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We Were







1973년 시드니 폴락 감독의 The way we were
바브라 스트라이잰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이다. 
멜로영화로 알고 있었던 게 잘못이다. 
이 영화는 멜로가 아니라 정치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매카시즘이 미국을 뒤 흔들던 1950년대.
그들이 다시 만난 시점이다. 
그들이 대학생이었을 때는 스페인 내전이 한참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에 시작되어 39년에 종결되었다. 
조지오웰이 작가로 활동하며 내전에 참가해 “카달로니아 찬가”를 쓴 시대다.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쉽게 말해 운동권이다. 
진보정치의식을 가진 그녀는 늘 바쁘게 살며 생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허블 가드너(로버트 레드포드)는 어찌보면 도련님,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대학생이다. 인생을 즐겨. 라는 모토로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얻는 Americanism의 상징. 글재주가 좋아 교수에게 인정받고 결국 훗날 작가가 되는 인물이다. 
집회를 이끄는 대학생때의 케이티

사랑엔 국경도 없다고 했던가. 
인생관이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며 결혼까지 골인한다. 
두 사람은 30대가 되어 케이티는 내조를 하는 주부가 되고 허블은 헐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 케이티의 정치적 성향도 조금 누그러지는 듯한 시대가 왔을 때 매카시 열풍이 불어닥치고 헐리우드의 10인 사건에 케이티가 결국 개입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사람의 정치관은 두 사람의 세계관이다. 
케이티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허블은 그래봤자 똑같은 인간들이고 누군가 희생타가 되어 감옥에 가고 삶을 잃고 그러다 설령 그들이 다시 복귀해 삶을 살아가더라도 추잡하고 이기적인 권력자로 부활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허블은 세상은 변치 않아 인간은 원래 그런거니까 – 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고 케이티는 우리는 늘 싸워야 하고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립할 수 없는 보수와 진보. 
이 둘은 삶의 영역보다 사상의 영역이 훨씬 더 컸던 조합이다.

케이티는 허블을 만나기 전 생활인이 되기 위해 곱슬머리를 펴고 허블의 요구에 맞춰 정치적 행동도 줄이지만 정치는 그들의 삶에 끼어들고 다시 케이티가 나서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조정하게 되어 있다. 
보수와 아메리카니즘의 아이콘인 허블은 케이티와 헤어지고 좋은 승용차를 타고 TV쇼의 작가가 된다. 케이티는 그 앞에서 반핵운동을 전개중이다. 머리는 펴지 않고 다시 곱슬머리인 채. 그들은 헤어진 대신 그들 본연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을 떠올렸다.
김주원은 허블과 유사한 인물이다.
부잣집 도련님에,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정치나 생활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백화점의 매출, 잘 나가는 인생에 관심이 있을 뿐.
뭐 길라임이 케이티를 반영하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너무 가난해서 정치색채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고 매일 매일 먹고 사느라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시크릿 가든에 대조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갈 길을 인정하고 같이 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허블이 바로 미국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반영한 아이콘적인 인물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90년대 최진실, 이후 장동건, 배용준, 이영애, 심은하 등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의 아이콘 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고심했다.

트윗을 올려 의견을 받아본 바, 현빈, 이외수, 이효리 정도가 물망에 올랐다.
이번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딱 현빈이 분한 김주원 같은 아이들이 투표율 높은 지역에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라면, 이는 매우 난감하다.

80년대의 대표주자는 반항아의 상징, 이덕화(지금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최재성, 최민수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반항의 정서가 있었다. 연예인과 당대 가요는 시대를 반영한다. 7080을 지배한 정서는 반항이었다. 그만큼 정부에서 내리누르는 게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금은 풍족한 자들은 풍족하고 가난한 자들은 내몰리고 풍족한 것이 상징이 되고 뭇사람들에게 동경이 된다. 줄줄이 쏟아지는 신데렐라 드라마와 패륜과 불륜이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와 곱상한 이미지의 이승기나 현빈이 주가를 올리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쌓아올린 부를 지키기 위한 보수층으로 포위되어 부유층이 아닌데도 거기에 멍청하게 끌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삼신할미 랜덤에 걸려 곱게 살아가는 계층이 인기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진보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좀 암담하다.
경쟁하고 떨어뜨리고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게 트렌드가 아니라 정설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왔던 The way we were는, 묘연하게 행방을 감춘 것은 아닐까.

2011.8. 31.

그 바닥에 대해서

1.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보수언론에서 미친듯이 쏟아내고 있다.
9시 메인뉴스에도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역겹다.

부산저축은행 관련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곽노현 교육감의 부도덕성이 더 중요한 정권이다.

부산저축은행엔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
물론 그들은 못된 교육감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니 들 생각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대가성으로 금품을 건넨 게 사실이라면 응분의 처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수사가 끝난 뒤 밝혀질 내용이다.
본인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부끄러움이 없다 했으니 기다리겠다.

법적인 함정에 빠져서 설령 구속이 되고 처벌을 받고 사퇴를 하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당일날 2억원을 선의로 주었다고 밝힌 그 자세를 믿겠다.

오세훈으로 인한 후폭풍을 곽노현으로 덮겠다는 꼼수가 참으로 노골적이다.
박명기 후보자가 7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것과 그의 법무법인이 바른이라는 것도 너무 빤해보인다.

처음 사건이 발표되었을 때,
애초에 정치를 비롯한 모든 선거와 투표에 관련된 그 바닥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바라서 곽노현을 비난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관행일 수도 있고 그게 시대의 반영일 수도 있으므로.

대신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곽노현의 편을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 나는 곽노현을 비난하지 않는 것으로 자세를 잡기로 한다.

2.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에 반대했다.
그를 구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사돈이자, 순복음교회 집사인 강용석에게 그들은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쭉 초지일관 한나라당의 색깔을 명확히 표시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3.

박지원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곽노현 사퇴를 부르짖거나 진보언론이라고 말하는 프레시안에서 조차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진중권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누군가는 교육감 직선제까지 손 보려 할 것이니 꼬투리가 잡힌 이상 어서 사퇴시키고 명확한 진보성향의 대타를 내세워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과 함께 같이 승리하자. 라는 의도일 수도 있다.

물론 김어준의 지적대로 먼저 쫄아서, 혹은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다.
둘다 이해하겠다.

하지만 사퇴는 본인이 직접 하거나 수사결과 자격이 박탈당했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종용하고 싶지 않다. 법이 밝혀주거나 본인이 밝힐 것이다.

4.

일단 오늘은 한나라당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용석 의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고군분투 해주시기 바란다.
두달이 미처 못 남았다.

야권에서는 빨리 제대로 된 후보를 내서 선거전에 돌입했으면 좋겠다.
지금 곽노현을 물고 있을 때가 아니다.

5.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은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깊게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 정권이다.
그래서 많이 배웠고 많이 읽었다.

가카의 꼼꼼한 배려와 국민교육에 대한 애정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2011. 8. 31.

눈물에 대하여

술취해 들어온 남편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곧 잠들 그의 안경을 벗겨준다.

그가 말한다.
나는, 절대로 울지 않을꺼야.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꺼야.
지금부터 굳게 맹세할꺼야.
나는 절대로,
눈물.
단 한방울도.
흘리지 않을꺼야.

그의 말을 들으며
입을 열지 않고 말한다.

나는 울꺼야.
눈물이 강이 되도록 울꺼야.
내 몸안에 모든 물기를 다 짜내도록 울꺼야.

내 눈물로 강을 만들어 황천가는 배를 띄울꺼야.
슬렁슬렁 노 저어 훠이 훠이 웃으며 가시도록.
나는 내 눈물로 강을 이뤄 배를 띄울꺼야.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다지 참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가 헤아린다.
한낮의 정원에서 급작스레 슬픔이 탑이 무너지듯 내 몸위로 쏟아진다.
부디 고통이 적길,
부디 신음하지 않길.

나는 지금 연옥에 있다.
당신의 손을 꼬옥 잡고.

2011. 8. 30.

귀족주의와 트라우마

임재범이 나가수에서 재기에 성공하고 그만이 가진 카리스마로 호랑이처럼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을 볼 때, 
임재범이라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인기를 얻고 원한다면 영웅도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걸 발견했다. 
한국사회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을 나는 세 가지로 보는데 

1. 재능이 출중하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변명이 가능한 치명적인 인격적 결함이 있을 것
2. 출생의 비밀을 비롯한 각종 파란만장의 인생 굴곡사가 있을 것
3. 태생이 천박하지 않을 것이다. 
임재범은 위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한 때 파란을 일으켜 요즘은 조연급으로 하락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그러나 여전히 존재감이 대단하고 골수팬(나는 그를 믿어)이 있는 최민수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 문제의 가장 핵심은 3번. 태생이 천박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있는 집 자식이라는 이미지, 부모가 뭐뭐 출신이다더라. 하는 이미지는 이 사회의 뿌리깊은 귀족주의를 반영한다. 

최근 복지 문제가 대두되면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보수들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복지를 화두로 내세운 진보세력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듯 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민란을 거쳤고 가까운 과거에 동학혁명이나, 이차대전 이후 공산주의가 유입되면서 625 전쟁을 거쳐 빨간 완장을 찬 청년들이 지주새끼들을 모조리 몰살하자. 했다는 얘기들을 종합해볼 때, 우리의 보수세력들은 가난한 자들이 일어났을 시에 자신의 생명과 가족 (삼족을 멸하리라에 상등한), 재산 모두를 위협받거나 박탈당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개뿔도 없는 고졸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극심한 알레르기는 
내 윗사람은 당연히 나보다 “우수하고”가 아니라 나보다 “잘 사는 집안 출신이며”, 나보다 “많이 배웠으며”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신분의 우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찌보면 심하게 긍정적이고 자기 극복적이라서 (파란많은 역사의 항쟁과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거친 세대들이 갖는 “근거없는 자신감”의 일부겠지만)너의 능력따위는 내가 감히 도전할 수 있지만 너의 집안이나 너의 혈통이나 너의 20대 초반에 완성된 학벌따위, (물론 우월한 유전자로 인한 미려한 외모도 가끔 포함된다)는 내가 도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지배세력이 되려면 일반인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특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너랑 똑같은 태생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라는 결과에 대해 
니가 뭔데 나랑 똑같은 주제에 내 위에 앉아있는거야!!? 라는 반응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타블로가 타진요에 의해서 겁나게 까일 적에 
타블로가 조금만 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면 저렇게 까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갈 기럭지와 전신성형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우월한 유전자 조합에 대해서 
납작 엎드리는 것이 우리가 연예인을 대하는 자세인 듯. 
(김현희도 그래서 용서한거냐? )

노무현의 최대 치적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됬다는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능력있었고 감성적으로 대중의 인기에 부합했으나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자가 아니다. 

그는 죽고 사라졌지만 그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저 사람 저렇게 우리가 변호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저 사람도 노무현처럼 삶을 마감하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 하는 걱정. 
그래서 그 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봉화마을의 그를 떠올리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곽노현을 감싸려고 하고 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며 통곡을 한 들 무엇하겠는가. 

진보세력들의 큰 문제는 “유도리”라고 하는 지나친 관용인데,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이 수꼴들은 그렇다 쳐도 (걔들은 재산을 위해 뭐든지 한다 : 보수와 수꼴은 다릅니다) 진보까지 그래버리면 안그래도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잔존하는 이 나라에서 힘을 얻기 힘들다. 

선거나 투표때마다 노란풍선 좀 그만 들고 나오고 (상징적으로) 노무현 밟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마라. 
진보가 보수층을 끌어안을 방법은 지못미 노무현을 외치며 눈물로 호소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너희들에게 이만큼 몫이 떨어지도록 하겠다는 그들을 파악한 전략과, 이성적인 정책, 그리고 교활하고 영악한 작전이 필요하다. 

보수들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소를 아파트단지 안으로 끌어들인다. 
진보들은 뭐하고 있나?

(진보가 진보인 거 같지도 않고 그저 야권이라고 하고 싶기도 하다만 일단 불편하니 진보라 쓰고)
진보니, 온건이니, 그저 야당이니, 노동이니 등등의 규합되지 않은 세력다툼과 맨날 단일화 후보 결정하다가 결국 피박 뒤집어쓰고 줄줄이 달려 들어가는 게 무슨 레파토리인가?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짜라. 

잘난아비 둔 덕에 좋은 혜택받고 자라 좋은 교육을 받은 자식은 결코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디딤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국민앞에서 분노하고 읍소하는 거 걷어치우고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짜란 말이다. 
노무현을 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도 암담하다. 

지못미라는 이유로, 김대중보다 노무현을 더 살뜰히 챙기는(?) 행태도 사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적으로 그가 저승에서나마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만 징징대고 그만 매달리란 말이다.
2011. 8. 30. 

+곽노현 교육감 건에 대해선 상당히 유감이고 검찰수사발표의 시기적절성에 대해선 항간에 떠도는 얘기에 모두 동의. 
그러나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하고 싶진 않음. 
단지 이성을 잃고 비합리적인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