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팔고 버티고

050209_dong07

 

2층의 키가 작은 남자는 남씨였던가, 그 사람은 화가라고 했다. 그는 키가 작으니, 창문 없는 고시원 방이 작지 않을 거 같았다. 키 작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일도 생긴다. 유화에 쓰는 특유의 역한 기름내 풍기며 그가 그리는 그림을 7호실 오 씨는 “나까마 그림”이라고 불렀다. 그는 두어 달 고시원에 있다가 떠난 것 같다. 낮에는 막노동을 했고 가끔 일이 없는 날, 그러니까 비가 오거나, 노동을 팔지 못하고 봉고차에 실려 가지 못한 그런 날, 그는 고시원 방에서 물감과 테라핀 냄새를 풍겨가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연장이 들었을 거 같지도 않은 반달모양의 가방을 메고 새벽에 고시원을 나섰다. 남대문 경찰서를 지나 퇴계로쪽 남대문 시장 앞 육교 아래 가면 드럼통에 군불을 땐 사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인력시장이 짧게 형성되면 거기 모인 사내들은 차례도 순번도 맥락도 이유도 없이, 자기 자신을 가장 늠름하게 내보이려 애쓰다가 봉고차에 실려 품을 팔러 갔다. 하루를 먹고 살 수 없는 날, 나까마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어디론가 또 팔려간다 했다.
 
품을 팔고, 그림을 팔고, 생명을 박박 갈아 하루를 버티면 또 다시 하루가 왔다.
우물에 빠져 둔탁한 머리통이 그 바닥에 닿을 때, 운 좋게 다른 세상에 펼쳐지면 좋겠다고, 그가 이사나가는 짐을 보며 생각했다.
 
1995년쯤의 이야기와 2005년쯤의 사진을 가지고
2017년에 쓴다.
사진은 용산구 동자동.

한 사람이야기 1- 김여사

김여사가 3층에 옥탑하나를 얹은 건물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1층에는 서너개의 점포에 세를 주고 2층엔 살림집이 세 가구 정도 들어올 수 있었다. 지하도 꽤 평수가 넓어 어떻게든 세를 낼 수 있을터였다.
동네엔 평수 작은 빌라들이 촘촘히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퍼와 시장이 생겨났다.
근처엔 더러운 개천이 흘렀고 옥상에 올라 보면 산이 보였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어도 그리운 것은 변함 없었다. 구태여 그립다는 단어로 표현할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한가롭지도 않았다. 돈을 쌓아놓고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라 어느정도의 부채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부쩍 자라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할 터였다.

옆 건물엔 두서너살 많은 여자가 1층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올린 머리를 한화려한 여자였다. 건물을 올릴 때 일꾼들 찬을 해다 나르곤 하면 힐끔힐끔 들여다 보는 게 영 거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건물이 한복판에 들어선다며 입방정을 떠는 모양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그닥 싫지도 않았다.

건물을 다 짓고 아들 셋을 앞세우고 이사하는 날 옆 집의 올린머리 여자는 빤히 식구들이 짐을 나르고 일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내리 보고 있었다. 어찌됬든 이웃간이니 인사나 나눠볼까도 싶었지만 놀란 괭이눈 같기도 하고 째진 메기입같기도 한 게 영 밥맛이 떨어져 아는 척 할 맘이 싹 가셨다.

일 년쯤 지난 뒤에 옆 집 여자는 김여사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고 때때로 불쾌한 말을 서슴치 않았으나 지척에 사는 입장에 쓴 소리 하거나 얼굴 붉히기도 싫어 참 특색있는 인물이다 생각하고 지냈다.

“나는 자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세상에 저 여자는 뭔 복이 있어 저렇게 새파란 나이에 이런 삐까뻔쩍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오나 하고 빤히 봤다니까.”

옆집여자가 1년쯤 지나 김여사에게 칭찬이랍시고 한 얘기였다. 올 때마다 빈 손으로 와서 이런 저런 동네 흉이나 늘어놓고 가는 옆집 여자였지만 김여사는 새파란 나이에 뭔 복이 있어, 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그간 부엌없는 집에서, 화장실 없는 집에서 전기 아껴가며 애들 눈 버려가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옆집여자에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편하게 살아온 여편네로 알아주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김여사는 헤헤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 치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소란스런 옆집 여자가 감색 자켓을 하나 빌려서 돌아가고 난 뒤였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다 큰 아들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빈 집으로 긴 햇살이 들이치는 날이었다.

– 하루종일 생각나는 이야기라 휴대폰으로 적어봄..
좀 진지하게 써볼 걸 그랬나..

 

2014.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