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골목의 풍경

나 보광동 살 때는 집안에 들어와 앉아 있던 놈도 있었어.
반지하 창문 열어놨는데 안방에 마당 수도 틀어서 물 뿌린 놈도 있고,
샤워하는데 목욕탕 창문 여는 놈도 있었어.
그 놈 잡겠다고 머릿수건 두르고 나가서 112 불러 골목에서 내가 아는 온갖 욕을 해제꼈어. 동네 아줌마들이 튀어나와 아가씨 입 한 번 걸죽하다며 박수 쳐줬어.
알잖아 내가 욕 좀 하는 거.

어떤 씨발 개좆같은 새낀지 걸리기만 해봐라 자지를 잘근 잘근 잘라서 젓갈을 담가 니 아가리에 쑤셔 넣어줄테다. 목구녕에서 피를 토할 때까지 발라줄라니까 당장 나와 이 씹새끼야. 좆만한 새끼 어디 비겁하게 좆도 아닌게 나한테 이 지랄을 해?
개좆만도 못한 새끼니까 샤워하는 거나 훔쳐보고 지랄이지 씨발놈아 모가지를 산 채로 따버릴라니까. 내장을 꺼내서 줄넘기를 해버릴라니까.
씨발 새끼 좆을 다 까서 포를 떠버릴라니까 당장 나와!!

경찰이 와서 나를 말렸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하래.
10분 정도 씨발 소리를 수백번은 했을거야.
하도 쉬지 않고 이 목소리로 욕을 해대니까 경찰이 찾아보겠다고 막 움직이더라.

내가 용감해서 소리 질렀을까?
작은 강아지가 큰 개보다 많이 짖어. 딱 그 수준인거지.
나는 무서우면 욕을 해. 눈물보다 욕이 먼저 나와.

경찰이랑 그 새끼가 튄 곳을 찾아 동네를 다 뒤졌어.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 사이에 여자 빤스만 한 무데기 쌓여있더라. 나는 그 동네가 그런 동네인지 알았지.

내가 그때 스물 넷이었어.

대흥동 살 때는 밤에 자고 있는데 방안에 들어와서 불 끄는 놈이 있었어. 불이 딱 꺼지니까 잠에서 깬거야. 동생이랑 나는 반사적으로 자다 일어나 그 새끼 목덜미를 잡았어. 도망가더라. 머리채는 모자를 썼으니 안 잡히고 사람을 잡는다는게 셔츠를 잡았는데 셔츠 단추가 다 튿어져서 도망갔어. 역시 경찰을 부르고 일주일 넘게 경찰이 와서 순찰을 돌았지.

보광동에서도, 대흥동에서도, 경찰이 뭐랬는지 알아?
여기는 워낙 아가씨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이런 일이 많다는거야. 그래서? 그러면 순찰을 더 도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서울시내에서 이렇게 골목 많은 데가 없대. 장난해? 강북에 온 동네가 그런 골목이야. 경찰이 일주일 열흘 와서 순찰 돌아주긴 했어. 나는 파출소 번호를 전화기에 입력해놓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나 지난 번에 그 여자인데 요즘 순찰 안 도시냐고 묻곤 했어.

용감했다고?
만약에 걔들이 칼을 들었으면?
잠든 내 동생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 새끼가 염산을 들었으면?

용기가 필요해?
그런 건 필요치 않아.
난도질 당하고 죽지도 못한 채 살아남을 수도 있는 문제야.

나이 먹을 만치 먹고 애 낳고 평촌에 와서 살 때야.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는데 펜스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가 뭘 물어. 몇 가지 대답을 해줬더니 그 새끼가 뭐랬는지 알아?
아줌마 나랑 연애 좀 할래요?
미친 호로새끼 내가 왜 니랑 연애를 해?
질문에 대답해주면 연애하냐?

세상에 그런 새끼가 다 있냐니.
수두룩 빽빽한 게 그런 새끼들이야.

어떤 심정이냐고?
내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어.
모조리 다. 사라지라고.

2019. 6. 1.

 

누군가에겐 낭만적으로 보일, 보광동의 골목 (2014년 9월)

맥락 없는 두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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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구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에게 큣대를 바이올린 활이라 생각하라고 말했다. 왼손으로 지판을 잡고 오른손은 힘 있되 유연하게.
오랫만에 큣대를 잡아보니 정말 그랬다. 우연하게 비슷한 원리들이 있다. 어깨에 힘을 뺀다거나,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다거나, 손가락의 안 쓰던 근육을 쓴다거나.

물론 중딩은 바이올린 활을 어떻게 잡는지 모른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생각해보니 바이올린 레슨 받은지가 꽤 되었다. 4년 되었나. 지금은 스즈키 7권까지 하다가 다음 단계는 너무 어렵고 지루해진다며 모짜르트와 하이든 콘체르토를 연습하고 있다. 어디가서도 절대 연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소리를 자랑할 수 있다. 그동안 레슨은 대여섯 번 정도 빼먹은 듯 하다. 선생님이 꾸준히 와주시니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쌓인다.

친구가 다시 진료를 잘 받겠다 결심한 걸 칭찬했다. 갑자기 정신분석을 30개월 받은 게 떠올랐다. 그 긴 걸 어찌 했나. 빼먹은 건 두 세번 정도였다. 지금도 수요일 오전 10시는, 어딘가 가야 하는 낙인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지치고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중단하면 언제 죽어도 모를 거라 했던 것 같다.

어젯 밤엔 세수를 하다가 지역사회에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30대였다는 걸 깨달았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입니다, 라고 처음 말한 건 2014년이었다. 2012년 관양시장을 처음으로 지금까지, 나는 어느 덧 마흔 다섯이 되었다.

아지를 처음 만난 건 2004년이고, 설이를 처음 만난 건 2010년이다. 시간은 알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가고 나는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한숨 쉰다. 적당히 내 엉망인 일상을 외면하면서 천천히 먼저 간 자들의 길을 따라간다.

2.
수 년만에 돈의동 골목을 찾아갔다. 복지관의 간판이 바뀌었고 복지관 바로 앞에는 새로 기념패를 만드는 가게가 열렸는데 오늘이 개업식이었나보다. 각종 모터사이클 클럽에서 보낸 화환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의 화분과 멋진 오토바이를 구경하다가 골목을 돌아나왔다.

오늘 창신동에서 만난 할매들은 “여 와서 산지 얼마 안돼”라고 했다. 얼마나 되셨나 물었더니 얼마 안된다는 게 45년이라 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45년은 얼마 안 되는 걸로 느껴질까.

무엇이 그리운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아무 것도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새로 산 두 권의 책이 바닥에 그대로 있다. 마을장터 행사의 가방을 아직도 풀지 않았다. 과거는 그대로 남는 것일까 미래와 만나 변하는 것일까.

마을과 골목에 대한 원고를 준비중이다. 내가 살아온 수많은 골목들을 떠올린다. 동자동의 엄지만화방 골목, 며느리가 목 매달아 죽었다는 마당 넓은 집의 보광동 골목, 다다다다 내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리던 성북동의 언덕배기 낙원 아파트 골목, 안개꽃을 들고 나를 기다리던 남자친구의 손을 잡아 본 사춘기의 신창동 골목, 삐딱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가던 이모를 놀렸던 삼양동 골목, 폭염에 일사병으로 쓰러진 동생이 구급차를 탄 대흥동 골목, 무지개빛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미군의 높은 목에 팔을 감던 의정부 골목, 엄마가 달리던 골목, 매를 피해 달아난 샘표간장 뒷동네 골목, 그 수많은 골목을 모두 뒤에 두고 와서, 그립다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나.

2019년 6월 1일

성수동 1가

성수동1가.
복지관이 있는 건물은 여러 기관들이 모여있다.

재활의원, 아트홀, 종합사회복지관, 구립성수도서관. 1층에는 서가가 있어서 공공도서를 꺼내볼 수 있고 2층에도 큰 서가가 있어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다. 북까페도 있어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모임도 하고 책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이 건물로 가는 길은 조금 특별한데, 길 한쪽에 쿠팡 물류센터가 있다. 택배 차량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오늘 이 복지관에 가는 길에 마늘을 파는 트럭을 지나쳤다. 그리고 복지관 앞에 세 대의 트럭이 서 있었다. 한 대의 트럭은 과일을 팔고 있었고 팔을 벌린 사람이 세 사람쯤 서 있으면 될 만한 거리에는 다섯 켤레에 3천원 하는 양말을 파는 트럭이 있었고 그 한쪽 끝에는 찹쌀도너츠를 파는 트럭이 있었다.

수업은 1시 시작인데 할매들은 11시부터 나와 이미 2시간동안 글자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30분 일찍 도착해 10분 전에 교육장소의 복도로 간다. 작은 틈새공원에 벤치가 비어 있어 잠깐 바람을 맞고 앉아 있었다.

찹쌀도너츠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은 남녀였다. 얼핏 보기에 나보다 어려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부부일까? 또는 남매일지도 모른다. 혈연관계일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득의 크고 작음을 떠나 무척 고될 것이다. 하루종일 바깥바람을 맞으며 길에 서서 일하는 것은 정말 고단한 일이다. 나처럼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이나 두들기는 족속들은 견디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길에서 주전부리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나는 범접하지 못할 삶의 부지런함에 경탄한다. 새벽에 일어나 식재료를 준비하고 이른 아침 차를 끌고 밖에 나왔을 것이다. 남은 식재료는 오래 두지 못할 것이고 그날 준비한 분량을 다 팔지 못하면 손해가 날 것이다. 화장실도 참고, 밥 먹는 것도 참고 일을 해야겠지.

남대문시장의 기업은행 앞에 가면 호떡을 파는 부부가 있었다. 2년전일이다. 그 부부가 거기서 호떡장사를 한 지 꽤 되었다고 들었다. 재작년 거기서 호떡을 사며 건빵이가 남자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고 일하십니까. 남자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점심은 거른다고 했다. 준비한 호떡을 다 팔면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여자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내내 호떡을 빚고 있었다. 침 삼킬 시간도 없어보였다.

고된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건, 식구이기 때문이겠지. 식구란 그런 것이니까.

소박한 거리에 앉아서 나는 넋을 놓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워진 나머지 포켓몬고를 열고 체육관 배틀을 시작했다. 외면하는 것은 편리한 방법이다.

이 거리의 어딘가에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살고 있는데, 조만간 같이 점심을 먹자고 청해야겠다. 근처에 형부식당이라고 5천원짜리 카레를 만들어 파는 집을 봤는데, 무척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 것만 같았다. 부지런히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할 사람들에게 돈을 내고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삶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따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허망하고 가소로운 일이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 노동하지 않는 자가 인생을 논해도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나의 안온한 삶이 언제나 부끄럽고 부끄럽다.

 

2019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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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