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다시 오면

1.

아침일찍 욕실공사를 맡은 업체 사장님이 와서 콜타르와 비슷한 방수액을 바르고 갔다.
새벽까지 이제훈, 최우식, 박정민, 안재홍이 나오는 <사냥의 시간>을 절반정도 보다가 잤다. 첫 장면에 황폐해진 서울의 소공로가 나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저 풍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길 건너 목욕탕은 찜질방에 없어 한 번도 안 가봤다. 들어가니 매표소에 사람은 없고 무인발권기가 있었다. 아무리 코로나시대라도, 매일 목욕탕을 들르지 않으면 밥을 굶은 것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오늘도 너댓명의 직원과 너댓명의 손님이 있었다. 정기권을 끊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직원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목욕탕은 어딜가나 늘 뉴스를 틀어놓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3단계로 빨리 가야 한다고 봐.”
“뭐 먹고 살으라고.”
“딱 2주만 하고 빨리 잡자는거지. 홍콩이 그렇게 잡았잖아.”
“교회가 문제야 교회가.”
“교회 소모임을 다 못하게 해야돼.”
“아니 근데, 지금도 응? 이 와중에도 자기들은 병이 안 걸린다고 하잖아. 교회 다니는 분들은 그래.”
“아휴 그러게나 말이야. 교회를 싹 다 닫게 해야돼.”

격한 발언은 없었지만, 교회가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걸 들으니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하면서 침 튀기는 사람은 이 안에 없겠구나.
기독교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니, 이제 이 나라의 기독교는 끝까지 온 거 같다.

2.

원두가 떨어져서 고심 끝에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가서 블렌드 원두를 샀다. 블렌드 원두는 200g에 오천원이다. 이집은 원두를 살 때마다 커피 한 잔을 내려준다. 오늘도 뭘 드릴까요? 묻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았다. 신 나서 사진도 한 방 찍고 편의점에 들렀다. 아침거리로 간단하게 뭘 살까 고민하다가 마땅한 게 없어서 담배만 두 갑 샀다. 사장님이 아이와 통화중이었다.
“일어났어? 밥 차려놓은 거 먹고. 수업 듣고, 영어 숙제 하라고.”
나는 씩 웃음이 나서 우리 아들은 아직도 자고 있다고 얘기했다.
중학생라 새벽 서너시까지 안 자고 오후 한 시나 되야 일어난다고 했더니 “밥 차려놔도 챙겨먹질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편의점을 나왔더니 자전거가 무거운 가방 때문에 자빠져 있었다. 소중하게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바닥에 다 뿌려졌다.
자전거를 일으키는데 노년의 남녀가 헤어지며 “코로나 끝나면 밥 한 번 먹자.”는 대화를 하는 게 들렸다.

사무실에 들어와 쏟아진 아메리카노를 대신해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데 교육지원청 담당장학사에게 카톡이 왔다.
“국장님, 뉴스 들으셨지요? 9.11까지 원격수업이요. 저희도 방송을 통해 본 거라, 학교에서도 지금 고민이 많을 거 같습니다.”

3.

우리는 절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를 차차 늘려나갔고, 대면이 불필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도 청자의 표정이 보이면 어떤 생각을 하며 듣고 있는지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느끼는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게 긍정적이라 볼 수 있을까.
모두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수도권 병상이 7개 남았다는 뉴스 속보가 도착했다.
본 게임이 시작된 느낌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의 전쟁인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은 자꾸 “좋은 날 다시 오면”이라고 말한다.
그 좋은 날은 이제 끝난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요일 밤, 세신

일요일 밤인데 이해할 수 없을만큼 목욕탕에 사람이 많았다. 일요일 낮까지는 그럴만 한데, 원래 월요일 출근 전에는 어디나 썰렁한 법 아닌가. 밤 10시가 다 되어 들어섰는데 꼬맹이들도 엄청 많고 가족단위 입장객이 많았다. 다들 가족단위로 어디 놀러갔다가 비오고 으슬으슬하니 단체로 목욕이나 하고 가기로 맘 먹은 걸까.

들어서자마자 세신을 할 요량으로 오만원짜리 지폐를 카운터에서 만원짜리 다섯 장으로 바꿔 장농열쇠로 돌돌 싸맸다.

내가 가는 목욕탕에서 세신을 맡기는 규칙이다. 지폐 두 장을 돌돌 말아 장농열쇠로 싸서 세신관리사들이 있는 코너 창가 선반에 줄을 세워두면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불러준다. 이곳의 세신관리사는 평균 다섯 명 정도, 2교대로 일하는데 대부분 자정에는 퇴근하고 조금 일찍 끝나거나 조금 늦게 끝나거나 1시간 정도 변동이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날엔 1시까지도 일을 한다. 아주 손님이 적은 날에는 두 명 정도만 일을 하고 있는데 출근을 해서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다섯 개의 세신베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편이다. 인근에 다른 찜질방+사우나가 2km 정도 떨어진 곳에 두 세개씩 있지만 여기가 제일 깨끗해서 자주 찾는다.

열쇠를 올려놓으려고 김이 서린 안경을 내리면서 살살 걸어가 열쇠 놓는 곳을 보니 열쇠가 10개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40분 정도 넉넉하게 여러 개의 탕을 돌며 쉴 예정이었기에 나는 일요일 저녁이니 40분쯤 있다가 불러달라고 얘기하려고 여유있게 갔는데 낭패다. 이러면 순서대로 해도 40분 넘어서야 내 차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목욕탕에 가면 대부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긴다. 그냥 귀찮아서, 라는 핑계는 너무 구차하니까 내가 왜 세신을 포기하지 않느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 있다. 때 미는 게 너무 힘들면 안 밀면 될 거 아닌가. 안 밀어도 안 죽는다. 때 미는 게 피부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설도 있다. 애를 낳고 난 다음부터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기 시작했는데 내 스스로 내 몸을 닦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야무지기 때문이었다. 애가 어릴 때는 녹초가 되어서 머리 감는 것도 기력이 딸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 세신관리사는 지치지 않고 구석구석 내 몸을 살펴주니 얼마나 좋은가.

어떤 세신관리사는 나에게 유방에 멍울이 잡히는 것 같다 해서 병원을 갔다가 유선염 진단을 받기도 했다. 세신관리사는 하루 종일 남의 몸을 만지게 된다. 세상 수만가지 사람들이 벌거벗고 그 앞에 드러눕는다. 어떤 단서도 없다. 가끔 악세사리를 했거나 문신이 있는 경우를 빼고 대체적으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세신관리사를 만난다. 그들은 벌거벗은 몸을 만지며 삶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고 앉아 있는 일을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여자들만 가득한 날 것의 공간이라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이 한 사람을 만나면 대략의 역사를 훑어내는 능력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직업이란 게 그렇다. 사람을 대하다보면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몸에 자기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내 다리를 움직이면서 관절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거고 어깨를 두들기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는 걸 유추할 것이다. 나는 이들의 전문성을 믿는다. 이들이 병원 가보라는 조언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어서 손해봤다는 사람 없다. 물론, 가끔, 마사지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이 좀 난감할 때도 있다.

수년전, 그날도 세신관리사에게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맨 몸으로 드러누우면 시력이 나빠 사방 분간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좋은데 문득 누가 날 이렇게 정성스럽게 씻겨줬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기복이 커서 일관성 없는 육아로 가끔 학대하고 가끔 과하게 상냥했던 엄마는 내가 세 살일 때 혼자 머리를 못 감는다고 욕조에 거꾸로 처박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목욕이 공포가 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데, 나는 아랑곳없이 물을 좋아했고 여전히 목욕하는 걸 즐긴다. 사주에 물이 적어서 그렇다나. 사주 말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누군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거나, 아니면 그 이전에 지독하게 앓았을 때도 극진한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한 달에 두 세번쯤 세신관리사에게 2만원을 내고 때를 미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해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박산호 샘의 책 제목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나에겐 그정도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업가가 되어 돈을 잘 벌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수 년전에 “마흔에 가까울 수록 타인의 돌봄을 사서라도 챙길 필요가 있다.”라고 한 말도 나의 이런 생활습관에 좋은 핑계가 된다.

아무튼 오늘은 대기가 길 것이라 한참을 탕을 오갔는데 1시간이 가까워지자 지루할 뿐 아니라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때를 불릴려면 계속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세신을 받기가 쉬운데 이벤트탕이나 약탕에 들어가면 몸이 미끌거려 때가 잘 안나온다고 세신관리사들이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잔소리도 달갑게 받는다. 이제는 나에게 잔소리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잔소리가 반가울 때도 있다.

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침대쪽에 가서 기웃거리며 물었더니 순서가 다 되었으니 두 명 정도 내려가면 부르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의 내 번호는 223번. 223번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다다다 빠르게 걸어가서 착지 완료, 자세를 잡고 세신관리사가 딱 폼을 잡았는데 관리사가 부른 번호는 223번이 아니고 213번이었다며, 213번 임자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관리사가 그냥 있으라며 됐다고 했다.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얼핏 듣기로 (안경을 벗으면 눈치를 살피지 못해 귀도 잘 안 들린다) 213번은 5천원을 추가하는 뭔가 다른 코스였던 모양. 그러니 나를 받은 세신관리사는 뚱뚱해서 밀기 힘든데다가 5천원을 잃어버린 심정이었을게다. 때가 안 불었느니, 소리를 잘 듣고 왔어야느니 관리사의 심기불편함이 전해졌다.

바빴다는 얘기다. 이 일은 사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손님이 밀린다고 일할 사람을 더 불러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서비스업이라는 게 그렇듯이 말이다.

“얼굴 비누칠 해드려?”

이 말은 ‘에지간하면 하지 말고 그냥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뜻이고,

“뒤꿈치 밀어드려?” 라는 말은 ‘이것도 바쁘니까 생략하고 내려가서 니가 알아서 했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나는 둘 다 생략해도 좋다고 했지만 관리사는 굳이 발뒤꿈치를 조금만 밀어주었다. 시늉에 가까웠다. 그 정도는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낫다. 간지러워서 원. 한마디 한 마디 말투나, 손놀림이 거칠었다. 아주 짜증이 나서 죽겠는 모양이다. 이 관리사는 이미 내가 여러 번 세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차례 7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으라고 권했고 그때마다 내가 사양했었다. 딱 한 번 5만원짜리 마사지를 받은 적 있는데 그때는 정말 어깨와 목이 너무 안 좋아 오랫동안 병원을 다니던 차였고 이 관리사에게 안마를 받고 나서 하루 정도 시원하게 지내기도 했다. 돈도 돈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매번 사양했었다. 손이 야무지고 매운 편인데 체격이 작고 날렵하다. 나는 이 목욕탕에 1년 넘게 꼬박꼬박 다니며 몇 명의 성향을 파악했는데 이 관리사는 일을 잘 하고 돈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얼굴비누칠이나 간단한 얼굴마사지를 생략하고 세신베드에서 내려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목욕탕을 나가 탈의실에서 내 옷장을 열고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카운터에 가서 5천원짜리 두 개로 바꿨다. 그리고는 5천원짜리를 작게 접어서 다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나를 방금 내려보낸 관리사는 새 손님을 받아 열심히 때를 밀고 있었다. 나는 뿌연 안경을 들어올려 눈을 마주친 다음 그 이의 오일통 아래에 오천원짜리를 넣었다.

나를 빤히 보던 그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이를 어째.”

“덩치값이예요.” 나는 호기롭게 웃으며 다시 인사를 했다. 돌아서는 나에게 그이는 “고마워서 어째. 바빠서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고마워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천원에 그이의 미소를 샀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밤 편안하게 잠들 것이고 그이도 어딘가 억울한 마음을 조금 달랬을지도 모른다. 개뿔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누군가를 화나게 한 것을 수습했다.’는 변명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말하려면 지갑을 열면 되고, 그러기 위해서 또 열나게 일을 하는 것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은 나에게 적잖은 타격이 된다. 사실 세상 이치가 합리적이지 않은 게 많다. 택배기사가 20kg 짜리 쌀을 나르거나 여섯 개 들이 생수를 배달하면 돈을 더 받는 게 옳은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지 않고, 나처럼 살이 많은 사람은 일 해야 하는 면적이 넓어지니 돈을 더 받아도 되겠지만, ‘뚱뚱하다고 차별하냐’는 논리가 있을테니 그냥 퉁쳐서 간다.

푼돈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라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일하는 것보다 대가가 적을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푼돈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간혹 나는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 푼돈으로 짧은 순간의 마음을 사기도 한다. 세상에 선한 게 있을까. 나이를 먹어버린 자들에게.

연정언니

숭고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하다.
다 큰 성인의 벌거벗은 몸을 앞으로 뒤로 옆으로.
겨드랑이와 항문주변까지 구석구석 밀어내어 피부의 죽어버린 껍질을 벗겨내는 일.
단지 완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고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힘의 조절이다.
힘을 빼야 할 때 빼고, 강하게 밀어야 할 때 밀어야 하는 것일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크게 실수하고 잘 넘어지거나
친구간에 크게 싸움이 나고 우격다짐을 하는 일이 그런 이유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도,
돈을 받는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다거나,
누군가에게 살뜰한 아낌없는 대접을 받는 일은,
천국에 와 있는 듯한 몽롱함까지 가져다 준다.

인체를 이해하고, 때로는 사랑하기도 하리라.
청결함에 대해서, 건강함에 대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노동의 숭고함에 대해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에 대해서,
물과 기름과 땀의 구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겪고 느끼고 지켜보았을까.

체구가 작은 그녀는 나에게 더 큰 돈을 받고 뜨거운 타올을 얹어 온 근육을 풀어내고
밟고 문지르고 두들기고 눌러주기를 한 시간여.
고개를 숙일 때마다 찢어질 거 같던 등짝의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쥐약을 먹고 일한다는 그녀의 깔깔대는 웃음은
박카스 한 병에 다시 일어나는 일상이며,
맨소래담과 잘게 썰은 오이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기술자다.

5천원의 팁을 얹어 드리며 꾸벅 인사를 한 나는 맨몸뚱이였는데
갸날픈 체구의 검은 속옷을 입고 흰 타올을 허리에 두른 그녀가 말하기를
일주일은 주간, 일주일은 야간이니 전화번호를 가져가라 한다.
그녀의 호칭은 연정언니.
사우나파크의 세신관리사.

2013. 2. 2.

목욕탕 단상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체질상 당분간 온몸을 담그는 탕목욕이나 사우나를 피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물에 몸을 푹 담그거나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쭉쭉 빼는 걸 좋아한다.
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제일 조용한 찜질방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디가 막혔는지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몇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60℃의 방에서 중년남녀가 다리를 베고 누워 다정한 말을 속삭인다.
어디를 놀러갈까 이야기를 한다.
정상적 부부관계로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 씁쓸하다.
부부가 된 지 10년이 된 사람들이 저리 다정한 경우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가 일종의 “경제공동체”의 속성을 더 많이 띄고 있다는 얘기다.

2.

찜질방에서 여탕에서 이어지는 통로에 여성 전용 수면방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는 자리가 있고 불가마가 있다.
여기까지는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 못하는데 많은 중년여성들이 불가마를 좋아하는 듯 하다.
불가마에서 막바로 나왔는가 웃통을 벗고 앉아 있는 여자들이 많다.
여자 목욕탕에서는 속옷을 파는 곳도 더러 있는데 이 공간에도 그런 곳이 있다.
속옷판매대의 윗쪽에 전기공사가 필요한 모양인지
아저씨 하나가 입구에서 뻘쭘거리다 전기공사를 하러 들어간다.
여자들은 등을 돌렸으나 옷을 입진 않았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여성성 따위, 이제 모두 개나 줘버린 모습인가.
추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판단을 하진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성욕을 일으키는 가슴이 아니라 생명을 낳아 기른 어미의 젖이 된 늙어가는 여자들이
쳐진 젖가슴을 내놓고 땀을 식히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연옥의 어느 한 복도처럼.

3.

목욕탕으로 내려가 작은 노천탕에 앉아 쉼호흡을 한다.
보호자 명목으로 최근 병원을 하도 다녀서인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심장이 계속 벌렁거려 전신을 담그지 않는다.
복식호흡만 잘해도 몸이 많이 좋아진대..하던 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3.

벗은 몸의 사람들을 가만히 본다.
사람의 몸을 봐도 저 사람은 어딘가가 아프구나, 혹은 아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싶다.
잘 발달된 정강이를 가진 여자,
눈썹과 아이라인에 문신을 한 여자,
가슴이 납작한 여자
출산후 군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여자
보기에도 싱그러운 어린 여자
그리고

모두가 벌거벗어 똑같이 평등한 가운데서도
멋스럽게 커다란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리고
금색의 천을 허리에 두르고 걷고 있는 날렵한 40대 후반의 여자가 있다.
다 벗었어도 멋을 부리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능력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설령 본인의 컴플렉스의 발현이거나
삶의 즐거움이거나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가치라 하더라도.
그저 그럴 뿐이다.

4.

세신관리사, 혹은 목욕관리사라고 이제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이 있다.
한 때 우리는 그녀들을 때밀이아줌마라고 불렀다.
때밀이아줌마들은 검은 레이스로 된 속옷을 입는다.
구분을 하기 위해서다.
하루종일 젖은 몸, 축축한 곳에서, 아무리 레이스로 되었다 하더라도, 속옷을 입고 있는다는 건 에지간히 익숙해지기 전엔 곤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가끔, 아니 가끔보다 조금 더 자주,
나는 전문가에게 내 몸을 맡긴다.
내 엄마도 이렇게 나를 샅샅이 씻겨주진 않았지.
그렇다고 무슨 모성따위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녀들의 노동이, 매우 숭고하다는 생각을 한다.
돈과 노동을 교환하는 것이지만, 이다지도 쑥쓰럽고 부끄러운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노동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는가 늘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내 삶이 너무 느슨해져 있기 때문인가.
아니, 늘 분주하나, 내 스스로의 성취감을 이룰 일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삶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환경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전투적으로 뛰어드는 내 열정이 부족해서인가.

문제는 내가 체력을 되찾지 못해서인가
혹은 내가 정신적으로 해이해져서인가.

얼마나 많이 버려야 하는가,
벗겨져 나가는 묵은 시커먼 때들처럼.
얼마나 많이 새로워져야 하는가
얼마나 다시 치열해져야 하는가.

과연 나는 오늘 이따위로 살아도 되는건가.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왜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려 항아리에 담기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시간에 쫒기고 길에 쫒기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가.

생로병사의 한 가운데서
그 모든 것들을 목도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인정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지도
아직은 어렴풋할 뿐이다.

5.

갓 돌지난 어린아기가 탕속을 아장아장 걸으며 좋아한다.
한 손엔 뽀로로를 한 손엔 크롱인형을 들고 제 엄마에게 걸어갔다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가 그저 그 걸음마 하나 하나가 즐겁다고 까르르 웃는다.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벗는다.

나의 생명력이 어디선가 줄줄 새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처연하다.

나는 아직 서른일곱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많이 걸어왔고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고 고달프다.

2011.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