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마을 관련 사업을 하고 그동안의 활동내용을 공유하는 사이에, 마을에서 더 멀어진 거 같기도 하네요.
https://vop.co.kr/A00001672089.html

마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마을 관련 사업을 하고 그동안의 활동내용을 공유하는 사이에, 마을에서 더 멀어진 거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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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렸으며, 일정부분 명확하지 않은 가설을 그대로 반영해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기간 중에 비판을 감수하고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공유합니다. 또한, 이 글에서 드러난 허점은 하나씩 짚어 다시 따져물을 가치가 있어 기록을 남깁니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그 마음
이준석 지지율이 10%가 넘을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대선선거운동기간동안 그의 행보를 유의깊게 봤다. 3차 토론회 이후 그나마 있던 일말의 기대를 싸그리 걷었지만 이준석을 미워하는 것만으로 시민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지지세력이 있었다. 그의 지지세력이 펨코유저인 것도 아니다. 이준석과 국민의힘은 젊은층에서 꽤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중년중에도 굳건하고 단단한 지지층이 있다. 이 지지는 민주당과 이재명이 싫어서 시작했다고 본다. 2030으로 뭉뚱그려 재단하는 세대론의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왜 4050과 다른 경향을 나타내는가에 대해 질문해볼 수는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은 2007년생. 1996년생까지를 20대로 보고, 1995년부터 1986년생까지를 30대로 보자. 30대는 10대때, 또는 그보다 어릴 때 IMF를 겪었다. 가정이 풍비박산나거나 주변이 박살나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사회를 지배한 무력한 기운을 가득 느꼈을 것이다. 이들은 성장후에 불확실성에 투자하지 않는다. 부동산 임장을 다니고 코인과 주식에 더 관심이 높은 것은 현재를 유지하거나 조금은 더 올라가야한다는 의지다. 무슨 대단한 부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노동소득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것 뿐이다.
30대 후반은 IMF구제금융에서 인생을 시작했고 2002년 월드컵과 노무현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대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박근혜탄핵을 지켜봤으며 이태원도 가까이서 겪은 세대다. 박근혜 탄핵심판이 있던 2017년 3월 10일, 각 학교에서는 박근혜탄핵장면을 함께 봤다. 기뻐 날뛰는 남고생들의 영상이 여러 번 회자되었다. 그때 초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이들이 지금 20대다. 지금의 20대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진보교육감이 각지에 자리잡았고, 경기도의 경우 민주시민교육을 받았으며 창의적 체험활동과 모둠활동에 익숙한 세대다. 시험을 많이 보지 않았고 무상급식을 제공받았고 청소년후기에는 교복지원도 받았다. 이들의 부모세대는 책으로 육아를 배웠고 이후 TV 프로그램에서 육아컨설팅을 받았다. 가장 풍요로운 문화적 혜택을 받았다는 X세대가 이들의 부모세대다. 진보적이고 진취적이며, 낭만적이고 낙관적이며 시끄러운 세대다. 30대는 IMF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20대는 이전과 다른 교육을 받은 세대다. 이들은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20대 중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가 있는 경기도 20대 청년의 생애를 상상해본다. 이들은 진보교육감이 바꿔낸 학교에서 사회를 시작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지나 학교에 갔다. 1학년이 되자마자 남녀학생의 행동은 분명 구분된다. 물론, 모든 학생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기 어려우나, 글자를 다 떼고 들어왔지만 학교 수업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은 여학생이고, 남학생들은 아무래도 오래 앉아 있는 일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비율이 더 높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여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우위를 선점한다. 교사는 90%가 여성이다. 학교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곳이고 여성중심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엘리트 모범생으로 교사직종에 안착한 사람들이 남학생들을 이해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한 직장 내에 90%가 여성이라는 것은 불균형을 낳는다. 남녀차별없이 키운다고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여학생은 생활체육으로, 남학생은 축구부로 묶인다. 다수가 태권도를 다니고 태권도가 아이들의 방과후 보육을 담당한다. 아이들이 남성을 발견하는 곳은 유일하게 태권도다. 태권도에서는 남성성을 강조하고 남자아이들은 태권도 유단자가 되면 군대에서 휴가를 자주 나올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들은 충효를 강조하고 어버이날 부모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대학을 나온 양육자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여 아이들의 육아를 전담한다.
엄마 없이 학교에 갔더니 남학생은 화장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다. 충격적이다. 나는 왜 오줌싸는 것을 남에게 보여줘야 하나. 여학생들은 모두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데.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곤욕이다.
여학생들은 언어가 빨리 발달하고 체격도 훨씬 크다. 대부분 4학년까지의 학급회장은 여학생이고 공부도 우위다. 남학생들이 회장단에 진출하는 건 5학년부터다. 그때쯤 되면 남녀의 학업수행능력이 비슷해진다. 이미 4학년전에 남학생들은 불평등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칭찬받기 어렵고 단정하지 못한 품행을 늘 지적받는다. 남학생들은 아주 어린 시절에 차별을 받았다고 오랫동안 기억한다. 자기 인생의 팔할이 구박받은 기억인 셈이다. 5학년이 넘어가면 무리를 짓거나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의 갈등이 심화된다. 구박받던 코찔찔이가 키가 커지면서 반항하는 모양새로 보인다. 6학년쯤 되면 서로 말을 안 할 지경이 된다. 사춘기가 빨라지는 것도 있고 이들이 습득하는 정보의 경로가 달라져 있다. 여학생들은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트를 수집하고 관계망을 형성한다. 남학생들은 가장 화날 때가 게임하다 접속이 끊겼을 때, 가장 좌절할 때, 게임에서 졌을 때라고 대답할 정도로 게임에 몰입한다. 그 주변부에 네이버웹툰과 유튜브가 있다. 남녀 모두 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압축해서 놀 수 있는 미디어를 활용하게 된다. 나는 초등학교 미디어수업을 진행하면서 여학생들은 관심과 애정에 더 집중하며 관계망을 형성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남학생도 게임으로 친구와 동료를 만들며 동지애를 갖고 존재를 확인한다고 봤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부모들이 먼저 걱정이다. 남녀공학을 가면 남학생들은 여학생을 성적으로 이길 수 없다며 남자 중학교를 찾아 이사를 하는 아들부모들도 많다. 우리동네는 학군상 당연히 남자중학교를 가는 곳이었는데 그 남중을 보내려고 이사를 오는 가족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는 양육자들은 여학생은 공학을 선호하고 남학생은 남중을 선호한다.
어떤 징후가 있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부터 여성혐오와 극우세력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인크래프트 등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게임유튜버들이 득세했고 이들이 컨텐츠를 통해 자극적인 것을 생산한지 꽤 됐을 때다. 박근혜 정권때는 새마을운동이 마인크래프트 컨텐츠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당선 이후 부정선거론이 시작되었고 전광훈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다. 2018년부터 학교에서 성평등 언급을 자제해달라는 요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평등교육 강사에게 “여성단체에서 왔으면서 무슨 평등에 대한 토론을 얘기하자는거냐”고 대들던 남학생이 출연한 게 이때쯤이다. 2019년, 조국사태가 터지면서 세상의 모든 입들이 입시를 뒤흔들었다. 정시확대 수시축소 등 계급화되어 있는 입시제도에 대한 불합리와 진보교육의 실체, 민주화운동세대의 부조리에 대한 성토가 극에 달했다. 그해 가을에는 설리와 구하라가 잇달아 세상을 떴다. 민주시민교육을 신청한 교사들도 성별갈등이 심각하니 성평등 이야기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성별갈등이 심각하면 젠더 이야기를 더 해야 하는데 아예 출구를 폐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게 학교가 한 일이다.
내가 갔던 학교중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을 아예 분리해서 자리를 배치한 학교도 있었다. 웃기는 건 이런 학교들이 시끄러운 연애사건이 더 크게 터지거나 학교내 희롱과 추행같은 성폭력 사건도 더 많이 일어나 지역내 이미지가 계속해서 추락한다는 것이다. 반면 교사들이 백래시에 용감하게 대응하는 쪽은 학교내 분위기도 훨씬 좋았다. 교사가 학생을 두려워 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모든 징후는 동시에 일어났다.
다양성의 배제, 젠더갈등의 은폐, 학생의 교권침해, 문재앙과 이찢이라는 단어의 등장, 민주당이 조롱거리가 되던 것, 이런 것들이 2018년부터 시작되었고, 2019년에는 선명해졌다. 이때쯤 경기도의회에서는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통계를 요구하거나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백래시가 있었고, 빨갱이교육 중단하라는 민원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들은 모두 온라인으로 뛰어들어갔다. 온라인교육은 저학년에게 더 집중되었고 그동안 미디어를 차단해왔던 양육방식도 모두 깨버렸다. 그리고 진보교육감에게서 어린 시절을 자유롭게 보냈던 아이들은 내가 갈 대학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입시가 치열해진 것은 진보교육감 때문이라고 볼 수 없지만, 초중학교때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성적관리에 소홀했다는 식으로 진보교육과 혁신교육이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박근혜 탄핵때 춤을 추던 아이들이 민주당과 이재명을 조롱거리, 장난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준석과 김문수에 대한 지지율은 반이재명, 반민주당 연대와 같다. 이들은 중산층 엘리트를 대변하는 민주화세력 자체를 부정한다. 그들이 가식적이라고 이미 마음을 닫은 상태다. 일련의 성비위 문제, 부동산 폭등, 이준석이 들고 나온 공정에 대한 흐트러진 개념, 무임승차론이 반이재명, 반민주당 연대를 곤고히 했다. 이번에 국힘에서 홍준표가 나왔으면 2030의 지지율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들은 홍준표가 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시원시원하게 대답은 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홍준표는 (이글을 읽는 분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나마 국힘 정치인중에 가장 정치꾼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굽힘이 없는 모습, 대쪽같은 이미지가 되어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들이 봤을 때 김문수는 너무 힘이 없는 후보였다. 이들은 파워풀한 것을 원한다. 홍준표는 그동안 청년층에 대한 밭농사를 잘 해놓은 상태다. 컬러풀대구를 파워풀대구로 바꾼 건 먹히는 전략이었다.
이들은 구박당하고 왕따 당하는 대상에게 이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준석이 노인네들한테 구박받고 쫓겨날 때 우리 ‘이준석’이 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치 초년생이라고 민주당의 관록있는 정치인들에게 탄핵탄핵탄핵 당할 때 이들은 윤석열쪽으로 더 기울었다. 약자가 아닌데 약자가 아닌 아웃사이더들에게 더 끌린다. 포퓰리즘이 극우로 발전해가는 단계에 흔히 나타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반이재명반민주당 연대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교실에서도 아웃사이더 폼을 잡고 앉아 있는 아이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들의 자세는 중학교 2학년부터 또렷하게 구분된다. 한 반에 30% 정도, 여학생 10% 정도가 된다. 이준석 지지율과 비슷하다. 이들이 이준석의 혐오를 모르는 것 아니다. 이들의 문화에서 그정도는 용서해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게 혐오와 차별이다. 남자애들 더러워. 냄새나, 공부 못하면 죽어야지. 지잡대 나온 주제에, 저 새끼 짱께래요. 장애인 차별하면 폐급이지만 신분과 능력은 차별해도 된다. 이게 지금의 학교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일진이라 하면 애들이 존경하지 않아도 무시하진 않았다. 지금은 일진이 없다. 과거의 일진은 돌봄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강인한 폭력을 내세워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면 지금 돌봄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저 찐따에 불과하다. 폭력으로 강제전학을 당했거나 밖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면 그냥 쓰레기다. 아예 없는 존재로 여긴다. 말도 걸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 폭력성을 드러내도 쉽게 굴복하거나 지배받지 않는다. 모두가 귀하게 큰 아이들이다.
이들이 이준석을 선택하는 것은 젊음이 크다. 고리타분한 꼰대들 사이에서 그나마 비슷한 연령대고, 노인네들에게 거침없이 대들 수 있고, 똑똑해서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더 공감할 수 있다. 그정도의 혐오와 차별은 용인할 수도 있다. 민주당류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더 꼴사나운 것이다. 꼭 젊지 않더라도 패기넘치는 태도로, 아웃사이더의 성향을 띄고 있을 때, 주류에서 조금 벗어난 포지션을 선점했을 때,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이들이 펨코만 쳐다보고 있는 한심이들이라 이준석을 선택한 게 아니다. 모든 젊음은 기본적으로 주류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이준석의 모든 맥락을 통찰해볼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이들은 반이재명반민주당 연대를 선택했으며, 탄핵에는 찬성하고 기성세대를 들이받을 용기가 필요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민주당류가 이 사회의 주류, 기득권, 지배계층이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장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혜택을 받았다는 X세대의 자녀들, 자녀들은 당연히 부모세대에 반기를 들며 성장한다. 그것이 옳다.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바득바득 기득권으로 기어 올라간 부모세대가 가식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소수진보를 지지하면서 주식차트를 들여다보는 것이 부조리라고 느꼈을 것이다. 저따위로 위선적으로 사느니, 홍카콜라나 준스톤을 선택하는 게 자기 삶에 진실한 판단인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20대가 멍청해서도 아니고 세뇌당해서도 아니고 자기가 살아온대로 판단하고 지지한 것이다. 이 현상을 우리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난 번 이준석 안양범계역 유세현장을 방문했었다. 저 구역자체가 토요일 오후 워낙 유동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정말 젊은이들이 남녀구분없이 환호하며 많이 모였다. 초등학생과 청소년들도 이준석을 스타처럼 인식하고 바라봤다. 그들은 한참동안 이준석과 포토타임을 가졌고 이준석은 모든 지지자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이번 선거는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절대 진 싸움이 아니다. 그들은 지역과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상당히 선전했다. 또한, 젊은 세대들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개혁신당에 고르게 투표했다는 것도, 여성청년들이 권영국에게 꽤 많은 표를 줬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2025. 6. 4.
“엄마한테 제육볶아달라고 하고 싶은데 패드립인거 같아서요. 뭐라고 해야하죠?”
주니어네이버 사용자인 어린이들까지 혐오와 차별의 표현으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번 안양시 고등학교 사건뿐 아니라 초중고대학까지 점령한 혐오발언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송고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35061
어제 수원 모처에서 맛난 거 먹을라고 대기줄을 서 있었다. 사람이 계속 이어져 줄이 길어졌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확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 집어던진 듯한 소리. 바닥을 보니 휴대폰의 뒷판이었고 멀치감치에 휴대폰 본체가 떨어져있었다.
“이 씨발 이재명 찍는 새끼들은 -” 분노가 가득찬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내가 씨발 다 죽일거야.”
목소리가 다가와 휴대폰을 집어들었고
“내가 다 모가지를 짤라서!” 목소리는 내 주변에 떨어진 휴대폰 뒷판을 집어들었다.
목소리가 몸을 일으켰고 내 옆에서 앞으로 휘청거리며 움직였다.
7cm는 되는 듯한 굽이 달린 뽀죡한 구두에, 벌어진 무릎관절이 고스란히 드러난 쫙 달라붙은 갈색 광택바지. 탈색된 누런 머리에 헌팅캡 모자, 빨간 웃옷, 예순은 넘은 것 같은데 얼굴엔 구겨진 주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재명 찍지 마 이 개새끼들아”
“씨발 새끼들아.”
내 옆을 스쳐간 그 남자에게 술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재명 찍지 말라고 씨발놈들아.”
그는 불안정하게 걸었다. 그의 삶도 그렇겠지. 휘청대며, 분노를 가득 담아, 내 인생 망하게 만든 이재명을 단죄하러, 거리를 휘청거리며 욕설로 가득 채울 사람. 가련한 인생.
그는 자기가 만든 지옥으로 휘청이며 돌아갔다. 갈지자로 걸으며 휘청휘청.
2025. 4. 20.
산불 대응을 하던 울산시장의 인터뷰 발언은 이렇다.
“투입되는 공무원은 한계가 있고 또 요즘은 여직원들이 굉장히 많아서, 이 악산에 투입하기가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데. 특히 또 우리 해병대에서도 병력을 500명을 보내주셔서 우리 젊은 군인들이 잔불 정리하기에는 굉장히 용이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두 가지다.
2. 해병대 젊은 군인들이 화재진압에 용이하다.

공직사회는 성평등문제가 점진적으로 해결되어가는 모양새다. 여직원들도 많아졌고, 여직원이 커피를 타는 일도 없어졌으며, 남녀모두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여성들도 승진을 잘 한다. 모든 정부기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지자체는 여성국장, 여성구청장, 여성의장도 있지만 어느 지자체는 2024년에 최초로 여성국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직 지역별 성별격차는 판이하다.
언젠가 공무원 출신인 “여직원이 많아 업무에 어려움이 있다”길래 한 번 물어봤다. 뭐가 불편하냐고.
출장을 가도 방을 두 개를 잡아야 하고, 숙직도 못 시킨다고 했다.
나는 남성직원과 같이 가도 방을 두 개를 잡는 것이 맞다고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잠을 자고 씻고 화장실을 써야 하는데, 은밀한 사생활이 공유되는 출장지의 숙소에서 상사와 같은 방을 쓰고 싶은 직원은 남녀무관하게 없을 것이다. 그러자 그는 “그래 그건 그런데 숙직을 못 시키잖아.”라고 했다.
나는 “왜 숙직을 못 시키죠?” 라고 되물었다. 그는 “위험하니까”라고 대답했다. “왜 여자 혼자 숙직을 하면 위험할까요?” 라고 또 물었다.
“그거야 뭐 이상한 놈들이 올 수도 있고.”
“그렇죠. 이상한 놈들이 올 수도 있고. 이상한 놈들이 와도 별 일이 없으며 숙직에 문제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상한 놈들이 뭐 기관 밖에서 담타고 들어옵니까? 담 안에 있다는 거 아니예요? 그러면 이상한 놈들이 담 안에 없으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요?”
그날 대화는 내가 좀 따져묻긴 했지만 말의 속도를 조절했고 분위기가 차가워지지 않을만큼 적당히 술이 돌은 터라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아무튼 여직원이 점점 많아지는데 앞으로 여직원이 50%를 넘어가고 80%도 넘어가게 될 거 같다며 그렇게 되면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길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왜 여직원이 점점 많아지느냐에 대해서 생각해봤냐고 물었다. “그야 여자들이 일하기 편하니까.” 라고 했다.
“여자들이 일하기 편하다. 그럼 남자들은 왜 공직에 안 들어오죠?”
그는 “그야 급여가 적으니까. 이거 가지고 가장 노릇 못해.” 라고 했다. 급여가 적은데 여성들은 진입하고 남성들은 기피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여성들은 그나마 기업을 비롯한 비공직 사회에 비해 성폭력 위험에서 안전하고 육아휴직등 복지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장기간 근속이 가능한 직장을 택하는 것이다. 기혼의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포함한 복지를 포기해도 사는 데 대체자가 있기 때문에 별 지장이 없고, 성폭행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보편적인 여성보다 낮으며, 여성에 비해 이직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여성들이 직장을 선택하는데 고려할 조건을 포기하고 리스크가 있더라도 급여를 더 주는 쪽을 찾는 것이다. “이거 가지고 가장을 못한다”는 말은 남성이 더 벌어야 하는 가부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며 이 사회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거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사회가 전반적으로 같이 변화해서 여성들이 어디에서든 성폭력 위험없이 일할 수 있고, 육아휴직도 쓸 수 있고, 승진도 잘 할 수 있는 직장이 늘어나고, 공무원 급여도 오르고, 여자나 남자가 일한만큼 승진쭉쭉해서 벌이도 비슷해지면, 남성여성 상관없이 골고루 들어올 수 있지 않겠어요? 교사도 여성비율이 너무 높잖아요. 그게 다 사회에 원인이 있어요.”
그는 내 말에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아마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니어서 내 말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아도 그냥 넘어갔을거다.
나이든 사람들이 울산시장처럼 말하는 건 여전히 흔하디 흔한 일이다. 정수기물통 하나 못 갈아끼워서 여직원이 곤란한 게 아니고 정수기 물통이 쓸데없이 큰거다. 남자라고 그게 매번 쉽나.
이번 울산시장의 말중에, 해병대, 젊은 남성, 용이하다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게 더 불쾌하다. 사람한테 저런 단어는 좀 쓰지 말지.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라는 말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해병대 도움을 받기 전에 울산시에서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먼저 살펴보는 게 어떻겠나.
울산시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아직도 도처에 골목 곳곳에 어디 책상머리에 잔뜩 묻어있는 게을러빠진 사상일 뿐이다.
아직도 여성이 많아서 곤란하고 어쩌고 하는 생각머리는, 그냥 게으른거다.
2025. 3. 27.
1. 어제 남태령에서도 경북 산불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경북 산불로 인한 희생자 추모 묵념도 있었다. 경북에서 온 청년도 있었고.
그 중의 한 참가자의 발언이 기억난다.
기우제는 늘 성공한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기우제에는 제물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저 자의 목을 쳐서 제물로 삼아 기우제를 지내자. 라는 거였다.
심각하게 들으면 섬뜩하고 한국식 해학으로 들으면 웃을 일인데 경북 산불이 너무 심각하여, 그저 웃기도 어려웠다. 산불이 없었다면 저잣거리 마당극으로 웃을 일이었다.
2. 음모론이 힘을 받는 이유는 불합리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원인을 찾기 어려울 때다. 민중들은 선명하고 명료한 것을 선호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는 건 다수가 알고 있다. 이럴 때 만만하고 가시적인 대상을 끌어올려 “이들이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고 제물을 삼으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지친 사람들은 쉽게 음모론에 휩쓸린다. 따라서 권력을 쥔 자들은 음모론을 사용해 책임을 전가해 이 사태의 잘못이 내가 아니고 네가 아니고 저 악당에게 있다고 덮어씌우면서 권력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 여기까지가 권력층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배울만큼 배운 연구자들의 이론을 듣고 있으면, 민중이 우매하여 음모론에 쉽게 휩쓸리고 사고를 단절시키는 쪽을 택한다고 볼 수 있다.

3. 과연 민중은 늘 우매하고 잘 휩쓸리고 복잡한 일을 이해하기 귀찮아서 간단하고 명료한 것을 선택할까. 그래서 전광훈에게 휩쓸려갈까. 나는 그 이면에 애도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헤아려봤는지 묻고 싶다.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평생을 일군 것들을 송두리채 빼앗겼을 때. 슬퍼하고 슬퍼하며 깊이 울음으로 털어낼 수 있는 시간, 타인에게 고통을 토하고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 없을 때. 무력한 인간은 자괴감에 휩싸여 이것을 있는 그대로의 비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떤 거대한 힘이 내 인생을 쥐고 흔든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럴 때 떠오르는 것이 음모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자들이 제시하는 제물이다.
4.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단 하나의 원인이 단 하나의 결과를 내놓지 못하지만, 가장 영향력이 커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억지로 끼워맞춰 가다보면 음모론은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게 된다.
그래서 저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수 있는 제물을 꺼내놓았다. 중국인 때문에, 북한 때문에, 누구 때문에.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것들이니 타겟이 된 자들은 응대하지 않고 해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이, 음모는 계속 굴러다니며 더러운 말을 눈처럼 휘감아 거대한 눈덩이가 된다. 오염된 눈덩이.
5. 역대급 산불이라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에 대해 차분하게 살펴볼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집회를 하지 말고 당장 트랙터를 몰고 가서 불을 끄라고 한다. 왜 농민들이 불을 끄러 가야 하나? 타 지역에 사는 농민들이 지리산을 넘어 불을 끄러 가야 한다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럼 집회를 나가는 사람과 불을 끄는 사람은 계급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하나? 집회를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총파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자격을 얻어야 하나?
6. 오늘 페친과 친구에게 오묘한 진리를 얻었다.
눈이 녹고 난 다음 새싹이 나기 전에 산불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사이는 아주 찰라처럼 짧은데 강원도의 경우 그 시간동안 치밀하게 산불감시를 한다는 것이다. 산에 눈이 남아있으면 산불이 나지 않고 새싹이 나도 불이 쉽게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신비롭게 느껴졌다. 과거에는 낙엽을 긁어다 땔감으로 썼으니 겨울이 지나고 나면 산에 낙엽이 많지 않았으나 요즘은 낙엽을 긁어다 쓰지 않으니 산에는 불쏘시개가 될 낙엽이 가득 쌓여있다고 한다. 강원도는 아직 눈이 남아있겠으나 삼척 남쪽으로는 고온현상이 지속되었으니 눈이 빨리 녹았을 거라고. 그래서 새싹이 나기 전, 산불이 쉽게 날 시간이 길어졌을 거라는 포스팅을 읽었다. (전체공개로 쓰는 분이 아니라 이렇게만 적는다) 그러니 발화의 원인 중 일부는 고온현상이고 그 근본은 기후위기다.
앞으로의 세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산은 민간과 가까이 닿아있어 분명히 통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따뜻해진 기후에 경북의 산불은 왜 미리 대비하지 못했는가. 실화를 저지른 사람을 찾아내고 방화범이 있다고 믿으면 불이 꺼지는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고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모아야 할 때 아닌가.
한 놈 잡아다 저잣거리에 매달면 불이 꺼지는가.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할 시간을 갖고, 애도에 집중해야 할 사람들은 그 일에 집중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 사람들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궁리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7. 눈이 녹고 – 새싹이 나기 전.
지금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시간.
이 시간을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보여주듯이 산이 활활 타고 있다. 가슴을 짓누르는 비통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비극을 부르는 재난은 그 사회가 가진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부정적으로 작동할 때 발생한다. 그 비극은 단 한 생명의 죽음일 수도 있다. 그 한 생명의 죽음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늘 GPT에 인공강우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했고, 한국의 산림이 산불에 취약한 이유에 대해 알아봤고, 향후 산의 조림대안에 대해 살펴봤다. 여태 아무 것도 안 한 것이다. 아무 대책도 없으면 비극은 삽시간에 몰려온다. 저 미친 바람처럼.
2025. 3. 26.
피소추인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 한 줄 성명을 발표합니다.
414명의 작가가 각가즤 목소리로 성명을 발표합니다.
널리 공유해주시고 함께 파면을 촉구합시다.
https://drive.google.com/file/d/16mSC2T0fRUyLH6jZDcoww3_dTiOdxYWg/view?usp=sharing






얼마 전에 26년차 교사가 실감하는 요즘 아이들 – 이라는 주제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몇 가지 핵심 메세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기술과 학습을 익히는 기능과 지능은 확실히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두 번째, 그 반면 사람과의 교감능력이 확실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3-40년 전만 해도 한글을 다 떼고 학교를 가는 애가 소수였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한글을 모르고 들어가는 애들이 적다. 지식적인 걸 가르치면 빠르게 흡수한다. 미디어와 읽고 쓸 것이 넘쳐나기 때문일게다.
교감능력 문제는 그 원인으로 코로나뿐 아니라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면서 어른들도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데 아이들도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의심했다. 일단 가족 자체가 소규모이고 가족과 다른 공동체와의 실제 교류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쉽게 말해 ‘눈치’가 없다는 것.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지,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는지 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 어린이 청소년뿐 아니라 청년세대까지 해당된다.
세 번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1학년에 학교를 들어가 화장실 다녀오는 것, 보건실 다녀오는 것을 함께 훈련하는데 보통 1개월 내에 다들 교실을 잘 찾아왔었다고. 최근엔 한 달이 넘어도 혼자 화장실이나 보건실을 잘 찾아가지 못하는 어린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간지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민층이상의 계층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고, 아이가 생기면 자동차로 라이딩 하는 게 당연해졌다. 어린이집부터 셔틀타고 다니고 끝나면 양육자가 차로 데려오고 차로 데려다주고 태권도 셔틀타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아이들이 낯선 길을 헤매보거나 새로운 길을 가볼 일 자체가 줄어든다. 모험이 없어진 세상에서 아이들이 공간지각능력을 키울 기회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운동화 끈 못 묶는 것, 바지 지퍼 못 올리는 거, 연한 색연필로 색칠 못하는 건 20년전부터다. 이건 디지털 인류로 근육발달의 필요와 정도가 달라졌기 때문인데 공간지각력은 생각치 못한 부분이었다.
서너살부터 동네 골목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예닐곱살 되면 산으로 들고 뭘 잡으러 다닙네, 따먹으러 다닙네 했던 지금의 중년이상들은 어린이들이 화장실을 못 찾아간다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길눈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에도 주소만 있으면 잘 찾아다녔다. 그게 어려서부터 밖에 돌아다니며 새로운 길을 찾는 걸 무척 재밌어 했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지나친 보호는 아이들의 발달을 저해한다 – 고 지금의 어이들의 상황을 양육자들의 탓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왜 그렇게 보호해야 했는지까지 생각해봐야 한다.
80년대 후반부터 골목에 차가 늘어났고 불법주차된 차로 인한 교통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 정문 앞에서도 교통사고로 아이들이 죽었다. 학교 안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학교나 학원 가는 길의 납치와 성폭행이 연달아 일어났다. 마을에서 서로를 모르고 지내는 사이 아이를 지켜줄 공동체의 눈은 사라져버렸다. ‘어느 집의 누구가 낯선 아저씨와 지나간다’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마을은 안전해지는데 그 안전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며 고효율을 지향하고 경제규모가 커지면 불안정하고 위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 가장 안전한 자기 차량으로 아이들을 실어나르게 되었다.
그런데 3월 들어서서 사무실 앞 어린이집에 갑자기 유모차가 줄 지어 서기 시작했다. 없던 일이다. 한 번 언급한 적 있는데 우리 사무실 앞 어린이집은 모두 다 외제차로 아이들을 실어나르던 곳이다. 올해 개학하며 갑자기 다들 유모차로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의 강권이 있었거나.. 오은영이 티비에서 뭐라 했는가, 궁금해진다.
한국사회는 정말 미친듯이 빠르게 바뀐다. 이 혼란을 개인이 받아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가끔 이동하는데 축지법을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집의 변화가 긍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250312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5년 활동내역을 담은 백서를 집필했습니다.
방대한 사업량이 있고, 잘 정리된 자료집들을 이미 많이 출간해서 압축해서 집필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5년동안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해낸 일은 마을의 권리를 획득하고 사회적 인정체계를 구축하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본연의 취지를 회복하는데 집중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쉼없이 달려온 경기도마을공동체 모두에게 박수와 응원을 함께 보냅니다.
디자인은 디자인포트에서 애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역에서 어떤 사안을 놓고 의견을 수합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는 ‘민주주의는 어렵다’는 것이다. 협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여간 복잡하고 까다롭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다수결의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수결은 폭력적이고 소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인권, 다양성, 환경에 대한 의견은 때로 곳곳에서 충돌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어느 바닷가 지역에 나무로 된 데크를 깐다. 장애인도 휠체어로 바다구경을 할 수 있다. 환경우선주의자들은 생태를 해치는 행위라 비난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장애인권을 보장하는 설치물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대놓고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일상생활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문제가 있다. ‘계단으로 다니면 전기를 아낄 수 있어요.’는 장애인은 전기를 아낄 수 없으니 환경을 파괴하는 게 되느냐는 반발에 부딪힌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주장하는 강도의 수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지만, 반면 상호 조율과 양보, 타협이 가능하다.
생태환경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장애인의 이동권리가 더 우선하는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버리면 더 이상의 타협은 어려워진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모두 중요하다.
경기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수요일엔 마프>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다양한 마을관련 소식과 데이터를 전달합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