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꿈속에서

낯선나라에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고현정을 만났다.
얼큰하게 취한 그녀와 낯선 이국의 거리를 헤매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인쇄된 명함을 주었다.
아마 중국이나 대만 어디쯤..
음주후였으나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했다.
한 잔 더 할까 생각이 든 나는 고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RS팬서비스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마음을 접었다.
붉은 색 나의 차에 홍콩이나 상해에 있는 연립주택 지하, 남의 집 철문옆에 묶여있는 나의 자전거를 풀어 차에 실었다. 그 건물의 1층에 묶여있던 나의 개를 풀었다. 운전을 하려는데 네이버에 다니는 후배가 남편과 나타나 술을 먹었으니 운전을 대신해주겠다 했다. 후배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고 갑자기 나에게도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후배와 내가 뒷좌석에 비좁게 앉았다. 주인을 잃은 듯 귀를 붙이고 떨던 개를 불러 트렁크에 넣었다.
후배의 신랑이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이, 지금 나의 집인지, 엄마의 집인지, 우리의 나라인지 알 수 없었다.

FTA, 조약 날치기, 포털의 조작, 삼성.
오직 나만의 것들을 지키려던 혈혈단신.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다.
깨고 나니 밤 12시 28분이었다.

무엇을 하였는가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이따우로 살고 있는 게 모두 내 탓이냐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다.
너 때문이라고
당신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나는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을 하였다.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좌절하였고 노력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또 다시 원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하는
그 원점이다.

겨울이다

내가 한 번 일어섰던 그 겨울
다시 붙잡고 일어서야 할 겨울이 온다.

2011. 11. 17.

이해의 과정

오전,
휴대폰을 급하게 열어 메모장을 폈다.

“이해하고자 하지 않으면 세계는 고립된다.”

이 말을 적은 이유는, 오늘 아침 갔던 11시 콘서트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들이 쉬는 시간에 서울대 김은혜 교수 얘기를 하면서 어디 선생을 고발하느냐.. 는 투의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김교수의 인권유린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는 듯 했지만 그녀들의 논점은 김교수의 행위보다 선생을 고발하고 신고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에 대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 때는 더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지 뭐.. 우리는 순진했던 거야. 여기서 사고가 끝날 것 같았다.
사유가 거기서 끝나버리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철학이 시작되고 사유가 시작되고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만들어 지기 시작한다.

박경철의 “자기 혁명”에 낯선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유라는 말이 나온다.
뭔가 생경한 것, 낯선 것, 익숙치 않은 것에서 사고가 시작된다.
사유를 끊어버리는 것은 바로 사유하는 자의 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원죄론적 인간형이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고 나는 언제나 당하고 살았으며 적당히 체념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에 익숙해진 인생이다.

살다 보면, 많이들 그렇게 된다.
먹고 살기 지쳐서, 세상 풍파에 내 식구를 감싸기 바빠서.
그러나 아주 쉽게 말하면, 부지런하지 않아서이다.
머리를 열심히 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다른 세대를, 다른 인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나의 세계 안에서 은둔하게 된다.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나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해 버리면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될 것 같을 때,
나의 선택에 의심을 하게 되고 그리하여 나의 자부심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두게 된다.

아주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나”는 아이폰이 좋다. 그리하여 아이폰을 구입한 나의 선택에 자긍심을 가지고 싶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해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충분히 설명할 구실이 필요하다. 아이폰의 우수성과 애플의 철학과 애플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제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시대의 영웅이 되어 주면 설득력은 더욱 큰 힘을 가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나의 아이폰에 대해서 반격을 가했을 때, 그리고 그가 만일 삼성이나 LG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는 나보다 못한 결정을 했기 때문에 너는 바보이고, 너는 멍청하고 내가 너보다 우수하다. 라는 논리를 갖추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은 힘을 추구한다.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한 지위, 그것은 사회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다. 모든 인간은 그저 힘을 향해 내달린다. 그건 동물적 본능이다. 힘에 대한 욕구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각자 인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오늘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어버이연합의 모욕적인 관 퍼포먼스도 그런 맥락이다.

http://www.vop.co.kr/A00000447906.html

이 자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관철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깔아뭉개는 방식을 택했다.
구석에 몰린 쥐는 물게 되어 있다. 이들은 구석에 몰렸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납득해주지 않으나 그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세상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힘을 과시하고 싶다. 그들을 조정하는 자가 그 누구이건 간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노인”으로 폄하되는 그들은 여기에 동참했고 행동했다.

일단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한 자는 선동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그렇다.

만일 내가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물론 그들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규명이 가능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으나,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일반화라는 가장 흔한 오류와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物과 思의 관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이들의 오류는 인간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인간의 사고력을 비하하는 것이므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빨간 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고 갈쿠리 손을 휘두르던 상이군인회, 재향군인회를 연상케 한다. 이들 중엔 간혹 그런 복장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집단엔 그 옛날 전쟁에 나가 희생을 하고도 국가에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인원들도 중복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는 그들의 원한과 희생에 대한 댓가를 돌려주지 못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분노했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내가 팔다리를 희생하며 빨갱이와 싸워 지켜온 이 나라”를 다시 빨갱이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이들의 공포에서 시작한다. 내 삶을 다시 전복시키는 공포, 내 팔과 다리를 다시 내바쳐야 할 지도 모르는 공포, 혹은 내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 자식잃은 어버이가 될 지도 모르는 그 공포.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평생을 지배당한 이들에게 국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들을 규합하고 달래고 높이 치하하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분노하고 궐기하고 반대하고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가서 경찰과 비슷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들은 분기탱천하여 일어날 수 있는 요소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논리적 이해와 감성적 이해는 다르다.
논리적 이해는 이성적 분석이 동반되지만 감성적 이해는 행위의 용납과 허용까지 포함한다.

내가 만일 이 행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감성적 이해까지 하게 된다면.

내가 믿고 있던 유교적 윤리관 – 망자에 대한 예의부터 시작해,
노무현이 가져다 주었던 희망과 열망,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의 카타르시스, 저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하던 기대감, 그리고 그를 선택하고 지지함으로써 내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데 작으나마 힘이 되었다는 자부심, 군부와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과 상충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와 꿈꾸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심각할 정도로 깊은 괴리감을 느껴 가치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그 절정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관념의 집단은 그들을 배척하고 저주하여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왜 그들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가와 그렇다면 저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서 멈추면 된다. 그들은 인간이 갖춘 이성적인 모든 명예와 숭고함을 쥐똥처럼 던져버렸다.

그리고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 정도인가 알릴 수 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너의 처지에선 그럴만 하다, 나의 처지에선 이럴만 하다. 라는 뜻이지, 너의 주장도 옳고 그에 상치되는 나의 주장도 옳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신체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욕을 하며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만방에 떨치듯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시 이 똥밭같은 세상에 끌어내려와 짖이기고 못박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2011. 11. 10.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 309일째 농성이 끝난 날

가을

가을은 이렇게 가고.
은행잎은 후두둑 떨어지고
태풍은 오지 않았으나
마음은 처연하고
세월은 나를 외면하고 떠나가고
아이들은 모른척 하고 자라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을
미련없이 보내줘야 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2011. 10. 31.

빅이슈를 만나다

명동예술극장에 연극을 보러 나간 길. 
카메라는 들지 않았고 오는 길에 뭔가 사와야 할 물건이 있어서 부러 차를 가지고 나갔다. 
주차를 하고 동생을 만나 칼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아동성폭행법개정에 대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나올 때 해야지 했던 걸 깜빡했다는 걸 집에 오는 길에 깨달았다. 


연극을 보고 나와 
촉박한 시간에 마구 발걸음을 빨리 하는 순간에 빅이슈를 팔고 있는 판매자 분을 마주쳤다. 
내 기억속의 코스모스백화점, 그리고 그 이후에 십수번 이름을 바꾼 눈스퀘어 앞이었다. 


내용이 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빅이슈를 사야했다. 
빅이슈가 발행된 지 1년여는 된 거 같다. 


거의 서울 지하철권에서 판매가 되는데 나는 빅이슈가 창간된 즈음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빅이슈를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 


빅이슈는 1권에 3000원이다. 
빅이슈 1부는 1400원에 빅판(판매자)에게 공급되고 권당 1600원의 수익을 갖는다. 


나는 3천원 한 권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동안 빚진 느낌을 청산하고 싶어 3부를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같은 내용으로 3권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과월호를 섞어서 드리는 게 어떨까요 하는 빅판의 말씀에, 아, 과월호도 있으면 과월호도 사야겠다 싶어 이번호 3권과 과월호 각기 다른 2권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한꺼번에 5권을 사니 빅판께서 민망하셨는지 음료수를 사겠다고 하시며 음료수를 먼저 내게 건네야 돈을 받을 것 같으셨다. 


빅판의 빨간 조끼 주머니에 다행히 잔돈이 있었던 지라 15000원을 넣어드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모퉁이를 돌면서 트위터에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트윗을 올렸다. 



명동눈스퀘어 앞에서 빅이슈 판매자분을 만나서 이번호 3권 달라하니 똑같은 거 3권 가져가느냐며 과월호로 가져가면 어떠냐 하셔서 이번호 3권에 과월 각 1권씩 달라하니 음료수 사주신다고 하신 판매자분. 감사합니다. 많이 파시고 건강하세요!


어떤 분께서 RT를 거쳐 내가 오늘 만난 판매자분께 멘션을 연결해주셨고 
내가 오늘 만난 빅판께서 이런 글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bigissue_h 앗!그 분이시군요.말한마디 때문에 3부에서 5부가 되지 않으셨는지?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빈말이 아니였는데 음료 드셨으면 지금 더 마음이 편했을텐데 아쉽네요 따뜻한 밤 보내세요 ^^


라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트윗을 열기 전에, 
오늘 아침 남편과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으로 
가난하거나 무지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멘션을 읽고 난 다음 지금은, 
누군가가 가난하거나 무지할 것이라고 편견을 갖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조금 수정을 했다. 일반화는 무섭다. 날이 갈수록 분석을 하고 어떤 규칙을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섣부른 일반화를 너무 많이 범한다. 


나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그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세상에 가난하고 무지하고 혹은 그렇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혹은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려, 어리석지 않은데도 어리석어지고 그저 누군가를 믿었는데도 갑자기 발등이 찍혀버리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을 때,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 당당하게 비난하려면 
부채감이라도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밟고 일어선 누군가가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의로 밟았던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받았던 혜택과 내가 누렸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 언제나 누군가의 올바른 정책 덕분이었을게다. 


그저 나 혼자 스쳐지나가는 일화로 간직할 만한 일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뜨거운 일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밤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갑자기 쌀쌀해져 라면이 매우 땡기는 밤이다. 


빅이슈코리아 공식 사이트 bigissuekr.tistory.com
최근들어 빅이슈 측의 문제가 있는 풍문이 들리는데 괘념하지 않겠습니다. 
빅판들께서 공정한 수입을 가져가실 수만 있다면 빅이슈는 꼭 계속되길 바랍니다. 







세계, 어제와 오늘.

표출되지 못한 언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정확성을 잃은 감정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거리를 헤매이고 
TV에 나오는 누군가를 모방한다
흠모하진 않으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시기심이 있다
내가 저 아이보다 못한 게 무엇이 있느냐는 
바닥을 친 자존감이 솟구쳐 오른다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을 쫓아 
재빠르게 자존감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
딸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닌지 한 달이 된다.
지난 주엔 나와 7년을 산 개의 목욕을 시켰다.
한달만에 능수능란한 관리사가 되었다.
어제의 아이는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아이가 다시 내 앞에 서 있다. 
케익 하나 사다 주면 헤헤 하고 내내 웃던 보조개와 
스파게티는 이렇게 먹는거라고 가르쳐 주던 나를 보며 부끄럽게 웃던 얼굴로
진작에 좀 .. 이라는 나의 타박에 
눈가가 빨개져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가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어차피 공부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다. 
아이는 그저 세상에 뛰어들어 인생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는 비정규직이다.
아이를 낳으면 알바를 많이 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내 아이가 알바를 하겠다고 나서니 선뜻 칭찬이 나오지 않는다.
왜 험한 세상을 일찍 배우려고 하느냐.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만나도 늦지 않는다.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졌다고 한다.
엄마, 한 걸음을 떼니까 두 번째 걸음이 쉬워요. 라고 말하는 아이의 옆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우리 얼마나 힘들었니.
다 되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 참 잘 하고 있구나. 라고 
매우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보고 
절대 비난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심하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항상 측은지심을 갖고 왜 저 사람이 저런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하라 했다.
그게 과연 그 사람의 잘못인지
이 사회의 문제인지 잘 살펴보는 사람이 되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낮추어 너에게 적용시키지 말라고 했다.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다가서지 말아야 할 세계가 있고 
접하지 말아야 할 직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의 기준, 너의 잣대가 되어야지
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무도 무시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아직도 .. 제가 그래 보여요? 라고 묻는다. 
아니. 네가 그래 보이는 게 아니라, 
청소년기의 네 나이 또래의 모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 
네 동생이 네 나이가 되면 네 동생에게도 똑같이 말할꺼야. 
며칠 전에 할머니 걱정이 되어 
몸에 좋은 음식을 해드리고 싶어 고민하다가 
도곡동의 한 한의원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온 것은 
아주 기특하고 훌륭하고 기쁜 일이다. 
근데 솔직히 엄마는, 
진작에 조금이나마, 
늦기 전에 조금이나마. 
조금 덜 아프게 하지 그랬니 .하는 마음이 들어. 
그 날은 좀 화가 났었다.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는 눈가가 벌개지지만 쑥스럽게 웃었다. 
나는 또 아이에게 못을 하나 박은 셈이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니, 
나는 말해야 했다.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뼈아픈 고통도 느껴봐야 한다고.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보다 
차라리 내가 주는 상처가 낫다고. 
자위하고 싶다. 
아이는 커간다. 
자기의 세계속에서 
다른 사람의 세계를 관찰하고 부딪치고 느끼면서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매우,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만으로 다섯살하고도 6개월이 지난 작은 아이는
요즘 태권도를 다녀오면 뛰어나가 동네 형들이랑 놀기 바쁘다.
엄마 안녕. 
하고 저 혼자 문을 닫고 나가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다 간혹, 
엄마가 태권도에 데리러 와. 
라고 말한다. 
왜 데리러 오라고 했어?
아이와 오솔길을 걸으며 물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하며 내 팔에 제 얼굴을 문지른다.
어두워질 때까지 아이들과 놀다가 
밥먹을 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나의 작은 아이는,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을 지낸 80년대의 아이처럼 저녁을 보낸다.
그렇게 키우겠다고 결심했던 일이 성사되어 
이 역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나 
동생에게 피부가 탄력을 잃었다는 얘기도 듣고
이제 밤도 새지 못하고
예전처럼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고
가끔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발견한다.
흰머리를 발견해도 뽑지 않는다. 
이미 남편은 염색약을 써야 할 정도가 된 지가 오래다. 
늙어가는 중이다. 
조금씩 나도 어른이 되고 
아주 조금씩, 늙어가는 중이다. 
스무살 무렵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진절머리 나는 질풍노도의 혼란을 지나 서른이 되면 어딘가 안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막상 30대의 반을 훌쩍 지나고 나니 
이제는 마흔이 되고 싶다. 
그럼 좀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간혹 그저 세월을 건너뛰어 쉰 정도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나이. 
언젠가 엄마가 쉰 다섯 쯤 했던 말처럼
“이제 이 나이쯤 되면 다 이해할 수 있단다”
나에게 나이는 환상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인격이다.
사람으로서 
가장 인간답고 숭고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기쁜 마음으로 
참 잘 지내었다. 라고 말하며 떠나고 싶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마무리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이별하고 싶다. 
그 날을 위해서 조금씩 걷는다. 
때론 울고 웃고 욕하고 따지고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하루 하루를 산다. 
얼마전 남편이 몇 년전의 나의 습성에 대해서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말하는 그 습관은 그 때의 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이미 몇 년간 그렇지 않았잖아.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매일 매일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살아. 
라고. 
나는 내일,
오늘 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거다. 
2011. 9. 17. 

눈물에 대하여

술취해 들어온 남편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곧 잠들 그의 안경을 벗겨준다.

그가 말한다.
나는, 절대로 울지 않을꺼야.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꺼야.
지금부터 굳게 맹세할꺼야.
나는 절대로,
눈물.
단 한방울도.
흘리지 않을꺼야.

그의 말을 들으며
입을 열지 않고 말한다.

나는 울꺼야.
눈물이 강이 되도록 울꺼야.
내 몸안에 모든 물기를 다 짜내도록 울꺼야.

내 눈물로 강을 만들어 황천가는 배를 띄울꺼야.
슬렁슬렁 노 저어 훠이 훠이 웃으며 가시도록.
나는 내 눈물로 강을 이뤄 배를 띄울꺼야.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다지 참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가 헤아린다.
한낮의 정원에서 급작스레 슬픔이 탑이 무너지듯 내 몸위로 쏟아진다.
부디 고통이 적길,
부디 신음하지 않길.

나는 지금 연옥에 있다.
당신의 손을 꼬옥 잡고.

2011.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