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글

당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당신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당신을 북돋기 위한 글이 아니라,

힘내라고 종용하는 글이 아니라,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조잘거리기 좋은 이야기들,

당신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싶어졌다.

 

굳이 아픈 마음을 꺼내 진열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비슷한 강을 건너왔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어졌다.

외로운 겨울에

호빵정도라도 될까.

오뎅국물보다 쓸모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여며입은 옷자락에 비장함을 숨기고

씩씩한 척 걸어가는 주저하는 발걸음이

추적거리는 진눈깨비처럼 자국을 토한다.

 

당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어두운 조명,

허름한 주점에 앉아

뜻도 모를 이야기를 지껄이며

시끄러운 음악속에 묻혀버려도

좋을 이야기들.

별 쓸모없는 이야기를

 

당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2015. 12. 17.

눈이 많이 오던 날 

눈 내리는 해장국집에 여자 둘이 들어섰다. 신발 벗기 귀찮다며 의자에 앉자더니 이내 방으로 올라왔다. 그 집의 의자가 있는 테이블은 알량하기 짝이 없어서 앉으라고 채워둔 거 같지 않다. 안경 쓴 총각이 들여오는 식재료나 다듬던 콩나물이나 무우를 쌓아두거나 때로 주인장이 읽던 신문지를 놓아두는 곳에 더 걸맞다.
해장국 두 그릇을 시킨 여자가 창문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뱉었다. 어머 어머 눈 오는 거 봐.

눈은 진즉부터 오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눈을 본다는 듯 중년 여자가 흥분했다.

이런 날은 저수지에 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여자가 말해놓고 까르르 웃었다. 앞에 앉은 여자가 아직 낭만이 죽지 않았다고 말을 받았다.

언니 나는 저번에도 비오는 날 저수지 가서 혼자 커피 시켜놓고 두 시간 앉아있다 왔잖아?

여자가 다시 까르르르 웃었다.
해장국을 가져다 주는 앞치마 입은 여자에게 저수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여자가 말을 건넸다. 언니도 땡땡이 치고 저수지 가서 커피나 마시자.

해장국집 의자에 앉은 남자는 계속 혼잣말로 씨팔, 이라 말했다. 막걸리를 한 병 시켜놓고 해장국을 간간이 떠먹으며 또 말했다. 씨팔.
눈발이 흩날리는 사거리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사이가 좋아보이는 중년 남녀가 우산 하나를 쓰고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택시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와서 서자 여자가 혼자 택시에 올라탔고 창문을 내려 남자에게 살뜰하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신호등이 바뀌지 않은 사이 나는 떠나간 여자의 날씬한 다리를 기억했다.

문득 어제 만난 서른 일곱의 대리기사가 떠올랐다. 프랜차이즈 관리직을 하다 프랜차이즈를 내려고 수제 햄버거집을 열었는데 적자를 면치 못해서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아리송한 얼굴의 사내는 오늘도 부지런히 고기를 굽고 있겠다.

2015. 12. 3.

어떤 영결식이 있던 날 

영결식이 2시부터 엄수라 했다. 1시 30분쯤 서울대병원에서 운구차가 출발한 모양이다. 광화문 부근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뀐 뒤에 광화문을 겨우 지났다. 

남산터널로 올라가는 을지로를 지나다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다마스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신호에 다시 걸렸다. 붉은 신호등 아래로 다마스보다 커다란 종이짐을 실은 리어카가 두 대나 지나갔다. 눈이 내렸고 리어카위의 박스는 젖을 것이다. Kg으로 계산을 할텐데 젖은 박스는 어떻게 무게를 달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자들의 늙은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라디오에서는 영결식을 중계하고 있었다. 

조국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온 몸으로 민주화를 이룩해 낸 전직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운구차는 호위를 받으며 커다란 길의 교통을 통제하고 거침없이 달렸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권력자도 그러했듯이 변절을 했거나 배신을 했거나 권력자로 마감하면 그 뿐이다. 

권력자의 장례는 국가가 치르고 국민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당연한 듯 그들을 애도한다. 

당연히 받을만한 일이 존재하는가. 

몇 년전, 사진 한 장 제대로 갖지 못한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오늘에서야 비로소 어느 단체를 통해 무의탁 독거노인이며 기초생활수급자인 분들의 영정사진을 찍었다. 찍기 싫은데 찍어야겠다고 한 분의 표정은 두려움에 가득찼고 관속에 바카스를 넣어달라던 어르신은 옷을 한 벌 더 챙겨와 환하게 웃었다. 

그 중에 건강이 여의치 않아 다른 일은 못하고 야간에 재활용품을 수거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이가 있다. 리어카가 지나갈 때 그 사람을 떠올렸다. 

자기 사람을 위해, 자기 인생을 위해, 자기 밥 한 그릇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사는 인생도 있나. 

사기를 치고 구걸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몸을 팔아도, 타인의 밥벌이에 기생하며 남의 등 처먹고 사는 인간도 그 자신으로써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거나,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을 때, 세계는 점점 좁아져 북극바다에 녹아가는 얼음판 만한 세상 위에서 오돌오돌 떨며 버티는 것이다. 

눈이 퍼붓고 군사독재에 항거했고 결국 권력자로 기억될 한 사람이 떠난 날, 나는 텅 빈 빈소조차 갖지 못할 뻔한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알량하게도 누군가의 불행을 딛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어떤 핑계를 찾아서라도 오랫동안 울고 싶은 날이다. 

간간히 햇빛이 드나들던 하늘이 어둑해진다. 

내가 말을 하는 모든 이유는 누군가와 따뜻하게 마주보며 웃고 싶어서다. 그건 나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불행도 그러하리라. 

2015년 11월 26일. 

어떤 영결식날의 소회.

초승달 2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겪게 된다는 뜻이다.

이따봐용맘미. 라고 카톡을 보내는 딸아이의 수줍은 미소는 왜 이리도 처연한가.

하루 종일 술독에 절궈져 초저녁부터 코를 고는 사내 앞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아이의 허벅지가 튼튼하다.

늙은 개와 손바닥만한 아파트단지를 두 바퀴 돌았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도 울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었구나.

하늘에 초승달이 날을 세운 채 반짝인다.
이 가슴에 와서 꽂힐 것처럼. 누구를 노려보는지.

2014. 12. 28.

무엇을 하였는가

세종 이도가 소이에게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이따우로 살고 있는 게 모두 내 탓이냐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다.
너 때문이라고
당신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묻는다
나는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을 하였다.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하였고 좌절하였고 노력하였다.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또 다시 원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하는
그 원점이다.

겨울이다

내가 한 번 일어섰던 그 겨울
다시 붙잡고 일어서야 할 겨울이 온다.

2011.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