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춘천마임축제

춘천마임축제는 1989년 한국마임페스티벌이 1995년 춘천국제마임축제로 이름을 바꾼 뒤 현재까지 이어지는 마임축제이다. 영국의 런던마임축제와 프랑스의 미모스 축제와 함께 3대 마임축제로 손꼽힌다는 평이다.

작년에 이어 연속 춘천마임축제를 찾다보니 아무래도 비교를 해볼 수 밖에 없는데 행사장소의 변경으로 인한 변화가 있고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박람회”행사가 같은 장소에서 펼쳐진 게 눈에 띄는 점이다.

행사장 입구, 중도로 들어가는 길에 걸린 현수막

이번 춘천마임축제의 행사장은 춘천 북한강에 있는 섬, 중도의 레고랜드 주차장에서 열렸다. 말많고 탈많던 레고랜드는 거의 20년이 걸려 개장했고, 여전히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생태자연환경이 남아있던 하중도에 대한 개발과 구석기부터 철기까지 모든 시대의 유적지가 나왔다고 하는 대규모유적지에 외국자본이 투입된 것도 반감을 샀을 것이다. 이곳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택시기사는 “모든 것이 불법으로 이루어진 레고랜드”이며, “전세계 최대규모의 유적을 그저 밀어부쳐 지어버린 곳”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우리에게 중도의 노을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같은 날 저녁에 노을을 보면 좋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광활하다 말할 수밖에 없는 레고랜드 주차장에서 야자카펫으로 길을 내놓아 입장을 도왔다. 춘천마임축제는 작년에도 네이버예약을 통해 사전예약을 받았고 현장티켓구매도 가능하다. 입장료는 25,000원인데 전년도 예약내역이 있으면 할인을 해준다고 했으나 현장에서 재확인하지는 않았다.

춘천마임축제의 전체 행사는 5월 26일부터 6월 2일까지. 춘천시에 있는 각 극장과 거리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오프닝은 <물의도시 아수라장>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이틀동안은 <불의 도시 도깨비난장>으로 마무리된다. 마임축제동안 약 68개팀이 공연을 이어간다.

춘천마임축제 홈페이지 이미지. 마임의 마“ㅏ”를 좌우반전시켜 쓰는 게 특징.

마지막 밤에 펼쳐지는 <불의도시:도깨비난장>이 하이라이트라 토요일에 입장했다.

들어서자마자 춘천인형극의 즉흥공연이 펼쳐져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다.

춘천인형극은 1989년 춘천인형극축제를 시작해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인형극 전문극장도 있다.

전체 행사장을 안내하는 안내도가 곳곳에 비치되어 있다.

전체 행사 안내도. 일반 트러스를 짜지 않고 낡은 고철을 용접해 만든 틀이 눈에 띈다.
작년에도 봤던 것인데 홍보용 사진과 영상촬영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안내가 있다.

출입구는 1개로 정해져 있고 스탭들 출입구는 별도로 있으나 공개하지 않는다. 입구쪽에는 이번 축제의 슬로건인 웜바디(warm body)의 의미를 살린 피트니스, 댄스 등 몸짓에 관련된 워크숍이 열리는 공간이 있었다.

입구 슬로우빌리지에서 열리고 있던 웜바디 프로그램 중 하나. 줌바교실이었는데 강사들과 참여시민, 공연팀 등이 뒤섞여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프로들이 섞여 있어야 분위기가 난다.
입구에 놓인 램프. 저녁이 되면 일일이 램프를 켠다. 이 램프만 관리하는 스탭이 따로 있었다.

몽골텐트로 필요한 부스들을 설치했다. 의료시설과 저녁 행사에 불을 크게 쓰기 때문에 춘천소방서에도 나와 있었다. 전년도에는 재활용품을 상당히 많이 사용했으나 올해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눈에 띄는 독특한 설치물들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각각 분리해 렌탈업체에 용역을 배분한 것으로 보였다.

작년도 행사장은 삼악산 호수케이블카의 주차장이었는데 이곳은 흙을 파서나 흙을 돋궈서 자연상태의 무대를 만들 여건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장은 높낮이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는 만들어진 주차장이었기 때문에 보통 다른 지역축제와 비슷한 형태의 무대가 꾸려졌다.

또한 작년 축제에서는 폐기물을 모아서 객석의자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모두 렌탈업체 용품이었다. 작년의 경우 버려진 매트리스, 등산의자, 폐자재, 플라스틱의자 등 중구난방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마임축제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강조하고 축제의 지향점을 살필 수 있었다. 올해는 그런 부분이 모두 사라졌다.

2023년 류성국배우의 마임공연현장

먹거리코너도 올해는 조금 달랐는데 다회용기는 모두 사라졌고 일회용품 사용이 가능했다. 작년에도 푸드트럭이 들어오긴 했으나 올해는 QR코드로 주문을 받고 순서가 되면 카카오톡 메세지로 전달받는 시스템을 활용했다.

2023년 도깨비난장, 다회용기 수거함이 따로 있었다.
올해는 모두 일회용품 사용이 가능.
2024년 축제장에서 사용한 음식주문시스템
춘천의 명물, 감자맥주의 팝업스토어가 훨씬 커졌다.
먹기리공간 곳곳에 펴놓은 드럼통은 불을 피워 온기를 더한다. 밤에는 상당히 서늘하다. 드럼통에도 일일이 무늬를 넣어 효과를 더했다. 이런 것이 춘천마임축제의 매력이다.

도깨비난장의 하이라이트는 9시에 일어나는 불꽃놀이다. 폭죽을 쏘아대는 게 아니고 불을 활용한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게 매년 축제의 하이라이트.

올해는 무대가 한정되어 있고 전면을 바라보는 무대-객석 분리형태였다. 파이어스테이지와 광장스테이지 양쪽에서 파이어워크가 있을 거라 예보되었는데 정착 본공연은 파이어스테이지에서만 펼쳐져서 광장스테이지에 기다리던 사람들은 자리도 확보하지 못하고 멀리서 구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2023년에는 무대가 자연물이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었고 가장 큰 퍼포먼스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는 게 상당한 아쉬움이다.

2023년 파이어워크 도깨비불
2023년 파이어워크 장소
2024년 파이어워크가 동시 진행될 것이라고 예고된 광장스테이지에서 바라본 장면

기획자가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장소와, 그렇지 못한 장소에서 연출하는 퍼포먼스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도깨비난장의 특성은 상호 음향간섭이 계속 일어나고 때로 다른 무대의 퍼포먼스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객석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형 퍼포먼스가 주목받을 경우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려가거나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우려도 있다. 특히 불을 사용하는 문제는 늘 안전문제를 고려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고민이 매우 크리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메인 행사의 경우 다양한 각도에서도 관람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겠으나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일이다. 따라서 올해처럼 정면을 일방적으로 바라볼 경우, 트러스로 무대를 3-4층으로 올려서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은 안전만 보장된다면 괜찮은 결정이었다.

1일 토요일 파이어워크 직후의 주행사

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 바로 허건이라는 허조교DJ의 EDM파티가 파이어스테이지에서 이어졌다.

파이어워크 직전에 춘천문화재단, 춘천인형극제, 문화도시 춘천의 막내들이 나와 “우리는 원합니다”라는 슬로건과 메시지를 낭독했다. 그 중 한 문장은 “전쟁없는 도시를 원합니다.”였는데 바로 군대문화를 소환하는 DJ가 출연한 것은 당황스러웠다.

이번 축제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슈트맨이다. 7인으로 구성된 슈트맨은 춘천마임축제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다. 작년에 결성되어 지속적으로 거리공연을 펼치며 춘천마임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이들은 도깨비난장 행사장에 상주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마임”이라는 행위를 주제로 하는 축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이 행위를 지속적으로 펼쳐내는 문화대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슈트맨은 관객을 중심에 놓고 관객과 눈을 맞추고 공감을 불러오는 것에 주력했다. 괜찮은 브랜딩의 사례로 봤다.

슈트맨의 공연

전반적으로 도깨비난장 행사장은 낮에는 그늘이 부족했고 쉴 곳도 충분치 않았다. 나무가 아예 없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논란 많았던 장소가 본 행사장이 된 이번 춘천마임축제는 춘천시내에서는 배너나 현수막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역 내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국제적 명성을 얻은 춘천마임축제가 보다 진보적인 문화예술을 담아내길 기원한다.

2024. 6. 2.

시민사회를 떠나며

안녕하세요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이하나입니다.
2014년 안양지역 공교육의 회복을 돕고자 설립한 이룸이 만 10년을 넘겼습니다. 2013년 가을부터 교육지원청 혁신지구 담당교사들의 제안으로 안양의 시민사회단체 중 학교 교육이 가능한 단체가 모여 2014년 3월 창립했습니다. 초대 대표를 맡은 故문홍빈 YMCA 사무총장의 유고로 사무국장 체제로 전환하여 운영하다 2020년 비영리임의단체로 등록을 마치고 제가 이룸의 대표를 맡아 2023년까지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의 민주시민교육을 운영하며 지난 10년간 약 4만 8천여명의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외 각 단체의 연대활동으로 문화다양성을 지역에 보급하고 커리큘럼을 개발하여 관내 청소년들과 문화다양성의 방향을 모색하고 정책제안활동을 제안하며 많이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이제 지난 만 10년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대표직을 다시 지역에 돌려드립니다. 2024년부터는 안양나눔여성회의 강은정 사무국장이 이룸의 대표를 맡아 운영하게 됩니다. 2015년부터 전문강사로 활동해 온 차윤주, 김묘순 두 분이 사무국을 맡게 됩니다.
지난 10년간 민주시민교육은 곳곳에 뿌리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체제전환을 꿈꾸는 2024년부터 더욱 새롭고 역동적인 이룸의 새 운영진을 환영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 함께해서 행복했고 많이 배웠습니다. 개인사의 전환을 이루게 된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모든 구성원에게 감사드립니다. 안양지역의 제 시민사회단체와 이룸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저는 이룸 대표직 사임으로, 안양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의 대변인도 그만두게 됩니다. 앞으로는 개인사업체인 “문화공동체 히응”의 운영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지역에서 신나고 즐거운 일로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2월 28일 / 2024년 이룸 정기총회의 날
이하나 드림

사진 : 2014년 3월

지옥과 전쟁터 – 죽어가는 아이들

몇 년전 읽은 토니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자녀를 살해한 흑인노예여성의 이야기가 모티브다. 1856년, 실제 있었던 마가렛 가너의 사건이다. 마가렛은 가족이 있었다. 그들 모두 노예였다. 흑인노예들도 가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었으나 백인주인에 의해 이 가족은 파괴되고 삭제되곤 했다.

가너의 가족 8명은 탈출을 준비한다. 농장이 있던 켄터키주에서 출발해 오하이오강을 건너 북부로 갈 생각이었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얼어붙은 오하이오강을 건너 신시내티에 도착했고 자유흑인의 집에 잠시 머물러 북으로 갈 채비를 했다. 추격자들이 이들을 금세 찾아냈고 가너의 가족은 죽음으로 저항할 지언정 다시는 노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마가렛 가너는 당시 스물두살이었고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추격자들의 앞에서 가너는 세 살난 딸을 죽인다. 그도 바로 자살하려 했으나 바로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된다. 배를 타고 감옥으로 가던 중에 물에 뛰어들었다는 증언이 있다. 마가렛이 남은 아이중 9개월된 아이를 안고 뛰어들었다는 증언과, 아이를 먼저 물에 던지고 가너가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강에 빠진 아이는 죽었고 마가렛은 사람들이 건져올려 또 살아남았다.

마가렛의 남편은 남북전쟁에 참전한 뒤 자유인이 되었고 마가렛은 다시 뉴올리언즈로 팔려갔다가 미시시피로 팔려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김인선의 2014년 논문 <흑인노예의 자식 살해와 모성: 1856년 마가렛 가너 사건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가너의 아이들은 흑인과 뮬라토(흑인과 백인 혼혈)가 뒤섞여 있었다. 첫 아들은 흑인이었으나 둘째부터는 백인의 피가 섞였다. 마가렛 역시 뮬라토였다고 한다. 한 아이는 백인에 가까울 정도로 밝은 피부색이었다고 한다. 마가렛의 남편 로버트는 흑인이었다.

마가렛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흑인이었고 마가렛은 뮬라토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마가렛이 누구의 자식이며 마가렛의 자녀들은 또 누구의 자식인가를 추정하게 한다. 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상세히 다룬다.

요약하면 이렇다.

가너일가는 프리실라와 마가렛, 마가렛의 자녀들까지 한 농장에서 일했다. 마가렛의 어머니인 프리실라는 흑인과 결혼하였으나 백인소유주에게 성폭행을 당해 가너를 낳았을 것이다. 프리실라는 가너가 열 두살쯤 되었을 때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을거라 생각해 이웃에 있는 흑인노예 로버트와 급하게 결혼을 시켰으나 마가렛도 첫 아이 이후로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가족이 탈주를 결심한 때에 가너 가족의 소유주였던 존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아들들에게 농장을 맡겼다. 존의 아들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사이였다. 프리실라는 마가렛이 사실상 이복형제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의 자녀를 출산할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가렛이 죽인 아이는 누구의 자녀였을까. 마가렛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가렛과 남편과 가족들을 잡으러 온 자들중에, 살아서 다시 노예가 된다면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 중에, 딸아이의 아비가 있었을 것이다.

수원의 한 아파트 냉동실에서 두 명의 영아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을 곰곰히 생각했다. 죽은 아이들 위로 자녀가 셋이 있다고 했다. 체포구속된 아이의 엄마인 고씨는 12살, 10살, 8살의 자녀가 있다. 그뒤로 둘을 더 낳은 것이다. 고씨는 서른 다섯살이고, 남편은 마흔 한 살이다. 고씨가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는 스물 셋이었을거다. 아이들이 죽은 것은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로 추정된다고 한다. 5년 전 일이다. 나는 죽은 넷째와 다섯 째 아이가 1년 터울인 것에 놀랐다. 이미 한 아이를 낳아 죽였는데, 또 임신을 했다니. 나는 고씨가 어떤 심리상태였는지 알 수 없으나 가정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된 사람은 아닐까 의심했다.

사진 1 : The Modern Medea – The Story of Margaret Garner ARTIST Noble, Thomas Satterwhite, 1835-1907

160여년 전, 마가렛의 사건 이후 토마스 새터화이트는 The modern Medea 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자신을 배반한 남자와 그 자녀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린 메데이아.

마가렛 사건을 두고 죽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려 했던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흑인노예의 저항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노예의 삶을 대물림해주느니 ‘신에게 보낸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재임의 2022년 논문 <낙태와 아동학대 사이에서: 영아살해 처벌의 의미 변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 2010-2022년*>에 따르면 사회적 처벌은 이데올로기의 전파수단이며 사회적 통제의 기능을 한다. 조선시대의 영아살해는 출산통제의 수단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처벌을 받는 범죄가 되었다. 1951년 만들어진 형법에서는 “여성이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회 현실을 고려하여 영아살해죄, 영아유기죄, 낙태죄의 형을 경하게 규정했다. 미국 심리학자 레스닉(Resnick, 1970)은 신생아살해를 다른 자식살해와 개념적으로 구분짓고 명명했다. 신생아살해(neonaticide) 가해자는 1살 이내의 유아살해(infanticide), 미성년 아동살해(filicide)와 같은 다른 자식살해 가해자와 달리 병원 진료를 받지 않고, 임신 사실을 숨기고 부정한다는 특성을 가지며, 의료 기관의 도움 없이 홀로 출산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다(Alder and Baker, 1997; Malmquist, 2013; Resnick, 1970; Saavedra and Cameira, 2018)고 한다. 한국의 영아살해도 같은 특성을 갖는다.

이재임논문의 표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 촛불같은 인생에 바람 한 점 가려줄 데가 미숙하고 부족해도 부모와 가족뿐인 세상이라고 치면, 그나마도 부족한 삶은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집이 지옥과 다르지 않고 내 일상이 전쟁과 다르지 않다면, 지옥과 전쟁터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 생각은 하기 어렵다. 이 지옥을 다시 물려주고 싶은 않은 어떤 어미들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2013년 재판부는 한 영아살해 사건에 대해 “어린 미혼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양육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 책임도 커 실형은 선고하지 않는다”고 적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이 어미의 손에 의해 죽어가는 세상. 어떻게 생각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아이를 버리고 아이를 죽여야 하는 바로 여기가 지옥이다.

참고문헌 : 이재임 (2022) <낙태와 아동학대 사이에서: 영아살해 처벌의 의미 변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 2010-2022년*

김인선 (2014) <흑인노예의 자식 살해와 모성: 1856년 마가렛 가너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일보 남보라 2023. 6. 29. ‘수원 영아살해’ 엄마 “막내 초등학교 졸업하면 자수하려했다”

수원 영아살해 피의자 고 모 씨의 편지

모르는 죄

사람이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고 했던 건, 무학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게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공부를 한다는 건 적어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각성이 있는 양육자가 붙어있어야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이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불과 30-40년전만 하더라도 저학력이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양육자가 적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4-50대 중년여성들 중 고졸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을 간 여성들도 수두룩하게 많다.

무학이나 저학력의 약점은 고통스럽게 배우고 익혀본 경험이 적어서 배우는 힘이 약한거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공부도 해 본 놈이 잘 한다고, 남들 놀 때 어떻게든 탐구하고 책상에 붙어있어본 자는 일종의 짬밥이 생겨 다음 단계도 거기까지 못 간 사람보다 쉽게 넘어간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학습 숙련도가 높아지니 더 어려운 단계의 공부에도 접근하기 좋아진다. 그러나 학력의 기초단계 – 즉 초등학교 정도 – 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낑낑대고, 모르는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볼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 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에서나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죄가 되는 경우는 권력을 쥐었을 때다.

그 말 한마디로 예산이 바뀌거나 누군가의 일자리가 사라질 때, 그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매달 받던 쌀 한 푸대가 두 달에 한 번씩으로 줄어줄 때, 권력자가 모르는 것은 죄가 된다. 책상에 앉아서 보고 싶은 서류나 들여다보고, 제 가족이 분통터졌던 일에 대해서 기관장을 불러서 되려 내가 갑질했냐고 협박이나 일삼는 자나, 나도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싫었으니 지금도 영 교과과정이 별로일 거라고 확신에 차서 입을 놀리는 자는,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을 이미 쥐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침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되니까. 갈라치기와 혐오와 차별을 담아 떠들어도 당장 그 불손한 입을 가진 자가 어떻게 되진 않는다. 대중의 분노는 더디게 끓어오른다. 생계가 바쁜 경우도 있고, 그래도 권력자라면 나보다 많이 배웠을테니, 나보다 경험이 많을테니, 나보다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잘 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믿어주자는 선량한 마음과 귀찮은 마음이 뒤섞인다.

끌려내려오기 전에는 별로 불안감도 없을 것이다. 권력자들의 분노는 가볍고 하찮다.

모르는 게 죄가 되지 않은 경우는 알려고 할 때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모르는 것을 묻고, 현장의 소리를 듣고, 혼자 궁리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누군가 크게 소리치면 뛰어나가 물어보면, 모르는 게 죄가 되지 않는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모든 정치인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도 사람이고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는 착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쥐었을 때는 모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고 국가가 4대보험처리를 해준다면, 적어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해봐서 함부로 말하던 권력이 있었고, 아무 것도 안 해봐서 함부로 웃던 권력이 있었다.

권력을 쥔 정치인이 자기 세계에 빠져 제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며 잔소리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죄다.

이 이야기는 대통령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어느 기초단체 의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사고를 기다리는 일

내 사무실은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의 진출입로에 가깝다. 건물 뒷편에는 외곽순환고속도로의 고가가 보인다. 들고 나기 편해서 소규모 유통업체가 많다. 경수대로와 외곽순환도로를 맞대고 있는대신 지하철역이 멀고 안양천도 멀고 대중교통은 버스노선 한대뿐이라 임대비가 비교적 저렴하다. 건물1층에는 무인카페가 있고 바로 그 옆에는 무인카페의 1/4 정도 크기 사무실에 각종 자동차사고를 처리하는 업체가 들어와 있다. 우리 사무실의 절반만한 크기에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불은 늘 절반쯤 꺼져 있다. 가끔 주차 문제로 사무실 문을 열면 한 두명은 꼭 엉성한 포즈로 자고 있다.

근무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만해도 여덟 명쯤 된다. 이들 모두가 그 작은 사무실에 있는 건 아니다. 사무실에는 주로 한 두명이 있고, 두어명은 카페나 편의점, 차 안에 앉아있다. 더러 차 안에서 자기도 한다. 그 외의 사람들은 외근중이다. 업무특성상 이 사무실에서 쓰는 차가 여러 대다. 사무실 건물의 주차장은 총 8대를 대고 그 앞에 평행일렬주차까지 하면 11대 정도를 댈 수 있는데 이 건물의 사업장은 이미 12개가 넘으니 당연히 주차장은 늘 모자란다. 각 사무실별로 1대씩만 주차하는 게 규칙이지만 네 다섯대의 차를 가진 사무실에서 이걸 다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처리업체의 직원들은 한 두명을 빼고 모두 젊다. 대부분 갓 제대한 듯한 나이로 보이는데 대체로 키가 작다. 여름에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의미없는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네 고객님, 네 지금 위치가 어디쯤 되실까요.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라는 친절한 말을 내뱉는 이 청년들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고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 플라스틱컵을 그대로 놓고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담배를 끄고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철을 들고 주차해둔 차로 간다. 이들이 쓰는 승용차 뒤에는 ”교통사고 처리 업무 차량“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이 사무실과 연계된 카센터는 길 건너에 있지만 가끔 렉카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 사무실에서 콜을 띄워주는 렉카가 몇 대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무실 부근에는 늘 서너 대의 렉카차가 서 있고 외곽순환도로 고가 아래에도 두어대씩 주차를 하고 있다. 현란한 치장을 한 렉카차가 사무실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어떤 렉카차는 신고번호가 444-4444다.

가끔 사무실이 꽉 차서 그런지, 한 두명은 차에서 의자를 제끼고 자기도 한다. 앞뒤로 서로 막아놓고 출차할 때는 차를 빼달라고 전화하며 사는 지라 가끔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하면 자다가 전화를 받은 목소리일때가 많다. 주차매너도 좋지 않다. 저들이 늘 시급하게 도로로 튀어나가야 하는 사정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협소한 주차장에서 적어도 두 세대쯤 대는 걸 모든 입주자가 이해하고 있다면 룰을 좀 지켜야 하는데, 자기 차 앞에 평행주차를 하지 못하게끔 일부러 차를 앞으로 길게 빼놓는 자도 있다. 수차례 얘기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종합하면, 이 사무실 하나로 인해 골목 전체가 교통사고 상시대기 상태에 돌입한 모양새가 된다. 주택가였다면 갈등이 더 심했을텐데 대부분 상가건물이고 2층부터 주거용 임대가 많아서 그럭저럭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다.

늘 피곤해보이는 이들이 기본적인 매너도 엉망이라 나는 이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전직 렉카차 기사가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잠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교통사고처리업체는 민간업체다. 렉카차의 경우 요즘은 도청 같은 걸 할 필요도 없다. 차 안에 모니터를 여러 개 설치해두는데 고속도로 CCTV몇 개만 돌려보면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요 며칠전처럼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그 이후에 강풍이 불거나 도로가 얼어붙은 날은 교통사고처리업체 직원들은 분주하다. 주차장에 업체 차량이 한대도 없으면 오늘 사고가 많은 날이라고 짐작한다.

우리도 거래처가 서울에서 안양으로 들어오는 길에 차가 퍼져버렸다고 연락을 받아 다급하게 이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멀리 여러 명이 여행을 가려고 렌트를 문의했는데 가격보다 훨씬 더 좋은 차를 가져다주어서 고맙게 쓴 적 있다. 그래놓고 주차문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들은 가끔 미워도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내가 위급할 때 달려와줄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점이 이상하다.

왜 교통사고처리를 민간인들이 하는건가. 물론 교통사고보험을 사기업에서 책임지고 있으니 보험회사에서는 처리와 보상철차의 일부분을 계속 외부로 떠넘겨 외주의 외주를 확장하기 때문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왜 이들의 직업은 그 중요함에 비해 불법적, 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방치하면서 기본적인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험난한 노동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존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데, 이들은 경쟁해서 구조하고, 구난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신호를 무시하며 달리는 도로위의 무법자가 된다. 교통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한 밤중에 별 일이 없는데도 요란한 경광등을 켜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렉카차 기사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들은 정말 사고를 기다릴까. 사고를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걸까. 가끔 처참한 현장을 보기도 할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까. 어쨌든 저들이 하는 일은 공익을 위한 일인데 왜 경쟁하며 먹이를 낚아채는 하이에나처럼 살아야 할까.

국가는 왜 교통사고에 개입하지 않았나. 민간에게 저런 일을 맡기는 게 경제성장과 연관이 있는가. 만일 저런 일을 경찰이나 소방이 했다면, 저들이 경쟁하지 않고 신호를 무시하며 칼치기하며 달려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저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24시간 내내 대기하며 쪽잠을 자면서 누군가의 사고를 목격하고 카센터로 연결하고 정당한 노임을 받는 일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년 반동안 주차문제로 내내 모든 업체와 시비가 붙었던 이 처리반사무실은 내년에 계약만기라고 한다. 관리소에서도 주차때문에 골치아픈 눈치다.

전직 렉카차 기사는 유튜브 방송에서 직업에 관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건 시급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누군가 재수없게 걸려드는 노동이 되는건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 너무 많다.

포스트잇을 붙이다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서초에서 잠수교를 타고 넘어가는데 잠수교 북단 끝에 세 명의 남자들이 서 있는 걸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다. 낙엽을 치우는지 두명은 안전조끼를 입은 것 같고 안전관리자도 없고 경광봉이라도 흔들어야 하는데 차도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바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위치와 상황을 알려줬다. 결과를 듣겠냐고 물어서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겼다.

만두국을 사먹던 이태원시장 골목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살인사건이 있었던 옛날 버거킹 자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수북하게 쌓인 추모의 표식들은 비닐로 씌워놓았다. 비 바람이 예보되어 그런 모양이다. 추모공간을 지키는 경찰들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오래 전에 꽃집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았는데 지저분한 유리만 남은 공실이었다.

소방서 방향에도 꽃집이 없어서 일단 골목으로 올라갔다. 오래 전에도, 최근 몇 년 전에도 나는 이 골목으로 다니지 않았고 녹사평 방향의 두 번째 골목으로 주로 다녔다.

불법증축이 있었다는 해밀턴호텔의 벽은 추모의 포스트잇과 메모, 꽃과 인형 같은 추모 물품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 벽은 추모의 벽으로 남기면 좋겠다.

내가 가방에 들은 포스트잇을 꺼내 글자를 적는 사이 남편이 꽃을 사오겠다고 골목을 내려갔다. 카메라를 든 사내가 MBC에서 나왔다며 포스트잇을 붙이는 걸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사러 갔으니 조금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사이 용산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자원순환과 직원이라고 했다. 내가 다산콜센터에 전달한 내용을 확인하고 지점을 다시 물었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구청직원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눌렀다. 나는 구청직원에게 안전조끼도 모두 착용하지 않았던 것 같고 차도에서 일을 하는데 안전조치가 안 되어 있었으니 확인부탁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가 인터뷰도 가능하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했다.

– 오래 전에 여기 살고 일도 했었는데, 그때도, 최근에도 저는 많이 이용하지 않던 골목이거든요. 이 뒷길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이 골목으로 오지 않았다는 걸 알 겁니다.

– 길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안해야 하는데, 이 좁은 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희생되었다는 건, 지금 우리나라에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 MBC에서는 1029참사로 부르기로 했는데, 일부에서는 용산구나 책임의 소재를 묻기 위해 이태원참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재난은 우선 그 이름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사회적합의를 통해 호명을 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있어야 추도와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나는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듯이, 트라우마는 그저 안고 가는 역사의 일부가 될 뿐이다. 우리들의 세계와 시간은 수많은 재난으로 이미 뒤틀렸다. 구비구비 꺾어진 구간마다 억울한 죽음들이 깔려 있다. 기억하는 자들은 이 희생을 안고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기 삶의 끄트머리 단 한 톨의 공간에도 억울한 영혼이 내려앉지 못하게 혐오의 발언을 내 뱉는 자들의 비겁합과 비루한 마음과 두려움을 이해한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기억과 약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강남역 6번 출구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기억한다.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죽은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사발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얼마 전 신당역에서 있었던 스토킹 살인사건에도 포스트잇이 붙었다.

왜 우리의 추모는 벽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으로 끝나는가.

해가 뜨고 지는 사이 하루 하루 사람들이 까닭없이 죽어간다. 우리는 포스트 잇을 붙이며 이름없는 죽음을 밀어낸다.

– 용산구청에서는 자원순환과가 아닌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에서 신청건의를 처리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 이태원추모공간 자원봉사자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추모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itaewonmemorial.com/

침묵하라

행안부에서 내려온 지침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명시하고 위패나 영정은 놓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는 행안부 지침대로 진행했다가 시민항의, 의회의 문제제기로 갈팡질팡했다.

지방자치단체 즉 지방정부는 시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정당의 소속이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으나 공직자들은 단체장과 무관하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다.

사고 사망자 > 사고 희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안양시 (최대호시장, 더민주)

사고 사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군포시(하은호시장, 국민의힘)의 오늘 낮 사진이다.

거듭되는 항의로 행정안전부도 ‘사고 사망자’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1. 사회적 재난은 그 이름에 여러 의미가 중첩되기에 섣부르게 정부에서 공식화할 수 없다. 사건 규명이 되고, 가장 큰 책임이 누구인지 밝히고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름으로 명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가가 졸속으로 섣불리 참사의 이름을 바로 붙이거나 애도의 기간을 정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흔히 태안기름유출사고로 기억하는 사회적 재난의 정식명칭은 “삼성1호크레인-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다. 제주 4.3의 이름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2. 도로는 국가와 도시의 발전, 시민간의 소통과 산업을 위해 공공의 목적을 띈다. 따라서 도로를 관리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국가의 몫이다. 별도의 사유지가 없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이삿짐을 올리거나 내릴 때도 도로점유에 관한 허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에 특정한 가해자가 없다면 도로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도로의 안전과 관리는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의 책무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감정은 국가가 통제하거나 권한을 갖지 않는다. 현 정부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이다.

3. 이 도로위에서의 참사는 그 길 위에 서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죽이는 압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욱 비통하다. 고의로 목적을 갖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 길을 걸은 사람은 참사당일에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나의 몸 하나가 압력이 되어 누군가의 죽음에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생존자들이 있다. 이번 참사의 생존자를 각별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 참사는 그들 세대가 겪은 불도, 물도 아니었다.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없다. 그저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남은 이유를 말하고 떠들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4. 2-30년전, 세골목길이라 불렀던 해밀턴호텔 뒷길엔 가끔 살인사건과 폭력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길에 쌓이고 고인 수많은 피눈물을 떠올리며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10.29 경과

종합하면

● 사고 직전까지 112 신고는 79건.

● 참사 당일 양대 노총과 진보·보수단체 시위 등으로 서울 도심 곳곳에 81개 기동대, 경찰관 4천800여 명이 배치

● 사고 현장과 약 1.5km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근처 시위대 행진과 집회에 대비한 1천100여 명의 병력.

이들은 참사가 벌어지기 1시간 전쯤인 밤 9시쯤 시위가 끝나자 철수

●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137명 중 경비 및 안전 유지를 주업무로 하는 인력 0

● 마약단속 예고, 정복 경찰은 58명, 그 외 사복경찰

●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감찰하겠다며 위 내용을 11월 1일 윤희근 경찰총장이 언론에 공개

● 핼러윈때마다 이태원 상인들은 지구촌축제처럼 용산구에 해밀턴 호텔 앞 차도에 차량진입을 막아달라 요청, 그 외 안전조치 요구, 전날인 금요일에도 인파가 과도해 용산구청에 통제, 안전조치를 요구했다고 함. 용산구청은 묵살

● 2021년에 통제가 과도했다며 올해는 정복경찰을 줄여달라고 상인회가 요구했다는 일부 주장 제기됨.

● 용산구 핼러윈데이 대책회의 – 2020, 2021년 구청장 주도, 소방 경찰 참석, 2022년 부구청장 주재, 소방, 경찰 불참

● 최초 119 신고는 22:15. 119가 위치를 계속 물어 신고자가 답답해 함. 소방은 3분만에 경찰에 협조요청 – 경찰은 별다른 장비없이 인력 송출

● 모바일 통신상태 불량

● 소방이 23시 경찰에 교통통제 요청, 서울청 기동대가 자정 무렵 현장 도착

● 당일 사상자의 부상정도와 무관하게 병원에 분산이송, 이송병원의 거리 등의 기준 없음.

● 압사사건 발생은 22시 15분경으로 추정

● 정부발표에 따르면 22:15 상황접수, 25분 경과 후 22:40 대응, 22:43 대응1단계 발령, 23시경, 용산소방서장이 지휘권 발동, 23:13 소방청 대응2단계, 13:53 소방청 대응 3단계발령

● 사고 발생 이후 11시 45분경, 언론사 1차 보도와 동시에 SNS에 사고현장 사진과 동영상 유포

● 23:45 20여명 사상자 발생이라는 보도 발표

● 익일 00:33 해외언론 보도 시작

● 02:1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59명 사망, 150명 부상, 사망자 원효로 체육관으로 임시안치

●22:15부터 익일 00:56까지 약 100여건의 119 신고 접수

● 03:0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120명 사망, 100명 부상이라 발표

● 익일 실종신고 2300여건 , 정부 실종신고 전화번호 공개

● 10월 30일 – 정부, 국가애도기간 선포, 행정안전부 각 지역 분향소 설치 지침 전달, 참사 희생자 아닌 사고 사망자로 적시. 각 지역정당 거리 추모현수막 게첨. 민주당 이태원 참사로 명시, 국힘당 이태원사고, 핼러윈사고 등으로 명시.

● 11월 1일 11시 기준 사망 156명, 부상 151명으로 집계

● 11월 1일, 112 신고 녹취록 공개, 경찰청 시민단체 동향 파악 문건 유출

JTBC, 한겨레, SBS, MBC, MBN, 서울경제, 뉴시스, 연합뉴스 등 다수 언론사 보도 참고.

11월 1일 작성

제21회 안양시민축제 – 우선멈춤에 붙여

안양시민축제는 작년에 20주년을 맞았습니다. 20년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시민동아리가 참여해 무대를 빛냈습니다. 시민들은 한해동안 시민축제에 참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웃들과 기량을 갈고 닦으며 시민축제를 기다렸습니다.
코로나팬데믹 2년동안에도 시민동아리참여는 계속되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각 동아리의 공연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전문촬영팀이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화사한 조명과 무대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촬영한 영상이 평생의 추억이 되었다는 답도 들었습니다.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안양시민축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부터 기획한 “안양을 춤추게 하라, 우선멈춤”을 도시브랜드로 삼아 시민참여형 댄스페스티벌을 메인테마로 정했습니다.
시민동아리 참여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팬데믹 영향인지, 그간 연습을 많이 못했다며 참여 동아리의 숫자가 줄어들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시민동아리공연은 안양 평촌중앙공원과 삼덕공원 양쪽 무대에서 계속됩니다. 총 77개팀, 725명의 시민들이 공연자로 무대에 오릅니다.

올해는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많습니다.

  1. 포스터와 앰블럼을 전국대상으로 공모진행하며 시민축제의 개방성을 확인했습니다. 당선작이 없어 애석합니다만, 계속 도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2. 축제를 준비하며 시민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1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해주었습니다. 고견을 잘 검토해 축제에 반영되도록 노력했습니다.
  3. 단체와 시정홍보 부스 뿐 아니라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시민플리마켓을 처음으로 진행합니다. 안양외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습니다.
  4. 환경단체의 부스를 별도로 구성했고 친환경축제를 준비할 수 있는 시민서포터즈가 활동합니다. 기후위기와 축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5. 연성대학교 kpop학과재학생이자 프로댄서들 50명이 오프닝무대를 꾸립니다. 문화콘텐츠의 산학협력 가능성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 평촌중앙공원이 메인 행사장으로 꾸려진 것에 대해 만안구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향후 만안구만의 특색있는 스토리텔링을 더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되길 바랍니다.
  7. 안양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LS오토모티브에서 기업사회공헌 활동으로 시민축제에 부스를 마련해 바자회를 개최합니다. 이날 수익금은 안양시의 필요한 곳에 기부하며, 직원들의 헌혈등은 관내 종합병원에 기증합니다. 또한 한마음혈액원도 함께 참여해 홍보행사와 간단한 건강진단도 진행합니다. 기업도 안양시의 일원입니다. 안양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8. 수개월간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 이번 시민축제에서는 주류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시민축제에 걸맞게 건전하고 깨끗한 축제를 만들고 K-Culture의 대표축제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입니다. 안양시의 요식업, 상인회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9. 처음으로 학술대회를 엽니다. 축제 주제에 맞는 댄스포럼으로, 축제 전인 바로 내일 안양아트센터에서 연구자와 댄서들이 함께 모여 생생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10. 주 행사장에 38m의 오픈스테이지가 열립니다. 고퇴경의 랜덤플레이댄스와 세대를 아우르는 춤강습이 이틀동안 계속 진행됩니다. 안양 청소년수련관에서 처음 춤을 배웠다는 리아킴의 원밀리언 스튜디오에서 안양댄스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는 댄스나잇 DJ쇼가 안양평촌공원에서 열리고, 폐막 퍼포먼스는 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시민들과 함께 신나는 춤판을 펼칠 예정입니다.

이번 축제에 유명댄서들과 댄스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 인파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민축제추진위원회의 위원들과 시청직원들이 상시 대기하며 안전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년동안의 팬데믹 이후, 수많은 음향, 무대, 공연관련 업체가 도산했습니다. 물가는 올랐고, 업체는 줄어들었고, 축제와 행사는 늘어났고, 예산은 그대로라, 안양시민축제를 준비하는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담당부서가 많이 고생했습니다. 몇 명 안되는 인원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준 사업부와 최태규 축제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양시민축제는 9월 23일 금요일 저녁 개막을 시작으로 25일 일요일 저녁까지 진행합니다. 저는 23일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안양평촌중앙공원과 삼덕공원을 오가며 상주하겠습니다.

처음 기획위원장을 맡아서 부담도 되고 많이 설레입니다. 모쪼록 안전하고 신나는, 즐거운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댓글에 시민축제 홈페이지를 링크해두겠습니다. 주변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알려주셔도 좋고, 페친들도 환영합니다. 그럼 스물 한 번째 안양시민축제에서 뵙겠습니다.

안양시민축제 기획위원장 이하나 드림

힌남노가 남긴 것

포항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생존자가 주차장 입구까지 나와 제 두 다리로 선 것을 본다. 

1996년, 삼풍백화점 지하에서 들것에 실려나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물에 떠다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소떼도 떠오른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주, 주말을 지나 월요일 낮 하루종일 태풍뉴스가 미디어를 뒤덮었다. 

SNS에도 역대급 태풍이라니 걱정하는 글들이 그득했다. 지난 번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강남역이 침수된 이미지가 강렬했던 탓으로 봤다. 대책없이 당했던 것이 불과 한 달전이니, 이번에는 대체로 대처하자는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제주부터 시작되는 태풍의 경로가 시시각각으로 보도되었다. 각 언론사는 오래 전의 뉴스클립을 꺼내 재편집해서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매미와 치바때의 장면과 일본을 지난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연달아 재생되었다. 

포항의 지하주차장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몇 건 봤다. ‘지하주차장이 잠기고 있으니 차를 빼라’고 방송했다는 관리사무소의 소장에게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도한 모양이다. 관리소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더 말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한 것 같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처음엔 주차장이 괜찮은 것으로 봤다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차를 빼라는 방송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물이 얼마나 빨리 불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나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관리사무소는 보통 9시쯤 출근한다. 전날 태풍이 올라온다 하니 누군가 철야근무를 했을 수도 있다. 그 외의 시간엔 관리직으로 바뀐 아파트경비원들 등 야간조가 남는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뺐을 경우 그 많은 차가 밖으로 나와 빚어질 혼란이 걱정되었을 거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차가 침수되었을 경우에 책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주민들의 재산에 손실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일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일때, 사람은 10분 후를 예측하지 못한다. 게다가 아파트 옆의 개천은 수년간 물이 흐르지 않은 건천이었다. 물이 그렇게까지 들어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방송으로 누군가 사망하고 누군가 다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부담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을 맞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포항시는, 재해대책전문가들은 천이 범람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태풍에 대한 이야기는 3일 전부터 있었다. 그 주변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면, 지하에 들어가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없었을까. 월요일이 되는 새벽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시간이니,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걸까. 이미 몇 년동안 메말라 있던 건천에 물이 차고 넘쳐 아파트까지 밀려들어올 거라는 예상을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었을까. 

마른 땅에 물이 흐르고 그 물이 넘쳐 10분만에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나 예측능력이 뛰어난 현명한 사람이나 가능하겠다. 지하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오는 장면을 찍은 블랙박스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한 대의 SUV차량이 갈 길을 헤매 머뭇대는 사이에 2분이 지났다는 기자의 해설이 붙었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재난 그 자체를 책망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망실에 대한 격분을 쏟아내기 위한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언론은 이때 사람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 주고 조회수를 올려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파도를 찍던 유튜버나,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냥감이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이라면, 언론이라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황망함이 건강한 비판으로 승화되고 정당한 분노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게이트키퍼라는 이름은 이론과 교육에만 남았다. 

티비에서 재난을 생중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여름이면 동생과 나는 하루종일 티비를 켜놓고 재난방송을 봤다. 나의 모친은 그 특유의 성격과 정서적 문제 때문에 ‘다 떠내려가라’는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재난방송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우리를 위로했고, 곧 눈앞에 닥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잠시 잊었다. 나는 8월 말에 태어났고, 내 동생은 9월 말에 태어났다. 내 생일과 내 동생의 생일 사이에 수많은 태풍이 오고 갔다. 멍하니 재난방송을 보고 있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세상 모든 것 앞에 무력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때, 물이라도 쓸려와 강바닥을 뒤집어주길, 못된 것들을 밀어내길, 세상을 바꿔주길 바랐던 어리석은 마음. 그 마음들을 모여 어디로 흘러갈지는 각자의 마음에 도사리는 삶의 무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재난을 생중계하는 며칠간, 새로운 포르노그라피를 본 기분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댓글을 먹고 무서운 파도를 보여주고, ‘잘 대처해야 한다’라는 뻔한 말만 지껄이면서 공포를 팔아 덩치를 키우는 시대. 기후위기만큼이나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