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2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겪게 된다는 뜻이다.

이따봐용맘미. 라고 카톡을 보내는 딸아이의 수줍은 미소는 왜 이리도 처연한가.

하루 종일 술독에 절궈져 초저녁부터 코를 고는 사내 앞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아이의 허벅지가 튼튼하다.

늙은 개와 손바닥만한 아파트단지를 두 바퀴 돌았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도 울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었구나.

하늘에 초승달이 날을 세운 채 반짝인다.
이 가슴에 와서 꽂힐 것처럼. 누구를 노려보는지.

2014. 12. 28.

초승달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콧수염 사내가 말했지. 요즘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내가 참 그립네.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 온다는 말은 참담하다. 수많은 비극을 겪어야만 한다는 건지.

“칭얼칭얼”을 하지 못해 그 자리에 “씨발씨발”을
넣는 어른들이 있네. 익숙했던 풍경은 수십년이 지나도 그대로 반복되고, 우물속에 빠진 두레박에 어린 계집애 둘이 떨고 있는 그림이 되네.

달님 달님
우리를 살리시려면 튼튼한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달님은 귓구녕이 막혔는지 대꾸가 없네. 손톱이 파이도록 기어 올라온 우물가에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는 호랑이 한 마리.

떡 하나 줄께 잡아먹지 말렴. 제발. 너도. 고양이가 되는 건 어떻겠니. 누군가를 잡아먹는 건 너무 고달픈 일 아니겠니.

2014. 12. 28.

굿나잇

1.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노는 대부분 추측에서 벌어진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뻔할 때, 그 역시 내 생각이다.
그에게 묻지 않았다. 맞냐고. 내가 보기엔 거짓말 같은데 맞냐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다보면 모순을 찾을 수 없다. 대신 평정을 유지하며 관찰해야 한다.

추측은 추측을 낳고 눈덩이가 되어 원망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대부분의 이런 분노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떤 것을 빼앗길까봐 빼앗기기 전에 두려워하다가 두려움은 인정하기 싫은 자아가 분노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겁이 나는 게 아니고, 이 분노는 정당한 나의 권리야!

분노가 정당한 권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작점이 추측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추측은 또 다른 추측을 낳고 오해는 눈덩이처럼 커져가니까.

추측과 두려움이 분노가 될 때 해야 할 일은 당사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다.
분노를 표현하지 말고, 화가 나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 문제가 당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니 나의 불안한 감정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야겠다.

2.

삶이 어떤 전환점을 돌아갈 때 삶은 생명과 에너지를 가진 것이라 관성의 법칙을 가져서 쉽게 전환하지 못한다. 게다가 살아온 세월이 이미 30년이 넘었다면 관성은 습관이 되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에밀 시오랑이 말하길,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데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잊는 것이라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때로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원래 그랬으니까. 라는 말은 재난사고에만 따라붙는 말이 아니다.
한 생명의 삶에도 분명히 적용된다.

3.

가진 것을 내려놓으면 내려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순간부터 다른 것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그물에서 벗어나는 순간 공기는 상큼할 것이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다시 시큼털털하게 느껴지리라.

계속해서 나는 새로운 아침이라고 우길 필요가 있다. 이 골목의 어귀를 돌아나가면 낯선 것들이, 또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 고향의 냄새가 가슴 깊이 찰랑인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4.

허무맹랑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성인이 된 지 꽤 오래되었다면 모든 일들은 당연한 귀결이다. 단지 내 생명의 관성과 탄성이 어느 정도였는지가 다를 뿐이다.

오늘도 그리하여
굿나잇.

배신의 계절, 비움의 시간

배신의 계절 2014

한 해에 몰아오니 오히려 다행이다.
내년에는 더 심한 일과 더 많은 횟수가 몰려와도 조금 더 덤덤할 수 있을거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공백을 굳이 채워넣을 필요도 없다.

사막을 걷는 여행자의 유일한 희망이 두 다리뿐이라면, 지금 이 연옥을 걷는 나의 유일한 희망은 모든 파도를 바라볼 수 있는 나 자신과 그 옆에 앉아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 아들이다.

비우는 시간 마흔의 가을.
어울리지 않는 악세서리를 떼어내면 맨얼굴로 더 환하게 웃으리라.

2014. 9. 21. 새벽

풍선이 뒹구는 밤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가까운 곳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부터 한 동네에서 살던 녀석들과 겨울밤 거의 매일 모여 삼치구이에 소주를 마시던 생각을 한다. 꼭 삼치를 시켜달라 하고 꼬닥꼬닥 졸던 녀석이 있다. 집에 가서 자라고 욕지거리를 해도 있다 갈꺼라 했다. 그 때 우리는 서른을 몇 년 남겨두고 있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았으나 늘 취해서 헤어지곤 했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만나면 퇴행현상을 보인다. 우리는 늘 별 일 없이 만나서 별 일 없이 헤어졌다. 퇴근길에 집 앞에 와서 나와. 라고 말하면 그냥 나가던 시절이다.

비오는 저녁 운전은 해야 하는데 아이는 전화를 해서 끊지 않는다. 나와, 하면 나가던 시절에서 무려 14년 정도가 지난 저녁이 되니 차를 돌려 동네 친구에게 간다. 동네 친구와 남의 영업집에서 삼치를 구워 소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내일을 생각해서 동네 친구의 까페에서 히비스커스차를 마신다.

내일따위 없던 시절에서 아주 멀리 돌아왔다. 그 먼 길을 돌아돌아 다시 동네친구를 만나게 되는 비오는 밤, 길거리에 풍선이 굴러다녔다. 흰색과 연분홍색 고운 풍선 네 개가 하나로 묶여 있다. 어느 아이가 잃어버렸을지, 아니면 행사장에서 굴러온 것인지, 누가 힘겹게 얼굴이 벌개지도록 불어댄 풍선인지 기계로 한 방에 부풀린 풍선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왠지 저 풍선엔 누군가의 숨이 담겨 있어 차로 치이면 안될 것만 같다. 우회전으로 들어오는 차도 풍선이 신경쓰이는지 속도를 낮췄다. 풍선을 불면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던 때를 굽이굽이 돌아오면 풍선을 부는 게 노동이 되는 세월이 기다린다. 그래도 마음속엔 풍선을 함부로 터트리면 안된다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누군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풍선이 빗속에 굴러다닌다. 누군가의 숨결이 잦아드는 그 밤에도 그랬겠다.

2014. 9. 2.

복수를 잊는 파도

평생을 복수와 증오심으로 살던 사람이 있었다.
그 증오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30여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원망하고 이제 그만 증오하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해 온 핏줄이었다. 그 사람이 복수심을 멈추는 날은 그의 생명도 끝날 것이 자명했다. 그 사람의 뇌가 멈추든, 심장이 멈추든,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멈출 것이었다.

사람이 복수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이다지도 사소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며칠을 보냈다.
야구방망이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는 어느 잘생긴 가수의 이야기도 떠올렸다. 갑자기 그 모든 분노의 에너지가 다시 다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시켰는데 바리스타가 내 주문을 잊었다. 나는 한 참을 기다려 너무도 힘겹게 그에게 내 커피를 달라고 말했고 커피를 받아 매장 밖으로 나오면서 울었다. 지하철역에서는 공원을 지나는 두 여고생에게 아무 이유없이 칼을 휘두른 남자의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푸치노를 손에 들고 눈물을 감추던 나는 조용히 뇌까렸다. “이해해. 왜 그랬는지 나는 알아.” 코를 풀면서 말이다.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거기까지 가게 되는 과정 중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책임지는 일은 우주를 떠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그 말들을 한다. 책임지겠다. 라고.

나는 진심으로 신의를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왜곡된 내 결함의 반영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상대방이 쥐똥만큼 악의를 가지고 내 선의를 이용해 먹었다는 걸 알게 된 먼 훗날, 그 누구도 보름달이 뜬 밤에 부싯돌을 꺼내놓고 칼을 갈 수 있다.
파도소리만 가득하던 깜깜한 어느 바닷가가 매섭게 그립다.
부싯돌을 꺼내놓고 칼을 갈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일 밤 아름다운 파도가 치면 좋겠다.

2014. 9. 3.

저녁

새벽녘 두어 번 뒤척였다고 휴대폰 어플이 알려준다. 내가 잘 잤는지, 잘 못 잤는지, 그런 것도 기계에게 묻고 사는 한심한 삶.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씹다버린 사과모양의 전자제품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인지 사과가 나인지, 이미 그 경계는 허물어 진 것 같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말을 찾아 헤맨다. 쓰리고 아린 상처를 적확하게 표현해 줄 단 한 줄의 문장을 찾아 긴 터널을 쑤석거려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어스름은 삽시간에 사위를 덮고 아이들이 내 새끼를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 아이도 돌아오지 않는 저녁. 늙은 개 한 마리는 네 다리를 곧게 뻗고 편안하게 자기 시작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고 말하는 것과, 아프다고? 씨발 나도 좆나 아프다고! 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빨을 드러낸 작은 개새끼는 커다랗고 하얀 아름다운 진돗개를 보고 주제넘게 짖고 있다. 빈 식탁은 굴러다니는 몇 가지의 펜만 싸안고 아무 것도 잉태하지 못하는 버려진 땅처럼 울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분다. 고통의 무게는 가늠하지 않는 것이며 비교하는 일은 절대 불가한 것이라고 남들 앞에서 쉽게 말해도 머리통을 짓누르는 이 두통의 무게는 펜잘이나 게보린 수백 알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세상천지 아무도 남지 않은 그 느낌을 알고 싶어서 사막에 서보는 자가 있고,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통을 일치시키기 위해 손목에 커터칼로 글씨를 쓰는 아이가 있다. 사랑, 이라고. 말해 본 적 없는 사연 때문에 가짜 자아를 만들어 자신을 둘로 나누는 청년이 있고 세상은 모두 내 편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며 계속해서 돈을 꾸고 도망가는 여자가 있다. 글줄께나 쓴다는 그 어떤 문인도 헤아리지 못하는 각자의 마음들이 어느 집 밥상위에서 작두를 탄다. 피칠갑을 하고 갯벌을 기어가던 어느 미친년이 했던 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갈꺼여 갈꺼여.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내 지문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 저 작은 전자기계 속으로 들어가 휘적거리며 다녀야 할까. 말라비틀어진 씨앗은 어디서 열리는 것인지 기계에다 대고 말을 하면 저 년이 알려줄까.

2014. 9. 1.

저녁

새벽녘 두어 번 뒤척였다고 휴대폰 어플이 알려준다. 내가 잘 잤는지, 잘 못 잤는지, 그런 것도 기계에게 묻고 사는 한심한 삶.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씹다버린 사과모양의 전자제품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인지 사과가 나인지, 이미 그 경계는 허물어 진 것 같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말을 찾아 헤맨다. 쓰리고 아린 상처를 적확하게 표현해 줄 단 한 줄의 문장을 찾아 긴 터널을 쑤석거려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어스름은 삽시간에 사위를 덮고 아이들이 내 새끼를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 아이도 돌아오지 않는 저녁. 늙은 개 한 마리는 네 다리를 곧게 뻗고 편안하게 자기 시작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고 말하는 것과, 아프다고? 씨발 나도 좆나 아프다고! 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빨을 드러낸 작은 개새끼는 커다랗고 하얀 아름다운 진돗개를 보고 주제넘게 짖고 있다. 빈 식탁은 굴러다니는 몇 가지의 펜만 싸안고 아무 것도 잉태하지 못하는 버려진 땅처럼 울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분다. 고통의 무게는 가늠하지 않는 것이며 비교하는 일은 절대 불가한 것이라고 남들 앞에서 쉽게 말해도 머리통을 짓누르는 이 두통의 무게는 펜잘이나 게보린 수백 알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세상천지 아무도 남지 않은 그 느낌을 알고 싶어서 사막에 서보는 자가 있고,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통을 일치시키기 위해 손목에 커터칼로 글씨를 쓰는 아이가 있다. 사랑, 이라고. 말해 본 적 없는 사연 때문에 가짜 자아를 만들어 자신을 둘로 나누는 청년이 있고 세상은 모두 내 편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며 계속해서 돈을 꾸고 도망가는 여자가 있다. 글줄께나 쓴다는 그 어떤 문인도 헤아리지 못하는 각자의 마음들이 어느 집 밥상위에서 작두를 탄다. 피칠갑을 하고 갯벌을 기어가던 어느 미친년이 했던 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갈꺼여 갈꺼여.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내 지문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 저 작은 전자기계 속으로 들어가 휘적거리며 다녀야 할까. 말라비틀어진 씨앗은 어디서 열리는 것인지 기계에다 대고 말을 하면 저 년이 알려줄까.

2014. 9. 1.

응급실의 치유

애가 코 골고 잘 자길래 영화나 하나 볼까 하고 마루에 앉아 있었더니 보채는 소리가 들려 방으로 다시 가봤다. 귀가 아프다고 아기처럼 울며 보채는데 애 얼굴이 귀까지 붉고 약간 부어 올랐다. 일으켜 세워 뿌우 다시 해보라 하니 물만 찾고 뿌우 하면 귀가 더 아프다한다. 어지럽다고도 하고 양쪽 귀를 잡아당겼을 때 한 쪽에만 극심한 통증이 오는지 자지러지게 울었다. 열은 38도 정도 되는 거 같고 (이제 체온계 없어도 칼 같이 맞춤. 오차범위 +_0.5) 오한이 나는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춥다고 하길래 아무래도 급성중이염이 의심되는데 응급실 가는 게 꺼려져서 가만히 보다가 이부프로펜이 있어서 7mg정도를 먹였다.

거나하게 대취하신 애 아범이 귀가하시고 애가 꺼이꺼이 울자 응급실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 30kg짜리 들처업고 병원 가자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한다.
붉으죽죽 달아오른 아이 옷을 입히고 외투를 목까지 잠궈준 다음 대취한 아버님까지 싣고 응급실에 갔다.
참 오랜만에 온다.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익숙한 침대, 낯익은 병원로비의 어둑함. 아이는 병원에 오니 갑자기 신이 났는지 조잘대기 시작한다.
소아과의사가 보고 급성중이염 소견을 내리고 이비인후과 올라가서 다시 검사하기로 한다. 이비인후과 외래에 올라가서 의사가 어떻게 어지럽냐고 아이에게 물으니 뱅글뱅글 도는 건 아니고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이에요. 라고 말한다. 작은 카메라가 달린 기구로 제 귀를 들여다보니 아이는 신이 났다.
으 귀지 으아 귀지 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한 쪽 귀에 씨벌겋게 점막이 부풀어 오르고 핏방울이 맺힌 채 고막옆에 작은 수포도 생겼다. 아이는 고막을 보고 눈알이다 눈알! 이라고 외쳤다.
귀의 감기같은 거죠. 라고 말하는 의사가 뒤통수만 보이다 고개를 돌리는데 코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대는 축농증이 심해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는뇨’ 묻고 싶었다.

차트를 들고 응급실로 내려가는데 뭔가 소란스럽다. 엄마가 너 응급실 데려오고 싶지 않았는데. 밤에 응급실 오면 교통사고 환자도 있고 무서운 일이 있거든. 이라고 말하며 코너를 도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휠체어에서 누군가 일어나려 하고 119 구급대원과 보호자 남녀 2명이 휠체어에 앉은 남자를 우격다짐으로 주저 앉히는데 결국 벌떡 일어나서 욕설을 하며 뛰쳐나가려 했다. 얼굴이 벌건 것이 거기도 대취한 분이었다. 젊은 남자는 힘으로 자기를 제지하는 모든 팔들을 무너뜨리려 애를 썼고 그 와중에 구급대원이 얼굴을 맞았다. 만취한 채 뭔가 분노가 가득한데 머리가 노란 여자만 열심히 남자를 뜯어 말리고 있다.
우리집에서 온 대취한 아버님은 대기의자에 앉아 애 잠바를 끌어안고 숙면중이다.

처방전을 받고 서 있는데 기분이 좋아진 아이가 술취해서 난동피는 남자를 보며 히죽히죽 웃다가 제 아빠를 깨워서 저것 좀 보라 한다. 이내 남자를 구급대원과 보호자가 대기의자에 쓰러뜨렸는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예환아 이리 나와!”
하는 동시에 아 토해요. 하는 여자의 목소리 우웩 우웩 하는 소리, 내 옆에 서 있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만취해 난동부리는 것을 왜 구급대원이 책임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진료비와 약값은 79,000원이 넘게 나왔고 나는 눈만 꿈뻑거리는 남편의 가방에서 지갑을 빼서 결제를 했다. 현금영수증 처리는 남편 번호로 해주는 아량도 베풀었다. 어젯밤의 아리랑치기는 알고보니 마누라.

우웩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귀는 여전히 아프다는 데 엄마 아빠 손잡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병원에 와서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아들과 그 아비를 데리고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은 비어 있고, 이제 이런 시린 밤, 이 병원 응급실에 대한 기억도 새로 써나가는 거다. 인체탐험한다고 즐거워 하는 아이와 함께.

2014.1.14.

일기쓰기

나의 담임선생님은 환갑쯤 된 남자 선생님이셨다. 이름은 곽동희. 서글서글한 눈매와 진한 눈썹, 그리고 대머리, 인상이 참 좋았다. 1학년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앞에 놓고 율동도 하고 손유희도 해야되는데 학부형들이 와서 구경하면 얼마나 쑥쓰러워 하셨는지 얼굴이 빨개지셨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엄마는 늙은 영감이 1학년 선생을 할려니 죽을 맛이겠다며 혼자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한글읽기를 다 떼고 학교에 들어갔다. 교과서를 받은 건 예비소집일이었는데 날씨가 무척 추웠고, 우리 엄마는 예의 그렇듯이 가죽코트에 가죽장갑을 끼고 나타나 선생님들 옆에 서서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나눠주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자기가 제일 많이 배운 사람이고, 니네 선생들보다 엄마가 더 많이 배운 사람이고, 엄마도 예전엔 고등학교 대학교 선생님을 했기 때문에 한 수 가르쳐 주려고 그랬다고 했다. 그건 우리 집에서 매우 정당화된 일상이었다. 엄마는 세상의 모든 선생들보다 한 수 위라는 것. 한 수 위인 엄마 아래서 자식은 당연히 월등해야 했다. 나는 교과서를 받아 온 날부터 국어책을 읽어 내려갔고 입학식 때쯤엔 통째로 외워버렸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에 우리 태극기로 시작되는 국어책은 그 때 “바른 생활”이라고 적혀 있었다. 숫자가 마구 적힌 것은 “슬기로운 생활”이고 음표와 그림이 있는 것은 “즐거운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이름들은 꽤 괜찮다.

즐거운 생활은 7살 때부터 간간히 다닌 피아노학원에서 배운 것을 생각하며 악보를 보고 멜로디언으로 불어보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봤지만, 슬기로운 생활은 덮어놓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 바른생활을 다 외운 나는 동네에 천재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글자가 몇 개나 됐겠는가. 읽을거리는 다 떨어졌고 새로운 판형의 책이 신기했을 뿐이다.

 

서글서글한 대머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매일 네 바닥씩 바른 생활 써오기를 시켰는데 나는 한창 동네 아이들과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는 재미에 흠뻑 빠진 때라 이 숙제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오자마자 가방에서 바로 공책을 꺼내 네 바닥을 휘리릭 쓰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딱지치기로 온 동네를 휩쓸자 엄마는 사내놈처럼 그게 뭐냐고 동네 창피하다고 야단이었다. 조만간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실 건데 할머니는 많이 배운 분이라 네가 그러고 다니면 엄마를 욕할 거라고 했다. 나는 딱지치기를 자중하고, 대신 이상한 말을 만들어 씨부리고 다녔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에게 이게 영어라며 거짓말을 해댔다. 그 동네는 가운데 큰 길이 있고 그 길을 가로질러 냇물이 흘렀다. 네 바닥의 쓰기 숙제는 부모들에게 공책이 빨리 닳아 불만이었다. 어떤 부모들은 선생님께 항의도 하지만 이 숙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담임선생님이 강조하셨다. 그 동네의 부모들은 멀리 고개 넘어 우유공장에 다니거나 우리 집과 큰 길을 사이에 둔 건넛마을의 소가죽 공장에 다녔다. 논은 몇 마지기 안됬고 다들 밭농사나 조금 일구고 살거나 우리 주인집처럼 돼지를 길러 내다팔거나 젖소를 키워 우유공장에 납품을 했다.

 

많이 배운 엄마는 공책이나 책값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했고, 엄마만큼 많이 배운 할머니는 매일 모로 누워 AFKN을 보다가 동네 노인대학에 가서 기묘한 율동을 배워야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글씨를 쓰고 문장을 만들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주었다. 나는 집에 있던 스물 네 권짜리 위인전은 이미 독파한 상태라 그 중에 세종대왕을 골라 독후감을 썼다. 200자 원고지 다섯 장의 독후감을 받아든 담임선생님은 감격하여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양반은 나에게 장래 노벨문학상감이 나의 제자가 되었다며 격양된 목소리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마 그 때쯤이었을 거다. 일기쓰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그림을 전공한 엄마의 자식으로서, 집안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림일기를 그렸다. 나는 매일 매일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단 하루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썼다. 그리고 어느 샌가 나는 일기를 쓰면서 훗날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 일기가 증거가 될 것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일기를 썼다. 최불암의 “수사반장”을 열심히 봤던 탓이 아닐까 싶다. 일기는 나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해 줄 것이라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그림이 없는 일기를 썼다. 그림이 없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겐 자꾸 억울한 일이 생겼다. 울면서 일기를 쓰기도 했고 일부러 눈물을 일기장에 떨구기도 했다. 정확하게 조준해서 목표한 글자에 떨어뜨려 여울지게도 했다.

 

5학년 때까지의 일기장은 서른 번이 넘는 이사도중 아마 스무 번째 이사쯤에서 잃어버렸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 썼던 일기는 짝사랑에 너무 괴로워 3학년 때 학교 난로에 넣고 불태워 버렸다. 그 다음부터의 일기는, 고스란히 지금 내 방 장롱에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다이어리를 쓰면서 촘촘하게 작은 글씨로 별의 별 이야기를 다 썼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테이블에 전화기가 놓인 창 넓은 커피집에 앉아 눈썹을 그리느라 두 시간이나 걸리는 친구년을 기다리며 일기를 썼다. 나는 그 때 작가처럼 개똥폼을 잡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이어리를 펼치고 5만 원짜리 파이롯트 만년필로 담배를 벅벅 피워가며 커피집에 앉아 맹물 같은 콜롬비아를 마시며 한 두 시간씩 뭔가를 써 제꼈다. 완성된 글은 없었고 그저 주절거림이었다. 생각나는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계속해서 써댔다. 당시 종각역에 파이롯트 대리점이 있었고 나는 간간히 그 대리점에 들러 역시나 개똥폼을 잡으며 만년필 구경을 했다. 워터맨이나 몽블랑 같은 만년필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내 한 달 월급보다 훨씬 비싼 것들도 많았지만 3만원이나 5만원짜리 만년필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때로 드문드문 썼다. 매일 매일 쓰지 않는 날도 많았고, 가계부로 대신한 적도 있다. 억울한 일이 적어져서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기를 쓰는 대신 술로 뇌를 씻는 일이 더 많아서였다. 외로울 때는 일기의 양이 많아졌다. 하룻저녁에 예닐곱장을 쓰는 일도 많았다. 결혼 후 아이를 가졌을 때 미치도록 닭살스러운 육아일기를 쓰다가 실패했다. 신혼 때 우리는 복층으로 된 월세집에 살았다. 2층은 작업실과 내 서재로 사용했는데 어느 날 낮잠을 퍼질러지게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이 2층에서 씩 웃으며 내려왔다.

“내가 너의 일기를 모두 읽었다! ” 라고 호기롭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 때 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일기는 스물 서너살부터 쓴 일기장이었는데 무려 7여년의 일기를 모조리 읽었다는 것이다. 거기는 옛날 남자친구의 글씨도 있고 그가 써준 메모도 붙여놨었는데 이 남자의 몰지각한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의 관심이려니 생각하고 인권침해라 여기지 않았다. 때로, 누군가 이 일기를 봐줬으면 하고 쓸 때도 있었다. 일부러 남편 눈에 띄는 곳에 일기장을 놓아두기도 했다. 그와 갈등이 심할 때 내 일기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이 일기를 봐주기를 바라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삶을 다시 살고 있다.

 

매년 한 권 이상의 일기장은 남았다. 지금은 스프링노트를 쓰기도 하고 큰 맘 먹고 몰스킨을 사기도 하고 단행본 크기만 한 노트에 매일 한 장이상의 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이 늦었으면, “너무 졸린 관계로 이만” 이라고도 적는다. 나의 기록은 다이어리에, SNS에, 회사 업무일지에 남는다. 나에게 일기는 하루의 기록이 아니라, 일기장을 펼쳤을 때의 생각과 감정뿐이라 때로 어떤 기록도 없다. 누군가 고은시인의 일기장 얘기를 했었다. 고은의 일기가 출판되어 나왔는데 이 양반은 대취를 한 날에도 대취했다고 일기를 쓰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졸린 날은 몰라도, 술을 누구랑 누구랑 마셨는데 누가 뭔소리를 했고, 이런 거는 적을 수가 없다. 쓰러져 자야되니까. 라기 보다, 귀찮으니까.

 

일기를 쓰는 일은 그저 하루에 하나씩 돌탑을 쌓는 기분이다. 누군가 와서 한 번에 허물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냥 하는거다. 일기를 다시 성실하게 쓰고 나서부터 잠을 잘 잔다. 내 머릿속엔 매일 매일 어떤 요란스러운 새가 날아와 이상하고 기괴한 집을 짓고 가기 때문에, 일기에다가 오늘 이 요란한 새가 지은 집에 대해서 대충이라도 털어놓고 자면, 머리가 무겁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구구절절한 일기에 대한 글을 쓰고도, 나를 증명할 어떤 알리바이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일기를 쓰고 잘 것이다.

 2013.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