랑 쏨뱅이만 잡아 다시 놔주고 회는 활어시장에서 사 먹었다. 살아있는 것을 미끼로 쓰고, 살아있는 것을 잡고, 또 살아있는 것을 그 자리에서 죽여서 먹고, 그리고 또 살겠다고 나서는 것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은 딱히 그닥 숭고한 존재가 아니고 나 역시 숭고해질 생각은 없다. 존재마다 다르게 갖는 생명의 의미와 그에 대한 태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할 뿐이다.
돌봐야 할 것들이 없다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스케줄이 없다면 다음 스케줄이 있는 때까지라도
한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직 나는 여기 저기 매인 게 많고 소속된 게 많고 맘껏 떠나기에 뿌리를 너무 많이 뻗어버려서.
가끔 지나간 사진을 들춰 본다.
여수 돌산의 작은 마을은
정말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관광+낚시를 활성화하고자 전략을 세운 것 같았으나 그날은 토요일인데도 쥐죽은 듯 고요했다. 항구를 지키고 있던 개가 목줄에 묶여서 몇 번 짖어댔을 뿐.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엔 가끔 개집이 하나 놓여있고 거기에 누가 키우는지 모르는 세상 단 한마리의 개가 있곤 하다.
나는 왜 도시에서 태어나 빙빙 돌다 바닷가 남의 동네에 와서 기웃거리고 사나. 어촌에서 태어나 고기를 낚는 아버지와 물질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어디쯤에서 또 헤매고 있을까.
떠나오면 어디든 그리운 법.
헤세는 고향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 했다.
고향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