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이렇게 가고.
은행잎은 후두둑 떨어지고
태풍은 오지 않았으나
마음은 처연하고
세월은 나를 외면하고 떠나가고
아이들은 모른척 하고 자라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을
미련없이 보내줘야 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2011. 10. 31.
![]() |
| 석수시장 아트프로젝트 만안의 기억&오래된 미래의 오프닝 보현사 스님들의 반주/연주와 지역주민들의 노래자랑 |
![]() |
| 보현사 스님밴드 |
![]() |
| 석수시장 중앙광장 바닥에 새긴 석수시장 |
![]() |
|
미샬로프(Mishalov)로부터 온 편지 / 박찬응
68-69년 석수동의 모습을 간직한 미군병사의 사진 당시의 사진속 주인공들을 찾습니다. |
![]() |
| 벽화작업 자전거벽화에 받침대 설치한 것이 아주 굿. |
![]() |
| 10월 23일까지 이어지는 석수아트축제페스티벌 |
![]() |
| 레지던스 작가 작업실 앞 |
![]() |
| 스톤앤워터 네온사인 들어오는 삽! |
![]() |
| Anak & Moneperro 의 오프닝 석수신령 퍼포먼스 벽면 작업도 있는데 날이 어두워져서 못 찍음 |
![]() |
| Cafe Lizard 도마뱀까페 |
![]() |
| 김덕영 점진적 확장 |

![]() |
| 2076 안양 / Luiz roque |
![]() |
| 춤추는 요리사 작가 작업실 |
![]() |
| 맥아더 동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소철 입주작가 경기 영아티스트 기획수상작가 회화작업인데 매우 내 취향 ㅎ http://cafe.naver.com/2010gyaprojec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41& 작품소개 |
오프닝풍경
스톤앤워터 주최
http://www.stonenwater.org/bbs/view.php?id=notice&no=256
파우스트의 내용은 잘 알려진 바, 이 극에서 주의할만한 특이점들만 이야기 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모든 것을 가진 지식인, 그러나 인간의 무능함에 답답함을 느끼는 자이나, 뚜렷하게 고고하거나 숭고한 인물은 아니다. 그리하여 메피스토텔레스와 계약을 맺고 때론 그를 조정하고 때론 그를 압박하고 때론 그에게 이끌려 다닌다.
메피스토텔레스는 성서에서 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열한 악마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저돌적이고 지능적이고 파괴적이며 우월한 존재다.
타인을 정복하거나 그 위에 군림하는 능력이 뛰어난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또한 매우 추접스러우며, 성적 욕구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도 있을 법한데, 식욕과 수면욕이 나름대로 존중받아 마땅한 것으로 당연시 된다면 성욕은 사람들이 매우 노출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대식욕이나 과대수면욕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그러우나 과대성욕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극의 메피스토텔레스가 표현하는 과대성욕은 거침이 없다.
단순히 성욕으로만 표현된 것 같겠지만, 메피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성욕은 그저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총체적 집합이다.
파우스트는 무료한 일상에서 그레트헨을 마주치고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가 처음에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거나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싶다가 아니고 오늘 밤 당장 품에 안고 싶다. 라는 감정이다.
누군가 사랑은 사랑으로 포장된 성적욕구에 불구하다고 했던가.
거침없는 파우스트의 욕구는 왜곡되어 그레트헨에겐 사랑으로 여겨진다.
또한 파우스트의 욕구가 그레트헨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레트헨은 물욕으로 인해 사랑을 확인한다. 사랑이라고 이름지어지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성욕, 그 성욕을 채우기 위해 전달되는 선물공세로 여성의 물욕을 충족시키고 상호 욕구를 충족하는 그런 단계로 표현한 것이다.
(일부에선 여성비하, 여성혐오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남녀의 성별의 상징적 의미를 과하게 곡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에서 기록하는 여성성을 이토록 유혹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유전학에서 말하듯이, 여성만이 출산을 할 수 있고 여성만이 생명을 잉태할 수 있기 때문에 남성의 동물적 본능, 존재를 남기고 후손을 생성하고 싶은 (혹은 그 후손을 생성하는 것이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함이라면)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오로지 여성의 자궁이 필요하다. 남성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역사이전에 모계사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역사가 기록된 이후엔 대부분 남성중심으로 세계역사가 재편되었고 그것들이 증거로 남아있다.
결코 남성이 초월할 수 없는 경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인간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가 남성의 시각에서는 오로지 여성이다. 남성은 여성을 차지하고 그로 인해 욕구를 충족해야만 생명의 의미를 갖는다.
자식을 낳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교육과 양육의 책임이 더 커졌으나 역사적으로는 자식을 낳는 것은 자신의 영역과 유전자를 확대하는 의미가 더 크다. 물질이 부족하던 시절엔, 자손을 퍼뜨림으로써 왕국을 이룰 수 있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후반부로 치달아, 그레트헨이 완전히 파괴되기 직전,
메피스토텔레스의 악마성의 최고조에 다르는 장면이 펼쳐진다.
메피스토텔레스는 높은 곳에 올라, 꽃님이를 옆에 호위무사처럼 인형처럼 앉혀놓고 마이크를 잡고 목사나 신부가 입을 법한 예복을 입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그레트헨을 단죄하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이 흡사, 기도원이나 부흥회에서 우리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 강대상위의 그분들의 단죄장면이다.
너는, 죄인이고 너는 더럽혀졌으며 너는 원죄가 있어 벌을 받아 마땅하니.
현실의 목회자들은 구원받을 지어다, 라고 하겠지만 메피스토텔레스는 너는 파멸을 면치 못하리라고 저주한다.
현실과 극의 완벽한 오버랩.
연극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서준식의 옥중서간을 읽으며 그가 느낀 예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과연 우리의 신은 우리를 단죄하기 위해 존재하였던가.
그분은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를 용서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니었던가.
대체 누가 인간을 단죄하고 인간에게 죄를 물으며 인간에게 죄사함을 받기위해 종교기관에 충성하라고 말하더란 말인가.
(게다가 이 연극을 보고 온 날 PD수첩에서 기독교의 부정축재에 대한 꼭지를 내보냈다)
신은 그레트헨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 위해 눈을 뿌려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 하지만, 결국 그레트헨은 미치광이가 되어버리고 파우스트는 또 다르게 시작한 아주 가벼운 작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레트헨을 떠나버린다.
욕구로 시작하여 욕구로 끝나는 우어파우스트.
현대적 영상과 현대적 음악, 그리고 매우 절도 있고 깔끔한 구성이 조금 낯설 수 있으나 복잡다단한 인간의 총체력 무력함과 선악을 표현하려는 괴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 매우 아쉬웠던 것은,
내 뒤에 영화계 원로분들이 앉으셨는데, 이 나라의 거목이신 김모감독님과 그 옆에 계신 분께서 연극을 보는 내내 관전평을 해대셔서 극몰입에 엄청난 괴로움을 겪었다.
내 뒷줄에서 서너자리 오른편이 앉으셨는데 바로 그 앞에 앉은 여자관객분은 연극을 보는 게 아니라 짜증만 받고 가신 듯 하다. 어이가 없어 사람들이 계속 뒤를 돌아봤지만 그 분들은 그치지 않았고 뭐라고 말하는지 거의 다 들릴 지경이었다.
무대위의 배우들도 누가 말을 하는지, 저 분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아마 외국인인 연출자 빼고 아무도 그 분에게 항의하지 못했겠지.
당신이 만든 영화를 보고 늘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늙어지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참담한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정중하게 사과하시고 그 앞자리 여자분 표 물어주시면 참 좋겠다.
2011. 9. 20. 관람.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에 연극을 보러 나간 길.
카메라는 들지 않았고 오는 길에 뭔가 사와야 할 물건이 있어서 부러 차를 가지고 나갔다.
주차를 하고 동생을 만나 칼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아동성폭행법개정에 대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나올 때 해야지 했던 걸 깜빡했다는 걸 집에 오는 길에 깨달았다.
연극을 보고 나와
촉박한 시간에 마구 발걸음을 빨리 하는 순간에 빅이슈를 팔고 있는 판매자 분을 마주쳤다.
내 기억속의 코스모스백화점, 그리고 그 이후에 십수번 이름을 바꾼 눈스퀘어 앞이었다.
내용이 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나는 빅이슈를 사야했다.
빅이슈가 발행된 지 1년여는 된 거 같다.
거의 서울 지하철권에서 판매가 되는데 나는 빅이슈가 창간된 즈음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빅이슈를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
빅이슈는 1권에 3000원이다.
빅이슈 1부는 1400원에 빅판(판매자)에게 공급되고 권당 1600원의 수익을 갖는다.
나는 3천원 한 권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동안 빚진 느낌을 청산하고 싶어 3부를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같은 내용으로 3권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과월호를 섞어서 드리는 게 어떨까요 하는 빅판의 말씀에, 아, 과월호도 있으면 과월호도 사야겠다 싶어 이번호 3권과 과월호 각기 다른 2권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한꺼번에 5권을 사니 빅판께서 민망하셨는지 음료수를 사겠다고 하시며 음료수를 먼저 내게 건네야 돈을 받을 것 같으셨다.
빅판의 빨간 조끼 주머니에 다행히 잔돈이 있었던 지라 15000원을 넣어드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모퉁이를 돌면서 트위터에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 트윗을 올렸다.
명동눈스퀘어 앞에서 빅이슈 판매자분을 만나서 이번호 3권 달라하니 똑같은 거 3권 가져가느냐며 과월호로 가져가면 어떠냐 하셔서 이번호 3권에 과월 각 1권씩 달라하니 음료수 사주신다고 하신 판매자분. 감사합니다. 많이 파시고 건강하세요!
어떤 분께서 RT를 거쳐 내가 오늘 만난 판매자분께 멘션을 연결해주셨고
내가 오늘 만난 빅판께서 이런 글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bigissue_h 앗!그 분이시군요.말한마디 때문에 3부에서 5부가 되지 않으셨는지?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빈말이 아니였는데 음료 드셨으면 지금 더 마음이 편했을텐데 아쉽네요 따뜻한 밤 보내세요 ^^
라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트윗을 열기 전에,
오늘 아침 남편과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으로
가난하거나 무지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멘션을 읽고 난 다음 지금은,
누군가가 가난하거나 무지할 것이라고 편견을 갖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조금 수정을 했다. 일반화는 무섭다. 날이 갈수록 분석을 하고 어떤 규칙을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섣부른 일반화를 너무 많이 범한다.
나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그에게 3천원은 어떤 돈인가.
세상에 가난하고 무지하고 혹은 그렇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혹은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려, 어리석지 않은데도 어리석어지고 그저 누군가를 믿었는데도 갑자기 발등이 찍혀버리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을 때,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 당당하게 비난하려면
부채감이라도 떨쳐버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밟고 일어선 누군가가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의로 밟았던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받았던 혜택과 내가 누렸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 언제나 누군가의 선의, 언제나 누군가의 올바른 정책 덕분이었을게다.
그저 나 혼자 스쳐지나가는 일화로 간직할 만한 일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더 뜨거운 일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밤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갑자기 쌀쌀해져 라면이 매우 땡기는 밤이다.
빅이슈코리아 공식 사이트 bigissuekr.tistory.com
최근들어 빅이슈 측의 문제가 있는 풍문이 들리는데 괘념하지 않겠습니다.
빅판들께서 공정한 수입을 가져가실 수만 있다면 빅이슈는 꼭 계속되길 바랍니다.
말기 암 환자에게 병원은, 더 이상의 치료법이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자 임상실험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그냥 수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관망하시겠습니까..가 생략된 말이다.
여름의 한 가운데였다.
그 사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환자는 더욱 악화되고 약해지고 슬퍼졌다.
그리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의연하게.
명대로 살다 가련다. 더욱 초연하게.
욕심부리지 말자. 포기한 채.
고통 없이 끝났으면 좋겠다. 애절하게.
그리하여 더 이상 하루로 늦출 수가 없는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큰 아이의 수련회 가는 길을 위한 도시락을 싸고
작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화장을 하고 청소를 미뤄두고
가스밸브를 잠그고 10시에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을 건다.
성내동에 위치한 한 병원,
면역요법만을 연구한다는 생경한 의사를 만난다.
너무 늦게 오셨다는 얘기는 여기서도 듣는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모처를 찾아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에 주소지를 찍고
혼잡한 도로에 서 있다.
그 곳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이라 했다.
나는 식사를 하고 오시라 했다.
2시에 만납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시 남짓 넘은 시간.
근처에 있는 오래전 왕의 무덤에서 아침에 싸온 김밥을 먹으려고 주차장에 들어섰다.
월요일 휴관.
주차장만 운영.
근처 어디 벤치가 있을까 하여 조금 걸어봤으나 모두 상가와 상가에 딸린 야외테이블이다.
게다가 추석을 앞둔 햇빛은 무겁고 뜨거웠다.
나는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가 시동을 켜고, 공회전을 시킨 채로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공회전을 시키면 안좋다던데, 환경오염에 차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 따위는 잊기로 한다.
때로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던져 버릴 필요가 있다.
정치를 비꼬는 남자들의 화창한 웃음소리속에서 김밥을 먹는다.
그리고 차를 몰고 나와 만나기로 한 모처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비싸고 달디 단 커피를 하나 시켜 마시고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간을 보낸다.
집 근처에서 미술학원을 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작은 아이가 태권도를 마치면 그리고 보내라 할테니 애를 부탁한다고.
아이는 9시 20분까지 유치원으로 가서, 3시까지 시간을 보내고
바로 태권도장의 셔틀버스를 타고 태권도장에 가서 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태권도장의 셔틀버스를 타고 이모학원으로 가서 저녁나절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 건물은 보안이 유지되는 곳이라, 방문할 곳의 호수를 누르고 입주자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야 한다. 5분전에 도착해 호수를 눌렀다. 문은 아무 음성없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50대의 인상좋은 여자가 문을 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거형 오피스텔을 개조한 사무실.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기 위해,
의학적 사실만을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것들의 1개월치를 주문하고 설명을 듣고 계산기를 같이 두들기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배설을 하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카드를 꺼내 결제를 한다.
159만원.
일시불.
한 달치다.
항암제는 300만원정도였고,
모대학병원에서 만들어낸 신약은 320만원이었다. 한 달치에.
쌓아놓은 돈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돈이다.
일하고 벌고 융통하고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돈.
돈은 구할 수 있는데, 약이 없다는 것과
약은 있는데 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
비참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요,
고통은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며느리가 오시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라는 그녀의 말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삼키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다섯 번 정도 하고 뒤돌아선다.
대체 내가 그녀에게 무엇이 감사한 것인가.
그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일까.
그러나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마지막이 아니라고 해줘서.
큰 아이가 먹어야 하는 약의 하루분이 모자라다.
테헤란로를 지나는 사이에 병원에서 네 번 전화를 걸어 겨우 통화를 한다.
1시간 이후 도착하기로 약속을 한다.
1분 뒤를 예측할 수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1시간 후를 약속한다.
선글라스마저 무거운 시간.
전화를 건다.
근처 야산에 바람쐬러 가셨단다.
도착하시는 시간에 맞춰 드릴 물건이 있으니 찾아뵙겠다고 한다.
분명히 내가 먼저 도착해 기다릴까봐 부랴부랴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거동을 하시고 식사도 하시니 희망이 있습니다.
라는 문장 하나만을 믿는다.
지하철역 근처 병원에 들러 딸랑 약 한 봉지를 받고
근처 문구점에 내려가 15분을 기다려 문서복사를 하고
약 복용법을 적기 위해 유성펜과 접착메모지를 산다.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병을 사려는데
지갑엔 오만원짜리 뿐이다.
죄송합니다.
나는 사만 구천 오백원을 거슬러 받고 그 자리에서 박카스를 들이킨다.
주차된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작은 구멍가게에서 2000원짜리 깡통커피와 생수를 산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건다.
익숙한 길은 운전이 수월하다.
그 주택가 골목은 언제나 주차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오늘은,
전봇대를 박을 우려가 가장 높은 자리가 비어있다.
가방이 하나 봉투가 하나 쇼핑백이 하나
3층계단을 올라가 고장난 초인종을 확인하고 전화를 건다.
문 열어주세요.
나를 보고 웃는 얼굴이 둘.
그리고 나는 쇼핑백을 부려놓고 하나씩 꺼내 검정 유성펜으로
아침, 점심, 저녁, 취침전이라 쓰지 않고 주무시기 전. 이라 적는다.
공복 섭취 요망. 이라 적지 않고 공복에 드시면 좋아요. 라고 적는다.
아이가 도착했다는 메세지가 온다.
5시가 넘었다.
얼굴 하나, 나에게 박카스를 내민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던 것처럼 박카스를 마신다.
때마침 들어선 다른 형제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나는 내 짐을 챙겨 다시 출발한다.
비록 나의 모든 노력이 헛되더라도,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나만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억지를 써서라도 무엇이든 하려는 나를 보고
나를 보고 웃는 얼굴, 그 하나가,
사는 날까지, 기운차게 살아보자고 다짐해주시길.
그래도 좋은 기억이었다고 생각주시길.
그러나 그렇지 않으실 것을 안다.
너희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고, 돈을 많이 쓰고, 배려를 너무 많이 하고,
그런 모든 것이 늘 미안한 분.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단 한 번 이기적인 모습을 보았더라면,
나는 이렇게까지 서럽지 않을 것이다.
명대로 살다 죽겠노라,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간디. 라고 하지 마시고
그래 조금 더 노력해보자 좋은 날이 오겠지. 라고 말씀해주시길.
바라는 마음때문에 그 한마디 듣고자
내 억지가 조금이나마 의지가 되길,
내 정성이 조금이나마 버틸 힘이 되길.
통증으로 진통제만 삼키는 날이 오더라도 우울하거나 절망하거나
차라리 이럴꺼면 그만 죽여달라고 울부짖지 않으시길.
육신의 고통은 경감할 수 없다 한 들
마음의 고통만이라도 줄일 수 있길.
내가 좀 더 현명하지 못했던 것과
내가 좀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것과
내가 좀 더 건강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회한으로 남는 시간.
당신의 몸을 점령하고 있는 그 날랜 것들이
당신을 모두 집어삼키는 날이 오더라도
그 날이 되더라도
마음만은 미쁘시길.
단지 그거 하나.
웃으면서 가시는 그 날까지.
당신이,
내가,
내 자식이 나의 부재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버틸 수 있길.
2011. 9. 5.
![]() |
| 집회를 이끄는 대학생때의 케이티 |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 인기리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을 떠올렸다.
김주원은 허블과 유사한 인물이다.
부잣집 도련님에,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정치나 생활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백화점의 매출, 잘 나가는 인생에 관심이 있을 뿐.
뭐 길라임이 케이티를 반영하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너무 가난해서 정치색채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고 매일 매일 먹고 사느라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시크릿 가든에 대조하는 것은 무리이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갈 길을 인정하고 같이 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허블이 바로 미국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반영한 아이콘적인 인물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90년대 최진실, 이후 장동건, 배용준, 이영애, 심은하 등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의 아이콘 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고심했다.
트윗을 올려 의견을 받아본 바, 현빈, 이외수, 이효리 정도가 물망에 올랐다.
이번 주민투표를 거치면서 딱 현빈이 분한 김주원 같은 아이들이 투표율 높은 지역에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라면, 이는 매우 난감하다.
80년대의 대표주자는 반항아의 상징, 이덕화(지금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최재성, 최민수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반항의 정서가 있었다. 연예인과 당대 가요는 시대를 반영한다. 7080을 지배한 정서는 반항이었다. 그만큼 정부에서 내리누르는 게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지금은 풍족한 자들은 풍족하고 가난한 자들은 내몰리고 풍족한 것이 상징이 되고 뭇사람들에게 동경이 된다. 줄줄이 쏟아지는 신데렐라 드라마와 패륜과 불륜이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와 곱상한 이미지의 이승기나 현빈이 주가를 올리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쌓아올린 부를 지키기 위한 보수층으로 포위되어 부유층이 아닌데도 거기에 멍청하게 끌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나 삼신할미 랜덤에 걸려 곱게 살아가는 계층이 인기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진보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좀 암담하다.
경쟁하고 떨어뜨리고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게 트렌드가 아니라 정설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왔던 The way we were는, 묘연하게 행방을 감춘 것은 아닐까.
2011.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