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해녀와 나 – 너 독새끼가 뭔주 아나?

우도 어멍들과의 1년, 육십 넘은 막둥이의 변주곡

제주는 근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섬이다. 최근 몇 년간 관광산업이 급성장해 제주는 이제 국내외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다. 최근 10년 사이 이 도시에서 제주에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집중이 잘 안 될 때 나는 사진집을 찾는다. 요즘은 공공도서관에도 좋은 사진집이 많이 들어와 있다. 사진집은 여타 단행본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 그 값이 꽤 나간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이 늘어날수록 이미 읽은 것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사진집류가 주로 그렇다.

448_739_459
▲ 준초이 찍고 지음 / 남해의봄날 펴냄

 

이 사진집은 준초이라는 사진가가 제주 옆 우도에서 1년을 보내며 기록한 바다 어멍들의 이야기다. 준초이는 이제 나이로 따지면 노년에 가깝다. 책 소개에 보면 2005년 제주에서 광고 촬영을 하던 그가 멀리서 들려오는 숨비소리에 이끌려 우도에 들어가 해녀 사진을 찍은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고 쓰여 있다. 이 책은 사진과 작가의 이야기가 같이 어우러져 있는데 사진의 기술력이나 예술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만큼 완성도가 높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미지 옆에는 도시에서 온 사진작가가 바다와 해녀들을 대하는 어설픈 모습이 소박하게 적혀 있다.

 

“이땅 마중 올 때 독새끼난 50개 삶아오라, 너 독새끼가 뭔주 아나?”
“예! 계란!”

날이 더우니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려고 냉장고에서 차갑게 얼은 생수를 가져다 줬는데 차가운 바다에서 한참 물질을 하다 온 해녀들에겐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거나 의미심장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툭 던지는 일상의 언어에 놀란다거나, 그 사진기 들고 다녀서 처자식 먹여나 살리겠냐는 어멍들의 이야기에 쑥스러워하는 작가의 낮은 마음이 정겹다.

해녀들은 자존감이 높다고 한다. 자식들이 제발 물질만은 그만하라 말려도 바다에 들어가면 먹을 것을 캐오고 돈으로도 바꿀 수 있으니 노동이 주는 기쁨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준초이는 쉽게 말해 잘나가는 광고사진 작가였다. 그런 그가 바다 어멍 앞에선 까까머리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작가는 해녀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내리 바닷가에서 머뭇거리고 계란도 삶아놓고 기다린다.

우도에서 1년을 보낸 작가는 더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김영갑의 제주사진은 철저히 고독했다면 준초이의 바다와 해녀는 뜨거운 정열과 뭉클함이 있다. 왠지 모르게 심심한 주말이라면 이 검고 푸른 바다를 누비는 신령같은 해녀들과 그 곁에 쭈삣거리는 대가의 이야기를 들어봄직 하다.

통영에서 작은 출판을 하고 있는 남해의 봄날에서 펴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숨가쁜 프리랜서로 살아온 내가 우도에서 보낸 1년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시간이었다. 분명 존재했을 현재라는 시간대를 음미하지 못하고 앞으로만 뛰어가는 내 모습이 한때는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습이 남에게 비춰질 것이 창피하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어진 삶의 몸통에서 현재는 토막난 채로 과거와 미래 어느 쪽인가로 흡수, 통합되어 버렸던 시절이었다. 해녀들은 언제나 현재를 산다. “물때를 어질지 마라” 하시던 옛 어른들의 지혜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자연의 섭리에 맞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 책 216쪽 중에서

[협동조합탐방] 서울시 1호,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협동을 안고 다시 세상속으로

빈 벽에 대고 외치기 시작하다

2012년 11월 28일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의 창립총회가 서울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있었다. 12월 3일 서울시 협동조합 설립 신고 첫 날,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은 서울시 협동조합 제 1호의 영예를 안았다. 야간근무를 하는 대리운전기사의 직업 특성상 새벽 2시 반부터 조합원들이 문도 열지 않은 서울시청 정문 앞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9명이 함께 겨울밤을 지새고 설립신고를 했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창립총회

대리운전협동조합은 2010년부터 대리기사까페에서 활동을 하던 대리운전기사들이 모여 만들었다.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개설한 온라인 까페에서 업무정보, 초보기사교육, 사고처리 안내를 했다. 경력자가 초보자에게 대리운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초보자들은 선배들의 안내를 받아 대리운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대리운전산업은 2000년대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업체설립이 손쉬워 우후죽순으로 대리운전소개업체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지원자는 늘어나고 업체는 정부 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대리운전기사의 근무형태와 처우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2010년 대리기사 이동국씨가 폭행에 이어 대리운전을 의뢰한 주취자에게 뺑소니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리기사들에게 개별적으로 받는 보험료를 편취하는 업체도 있었다. 이 사건을 고소고발한 대리기사는 1년동안 경찰서에 50회 출두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호소가 있었다. 당장 자기 일이 될 지도 모르는 폭력문제와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대리운전 기사들은 온라인까페를 중심으로 교육과 전화 상담을 나누었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서로 돕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대리운전은 생계에 몰린 가장들이 쉽게 진입하는 직업군에 속한다. 업체에 팩스로 신분증을 송신하고 바로 대리기사로 일할 수 있다. 진입장벽은 낮으나 유지가 어렵다. 처음 3일동안 밤길을 헤매며 일을 하나도 못 따고 아침을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업체에서는 대리기사에게 실질적인 정보나 업무에 대한 지침을 주지 않는다. 영업할 권리를 얻는 대신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초보 때 고생했던 기억을 잊지 않은 선배들이 온라인 까페에서 초보기사 교육을 했다. 콜은 어떻게 받고, 의뢰인 대리수행을 한 뒤 어떻게 복귀하며, 대리기사들이 주로 어디서 모이는지 알려주기만 해도 밤길을 덜 헤맬 수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의뢰인이 시비를 걸어왔을 때의 대처도 경력 있는 기사들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된다.

대리운전기사의 처우개선은 기본 인권문제를 안고 있다. 폭력행위근절, 안전한 운행 등 근무여건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대리운전기사들이 모인 온라인까페는 2010년부터 임의단체를 결성해 정책입안 간담회에 참여하고 까페 회원들의 사고를 접수해 통계를 내서 정책기관에 리포트를 냈다. 통신사의 횡포에 맞서는 기자회견도 했지만 임의단체가 가진 힘은 미약했다. 협동조합이라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나설 수 있었다. 이미 결속력은 탄탄히 자리를 잡아온 터였기에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는 큰 힘이 되었다.

설립동의자는 금세 100여명이 모였다. 설립등기를 위해 개인 인감증명서와 등본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자기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는 동의자들이 많았다. 결국 스물 두 명의 조합원이 모여 정식 조합원으로 출범했다. 그 외 까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회원들은 600여명이다. 2012년 12월 3일 설립이후 22명의 조합원 중 4명이 탈퇴하고 4명이 신규가입했다.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출자금을 내야 하는데 대리운전기사의 고용 불안정성을 생각해 묘안을 짜냈다.

“우리가 낼 수 있는 돈이 얼마인가 고민을 했더니 한 달에 50,000원은 낼 수 있겠더라고요. 50,000원씩 12개월을 모으면 600,000원이 됩니다. 출자금 분납이 가능한가 여기 저기 물어봤는데 정관을 우리가 정하면 된다더라고요. 조합원 1인은 출자금 600,000원에 조합비는 똑같이 10,000원을 내죠.” 이상국 사무처장의 말이다.

대리운전기사는 전업률이 높고 소속기관이 불확실해 처음 조합원이 되겠다고 신청을 하면 6개월 이상 준 조합원의 자격을 얻고 6개월이 지나 조합원심의위원회를 열어 정조합원 가입여부를 정한다. 조합의 행정과 관련된 대부분의 모임은 새벽 4시 이후이거나 일요일 오후에 한다. 처음엔 새벽에 문을 연 식당에서 모임을 가졌고 청소년수련관을 잠시 빌리기도 했다. 공익재단 행복세상에서 새벽시간을 이용해 모임을 지속했다. 직원들이 출근할 때까지 회의와 교육을 계속하는 모습을 본 재단측에서 아무 때나 회의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사무와 행정을 맡고 있는 조합원도 현직으로 대리기사수행을 하고 있다. 조직의 역량에 걸맞게 길게 가기 위한 방편이다. 조합원들은 비번일 때 돌아가며 상담전화를 받고 행정업무는 꼼꼼히 기록한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임의단체 활동
임의단체 시절의 단체행동


밀림처럼 복잡한 도시의 밤

대리운전협동조합은 필요해서 만든 협동조합이다. 구성원들은 그간의 대리운전 산업 구조로 인한 피해를 입었고 이에 대한 사회적 보호장치는 전무했다. 조합이 탄생한 것은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대리운전은 80년대 음주단속 개시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자가운전자가 늘어나고 음주운전 단속이 강화되며 대리운전산업이 성황을 이뤘고 스마트폰의 탄생이전에 대리운전기사들은 모두 각자 자기 비용으로 PDA를 구입해 대리운전 영업을 해왔다.
대리운전산업은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고객이 될 수 있는 대상이 늘어났고 기사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늘어났다. 하지만 대리운전 업계에서는 이 사업이 향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긴 어렵다고 한다. 음주자가 줄어들었고 경기침체의 고착화가 예상되면서 대리운전을 맡기지 않으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한 명의 대리운전기사가 일을 하는 패턴을 살펴보면 산업구조를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대리운전기사는 자기 신분증을 팩스로 전송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는 이상 특별한 심사는 없다. 등록은 대리운전 업체에 한다. 콜센터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대표번호를 쓰는 업체를 말한다. 대표적인 업체 아래에 영업대리점과 콜센터가 분할되어 있다. 대리기사가 되면 동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대리콜을 기다린다. 대리콜을 받기 위해서 대리운전 기사전용 앱을 휴대폰에 깔아야 한다. 이 앱은 전용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개발해 업체와 제휴를 맺어 제공한다. 앱 비용은 대리기사가 부담한다. 업체는 그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상계좌를 만들고 수수료를 떼지만 앱 비용을 대지 않는다. 대리기사 한 사람은 콜전용 앱을 세 개정도 깔아야 순조롭게 영업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업체에서 앱 세 개를 주로 사용해 콜 의뢰를 기사에게 보낸다면 기사는 세 개의 앱을 구매해서 사용해야 한다. 전용 앱은 자기가 운전수행을 할 수 있는 반경 km를 골라서 설정하고 거기에 뜨는 대리의뢰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콜이 떴는데도 의뢰를 수락하지 않으면 바로 패널티가 붙는데 돈으로 500원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30분간 배차 중지를 하는 경우가 있다. 대리기사가 주로 근무하는 시간은 9시에서 새벽 1시. 너댓시간 근무 중 30분간 배차중지는 당연히 손해다. 대리기사는 앱 하나 가지고 영업을 할 수 없고 다른 앱을 같이 돌리며 신속하게 콜의뢰를 받아내야 한다. 콜 의뢰를 하나 받으면 업체에서 앱으로 콜 의뢰를 띄우고 이를 수락해 기사수행을 하면 낯선 곳에 내리기 마련이다. 최대한 이동거리를 줄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그 부근에서 다시 이동할 콜의뢰를 받아야 한다. 불안정한 근무일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이면 비용 때문에 택시를 이용할 수 없고 전용셔틀버스를 타곤 한다. 봉고차나 작은 승합으로 이동하는 셔틀은 불법운영인 경우가 많다. 업체가 섭외하는 것이 아니고 대리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이 횡행하는 것이다. 이 셔틀이 없으면 대리기사들은 벌어서 길에 버리는 셈이 된다. 콜 의뢰 한 건에 20%에서 많게는 37.5%까지 콜업체에서 수수료를 떼어간다. 서울 수도권은 영업이 많아 수수료가 적은 편이고 경기남부는 25%까지, 지방 도시는 정액제로 수수료를 떼는 업체도 있다.

대리운전01대리운전02대리운전03대리운전04

위 인포그래픽에 나와 있듯 하루 평균 4건의 대리운전수행을 하는 것이 평균이라고 치면 (사실 초보자들은 이에 훨씬 못 미치지만) 하루 수입 중 절반은 영업투자비용이 되는 셈이다. 야간근무는 발암물질이라는 의학계 보고처럼 대리운전기사 5년차에 소리 없이 이가 내려앉거나 근골격계, 혈관계 질환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면장애는 너무 흔해 말도 하지 않는다.
운전이라는 작업 특성으로 인한 질병 외에도 의뢰인의 무차별 폭행도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1년에 1회 이상 폭행을 당한 대리기사는 전체의 절반이다. 실수로 의뢰인의 차량에 사고를 낸 경우 대부분 대리기사 개인부담으로 처리해야 한다. 야간주행의 위험은 사망사고까지 이어진다.

신고만으로 영업이 가능한 대리운전업체가 난립하면서 저가 대리운전이 등장했다. 하루에 4콜을 받아 100,000원의 수익을 올리던 사람들이 5콜을 받아야 100,000원을 벌 수 있다면 방법은 한 가지, 빨리 달리는 것뿐이다. 저가 대리운전은 결국 대리운전기사와 고객의 생명 모두를 담보로 잡는 행위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을 넘어, 사회인으로 일어서기

대리운전협동조합 이상국 사무처장은 “대리운전에 지원하는 기사들은 기본적인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더 편히 벌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최대한 정직하게 밤근무라도 해서 정당하게 돈을 벌고자 하는 가장들이 모였다. 자기의 개인정보와 위치정보가 모두 노출되어 있다. 대리운전협동조합은 안정적 수익을 올리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만들었다.

수년전 야간작업특수건강진단실시조사에서 대리운전협동조합원들은 눈에 띄게 다른 수치를 나타냈다. 일반 대리운전기사들은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를 상회하는 수치를 보였지만 조합원들은 감정노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현저히 낮았다. 의료진은 이러한 결과에 상당히 놀랐고 조합원들은 다른 대리운전기사들의 서면조사를 직접 수행하는 조사원의 역할을 했다. 대리기사들이 모이는 집합장소에서 자기 시간을 할애하며 조사를 도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조사지표가 권익 상승에 이바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이동노동자쉼터를 준비할 때도 간담회에 참여해 의견을 냈다. 이동노동자쉼터를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조직의 역량이 그 정도까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중간지원조직에서 쉼터를 운영하는 것이 향후 더 많은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의 기틀을 다지고 사회기반서비스를 확충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카카오톡이 대리운전 서비스를 내놓을 때도 협동조합원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상국사무처장은 조합을 대표해 카카오드라이브의 자문위원을 맡았다.

“우리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사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전문가들이 대리운전기사뿐 아니라 이동노동자, 야간노동자의 권익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속 연구·발표 해주셔야 사회적 파급력이 있어요.” 아무리 외쳐 봐도 빈 벽에 바람뿐이던 거친 세월을 지나 대리운전협동조합은 이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가느다란 끈을 잡게 되었다.

대리운전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권익과 보호를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직무연수모임이다. 신입 회원이 생기면 단체카톡방에 들어간다. 19명의 경력직과 1명의 신입으로 꾸린다. 신입회원이 어디서 상하차하고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정보를 전달하면 다음 대리기사수행에 유리한 정보를 알려준다. 선배들의 노하우를 특별지도 받는다. 맨 땅에서 혼자 고군분투하지 않고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저 정보를 알고 넘어가는 것과 누군가 나를 도와줄 지원군이 든든하게 있다는 것은 어두운 밤거리에 낯선 사람의 낯선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는 데에 큰 힘이 된다. 대리운전협동조합의 조합원과 회원들은 비회원들보다 수익이 높다. 새벽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선배의 노하우를 듣고 서로 공부하며 얻어낸 성과다.

협동조합설립 이후 익명의 기부자가 있었다. 500만원의 기부금으로 조합원들은 소액대출 계(契)를 만들었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수시로 사고에 노출된다. 의뢰인의 차를 손상하게 했다거나 사고가 났을 경우 자부담으로 해결하는 편이다. 생계의 끝에 내몰려 시작한 대리운전자가 처음 이런 사고를 당하면 100만원이내의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제2금융권이나 불법대출업체를 찾아보게 된다. 현재 전국에는 이런 대리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대출업체가 많다. 평균 24%의 선이자를 떼고 콜 앱의 운행기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대리기사들은 어차피 매일 비슷한 장소에서 일을 하고 신분과 위치가 다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불법대출업자들이 믿는 신용이다. 대리운전협동조합은 회원과 조합원들이 불법대부업에 발들이지 않도록 곗돈을 활용해 무이자로 소액대출을 해준다. 무이자인 대신 대출금액의 10%를 출자금으로 낸다. 이 출자금은 따로 모아 또 다른 조합원과 회원에게 무이자 소액대출의 종자돈이 된다.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입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제대로 된 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리운전협동조합은 대리운전기사가 근무 중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노동환경개선을 이루고자한다. 불법승합차셔틀대신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콜버스가 등장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만일 대리기사를 위한 셔틀버스가 합법화된다면 더 많은 야간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의 당사자 운동은 사실 가려져 있던 다른 집단에게도 공동의 이익을 배분하는 효과가 있다. 대리운전기사의 처우와 노동환경개선은 결국 이동노동자와 야간근무자들의 노동환경개선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160613_이동노동자쉼터휴 (1)
▲ 서울시 노동권익센터의 “이동노동자쉼터” 休 – 배터리충전기는 이동노동자의 하루를 책임진다.

누구나 언제나 갑작스러운 경제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사회적 안전망에 구멍이 많은 나라에서 느닷없는 해고와 파산은 어쩌면 모두가 한번쯤 거쳐 가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타인을 도우며 뿌듯함을 느낀다. 더 나아가 사회적 공헌을 하는 자신을 긍정하기 쉽다. 인간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때 자기 성취감이 높아진다.
“기본적으로 소득이 해결되어야 그 다음이 있는 거죠. 먹고 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이 돼야 사회적 발언도 하고 남도 돕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언제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범죄에 대한 공포는 영혼을 갉아먹어요.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기본적인 소득도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그 다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 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죠. 내 자부심은 사회기여로 연결됩니다. 그게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요, 그래야 노동자 권리 찾기도 할 수 있겠죠.”
대리운전협동조합 이상국 사무처장은 대리운전기사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지역사회기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리기사들은 어디다 말을 할 데도 없어요. 친구들에게도 말하기 어렵고, 산업구조도 엄청 복잡하죠. 우리는 마음을 닦아내는 일도 해야 합니다. 열악한 환경이라고 도움만 받지 말고 지역사회에 기여도 해야 합니다. 카카오드라이브에는 대리기사의 사진과 이름이 뜹니다. 이 제도를 탐탁치 않아하시는 분도 있어요. 대리운전기사에 대한 사회적인식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고객과의 신뢰도 높아집니다.
위치와 신분이 모두 노출된 대리기사들은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여성안심귀가동행서비스 같은 사회안전문제를 대리기사들의 촘촘한 네트워크와 정보로 충분히 협력할 수 있어요. 8만 명 정도가 늘 서울시내에 있는 겁니다. 야간에 일하면서 길에 쓰러져 있는 주취자 신고도 많이 합니다. 관할서가 다르다고 여러 번 전화하다보면 저희 일을 놓쳐요. 저희도 일을 하면서 사회적기여를 할 수 있는 망이 구축되면 좋죠. 뜻있는 지자체, 기관, 기업 누구라도 손잡을 용의가 있습니다. 사회적기여가 가져오는 기대는 공헌뿐 아니라 결국 대리기사들의 마음이 꽉 차오를 겁니다. 그 과정에서 대리기사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식도 올라갈 것이고요. 그러면 사회에서 더욱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요?”

한국은 언제부턴가 불야성의 땅이 되었다. 모두가 잠드는 밤은 없다. 야간근무자의 수치를 정확히 파악할 대표적인 통계조차 없다. 이러저러한 통계들을 뒤섞어 보면 2010년 이후 공식적으로 11% 정도의 야간근무자가 있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단기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도시의 밤을 지키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현장근로자가 대리운전기사이다.

업체와 고객의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여도 무조건 걷고 뛰고 사과하는 대리운전기사들은 이미 사회적공헌을 하고 있다. 함께 해서 이룬 것이 있으니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다는 대리운전협동조합. 수년 간 도시의 밤을 지켜온 것처럼 소외된 곳에서 협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 것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이동노동자쉼터 “휴”

대리운전협동조합의 인터뷰는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이동노동자쉼터와 그 부근에서 진행했다. 신논현역에서 반포IC까지 이르는 구간은 대리운전의 메카다. 화려한 강남역에서 조금 뒤로 물러선 곳에서 대리기사들은 더운 날도 추운 날도 길에 서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대리의뢰를 기다렸다. 이제는 이동노동자쉼터에로 출근하고 모임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대리운전을 의뢰한다면 쉼터에서 편하게 5분이라도 쉬었던 사람이 더 반갑지 않을까.
이동노동자쉼터 休는 저녁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간사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대리운전기사들도 서로 배려한다고 전했다. 하루 이용자는 4-50명. TV를 놓지 않아 서로 대화를 하게 만들고 냄새나는 음식물은 자발적으로 반입금지했다. 현재는 야간이용자가 많아 주로 대리운전기사들이 이용한다.
한 이용자는 퀵서비스의 경우 종로구 장교빌딩 주변이 집결지라 그쪽에도 이동노동자쉼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슬라이드 쇼에는 JavaScript가 필요합니다.

대리운전협동조합과 대리운전”업”협동조합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과 대리운전”업”협동조합은 다르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은 본 기사의 주체이며 대리기사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대리운전“업”협동조합은 대리운전업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협동조합이다.대리운전협동조합과 대리운전업협동조합

카카오드라이버

카카오드라이브

대리운전협동조합을 비롯한 대다수의 대리운전자들은 카카오드라이브를 매우 환영한다고 전했다. 수수료는 20%로 정했지만 일단 프로그램비를 지불할 필요 없고 운전자들은 모두 피보험자로 등록되어 보험료도 카카오에서 지불한다. 카카오드라이브는 대리의뢰를 하면 고객에게 배정기사의 기사신분증을 전송한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카카오드라이브가 업계의 혁신을 가져와 그동안 횡포를 부렸던 업체들이 변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고양이 마을로 돌아가다》-  나쁜 자본주의와 이별하기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 남도현 옮김 / 이숲 펴냄

 

문득 서평을 쓴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라고 초강추라고. 꼭 읽으라고.” 한 줄이면 될 것 같다.
한 권에 책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을 할 필요가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드는 건 굳이 쪼개어 해체하거나 느낌을 덧붙이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고양이와 같이 사는 나에겐) 제목이 참 매력적이다.
고양이 마을로 돌아가다니. 고양이는 인간이 키우는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위상을 높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모시고 산다고 말한다. 어쩌면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진지하게 들을 때 나 역시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도시에 산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양이를 대하는 도시민의 태도가 그 도시의 인간미를 측정하는 지수가 된다고도 한다. 작은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모여 그 도시 시민이 생명을 대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이 책은 멀리가지 않고 도시의 골목을 거닐며 자본주의에 대해 성찰한 한 사업가의 명상이다. 주장이라고 보기엔 논조가 부드럽고 이야기라 하기엔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또한 책상에 앉아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언저리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고양이 마을도, 그가 관찰한 고양이들을 지켜보다가 나온 이야기다. 이전에 출간했던 저자의 책중에 《‘소비를 끊는’ 공중목욕탕 경제의 권유》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에도 공중목욕탕과 가업을 잇지 않으려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처럼 동네를 산책하며 고심했던 소재들이 등장한다.

책은 1장과 2장으로 나뉘어 있따. 1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이야기를, 2장은 골목길에서 찾은 자본주의와 자본이 바꿔놓은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한다. 일본과 한국은 여러 모로 닮아있다.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저자의 이야기가 더 정겹게, 실감나게 들릴 것이다.

작가는 1950년 도쿄 출생으로 사업가이자 저술가이다. 벤처사업가 중 하나라고 알려졌는데 참신한 업종을 창업한 경력이 있는데 저술한 책을 보니 기존의 체제와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히라카와 가쓰미가 쓴 그간의 책은 《반전략적 비스니스의 권유》, 《주식회사라는 병》, 《경제성장이라는 병》, 《이행기적 혼란-경제성장 신화의 종말》, 《소상인小商人에의 권유-경제성장에서 축소 균형의 시대로》,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소비를 그만두다》 등이다. 그러니까 기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계속 제시하고 주장하고 있다.

묵직한 경제학원론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겉핣기식 책은 아니다. 발로 쓴 글은 어딘가 깊이가 있는 법이다. 혼자 읽고 음미하기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독서모임에서 자신의 일상과 비교해가며 함께 이 책을 읽는 것도 매우 좋겠다.

 

나는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지만 (이런 문제는 그때가 돼야 알 수 있겠지만), 인간의 죽음을 법제화한다는 생각에는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는 자연사를 ‘존엄사’라 부르는 것에도 반대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발상에 ‘당사자의 책임’이라는 근거를 끌어들인다는 점이 못마땅하다. (중략)
내가 존엄사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죽음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사건이며, ‘죽음’이라는 개념이 일반적 정의가 필요한 법과 어울리지 않아서다. 죽음이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에서는 법안의 취지나 내 생각이나 똑같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없는 집단적, 집합적인 면이 있고, 또 역사적인 면이 있다. 이런 측면이야말로 죽음을 생각할 때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법안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임상 차원에서 죽음은 역시 개별성이 문제시된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죽음이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대책이 있기에 이 문제를 획일적으로 다룰 수 없다. (중략) 결국, 죽음은 내 것인 동시에 내 것이 아닌 무엇이다. (58-59)

“처음부터 지금까지 실마리는 없었다.” 헤이안 시대(794~1185) 진언종을 창시한 구카이가 지은 『삼교지기(三敎指기)』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실마리는 인간의 지성 밖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할 뿐이다. (98)

토드는 가족 분류를 설명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외혼제 공동체 가족이 분포된 곳은 러시아, 중국, 베트남, 구(舊)유고슬라비아, 쿠바, 헝가리 같은 국가들이다. 즉, 사회주의 국가들은 거의 외혼제 공동체 가족 구조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이런 지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즉, 공산주의 국가처럼 ‘권위주의’와 ‘평등주의’라는 두 가지 규제력을 통해 통치되는 공동체는 원래 외혼제 공동체 가족 체계에도 존재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구상인 것이다.
*토드 『세계의 다양성(La Diversite du monde. Structures familiales et modernite)』의 저자 엠마누엘 토드

많은 사람이 일본 전체가 순식간에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경험했다. 만약 원전 사고의 영향이 도쿄까지 미쳤다면, 수도의 기능이 마비됐을 뿐 아니라 모든 정치 기능이 수도에 집중된 일본 전체의 기능이 마비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 기능을 분산하고, 수도 이전을 고려하는 등 집중을 막으려는 논의는 정치가 사이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고 있다.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도 집중이 아니라 분산을 통한 공존을 구체화하는 것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자연에서 배워야 할 지혜다. 효율만을 중시하는 중앙집권 체계와 지속을 위한 공존 체계라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서로 싸우는 것이 오늘날 상황이다. (126)

지구의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이 이토록 많은 쓰레기를 배출한다. 문명인의 생활은 어쩌면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를 치우는 삶이다. 개도, 고양이도, 가축도, 야생동물도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들의 배설물을은 시간이 흐르면 땅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집을 짓거나 부수지 않는다. 보금자리는 자연 그대로 풀숲이나 나무뿌리 사이, 혹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 있다. 해가 뜨거운 여름에는 어디가 시원한지, 추운 겨울에는 어디가 따뜻한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니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간다. 인간만이 자연에 도전하고, 자연과 대립하고, 자연을 가공한다.
최근에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인간을 제외하면 어떤 생물도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간다. 지속 가능한 사회는 오로지 인간에게 국한된 개념으로 다른 생명체한테는 너무도 당연해서 염두에 둘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133-134)

사무실 뒤쪽에는 나무가 많은 공원이 있는데, 뒷문으로 나가 잠깐 쉬다 보면 이네무리 군이 햇볕을 쬐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이네무리 군이 나무 아래서 오줌을 누고 나서 요령 있게 모래로 덮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은 참으로 정교하게 조직돼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중략)
우리는 고양이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134)

정치가는 자기 정치 생명의 큰 부분을 주식회사에 의존하고 있다. 주식회사의 경영자들 또한 성장을 지속시키지 못하면 그 소유자인 주주들에게 버림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다. 혀재 국가는 주식회사에 의해 지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국가가 구사하는 경제 성장 전략은 실제로 주식회사의 전략이고 국가가 말하는 성장 시나리오의 내용 또한 주식회사 경영자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136)

문명의 발전은 어떤 가혹한 자연조건에서도 살아갈 조건을 갖추도록 도구와 기계를 만들어냈다. 가혹한 자연조건을 완화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에너지가 필요할까?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면서 자연과 관계 맺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은 소진할 것이며, 오늘날 바로 그런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140)

찬찬히 바라보면, 정상경제를 우리가 발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일하고 살아가는 바로 이 땅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일하고 살아가는 바로 이곳을 소중히 여기고, 품격 있는 국가로서 실현할 수 있는 경제를 새롭게 구상해보자. 품격 있는 국가는 품격 있는 의식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153)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취재기

서촌의 골목을 돌아

광화문을 지나 사직공원쪽으로 올라가면 배화여대로 올라갈 수 있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사직공원 옆 사직파출소부터 이어지는 곳은 서촌이라 부른다. 조선의 임진왜란 이후 관청이 모여있던 이 곳에 민간인들이 살기 시작했고 1930년대부터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서촌에는 각종 단체들이 모여있다. 환경연합과 참여연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시민단체들이 모여 있다. 세종음식문화의 거리가 시작하는 지점에 아담한 건물 2층에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있다.
2009년 4월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가 한국 상조사업의 현황과 대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며 상조사업의 현황을 점검했다. 동년 9월에 한겨레신문사와 풀뿌리공제운동연구소가 공제조합 운동을 함께 하기로 결의하고 각 지역 주민운동, 협동조합운동, 시민사회운동가들이 모여 한겨레두레공제조합 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우리의 고유 관혼상제 문화 중 공동체정신이 있는 두레와 품앗이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형태를 찾다보니 그 중 하나가 장례문화였고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가장 빠르게 상업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합원 가족들의 상장례를 함께 준비하려고 출발한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조합원을 모집하던 중 장사서비스 제공에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한다. 뒷돈거래, 폭리구조를 파악하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다시 공력을 들인다. 2010년 가을,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뒷돈거래와 폭리가 없는 장사서비스 제공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시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다. 이후 법인 설립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상포계를 중심으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으로 등록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생협으로 인가신청을 하였는데 생협법상 사업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된다.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그제서야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협동조합”의 형태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죽음의 존엄함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1997년 구제금융 이후 경제적 곤궁함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했다. 산 자의 삶이 가치를 잃는 순간 죽은 자의 가는 길은 더없이 쓸쓸해졌다. 가족형태가 변형되고 구성원이 줄어들고 집안과 가족의 일도 자본에 넘겼다. 상장례를 도맡아 하는 업체가 등장하면서 죽음은 집 밖으로 몰려났다. 건강보험의 혜택으로 병원문턱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끝까지 죽음과 싸워 이기려는 투쟁을 시작했다. 많은 삶이 병원에서 사라졌다. 살기 위해 가는 곳도 병원이지만 죽기 위해 가는 곳도 병원이 되었다. 병원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을 넘어서 상장례를 치르기 위한 외부기관이 되었다. 집안에서 상장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장례는 사업이 되었고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한 뒷돈거래와 과다한 비용의 청구로 장례식은 계산서와 영수증으로 점철되고 고인에 대한 애도는 온데간데없다. 장례식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밀려드는 문상객과 습관처럼 인사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례식장에 보이지 않는 바가지를 물리치기 위해서이니.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서울조합 사무실을 처음 찾은 것은 2015년 여름이었다. 아담한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사무실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서울조합과 연합회가 같이 사용하는 공동사무국이다. 연합회 상근직과 서울조합 상근직이 함께 사무실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각 지역별 조합이 있고 각 지역조합들이 결합하여 연합회를 구축한다. 연합회에서는 전체 조합의 사무를 관장하고 각 조합의 총무부문을 정리한다. 각 지역조합은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구축된 조합이 있기도 하고 정관과 규정에 따라 새로 조합이 구성되기도 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지난 3년간 조직의 체계를 갖추는데 집중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총괄상임이사 김경환 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이 한국에서 성공하고 자리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외부의 목소리를 익히 들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들과 80년대 민주화세대들이 주축이 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당연히 갈등과 반목이 반복되는 일이 끊임없는 게 당연하다고 평가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을 주목한 것은 24%의 기적이라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조합원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제조합의 성격을 갖추기만 해도 되는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념을 관철하고 죽음의 가치를 재고하기 위해 사회공헌의 장치를 찾아냈다.

 

399_623_126
▲ 한겨레두레 겨울 워크숍

죽음의 가치를 통해 삶을 다시 보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조합원은 초기 출자금과 매달 조합비를 낸다. 이 조합비중의 24%를 별도로 모아 사회공헌에 사용하는데 2013년부터 종로구 마을주민제안사업의 일환으로 무연고노인의 결연장례를 몇 개 단체와 함께 진행했다. 법무법인, 사회단체, 비영리단체들을 규합하고 마을주민들과 협력사업으로 무연고노인이 많이 살고 있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장례 결연을 맺었다. 종로구 돈의동은 일제강점기에 집창촌으로 조성된 지역이다. 이후 1968년 나비작전이라는 집창촌 철거 계획에 따라 집창촌은 모두 사라졌고 대신 성매매가 이루어지던 공간에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일세방이 생겨났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도 한 평남짓한 공간에 인생을 맡기는 여러 사연들이 모여 산다. 돈의동 103번지 일대는 노인들이 모이는 파고다공원일대부터 헐리우드 극장까지를 말한다. 서울 한 복판에 대규모 쪽방촌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거니와 그들의 삶은 있어도 없는 것으로 치부되다가 결국 마지막 가는 길도 “처리”가 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서울조합은 지역 공동체의 회복과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방법에 고심하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죽음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찾게 된다.

2015년에 급부상한 키워드는 고독사다. 그 이전에 고독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인들의 고독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예술인보호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사회의 사람다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도시의 인간성을 알아보려면 그 도시의 고양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는 말이 있다. 길고양이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인간도 당연히 존중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지는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죽음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나 인간 본성의 가치회복, 삶의 목적 따위는 차치하고, 죽음에 대한 예를 어찌 갖추는가도 이 사회의 인간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늘어나는 고독사는 멀리 있지 않았다. 골목 곳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간간히 뉴스에 등장했다. 심지어 한 건물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건물주 노인이 혼자 지내던 방에서 죽은 지 오래되어 발견되었고, 한 가족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경우 등 사회에 이슈가 되는 뉴스거리 외에도 이름은 있으나 기억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홀로 죽어간다.
한 때 우리는 죽음의 예를 “축제”에 빗대어 부르기도 했고, 살만큼 살고 여한 없이 떠난다며 호상이라는 단어도 붙였다. 노령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이제 이 사회는 더 이상 “장수”를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치도, 행정도, 장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제 정치와 행정에서의 장수는 골치 아픈 일이 되어간다. 환영받지 못하는 노령인구는 밀려 밀려 혼자 죽어간다. 골목에서 아무도 모른 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사라진다. 이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남은 흔적을 지우는 업체가 있고, 그들의 물건을 수습하는 유품정리업체가 있다. 모든 것은 자본이 대신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그들의 죽음을 정리할 수 없다면 모여 있는 곳부터 파고 들 수 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서울조합은 같은 지역에 속한 종로구 돈의동을 찾았다. 돈의동의 복지를 책임지는 사랑의 쉼터 복지관과 종로1·2·3·4가동 담당 공무원과 장례결연을 맺을 대상을 우선 선정했다. 장례결연이란, 혼자 사는 쪽방촌의 무연고 노인이 이 세상과 이별할 때, 그들의 장례를 대신해주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이라고 가족이 전혀 없지 않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연락이 끊겼고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거나 가족과 연락이 닿아도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이들은 무연고자가 된다. 무연고자의 죽음은 기억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돈의동과 같은 빈곤지역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복지관이나 담당공무원을 통해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연고자를 찾을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은 48시간이 된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들의 시신은 직장(直葬)처리된다. 바로 장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상례가 없이, 즉 장례식이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가게 된다. 사망진단서를 끊고 사망자에 대한 행정 처리를 하고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화장장으로 간다. 시신운송 차량은 버스 기사 1인이 운전한다. 동행자는 없다. 이들의 시신이 화장장에 도착하면 바로 화장하고, 유골은 “처리”된다.

이 시대 대다수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어 병원에서 장례를 치른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의사와 의료행위에 대한 합의를 가족들이 하게 된다. 사망이 확인되면 그 때부터 상례 절차가 시작된다. 상조 회사를 부르고 병원 장례식장을 예약한다. 사망한 병원과 장례식장이 상이한 경우 정복을 입은 장례식장 관계자가 나와 시신을 운송한다. 가족들은 상조회사와 각종 계약을 체결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계산이 오고간다. 관은 얼마짜리로 할 것인지, 수의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손님접대를 위한 밥상은 얼마짜리를 할 것인지, 가족들은 수도 없이 계속해서 장례지도사와 상례에 대한 비용을 확인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 때부터 문상객이 몰려든다.

돈의동 103번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전쟁고아부터 IMF때 사업이 무너져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 사람들 중 장례결연이 필요한 사람들 중 협동조합에서 약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정하여 장례결연을 맺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구술생애사집을 출간하기로 하였다. 서울조합의 사무국장이 이 작업을 맡았고 결연장례 어르신의 집단생애사집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동행했다.

 

399_611_1543
▲ 돈의동 구술생애사 기록과정

돈의동 103번지 골목

여름이었다. 처음 만날 어르신은 두 분이라고 사무국장이 말했다.
종로 3가 파고다공원 뒤로 들어가면 돈의동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파고다공원의 담벼락엔 대낮부터 만취한 사람들이 등을 기대고 있거나 장기를 두기도 한다. 돈의동에 사는 사람도 돈의동에 살지 않는 사람도 여기서 낮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한 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사무국장이 커다란 검은 봉투를 들고 사랑의 쉼터 사무실로 들어왔다. 인터뷰를 할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사무국장이 사는 동네의 마트가 싸다며 10kg짜리 쌀을 두 포대나 짊어지고 왔다. 사무국장은 남다른 미모의 40대 여성이다.

첫 인터뷰는 사랑의 쉼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사무국장은 선글라스를 쓴 멋진 차림의 노인에게 원래 고향을 물었다. 전쟁고아인 박노인은 원래 살던 집이 남산동이었으며 폭격을 맞아 집이 날아간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사무국장이 준비한 쌀과 라면, 커피를 전달해드리기 위해 박노인의 쪽방으로 향했다. 멀끔한 춘원당 한의원을 지나면 바로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다. 입구부터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골목 어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박 노인을 보고 인사했다. 박 노인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그는 없이 살수록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평 남짓, 잡다한 물건들이 그득한 방은 나름대로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먼지도 별로 없었다. 박노인의 성품은 방에서 모두 드러났다. 허투루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 깨끗하게 정돈하는 습관, 깨끗하게 걸어둔 옷가지 등, 놀라울 정도였다.
박노인과 일별하고 만난 두 번째 결연장례 대상자도 박 씨였다. 이 분은 무연고자의 장례문제에 대해 복지관에 건의를 한 적도 있다. 옆방에 같이 살던 노인을 아버지처럼 오래 모셨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니 장례식도 제대로 치를 수 없이 그저 화장장으로 보내야 했던 일이 잊을 수 없이 가슴 아팠다. 기관과 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돈의동 노인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다고 전했다. 기초수급자로 공공근로를 다니면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자기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상조회사에 가입도 해두었다. 두 번째 박 노인은 봉사활동으로 받은 표창장도 선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뒤로 나가떨어지기 십상인 계단을 오르내리며 참담한 기분이 들었지만 두 분의 태도는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방안에 앉아 있으니 땀이 줄줄 흘렀다. 7월이었다. 두 분과 함께 불고기 백반을 먹고 헤어졌다. 한겨레두레의 사무국장은 두 분에게 엔딩노트를 보여드렸다.
“어르신들 돌아가시면 원하시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내용을 여기 적어서 방에 잘 보이는 데에 걸어두시면 저희가 나중에 와서 어르신 필요하신 거, 왔으면 좋겠는 사람, 연락해서 장례를 치러드릴 거예요.”
본인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는 사무국장도, 그 얘기를 듣고도 좋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분의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처음 만났다.

IMF때 사업에 실패하고 돈의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황 씨 어르신, 열여섯에 팔려가듯 시집을 갔다가 쫓겨나 식당일을 전전하며 모은 돈을 사기 맞아 돈의동에 들어온 신 씨 어르신, 전쟁 때 가족을 잃고 평생 종로구를 떠돌았다는 강 씨 어르신을 만났다. 가정불화로 평생을 방황하다 노동으로 생계를 잇던 홍 씨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부상을 입었는데 병원비를 낼 돈이 없었다. 카드깡으로 급한 치료비를 메꿔보려다가 불법업체에게 사기를 당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는 쪽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달랬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넘었다. 가장 젊은 안 씨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집을 떠나며 친척집을 전전하다 이런 저런 기술을 배우며 열심히 살았으나 어느 순간 알콜중독자가 되어 중환자실에서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미 간경화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결연장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돈의동 103번지를 아우르는 종로1·2·3·4가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은 돈의동 골목을 지날 때 주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했다. 사랑의 쉼터 복지사와 사무국장은 이웃처럼 지내는 모습도 보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절망적이지 않다거나, 나름대로 살만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내가 마주친 돈의동 103번지의 주민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매일 매일 애쓰며 살아야 한다. 나는 그저 그 곳을 지나친 이방인에 불과하며, 이방인이 보는 시선은 짧고 얕다. 그들은 때때로 배를 곪는 게 차라리 편리하여 평소에 많이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병원에 실려 가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 하며, 작은 일거리라도 끊이지 않기 위해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여러 가지 낡은 버릇들을 버리기 위해 오랜 시간 자기 자신과 싸워왔고, 지나간 날을 들추는 고통을 잊기 위해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다. 통풍이 되는 창문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한들,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쓰러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덤덤해 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을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돈의동 103번지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품이나 기질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아파도, 슬퍼도, 하물며 죽어도, 연락할 곳이 없다는 것. 무연고이다. 내가 그들을 “우리”라고 칭할 수 없다면 나는 “그들”의 삶의 곤고함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삶이 결국 무연고로 이어지고 영결식이나 장례식도 없이 “처리”되는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면. 우리는 모두 가족을 가져야만 온당한가. 질문이 생겼다.

399_610_1230
▲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종로구마을장례지원단의 협업 돈의동 결연장례 증서 전달식

 

한겨레두레가 지향하는 장례

시대가 변하고 가족의 형태는 변형되었다. 가족이 붕괴하였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족이란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지도 모를 일이며, 어떤 가족은 폭력적이고, 어떤 가족은 사람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때로 가족제도는 국가가 복지의무를 방임할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이 꼭 정당한지 가족이 꼭 필요한지 알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단위로 역사를 차지한지 오래된 형태임은 분명하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상포계를 서비스한다. 전통한국사회의 두레와 계의 형식을 계속해서 구현하되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상포계이다. 상업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상조 회사는 “상조”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는 상포계가 전통양식에 맞는 말이라 한다. 상포는 상례에 사용되는 천(직물, 삼베)을 서로 추렴하던 계의 형식에서 가져온 말이다.
한겨레두레조합원은 1구좌 (1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고 매달 3만원의 조합비를 낸다. 이 중 24%가 조합운영비로 사용되는데 조합사무국운영비 외에 사회공헌에 이 비용을 상당 지출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직계가족 만에게 상장례 서비스를 국한하지 않고 친구나 지인의 장례도 주관하도록 돕는다. 장사물품의 목록을 보고 필요한 물품만 구입하게 되며 상장례에 사용되는 물품은 조합에서 직거래를 통해 제공한다. 여타 장례식과 상이한 비용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두레는 장례서비스의 혜택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장례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을 꿈꾼다. 집장례가 사라진 세상에서 품앗이 마을장례와 작은 장례를 다음 단계로 추진하고 있다. 품앗이 마을장례는 변화되는 가족형태에 맞춰 마을사람들이 함께 장례를 치르는 일이다. 집장례를 하고 싶은 조합원이 있다면 기꺼이 집장례가 가능하도록 함께 준비한다.
실제로 조합원 중 집장례를 치른 조합원이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긴 시간을 머물렀던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오래전 풍경처럼 동네 사람들이 들여다보며 서로 위로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집장례를 추구하기엔 지금 우리의 삶이 모습이 여의치 않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한겨레두레는 품앗이 마을장례를 제안한다. 마을의 공동체 공간을 이용하여 함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한겨레두레에서 추진하는 “작은 장례”는 품앗이 마을장례와 상포계를 결합한 형태라 볼 수 있다. 마을회관, 공동체 공간에서 장례를 치르고 이 구조를 행정기관과 협조하여 녹색장례로 추진하는 것이다. 일회용품과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 장례식의 형태를 바꾸고 수의를 고집하지 않고 생전 본인이 좋아했던 옷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대규모 장례가 아닌 소규모 장례를 지향하고, 인공장이 아닌 자연장, 산골(散骨: 화장한 유골을 자연에 흩뿌린다는 의미)을 자리 잡고자 한다. 수목장의 형태는 또 다른 상업화를 낳아 현재 전국 도처에 무허가 수목장 난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가 그러하다.
어떤 움직임만 있어도 촘촘히 돈 벌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두뇌를 가진 게 현대인들이다. 틈새시장, 벤치마킹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은 이후 어떤 분야도 물질이 틈타지 못할 곳이 없다. 작은 장례가 자리를 잡게 되고 보편화되면 그 때 또 어떤 산업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이를 지켜나가는 것은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의 가치와 그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조합원들의 굳건한 협동과 신뢰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2015년 말, 돈의동 103번지의 결연장례 주민들과 결연장례 전달식을 가졌다. 종로1,2,3,4가 주민센터의 행정공무원들과 돈의동 사랑의 쉼터 실무자들, 종로구 마을장례지원단의 각 단체와 법률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명륜의 변호사, 돈의동 자원봉사센터와 적십자 병원에서도 참여했다. 결연장례를 맺은 10명의 돈의동 주민들 중 어떤 이는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으로 전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연고가 없는 이들의 마지막 길을 약속해준다니 고맙다.”고 명료하게 말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대의와 사회공헌을 위해 구성원의 희생을 마냥 강조할 수 없다. 조합원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이익을 놓치지 않고 조금씩 추렴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협동조합의 형태라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바로 그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1년간 지켜본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행보는 의미심장했다. 이 사람들이 무언가 작은 바람을 일으켜 언젠가 거대한 물결이 된다면, 세상은 분명 더 따듯해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축복을 기원한다.

 

2016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