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언니

숭고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하다.
다 큰 성인의 벌거벗은 몸을 앞으로 뒤로 옆으로.
겨드랑이와 항문주변까지 구석구석 밀어내어 피부의 죽어버린 껍질을 벗겨내는 일.
단지 완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고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힘의 조절이다.
힘을 빼야 할 때 빼고, 강하게 밀어야 할 때 밀어야 하는 것일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크게 실수하고 잘 넘어지거나
친구간에 크게 싸움이 나고 우격다짐을 하는 일이 그런 이유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도,
돈을 받는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다거나,
누군가에게 살뜰한 아낌없는 대접을 받는 일은,
천국에 와 있는 듯한 몽롱함까지 가져다 준다.

인체를 이해하고, 때로는 사랑하기도 하리라.
청결함에 대해서, 건강함에 대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노동의 숭고함에 대해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에 대해서,
물과 기름과 땀의 구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겪고 느끼고 지켜보았을까.

체구가 작은 그녀는 나에게 더 큰 돈을 받고 뜨거운 타올을 얹어 온 근육을 풀어내고
밟고 문지르고 두들기고 눌러주기를 한 시간여.
고개를 숙일 때마다 찢어질 거 같던 등짝의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쥐약을 먹고 일한다는 그녀의 깔깔대는 웃음은
박카스 한 병에 다시 일어나는 일상이며,
맨소래담과 잘게 썰은 오이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기술자다.

5천원의 팁을 얹어 드리며 꾸벅 인사를 한 나는 맨몸뚱이였는데
갸날픈 체구의 검은 속옷을 입고 흰 타올을 허리에 두른 그녀가 말하기를
일주일은 주간, 일주일은 야간이니 전화번호를 가져가라 한다.
그녀의 호칭은 연정언니.
사우나파크의 세신관리사.

2013. 2. 2.

특별한 계절

셀프주유소에서 카드를 긁고 있는데 (순서상 카드 먼저 긁고 주유) 주유소 아저씨가 다가오신다.
아저씨가 주유총을 잡으시고 물으신다.
할 줄 알아요?
아저씨 라기엔 연세가 많으신 편.
아버지 뻘도 더 되신 듯 하다.
네! 잘 합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총을 잡다가 놓고 한 번 해보랜다.
익숙하게 걸쇠를 딱 받쳐놓으니 어 정말 할 줄 아시네 하신다.
예전에 알바도 했었습니다. 오래전에요.
아저씨가 씩 웃으신다. 그러냐고.
한 16년전쯤이죠. 라고 했더니 그 때도 셀프주유소가 있었냐고 물으신다.
아니요.
순간, 경유차와 휘발유차를 구별하고 차종마나 주유구가 달랐던 걸 기억하느라 종종걸음치던 그 겨울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다시 물으신다.
그럼 한 서른 대여섯됬나?
서른 여덟입니다.
아 그럼 토끼띠인가? 하셔서 네!
하니 아저씨 아들이 토끼띠라 잘 아신다 하신다.
우리 아들은 토끼띠 6월 생인데..
저는 음력으로는 7월입니다.
한 달 늦게 나왔구만 하던 아저씨의 주름진 얼굴 위로 다시 한 문장이 지나간다.

그 해 여름은 진짜 더웠지..
애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37년전 여름, 더웠던 것을 기억하는 노년의 남자는, 당시 젊은 아빠로 아내가 만삭으로 힘겹게 땀을 흘리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말 더웠다고 말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산같이 쌓인 머슴밥을 막던 겨울의 공기가 코끝에 스치던 그 계절도 떠오른다.

한여름의 열기를 기억한 늙어가는 남자와
한겨울의 공기를 기억하는 내가 주유소에서 노란 노즐을 잡고 섰다.

지금은 봄,
이 역시 또 누군가에겐 특별한, 아주 특별한, 4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그런 공기겠지..

2012.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