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쓰는 생애사 – 다섯 번째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 동화로 쓰는 생애사

다섯 번째 이야기 (6월 12일 수업 내용입니다. 수업기록이 밀렸네요)

 

은혜 씨가 오지 않았다. 모두들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늘 15분 정도 일찍 나오는 은혜 씨가 오지 않았다. 지난 주에 앙다문 입술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흰 바지 이야기를 한 장 더 쓰고 간 게 마음에 걸렸다. 행여, 내가 뭔가를 건드린 게 아닌가.

자기 삶을 쓰는 일은 과정 중에 마주치는 거대한 바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이어진다. 영리하게 피해가는 일부터 그 앞에 정면으로 맞닥뜨려 바위를 만져보는 일도 가능하다. 때로 어떤 사람은 울며 그 바위를 외면하고 지나간다. 그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70년을 산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때나 먼저 죽은 가족이 거대한 바위가 된다. 그 이후의 삶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벽이 된다. 칠순이 넘은 노인도 여섯 살에 죽은 어머니 얘기에서 무너진다. 그 이후로 60년을 더 살았어도 한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모든 학우들, 자기 삶을 쓰겠다고 모여든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 땅에 살아 있는 지뢰를 만나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사전 연락없이 결석이 이어지면 그는 지뢰를 밟아버린 셈이 된다. 그래서 자기 삶을 쓰는 일은 어렵고 괴롭다. 모두들 하나씩 있다. 타인에게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게 당사자에게는 가장 폭탄이 되고 함정이 된다.

매주 수업 끝날 무렵에 미술 선생님과 다음 주 수업을 의논하게 되었다. 아마 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미술선생님은 정해진 시간 내에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도전해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그런 미술선생님의 마음이 좋다. 따뜻한 사람이겠다. 이번 주에는 교통수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더 이어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없던 프로그램을 개설하면 수강생들의 욕구와 수준에 맞춰 매번 커리큘럼을 조정해야 한다. 나는 다른 데서 했던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이 어렵다. 모두 각자의 사연을 한 보따리씩 지고 있어서 똑같은 이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 수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더 자신있게 풀어낼 이야기가 있고, 도저히 묘사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사람을 잘 그리는 사람과 자동차를 잘 그리는 사람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자폐나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탈 것으로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모두 의심해볼만한 것들이다. 한 가지씩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시도해보는 것이다. 내가 가진 정보가 제대로 된 것인지, 개별적인 특성은 어디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다. 이 수업은 먼저 글쓰기를 하고 쓴 내용을 기반으로 그림을 그린다. 글쓰기를 하면서 생각을 정돈하면 그림의 주제가 명확해진다. 그림이 더 중요한 언어인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런 이들은 대부분 전문작가가 된다. 작가가 아닌 이들은 아무래도 도구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말이 가장 쉽다. 글은 말을 기반으로 하니 생각을 정리하기가 가장 간편하달까. 좋아하는 교통수단에 대해 쓰는 것은 설명문을 쓰자는 게 아니다. 특정한 사물에 깃들어 있는 기억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교통수단을 탔다는 것은 그 수단을 이용해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는 이야기고, 여행이나 행사등으로 있던 지역을 벗어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교통수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물꼬를 트면 자연스럽게 그걸 타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 안에서 본 풍경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주제를 말하며 각자 어떤 교통수단에 대해서 쓸 것인지 발표해봤다. 채영과 혜은씨는 비행기에 대해서, 승민은 버스에 대해서, 재민, 수정, 수영 씨는 그냥 자동차에 대해서 쓰겠다고 했다. 이 수업엔 각자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한 번 정한 자리가 바뀌지 않는다. 다들 앉던 자리에 그대로 앉는다. 늦게 온 사람이 뒤에 앉는 게 아니다. 몇 명 안되고 서로 아는 사이인데다가 자폐성향도 더러 섞여 있어서 자리를 변동하지 않는 것 같다. 수영 씨가 나에게 연필을 한 자루 내밀었다.

이하나 선생님 연필 깎아주세요.

나는 복지사 선생님에게 칼을 빌려서 학우들이 글쓰기를 하는 사이 연필 한 자루를 깎았다. 수영 씨의 필통엔 부러진 연필심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필통 한 번 정리해야겠네요. 나는 필통을 뒤져 두 자루를 더 깎았다.

수영 씨는 계속 종알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쓸 내용을 나에게 말로 전하고 또 글을 이어나간다. 에버랜드에 간 이야기를 쓰다가 지하철을 타고 갔다고 했다. 자동차를 타고 간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더니 갑자기 소재가 바뀐 것이다.

나는 에버랜드 가는 법에 대해서 써달라고 했고 수영 씨는 용인경전철을 타고 에버랜드를 간 것에 대해서 적었다. 그리고 에버랜드에서 탔던 놀이기구의 이름을 나열했다. 글 아래 에버랜드의 로고를 그렸는데 거의 흡사했다. 한 번 본 겄을 잘 잊지 않는 특성이 있어보인다.

승민씨는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가족의 이야기보다 무용단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평창에 무용단이 가서 행사를 한 이야기를 적다가 김연아 선수가 왔는데 공연을 준비하느라 가까이서 못 봐서 아쉽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꼭 적어달라고 했다.

기현 씨는 계속 어떻게 써야 하냐고 물으며 문장을 한 번 말한 뒤 나에게 확인을 받고 한 줄씩 이야기를 써 나갔다. 문장 하나 하나를 점검하다 보니 속도가 느리고 이야기가 분절적이다. 한 줄을 적고 내가 질문을 하면 다음 문장을 적는 식이다. 가족이랑 자동차를 탔어요. 누구 차예요? 아빠 차예요. 아빠 차는 어떻게 생겼나요? 아빠 차는 YF소나타예요. 검은색이예요. 라고 말을 하고 확인을 받은 뒤 쓰는 식. 창밖의 풍경은 어땠냐고 물으니 고양이를 봤다고 했다.

채영 씨는 자원봉사 선생님과 이케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걸 글로 써달라니 싫다고 했다. 자기는 비행기에 대해서 쓰겠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원봉사선생님에게 불러주었다. 자원봉사선생님이 한 글자 한 글자를 받아 적었다. ‘비행기는 하늘과 같은 색이었고, 양쪽 날개가 달려 있어서 더욱 멋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양쪽 날개가 달려 있어서 멋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다. 참신했다. 비행기를 비행기답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동체가 아니라 양날개겠다. 새의 모습을 본 딴.

수정 씨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차를 타고 간 이야기를 짧게 적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군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억이 나나요? 물으니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글쓰기 종이에 자동차를 그리고 ‘보고 싶어. 사랑해요.’라고 적었다. 나는 슬프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억에 대해 적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수정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한 감정을 잘 표현하는 수정 씨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짧게 적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유해를 본 모양인데 ‘밀가루처럼 생긴 몸하고 모든 전체를. 우리 아버지랑 오라버니가 밀가루처럼 생긴 걸 내가 잘 몰라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우리 어머니께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관해둔 상자라고 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고 제가 만약에 천국에 가면 따라갈 거예요.’라고 적었다. 나는 이 밀가루처럼 생긴 건 “유골”이라 한다고 알려주었다. 수정 씨는 표현력이 좋은데 문장이 정확치 않다. 나는 틀린 문법을 일일이 고쳐야 하나 갈등한다. 정확한 문장을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의 글에 붉은 줄을 긋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스스로 글을 쓰겠다고 온 것인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수업 중엔 다들 밝은 모습을 보인다. 학우들이 신나게 자기 이야기를 적고 발표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집중하여 비장애인과 공유하는 일이 적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노인들의 구술을 받을 때나 비엘리트계층의 인터뷰를 할 때,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줄 필요가 있다. 들어줄 자 없는 이들이 글을 쓴다. 할 말이 많은데, 그 말을 다 전할 수 없을 때 글을 쓴다.

이 학우들의 숨겨진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나는 이들과 얼마나 오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동그랗게 그린 학우들의 비행기를 본다. 파란 색 초록색 비행기를 보며 웃음을 짓는다.

학우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수영 씨의 연필을 몽땅 깎았다. 수영 씨가 Thank You 라고 말했다. 나는 You’re Welcome이라고 대답했다. 더 할 말이 많은데 다 쓰지 못해 답답해 하는 승민 씨가 수업을 마치고 나가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혜은 씨와 채영 씨는 손을 잡아주었다. 다음 주에 또 만나. 우리 가을까지 계속.

 

동화로 쓰는 생애사 – 네 번째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동화로 쓰는 생애사> 수업 기록입니다. 학우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6월 5일의 기록

 

날씨가 화창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할테지만 일단 햇빛이 비치면 기분은 괜찮다. 그저 모른 척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지. 미세먼지 수치 같은 것은 그냥 모르는 척 하는거다. 지난 번 지각 때문에 사뭇 긴장했다. 바로 옆 도서관에 주차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수업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오전의 복지관은 늘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로 바쁘다. 15분 일찍 들어갔는데 벌써 다들 와서 앉아 있다. 제 시간에 맞춰오는 건 혜은씨와 기현씨인데 정시에 들어오는 사람이 늦게 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다들 미리 미리 와서 일찍들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지난 번에 미술선생님과 협의를 했었다. 일단 제일 쉬운 게 음식일 것 같아서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나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음식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봐요. 라는 말은 구체적이지 않아 이렇게 글쓰기 주제를 던지면 누구나 곤란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생각하고, 그걸 먹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가장 맛있게 먹었을 때는 언제인지, 누구랑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특별히 그걸 먹을 때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글을 풀어나가는 순서를 하나씩 짚어가야 한다.

이건 발달장애인이라서의 예가 아니다. 전문 글쓰기꾼이 아닌 사람들의 글쓰기 교육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 중에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인터뷰와 구술을 진행하다 보면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 질문들은 이야기의 구체성을 띄게 하고 그것들이 모여야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꾸러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내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여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글쓰기 교육의 큰 차이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장애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경우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글을 쓸 줄 모르는 학우가 둘 있다. 채영씨는 발화에 문제가 없고 이야기도 잘 하지만 글씨를 못 써서 자원봉사선생님이 붙어서 말을 받아적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러저러한 질문을 섞어주면 자원봉사선생님이 그걸 활용해 몇 가지를 더 추가해서 물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재민씨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어. 어. 응. 응. 정도, 어와 응의 중간발음으로 긍정을 표시하고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부정을 표시한다. 재민씨의 글쓰기는 자원봉사샘이 거의 도맡아 하는 것인데 손가락으로 예시를 계속 제시하며 단어를 하나씩 골라낸다.

나는 이 자원봉사샘의 기법에 탄복했다. 재민씨 제일 좋아하는 게 어떤 음식이예요? 라고 물을 때 검지로 고기, 중지를 꼽으며 야채, 라고 하면 재민씨가 그 중의 손가락을 짚어낸다. 가장 큰 카테고리에서 점점 카테고리를 좁혀나가는 것이다. 수차례의 단계를 거쳐 문장 하나를 완성한다. 자원봉사샘들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대학생들인데, 친절하고 상냥할 뿐 아니라 전공을 잘 살려 학우들과 친밀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이날은 은혜씨가 약간 불안불안했다. 표정이 긴장되어 있었고 입술에 힘을 주고 꾹 다물기를 반복했다.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하니까요. 엄마가 짜증내니까요.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해서 엄마를 화나게 하니까요. 라는 문장을 여러 번 얘기했는데, 아마 주말을 지내며 가족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학우들의 글을 살피며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누가 만들어줬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등 구체적 사건을 쓰도록 했다. 기현 씨는 늘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수행과제에 대해 다시 묻는다. 음식에 대해서 써보자고 하니 기현씨가 나에게 자기는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럼 일단 고기를 좋아합니다. 라고 쓰면 되겠네요? 라고 말하면 기현 씨는 내 입에서 나온 문장을 그대로 받아쓴다. 그런 다음에 다 썼다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고기를 좋아하나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럼 소고기. 소고기 중에 어떤 게 좋나요? 양념한 거? 불고기? 아니면 구운 것? 갈비? 등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면 그 중에. 굽는거요. 라고 대답한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서 문장을 하나씩 완성해 말해주면 거의 그대로 받아적는 편인데 항상 한 문장, 한 단어를 쓸 때마다 바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자꾸 확인을 하려 드는 것인데 스스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더 있다면, 기현 씨가 남에게 묻지 않고 알아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 라는 질문이 기현 씨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모르고 있다. 기현 씨는 그저 그 속도가 조금 더 늦을 뿐. 발달장애인은 “조금 느린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현 씨의 글쓰기가 바로 그런 “느림”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매번 문장마다 확인하는 것도 조금 느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체면을 차리느라 대놓고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미사여구를 꾸며대다가 쓰지 않는 게 나은 글을 쓰거나, 하지 않는 게 나은 말을 하는 반면, 기현 씨는 묻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조금 더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 중에 은근히 러브라인이 형성된 걸 확인했는데, 여학우 한 명이 남학우 한 명을 마음에 두고 있고 남학우 한 명도 다른 여학우를 맘에 두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나 너 좋아해, 라는 직접적 표현이 아니라 여행을 다녀오면 꼭 네 선물을 사올게, 라는 말이 있었고 다른 한 남학우는 누구누구의 애정표현이 부담스럽지만 괜찮다, 네 마음만 받을게. 라는 표현을 글에 적은 게 있었다. 말, 좋아한다는 말, 호감을 갖는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떠 다녔다. 사람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감정을 말로 먼저 표현한다. 말이 받아들여졌을 때 그 다음에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의사소통 체계라는 생각을 했다. 말을 먼저 허공에 던지고 누군가 그 말을 잡아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 같은 행위. 공기 중에 떠 있는 말이 어딘가에 안착을 하는가 아닌가의 여부. 이들도 당연히 호감을 갖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기를 거친 이십대 초중반의 청년들인 것이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언어와 의사소통능력이 어린이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들을 모두 유아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다.

 

조금 느릴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제 이들도 연애와 사랑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수정 씨는 김치볶음밥을 좋아한다며 자기가 만들 줄 안다고 했다. 나는 요리법을 글로 표현해달라고 종이를 한 장 더 주었다. 수정 씨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볶음밥을 좋아합니다. 가족과 함께 볶음밥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었다. 맛이 매콤하고 아주 맛있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가 직접 볶음밥을 해줘야겠다. 몇 년 후에 꼭 해줘야지.”

수정 씨가 해 온 숙제는 지난 수업시간에 쓴 글을 이어서 써오는 것이었는데 파리가족여행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숙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파리에서 봉주르라고 인사를 하고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에펠탑까지 보고 다시 또 한 번 가고 싶어진다. 몇 년 후에 신혼여행으로 파리로 가고 싶다. 왜냐하면 파리에 있을 때는 내가 마치 공주가 된 느낌을 받았다. 결혼한 후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어진다.”

수정 씨는 말하자면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들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속에 정해두었는데 수정 씨의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들을 둘러싸고, 이들에게 삶을 돕고 있는 비장애인 어른들이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발달장애라는 이유로 착하고 좋은 것만 강권하지 않았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봐 욕을 먹을까봐 계속해서 입을 막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생각은 이 날 은혜 씨 때문에 조금 더 굳어졌는데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은혜 씨가 내내 입을 앙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혜 씨는 긴장이 되면 입술에 힘을 줘서 입술을 약간 내민 채로 꽉 다물고 있는 모습을 할 때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오늘 수업 시간에 한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한 적 있다.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하니까요. 엄마가 싫어하니까요.”

이날 은혜 씨는 내내 입을 앙 다문 채로 중국요리를 먹은 이야기를 썼다.

“나는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중국집에 가서 짬뽕, 짜장면, 탕수육, 잡채밥, 볶음밥, 사천탕수육을 먹고 나서 배부르니까 중국음식만 먹고 난 뒤에는 나는 빛나는 흰 바지를 입으려야 하니까 살을 빼서 흰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나는 운동을 해야겠어요. 나는 음식 많이 안 먹고 음식 조금 먹어야 해야 되겠어요.”

중간중간 동사가 중복되거나 어법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맞춤법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글에 갑자기 흰 바지가 등장한 게 흥미로워서 은혜 씨에게 흰 바지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다.

“나는 빛나는 흰 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살을 빼야 해야 되겠어요. 흰 바지는 안 좋아요. 음식물이 묻으면 더러워져요. 은혜는 흰 바지를 좋아하지 않아요. 생리해도 묻으니까요. 귀찮으니까요. 스트레스 받으니까요.”

은혜씨는 문장의 어미를 ~~하니까요. 로 마무리할 때가 많은데 이런 말을 할 때 특별한 심리상태가 있는지 주목해봐야겠다. 흰 바지를 입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문장을 반복해서 듣고 난 다음 나는 은혜 씨에게 다시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은혜 씨, 여기에 흰 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써줄 수 있어요? 은혜 씨는 다시 입술을 앙 다물고 흰 바지에 대해서 적었다.

“나는 흰색 바지를 입으면 얼룩 생기니까, 생리할 때도 잘못하면 묻고 나서, 지저분하니까요. 때가 타서요. 흘리고 난 뒤에는 튀겨서요. 나는 흰색 바지가 싫어요.”

또박또박한 글씨를 가만히 읽었다. 이 문장은 ‘나는 흰 바지를 꼭 입고 싶은데, 흰 바지는 날씬한 사람만 입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다가, 깨끗하게 흰 색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엄마가 입지 말라고 하니 이제는 아무리 흰 바지가 좋아도 흰 바지를 입지 않는 사람인 척 하며 내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게 차라리 속 편하겠어요.’ 라는 뜻이 아닐까.

 

나도 흰 바지를 입어본 적이 인생에 열 번이 안 되는데, 은혜 씨가 말하는 동일한 이유였다. 은혜 씨는 전혀 뚱뚱하지 않다. 키에 알맞은 체격이다. 내가 은혜 씨에게 “선생님도 흰 바지 입고 싶은데 몇 번 못 입어봤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옆에 앉은 채은 씨와 승민 씨가 재밌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은혜 씨에게 속마음은 진짜 흰 바지를 입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뭔가 꾹 참고 있는 사람을 툭 쳐본다는 것은, 이후에도 긴 시간이 보장되었을 때의 이야기니까.

 

내 시간이 끝나고 다들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색칠을 시작해서 1층 까페로 내려갔다. 목이 타서 주스를 하나 마실 생각이었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이 까페에서 바리스타들을 돕고 있었다. 복지관의 1층 까페는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커피와 음료를 만든다. 나는 자몽에이드를 하나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눈에 확 띄었다. 남자인데, 청치마를 입고 검은 쫄바지를 안에 입었다. 어린 아기처럼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높이 솟구치게 묶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학교 운동회에 남자애들이 여장한다고 장난스럽게 분장을 한 것 같은 차림이라 웃음이 나왔다. 복지사 선생님이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강사에게는 음료값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시원한 주스를 손에 쥐고 다시 4층 교실로 올라갔다. 즐겁게 웃기도 떠들기도 하며, 시간 내에 그림을 다 그리려고 열심히 손을 움직이는 학우들을 보며, 이십대 발달장애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들 뭘 알 수 있겠느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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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로 쓰는 생애사 – 세 번째 수업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세 번째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동화로 쓰는 생애사> 수업 기록입니다. 학우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는 산 아래 있다. 옆에는 만안청소년수련관과 만안도서관, 만안경찰서가 붙어 있다. 모두 산을 지탱하고 서 있는 형상이다. 복지관 건물의 지하 1층엔 수영장이 있고 지하주차장이 시작된다. 지하주차장은 지하 4층까지 있는데 지하 1층과 2층 주차장은 장애인전용이라 칸이 널찍하다. 이 지하주차장은 만안평생교육센터와 같이 쓰고 있는데 지하 3층과 지하 4층엔 평생교육센터 이용자들의 차가 주로 이중주차가 될 만큼 주차난이 심각하다. 수도권 어딘들 주차난이 심각하지 않는 시설이 있겠냐마는. 10시 수업이라 9시 45분에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한 칸도 빈 곳이 없었다. 이중주차를 할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지상주차장을 살펴봤으나 거기도 자리가 없었고 복지관 뒤편에 복지관 버스를 세우는 곳에도 온통 장애인주차장뿐이었다. 길 건너 장애인부모회 건물이 있어 그쪽에 두 시간 정도 주차를 해도 될까 가봤으나 역시 마찬가지. 청소년수련관까지 올라가 주차를 하고 내려오느라 늦었다. 청소년수련관에 올라가며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15분을 늦었다.

학우들이 모두 얌전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수업엔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 한 명이 항상 같이 하고 자원봉사자 세 명이 있다. 담당 팀장은 동시간에 두세 가지의 프로그램이 같이 진행되어 교실을 계속 오가며 수업을 참관한다. 지난 주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 한 주 수업을 쉬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헐레벌떡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지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반갑게 맞아주었다. 맨 끝에 앉은 학우가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앞으로 갔다. 다들 사진을 가지런히 앞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가족사진을 놓고 가족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수업을 늦게 시작한 탓에 바로 글쓰기로 들어갔다.

은혜 씨는 무슨 이야기를 쓸지 생각해 왔다며 여행 간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했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 준비해 온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바로 시작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내 자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수연씨가 자기는 쉰 살에도 노래를 부를 거라고 말했다.

“구십 살까지 노래 할 거예요. 쉰 살에도 노래하고, 예순 살에도 노래하고, 일흔 살에도 노래하고, 여든 살에도 노래할거예요. 아흔 살에도 노래할 거예요.”나는 수연씨가 한국어의 수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메모했다.

“무슨 노래를 부를 거예요?” 내 질문에 수연씨는

“최백호 아저씨 노래를 부를 거예요. 낭만에 대하여.”나는 이번에도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졸랐지만 수연씨는 완강하게 “기타가 있어야 한다.”고 거절했다. 다음에 기타를 가져오게 되면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해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백 살에는 노래 안 해요?” 물었더니

“저는 아흔 살까지만 살거예요. 아흔 살에 죽을거예요. 죽을 때까지 노래할거예요.”

“왜죠? 백 살까지 살면 안돼요?”

“아니요. 저는 아흔 살까지만 살거예요. 아흔 살까지 노래를 부르며 살거예요. 열심히 살아야 해요.”

“열심히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걸 말해요?”

수연씨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열심히 살아야 해요. 운동도 열심히, 뭐든지 노력하면서.” 수연씨는 예의 그렇듯 손가락과 손을 계속 움직이며 대답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운동도 열심히, 뭐든지 노력하면서.’ 나는 수첩에 수연씨의 말을 적었다.

 

가족을 한 명씩 소개하라는 이야기에 기현 씨가 연필을 들고 멍하니 있길래 우리 엄마는 성격이 어떤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쓰면 좋다고 권했다.

수연씨가 그 말을 듣고 음식이야기를 했다.

“제 친구는 나쁜 습관이 있어요. 그 친구는 인스턴트만 먹어요. 인스턴트를 먹으면 안 좋아요.”

“그럼 수연씨는 인스턴트를 안 먹나요?”

“네. 저는 인스턴트를 잘 안 먹어요.”

“그렇죠. 인스턴트 음식은 건강에 안 좋죠? 그럼 수연 씨는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나요?”

“네. 저희 엄마는 음식을 잘 해요. 라면도 잘 끓여요.”

 

다른 학우들은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한다, 음식을 끓인다, 등의 동사를 사용하는데 고민했다. 한다고 해야 할지 만든다고 해야 할지 끓인다고 해야 할지 어떤 동사를 써야 적당한지 한 번씩 되물었다. 다들 술술 글을 써 나갔다. 가족의 일원을 소개하는 주제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정보에 충실하게 글을 만들었다. 학우들의 사진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한 기억이 담겨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을 소개한다는 글을 쓰려면 차라리 이미지를 치우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은혜씨는 외갓집이 진주에 있어서 진주를 갔던 이야기를 글로 썼다. 발표를 할 때는 진주에 간 이야기는 빼고 거제와 통영에 놀러간 이야기를 했다. 거제도는 통영의 옆에 있어요. 같이 있어요. 나는 거제와 통영이 남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보탰다. 거제까지 네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라는 말을 하길래 거제에 유명한 게 뭐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꿀빵”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꿀빵은 그 옆에 통영에서 유명한데 거제에도 꿀빵을 파는 곳이 많다고 이야기를 보탰다. 통영에서 본 것을 더 이야기 해달라고 하자 거북선이 있고 판옥선도 있다고 했다. 통영 중앙시장 앞 강구안 문화마당을 다녀온 것이 분명했다. 강구안 문화마당에는 거북선 모형이 여러 개 있는데 구조가 다른 배의 모형이 있다. 은혜씨는 “판옥선도 있어요.”라고 분명히 기억했는데 지난 번부터 고유명사에 강하다는 내 느낌에 확신이 들었다. 은혜씨가 다녀온 곳의 이름과 특징을 잘 기억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발표를 하던 중에 기현 씨가 자기가 사고 싶은 차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물었다. 무슨 차를 사고 싶은지 얘기 해달라 하자 기현씨는 봉고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친구들을 태우고 싶어서란다. 친구들을 태우고 뭘 하고 싶냐 물으니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이십대다. 이십대 청년이 봉고차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니 놀라웠다. 스포츠카를 사서 여자친구를 태우고 단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가진 편견도 재확인했다.

 

학우들은 두 번의 수업으로도 글쓰기에 빠르게 적응했다. 글을 쓰고 발표를 하는데 45분 시간이 모자랐다. 이어서 글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미술선생님이 배경을 어떻게 해보고 이런 것도 같이 그려보자면서 학우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세심히 살폈다. 수업이 끝나고 난 다음에 미술 선생님과 글쓰기와 미술을 45분씩 나눠서 수업하는 게 앞으로는 어렵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1시간 반 동안 꽉 채워서 글쓰기만 해도 될 날이 금방 올 것 같았다.

학우들은 지난주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했고 더 빨리 글씨를 썼고 더 빨리 그림을 그렸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고 더 세밀하게 그리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학우들에게 시간을 재촉하는 일은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라 여유 있게 수업을 진행하려면 시간 배정을 조정해야겠다. 정해진 시간내에 과업을 완성하는 일은 어느 수업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수업은 조금 더 여유있을 필요가 있으니까.

 

글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학우들에게 따로 숙제를 내줬다. 혼자 글쓰기가 어려운 학우에게는 부담이 될까봐 숙제를 주지 않았다. 은혜씨에게는 거제 통영 여행의 이야기를, 수연씨는 아흔 살이 되어 부르고 싶은 노래의 가사 만들기를, 한때 사귀던 여자친구 이야기를 한 줄로 표현한 동진 씨에게는 사랑하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보기를, 수정씨에게는 파리 여행의 느낌을 더 자세히 적기를, 승민 씨에게는 무용단에서 춘 춤을 소개하기를 따로 적어서 주었다.

은혜 씨는 사실을 순차적으로 적는 것을 잘 하고 수정씨는 감각과 감정을 잘 표현한다. 수정씨는 조금 더 길게 쓸 수 있는 것 같은데 하나씩 주제를 적어서 세밀하게 쓰도록 지도하면 풍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학우들이 말하고 쓰는 일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서로 손을 들어 발표를 하겠다고 나섰고, 혜은씨는 자기 순서가 빨리 오지 않자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욕심이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학우들이 하고 싶은 말이 다른 일에 밀려 오랫동안 고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가을까지 이어진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은 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와 무관한 일이다. 언어소통이 쉽지 않고 타인과 정서적 교감을 잘 못한다는 건 잘못된 이론인걸까. 나는 이들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예민하고 개성 있으며 진실하다고 느낀다. 남들에게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거나, 강사가 원하는 답을 찾아 가식적인 문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비장애인과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다. 수업을 하면서 나는 자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점을 발견하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장기가 모두 다르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 때가 되면 나도 조금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수정 씨의 글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아주 몽실몽실하게 떠 있다. 아름다운 에펠탑이 서 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보디가드처럼 멋진 오빠, 가장 믿음직스러운 아빠, 미소가 예쁜 엄마, 꽃처럼 착한 막내, 나까지. 우리 가족 프랑스에 가니까 정말 좋았다.

 

수연 씨의 글

엄마 이름은 ○○○입니다. 우리 엄마는 회사 일을 하십니다. 제가 어릴 때 비디오를 봤을 때부터 좋아하셨습니다. 우리 엄마께서 돈육김치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 부대찌개, 라면도 끓여주시고 그렇습니다. 기타도 아주 잘 치고 열심히 할 것도 하느라 믿습니다.

2018년 5월 31일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 두 번째 수업 기록

<동화로 쓰는 생애사> 두 번째 수업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동화로 쓰는 생애사> 수업 기록입니다. 학우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오늘은 다들 사진을 가져오기로 했다. 지난 주에 담당자가 무슨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면 좋겠느냐 묻길래, 학우들이 설명할 수 있는, 기억이 있는 사진이면 좋겠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수업은 처음이라 나는 하나씩 두들겨 가며 건넌다. 강의개요는 담당자가 이미 짜놨다. 각 강의의 제목이나 컨셉을 잡아둔 것인데 나로서는 부담이 덜해 외려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런 강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은 아니다. 기초적으로 내가 짜놓은 강의안이 있지만 참가자마다 융통성 있게 그때그때 바꾼다. 초등학교 수업의 경우도 똑같은 교안을 다른 교실에 적용할 수 없다. 어떤 교사들은 같은 강의안을 시간까지 딱 짜맞춰 그대로 할 수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 참가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데 다음 이야기를 하면 뭐하나. 강의 전엔 항상 강의를 요청한 사람에게 원하는 게 뭔지 묻는다. 얘기를 듣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한다. 담당자가 적극 협조한다면 요청이 온 강의는 대부분 할 수 있는 범위에 든다. 이 수업은 내가 맡아도 담당자의 정보공유와 제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수업 전에 몇 몇 학우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인사하자 은혜씨가 제일 크게 인사를 했다. 몇 명이 늦었고 교실에 왔다가 잠깐 나간 학우도 있었다. 지난 주에 내가 좋아하는 것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수업 시작 전에 은혜 씨가 <내 동생은 구름요리사>라는 노래가 좋다는 말을 꺼냈다. 다른 학우들을 기다리며 각자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해봤다. 재욱 씨는 여자친구의 팬인 모양이다. 재욱 씨가 여자친구 노래를 좋아한다면서 승민 씨가 자기도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나는 학우들에게 “선생님은 아이돌 노래 하나도 모르는데 누가 불러 줄 수 있어요?” 물었더니 수영 씨가 다음에 기타를 가져와서 해주겠다고 했다. 기타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할 수 없고 최선규 아나운서는 원래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는 정보도 주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각자 가져온 사진을 꺼냈다. 사진 한 장을 골라 무슨 사진인가 잠시 생각한 다음에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승민 씨였다. 승민 씨는 손을 들고 발표를 하겠다더니 앞으로 나와 책상 앞에 섰다. 두 손으로 사진을 잡고 사진 설명을 했다. 기어다닐 때 사진이다. 기억이 나냐고 물으니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나는 정말 기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안아줄 때, 나를 반겨주니까 좋다는 표현을 했다. 그러면서 내 뒤에 서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이렇게요.” 라며 몸으로 설명을 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수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다렸다는 얘기로 들렸다.

은혜 씨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 사진을 가져왔다. 제과제빵 학원에서 커피를 배우고 난 뒤 김치, 하며 사진을 찍었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라는 완성된 문장으로 말했다. 은혜 씨는 발음하는 게 좀 어려운데 굴하지 않고 기다려주면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애 쓴다. 수영 씨는 까페에서 화병을 들고 사진을 찍은 걸 설명했다. 나는 커피 머신에서 나는 소리가 어떻냐고 물었다. 수영 씨는 거침없이 “시끄러워요.”라고 대답했다. 비장애인들의 경우 이런 질문을 던지면 강사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다. 꾸미고 묘사하려 애쓴다. 중년이상의 학우들인 경우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소리는 소중하고 값진 것, 자신의 보람에 대해 어필하려 했을 것이다. 수영 씨의 “시끄러워요.”라는 대답에 모두 웃었다. 가장 솔직한 말이다.

수정 씨는 엄마와 청평에 있는 강에 물놀이를 갔을 때 사진을 보여줬다. 말을 하며 늘 부끄러워 입을 가리고 중간중간 말을 멈춘다. 어머니가 수정 씨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가득했다. 수정 씨는 지난 주에 관장님이 아버지같아 좋다고 말했다. 아마 수정 씨의 가정은 수정 씨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임이 틀림없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집도 있을 것이다.

혜은 씨는 오늘 아침에 기분이 좋아서 울지 않았다는 말로 운을 띄었다. 지난 주에도 그 말을 여러 번 했다. 그 말은 아침에 자주 울었거나, 지금도 아침마다 자주 운다는 얘기 같았다. 나는 어릴 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는 아이였다. 아침마다 화를 내는 엄마 탓이었겠지만 엄마가 없어도 울었고 있어도 울었다. 엄마는 나에게 저렇게 우니 저년이 집안을 말아먹을 것이라 악담을 퍼부었다. 혜은 씨가 “아침에 울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어린 내가 생각나서 울적해졌다.

채영 씨는 어린이집에서 국립묘지에 참배 갔던 이야기를 했고, 국립묘지가 어떤 곳인지 묻자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나라를 위해 싸우거나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는데 채영 씨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다시 설명했다.

동선 씨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지적장애 티가 안 날 것 같다. 다른 장소에서는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것 같기도 하다. 학우들과 같이 공부하는 과정에 맞춰서 잘 설명하려고 애쓰는 듯 하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청계산에 아버지와 같이 놀러갔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했다. 비둘기를 쫓아가다가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라고 했다. 나는 놀라며 엄마를 어찌 다시 찾았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길을 잃어버리면 다른 데로 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늘 말해줬고 그 말을 그대로 따랐더니 엄마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동선 씨는 자폐가 아니고 지적장애인데, 다운증후군으로 보인다. 글이나 그림을 그릴 때 강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다른 학우들보다 훨씬 더 사회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 다른 교육을 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기현 씨는 외모상으로는 전혀 발달장애 티가 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들은 어릴 때부터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 표정이 굳어져 버려 성인이 된 뒤 외모로도 티가 나는 경우가 많다. 더러 뇌신경의 장애로 안면의 근육이나 특정 기관이 변형된 경우도 있는데 기현 씨는 비장애인처럼 보인다. 부모님과 어디 공원에 놀러간 사진을 보이며 설명하는데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말수가 적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줘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기현 씨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준다는 줄 알았는데 걸그룹 “여자친구”사진을 보여주겠다는거였다. 기현 씨는 벽에 달아둔 캔버스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문방구에서 파는 것 같은 여자친구의 사진첩을 보여줬다. 내가 손을 뻗자 홱 가로챘는데 사전에 묻지 않고 만져서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했다.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면 차라리 속 시원하다. 기현 씨는 여자친구의 사진을 만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자랑은 열심히 했다. 평소 여자친구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지 학우들과 반말로 누구누구가 안경을 썼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재민 씨는 평소 “어”와 “응”의 중간발음으로 긍정하는 대답만 하고 다른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해는 가능하지만 소통은 거의 안되고 글쓰기도 할 수 없다. 초록색 점퍼를 입은 재민 씨 옆에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서 있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을 짚으며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재민 씨는 어, 어. 라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다시 “형이예요?” 라고 물었고 재민 씨는 어. 어. 라고만 대답했다. 내가 다시 “형아?”라고 물으니 어. 어. 하다가 짧게 “엉아.” 라고 대답했다. 누가 사진을 찍어줬냐고 물으니 “음마”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담당복지사에게 오늘 처음으로 단어를 발음했다고 말했더니 담당자가 깜짝 놀라며 자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안 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발표한 내용을 기반으로 글을 썼다. 은혜 씨는 고유명사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재능이 있어보였다. 계속 살펴볼 일이지만 복잡한 기관명, 예를 들어 “한국예술직업전문학교”라는 단어와 거기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의 사업명을 정확하게 종이에 적었다. 보고 온 나도 지금 기억이 잘 안 난다. 동사나 형용사의 활용은 단조롭고 어휘도 몇 개 안되지만 한 번 말해준 것은 바로 바로 습득해 활용하는 능력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단어의 개수를 늘리는 일은 쉬운 일 아닐까. 브리오슈를 설명하는 은혜 씨에게 브리오슈가 무슨 빵이냐고 물으니 “눈사람 같은 빵이예요” 라고 두 어번 반복해서 설명해줬다. 타인의 직유법을 모방하는 것 같은데 다음 수업에는 직유로 말을 걸어봐야겠다. 최근에는 복지관에서 말을 잘 안 한다고 했는데 수업 중에는 활발하게 얘기를 잘 했다.

그림을 그릴 때 보면 기현 씨는 집중력이 금방 떨어지지만 수영 씨는 화면을 꽉 채우고 포스터처럼 진하게 색칠을 다 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승민 씨는 어두운 밤을 파랑색으로 칠했고 사진의 흰 배경도 파란색으로 칠했다. 벽지의 무늬를 부각시켜서 그렸고 그 부분을 따로 설명했다. 말하는 게 유창하고 발표력도 좋다. 승민 씨가 다른 때에도 말할 기회가 많을까 궁금해졌다.

수정 씨는 글을 잘 쓴다. “경련이 있지만 참고 있다.”, “지금 나는 성숙하게 많이 컸다. 내가 크고 점점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적었길래 청평의 강에 놀러갔을 때 강 주변의 느낌에 대해서만 따로 적어달라고 종이를 한 장 더 주었다. 수정 씨는 부끄러워서 입과 얼굴을 자꾸 가리더니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청평에서 느낀 건 파도는 손을 간지럽피우듯이 스쳐지나가고 햇빛은 마치 무대의 조명같이 눈이 부신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나는 수정 씨에게 “시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했고 오늘 수정 씨가 쓴 거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난 뒤 클리어파일에 각자의 결과물을 정리하는데 은혜, 동선 씨는 직접 정리를 다 하고 갔다. 혜은 씨는 나갔다 들어와서 클리어파일에 자기 글과 그림을 다 넣은 다음 의사도 집어넣고 인사도 하고 퇴장했다.

담당복지사와 오늘 수업에 대해 잠시 얘기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나를 쓰윽 끌어안았다. 두 손이 가슴 아래에 와 묶이길래 깍지낀 손을 잡은 채로 복지사와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승민 씨였다. 나는 뒤돌아서 승민씨에게 팔을 벌렸다. 승민씨가 다시 나를 꼭 안아주며 선생님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두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했더니 승민 씨가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더니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며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해줬다. 나도 승민 씨를 따라했다. 복지사 샘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교실을 나왔다. 집에 오는 내내 사랑한다고 말해준 승민 씨 생각을 했다.

스킨십을 좋아하는구나.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체온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 나도 그렇고, 승민 씨도 그렇고.

2018년 5월 16일의 일을 18일에 적다.

 

동화로 쓰는 생애사 – 첫 번째 수업 기록

 

장애인복지관에서 생애사쓰기 강사를 찾는다고 연락이 왔다. 오래전 <뜻밖의여정>이라는 책 작업을 같이 했던 복지관이다. 대상을 물으니 성인발달장애인들이라 했다. 일단 담당자를 만나보기로 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적임자를 찾지 못한다면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겠지만, 깜냥에 안되는 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꼴이 될까 두려웠다.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수년간 발달장애아들과 한 달에 두어 번 만나고 기록한 바는 있으나 내가 발달장애인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담당자에게 물었다. 복지사는 자기가 기준으로 한 것은 생애사쓰기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을 찾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가진 발달장애에 대해 편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식에 대한 의심은 아주 낮은 주파수 같았다. 어떤 친구들이 수업에 오게 되느냐 물었다. 성인발달장애 중에서 쓰기와 읽기가 가능한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복지사는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발달장애인들의 그림을 본 적은 있다. 독특하고 묘한 느낌인데 선이 분명하고 색채가 화사했다.

<동화로 쓰는 생애사>수업에 참여하기로 한 친구들은 20대 이상 성인발달장애인 9명이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참가자도 있지만 쓰기와 읽기가 능숙한 사람도 있었다. 첫 만남에서 참가자들은 큰소리로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먼저 앉은 은혜 씨가 소개를 해달라고 해서 친구들이 다 오면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교실에 들어서서 참가자들의 명단을 받았다. 자폐1급, 지적장애 1급, 2급 등 다양했는데 이들의 양상이 모두 다른 것 같았다. 일단 나는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 수행능력이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건 장애여부를 떠나 모든 수업이 똑같다. 모둠활동을 해야 하는 수업인 경우 상호 의사소통이 얼마나 잘 되는지, 교실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 수업의 경우 반의 분위기가 천차만별인데 평소 담임이 어떤 성향을 보이는지도 큰 영향력이 있다. 참가자들의 언어표현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각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모두 성인이기 때문에 누구 씨, 라고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부르기로 했다. 내 소개를 하자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쉬운 단어를 쓰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며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참가자 중의 몇 명이 손을 내밀어 나에게 악수를 청하길래 나는 자기소개를 할 참가자 옆에 가서 서서 인사를 듣고 메모를 한 다음 소개를 끝내고 앉는 참가자와 한 명씩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말을 하면 참가자들도 반갑습니다. 라고 높은 소리로 말했다.

수첩을 꺼내놓고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이름을 적으며 참가자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 썼다. 오래 전엔 어떤 모임에 가도 순식간에 사람 이름을 외우곤 했는데 10여 년 전부터 그게 전혀 안된다. 이번에는 빨리 이름을 외워야 했다.

한 사람은 자기가 1996년생이라는 걸 강조했으며 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꼭 끼워서 이야기했다. 9명의 발달장애인, 이라고 뭉뚱그리기에 모자란, 모두가 뚜렷한 개성과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우리가 “장애”라고 규정지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평범, 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잣대인지 모르겠으나 비장애인들의 통상적인 의사소통, 주고받는 것들이 약간 상이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비장애인이라고 모두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다. 안녕하세요? 라고 물었을 때, 비장애인인 경우 안녕치 못하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복지관에서 전해준 참가자 자료엔 자폐성 1급과 2급, 지적 1급과 2급, 3급으로 장애등급이 적혀 있었다. 한 명 한명 자기소개를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석 씨는 에, 와 응, 의 중간발음으로 대답만 하는 경우가 많다더니 발표는 하지 못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내가 물어본 질문에 정확하게 잘 대답했다. 자기 이름은 무엇이고, 아빠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아나운서를 좋아한다거나,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거나, 커피 만들 때를 좋아한다는 등 다양한 자기 취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만 보니 몇 명은 나이가 비슷해 서로 진한 친구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여성 발달장애인의 경우 언니 동생 하는 사이도 있었다.

45분 정도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쓰기 능력을 봐야 하는데 이 주제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찰나, 관장님이 들어와 첫 수업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했다. 예전에 뜻밖의 여정 프로젝트 때는 이 기관에서 국장님으로 일하던 분이다. 서글서글하니 잘 생긴 편이고 겸손하고 예의바른 분인데 관장님이 들어오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흥분을 금치 못했다. 수연 씨 같은 경우 볼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고 얼굴이 붉어졌다. 모두들 관장님을 엄청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참가자들에게 관장님은 어떤 사람인지 뭐가 좋은지 이야기 해달라고 했더니 다들 아빠 같고, 친절하다, 는 대답이 나왔다. 수연 씨는 “배려가 깊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수연 씨는 이어서 “배려가 깊은 남자는 여자에게도 잘 해요.”라는 말도 했다. 고급단어가 나온 것에 의의를 두고 수업을 이어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관장님이 들어와서 관장님 이야기를 나눠봤으니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자. 고 했다. 모두들 좋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내가 “이제 무엇무엇을 해볼까요?”라고 물으면 “네 좋아요!”라고 높은 옥타브의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복지사선생님들이 나눠준 흰 종이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잠깐 시간을 둔 다음 종이를 뒤집어서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을 적어보자고 했다. 몇몇 참가자는 연필을 꾹꾹 눌러쓰며 글을 적어갔다. 글쓰기가 어려운 참가자는 봉사자들이 옆에 앉아서 대신 받아써 줬다. 참가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양하게 적었다. 관장님에 대해 쓴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남성 참가자는 상당히 긴 문장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적었다. 중학교 때 전학하게 돼서 복지관을 못 온 적이 있었는데 다시 복지관에 나오게 되어 관장님을 봤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수연 씨는 관장님이 아빠같아서 정말 좋다고 하길래, 나는 그럼 수연 씨 아버지도 정말 좋은 사람이겠네요. 라고 물었다. 수연 씨는 그렇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수연 씨는 좋은 아빠가 있어서 참 행복하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그렇다면서 웃었다.

글씨를 잘 읽지 못하는 채림 씨는 말하는 대로 봉사자가 받아 적었고 그 종이를 들고 일어나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상민 씨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수영 씨에 대해 적으며 나에게 설명을 했다. 무용단 활동을 할 때 같이 장난을 친 게 좋았다고 해서 장난을 주고받는 게 잘 되는 친구냐고 물었더니 장난도 주고받고, 라는 표현을 바로 받아서 적었다. 주현 씨는 계속 손을 흔들면서 혼잣말을 끊임없이 했다. 담당자에게 주현 씨는 모든 이야기의 끝이 아나운서 이야기라는 정보를 받았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고 겁먹지 않고 외국인과도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주현 씨는 들은 대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최선규 아나운서고 김정근, 오상진 아나운서와 자기까지 네 명이 같이 에버랜드를 가는 게 자기 꿈이라고 말했다. 자폐1급이지만 지능이 상당히 높아보인다고 담당복지사에게 물었더니 담당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언어능력이 뛰어나 보였다. 모든 이야기의 끝이 아나운서라는 점도 “말”에 대한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기와 글쓰기 수업을 마치면 미술선생님이 그림 수업을 바로 이어서 진행한다. 그림 선생님은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아이들과 성인발달장애 직업훈련 수업도 진행한 적이 있다. 친절하고 정중한 말투로 수업을 진행했다. 참가자들 모두 그림을 꽤 잘 그렸다. 색칠도 잘 해서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선생님이 참가자들의 그림을 한 장씩 들고 구체적으로 칭찬을 했다. 다들 환히 웃으며 즐거워했다.

첫 시간이라 들뜬 마음이 없지 않았으리라. 긴장했던 나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담당복지사에게 이 참가자들도 날씨 영향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전체적으로 흐트러진다. 노인들은 우울감까지 증폭된다. 담당자가 전해준 참가자 명단엔 스트레스 받을 때 하는 정동행동도 적혀 있다. 수업을 하면서 나 스스로 기억하게 되겠지만 미리 미리 숙지하는 게 좋겠다. 담당자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돌발행동을 하는 참가자에 대해서 물었더니 담당자가 몇 명의 성향과 감정기복에 대해 설명했고 그럴 때는 각자 이런 대처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나는 “비장애인들은 자기감정에 대한 대처법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아 사고를 치기 쉬운데, 자기감정 대처법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첫 시간이라 미술 선생님과 담당복지사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첫 회의 때 물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이 수업을 저에게 맡기신 이유가, 여전히 궁금한데요. 저보다 능력 있는 선생님들이 있으실 텐데, 못 찾으신 건가요?”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는 말씀드렸듯이 생애사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선생님이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다른데서 강의도 많이 하시는 분이 우리 친구들하고도 같이 수업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특수교육을 전공한 글쓰기 전문 선생님은 없고요. 예체능쪽은 대부분 치료로 접근하세요. 저는 치료도 필요하지만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담당자가 말을 아끼려 애쓴다는 게 느껴졌다.

치료도 필요하지만 교육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자꾸 교정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비장애인들이 받는 교육을 장애인들도 동등하게 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읽혔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런 수업을 장기간 진행하면 강사료를 떠나 내가 공부하는 게 무척 많다. 그건 강사료로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회가 쉽게 오지도 않는 일이다. 나는 숨김없이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고 담당자에게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며, 올 한 해, 이 수업을 통해 나도 크게 자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그리 생각해주시니 마음이 놓인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항상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파고들다 보면 그 질문이 왜 생겨났는지 맥락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태 해왔던 수많은 수업을 기록하겠다면서 한 번도 제대로 기록한 적 없다. 수업은 화요일에 있었고 지금은 목요일 밤인데, 이틀 동안 다른 일이 밀려 이 파일을 펴놓고 띄엄띄엄 적었다. 일단 적기로 한다. 생각은 묵히면서 다시 해보기로 한다.

아홉 명의 참가자들을 나도 이제 “학우”라 불러볼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글을 공개하면 발달장애가 낯선 사람들이 세계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삶에게 응원을 보내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일을 시작한다. 10월 말까지 우리 모두 무탈하길.

2018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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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이 글을 보실 수 있는 분들 중에 해당 기관 이용자가 적지 않아 이름을 모두 바꿔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