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아이

며칠 전에 본 풍경이다.
집 앞에 나서면 좁은 4차선 도로가 있고 500미터쯤 나가야 16차선쯤 되는 대로가 나온다.
내가 어딜 가든 항상 대로앞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게 마련이고 대로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다. 신호등이 잘 안 보일 때가 있고 여기까지는 동네골목이나 마찬가지라 늘 천천히 움직인다.
가끔 버스가 뒤에서 엄청 빵빵거리지만.

저녁이었다. 7시쯤 되었다. 사방이 완전히 어두웠고 저녁의 동네마트는 북적거렸다. 나는 그 날 우회전을 하려고 뼈다귀해장국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췄다. 보행신호가 시작되었고 마트에서 장을 본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그 중에 자전거를 탄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엄마 아빠와 함께 마트에 다녀오는 듯 했다. 아빠의 손엔 마트 비닐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횡단보도에 못 미쳐 아이가 자전거 안장에서 미끄러졌다. 요즘 나오는 어린이 자전거엔 짐칸이 없다. 아이의 궁둥이가 주루룩 빠지면서 바퀴 바로 위의 플라스틱 받침대에 엉거주춤하게 걸쳐졌고 아이는 중심을 잃었는데 신호등이 짧다보니 애 아빠가 애 손과 자전거를 같이 잡고 질질 끌기 시작했다. 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일찌감치 건너 호주머니에 손 넣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애아빠는 왼손엔 마트봉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중심 잃은 자전거와 아이를 한꺼번에 질질질 끌고 있자니 아이가 드디어 꼬라지가 났다.

으앙! 하고 한 쪽 다리가 하늘로 한 번 올라갔다가 바닥에 완전히 자빠지려던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거세게 울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이었고 신호는 이미 끝났다.

애 엄마는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뭐라 뭐라 말을 했고 아빠는 한 숨을 쉬는 사이 아이가 도로로 돌진했다. 나는 우회전을 할 수 있도록 신호가 바뀌었지만 불안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애 아빠가 아이를 거세게 잡아당겼다. 나는 아이를 덥썩 들어올려주길 바랐으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고 아이는 두 번째 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창문을 내리고 “애를 좀 안아요!” 라고 하고 싶어서 창문을 살짝 내렸는데 애 아빠가 아이를 인도 안 쪽으로 깊숙히 밀어넣고 한 손으로 마트봉투와 자전거를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분이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울었고 애엄마는 아이 등짝을 두 번 후려갈기고는 다시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이아빠는 보따리와 자전거를 끌고, 아이는 엉엉 울며 제 부모를 따라갔다.

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멋지게 건너는 미션을 수행하지 못해 엄청나게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매일 매일이 도전이고 그래서 힘겨워한다. 아이에 따라 다르지만, 도전을 즐기는 정도도, 실패했을 때 악다구니를 쓰는 정도도 모두 다르다.

그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 주면 좋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자마자 나는 얼마나 그러고 있는지 점검해보았으나 역시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투정과 계속대는 깐족댐에 화를 냈다. 왜 그러는 지는 화를 내고 난 다음에 알게 된다. 사과를 하지 못하고 아이를 재웠다. 자기 전에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홉살을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나 처리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건 어른이고 애고 미성숙한 인간에겐 언제나 난제다.

오늘은 많이 미안했다.
어떤 한 가지 사건이,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세지가 수십가지여서 그게 어렵고 버겨울 때 아이들은 짜증을 내고 깐족대고 장난을 치고 약을 올리고 말을 안 듣고 주제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가 곤히 자고 나니, 자전거를 못 타서 분통이 터지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2014. 11. 17.

엄마 나는 왜 살아?

아빠 누나와 바다에 갔다와서 아주 늦은 저녁을 먹던 아들이 묻는다. 
“엄마. 나 요즘 꿈을 꾸는 게 있어.”
“뭔데?”
“아니. 궁금한 게 있어. 알고 싶은 거. 고민이야.”
“뭔데 말해봐” (갈치 바르는 중) 
“엄마.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고 왜 살아?” 
(젓가락 정지 동작멈춤)
“그러니까 나는 왜 태어나고 나는 왜 살아?”
“•_•;;;;;;;;;”
“나 요즘 꿈이야. 궁금해서 꿈꾼다는 말이야.” 

“예환이한테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지?”
(일어나서 몸을 반으로 나누는 시늉을 하며 여기 엄마 여기 아빠? 하고 묻는다) 
“엄마한테도 엄마의 엄마랑 엄마의 아빠가 있고, 아빠한테도 아빠의 엄마와 아빠의 아빠가 있어. 그리고 할아버지 한테도 할아버지의 아빠와 할아버지의 엄마가 있는 것처럼 다 그런 거거든?”
“그래서??”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을 때 애기를 낳아. 엄마 아빠가 죽고 없어도 예환이 안에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살아있는 거야.”

– 여기서 감동적인 피드백이 온다면 그것은 여덟살이 아니다. 제 아빠가 티비채널을 돌려 정글의 법칙이 왕왕대는 순간 아이는 제 질문을 잊었다. 

이 어미가 그게 궁금해서 지금 근 20년동안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건만.. 날로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봉가 ㅋ 그러니 부모가 공들인 것은 자식은 조금 쉽게 가지진 못해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이런건가.

 

2013. 8. 19. 

엄마의 일요일

일요일,

지난 달에 국립극단 안티고네를 예약했고,

나는 마감을 해야 할 일이 있고,

날씨는 더없이 좋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찬란한 일요일이였다.

 

예정대로였다면,

오전에 일찍 일어나 일을 하다가 여유있게 공연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어린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남편은 급작스럽게 출장을 갔고, 그 출장은 늘 급작스러우며, 일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사정과 거래처의 문제에 준하기 때문에 변경되는 일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 외에는 없으며, 그런 급박한 출장이 잡히는 경우는 주로 내가 모든 스케줄을 변경해야 하는 결과가 있다.

금요일에 남편이 출장을 갔고,

나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아이와 놀고 시간을 보내고 밥을 해먹이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려고 매우 매우 애를 썼으며, 토요일엔 맛있는 콩나물과 쭈꾸미를 넣고 맛있는 탕도 끓여 먹었으며,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고 여유있게 연극을 보러 가고 아이는 제 이모에게 맡겨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순조롭지 않아 나는 늦게 일어났고, 아이는 뭉기적 거렸고, 애 이모도 마감해야 할 일이 있어 피곤한 상태라 일찍부터 애를 보내기가, 애한테도 내 동생한테도 미안해서 뭉기적거렸고, 1시간 10분 전에 차를 몰고 공연장으로 출발을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길이 엄청나게 막혀서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도 못하고 차를 돌려서 돌아왔으며, 마음을 비우고 아이와 함께 꽃구경이나 하자 하고 호숫가에 갔으나 아이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곯아 떨어져 버렸으며, 밥을 먹고 몇 가지 구경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9시에 아이를 재우고 나의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자 했지만 아이는 낮에 푹 낮잠을 잔 탓에 11시가 넘도록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11시 20분에서야 컴퓨터에 앉아서 미진한 일을 하나 마무리 했다.

이건 모두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건 가정의 경제를 백프로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육아를 주로 담당해야 하는 환경의 문제이며, 그 와중에도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내 일을 하겠다고 붙잡고 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고등학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전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기지배 공부 해봤자 팔자 사나와진다” 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싶다. 차라리 배운 것도 없고 꿈도 없고 돈 벌어다 주는 사내 밑에서 고분고분하게 애나 키우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자기 존재가치 따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채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산다면 인생은 오히려 더 풍요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억울하다거나, 화가 나는 단계도 지났다. 그저 이제는 아, 아직 이 나라에서 배운 여자가 사는 것은 매우, 쉽지 않고, 팔자 사나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2013 4. 21.

옛이야기속의 계모

매일 하나씩 읽어주는 옛이야기보따리.
아이가 재미가 붙었는지 읽어달라고 한다.
오늘은 계모얘기를 읽었는데,

생각해보니 전통설화/신화/전래동화 , 즉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1.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오고
2. 아버지와의 애정관계는 불분명하며
3. 계모가 등장함과 동시에 아버지는 사라지거나 역할이 미미해지거나,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식을버려두고 계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4. 이를테면, 새로 들어온 계모들의 역할은 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보모 및 육아담당으로 들어오고, 밥벌이는 하지 않는다.
5. 다시 말하면, 아내가 없는 홀아비는 계모를 들여와 생계를 해결해주고 보육을 맡기는 기능으로 “사용” 하는 듯 보인다.
6. 여권신장따위 개도 안 물어갈 소리였던 전근대 사회에서 부계사회와 일부일처제였던 사회적 제도에서 홀로된 여자가 자식을 키우는 일은 경제적 궁핍이 당연했으되
7.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해야만 했던 홀아비들은 육아를 전혀 담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8. 이렇게 짝을 잃은 남과 여는 단순한 계약관계 및 자식육성을 위해 결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를 띈다.
9. 가족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대부분 이런 이야기에 임무로 수여받은 “남자의 자식”에 대한 육아를 게을리 하는 계모들은 그 사실이 발각되면 곧 쫒겨나고 만다.

말하자면 옛이야기에서의 계모는 그저 밥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는 새로운 취직자리를 얻어 자기 자식을 데리고 “주거이동”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늘 밖에 나가 있으니 “부부”의 기능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새로운 일자리는 홀아비의 아이를 키우는 일인데 그 일을 게을리 하였으므로 당연히 해고되는 것이다.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들은 계모가 아니라 그저 새로 들인 보모를 계모라고 통칭하였던 것은 아니었던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속의 “새어머니”라는 존재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무관한”, 그저 양육을 맡았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이름을 잠시 빌려쓴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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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서정오선생님의 글모음인데 이야기가 구어체로 되어 있어서 마치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이 읽어줄 수 있다. 옛날 이야기를 머리맡에서 해주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아이가 어릴 때는 이솝우화나 삼국유사를 다시 읽고 내가 이야기를 가공해 해주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어주는 건 게으른 방법이긴 하지만, 워낙 우리말을 맛깔나게 잘 쓰시는 분이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7살까지만 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올 초부터 부쩍 매일 하나씩 읽어달라고 하고 있다.

읽다보면 아이가 잘 모르는 입말의 낱말들이 상당히 많이 나와서 우리의 옛풍속, 즉 장작이 한 짐, 쌀이 천 석, 이런 표현이 나오면 질문이 술술술 이어진다.

이 중 “두꺼비서방님”이라는 옛이야기는 허물을 벗고 근사한 낭군이 된 두꺼비의 허물을 태워버린 색시가 서방님을 찾아 갖은 모험을 다 하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이야기로도 충분히 <반지의 제왕> 못지 않은 대형 스펙타클 서사 판타지 영화가 가능할텐데..라는 상상을 해봤다.

2013. 3. 8.

무섭다는 말

예민한 아이는 새벽녘 제 부모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으면 곧잘 잠에서 깬다.
새벽 2시 50분.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가 에미를 부른다.
엄마 저기 뭐가 있어.
엄마 저기 뭐가 이상해.
빛에 비친 그림자였거나, 안방에 숨어 들어온 늙어가는 개였을게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다독여 다시 재우고 나도 모르게 아이가 가르킨 방향을 외면한다.

무섭다는 말.
언제 해봤을까.
기억이 없다.

아이 무서워.
아이 두려워.

이 아이는 나를 대신해,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는데,
내 기억속의 나는 당췌, 무섭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어 본 적이 없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서워?
글쎄…
한 참을 생각해도 싫은 건 있어도 무서운 게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견고하게 만들어 온 밖에 내세우기 위한 자아는 이제 세월의 더께를 입어 더욱 더 곤고해진다.
딱딱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석고상에 이끼가 끼듯.
무섭다는 말, 해 본 적도 없이, 이제는 무섭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나이를 먹었다.

그 모든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스스로 무장하여 갑옷을 입혀 대문앞에 세워놓은 저 것이.
이제는 나인 척 하고 수십년을 살아서, 자기가 나 인 줄, 내가 자기인 줄, 나도, 그것도 착각하고 있다.

경리장부 20년 주물러, 자기가 대표이사 인 줄 아는 경리직원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주객의 전도.

무섭다는 말.
누구에게 할까.

어느 봄밤, 아이를 재우고 나와 벚꽃 사진을 찍는 나를 마주쳐, 술에 취한 채 흐느적대면서, 옆에 한 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 날의 당신을
이 밤, 생각한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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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1.

인간의 조건

아이가 엄마 일어나 – 하면서 나를 깨운 것은 10시 반이었다. 어젯밤에 몇시에 잠을 잤던가, 새벽이 다 되어 잠이 들은 것 같다. 무엇을 하다가 그렇게 늦었던가, 아마 인터넷을 하고 뭔가를 쓰고 뭔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정리를 한답시고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아이가 잠이 들면 바로 눈이 딱 떠지는 이상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가 잠이 들면 자 – 나는 이제 자유다 – 라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은 대부분 책을 읽거나 쓸데없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거나, 아이의 미니홈피에까지 사진을 올리거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여 있는 까페에서 기운내세요 하는 따위의 댓글을 다는 짓거리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24시간을 붙어 있는 아이와 내가 결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아이가 잠을 잘 때뿐이다. 때로는 내가 아이와 영원히 헤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엄하게 꾸짖는다. 아이가 계속 잠만 자면 어쩔꺼냐고 그런 생각 따위는 떨쳐 버리라고 하지만 아이는 잠에 들어서도 가끔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밤잠을 자다가 새벽 서너 시 쯤에 오줌을 싸버렸을 때라든가,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심하게 할 때라든가, 코가 막혀서 잠을 통 이루지 못할 때 말이다. 그런 어미가 어디 있겠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모성이란 길들여지는 것이지 타고 나는 것은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단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모성이라는 애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적응하고 책임지겠다는 건강한 마인드가 없이는 아이를 잘 길러내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무의식에 팽배해 있는 상처 받은 작은 아이가 투정을 부리지 않는 조건하에서다. 무의식에 상처받은 어린 시절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면, 내 아이를 기르는 일은 몇 갑절 힘들다. 나는 그 상처와 치유 속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여자이기도 하다. 아이는 이렇게 가끔 나를 깨우곤 한다. 아이가 유난히 늦게 잠이 든 날엔 나는 더 늦게 잠을 자게 되는데, 새벽 서너 시를 넘겨 잠이 들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영 힘들다. 서른다섯을 넘겼다. 이제는 옛말로 올나이트를 할 수 없는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도 아이가 한 시를 넘겨 잠이 들었다. 자기는 푹 잤다고 10시 반쯤 깬 모양이다. 그리고 자고 있는 한심한 어미를 애타게 깨우고 있다. 요즘 나는 그래서 알람을 맞추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아이가 적당한 시간에 잠이 들었으면 먼저 일어나서 나를 깨울 것이므로. 늦게 자더라도 일부러 알람을 맞추지 않는 것이다. 남편은 언제 나갔는지 알 길이 없지만 예의 그렇듯이 8시에 나갔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침을 차리지 않는 아내와 엄마가 되었다. 오늘은 스케줄이 빡빡한 하루이다. 오전에 준비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1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미술학원에 가야한다. 그리고 4시부터 시작될 내년도 유치원 설명회에 가야 한다. 온전히 아이를 위해 하루를 보내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다른 날은 나를 위해 병원을 가거나 집에서 쉬면서 아이는 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나는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온전히 아이를 위해 보내는 하루가 될 것이다. 아이의 사교육을 위해 보내는 하루.
아이에게 밥을 빨리 먹이기 위해 햄을 썰었다. 햄밥 먹을까? 하는 질문에 아이는 좋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햄을 잘게 썰어 밥과 함께 끓였다. 기름들이 자작하게 물과 졸아들었다. 아이에게 아토피가 경미하게 있더라도, 급하게 밥을 먹여야 하는 날이면 나는 햄을 과감하게 사용하곤 한다. 어쩔 수 없다고 나에게 변명한다. 찌개를 끓이고 안 먹는 반찬을 억지로 먹이는 것보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서 밖으로 외출을 유도하는 편이 훨씬 쉽다. 아이를 길러내면서 나는 점점 더 쉬운 방법들이 없나를 찾게 된다. 아이를 기르는 데 조금 더 쉬운 방법, 아이를 달래는 데 조금 더 쉬운 방법. 내 말은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려는 아이를 좀 더 쉽게 제어할 수 있는 방법과 협박등. 그게 나의 방어기제이거나, 그저 나의 성격이 그런 것이냐는 중요치 않다. 나는 순간순간을 모면하려는 데 급급한 애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는 햄이 섞인 끓인 밥을 TV를 보면서 먹어치웠다. TV에서는 아이들의 프로그램이 이미 다 끝나고 어른들의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나는 아이를 위해 IPTV의 리모콘을 조종해 아이를 위한 만화를 틀어 주었다. TV 보면서 밥 먹는 습관이 나쁘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돌아다니면서 먹는 습관도 나쁘다. 아이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부산하다. 끊임없이 세상을 탐구하고 연구하려고 한다. 아이를 식탁에 고정시켜야 외출에 차질이 없다. 게다가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한다면 시간에 맞춰서 택시를 타지 않고도 미술학원에 도착할 수 있다.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은 일주일에 한 번씩 퍼포먼스 미술을 수업하는 곳이다. 퍼포먼스 미술이란 종래에 우리가 알던 앉아서 그리는 미술 수업이 아니라 서서 물감을 튀기기도 하고 자동차바퀴나 원목으로 된 공에 물감을 묻히기도 해서 굴려 보기도 하고 과자로 된 집을 만들기도 하고 손바닥에 물감을 찍어 나뭇잎을 만들어 보기도 하는 종류의 미술수업을 말한다. 영유아 아동의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으며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나 심리치료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집에서 해 주기는 겁나는 퍼포먼스 미술을 위해 엄마들은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그런 종류의 미술원에 등록을 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차를 가지고 다니는 엄마들도 있다. 아이를 태우고 미술학원으로, 체육학원으로 돌아다니는 생활이 생후 24개월부터 시작된다. 나는 40개월쯤 되었을 때 아이의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매월 10만원이고 3개월을 한 번에 납기 해야 한다. 남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남편이 이걸 이해할 지 알 수 없었지만 속된 말로 그냥 질러 버린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예전부터 놀이미술을 즐겨했고 색채 감각이 있는 편이라 지금 유일하게 하고 있는 사교육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나는 자부한다. 우리 아이는 좋아한다. 라는 것은 우리 아이는 뛰어나다는 말의 변종어법이다. 나는 아이가 너무나 좋아한다고 하며 나도 덩달아 좋아한다. 너에게 적절한 사교육을 시켜 준 너의 엄마에게 고마워하렴. 그리고 그 돈을 벌고 있는 너의 아빠에게도. 라고 아이에게 말하지 못할 뿐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의 미술학원을 가기 위해선 챙겨야 할 준비물들이 있다. 물감이 많이 묻기 때문에 팔이 달린 앞치마가 필요하고, 신발에도 물감이 묻기 때문에 실내화를 따로 장만했다. 갈아입을 옷도 챙겨야 한다. 바지나 티셔츠에도 물감이 많이 묻기 때문이다. 챙겨 간 날 수업이 얌전한 수업이면 약간 허탈하지만 그래도 옷을 버려서 아이가 지저분해 진 채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나는 무거운 가방 쪽을 택한다. 오늘은 바지는 별도로 준비하지 않고 앞치마와 실내화, 그리고 티셔츠를 챙겼다. 생각해보니 앞치마가 있으니 티셔츠는 없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라는 불안감이 엄마라는 사람에게 가방에 티셔츠 하나쯤은 더 넣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을 한다. 나는 아이가 TV를 보며 자동차를 굴리는 시간에 화장을 한다. 이제 맨 얼굴로 나서기엔 민망한 나이가 아니었던가. 큰 치장은 하지 못하더라도, 가을이 되면서 화장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화장을 한 얼굴이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예전엔 누나는 화장 안 하는 게 더 예뻐 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이제는 제발 좀 화장 좀 하고 다녀라. 라는 말을 들을 나이가 되었다. 피부는 침착 되었고, 다크서클이 간혹 짙게 내려온다. 얼굴은 누리끼리하고 눈동자도 탁하다. 미장원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머리는 다시 부스스하다. 헤어 매니큐어나 코팅이라도 해줘야겠다 싶지만 그런 시간과 돈의 여유는 쉽게 나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결심, 오늘 시작했으니 1년이나 지나야 헤어 매니큐어를 하러 가지 않을까? 나는 피부화장을 하고 두껍게 아이라인을 그린다. 살이 쪄서 작게 있는 속쌍꺼풀도 덮여 버렸다. 모든 것은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점철되었고 나는 점점 이상한 아줌마가 되어 가고 있다. 화장을 하면서 왔다 갔다 하며 아이를 체크한다. 아이는 혼자 잘 놀고 있다. 엄마 오늘 물감놀이가? 이제 제법 말을 잘 하는 아이가 물감놀이라는 나의 단어를 받아들여 묻는다. 응 지금 엄마 준비하고 있어. 아이는 내가 화장을 하는 방으로 들어와 화장대 위에 물건을 몇 개 만지작거리다가 나에게 하지마! 라는 말만 듣고 뽀르르 사라진다. 아이는 물감놀이 수업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러니까, 내 아이는 우수하다는 말이다. 남들보다. 뷰러로 속눈썹을 집어 올리는 동안 아이는 마룻바닥에 누워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늘 사고현장을 연상시킨다. 왜 남자 아이들은 사고현장을 좋아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그건 좋지 않은 거야. 라고 말하지만, 어느 학설에 따르면 남자 아이들은 사물의 이동에 가장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사고현장만큼 이동이 급박하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곳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안도한다. 아이의 자동차 놀이 풍경엔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가 등장하고 사다리차가 길게 사다리를 올리고 있다. 그나마도 험하게 다뤄 다 부러져 버린 채로, 그리고 가끔 헬기가 날기도 한다. 불이 났다. 아이는 불이 난 광경을 단 한 번도 제 눈으로 본 적이 없다. 나도 불이 난 광경을 본 것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처음 보았다. 하늘에서 몽실몽실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저게 뭘까?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아이가 몇 년이 지나면 그런 모양새가 될까,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이 철없는 목소리로 불났다 불났다. 210동에 불났어. 다 탔어. 하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떤 아이는 제가 직접 목격한 사고 현장을 나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흥분해 있었다. 세상 제일 재미난 구경이 불구경과 물구경이라고 했던가, 그 날 20층 꼭대기집에서 났던 불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였고, 조경시설 때문에 소방도로를 만들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이 아파트에서 20층은 고스란히 다 타버렸다. 학교를 다녀오는 그 집의 아이들은 제가 사는 건물의 밖에 서서 제 집이 다 타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소방차도, 사다리차도 진입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태워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1년쯤 지나 이 아파트는 대한민국 조경 무슨 상에서 최우수상인가를 받았다. 조경만 좋으면 집값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소방도로가 있던 말건, 그건 알아서 단속할 일.
내가 옷을 다 입고 난 뒤에 아이의 옷을 입혔다.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 간단하게 내복 위에 니트티와 청바지를 입혔다. 이제는 혼자 옷을 입을 때도 되었다 싶은데 아이는 여간해서 내 손을 타지 않으면 옷을 입지도 벗지도 않았다. 바지를 입힐 때마다 짜증이 났다. 아이를 앉히고 바지를 입히기도, 세워놓고 바지를 입히기도 힘들었다. 아이도 짜증이 날까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바지 하나 입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의 나이를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아이는 아직 혼자 바지를 입지 못하는 것이다. 두꺼운 점퍼를 입히고 목도리를 감아 올렸더니 아이가 강렬하게 거부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두건으로 썼던 천조각을 아이의 목에 살짝 동여매 준다. 아이는 목이 졸리는 것처럼 켁켁 거리며 유난을 떨었다. 아이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담은 가방을 메어준다.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아이에게 작은 장난감들을 조금씩 가져가게 하는데, 아이가 할 일이 없을 때 마다 이런 소품들이 무척 유용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더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제 놀이에 집중하는 단 오 분이라도 나에겐 소중하다.
아이와 버스를 타러 나섰다. 아이는 제가 교통카드를 찍겠다고 주장했다. 버스가 와서 버스에 오를 때에도 제가 타겠다고 내가 잡아 주는 것에 화를 낸다. 버스 기사들은 가끔 아이를 잡아달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이가 결연한 표정으로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는지 그저 천천히 출발을 해 줄 뿐이다. 대한민국 버스 기사들의 친절에 감사를 보낸다. 아이는 둘이 앉는 자리가 아닌 각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앉기를 바라지만 요즘은 허용하지 않는다. 얼마 전 아이를 혼자 앉혔다가 어느 버스 기사에게 지청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 보호자 분 어디계세요. 아이 보호자 분 아이와 같이 앉으세요. 라고. 아이는 아직 버스요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혼자 앉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뿐이 아니라, 버스 기사들은 아이가 급작스러운 사고를 당할 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주장한다고 해서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기사가 같이 앉으라고 조언을 한 이후부터 나는 아이를 혼자 앉히지 않았다. 물론, 그러니까, 그 전에는 그냥 혼자도 앉혔다는 말이다. 나는 MP3를 꺼내 귀에 꽂고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아직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방치하곤 하니까.
아이와 한참 버스를 타고 학원 가까이에 와서 내가 내릴 것이라고 알려주니 아이는 버스 정류장의 이름을 혀짧은 소리로 대며 청하브영언 이라고 한다. 버스 정류장의 이름을 몇 번을 외치며 버스 카드 줘봐 버스 카드 줘봐를 이어서 외친다. 나는 버스카드를 쥐어주고 아이에게 버스카드를 찍게 해 주고 따로 버스에서 내렸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지만 이제는 제법 버스에서 내리는 일도 잘 한다. 버스를 안 타고 다녔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쉽게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내가 면허가 없는 상태이며, 면허를 딴다고 해서 남편이 덜컥 차를 내 줄 것도 아니다. 차를 산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름값은 고사하고 노상 시내로만 쏘다니는 나의 주차비는 어디서 솟구친다더냐. 나는 남편에게 면허를 딸까 하는 얘기를 꺼냈다가 슬그머니 주워 담았던 적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아이는 아는 길이랍시고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나는 앞서 걷다가 계속 아이를 돌아보는데 아이는 엄마 빨리 가. 라고 하며 나를 재촉한다. 그러면서 저는 혼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는 고양이처럼 걸어오고 있다. 나 먼저 학원으로 들어서고 선생님들의 약간은 호들갑스러운 인사가 이어졌다. 아이는요? 선생님들이 묻는다. 오늘도 혼자 오는구나. 선생들이 활짝 웃으며 아이를 반긴다. 나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하고 아이를 다그친다. 어딜 가더라도 인사는 꼭 많이 시키는 편이다. 그 편이 여러모로 살아가는 데 이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등은 상대방을 작은 시간과 정성으로 설복시키고 나 역시 맘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된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안녕하세요 –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먼저 와 있는 다른 타임 엄마들과 대충 인사를 나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오늘도 자리가 좁다. 이 학원에 처음 왔을 때는 겹치는 수업에 아이들이 두 명 뿐이었고 여름이었기 때문에 옷가지도 없는 단출한 차림이라 자리가 넓었지만 한 달쯤 전에 수업이 새로 개설이 되어서 겹치는 엄마들이 생기자 눈에 띄게 엄마들의 대기실이 좁아졌다. 그녀들은 우리 보다 20분 정도 먼저 오고 20분 정도 먼저 간다. 아이들의 수업은 거의 50분간 진행된다. 네 살짜리 아이가 50분짜리 수업을 소화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학원 측에서 그렇다고 25분짜리 수업을 나누어 일주일에 두 번씩 해 내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엄마들 입장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25분 수업을 하라고 했다면 뜨악했을 것이다. 아이는 안중에도 없는, 어른들을 위한 편의이다. 아이들은 적응하기 나름이다. 한 명의 선생이 서너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두 편의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나누기도 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은 책을 읽어 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토론과 논술 수업을 한다고 포장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오늘은 무슨 수업이 있는지 알 지 못한다. 물어 본 적도 별로 없다. 스케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날 그 날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서 진행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는 했다. 그러나 그 보다는, 그 날 그 날 준비되는 준비물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봤었다. 오늘은 물감으로 수업을 한다고 하여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아이는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같이 수업하는 친구들이 왜 아직 오지 않았는지 궁금해 한다. 재형이는, 소미는, 하면서 아이는 어느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지도 묻고 선생님한테 이런 저런 말도 건넨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의 옷과 나의 겉옷가지들을 정리한다. 가방은 언제나 크고 날이 추워져 옷가지들도 늘었다. 비좁은 의자에서 남산만한 궁둥이를 비비고 앉아 있으려니 약간 민망스럽다. 겹치는 수업의 엄마들은 모두 날렵한 허벅지를 지녔다. 왜 나는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원망이 든다. 산후 비만을 조절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기 일주일 전까지 나는 격무에 시달렸으며, 남들은 팔자 좋게 다니는 임산부 요가 따위는커녕 산책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편도 그 때는 정신없이 바쁠 때였고 그 정신없는 남편의 정신없는 사업 확장을 돕느라 나는 한 번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어날 새도 없었다. 산후 조리를 돕는 도우미를 잠깐 쓰고 한 달 만에 빨래도 내 손으로 해 댔다.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운 순간이 간혹 오는데 이렇게 비교될 때이다. 탄력 있는 다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동갑내기 아이들의 엄마들을 볼 때. 나는 괴롭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 그 학원에서만큼은 내가 제일 뚱뚱하니까. 얼마 전 아이를 담당하지 않는 다른 선생이 나보고 어머니 항상 스타일이 좋으세요. 라고 했을 때 기분이 상당히 고무된 적이 있었다. 내가 뚱뚱하긴 해도 옷은 잘 입는 편이지 하면서 혼자 하루 종일 업되어 있었다. 아이와 수업을 같이 듣는 다른 아이 두 명이 제 엄마들과 함께 들어왔다. 한 명의 엄마는 차 키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아이의 엄마는 나처럼 버스를 타고 온다. 버스를 타고 오는 우리들은 차를 가지고 다니는 엄마들에 비해 살짝 우울하다. 애 있으면 차 있어야 된다는 의견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러 들어가자 우리는 어색한 시간들을 때우기 위해 이런 저런 수다들을 시작한다. 사는 동네가 다르기 때문에 동네 유치원에 대한 정보 교류는 되지 않는다. 나는 학원의 서남쪽에서 오고 있고, 버스를 타고 오는 다른 엄마는 북서쪽에서 오고 있으며, 차를 가지고 온 다른 엄마는 친정집이 바로 앞집이기 때문에 이 학원에 오는데 가끔 자기 집에서 오는 날은 차를 가지고 오고 정작 집은 학원의 정남쪽이다.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이런 유치원도 있더라, 하는 정도의 정보이지 어느 유치원은 급식이 잘 나오고 어느 유치원은 커리큘럼이 잘 되어 있다더라 하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 수업을 같이 듣는 엄마들 말고 여름엔 두 명의 3살짜리 아이 둘이 겹치는 시간에 수업을 했었는데, 그 두 여자는 학원 근처에 살고 있었고 항상 아이들의 옷태도 좋았으며 주로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을 하는 것 같았다. 두 여자는 원장과 함께 동네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다른 사설 교육기관에 대한 평가를 주로 많이 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디는 급식이 좋고, 어디는 급식 때문에 어떤 사건이 있었고, 체육은 어디가 좋은데 커리큘럼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며, 야마하 음악교실은 어떤지, 짐보리는 다 다니는 거 아니예요? 하는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는 너무나 동떨어진 엄마가 되어 있었다. 여름 어느 한 날 아이가 수업 중인 중에, 나는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의 엄마들과 수다를 떨 정도로 친해지기 전이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펴놓고 졸고 있었는데다가, 그나마 다른 아이의 엄마들이 잠시 볼 일을 보러 나가 내 아이가 들어간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하는 아이의 엄마 중에 나만 혼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그 날에, 그 사이에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통통한 애 엄마가 명동에 있는 모백화점의 어린이 미용실에서 아이의 머리를 깎이는 데 예약도 되지 않고 1주일 대기해서 머리를 했는데, 파마는 6만원이고 앞머리 자르는 건 1만원, 사내아이 커트는 2만원이라고 전해주었으며 나는 그녀의 대범한 씀씀이에 혀를 내둘렀으나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날이 자꾸 떠오르곤 했다. 그 날 그 앞에 앉아 있던 다른 엄마는 아이 아빠가 아이에게 멋진 침대를 사 준 이유는 아이 아빠가 너무 바빠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대신이라는 이유를 전하며 정가가 220만원이랬나 180만원이랬나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을 못 들은 채 하며 아침에 새로 읽기 시작한 2009년 이상문학상으로 눈을 돌리다가 꼬닥꼬닥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 날 아마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참 고민하다가 일기를 한 참 적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아마 엄마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얼마를 쓰고 있는가를 가늠해 보느라 2시를 넘겼던 기억이 났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데라곤 문화센타 몇 군데뿐이었는데, 그 역시도 두 번 정도밖에 안 했기 때문에 다녔던 거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화센터는 끊으면 1년이 기본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정서발달에 오히려 해가 된다나, 게다가 최근엔 이상한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겨울학기 등록도 하지 않았는데 그 엄마들 같으면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넣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여자들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내가 그녀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은근히 그녀들을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많이 시키는 엄마들과, 적당히 시키는 엄마들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엄마들로 엄마들의 세상이 나뉘고 있는데,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엄마들은 많이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친구 중에 아무 것도 시키지 않는 친구가 몇 명 있는데, 한 명은 둘째가 있는데다가 남편의 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아파트 대출금 상환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 들어앉아 사교육비를 절대적으로 지출하지 못하는 경우였고 한 명은 학위 준비 중이라 친정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어리잖아, 라며 정말 아무 것도 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너무 어리다고 했던 그 친구와 그 친구의 딸아이는 정말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지 가끔 궁금했다. 나는 이 사교육 외엔 다른 것은 없었지만 외출이 잦았다. 아이는 아랑곳 않고 내가 나서고 싶으면 나섰고 내가 쉬고 싶으면 쉬었다. 쇼핑을 하러 가기도 하고 대형서점을 가기도 했으며 카메라를 들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기도 했고 아이는 재미없어 할 클래시컬한 미술관을 가서 칭얼댄다고 아이를 야단치기도 했다. 아이의 행동반경은 넓어졌고 체험 할 거리는 많았다. 영유아 때는 체험학습이 가장 중요합니다. 암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리 아이는 수없이 많은 체험을 하고 있지요. 하고 말이다. 아이는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데 예를 들면 병원 검진을 받기 위해서 혹은 다른 일로 S역에 간다면 그 역에선 병원 예약시간이 주로 점심시간 근처이므로 병원에 갔다가 나와서 설렁탕 체인점에 들어가 설렁탕을 한 그릇씩 먹고 아이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들어가 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내가 커피를 마실 장소로 이동을 해서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혹은 집과 가까운 P쇼핑몰에 간다면 9층에서 나는 햄버거를 먹고 아이는 딸려 나온 감자튀김을 먹으며 나는 콜라를 마시고 아이는 오렌지 주스를 시켜 마신다. 그리고 그 옆의 오락실에 가서 자동차게임이나 공던지기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가끔 박스로 된 노래방에 들어가 은하철도 999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쇼핑을 조금 하고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는 물 한 잔을 달라고 해서 물과 함께 쇼트케이크를 하나 먹으면서 배를 또 채우고 지하에 있는 대형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같은 경우는 대부분 명동을 나가서 하릴없이 돌아다니거나 내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데 오늘은 유치원 설명회를 가야 하므로 그 계획이 틀어졌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선호하는 유치원 성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번 주에 모두 설명회가 있으며 입학접수를 받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서로를 재촉하고 위로한다. 엄마들은 오늘도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여기 저기 육아 책에서 본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이야기 하거나, 다큐멘터리나 EBS에서 하는 부모대상 프로그램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느 학자의 말에 의하면, 이라고 운을 떼며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그녀들은 나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아니, 우리 클래스의 엄마들과 그 클래스의 엄마들의 평균나이는 적어도 서너살 정도 차이가 나 보였다. 한 엄마가 영재교육을 한다는 뭐뭐 스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아 – 그거 비용 어마 어마 하던데 하고 아는 체를 하자 다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대고 웃었다. 좋아 보이는데 정말 너무 비싸더라고요, 하는 그 뭐뭐스쿨은 한 달에 48만원 기본으로 하는 화학, 물리 전문 수업이었다. 너댓살 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화학과 물리 수업은 대부분, 빗사면에서 공이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라든가, 페트병에 뿅뿅 구멍을 뚫고 물을 채우면 위에 있는 물이 먼저 빠집니다 라든가,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지요 하는 정도의 것들이다. 나는 그 수업 내용까지 인터넷으로 살펴보고 비용을 알아보고자 각종 까페와 지식검색을 뒤진 결과 한 달에 48만원이라는 답을 얻고 얼른 창을 닫았던 기억이 났다. 갑자기 내 지갑에서 돈이 쑥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덜커덕 등록을 해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꾐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부들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진을 뺐다. 한달에 10만 원짜리 미술수업을 보내고 48만 원짜리 영재수업을 듣고 60만 원짜리 유치원에 보내면 애 하나 키우는 데 한달에 200만원 정도 채우는 건 일도 아닐 듯 했다. 그것도 내가 사는 곳처럼 교육적 환경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는 곳에서 조차도.
아이들이 수업을 끝마치고 문을 열고서는 엄마 들어오세요. 한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이 엄마들을 모아놓고 리뷰를 해주는 데 오늘은 벽에 종이를 붙여 놓고 나무를 물감으로 칠하고 종이에 과일을 그려 오려 붙이기도 하고 손바닥에 물감을 찍어서 나뭇잎을 표현해 보는 수업을 했다. 내가 보기엔 내 아이의 그림의 손바닥 자국이 가장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나는 역시 우리 아이가 가장 우수하다는 생각에 혼자 슬며시 웃는다. 아이의 나무는 활짝 열려 있다. 포도도 달렸고 딸기도 달렸다. 딸기는 밭에서 나는 거야. 라고 말해 줄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어차피 나중에 알아도 상관없는 것이니까. 우리 어릴 때는 벼나무가 있는 줄 아는 아이들이 있다고 어른들이 개탄했지만 지금은 자연생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아이들은 대부분 쌀은 논에 심은 벼라는 풀에서 나오는 것임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얼마 전 이 미술학원에서는 부엽토를 뿌려놓고 감자를 캐는 퍼포먼스 수업을 했다. 돈 주고 점토놀이나 감자 캐기 놀이를 시킨다니 기가 막혔지만, 점토나 모래를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흙으로 된 길을 걸으면 자주 미끄러졌고, 내가 사는 아파트의 놀이터엔 아예 모래가 있지도 않을 뿐더러, 혹 모래가 있다 치더라도 그 안엔 고양이 똥이 가득할 터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약간 흥분되어 있는 아이를 보채며 빨리 옷을 입자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오늘은 유치원에 가야 하니까 꼭 옷을 빨리 갈아입어야 한다고 나는 아침부터 몇 번씩 강조해서 말했다. 아이는 언제나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10여분 이상을 뱅글뱅글 돌며 혹은 교실에서 선생님의 뒤처리까지 도와주며 그 교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 아이인데, 오늘은 유치원이라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는지 나의 서두름에 어느 정도 협조를 해 줘서 학원이 완전히 썰렁해 지기 전에 학원을 나설 수 있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아이는 또 아는 길이라고 마구 내달려 가고 있다. 나는 뛰어가서 아이를 잡지는 못하고 그저 골목에서 천천히- 그만 – 이라고 소리를 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길을 건너 버스를 타고 자주 가는 P 쇼핑몰로 향한다. 배가 조금 고프다는 아이에게 아이가 가장 좋아할 간식거리인 감자튀김을 선물하기 위해. 그리고 내 배를 위해 나는 햄버거를 하나 먹기 위해 9층으로 올라가 햄버거 세트를 시키고 아이의 오렌지 주스를 추가 주문한다. 아이는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오렌지 주스를 먹는다. 오늘은 옆 매장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찾지 않는다. 웬일인지 몰라도. 늘 이 곳에 오면 아이는 바로 옆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다. 그야말로 아토피가 작렬할 수 있는, 트랜스지방의 포화상태로 내달리는 것이다. 아이와 끼니를 대강 때우고 나니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아이는 그제야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한다. 나는 오늘은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하며 나도 커피 마실 시간이 없어 이 녀석아 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아이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우리 집을 경유해 유치원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려는 유치원은 버스 정류장으로는 한 정거장이지만 산 속에 뚫린 터널을 지나가야 하는 곳이라 절대 걸어가긴 벅찬 곳이다. 아이는 버스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나는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아이를 안기 어려운 상황이고, 아이의 몸무게는 벌써 훌쩍 18kg을 넘었으므로, 나는 필사적으로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만큼 깨운다. 아이를 안고 버스에서 내리는 일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건 아이가 혼자 버스에서 내리는 일보다 더 위험해졌다. 둘의 몸무게가 늘어나고 나는 게다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으니 여기서 기우뚱 거렸다간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참으며 안쓰럽게 우리를 바라볼 것이며, 게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아이는 다행히 버스에서는 겨우 내렸으나 힘들어 힘들어하면서 걷기를 거부했다. 그건 나에게 배운 말버릇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 엄마 힘들어, 하지 마.

유치원에 도착하니 홈페이지에서 많이 봤던 얼굴의 여자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저 여자가 원장이다. 정말 곱상하게도 생겼다. 다른 선생들도 모두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걸 보니 이 유치원은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시키는 모양이다. 우리가 일찍 온 편이었다. 나는 동생이 나온 고등학교의 부설 유치원인 이 곳을 선택하면서 가장 많이 놀게 하는 곳이라고 들었기에 여기를 선택했다. 아까 학원에서도 엄마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직 공부를 시키기엔 어리지 않나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을 많이 놀리는 곳에, 그리고 저렴한 곳에 보내고 싶었다. 한 달에 60만원이 넘는 돈을 내면서 유아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았고, 취학 전에 60만원이 넘는 유치원에 보냈다가 나중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감당이 서지 않았다. 나는 의식 있는 엄마다 이거다. 소문으로 이 곳이 그나마 교육의 질에 비해 가장 저렴하다고 들었고 미술특화교육이 잘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여기를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참석한 학부형들이 적었다. 설명회는 안 들어도 좋다는 것인지, 전염병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산을 깎아서 만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유치원이라 지하로 내려가도 지하가 아니었다. 강당 앞쪽에 의자를 놓아 엄마들이 앉도록 해 놨고 뒤편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엄마들이 설명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놓은 배려도 맘에 들었다. 아이는 옷을 벗자마자 놀이기구로 달려가 자동차를 타겠다고 용을 썼다. 곧이어 자리가 차기 시작했고 둘째들을 안고 온 엄마들도 있었다. 아랫집 영빈이 엄마도 와서 알은 체를 했다. 영빈이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영빈이 엄마는 낮에는 온전히 둘째 육아에 전념하고 있었다. 아래윗집 산 지 3년이 되어 가는 데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이다. 그녀도 나를 많이 파악했을 것이고 나도 그녀를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누군가와 친해지기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녀는 여름에 태어난 둘째를 안고 왔다. 얼굴이 핼쑥해 진 게 아들 둘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내심 부러웠다. 둘째가 부러운 게 아니고 그녀가 다시 날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명회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원장은 마이크를 들고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4년제 대학 졸업자와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선생님들을. 에서 말을 끊었다. 나는 다음 문장으로 보유했다. 를 떠올렸지만 그녀가 선택한 단어는 모시고 있습니다. 였다. 베테랑다운 단어 선택이었다.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유치원 때문에 이사를 가지도 못하게 생겼다. 이 유치원에 다닌다면 말이다. 원장이 강조한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가지는 이제는 유치원이라고 하지 않고 정부 시책에 따라서 유아학교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는데, 이건 3년 과정이 정규과정이며, 중간에 옮기는 것은 전학과 같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 번 보낼 거면 끝까지 보내라는 행간을 읽어내시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년 가을쯤 근처에 있는 위성도시로 이사를 할 예정이다. 그래서 유치원 입학도 미뤄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새로 분양받은 곳이라 증축이 되어지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입주 예정일로부터 한 참이 지난 다음에도 들어가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 때까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아이는 폭발하기 직전의 화약처럼 하루 종일 부글부글 끓었다. 피가 끓는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낮에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남편은 사교육을 환영하지 않으며, 나는 벌이가 없으니 내 맘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무작정 아이를 붙잡고 둘이 퍼질러 앉아 TV 만화만 보면서 6개월 이상을 버틸 수가 없었다.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부터, 아이를 언제부터 교육기관에 보내고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 직전엔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는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어나 젖을 먹었고, 그 뒤로는 이유식을 했는데, 나는 앞치마를 벗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아이의 새모이 만큼의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소고기를 갈고 브로콜리를 삶고 시금치를 데치고 배추를 썰고 닭가슴살을 익히고 내 인생에서 최대로 공을 들였던 부분은 아마 아이의 이유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지극정성을 다했다. 한 때 이유식을 만드는 블로그를 만들었을 정도로 소개되는 모든 이유식들을 섭렵했다. 다행히 아이는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고 나는 당장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먹고 자고 싸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 조그만 머리에 무엇을 집어넣을 것인가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밥을 먹게 되면서 아이만을 위한 반찬을 만들고 버섯과 카레와 시금치와 당근을 먹이는 사이에 아이는 네 살이 되었던 것이다. 남편을 위한 반찬과 아이를 위한 반찬과 내가 좋아하는 반찬 사이에서 남편은 주로 외톨이가 되었으며 남편은 주로 회식이나 잦은 저녁 약속으로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나는 고등어자반을 사다가 냉동실에 꽝꽝 얼렸다가 남편이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면 그저 고등어 한 토막을 꺼내서 해동시켜 구워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이 집에서 먹는 반찬은 고등어나 갈치, 굴비구이, 혹은 김치찌개. 운 좋으면 좋아하는 오뎅볶음이었다. 내가 아이를 위한 반찬과 국을 만드는 사이 아이는 TV 속으로 빠져들었고 나는 그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으며, TV 는 가장 좋은 보육교사가 되었다. 그것도 잠시, 아이는 TV를 한 삼일 줄기차게 보고 나면 금방 시들해져서 나를 붙잡고 책을 읽어달라, 아까 뿡뿡이에서 본 게임을 해달라, 스티커 붙이기를 해달라 뭔가 그림을 그려달라 하며 혀짧은 소리로 나를 계속해서 졸라댔다. 기진맥진. 아이의 요구는 불쑥 불쑥 튀어나왔고,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야만 아이와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그래서 외출이었다. 밖에 나가면. 된다. 나가면, 아이는 세상을 탐구하고 탐험한다. 나는 아이가 넘어지지 않는지만 바라보면 되고 찻길에 아이를 내놓지만 않으면 된다, 는 것은 그것도 잘 걷기 시작한 36개월 이후부터였다. 그러니까, 그러느라고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지에 대해서 나는 진중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치원 원장은 작년부터 영어수업을 강화했다면서 올해 새롭게 도입되는 영어교육제도에 대해서 부가설명을 듣기 위해 초빙한 선생이 있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그녀는 이 유치원 아이들과 시범수업을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유치원의 커리큘럼이 훌륭하니 믿고 맡기시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가 하는 영어 수업은 강남에서 98만원에 하는 수업인데 여기서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하게 되었으니 운 좋은 줄 알라는 말을 완곡한 어법으로 말했다. 게다가 중국어 수업도 한다고 했다. 중국어라니, 아이들한테 중국어를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나는 스물일곱 정도 되어서 중국어를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나이를 먹고도 진짜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언어가 아니었던가 했었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필법을 잊었고 하루라도 말하지 않으면 어법은 영어문법과 뒤섞이고 있었다. 유아시절에 언어를 배워두면 표현력이 풍부해 집니다 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가, 원장은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감행했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단순히 원비나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마시고, 학교로 보내시라는 말이라고 이해해 주십사 하는 간곡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유아학교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 분명 원장에게 어떤 힘을 북돋아 준 게 틀림없었다. 정식으로 인가를 받아 진행하는 본인부담금이 매우 높은 공교육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원장은 개인의 인성발달과 질서교육, 그리고 예절교육도 잘 시킵니다, 미술특화 교육이 있고 자연친화 교육을 위해 뒷산에 자주 오르며, 체육교육을 위해 옥상에 실내 체육관을 건립할 예정에 있습니다, 놀이시설을 통해 아이들은 활달하게 놀 수 있으며 모든 놀이가 지능발달과 학습적응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았다. 듣자하니 아이들을 규격화 시킨다는 얘기로 들려왔다. 아이들이 가야 할 방향으로 잡아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그 방향이 아니면 방향을 틀어줘야지요, 차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아이들로 만들어 드립니다. 엉뚱한 짓거리도 창의성이 있다면 인정합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그런 것은 어느 정도 걸러내야죠 하는 얘기로 들렸다. 공기는 텁텁했고 뒤편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영빈이 엄마는 아까부터 둘째를 달래느라 저 뒤에 일어서 있었고 나는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에 내 아이가 어디에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세 번 정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가 뭘 하고 있는지 보고 왔다. 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여기는 착한 형아야 하면서 다섯 살짜리 아이와 짝이 되어 공을 굴리고 자동차를 밀고 집중하여 놀고 있었다. 마이크에서 퍼지는 음성들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머리를 딩딩 울리기 시작했다. 마이크와 스피커의 경계에서 울리는 전자파들이 내 뼛속 깊이 스며드는 듯 했다.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았는데 대놓고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4시부터 시작된 입학 설명회는 5시 반이 넘어가도록 끝나지 않고 있었다. 원래 예정에는 4시부터 5시까지였다. 피로가 몰려 왔다. 집에 가서 밥해야 되는데, 남편이 일찍 오면 갈치라도 꺼내고 프라이팬을 닦았나 안 닦았나 라도 확인해야 할 텐데 하는 조급한 마음도 밀려왔다. 이 여자들은 왜 예정한 시간을 지키지 않는 건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놀고먹는 아줌마라고 자기네 마음대로 시간을 연장해도 되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정말 아줌마들이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저녁 6시면 엄마들이 가장 분주해 질 때가 아닌가, 배고파지기 시작하는 아이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남편이 정시퇴근을 한다면 찌개라도 끓여야 하는 시간 아닌가, 뜨신 밥을 먹이기 위해 쌀을 일고 밥을 안쳐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반찬이 모두 떨어졌다면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라도 뛰어갔다 와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오뎅이라도 볶고 두부라도 부쳐야 하는 건 아닌가, 이불을 널어놨다면 이불을 걷어 들여야 할 시간이 아닌가, 건조해 질 가을 저녁 거실을 위해 빨래를 돌리기 시작해서 밥을 먹고 난 뒤에 딱 널 수 있도록 빨래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그 빨래를 널기 위해 널어놓았던 빨래를 걷어 개켜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현관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영빈이 엄마처럼 아이를 놀이방에 맡겼다면 찾으러 가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남편 몰래 주문한 물건이 있다면 경비실에 가서 택배를 찾아와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가장 바쁜 시간 아니냐 말이다. 단순히 저녁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란 말이다. 분노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할 즈음에 원장이 오늘 너무 늦어졌으니 이것으로 간단히 마무리 하고.. 라고 운을 떼며 설명회를 마무리했다. 간단히 마무리라니, 그럼 애초부터 간단히 할 것이지 흥. 하는 마음을 접으며 1층으로 올라와 사무실에 들러 어제 급박하게 이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추천서를 써 줄 이웃을 찾아 달라 해서 받아 낸 추천서를 냈다. 그리고 추천자 입학원서를 받아 들었다. 추천인 한 명당 두 명까지 추천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영빈엄마도 몰래 이름을 끼워 넣기로 했다. 영빈엄마는 둘째 밥을 먹여야 한다고 동동거렸고 큰 아이도 찾으러 가야 한다며 바쁘네 바쁘네를 반복했다. 나는 시간 맞춰 말 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죠 하며 사람 좋은 척을 했다. 내 안에 복닥거리고 일어났던 울화통은 모두 집어 삼킨 채로. 우리는 어두운 아파트 단지 안을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가 사는 동의 주차장에 내린 뒤 택시비는 영빈엄마가 손에 쥐고 있던 잔돈으로 내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지난봄에 실파를 사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갔다가 내가 파김치가 됐던 순간이 떠올랐다. 올해 김장철에는 유달리 인기라는 절임배추도 떠올랐다. 나는 마루에 앉아 스르르 가라앉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마룻바닥에 누워서 자동차를 굴리기 시작했다. 제발 남편이 약속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섭섭할까봐 전화를 걸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벌떡 일어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외쳤다.
“배고파!”

그럴 수도 있지?

1.

며칠전에, 동네 엄마에게 제안을 받았다.

근처에 어린이 전용 수영장이 생겼는데 수영복이랑 수건만 챙겨서 보내면 씻기고 말리고 차에 태워서 보내준단다.
4명 그룹짜며 보내면 할인해 준단다. 아들도 같이 보내지 않겠니. 하고. 그 엄마 아들은 초딩 2학년.
얼만데요? 물어보니 할인해서 주 2회 강습에 3개월 선납하면 52만원이랜다.

딱 짤라 거절하기 곤란했다.
어린이 수영에 대한 나의 생각은
_ 절대 혼자 머리감고 옷 갈아입고 수영장에서 자빠지지 않을 나이에 보낸다. 이기 때문에.

오후에 다시 전화가 왔길래 그렇게까지 시킬 필요 없는 거 같은데 아무튼 제안해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6개월내에 수영마스터”를 강조하신다.
..

수영은.. 재밌자고 하는 거 아닌가;;;
나도 이제 배우는데;;
내 대답은 “수영선수 시킬 것도 아닌데..” 였다.
아무튼 고맙다고는 했다.

2.

그 날 오후에 만난 동네 또 다른 엄마.
낮에 수영 제안 받은 얘기 했더니 아 거기까지 연락이 갔구나 한다.
요즘 우리 아들 뭐 하냐고 물어봐서 유치원에서 방과후를 매일 하니까 애가 좀 피곤한 거 같아서
(내가 시킨 거 아님!!! 지가 한다고 그랬음!!!) 태권도만 보내고
일 있어서 애 좀 맡겨야 할 때는 블록놀이방 보내는데 본인도 좋아하고 수업 하나 하겠다고 하도 졸라서 주 1회만 보내고..
태권도에서 주말 수업 하는데 그것도 보내달라고 해서 토요일 오전에 보낸다. 했다.

미술학원 다니지 않았어요? 하길래
인제 흥미를 잃은 거 같아서 안 보내요, 하면서 “미대 가야 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했더니
그 엄마왈 “그러게.. 체대를 갈 것도, 미대를 갈 것도 아닌데..” 라고 한다.

이 엄마는 최근 남편이, “내가 지금 행복한가” 하는 고민에 빠져 난감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도 교육때문에 자꾸 누군가에게 떠밀리는 느낌이라 괴롭다고 한다.
뒤쳐지지 말라고 시키는 건데 이게 뭔가 싶다는 거다.

나는 얼마전에 초등학교 4학년 수학문제를 봤는데 도저히 공부 하라 소리 할 수 없게 생겼던 얘기를 하며, 이게 변별력을 위해 만든 문제라면,
내 새끼가 수학천재면 풀 것이고, 아니면 마는거지..
굳이 공부 잘해 대학 잘 가 직장 잘 들어가 대기업의 부속품으로 7-8년 근속하고 나이 마흔에 인생 이모작 해야되는거면, 난 그것보단 장바닥 전투력과 사회성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라고 얘기 했다.

그러게요..라며 그 엄마는 멍한표정을 지었다.
애가 뒤쳐지지 말아야 하니까. 라는 그 엄마에게
뭐 공부가 많이 떨어져요? 물으니, 아니 그건 아닌데..

내 기준에 공부가 많이 떨어져요? 는 글을 못 읽거나 계산을 못하는 경우, 혹은 본인이 성적이 너무 떨어지거나 학교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말한다.

글쎄 나는 예체능이나 애가 사춘기를 넘길 수 있게 꽂힐만한 뭔가는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부는. 글쎄.. 억지로 시키면 올라가서 뛰어내리든가 가출하든가 둘 중 하나 아닐까 싶은데.. 정도로 얘기하고.

그 엄마가 뭔가 더 얘기하고 싶었으나, 저녁이 늦어,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3.

이웃에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학교 – 보습학원- 태권도를 마치고 요일별로,
학습지 선생님, 미술학원,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가 있다.
10시 정도에 받아쓰기 공부를 하다가 자는 모양인데,
이 친구는, 주로.. 한 페이지 푸는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집중력이 아주 떨어지는 아이다. 그렇다고 ADHD는 아니고, 그냥 재미가 없어서 하기가 싫은 아이.
그 엄마는 애 옆에 앉아 있으면 자꾸 소리 지르게 되고 그래서 자리를 뜨면 애는 딴 짓하고 손톱 쳐다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애는 또 숙제를 늦게 하고 그래서 엄마가 또 화를 내고..
반복이라고 한탄한다.

4.

오늘 같은 태권도를 다니는 형아의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사범님한테 야단을 맞았다며 울고 들어왔는데 애는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하지 못하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다며 우리 아들한테 좀 물어봐 달란다.

아들이 설명해주는 상황은,
어떤 꼬맹이가 그 형한테 자꾸 까불고 놀리고 그래서 형이 참다가 화가 나서 “나쁜 말”을 했단다. 무슨 나쁜 말? 이냐고 물으니 입에 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을 돌린다.

그 엄마는, 아들이 울며 들어와 놀랐고,
그 나이때는 다 그런 거 아니냐.
우리 애가 먼저 잘못한 거 아닌데 왜 야단을 맞아야 하나 이런 생각인 거 같았다.

좀 친한 사이라 나는

“언니 남자애들은 현장에서 바로 잡아 주지 않으면 뭘 잘못했는지 전혀 깨우치질 못해요. 기억을 못하니까. 나중엔 별로 감도 안 오나보더라고. 나중에 얼르고 달래고 설득하는 게 통하는 건 여자애들 스타일이지.
그리고 태권도는 무조건 연장자가 참고, 욕을 하면 욕한 애가 무조건 더 혼나는 거고, 꼬맹이는 야단을 쳐도 잘 모르니까, 형들이 양보하고 참고 가르쳐라 이게 메뉴얼인 거 같더라구요.
큰 애들이 화를 못 참아서 손 한 방만 나가도 작은 애들은 나가 떨어지니까 일이 더 커지잖아요. 그래서 그런거겠지.”라고 얘기했더니
이 엄마는..

많이.

놀랐나보다.

그래 그래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정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5.

엄마들은 아이들이 야단맞고 들어오면 싫은걸까. 모두?
관심이 있으니까 교사로서 야단도 치고 그러는 거 아닐까?

라는 질문을 트윗에 올리니.
트위터에 어떤 분이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 별로 없다며.
자기 자식을 야단칠 권리는 부모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물론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고 쉬운 일반화를 시킬 수 없으므로)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니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이 야단을 쳤을 것이고,
야단맞을 짓을 했을 것이고,
선생님은 집단을 규율하는데 있어서 어떤 규칙이 있을 것이고,
설령 불공평한 일이 있었거나, 다 똑같이 잘못했는데 혼자만 걸려서 억울하다 하더라도 그 억울할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며,
선생님이 정말 너에게 관심이 없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교육업자면 절대 너를 야단치지 않을 것인데. 라는 생각은.
옛날 부모들의 생각이라는 의견도 들었다.

내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건지,
내가 이상한 사람인건지.

그래서 큰 아이 자격증 학원에서 애 야단쳤다고 죄송하다는 식으로 그렇게 누누히 강조했나.

아니, 근데 보습학원 같은 데서는 막 엎드려뻗쳐도 시키고 매도 때리고 하던데
이건 뭐지.

공부를 안하는 건 야단맞아도 되지만, 다른 사안은 “그럴 수도 있지. 공부하느라 힘든데” 하고 넘어가는 건가?

다 미친건가?

내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나?

그럴 수도 있지, 싸울 수도 있지, 욕할 수도 있지, 때릴 수도 있지, 저 아이가 열받게 했대잖아요. 이게 바로 학교폭력의 가해자의 시발점인데.

6.

그럴 수도 있지, 사대강 팔 수도 있지. 토건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해군기지 건설할 수도 있지. 국가 방위력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성폭행 할 수도 있지. 꼴렸다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는거야? 다??

2012. 4. 12.

엄마는 실직중

실업과 실직사회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한 생각인데, 실직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애엄마들의 황망함에 대해서 누가 고려를 해보았는가다.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의 경우, 이게 아무리 자발적이라도 하더라도 임금노동시장에서 밀려났다는 박탈감으로 인해 실직과 유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이걸 지워주는 건 실직이 아닌 이직으로 생각해야 하겠지만, 이 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상, 엄마라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지만 그것을 절대 프로의식 가득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아준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임금노동시장에서 일하다가 급작스러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물론 그건 내가 선택한 몫이라고 누가 트집을 잡아도 할 수 없다만.

임신을 하게 되고 급하게 일을 정리하면서 임신중에 무슨 태교니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내내 출산예정 일주일전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폭풍업무를 봤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육아휴직을 출산이후로 잡아놓는 것을 가정했을 때, 마음으로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할 만큼 업무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는 게 바로 코 앞에 닥친 일이기 때문에 미친 듯이 일을 해대지 어디 뱃속에 있는 애 생각할 여유나 몇 번 있었겠느냐 말이다.

이 사회에서 바라는 엄마는,
성녀이길 바라면서 초능력자이길 바라고, 감정정리도 깔끔하길 바란다.

<짤방이 너무 귀엽군>

남자들은 부인이 애엄마가 되는 그 순간 자기 엄마와 동일시 하며 성모마리아적인 자기 자식의 어미를 기대한다. (물론 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젊은 엄마들에게 에미가 되서 할 짓이냐 에미가 그게 뭐냐 라고 강요하는 반면,

배우자들은 대체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라고. 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우리 마누라 너무 수고하지..라고 하면서 귓전에는 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윽박지르듯이 하던 말 “집구석에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라는 말이 맴돌 것이다.

설령 그 중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내내 잘 버티고 있는 엄마들도 직장내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야근, 회식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회에서 반실직과 다름없는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사회에서 그깟 돈 몇 푼 버는 것보다 정말 대단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다고 칭찬해줘도 모자랄판에, 나도 밖에서 돈 버느라 힘들다고 징징대는 어린 신랑들이 천지 삐까리다.
게다가 많은 초보아빠들은 애 안았다가 내가 떨어뜨려 죽이면 어떻게 하나, 라는 공포에 시달린다고 한다. 같이 자다가 깔아뭉개면 어쩌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다 미성숙한 상태에서 만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혹시 어린 아이가 수단이 되거나 목적이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지만, 이건 이미 시간이 오래 흐른 다음에 깨닫는 개인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라도, 어미의 노릇을 하는 것과 아비의 노릇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하고 심각하고 고귀한 일인가 제도적으로 혹은 분위기라도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실직당하고 하루 종일 공원에서 빈 가방 들고 헤매는 늙은 아버지의 심정과 우는 애 업고 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동네를 거니는 젊은 엄마의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임신/출산/육아를 거치면서 사실상 실직상태에 몰린 엄마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의 숭고함과 자아발견과 자아계발에 지대한 가치를 학습받으며 자란 세대다. 동생 한 번 업어보지 않고 자란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다.

쉽게 말해 언제는 유능한 여자가 되어 불평등에 반대하여 투사가 되라더니 이제와서 숭고한 마리아가 되라는 말이냐고 따져 물을 수 있다.

실직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은 사회적 평등과 가족의 이해겠지만, 지금 이 따위 나라에서 두 가지를 다 거머쥐는 것은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각자 알아서 하되 돈 있으면 되도록 전문상담사를 만나라고, 우울증을 조심하라고  쉽게 말해도 되는 일인가?

2012. 2. 27.

새롭게 태어나는 소중한 생명은 
임금노동시장에서 열나게 업무만 처리하다 온 사람에게 
매우 낯설고 어색하고 이해할 수 없으나 
절대 미워해서는 안되는 성역과도 같은 존재다. 
낯설고 낯설고 또 낯설다
– 짤방은 올해 7살이 되어 느물거리는 내 새끼임-

배틀로얄이 오고 있다.

1.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툭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 이 글은 영화 배틀로얄에 대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영화소개에 적힌 줄거리이다.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

옴진리교 사린가스테러 사건 이후
97년도에 사키키바라 살인사건이라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인한 사건 – 이후 범인은 2005년 풀려났다)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http://blog.daum.net/holongbool/8106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

배틀로얄은 2002년도 작품이다.
이 당시 일본은 이지매라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과 그 원인과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일명 “묻지마”살인사건의 유형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최근 벌어진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사건, 집단 따돌림 폭행으로 지적장애가 생긴 여학생의 사건, 집단성폭행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 보도된 바로 이 사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2/h2011122816580921950.htm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 집주인이 출국한 사이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들어간 아이들이 무단침입으로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2.

얼마 전 눈이 온 다음 날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과 함께 어울렸다.
작은 놈은 오늘부로 7살이 되었고 누나들이라고 좋아하며 노는데 지켜보니 떨어진 모자도 씌워주고 아이들이 동생이랍시고 잘 챙기는 듯 해서 기특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누나들이랑 우리집에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 집에 데리고 들어와 추운데서 놀았으니 장갑도 말리고 따뜻한 거 한 잔 마시고 가거라 하고 집이 어디냐 물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몇시까지 가야하느냐 묻고 엄마가 안 기다리시느냐 물으니 3시까지 가면 된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유를 덥혀 코코아를 타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토요일이었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조금만 놀고 돌아가거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고 그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남편이 사온 분식을 나눠 먹이고 작은 아이 방에서 같이 놀게 했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쉬는 사이 이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안마의자를 하고 싶다는 등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가 어딘지를 알리는 똑똑함을 보였으나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 예를 들어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다”, “안방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예절은 습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퇴근해서 쉬고 계시니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너무 쫒아다니면서 제재를 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랑 같이 갖고 논 모래놀이 통을 닦겠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통을 닦고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기까지 했던 것. 목욕탕에서 드라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인데 나에게 허락을 받거나 묻지 않고 여섯살 난 아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갔고 놀이터에서 아들과 조금 더 놀다가 갔다.
나는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누나들이 너랑 잘 놀아서 좋았는데 집안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듯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더라도 집에 놀러오는 것은 좀 곤란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3.

요즘 길을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멀리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담을 넘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딜 넘어다니냐- 하고 소리를 치면 대부분 부리나케 도망을 가긴 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면 위험한데 뭣들 하는 짓이냐 라고 했을 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저희 여기 안살아요 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이들,

차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야단쳤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흡연구역에 가서 피우라고 했을 때는 당신이 뭔데 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에 띄면 띄는대로 야단을 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내 자식같고 몇 다리 건너면 다 내새끼 친구겠거니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나에게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서 고등학생 쯤 되는 큰 아이들이 세명 이상 몰려 있을 때는 경비아저씨를 부르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긴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때문에 할머니나 엄마와 실갱이를 한다.
몇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고 학원 갔다가 다른 학원을 가야 하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는 등의 문제다.

엄마들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 지금까지 학원 안가고 왜 집에 있냐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어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그 시간 사이에 뭘 먹거나 다른 일을 볼 수 있다는 시간에 대한 계산에 능숙하고
엄마에게 행선지를 알리거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일에도 노련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취약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범주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공부하느라 피곤하니까 라고 넘어가기 일쑤이고
시간에 쫒기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이나 티비에 열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들에 대한 꾸중을 듣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교정할 시간따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몇 가지 실수를 그냥 넘어가거나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의 폭력성 성향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남의 집의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불쑥 들어가는 일에 유연한 사회,
사실 주변에도 친구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어가 이런 난장판을 벌이더라도 괜찮은가보다. 라고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인가, 그게 왜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파트 단지에서 내내 화단의 풀을 잡아 뽑으며 걷는 남자아이를 본 시동생이 이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한다는 대답이
저희 집은 전세 사는데요.
분명 초등학생이었단다.

우리는 높아지는 집값과 먹고 사니즘과 그로 인해 너희들도 안정된 직장과 연봉 얼마가 인생의 척도가 된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교 1등도 술마시고 담배 피워요.
전교 1등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우리는 정말
“그 따위 전교1등은 개나 줘버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내 친구를 죽였어요. 
왜요? 짜증나서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만만하니까 시켰다. 
그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성폭행도 하고 폭행도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의 성폭행과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질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괜찮다고 말할 것인가.
너는 강자이니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4.

가장 쉬운 계도책으로 나는 학교에서 상황극이나 심리극등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엄마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줌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성적에 목숨을 걸고 공부 하라고 안간힘을 쓰는 비인간적인 모성들인 것인가.

주변의 내 지인들 중엔 다행히도 무조건 인서울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는 없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고 자식의 깜냥따위 신경쓰지 않고 학원 커리큘럼 외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 하는 건 학부형들이고 학부형들음 학교와 사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시간만 보내며 말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부쩍 자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여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평촌이라는 곳은 나름 내 기준에선 “사교육의 메카”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형편이 뭐 대단히 좋아보이진 않는다.
다들 학원비에 허덕이고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래도 두 세개씩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체능등의 사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 아이가 학교공부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어에 소질이 있으니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치자.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천성이나 기질은 정말 달라서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할 놈은 하고 안 할놈은 안한다.
공부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취미가 있는 놈도 있고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머리쓰면 머리가 아프니까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꺼야. 라는 부모의 속단속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죽어버릴 거 같애. 라고 울고 있는거다.

학원에서 영업상 하는 말 “이 아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낚이지 마라. 그게 우리 학원을 면쭉 보내세요. 성적이 안 올라가면 아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러는거고 성적이 올라가면 우리 학원 덕분이예요. 라는 말이다.

공부나 성적 올리기에 취미가 있는 아이는 그 쪽으로 밀어주면 되고 그게 아닌 아이는 그 아이의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터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있는 교과목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개지랄 떨지 말고 정확하게 주어진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말 어이 없었던 일 하나는 딸아이의 중3 때 담임이란 여자가 (선생이라 칭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끝나면 전화기를 딱 꺼버리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니까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니 결국 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 3 아이들 입시 1달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며 인사도 없이 학교를 사직했다.
이런 선생. 하루 빨리 그만둬 주면 고맙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면, 모교를 아름답게 빛내는 게 아니라 교직원 이상 교장이나 이사장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것이니 남의 승진에 악용당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으나. ..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말하지 마라.
우리가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배우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아이들을 살펴보라.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답답한지,
내 아이가 수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많이 말하지 말고 많이 듣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내 새끼만 쳐다보니 말고 남의 새끼도 좀 쳐다보라.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휴지통에 넣으라고 말하라.
성적이 잘 나온 것을 칭찬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라.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이제 고2가 되고 곧 있으면 사회인이다.
난 이 아이가 지옥의 학창시절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리고 본인도 슬픈 시절을 지냈으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큰 아이의 졸업과 동시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간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적응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니들 밥그릇 생각 그만하고 일을 해다오. 일을.

5.

배틀로얄이 영화 같은가.
이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전쟁터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전쟁하는 게 좋으면 아프리카 내전지역 가서 자원봉사나 하든가.

2012. 1. 1.

용돈

고 1인 딸아이가 용돈이 모자라다고 계속 투덜거린지 몇 달여.
교통비 포함 주 4만원을 주고 있는데
어떤 주에는 괜찮고 어떤 주는 모자라다는 것이다.

정확한 용돈기입장을 만들어서 제출하면 검토하고 같이 상의해서 조정하자고 하였으나
아이는 용돈기입장 만드는 것을 어려워했다.

결국 지난 주엔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다니고 있는 애견미용학원을 일주일 쉬고
친구들과 빵집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지출액이 더 커져서 돈이 많이 모자란다고 하였다.

두 달여전쯤 아이가 애견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네가 배우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노동이고 그에 따라서는 상응한 댓가를 받는 것이 옳으니 우리집에서 키우는 개 목욕을 시키면 1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는 쉬는 날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개 목욕을 시키고 1만원을 받아가곤 했다.

용돈에 대해서 갈등을 오래 빚을 필요가 없어서
네가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별도의 방안을 강구한다면 지켜보겠느냐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트윗에 이 내용을 올렸더니 필수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살림살이 예를 들어, 청소나 설거지 빨래 개기 등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과 그보다 개념을 조금 바꿔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상금을 부여하는 게 어떻겠냐는 고견을 들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때쯤에 아이에게 청소하면 얼마, 쓰레기 버리면 얼마 이런 상금제도를 만들었다가 이후 제 방청소를 하면 얼마를 줄꺼냐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어서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돈으로 환전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하여 미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아이가 토요일 오후에 일주일간 용돈을 사용한 내역을 아주 작은 노트에 적어왔다.

학교 끝나고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학원을 가거나 바로 친구들과 공부를 하러 가는 일이 잦은 것은 집에 들러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면 버스비와 먹거리를 사먹는 돈이 비슷하고 중간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의 이야기였는데
집에 오면 조금 더 양질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의견이고 그 의견을 굳이 관철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여,
아이와 정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교통비 포함 주 4만원은 기본으로 하되 (주당 교통비가 최소 12,000원정도가 든다)
용돈기입장 일주일치 기록에 1만원 상금.
개목욕에 1만원, 발톱깎는 것에 5천원. – 이건 노동의 댓가
– 아이말로는 발톱 깎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으나 매주 개발톱을 깎을 수는 없으므로 목적은 아이에게 돈을 더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 이라 매주 해야 하는 목욕에 1만원, 2-3주에 한 번정도 해야 하는 발톱깍는 일엔 5천원으로 조정하기로 합의 –
200쪽이상의 책을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면 1만원 상금
재활용쓰레기 한 소쿠리 버리는 것에 2천원 상금.

으로 결정하고 합의했다.
모든 절차는 내가 제안하고 아이가 승락하는 방식으로 했고
독후감의 경우 200쪽이상의 책이라는 것에 대해 아이가 기준을 정하기 애매했는지 나보고 권장도서를 정해달라고 했으나 나는 그럴 경우 엄마가 재밌다고 생각한 책을 너에게 강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엄마의 사고방식을 네가 답습할 수 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너도 옳다고 생각하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에 좋지 않은 듯 하니 네가 스스로 판단해서 즐겁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스스로 고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한 200쪽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짧은 책이라도 더 감동이 올 수 있으나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글을 읽고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므로 다수의 글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기 위해 200여쪽 이상의 책으로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아이가 수락했다.

해서 아이는 어제 오늘 이틀 사이에 개목욕을 시키고 1만원을 벌고, 일주일치 용돈기입장을 적어 1만원을 받아갔다.
집에 재활용쓰레기가 쌓였는데 그건 하지 않았다.

큰 아이의 성격적 특성상,
무조건 그러모으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딱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구하는 스타일이라 돈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책을 하루에 두 권씩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나같은 인간형이 할만한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최근들어 돈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6살 작은 놈인데
내가 저 나이 때에는 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기질인지 환경인지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돈에 대해서 매우 민감히 반응하고
모든 물건의 가격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보면 매우 흥분하며 자기가 가져도 되냐고 좋아할 정도이고,
또한 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는데
아이의 목적은 포켓몬카드를 사기 위해서이다.

5장들이 포켓몬카드 한 세트가 500원이므로 아이에겐 500원이 상당히 가치가 큰 돈이다.
얼마 전 할머니가 주신 용돈과 내가 줬던 천원짜리등이 모여 저금통에 들어가지 않은 돈이 1만원이 되었는데 이 돈으로 포켓몬카드를 사겠다고 해서
“가진 돈을 한번에 다 써버리면 안돼지” 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1만원 중에 6천원만 쓰고 4천원은 저금통에 넣겠다고 스스로 대답했다.

– 나에겐 매우 감동적인 경제개념이다. 나란 인간은 이게 매우 부족한 인간형 –

아이는 이래 저래 여기 저기서 용돈이 생길 때도 있고 아직 혼자 다니지 않으니 용돈을 줄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포켓몬 카드나 슈팅바쿠간 같은 장난감을 사는 것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는 조금 고민해 볼 문제.
청소를 하면 천원을 달라고 하거나 구두를 닦으면 돈을 줄 것이냐고 묻는데
이걸 이렇게 대체해도 되는가 고민중이다.
(엄마 아빠가 주로 구두를 신지 않아 닦을 구두가 없다는 게 함정)

아무튼 그 외에도 6살짜리 작은 놈은
내가 휴대폰을 아이폰으로 바꾸고 나서 앵그리버드를 몰래 깔아놓은 것이 발각되어
앵그리버드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길래
기적의 계산법 한 페이지에 20분으로 거래를 했는데
아직까지는 먹히고 있다.
(자랑같으나 이 아이는 덧셈 뺄셈 하는 걸 매우 즐기는 유형이다. 음..자랑 맞군. 암튼)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늘 경제개념 때문에 곤란한 일을 많이 겪은 엄마로서
아이에게 경제교육을 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큰 아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나는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계산도 느리고 개념도 부족해
일부러 너희에게 좀 인색하게 굴 지도 모른다. 절대 너희들이 나를 닮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애가 웃었다. 허허허;;

뭐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좋은 의견이 있으시다면 거침없이 알려주시면
경제개념 무탑재인 에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2011.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