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도 안양과천교육지원청과 함께 하는 “찾아가는 넘나들기 시민교육” 학교 신청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팬데믹에도 불구하고 344개학급이 신청하였으며, 그 중 다섯 개 학교가 2+4 프로젝트를 신청해, 시민단체가 2회 4차시 수업을 진행하고 담당교사가 1회 2차시를 진행하는 연계활동을 시범적으로 시작합니다. 인권, 노동인권, 공정무역에 관한 수업을 준비하게되었습니다.
이룸의 올해 출강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권 – 90여개 학급
공정무역과 사회적경제 – 80여개 학급
평화감수성과 평화통일 – 80여개 학급
다양성, 젠더 – 60여개 학급
미디어 – 30여개
노동인권 – 10여개로 여섯 개 팀이 2021년 1년에 걸쳐 안양과 과천 지역의 초중고등학교에 출강합니다.
2015년 총 120만원 예산으로 12개 학급 출강했던 이룸의 민주시민교육이 6년차를 맞아 37배 성장했습니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의 꾸준하고 든든한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2020년부터는 안양시청과 과천시청에서도 일부 예산을 추가반영해주어 더 많은 학생들이 민주시민교육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올 한해 이룸은 총 1만여명의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안양과 과천에서는 인생의 한 시기, 지역의 활동가들과 민주시민교육을 고민한 적 있다는 것이 이룸에게 큰 보람이 됩니다. 시민의 힘으로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강사팀에게도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비롯해 일반시민대상의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공동체는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박은호: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를 설치했죠. 민주시민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이 운영위원회로 참여하고 있어요. 작년 하반기부터 관련 예산이 잡혔기 때문에 올해 주변에서 민주시민교육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거예요.
센터에서 올해 예정했던 사업 중에는 교육 사업도 있고 공론화 사업도 있었어요. 공론화 사업은 앞으로 경기도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자는 의도로 진행한 거예요. 10월 말에 갑자기 공모사업으로 나왔는데, 내용을 잘 몰라서 교육공모사업인 줄 알고 지원한 경우가 태반이라고 하더라고요.
안양군포의왕 지역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작년에 출범했다는 건 알고 계시죠? 기념사업회에서는 공모사업과 상관없이 지역에서 어떻게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왔는지, 어떤 관점으로 그 교육을 바라봐야 할지 한 번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올 하반기에 교육 결과를 모으는 작업을 하다가 공모사업을 알게 됐고, 선정이 된 거예요.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의 내용을 보니 생태, 환경 교육이 가장 많았어요. 하지만 그 분야의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제외했고요. 그 외의 교육 내용은 1.인권 2.노동 3.평화통일 4.갈등해결 분야였어요.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을 네다섯 분 모시고 두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 해서 오늘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전부터 시작해서 네 그룹의 FGI를 이번주에 진행하고요. 다음 주 토요일, 12월 15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FGI에 참여하신 분들이 모여서 각 분야의 내용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의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서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하는 주제를 놓고 워크숍을 할 예정이에요.
본격적으로 FGI를 시작해 볼 텐데, 사전에 보내 드린 질문지에 가급적 맞추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전문적인 활동가 분들을 모셨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1번 질문입니다. 소속된 기관이나 단체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셨는지, 교육을 진행했다면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직, 내용, 정책 어떤 면의 성과든 좋습니다. 지역협력사업을 하셨다면 그 부분을 포함해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안승영: 저희는 노숙인 쉼터를 제공하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데, 사회복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할 여지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다만 1년에 두 차례 정도의 인권교육은 의무이고요. 저희 프로그램 중에서는 인문학 강좌가 민주시민교육에 가까운 활동이 되겠습니다. 이용자 분들의 자존감, 사회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성과가 있습니다.
김지수: 저희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이 주 업무고요. 2014년부터 민주시민교육을 매년 지속적으로 해 왔는데, 중학교 같은 경우에는 사회 교과와 연계해서 진행해요. 저희가 5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5회 정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10월에 마을잔치로 마무리하거든요. 마을잔치는 실질적으로 민주시민이 되어 보는 실천 활동에 해당하고, 친구들이 계획한 대로 실행해요. 이후 활동은 담임선생님과 진행하게 되죠.
청소년을 지도하시는 분들에 대한 교육도 진행해요.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의무적으로 인권교육을 해야 하거든요. 센터에 직접 가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청소년 쉼터 지도자들과 쉼터에 상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공무원, 교사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김인순: 안양여성의전화는 여성 인권 단체이기 때문에 인권에 대해 전반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관련한 교육을 해 왔어요. 2015년부터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고요.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만드는 데에도 참여했습니다.
저희는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활용해서 교육을 해요. 참여식 교육이다 보니 처음에는 강사도 아이들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색했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말을 더 잘하게 되고 즐거워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모둠별 경쟁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는데, 그런 방법이 의견을 끌어내는 데 효과가 있는 강사분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김유철: YMCA에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째는 민주시민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고요, 둘째는 민주시민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조직 내에 내면화하는 작업입니다.
인프라 구축 사업이라고 하면 저희가 초창기에 강사 양성을 많이 진행했어요. Y 회원들이 다양한 학습공동체를 만들었고, 그 활동이 자연스럽게 교육 활동으로 이어지더라고요. 평화, 행태, 인권 등 다양한 분야의 강사 양성 교육을 진행했어요. 교육을 받은 분들이 실제로 학생들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에 나서고 있어요. Y 밖에서도 주도적으로 관련 분야의 활동을 해 나가고 계시니 이 점을 성과로 들 수 있겠고요.
가치 내면화 측면에서는 저희가 진행하는 교육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 나가는 것을 중요시하고요. Y 자체도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인 가치를 내면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죠. 대표적인 예로 벼리학교를 들 수 있겠는데, 이곳의 의사결정구조는 직접민주제예요. 매달 총회를 통해 모든 의사결정을 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꾸준히 이 방식을 이어 가고 있고요. Y의 의사결정구조도 직접민주제에 해당하는 전체 회의로 전환 중입니다. 이사회라는 대의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이에요.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민주적인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장을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미애: 군포여성민우회는 여성단체이기 때문에, 여성 인권 부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해 왔어요.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바꾸거나 성폭력 문화를 근절하고자 했고요. 민주시민교육에 가까운 것이라면 여성주의 강좌를 단계별로 진행한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성폭력 전문상담원 양성 교육도 실시 중인데, 100시간 정도로 이루어진 교육이에요. 학교 등 관내의 다양한 곳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의할 수 있는 분들을 양성해요. 강사분들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거나 학부모 등 성인을 교육하시게 됩니다.
아동과 여성이 안전한 마을만들기 사업도 하고 있어요. 지역마다 아동안전지킴이집이 있죠. 학교 앞 상가나 아파트 관리소 등이 해당되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여성폭력 예방 교육을 해요. 학교에서 안전한 마을지도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여성평화걷기’라고 해서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미군기지촌 문제를 논의하는 활동도 진행 중이에요.
교육의 성과라면 시민들이 인권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사회 이슈와 관련한 캠페인을 벌인 결과라고 봐요. 올해에는 낙태죄 폐지 문제에 집중했거든요.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 생존권, 건강권에 관련한 문제죠. 60~70대 할머니들을 뵙고 말씀을 들으면 예전에는 낙태죄 때문에 아이를 숨어서 낳았다고 하세요. 국가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토로하시거든요.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미투 정국을 거치면서 확대되었다고 봅니다.
박은호: ‘인권 분야 민주시민교육’, ‘노동 분야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요.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 방식이 인권 교육에 녹아들어가는 게 맞다고 보는 견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자리를 만든 건 인권 분야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지만, 이 전제에 부정적이시라면 나머지 논의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간략하게 말씀을 듣고 싶고요.
두 번째 질문은 인권 분야의 민주시민교육이 우리 사회에, 현장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것입니다.
김인순: 분야별로 나누어 교육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대로의 토대를 잡아 줘야 하는데, 토대를 잡기 위해 주제를 선정하려면 결국 분야별 논의를 해야 하거든요.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인권 분야만 놓고 보면 인권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을 듣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의 의견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의식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거예요. 분야별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의식 변화라는 목표를 더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민주주의는 누구나 바라는 사회 체제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강압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도 민주주의와 연결된다고 보고요. 그런 맥락에서 교육의 방식도 주입식 강의보다는 민주적인 토론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김지수: 저는 조금 관점이 다른데요. 분야를 나누기보다는 통합적인 교육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인권 교육을 한 지 10~20년 정도가 되었는데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잖아요. 의식만 높아지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우리의 교육 방식을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실질적으로 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변화되어야 하는지, 어떤 실천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민주시민’이라는 표현에도 조금 의문이 들어요. ‘시민’과 ‘민주시민’은 다른 존재일까요? 사회적으로 의식 있고 집회에 나가는 등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만 민주시민일까요? 불필요한 구분이 아닐까 싶어요.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도록 지원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봐요.
4년 전부터 매년 청소년들과 토론회를 열어요. 50명, 100명의 청소년들과 테이블 토론회를 하거든요. 이번에 아이들에게 어떤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지 물어봤어요.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아이들은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활동을 어떻게 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각 분야를 실질적으로 통합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교육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인공지능이 점점 발달한다는데, 이런 시대에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결국 자기를 믿는 힘인 것 같아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시민교육에서 배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미애: 질문의 의미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죠?
박은호: 분야별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개념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요. 독일에서는 나치 같은 극우적 정치 행태가 다시 나타나는 걸 방지하자는 목적으로 연령대를 막론하고 민주시민교육을 해요. 국가에서 재원과 시간을 들이죠. 정당에서 재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요. 이 재단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의사소통과 갈등해결이에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분야를 따로 나누지 않거든요. 1990년대 후반에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려 한 사람들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하는 건 평생교육에 해당한다는 거죠. 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 질문이었고요.
본 질문은 인권 교육,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박미애: 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민주시민교육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촛불항쟁에서 승리했을 때처럼,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제도를 이용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면 주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은 없었을 것 같아요.
전범국가인 일본과 독일을 비교해 보면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잘 알 수 있어요. 일본에는 그런 교육이 부재하고, 국제적으로 철면피 같은 태도를 취하는 중이죠. 독일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민주시민교육을 받으니 국민 의식이 변화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도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인 사과를 하고 있고 국민들이 세계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군포여성민우회에 있기 때문에 여성 인권 측면을 살펴보면, 여성들이 아직도 본인의 인권과 주권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잘 몰라요.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문화 안에서 비주체적으로 살았기 때문이죠. 제도적인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비롯해 차별받고 있는 계층이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하고. 이들이 주권을 찾는 것은 중요한 문제예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에요.
국민들이 촛불항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헌법 1조에 대한 신뢰라고 봐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잖아요. 참여에 따른 변화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사회를 바꿀 수 있었던 거죠. 그동안은 주어진 체제 안에서 순응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스스로 체제를 만들고 제안하고 참여한다는 주권자적 사고를 갖춘 시민들이 활동하는 시대예요. 그러한 사고를 함양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안승영: 민주시민교육의 세부 항목들도 의미가 있죠. 하지만 기초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 될 거예요. 또 다른 권력화가 이루어질 위험도 있고요. 기본적인 인권 문제가 총론 역할을 하고, 그 이후에 세부적인 인권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개인의 행복과 지역공동체의 행복이 우리 사회의 공동 목표이기 때문이죠.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권지향적인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고시원 실태조사를 해 보니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안양에만 2천 명이 넘는다고 해요. 여기서 사는 사람들의 우울증 지수가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우울증 지수보다 높대요. 유명 일간지 기자가 종로 고시원에서 보름인지 한 달인지 살아 보고 기사를 썼는데, 며칠 지나니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 문제가 주변에 팽배해요.
노숙인과 관련한 예산을 요구하면 시청이든 종교단체든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숙인 자활사업의 평가 기준은 ‘노숙인들의 수입이 얼마인가.’, ‘집을 얻어 독립을 했는가.’ 같은 것들이에요. 정량적인 얘기들이죠. 경제성을 우선하는 가치관이 문제예요.
노숙인의 행복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분들이 행복한 사회여야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가치관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해야 몸에 녹아들 수 있겠죠. 내면적인 부분을 읽어 내고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인권을 소중히하는 토대가 마련되고 문화가 확립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권을 떠드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생활 속에서 인권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교육을 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김유철: 민주시민교육은 삶의 전반적인 작동 원리를 다루는 것이라서 사실 분야를 나눌 수는 없을 거예요. 오늘만 해도 특정 분야에 대한 얘기를 하려니 할 수 있는 얘기가 적죠. 하지만 우리가 현재 위치한 수준이나 단계를 생각하면 분야별 접근도 필요해 보여요. 현실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유용할 것 같고요.
인권 교육이 왜 필요한가 하는 질문은 답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요즘 뉴스를 보면 일상의 폭력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층간소음 문제만으로도 폭력이 일어나고, 소수자에 대한 폭력도 자주 일어나요. 굉장히 신경질적인 사회라는 얘기도 나오죠. 약간의 불편도 참지 못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문화가 팽배해지는 상황이에요. 걱정이 많이 돼요.
나의 권리뿐 아니라 상대의 존엄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죠.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할 것 같아요. 굳이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관계 회복을 위해 인권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은호: 세 번째, 네 번째 질문에 함께 대답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을 평가해 보고요. 시민들이 원하는 민주시민교육의 방식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교육이 계속 이루어지는데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발현되지 않는 문제도 함께 짚어 봐야 할 것 같아요.
김지수: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대상화된 교육이 많아요. 이 나이대에는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는 식이죠. 직접 현장에 가 보면 연령에 따라 교육 내용이 대단히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교육을 하면 의식이 개혁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어요.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지식만 전달되는 것이 문제인 거죠.
지난 9월, 10월에 청소년들과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어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정치 교육을 꼽는 아이들이 많았고요. 더 많은 아이들이 얘기한 건 토론식 수업이었어요. 공론화 기회를 달라는 거예요. 다양한 생각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서로의 경험을 얘기하다 보면 본인들이 문제를 찾을 수 있고, 나아가서 더 나은 정책을 제안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토론식 수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론회에서 말을 잘 하는 아이들은 미리 연습해온 듯이 달달 외운 것처럼 얘기해요. 학교에서는 토론대회도 아주 많이 하거든요. 토론으로 경쟁을 붙이는데 사실 토론은 경쟁을 하기 위해서 여는 것이 아니잖아요. 서로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고 내가 아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기회죠. 토론식 수업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진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얘기도 해요. 알고 있는 가치를 직접 실천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고 싶은 활동이 있어도 지원하는 기관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아이들이 배운 바를 실천할 수 있는 지역 기관을 만드는 것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시민 의식을 키우려면 실천보다 나은 방법은 없죠.
교육보다는 문화가 문제예요. 폭력적인 문화 안에 있으면 내가 폭력적이어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지금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토론을 통해 본인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박미애: 민주시민교육의 기초는 존중과 배려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유치원에 가서 양성평등 교육을 할 때마다 부정적인 용어를 배제하자는 얘기를 해요. 예를 들어 한 친구가 “장난감 만져 봐도 돼?”라고 했을 때 “안 돼!”라고 하면 “어, 치사하게?”라는 반응이 돌아오거든요. 안 된다고 하면 기다렸다가 다시 물어보고, 그때 허락을 받는다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하자고 얘기해요. 일단 존중하자는 거죠. 서로를 배려하고요. 내가 중요하면 남도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 방식에 있어서는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고 봐요. 민우회 활동 중에도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회원 참여율이 썩 높지 않아요.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대상화된 교육이 문제가 아닐까 싶거든요. 교육 받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원하는지 논의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교육을 토론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스스로 아젠다를 만들고 지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향이 되겠죠.
김유철: 학교에서 토론회를 많이 여는데, 가 보면 말 잘하는 선수들만 나와요. 나머지 아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거죠. 잘한다는 아이들도 머리만 커지는 셈이고, 그 외의 아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작년에 전국 Y 차원에서 대통령을 뽑는 청소년 모의 투표를 실시했거든요. 스스로 대통령을 뽑는 활동을 통해서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걸 목격했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건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생활과 연결된 부분에서 직접 참여 가능한 장이 필요한 거죠.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민주시민교육의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민자치박람회장에 가 보니 안양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에서는 주민자치회를 열어서 총회를 하더라고요. 온라인을 통해서 다수가 참여하기를 독려하고 있었어요. 형식만 흉내내는 곳들도 있지만, 동네의 작은 사안도 총회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1년에 한 번 동 단위 주민총회축제도 열던데, 이것이 시민이 바라는 민주시민교육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공간에 갇히지 말고 틀을 깰 필요가 있어요. 이런 활동을 하고 나면 결과를 적극적으로 피드백해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안승영: 일반 시민들은 인권이 뭔지 잘 모르잖아요. 실제적인 민주사회,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려면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가 되어야겠죠. 교육 내용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고, 중요한 건 방식인 것 같아요. 갇힌 공간이 아닌 광장에서 지역주민들이 널리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해요. 교육 내용이 실천되어야 하니까요.
김인순: 강사에게 의존하는 교육 형태는 지양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강사들은 학교에 들어가서 강의를 진행하는데, 매번 학생들과 교사의 피드백을 받고 그 내용을 반영해서 교육 내용을 만들지만 결국은 일회성 교육이 이루어져요. 학교 교육과 잘 연계되지 않거든요. 교사들이 저희가 진행하는 교육의 맥락을 알고 있는지, 교사에 대한 시민교육도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교육의 효과를 높이려면 교사들도 시민교육 분야에서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 할 것 같아요.
토론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요. 일부 말 잘하는 아이만 부각되고 지나가 버리기 쉽거든요. 다양한 방식을 학교와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 측에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김지수: 학교의 시스템이 민주적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학생들이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학생회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고 학운위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방법도 있겠죠.
어떤 교육 방식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해 보면, 자기 언어로 이야기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이 정의한 인권에 대해 외우기보다는 자기 언어로 말해야 체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죠.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방식은 지양해야 할 거예요. 토론을 할수록 자기 언어가 살아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 이 부분을 장려하는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봐요.
박은호: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의 공모사업이 다 미달이었어요. 지원자가 넘쳐서 자른 적이 없어요. 사업이 알려지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사업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추정돼요. 서울의 공모사업도 규모가 크지 않고, 요즘은 세 명 이상이 모인 학습모임을 지원하는 시스템 등으로 전환 중이에요. 달리 말하자면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호응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개선책이 있을까요?
안승영: 지금까지의 민주시민교육은 학교 중심적이었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성인 대상으로 저변을 확대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어른이 변해야 아이들도 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옛날에는 반상회가 있었잖아요. 지금도 마을 단위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이걸 더 활성화해서 실질적으로 인권감수성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박미애: 군포시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운영하잖아요. 주민이 예산을 직접 살펴보고 시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지 확인하는 건데, 민우회에서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몇 년째 맡아서 진행하고 있거든요. 제도 운영이 너무나 형식적이라는 점이 문제예요. 주민들이 시에 제안서를 내 봤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걸 학습해 버려요.
주민이 행동하면 관에서 피드백을 해 줘야죠. 현실화된 성공 사례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요. 실제로는 주민이 제외되잖아요. 구체적인 성과를 주민이 직접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김지수: 왜 매번 공모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까요? 이건 시민들을 행정가로 만드는 처사예요. 사람들이 페이퍼 작성에만 매달려요. 공무를 대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특정한 기준을 세워서 그 기준에 부합하고 결격사유가 없다면 어떤 일이든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어요.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실질 예산을 확정하고, 그 예산을 주민참여 예산으로 배정하는 형태도 가능하겠죠.
‘민주시민’이라는 용어에도 문제가 있어요. ‘난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느낌을 주니까요. 따로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죠. ‘교육’이라는 표현에도 한계가 있는데, 청소년까지만 해당하는 표현이라는 뉘앙스가 있어요. 교육을 벗어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봐요.
민주시민교육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국가에서 시스템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당 교육을 진행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준다거나, 기업 연수 프로그램 안에 의무적으로 집어넣는 거죠. 한두 시간 정도를 확보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외에는 어른들을 참여시킬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김유철: ‘교육’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기존 교육의 틀에 갇혀요.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어렵고, 기존 방식에 맞추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죠. 이념지향성이 있는 편향적인 용어가 아닌가 싶어요. ‘교육’ 대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만한 대안적인 용어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고요. 교육이라는 용어의 근본에 접근해 봤으면 좋겠어요.
방식에 있어서는 내용을 분야별로 나누더라도 가정, 동네 등 대상별로 중요한 분야를 별도로 강조했으면 하고요. 인권 분야에는 나의 해방을 통해 타인을 해방한다는 철학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이 철학이 왜곡되어 있어요. 청소년들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예로 들 수 있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수: 인권 교육이 차별과 권리 중심 교육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요. 인권 침해는 실정법 관련 문제이고, 인권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담론이잖아요. 그 담론에 접근하지 못하고 인권이 실정법적 권리라고밖에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슴 아파요. 시급한 문제 때문에 핵심을 놓치고 있는 거예요.
김인순: 우리가 촛불시위를 할 때 아이들을 데려간 건 단순히 구경하라는 의도가 아니었잖아요. 이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죠. 민주주의를 체험해 보라는 뜻이었어요. 현안에 눈뜨고, 비판도 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장에 데려간 것이거든요. 민주주의에 접근하려면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경험이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 민주정치에 있어서는 정당의 역할도 중요한데, 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공무원인 교사는 아이들에게 정당에 대해 가르치죠. 모순 아닌가요? 수영장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수영을 가르치는 꼴이에요. 이런 사회에서 과연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할 수 있을까요?
‘너희는 수혜자고 우리는 가르친다.’라는 관계 설정도 이상해요. 교육 내용은 인권과 민주시민에 대한 것인데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못하잖아요.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박은호: 독일 북부에 하노버라는 주가 있어요. 이 주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년에 1주일 유급휴가를 쓸 수 있어요. 여럿이 함께 휴가를 내서 우리 동네든 나라든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면, 주 정부에서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요. 주 정부가 지역 기업들과 MOU를 맺었거든요. 요즘 정부에서 기업을 많이 지원해 주잖아요. 하노버 주 식의 연계도 가능할 것 같아요.
시흥시의 김윤식 전 시장은 청년정책참여단을 운영했어요. 시에서 청년정책연구원을 뽑아서, 이들 제안을 청년 사업에 반영한 사례가 있죠. 민선 협치위원회도 거버넌스를 만드는 참여 방식이고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해 왔는데 함께 논의하거나 협의하는 자리가 없었죠. 다음 질문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5번 질문은 각 영역에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들이 다른 교육들이나 지역사회와 어떠한 협력 관계를 가졌으면 하는지에 대한 것이고요. 6번 질문은 기초 지자체가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어떠한 지원과 협력을 해 줬으면 하는지를 여쭙는 것입니다. 7번 질문은 민간조직 간 협력의 틀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김유철: 5번 질문의 내용이 조금 애매한 것 같네요.
박은호: 이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고민이에요. 기본적인 문제 의식은, 서로가 대화나 관계 없이 분절적으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어떤 강사의 강의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 2주 후에 같은 강사를 다른 곳에서 또 불러요. 올해도 그런 일이 있었죠. 교육을 준비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몇 가지 주제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협력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작업이 필요한지 여쭤 보는 것입니다.
김유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개념과 목표를 단체마다 서로 다르게 정리하고 있어요. 크게 보면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힘을 키우는 것, 다름에 대한 공감 능력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에 대한 해석이 다르니 분절될 수밖에 없겠죠.
결국 로드맵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아요. 각 영역을 포괄하는 교육 내용이 필요해요. 생태 교육을 예로 들면, 생태적 감수성을 함양하는 교육을 하지만 반생태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태도를 거르고 목표로 수렴할 수 있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승영: 지역사회 강좌 홍수예요. 제목만 보기도 바빠요. 일원화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한 곳에 정보가 체계적으로 모여 있어서 그곳을 보면 필요한 강좌를 찾아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박미애: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로 민주시민교육의 분화가 이루어졌어요. 민우회도 그때 만들어졌고요. 독재 타도를 이룬 뒤에는 각 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운동체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이제는 그 운동체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을 때가 온 것 같아요. 사회가 달라진 거죠.
최근에 군포시민단체협의회에서 논의를 했어요. 내년에 행사를 열면,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일들은 같이하자고요. 시민 협의의 날을 만들어도 좋겠죠. 비슷한 행사들의 장소를 묶거나 특정 행사를 함께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말이 나온 김에 지난 11월에 열린 평화통일 강좌를 시민협 전체가 참여하는 강좌로 만들어 보자고 해서 열었거든요. 결국은 각 단체 대표님들만 오셨어요.
피로감이 쌓인 것 같아요. 대상화된 강좌라는 점이 문제였나 싶기도 하고요. 젊은 층은 오프라인 모임을 선호하지 않는 듯하기도 해요.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만 함께하겠다는 흐름이 있잖아요. 앞으로 운동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네트워크는 필요할 것 같은데 각자 소속된 단체의 일을 하기에도 바빠서 현실적으로 실현이 잘 되지 않아요. 이 부분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인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 만들어 보자는 의지는 다들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유기적인 상호 보완의 의미에서 유용하죠. 그런데 실제로 네트워크에 참여해 보면 필요해 의해 엮여 있다는 느낌이 강해요. 공동 추진이나 공유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어요.
김유철: 네트워크는 필요해요. 지금까지 여러 번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공통의 목표보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더 많았죠. 여러 단체가 모이면 대표성 문제가 불거져요. 각 단체의 자기우선주의가 팽배하고요. 복합적인 문제가 생겨서 잘 운영된 곳이 거의 없어요. 몇몇 개인이 별도의 단체를 새로 조직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나름의 성과라고 할 수는 있겠죠.
안양에서는 교육을 기반으로 해서 ‘이룸’이라는 네트워크를 조직했어요. 다양한 마을교육공동체들이 모여서 준비해 봤는데, 돈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이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고, 공모사업이 많아지니 묻지마식 네트워크도 많았거든요. 바람직한 형태라고 볼 수는 없죠.
목표가 너무 거창해도 운영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구체적이고 작은 사안을 놓고 자기 역할을 명확히 가져간 상태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소기의 성과를 내고 해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조직한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된 상태에서 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박미애: 안양에 네트워크가 있었나요?
김유철: 지역교육 분야에 특화된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목표는 지역교육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었고요. 민주시민교육 교과서가 존재하지만, 그 교육을 해야 할 시간에 정작 선생님들은 자습을 시켜요. 교육청과 연계해서 지역 강사가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요.
이룸은 해체해도 될 것 같은데 어렵더라고요. 각 단체나 개인의 이익이 상충되는 지점이 생겨요. 네트워크에는 실무단이 존재하잖아요. 예산도 필요하고 이 부분을 맡아서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이 사람과 단체의 의견이 충돌하는 거예요. 어디에나 있는 문제죠. 이 부분이 잘 해결되지 않아요. 그 과정에서 개인 활동가가 네트워크를 나와 다른 단체를 만들고 기존 단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일이 꽤 있거든요. 아픈 과정이겠지만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미애: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봤어요. 책 내용이 좋던데, 왜 학교 교육에서 정식 교과로 채택하지 않나요?
김인순: 교과서를 구입한 학교도 있고 PDF로 내용만 공유하는 학교도 있어요. 의무적으로 시간을 배정해 달라고 요구 중인데 현재는 선택사항이에요.
박은호: 활동가들이 모여서 새 단체를 조직하자는 논의를 하셨나요?
김유철: 발전적 해체를 하자는 얘기는 했어요. 강사들을 중심으로 독립하면 어떨까 했는데 진척은 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단체 입장에서는 애써 육성한 인력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니까요. 손해라고 보는 거예요.
김인순: 아이러니예요. 강사와 담당자가 이렇게 분리된다는 것이.
김유철: 어차피 강사분들은 손에 잡히지 않거든요. 어디서든 활동하시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될 거라면 건강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하시는 편이 낫다고 봐요.
박은호: 예전 시민사회에서는 1년에 1~2회 정책협의회를 열었어요. 보통 연말연초에 모여서 활동한 내용과 계획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을 함께 잡아 보자는 모임이었거든요. 활동은 각자 하되 공동 과제를 설정하는 거죠. 그런 협의체는 어떨까요?
안승영: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분산되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활동을 공유하고, 일정 조율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박미애: 성공사례든 실패사례든 기존의 사례가 있다면 공유하면 어떨까 싶어요. 제가 보기에는 현재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는 없거든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염려되는 점은 피로감이 쌓이는 문제예요. 확산 가능성도 미지수고요.
안승영: 단체 대표들만 참석하는 네트워크에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저변 확대를 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해요. 시민단체뿐 아니라 지역단체들과도 연계해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부분을 찾아 봐야 해요.
박은호: 시의 행정과 정책에 대한 의견도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미애: 시의 각종 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행정기관과 시민 사이의 가교가 위원회인데 지금으로써는 형식적인 수준이에요. 조례도 그렇고요. 위원회가 꾸려졌다는 것은 민관협치를 하겠다는 의도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원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정기관도 자신을 주체로 두어야 하는데, 현재는 관성적인 지원자 역할에 그치는 면이 있거든요. 현재의 정책을 형식적으로 진행하지만 않아도 민주시민교육의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어요.
김인순: 경기도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교육들이 있어요. 양성평등, 가정폭력·성폭력 예방교육 같은 것들이에요. 기금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하는데, 최소 교육 대상자의 수는 정해져 있지만 최대 명수에는 제한이 없어요. 그리고 교육을 잘 했는지 여부를 교육 대상자의 숫자로 따지거든요. 심한 경우에는 전교생 700명을 대상으로 한 사람이 강의하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최대 명수 제한이 필요해요.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를 구매할 비용이 없는지 PDF 파일로 교과서 내용을 보는 곳에서도 수업하기가 어려워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교육청의 의지가 어떤 수준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에요.
김유철: 기본적으로는 행정 혁신이 이루어져야겠죠. 획기적으로 권한을 이양해서 지역사회가 민주주의의 장으로 꽃피도록 설계해야 해요. 위원회는 많지만 얼마나 가동되고 있고 얼마나 많은 권한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주민 참여가 가능한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조례가 추상적이고 애매하다는 점도 문제예요. 중복된 것들도 있거든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히 정립하면 좋겠어요. 목표를 포함한 로드맵을 시 차원에서 그려야겠죠. 새로운 지원 조직을 만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싶지만 총괄 조직 정도는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학교 지원교육은 강사를 파견하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학교도 시민단체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시민단체가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강사들은 학교가 폐쇄적이고 자신들을 파트너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인식하거든요. 교육이 교실에 갇혀 있어서 그렇다고 봐요. 학교는 안전 딜레마에 빠져서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시민교육은 다양한 공간과 사람을 만나야만 제대로 진행될 수 있어요. 교육청이 책임을 지고 학교 교육에 대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미애: 지금 이 FGI는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 문제를 고민한 끝에 열게 된 건가요? 아니면 현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목적인가요?
박은호: 후자에 더 기울어져 있다고 봅니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민주시민교육 전문 단체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거든요. 지역에서 수 년 동안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했는데 그동한 평가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니 이 참에 한 번 이야기를 모아 보자는 거죠.
안승영: 경기도 평생교육원에는 민주시민교육 관련 부서가 없나요?
김유철: 없습니다.
안승영: 그곳에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 주면 좋을 텐데요.
김인순: 의무교육 안으로 들어가야 평생교육원에서도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요?
안승영: 아직 의무교육이 아니라도,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관련 업무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박은호: 민주시민교육 관련 조례는 구식이어서, 앞으로 개정이 될 거예요. 올해 기초조사를 마치고 내년에 기본교육계획을 수립할 예정이에요.
민주시민교육이 의무교육화된다면 민주시민교육원이나 지원센터가 별도로 생겨야 할 거예요. ‘원’은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긴 하지만요. 도 차원에서 직접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겠지만 각 지자체 단위로 계획을 받아서 시행하는 방법을 취할 가능성이 크죠. 그대로 두면 평생학습센터 같은 곳에 통으로 넘어가서 실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위험이 있어요.
지원센터는 기초단위에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주민자치운동을 지원하는 포괄적인 시민활동 지원센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울의 MPO센터와 광주의 MGO센터가 이 형태에 가장 가까운 곳들이죠. 시민들의 비경제적 활동을 지원하는 종합센터예요. 시가 직접 개입하거나 하위 조직으로 다루지 않도록 처음부터 세팅을 잘 해 둬야겠죠. 아직 그 지점까지 가지 못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15일에 열릴 워크숍에서 더 자세한 얘기 나누시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후배들을 만났다. 후배 한 명은 우울증이 온 것이 아닌가 고심하고 있었고, 다른 한 후배는 그런 정신적 괴리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에게는 대화를 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의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못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장소를 옮기면서 후배와 함께 잰 걸음으로 호텔의 상가에 들어갔다. 그 호텔의 상가는 남대문 시장의 수입상가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므로, 적당한 가격에 아이에게 어울리는 장난감을 사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핸드백과 스카프, 빅사이즈 옷과 셔츠나 넥타이를 파는 점포를 지나 나는 장난감 가게 앞에 도달했다. 환호성을 지른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멋진 자동차를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도 있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중장비 자동차도 있었지만, 내가 고른 것은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 적당한, 성인 남자의 엄지 손가락만큼 작은 자동차 6대가 한 개의 비닐지갑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 약국에서 산 어린이용 비타민제에 끼워져 있는 자동차와 동일한 제품 같아 보였다. 아이는 자동차가 맘에 들었는지 제 손에 들고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잃어버릴까 봐 – 라고 말하며 자동차를 쉽사리 꺼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비닐 지갑 속으로 자동차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분주한 식당에서 속사포 같은 이야기들을 쏟아 내며 자꾸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드문드문 대화를 빠르게 이어갔다. 후배와 식사를 마침과 동시에 우리는 대화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아이는 제 손에 자동차를 들고서 쫄랑 쫄랑 나를 따라 걸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자동차들을 제 아빠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슝- 하고 나가는 자동차가 신기했던지 한 참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그 많은 미니카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지 책장 사이에 쑤셔 박아 나름대로 숨겨 놓기도 했다.
장난감을 산 지 이틀이 지난 날, 나는 아이와 자동차를 함께 가지고 놀았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전적으로 아이가 같이 놀자고 매달렸기 때문이었는데, 몇 개의 자동차는 이미 더러 고장이 나 버려서 뒤로 당겼다가 놓아도 앞으로 가지 않았고, 몇 개의 자동차들은 회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나는 자동차들을 들어 올려 꼼꼼히 살펴 보았다. 작은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고 어떻게 조립을 했을까 싶을 만큼 작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자동차의 아래쪽엔 MADE IN CHINA 라는 글씨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화학물질 냄새를 맡아 가며 이 자동차를 조립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삐뚤게 붙여진 자동차들의 스티커들을 보다가 손톱보다 작은 스티커를 사람 손으로 붙였을 거라고 확신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왔다.
누군가 이 자동차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집으로 돈을 부쳤으리라, 누군가 그 냄새에 코가 마비되어 피를 토했을 지도 모르겠다. 인권유린의 사각지대라는 말 따위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 것을 만들었으리라.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도 우리 돈으로 3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좋다고 신명 나게 웃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오래 전 나는 사탕을 먹을 때마다 신경숙의 소설을 생각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짝꿍의 엄지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뒤틀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이 그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짝꿍은 나는 사탕공장에서 일하는 데 하루에 몇 백 개씩 사탕을 리본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뒤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조용히 손을 내려놓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리본 모양으로 묶여진 사탕을 먹을 때마다,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에 달콤함이 저만치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자동차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차가워진다. 누군가 생산을 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빠르게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 그 어떤 단상도 할 수 없는 삶이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과연 나는 그들이 만든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자들의 인권을 위해 내가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인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쳐들어 왔다. 나는 자동차를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이걸 봐봐. 이걸 만든 사람들을 생각해봐. 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고질병은 고칠 수 없는 것일 게다. 즐거움 속에 숨겨진 인생의 비애를 포착해 내는 기질은 사춘기시절 감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수반된 것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런 삶에 버거워 하고 있다. 왜 나는 좀 더 단순하게 살 수 없는가, 그저 이건 MADE IN CHINA 니까 벌써 고장이 나버렸잖아. 하고 넘겨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과연 양심의 소리인 것인가, 아니면 한동안 생업의 현장에서 밥벌이를 했던 나의 비애가 가져다 주는 자기 연민의 확대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아프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주는 기쁨도 있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그들이 행복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아이와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뒤로 힘껏 당겼다가 손을 놓는다. 자동차는 급회전을 하면서 저 멀리에 가서 부딪히곤 했다.
위에 링크한 기사 6개는 모두 이번 나경원 의원의 장애아동 알몸목욕에 대한 기사와 그에 부연되는 설명들이다. 상위에 링크한 기사는 비교적 객관적이라 링크했고 4번에 건 오마이뉴스 기사는 지난 번 대선 때 정동영후보가 동일한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지난 기사다.
사람들은 빨리 잊는다. 지난 대선 때 반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고 싶었으나 정동영후보측의 여러가지 행보가 맘에 들지 않아 마음을 접은 적이 있다. 그 사유중에 하나가 아마 나도 잊었던 위의 사유도 작용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맹비난을 퍼부었고 현재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변명 외에 다른 입장표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 포스팅을 작성하기로 결심한 사유는 바로 아래 사진 때문이다. 촬영현장은 바로 이와 같았고 미리 세트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위 기사의 내용대로 나경원측은 가브리엘의 집 측에서 미리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가브리엘의 집 측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어떤 동일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익숙해진다. 마치 쓰레기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면 후각이 마비되어 금방 불쾌감을 잊듯이, 사람에겐 망각이라는 특별한 도구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늘 두들겨 맞는 사람은 그 환경이 학습된다. 전문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 칭한다. 늘 무시당하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은 원래부터 이래왔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늘 보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습된 무기력은 전염된다. 저 인생은 원래 저런 인생이니까. 그래도 전화위복이라, 새옹지마라 믿고 뭐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아마, 장애아동의 엄마이기도 한 나경원의원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학재벌의 딸로, 엘리트 코스를 거쳐, 판사를 한 아리따운 미모의 여성이, 장애아동을 낳았을 때, 그래 이것도 전화위복, 하늘이 주신 삶의 체험이라고 값지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잘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도” 있다.
긍정의 함정은 여기에 있다. 자 나에게 닥친 이 난관을 “기회로 만.들.자” 라고 하는 사고방식. 기회로 밟고 올라가는 순간 위험해진다. 전화위복을 활용하려는 물적대상으로 봤을 때 함정에 빠진다.
한국장애인부모회후원회의 공동대표이기까지 한 나경원후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판에 뛰어드니 그 무게를 활용하라는 사람들의 전도에 고무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건 너에게 힘든 일이지만, 이게 너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그녀를 꼬드겼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파우스트는 나약한 인간이라 죄가 있고 메피스토텔레스가 사악한 사탄이라 더욱 나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악한 유혹에 휘리릭 넘어간 파우스트는 비록 많은 것을 가졌으며 엄청난 지식을 지녔더라도, 신념이 없었다. 늘 갈등하고 우유부단하고 욕망에 시달렸던 파우스트는 덥석. 메피스토텔레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와 쌍둥이 같은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 둘의 조화는 그저 가면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이다.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느냐, 가면을 쓰고 나쁜 짓을 뒤에서 몰래 하느냐의 문제. 저질러 놓고 그래놓고 몰랐어요. 내가 죽일 놈이야 나는 왜 이럴까. 해봤자 이미 결과는 벌어진 것인데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 철저하지 못해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은 말하지 않고 누군가 나를 꼬드겨서, 긍정이 나를 꼬드겨서, 내가 잘못 생각을 해서, 순간 실수를 해서. 라고. 나는 인간이니까요. 라고 역설하는 셈이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감성을 지녔으나, 가장 숭고할 수도 있는 개체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살지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라고. 말하며 웃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무뎌진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은 고금의 진리다.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아주 돌덩이 같아진다. 그리고 그 면이 점점 반질반질해지기 시작한다. 양심따위는 미끄러져 사라진다. 모두들 아큐가 되어 정신승리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노신을 몰라도 상관없고 아큐정전을 읽고 아큐의 정신승리법에 대한 비평을 전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건 자생적으로 아무리 학식이 짧고 지적능력이 떨어져도 거둘 수 있는 매우 쉬운 논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망가져간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영화화되고, 공유와 정유미의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 소설이 사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실제 주인공들이 살아있으며 처벌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도 못한 아이들을 유린한 극악무도한 교직원은 6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징역형을 산 건 2명뿐입니다.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나머지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와 피해자 부모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일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_KBS 뉴스보도 멘트일부
자 이런 식이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아직 우리는 체감하지 못했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으나 언제 입법화 될 지 모른다. 아동성범죄의 공소시효는 분명히 폐지되어야 하는데, 저항력이 없는 아이들이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당한 일을 그 때 당시엔 사실 그게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게 성폭행이었고 그게 성추행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인이 되어, 심지어 부모가 되어, 나 이제, 그 때 그게 성폭행/성추행이었다는 걸 알았어. 라고 고백하는 얘기들을 간간히 듣는다.
그런데, 아동성범죄를 역겹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 나라에선 버젓이 미성년자들이 나를 유혹해봐, 혹은 너를 유혹해줄께 라는 뜻의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든다. 동안이세요. 라는 말에 담긴 젊음에 대한 갈망은 단순히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순수한 의미로 들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변형된 롤리타 신드롬이 조금씩 반영되는 것은 아닌가. 왜 원조교제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는가, 언제부터 사람을 영계라는 호칭으로 싸잡아 부르게 되었는가, 왜 이나라 사람들은 젊은 것에 대해 갈망하는가. 아니 그게 비단 이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문제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특별히 이 나라는 매우 인간관계가 권력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나이를 중시하고 혈연,지연,학연이 중심이 되며 어디를 가든 리더, 즉 대가리와 어른이 존재해야 한다. 예의를 지키고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율법을 기초로 삼는 국민정서상, 너 몇살이야? 라는 얘기가 싸움판에 빠지지 않는 나라. 그리하여, 오빠. 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남자들과 오빠. 라고 불러주면 좋아한다는 걸 다 알고 있는 여자들. 환갑이 되도 듣고 싶은 단어는 “오빠” 라는 것은 남성연장자와 여성연하자의 연애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통념이 되어 있는 나라, 그래서 선풍적 인기를 끈 아이유의 노래 가사 중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에 수많은 남자들이 맥없이 부질없이 쓰러지고 마는 나라.
그래 나이 어린 여자는, 귀엽고 예쁘고 젊고 상큼하기도 하지만 일단 나이로 밀어부쳐 고분고분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환타지가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적지 않게 시작되고 있으나, 사실 까놓고 “어허..어린게 오빠한테 까불어?” 이런 문장 하나로 상대방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정서가 이 나라엔 숨어 있지 않나? 물론 요즘에야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친새끼” 라는 반발과 함께 정강이를 까일 수도 있는 현실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판타지적으로 그런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이가 권력이 되는 나라에서 연하의 여성은 매우 이상적인 연애의 대상이며 이에 발전해 성욕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선 비일비재하게 정서적 결함과 뇌질환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무수한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평생을 지옥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무에 못질을 하고 못을 빼낸다고 그 구멍이 메꿔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린 아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빤스 밑으로 10cm 정도밖에 안되는 치마를 끌어내리며 가는 걸 보면 심란하다. 본인도 신경이 쓰이는 길이, 무엇이 저 아이에게 저 치마를 입게 만들었나. 무엇이 저 아이에게 치마를 줄이게 했나. 치마가 길면 바보취급 받는 이 나라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어른들이 소위 예능이라고 말하는 오락프로에 나와 궁둥이를 흔들며 현란한 춤을 추는 어린 여자들을 보며 박수치고 잘한다고 칭찬해줄 때, 그 문화가 전체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할 때, 아이들은 치마가 짧아야 살아남는 이상한 세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의 이번 행보가 흥행중인 영화 도가니에 맞물려, 사학재벌의 딸, 그녀가 앞장서서 반대해서 사학법 개정이 통과되지 못했다, 라는 의견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매우 곤란한 시기에 본색이 드러난 것일까.
누군간 이렇게 쉽게 말할 것이다. “때가 좋지 않다’ 라고.
카드놀이를 하자고 졸라대는 나의 어린 아이를 보며, 나는 얼마나 이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었는가 생각한다. 나는 늘 아이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가, 나는 얼마나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는 엄마였던가. 아이를 욕되게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기는 것처럼 모욕을 주지 않았던가. 분명히, 나 역시, 그랬던 순간이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지워버린 기억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흥분하고 아이를 잘 야단치는 그런 사람이니까. 분명히 그렇게 아이를 절벽위에서 떠미는 것처럼 아주 초라하게 만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남의 아이에겐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내 아이에겐 당연한 듯이 말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 쓰는 말 “내 자식 같아서요” 라는 말이다. 남의 자식 앞에서 깍듯하고 내 자식앞에서 안하무인인 부모의 말을 듣는 것 같아서 나는 언젠가부터 “내 자식 같아서요” 나 “가족같이 일합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막 대하겠다 라는 뜻으로 들린다.
분명 이번 나경원후보의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 맞다.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고 후보와 관련기관은 사과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장애아동의 어머니라는 것을 공포하고 더 잘 안다고 떠벌였으면 소수인권을 지켜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촬영팀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더라도 자신이 문을 닫았어야 하지 않는가. 장애아동은 사춘기가 없는가? 장애아동은 예민한 시기가 없는가? 12살에 발가벗겨져 문짝도 없는 오픈된 공간에서 목욕을 해야만 했던 아이의 마음을 당신은 아는가?
가끔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문구중엔 “목욕하고 싶어요” 라는 사연이 있다.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처연한 이야기다. 수단화 하지 말라. 분노가 치밀어 쌍욕이 나올 뿐이다.
나후보가 장애아동이고 그 곱디 고운 얼굴 때문에 발탁이 되어 12살 나이에 서울시장 후보인 이성의 남성후보에게 발가벗겨진 채 카메라 앞에서 목욕을 해야 했다면 당신은, 그 후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을 것인가 복수의 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문제는 후보측만이 아니고 소수자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혹은 소수자를 자주 대하기 때문에 무뎌진 양심들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게다가 그를 비난함과 동시에, 나는 얼마나 누군가의 인권을, 옷입고 가꿔진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가. 돌아볼 일이다.
한 장의 보도사진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글을 마쳐야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뉴스를 보며 피가 거꾸로 솟구쳐 애먼 내 시간을 분노를 삭이는 데 쓰지 않는 세상은 과연 오지 않는 걸까. 절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