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
#1.
1970년대 세시봉으로 대표되는 라이브무대. 무명이거나 초보이거나, 작은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들이 있었습니다. 엄혹한 시절엔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고, 풍요로운 시절엔 독립적인 음악을 창작하거나 모사하며,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1990년대 문민정부의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훨씬 더 방대해졌습니다. 라이브카페와 맥주집에서도 쉽게 라이브공연을 볼 수 있었고, 무명가수들의 등용문이기도 했습니다.
1997년 금융위기 전, 이미 불경기가 시작되었고 성업하던 라이브무대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만의 연주를 선보였던 무명의 뮤지션들은 취객들의 반주자가 되어 지하로, 지하로 흩어졌습니다.
#2.
1992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평촌신도시는 주거지구와 상업지구, 녹지와 공공기관 부지가 정확히 구분되었습니다. 신도시 입주로 경제력이 상승했고 다양한 형태의 밤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불건전한 업소가 차츰 퇴출되고 평촌역과 범계역은 공유의 특색을 갖게 되었습니다.
평촌역은 특히 “라이브”라는 간판을 건 업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가라오케라고 했던 공개된 홀에서 누구나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신청하고 부를 수 있는 업소입니다. 이곳에는 오래된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으며 실력있는 연주자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밴드마스터’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멀리서는 90년대부터지만, 요즘은 반주법을 배워 새롭게 진출하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공연무대가 사라지는 사회에서 어쨌거나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3.
외부에서 비싼 개런티를 주고 초청하는 가수보다, 지역 내에 숨어있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평촌역의 라이브 무대에서 반주를 하는 밴드마스터들이 무대에 오를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사실, 90년대 라이브무대에 있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진 제 입장에서는 옛 동지들과 저의 한 시절에 대한 회복의 의미도 있습니다.
#4.
지역 축제는 자치의 꽃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고 숨어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평촌역상가의 번영을 함께 만들어 온 밴드마스터를 찾습니다.
이번 행사는 9월 27일부터 이어지는 안양춤축제를 축하하는 의미와 춤축제 본무대에 못 올라가는 지역민의 프린지 공연의 의미도 담아, 9월 26일, 오후 5시, 평촌역상가 중앙무대에서 펼쳐집니다.
기획을 흔쾌히 수락해주신 평촌역상가연합회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