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2 – 김언니

김언니는 오늘도 소방서 앞에서 골목을 올라간다.
어이 김언니 오늘도 한 잔?
호객을 하는 사내가 웃으며 말한다. 김언니의 눈동자는 이미 풀어졌고, 머리도 길게 풀어졌다. 앞이 흔들리는지 걷다가 눈을 부릅떴다. 김언니는 눈이 컸다. 눈썹도 짙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인데 얼굴크기도 작지 않았다. 걸을 때는 늘 팔자로 걸었다. 작지 않은 키에 어깨가 단단하여 힘이 좋아 보이는 체형이었다. 김언니를 보고 다들 남자같다고 했다. 매우 선명한 이목구비에 단단한 몸, 종아리와 장단지도 보기 좋은 운동선수 같았다. 목소리도 크고 우렁찼으며 손을 들고 인사를 할 때뿐 아니라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을 때도 늘 당당했다. 술에 취해 손을 들어 경례를 붙이며 크게 말하곤 했다. “꼬메시따아쓰!” 술이 더 취하면 크게 웃으며 갑자기 정색을 하곤 “아스딸라 비스따 베이베!” 라고 말하곤 했다. 김언니가 하는 말은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에서 6년간 학교를 다녔다 했다. 그 누구도 김언니가 어느 과정을 공부했는지 알지 못했다. 김언니가 졸업을 했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들은 자가 없었다. 김언니와 같이 살던 룸메이트는 김언니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김언니가 한인교회에서 학생회를 이끌었다는 증거를 여럿 찾아내었다. 김언니는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지 않았고 술을 마셨다. 그건 룸메이트가 김언니를 만나기 전부터였을 것이다. 처음 만난 날에도 카스 한 병을 들고 와 따라 마셨다.
“나는 나발은 안 불어. 맥주는 컵에 따라 마셔야지.” 김언니는 맛있게 맥주를 마셨다.
햄버거를 나르고 스테이크를 굽는 저녁이 끝나면 김언니는 짧은 치마 유니폼에 붙은 돈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네 장을 꺼내 바에 올려놓았다. 바텐더 여자는 아무 대답 없이 카스 맥주와 시원한 맥주잔을 내어주었다. 딱 한 병을 마시고 김언니는 옷을 갈아입었다. 가게를 나서 높은 언덕을 올라가 다른 바에 도착했다. 담배를 물고 춤을 추다가 다시 바에 앉아 카스맥주를 마셨다. 언제부턴가 김언니는 500cc 맥주 한 잔과 조니워커 레드를 같이 시켰다. 조니워커 레드 한 샷이 술이면 생맥주는 안주였다. 집열쇠는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에겐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동생은 매일 저녁 집에 있었으므로, 집 열쇠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김언니! 신발은?”
검은 조끼를 입은 나이트 웨이터가 김언니를 불렀다.
김언니는 술이 너끈히 취한 듯 커다란 눈을 끔벅거렸다. 길게 풀어헤진 웨이브진 머리는 아주 까맸다. 이마에 손을 얹더니 씨발…이라고 읖조렸다. 웨이터는 더 말을 걸지 않고 김언니를 가만히 보았다.
김언니가 맨발로 언덕을 올라갔다. 웨이터가 옆에 선 사내와 김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뭐라고 말을 했다. 길가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이 김언니를 알았다. 아무도 김언니에게 신발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멍하니 김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왓쎱?!하고 웃으며 지나가는 흑인들도,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는 백인들도 김언니가 휘청대며 팔자걸음으로 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김언니가 언덕을 올라 맨 꼭대기 작은 샤시문을 열었다. 이목구비가 아주 조밀하고 작고 예쁜 여자가 굵은 파마 머리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형광등이 밝게 켜진 바에 앉은 여자가 김언니를 빤히 보았다.
 “미친년. 신발은 어쩌고?!”
 “씨발…” 김언니는 탁자위에 엎드렸다. 담배를 피우던 여자는 카스 맥주 한 병과 맥주컵을 하나 꺼냈다. 엎드린 김언니의 앞에 앉은 여자가 맥주잔에 맥주를 따랐다.
밖에는 소란스런 음악소리가 들렸다. 김언니는 코를 골기 시작했고 여자는 잔에 따른 맥주를 마셨다.
2014. 6. 29.

한 사람이야기 1- 김여사

김여사가 3층에 옥탑하나를 얹은 건물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1층에는 서너개의 점포에 세를 주고 2층엔 살림집이 세 가구 정도 들어올 수 있었다. 지하도 꽤 평수가 넓어 어떻게든 세를 낼 수 있을터였다.
동네엔 평수 작은 빌라들이 촘촘히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퍼와 시장이 생겨났다.
근처엔 더러운 개천이 흘렀고 옥상에 올라 보면 산이 보였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어도 그리운 것은 변함 없었다. 구태여 그립다는 단어로 표현할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한가롭지도 않았다. 돈을 쌓아놓고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라 어느정도의 부채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부쩍 자라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할 터였다.

옆 건물엔 두서너살 많은 여자가 1층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올린 머리를 한화려한 여자였다. 건물을 올릴 때 일꾼들 찬을 해다 나르곤 하면 힐끔힐끔 들여다 보는 게 영 거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건물이 한복판에 들어선다며 입방정을 떠는 모양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그닥 싫지도 않았다.

건물을 다 짓고 아들 셋을 앞세우고 이사하는 날 옆 집의 올린머리 여자는 빤히 식구들이 짐을 나르고 일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내리 보고 있었다. 어찌됬든 이웃간이니 인사나 나눠볼까도 싶었지만 놀란 괭이눈 같기도 하고 째진 메기입같기도 한 게 영 밥맛이 떨어져 아는 척 할 맘이 싹 가셨다.

일 년쯤 지난 뒤에 옆 집 여자는 김여사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고 때때로 불쾌한 말을 서슴치 않았으나 지척에 사는 입장에 쓴 소리 하거나 얼굴 붉히기도 싫어 참 특색있는 인물이다 생각하고 지냈다.

“나는 자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세상에 저 여자는 뭔 복이 있어 저렇게 새파란 나이에 이런 삐까뻔쩍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오나 하고 빤히 봤다니까.”

옆집여자가 1년쯤 지나 김여사에게 칭찬이랍시고 한 얘기였다. 올 때마다 빈 손으로 와서 이런 저런 동네 흉이나 늘어놓고 가는 옆집 여자였지만 김여사는 새파란 나이에 뭔 복이 있어, 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그간 부엌없는 집에서, 화장실 없는 집에서 전기 아껴가며 애들 눈 버려가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옆집여자에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편하게 살아온 여편네로 알아주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김여사는 헤헤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 치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소란스런 옆집 여자가 감색 자켓을 하나 빌려서 돌아가고 난 뒤였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다 큰 아들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빈 집으로 긴 햇살이 들이치는 날이었다.

– 하루종일 생각나는 이야기라 휴대폰으로 적어봄..
좀 진지하게 써볼 걸 그랬나..

 

2014.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