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man and his daughter

노무현때부터, 별 차이 없는 득표율로 대통령들이 당선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절반으로 쪼개져 각자의 투쟁을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유신의 망령은 그 공포가 얼마나 강렬하였던지, 유신에 태어난 모든 자들의 영혼을 잠식했다.
반정부적 생각을 스스로 검열하는 무의식속에 그들이 늙어간다. 베이비붐 세대는 죽을 때까지 투표권을 가질 것이고, 그들의 새마을 운동은 무덤까지 추억으로 회자될 것이다.
20대 이하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이 나라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다. 고려장을 부활하고 싶을 만큼 세대간 이견이 벌어질 수 있고, 이제 젊은이들의 삶을 그들이 볼모로 잡고 있다.

새누리당에겐 승리의 공을 세운 것은 변함없이 똥물에 발담그고 있는 민주당이다. 이제 민주당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진보의 싹과 풀뿌리의 힘까지 앗아가고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이 “이기고 싶다” 는 마음을 갖는 순간 망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김문수가 탄생한다. 함께 하겠다. 낮은 자리에 있겠다 라는 마음이 퇴색되는 순간 절대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 애시당초 민주는 중도보수파이지 진보도 아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부자를 위해 투표한다. 그들은 자존감을 잃은 지 오래되어 자력갱생은 기억조차 없다. 강력한 지도자가 독재를 펼쳐 이 시궁창에서 절벽으로 떨어지지만 않기를 바란다.

이제 새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동북아 파시즘의 라인업이 완벽구성되었다. 성장의 정점을 찍은 체제를 다시 부활시키는 길은 전쟁으로 체재를 쇄신하는 극단의 방법이 남아 있다. 성장이 끝난 자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면 있던 것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이다.

세계의 흐름이 그러할 진대, 이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투쟁은 언제나 지속되며, 역사는 투쟁과 분쟁을 거듭하며 발전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모두 다 행복한 세상은 언제나 유토피아에 머물러 있다. 진보와 민주에 대한 열망은 바람으로 충분하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본질이며 본분이다.

이번 기회로 민주당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겠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 국민을 저버린 민주당은 헤쳐모여 하여 새누리와 합당하라. 내가 당신들을 온전히 버릴 수 있도록.

메이저 언론은 더욱 더 돈벌이에 혈안이 될 것이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진정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 친일과 파시즘, 유신의 떨거지들은 이거 먹고 떨어지기 바란다.

이제 군소언론, 지방지, 풀뿌리들로 더 게릴라처럼 함께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 굴하지 말고 끝까지 개기리라. 죽기밖에 더하겠나.

서울시 교육감 재선으로 서울의 아이들은 더욱 더 괴로워질 것이고, 그 아이들을 품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일게다.

다시 시작이다.

더불어, 이 쪽팔린 역사의 현장을 또렷이 기억해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이명박 설사 골고루 청소 잘 해주길 바란다. 더 싸질르지나 말길.

+ 덧붙여, 이 곳은 원래 이런 나라였다. 노무현을 뽑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뽑았던 나라.
박정희에게 고문받은 사람들이, 그의 딸을 추대하는 나라
홍반장의 부활을 축하하며, 김두관 전지사의 혁혁한 공로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럴 수도 있지?

1.

며칠전에, 동네 엄마에게 제안을 받았다.

근처에 어린이 전용 수영장이 생겼는데 수영복이랑 수건만 챙겨서 보내면 씻기고 말리고 차에 태워서 보내준단다.
4명 그룹짜며 보내면 할인해 준단다. 아들도 같이 보내지 않겠니. 하고. 그 엄마 아들은 초딩 2학년.
얼만데요? 물어보니 할인해서 주 2회 강습에 3개월 선납하면 52만원이랜다.

딱 짤라 거절하기 곤란했다.
어린이 수영에 대한 나의 생각은
_ 절대 혼자 머리감고 옷 갈아입고 수영장에서 자빠지지 않을 나이에 보낸다. 이기 때문에.

오후에 다시 전화가 왔길래 그렇게까지 시킬 필요 없는 거 같은데 아무튼 제안해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6개월내에 수영마스터”를 강조하신다.
..

수영은.. 재밌자고 하는 거 아닌가;;;
나도 이제 배우는데;;
내 대답은 “수영선수 시킬 것도 아닌데..” 였다.
아무튼 고맙다고는 했다.

2.

그 날 오후에 만난 동네 또 다른 엄마.
낮에 수영 제안 받은 얘기 했더니 아 거기까지 연락이 갔구나 한다.
요즘 우리 아들 뭐 하냐고 물어봐서 유치원에서 방과후를 매일 하니까 애가 좀 피곤한 거 같아서
(내가 시킨 거 아님!!! 지가 한다고 그랬음!!!) 태권도만 보내고
일 있어서 애 좀 맡겨야 할 때는 블록놀이방 보내는데 본인도 좋아하고 수업 하나 하겠다고 하도 졸라서 주 1회만 보내고..
태권도에서 주말 수업 하는데 그것도 보내달라고 해서 토요일 오전에 보낸다. 했다.

미술학원 다니지 않았어요? 하길래
인제 흥미를 잃은 거 같아서 안 보내요, 하면서 “미대 가야 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했더니
그 엄마왈 “그러게.. 체대를 갈 것도, 미대를 갈 것도 아닌데..” 라고 한다.

이 엄마는 최근 남편이, “내가 지금 행복한가” 하는 고민에 빠져 난감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도 교육때문에 자꾸 누군가에게 떠밀리는 느낌이라 괴롭다고 한다.
뒤쳐지지 말라고 시키는 건데 이게 뭔가 싶다는 거다.

나는 얼마전에 초등학교 4학년 수학문제를 봤는데 도저히 공부 하라 소리 할 수 없게 생겼던 얘기를 하며, 이게 변별력을 위해 만든 문제라면,
내 새끼가 수학천재면 풀 것이고, 아니면 마는거지..
굳이 공부 잘해 대학 잘 가 직장 잘 들어가 대기업의 부속품으로 7-8년 근속하고 나이 마흔에 인생 이모작 해야되는거면, 난 그것보단 장바닥 전투력과 사회성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라고 얘기 했다.

그러게요..라며 그 엄마는 멍한표정을 지었다.
애가 뒤쳐지지 말아야 하니까. 라는 그 엄마에게
뭐 공부가 많이 떨어져요? 물으니, 아니 그건 아닌데..

내 기준에 공부가 많이 떨어져요? 는 글을 못 읽거나 계산을 못하는 경우, 혹은 본인이 성적이 너무 떨어지거나 학교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말한다.

글쎄 나는 예체능이나 애가 사춘기를 넘길 수 있게 꽂힐만한 뭔가는 꼭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공부는. 글쎄.. 억지로 시키면 올라가서 뛰어내리든가 가출하든가 둘 중 하나 아닐까 싶은데.. 정도로 얘기하고.

그 엄마가 뭔가 더 얘기하고 싶었으나, 저녁이 늦어,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3.

이웃에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학교 – 보습학원- 태권도를 마치고 요일별로,
학습지 선생님, 미술학원,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가 있다.
10시 정도에 받아쓰기 공부를 하다가 자는 모양인데,
이 친구는, 주로.. 한 페이지 푸는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집중력이 아주 떨어지는 아이다. 그렇다고 ADHD는 아니고, 그냥 재미가 없어서 하기가 싫은 아이.
그 엄마는 애 옆에 앉아 있으면 자꾸 소리 지르게 되고 그래서 자리를 뜨면 애는 딴 짓하고 손톱 쳐다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애는 또 숙제를 늦게 하고 그래서 엄마가 또 화를 내고..
반복이라고 한탄한다.

4.

오늘 같은 태권도를 다니는 형아의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사범님한테 야단을 맞았다며 울고 들어왔는데 애는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하지 못하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다며 우리 아들한테 좀 물어봐 달란다.

아들이 설명해주는 상황은,
어떤 꼬맹이가 그 형한테 자꾸 까불고 놀리고 그래서 형이 참다가 화가 나서 “나쁜 말”을 했단다. 무슨 나쁜 말? 이냐고 물으니 입에 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을 돌린다.

그 엄마는, 아들이 울며 들어와 놀랐고,
그 나이때는 다 그런 거 아니냐.
우리 애가 먼저 잘못한 거 아닌데 왜 야단을 맞아야 하나 이런 생각인 거 같았다.

좀 친한 사이라 나는

“언니 남자애들은 현장에서 바로 잡아 주지 않으면 뭘 잘못했는지 전혀 깨우치질 못해요. 기억을 못하니까. 나중엔 별로 감도 안 오나보더라고. 나중에 얼르고 달래고 설득하는 게 통하는 건 여자애들 스타일이지.
그리고 태권도는 무조건 연장자가 참고, 욕을 하면 욕한 애가 무조건 더 혼나는 거고, 꼬맹이는 야단을 쳐도 잘 모르니까, 형들이 양보하고 참고 가르쳐라 이게 메뉴얼인 거 같더라구요.
큰 애들이 화를 못 참아서 손 한 방만 나가도 작은 애들은 나가 떨어지니까 일이 더 커지잖아요. 그래서 그런거겠지.”라고 얘기했더니
이 엄마는..

많이.

놀랐나보다.

그래 그래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정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5.

엄마들은 아이들이 야단맞고 들어오면 싫은걸까. 모두?
관심이 있으니까 교사로서 야단도 치고 그러는 거 아닐까?

라는 질문을 트윗에 올리니.
트위터에 어떤 분이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 별로 없다며.
자기 자식을 야단칠 권리는 부모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물론 다 그렇다고 말할 수 없고 쉬운 일반화를 시킬 수 없으므로)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니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이 야단을 쳤을 것이고,
야단맞을 짓을 했을 것이고,
선생님은 집단을 규율하는데 있어서 어떤 규칙이 있을 것이고,
설령 불공평한 일이 있었거나, 다 똑같이 잘못했는데 혼자만 걸려서 억울하다 하더라도 그 억울할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며,
선생님이 정말 너에게 관심이 없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교육업자면 절대 너를 야단치지 않을 것인데. 라는 생각은.
옛날 부모들의 생각이라는 의견도 들었다.

내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건지,
내가 이상한 사람인건지.

그래서 큰 아이 자격증 학원에서 애 야단쳤다고 죄송하다는 식으로 그렇게 누누히 강조했나.

아니, 근데 보습학원 같은 데서는 막 엎드려뻗쳐도 시키고 매도 때리고 하던데
이건 뭐지.

공부를 안하는 건 야단맞아도 되지만, 다른 사안은 “그럴 수도 있지. 공부하느라 힘든데” 하고 넘어가는 건가?

다 미친건가?

내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나?

그럴 수도 있지, 싸울 수도 있지, 욕할 수도 있지, 때릴 수도 있지, 저 아이가 열받게 했대잖아요. 이게 바로 학교폭력의 가해자의 시발점인데.

6.

그럴 수도 있지, 사대강 팔 수도 있지. 토건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해군기지 건설할 수도 있지. 국가 방위력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성폭행 할 수도 있지. 꼴렸다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는거야? 다??

2012. 4. 12.

전교조가 생각났다.

89년도였다.

그 때 매우 이상한 계기로 학교 (당시 중딩)에서 소요가 일어났는데, 계획하던 백일장및 사생대회 날짜를 자꾸 학교측에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연기하는 건 맞는데 다른 때 같으면 그냥 갈 정도의 비였는데 두 세번정도 연기가 되니 불만이 생긴 것.

근데 이런 일로 소요가 일어나기엔 너무 사소하지 않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3학년들이 갑자기 학교를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3학년들을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교사들이 뛰쳐나와 아이들을 말렸지만 1500명의 학생을 교사 몇 명이 제지하기엔 어려웠다.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회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로 인해 학교에서 누군가 파면당하고 해직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3학년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알았던 모양이고 교문출근투쟁들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어명의 선생님이 해직되었고 나는 그 선생님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백일장 문제로 아이들이 튀쳐나갈 때 어떤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되었던 장모 선생님이 나중에 TV에 전교조 임원으로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별 생각없이, 학교를 다녔고 학생회 임원을 지속했다.

당시 89년도 나는 그 학교의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부회장 당선시 교실 환경미화 학습신문을 만들 때 “왜 학생회 임원은 교사회식을 준비해야 하나” 라는 사설을 실어 6개월동안 교사들과 심한 충돌을 빚었다. 결국 담임교사의 지시로 그 학급신문은 교실에서 떼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격하게 반항을 하기도 했다. 일부 교사는 대놓고 수업시간 내내 나를 째려보는 짓거리까지 했는데, 고의적인 왕따를 유발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역력했고 이유없는 체벌과 차별대우도 감내해야 했다.

당시 학교내에서 벌어지던 스승의 날 선물 문제를 없애고자 이럴바에 각 학생들의 푼돈을 모아 공동으로 선물을 드리고 개별 선물을 없애버리자는 안을 내어 이를 학생회에서 통과시켰고, 이 부분을 추진하다가 촌지와 다름없다며 일부 선생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서 무산되었다.
내가 그 때 추진했던 것은 전교생 500원씩 내기였다.

3학년이 되어 학생회장이 되자마자, 작년 스승의 날 선물문제로 나에게 너는 선생을 뭘로 보냐고 언성을 높였던 가정선생이 당선인사를 하러 교무실을 방문하자 마자
“어머 이하나 회식은 언제 해?” 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 교사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사각형의 턱으로 남았다.
나는 교사회식을 추진하지 않았고, 모친 역시 이에 동의해 자동으로 맡게 되는 육성회장(당시 육성회장은 학생회장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맡게 되어 있었음)이 되어 육성회 자리에서 육성회장이라는 이유로 60만원을 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고 1/n 해서 각자 5만원씩 더 내면 되겠다. 라고 발언했다.

3학년 학생회장을 지내는 동안 남자아이들이 여학생이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지나가는 나에게 양동이에 물을 담아 뿌리기도 했고 좀 짖궃고 유치한 장난들을 많이 쳤다. 그 해에 각 학교마다 교복을 입는 게 유행이 되기 시작해 개방적이던 당시 백.. 모모 교장선생님과 학생회 임원들간의 상의를 거쳐 교복을 디자인을 선택했고 (근데 지금보니 안 예쁘더라. 후배들 미안), 임원 간선제였던 학생회장 선출안을 수정해 전교생 직선제로 돌리는 데 공을 들였다.

중딩인데..
참 거국적인 일 했다. ㅎㅎㅎ

아무튼 그 이후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좀 조용히 지내고 서클활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학교에도 파란많은 전교조 역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89-90년도에 수많은 교사들이 해직되면서 나의 여고에도 해직과 파면의 바람이 불었는데 이에 대해 학교의 학생들이 항거를 표시하는 의미의 행동을 했다는 얘기 몇가지였다.
교복자율화로 사복을 입던 학생들이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등교했고,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복도에 내놓고 단식투쟁을 했단다.
당시 그 학교에선 반장/부반장을 교사 직권으로 임명하는 제도였는데 학생들이 이에 반발해 반장/부반장을 무효화시키고 각 반에서 두 명씩 임원을 투표를 통해 재신임해 30인회를 결성(당시 15반) 교장실과 이사장실에 항의방문과 투서를 전달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여,..
나의 자랑스러운 그 선배들의 모교는,
그 엄청난 대지에 여고/여상/여중이 설립된 그 땅에서.. 여고에서 매점까지 왕복 빠른걸음으로 15분이 걸리는 그 거리를.. 주파하든 말든 학교에서 14시간을 보내는 여고생들에게 절대 매점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시 돌던 루머로는, 이사장이, 여고에서 전교조가 가장 먼저 발생했으니 매점따위의 편의시설을 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음…

쓰다가 보니 고등학교의 이야기는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장황하게 썼던 지라.
네이버 블로그 싹 다 막아뒀는데.
다시 열어보겠다.

그리고 링크나 걸어야지..

엊그제, 관악을 이정희 후보의 문자소동으로
여러가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운동권에 입성한 적 없는 내가 귀동냥으로 들은 여러가지 정보들이 뒤죽박죽하다가 이제 겨우 정리가 되어가는데, 그저 생각나는 건, 그 때의 분위기다.

고등학교 때 갔던 연세대 노천극장에서의 전교조 집회.
전교조 우리의 희망 – 이라고 불렀던 노래.

그 때는, 사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있으면,
학교에서 따귀를 맞거나, 육격포탄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학생회 임원이 되도 빚내서 회식시키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반장이라고 도시락 두 세개 싸가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촌지를 내지 못해 얻어맞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조건 외우는 주입식 교육도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 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다. 학생인권조례 당연히 필요한 거 이제서야 생겼다.
근데, 많이 변했다.

당시의 사람들도 권력을 알았고, 진영을 떠나 모두 늙어간다.
세월은 가고 고인 물을 썩고, 욕심들을 늘어가고 곪은 상처는 터진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게 2012년이 가고 있고, 나는 그냥 그 옛날의 그 공기가 좀 그리웠을 뿐이다.

http://tankhana.blog.me/120120468921

 – 오래전에 썼던 폭력학교에 대한 포스팅 6개나 됨 ㅋ

2012. 3. 21.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조금.

1.

민주주의의 원칙이 다수결이라고 한다면, 다수는 늘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 명제를 전복시켜야 지배가 용이하다. 대중은 우매하며, 함부로 휩쓸린다는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2.

대중의 무지함과 잔혹함을 역설하기 위해선 소수지배계층이 이 의견과 여러 사례들을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당신들이 의견을 모아봤자 모두 쓸데없다고. 그리하여 사회적 잔혹뉴스가 유통되면 그들에게 좋다. 신문의 사회면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이 부각될 수록 대중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스스로 차별화 하여 고립된다. 대중의 고립과 상호간의 불신은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3.

(1)대중이 우매한 권력자를 선택하거나 잘못된 주권행사 (투표/선거)를 하는 경우는 숱하게 많다. 이 상황의 원인중 하나로는 권력층에게 독점된 정보의 폐쇄성에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은폐, 왜곡, 즉 거짓말이 정의(定意)로, 명제로 유통되고 점령하는 것이다.

4.

국가권력의 지도자가 올바른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기 위해선 지도자를 앙망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스템이 확고해야 한다. 이 경우 (2)지도자가 절대 善을 추진할 수 없음도 감안해야 한다. 훌륭하고 능력있고 선량한 지도자가 그러한 정책만을 펼친다는 것은 환상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그 어떤 지도자도 독단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음을 말한다.

5.

그리하여 법(헌법)과 중재, 감시기관이 모든 권력을 철저히 나눠갖고 이 시스템이 그 어떤 폭력적 정권이나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변질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체계가 되는 법을 누가 정하느냐와 감시기관이 특정계층에 의해 장악당했을 경우 민주주의는 보완할 방법이 없다.

(1), (2)는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에 나온 문장의 차용입니다.
이건 책을 읽으며 한 생각들이고, 앞으로 더 좋은 생각이 나면 또 정리해보겠습니다.

2012. 3. 10.

엄마는 실직중

실업과 실직사회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한 생각인데, 실직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크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애엄마들의 황망함에 대해서 누가 고려를 해보았는가다.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의 경우, 이게 아무리 자발적이라도 하더라도 임금노동시장에서 밀려났다는 박탈감으로 인해 실직과 유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이걸 지워주는 건 실직이 아닌 이직으로 생각해야 하겠지만, 이 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상, 엄마라는 것은 매우 숭고한 일이지만 그것을 절대 프로의식 가득한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아준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임금노동시장에서 일하다가 급작스러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물론 그건 내가 선택한 몫이라고 누가 트집을 잡아도 할 수 없다만.

임신을 하게 되고 급하게 일을 정리하면서 임신중에 무슨 태교니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내내 출산예정 일주일전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폭풍업무를 봤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육아휴직을 출산이후로 잡아놓는 것을 가정했을 때, 마음으로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할 만큼 업무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는 게 바로 코 앞에 닥친 일이기 때문에 미친 듯이 일을 해대지 어디 뱃속에 있는 애 생각할 여유나 몇 번 있었겠느냐 말이다.

이 사회에서 바라는 엄마는,
성녀이길 바라면서 초능력자이길 바라고, 감정정리도 깔끔하길 바란다.

<짤방이 너무 귀엽군>

남자들은 부인이 애엄마가 되는 그 순간 자기 엄마와 동일시 하며 성모마리아적인 자기 자식의 어미를 기대한다. (물론 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젊은 엄마들에게 에미가 되서 할 짓이냐 에미가 그게 뭐냐 라고 강요하는 반면,

배우자들은 대체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라고. 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우리 마누라 너무 수고하지..라고 하면서 귓전에는 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윽박지르듯이 하던 말 “집구석에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라는 말이 맴돌 것이다.

설령 그 중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내내 잘 버티고 있는 엄마들도 직장내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야근, 회식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회에서 반실직과 다름없는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사회에서 그깟 돈 몇 푼 버는 것보다 정말 대단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다고 칭찬해줘도 모자랄판에, 나도 밖에서 돈 버느라 힘들다고 징징대는 어린 신랑들이 천지 삐까리다.
게다가 많은 초보아빠들은 애 안았다가 내가 떨어뜨려 죽이면 어떻게 하나, 라는 공포에 시달린다고 한다. 같이 자다가 깔아뭉개면 어쩌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다 미성숙한 상태에서 만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혹시 어린 아이가 수단이 되거나 목적이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지만, 이건 이미 시간이 오래 흐른 다음에 깨닫는 개인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라도, 어미의 노릇을 하는 것과 아비의 노릇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하고 심각하고 고귀한 일인가 제도적으로 혹은 분위기라도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실직당하고 하루 종일 공원에서 빈 가방 들고 헤매는 늙은 아버지의 심정과 우는 애 업고 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동네를 거니는 젊은 엄마의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임신/출산/육아를 거치면서 사실상 실직상태에 몰린 엄마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의 숭고함과 자아발견과 자아계발에 지대한 가치를 학습받으며 자란 세대다. 동생 한 번 업어보지 않고 자란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은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다.

쉽게 말해 언제는 유능한 여자가 되어 불평등에 반대하여 투사가 되라더니 이제와서 숭고한 마리아가 되라는 말이냐고 따져 물을 수 있다.

실직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은 사회적 평등과 가족의 이해겠지만, 지금 이 따위 나라에서 두 가지를 다 거머쥐는 것은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각자 알아서 하되 돈 있으면 되도록 전문상담사를 만나라고, 우울증을 조심하라고  쉽게 말해도 되는 일인가?

2012. 2. 27.

새롭게 태어나는 소중한 생명은 
임금노동시장에서 열나게 업무만 처리하다 온 사람에게 
매우 낯설고 어색하고 이해할 수 없으나 
절대 미워해서는 안되는 성역과도 같은 존재다. 
낯설고 낯설고 또 낯설다
– 짤방은 올해 7살이 되어 느물거리는 내 새끼임-

너는 나와 왜 다르냐

오래전에 봤던 영화, 엘리펀트맨. 한국에서는 “코끼리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중증다발신경섬유종. 이라는 병을 앓는 환자인데, 영화의 배경에서는 그저, 기형, 괴물로 치부되던 시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공개되는 주인공 코끼리 사나이의 얼굴은 거대한 신경섬유종으로 마치 코끼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영화속에서 코끼리 사나이는 인간서커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구경거리가 된다. 경악과 충격, 공포를 자아내는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이 서커스단에는 샴쌍둥이와 난장이등이 속해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애인 인권유린의 행태가 자행되던 시절. 
사실, 이런 인권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한 게 사실 몇 십년 되지도 않았다. 
우리의 동춘서커스를 비롯한, 수많은 서커스에 외소증이라고 이름이 바뀐 난장이들이 나와서 곡예를 했고 사람들은 그걸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 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한수산의 “부초”는 서커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고등학교 때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이후로 그 어떤 서커스도 기분 좋게 볼 수 없었고,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했는데 공연내내 질질 짜다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얼마전에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의 뮤지컬을 보았다. 
그 전에,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민음사판의 원작소설을 읽었다. 
노틀담의 꼽추. 라는 축약된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이다. 
위고는 건축의 시대가 끝나고 문자의 시대가 왔음을 말하며, 그로 인해 대변혁이 일어남을 알린다. 그리고 이 소설은 철저한 신분으로 인한 소외계층을 집중 조명한다. 
쉽게 말해 빈민굴에 해당되는 기적궁에 살고 있는 라 에스메랄다와 성당에서 종지기로 사는 콰지모도, 그리고 에스메랄다 주변의 인물군상을 표현한다. 
물론 그 위엔 비겁하고 이기적인 기득권 세력도 나타난다. 
뮤지컬은 많은 부분을 축약했지만 넣어야 하는 요소들을 빼지는 않았다. 
에스메랄다는 모든 스토리의 요부의 요소를 갖추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들, 인류 역사의 모든 이야기들속의 전통적 전형적 여주인공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공통점이 있다. 여기 위고는 몇가지 요소를 더 삽입했다. 
이국적인 외모, 이방인, 집시, 다른 머리색깔, 다른 피부색깔, 춤추고 노래하는 여자. 
즉, 
1. 집시- 춤추고 노래하는 – 예술적인 색채 – 예민한 – 그러나 순결한 – 고대 제전의식의 무녀의 형태 – 마녀로 등극 가능 – 희생양 
2. 이방인 – 외국의 유입자 – 다른 인종 – 빈민 –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 법 밖의 존재 – 무법 – 떠돌이 난민 (refugee) – 하층계급 
이 두 가지 공식을 끼워맞춰 소외계층의 한 맥락으로 놓고 
콰지모도는 고아 – 기형아 – 다른 외모 – 일반적이지 않음 – 남들과 차별화되고 다른 것은 나쁜 것으로 치부됨 – 악의 상징 – 인간의 요소를 갖추지 못함 – 반인반마와 다름없음 – 짐승보다 약간만 높은 상태로 하여 또 다른 소외계층의 한 맥락으로 놓는다. 
코끼리 사나이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들은 소외된 자들이다. 
이 소외된 자들은 통계적으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지닌 것으로 시작한다. 
예술속에서 외모 – 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얼굴이나 생김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을 상징할 수 있다. 검은 머리를 가진 이국의 집시는 매우 불결하고 저급하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 
이게 이 나라에서도 통용되어 단일민족이라는 말도 안되는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한다. 
대한민국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단일민족만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뜻이기 보다 
다른 민족이 절대 침투할 수 없을 정도로 기득권이 철저하게 공고한, 절대 유입과 개방의 여지가 없었던 왕조가 국명을 바꾸고 체제를 바꾸더라도 5천년동안이나 유지된 매우 배타적이고 수구적인 체제였다는 것의 반증이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으로 새로운 유입세력의 신선함을 악으로 호도하는 것은 기득권의 지배논리에서 아주 쉽게 유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분류하고, 장애시설을 혐오시설이라 분류하고, 하층계급이나 성노동자, 노숙자등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분류해 별도 관리하려는 노력을 꾀한다. 
신체의 장애가 있는 자를 장애인이라 칭하고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하고 별로의 관리를 한다는 것은, 신체의 장애가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자들은 장애인이라 칭하지 않고 별도 관리를 하지 않으나, 일단 외형적으로 보이는 쉽게 판독이 가능한 “우리와 다른 부류”는 쉽게 특별한 법의 보호 아래 놓는 대신 일반적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내놓겠다는 의지이다. 
이것은 외국인이나 이주민에 대한 이 나라의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사이트 가입을 할 수가 없고 인터넷 쇼핑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진 나라. 이 것은 당신들의 특권이고 이건 우리 기득권, 즉 지배세력이 곤고하게 지켜줄 것이니 당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새로이 유입되는 세력을 철저히 배척하고 분리하는데 협조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의 주민등록번호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를 유입시켜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자연갈색의 머리색을 가진 아이들은 너는 왜 머리가 노랗느냐고 선생에게 타박을 받고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오기를 강요받아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외국인이 유입된다는 것을 절대 전제하지 않고,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은 모두 같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다. 그만큼 개방의 정도가 취약했으므로 모두 거기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새로운 유입세력에 난감해 하는 것은 바로 오늘 뉴스에서, 어제 뉴스에서, 그리고 내일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례에 있다. 비대위에 불편해 하는 한나라당이 바로 쉽게 보이는 경우이고, 
아래 링크를 걸게 될. 충격적인 기사 하나도 그러하다. 
우리는 그만큼, 배타적이고, 수구적이다.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왜 너는 나와 다르냐. 는 이유로 조롱하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반성한다. 법륜스님 말씀대로 후회하지 말고, 참회해야 할 것이다. 
+ 지난 일요일 정봉주 콘서트에 갔었다. 
김c가 출연해서 그런 소리를 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체제와 정부를 갖게 된다. 
여러분 싫죠? 근데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만 그런 걸까요?
우리가 그런 거..겠죠? 싫어요 저도. 싫지만 어떡해요. 그런걸.”
장애 소녀, 8년동안 철창에 가둬 – 경향신문 링크

2012. 2. 1. 

재벌은 살찌고 국민은 자살한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벌어진 시절이 있었다. 
식민시절 물산장려 운동 등은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자본을 벌게 하여 국가의 부강을 만들어가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돈 없으면 국가도 없다. 
80년대, 90년대까지도 국산품 애용이 칭송받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밥통, 일제 보온병을 쓰면 매국노 취급을 당했고 쉬쉬하면서 몰래 들여와 썼다. 
미제 좋아하면 미제국주의의 잔재라고 호되게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에선 알파벳이나 외국어글자가 크게 쓰여진 티를 입고 가면 야단을 받았고 교칙으로 금지했다. 
개인적으로 중학교때 전체 조회가 있는 날, 아무 생각없이 엄마가 사다 준 영문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갔다가 (반장이라 맨 앞에 서야 하는데) 교무실에 불려가 개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산 자동차가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랍다고 하며, 
사람들은 삼성과 LG가 타임스퀘어에 광고가 올라가는 날 벅차하며 애국심에 눈물 흘렸다. 
IMF가 불어닥치던 시절, 장롱에서 금반지를 빼서 내놓던 순박하고 책임감 강한 국민들은 그래도 우리 물건 써줘야 한다며 삼성핸드폰 국내점유율을 세계가 놀랄만큼 만들어 주었다. 
국내 지형에 강한 휴대폰이라며 노키아가 망해나갔고, 모토롤라도 유례없이 하위로 추락했다. 
국산 기업에 대한 이 나라 국민들의 애정은 망극할 지경이라, 
월마트, 노키아, 카르푸가 망해나가는 희한한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외국기업의 물품을 수입추진할 때 거래처에게 늘 강조했던 건, 이 나라는 “월마트와 노키아, 까르푸가 망해나가는 나라다” 라는 거였다. 그들에게 한국만의 감수성에 맞추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기업들은 나보다 무럭무럭 자랐다. 
회장들은 모두 휠체어를 타고 비자금을 조성했고 어떤 불법적인 증여나 상속도 모두 면제 받았다. 그들은 국가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중대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밀어주고 당겨주던 그 기업들은 아무도, 전문경영진으로 구성해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지 않는다. 
보름달을 만들던 삼립은 각종 간식을 모두 점령해 빵과 커피는 물론, 떡까지 장악한다. 
동네빵집은 사라지고 모두 다 삼립이 이름을 바꾼 SPC와 CJ 뜨레주르의 양대 산맥의 종업원이 되었다. 
LG의 자녀들이 100% 주주로 있는 아워홈이라는 외식업체는 순대도 판다.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롯데마트 통큰 치킨,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의 피자, 동네 골목을 치고 들어온 SSM 수퍼마켓, 전국민이 대기업의 종업원이 될 추세이다. 
이게 전세계적인 추세인가? 신자유주의 끝물에 한국만큼 재벌이 거대해지는 나라도 있나?
이 나라의 재벌은 Chaebol 이라는 영문고유명사가 있다. 
이 고유명사는 한국의 재벌문화에 대해서 연구한 국내의 한 학자가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영어단어로 인정이 된 경우이다.
기업은 흑자다. 공공요금은 치솟는다. 물가는 오르고, 국민은 자살한다. 
재벌은 살찌고 소비자는 죽어간다. 
각종 자동차는 국내에서 비싸게 팔고 수출이 아니면 살 길이 없다는 박정희의 신념을 이어받아 이 나라는 여전히 재벌에게 관대하고 재벌을 위해 나라가 굴러가고 국민들은 봉이 된다. 
신형 휴대폰을 개발한 회사들이 수십조의 흑자를 내면서 별도의 운영체제를 개발하지도 않고, 새로운 OS로 업그레이드 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팔아먹으면 그만이고 억울하면 새로 사세요. 지원금 드립니다. 이게 지들 나름대로의 서비스다. 
그러면서 죄없는 서비스 직원들만 조져,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잘 받았느냐고 확인을 하고 점수를 매기라 하고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고운 음성으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운운한다. 
닥쳐라 더러운 돼지들아. 
대기업이 수조원대, 수천억원의 흑자를 내면 사회의 모든 자원을 낼름낼름 받아먹은 만큼 기술개발을 하고 재투자를 해야지 전 국민의 종업원화를 꾀해 동전이나 뜯어가고 쉽게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소매업까지 장악하라고 밀어준 거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산품 애용이 상당히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느꼈지만 최근들어 극에 치닫는 듯 하다. 전국민을 종업원화 해서, 전국민 정규직이라도 시켜줄 것인가? 그것도 아니잖는가?
사회환원 하라고 강요하는 거 아니다. 
재투자 재개발, 국가가 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 엄청난 투자금이 필요한 연구개발. 힘쓰란 말이다. 골목에서 천원떼기 백원떼기 팔아먹지 말고. 그런 건 당신들 아니어도 충분히 할 사람 많다. 
어차피 이윤추구하는 기업이다.
그들에게 윤리적인 걸 강요할 수도 없고, 사회복지재단이 되라고 할 수도 없다.
작작 해 처먹으라는 거다.
꼼수도 부릴만큼 부려야지, 아주 영악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부리지 않는 이상, 수가 너무 얕아 구린내가 풍긴다.

2012. 1. 25. 

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며칠 전 불거졌던 한비야 인터뷰에 대한 갑론을박.
그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젊은이의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정신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라는 이 부분.
물론 뭐 한비야씨가 뺨을 때렸겠는가 물리적으로 치명적 폭행을 했겠는가.
그저 그는 정신차려. 하면서 친한 이모의 얼굴로 팔뚝이나 한 대 찰싹 때렸을 것이다..라고 추정된다.

그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자, 한비야씨의 의도는 이런 얘기였다.
왜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511.html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젊은 세대를 거쳐온 나로서, 혹은 아직 그 젊음을 놓지 않은 30대 후반의 아줌마로서, 나는 이 사람의 이런 화법이 매우 불편하다.

한비야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좋은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전세계를 누비며 한국에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날 난민구호활동가로 변신해 여전히 전세계를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흡사 영웅의 탄생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지도를 붙여주셨다는 그녀의 일화나, 과감하게 높은 연봉의 직장을 때려치운 자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자화자찬의 힘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그건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면 닥치게 될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 쉽게 말해 먹고 죽을 돈도 없어질 게 뻔한 상황을 내가 겪고 있던 시절에 그녀가 왕성한 활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요즘말로 해서 “열폭(열등감 폭발)”이 쩌는거라고 봐도 할 수 없다.

자, 그리하여 그녀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환영받는 정신적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그녀는 쉽게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쌔고 빠졌다.
서른이 되어서 직장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도 널렸다.
학자금 융자를 겨우 갚았는데 주변에선 결혼 안하냐고 눈치를 준다. 요즘, 대놓고 시집가라 장가가라 하진 않더라도 뭔가 도태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야근에 특근에 출장을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후배들이 있다. 이직을 준비했다가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일단 닥치고 여기 붙어 있어야겠다고 마음 접은 후배들도 있다. 뭔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가족중의 누가 아프다. 뭔가 다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했는데 가족 중의 누군가 파산직전이다. 이혼한 형제의 아이를 떠맡는다거나, 사고를 당한다거나, 부모님이 부동산 붐의 마지막 버스를 탄 게 화근이 되어 온 가족이 대출이자를 갚아나간다거나, 애시당초 취직이 안되서 비정규직으로 도느라 학자금 융자를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빚만 남겨놓은 부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가족들의 부채가 개인의 부채가 되고 물려지고 남겨지고 내 몸뚱이 하나 누일 집 한 칸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슴이 뛰는 게 오히려 원망스럽다.
차라리 아무 꿈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차라리 없었으면 얼마나 속이 편했을까. 예술따위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 같은 거 진저리 나게 싫어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네네 하고 집에 가서 티비 보고 자고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생활을 해도, 아 나는 참 행복해. 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행이나 꿈이나 가슴 뛰는 일은 커녕, 넓지는 않아도 자유로운 원룸 하나 구했으면 좋겠는 거다. 고시원도 지겹고 옥탑방도 싫고, 뭔가 좀 깔끔하고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맘에 드는 작은 소파 하나 놓고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이 세대의 꿈은 진즉에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쉽게. 너무 쉽게.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너희들이 다 잘 못 자란 탓이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군대에서 적응을 못하고 자살하는 거라고.
너희들이 나약해서 비정규직을 못 버티는거라고.
가카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도 다 해봤다. 나도 뻥튀기 장사 노점상 다 해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에게, 아우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가.

당신들이 만들어놓고 발 빼버린 이 세상에서 우골탑이 모골탑이 되는 기가 막힌 등록금을 빚까지 내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당신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나약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뭐가 나약한가. 우리는 당신들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한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이다. 기가막힌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 비정규직도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유머도 넘친다. 당신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네트워크에 우리는 찰싹 달라붙어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한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학교폭력도 애들 탓이고, 노스페이스을 입은 아이들도 다 아이들 탓이다.
요즘 애들이 이상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이 다 철이 없어서 그렇다.

어떻게 그게 다 아이들 탓인가.
아이들은 고스란히, 우리를 보고 자랐다.

7급 공무원의 꿈이 왜 나쁜가.
그게 가슴뛰는 일이 되면 왜 안되는가.
스펙 쌓고 대치동 아파트에 살면서 포스코 옆에서 점심을 먹는 게 꿈이예요. 라는 게 왜 나쁜가. 그런 꿈을 꾸게 해 준건 바로 우리들 아닌가. (나는 솔직히 빠지고 싶다만)

나도, 그런 이야기 듣고 살았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4당 5락,
니들이 조금만 참으면 남편 연봉이 바뀐다.
억울하면 공부해.
억울하면 의사해.
억울하면 판사돼.
억울하면 니가 선생해.

아무도 공부는 네가 하고 싶을 때, 나중에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라고 말했다.
대학에 떨어지면 대학을 못가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공부하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다.
공부만 하면 돈 벌어 좋은 아파트, 좋은 직장, 좋은 차를 타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공부를 통해, 그걸 수단삼아, 결국 돈을 얻는 것이었다.
넓은 아파트와 수입외제차와 명품가방을 들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밀고 대기업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고 말해줬지 않나.

그렇게 주입 받고 자라 대학을 가보니 등록금때문에 결국 빚을 져야 하고
인생 최단기간내에 가장 먼저 해야 할 To do list 1순위는 학자금 대출 해결. 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 해결을 하고 나니 부모님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독립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병원비 약값 하시라고 용돈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여태 돈 못 모으고 뭐했냐 소리도 듣는다.
가끔 모아놓은 돈이 있는 젊은이도 있다.
결혼 비용으로 모두 날린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대출을 받아 혼수를 장만한다. 신혼 첫날밤 서로의 마이너스 통장을 깐다.
덜커덕 아이가 태어난다.
대출이자 갚기도 전에 애 교육비로 가계부가 뻥뻥 빈다.
노후대책 개뿔 같은 소리, 아이들은 다시 입시전쟁터로 내밀린다.
여기서 갈등한다.
다 엎어야 하나.
이대로 가야 하나.

이제 가슴이 뛰는 건 심계항진이다.
대출이자날짜가 돌아오면 가슴이 뛰고, 카드값 고지서가 날라오면 가슴이 뛴다.
연봉협상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뛴다.

가슴은 열심히 뛴다.

이런 상황에 한비야가 말하는 가슴이 뛰는 상황은,
7급 공무원이 되어, 대출이자 뻥뻥 갚아나가고 원금도 갚고, 이 집도 은행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거다. 얼마나 가슴뛰는 일이냐. 눈물이 줄줄 나는 일이지.

사회의 기득권이 되고, 지도자급이 되었으면,
왜 이 청년들이 가슴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가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늦게 온 게, 이 나라에 IMF가 온게 개인의 탓인가?
이 나라에 식민지가 온 게 개인의 탓인가?
당시의 청년들이 열나 빌어먹어서 식민지 됬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왜 지금 개인이 게을러서 꿈을 꾸지 못한다고 쉽게 말하는가.

시대를 관통하는 구조의 오류는 늘 존재한다.
그건 1%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만끽하기 위해 상식밖의 일을 수없이 자행할 때 벌어진다. 99%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면 1%가 만들어 낸 비상식적인 사회를 인정하고 99%를 도와야 한다.
한비야 그녀도 1%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나라의 대부분 25%쯤 되는 사람들이나 10%쯤 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1%나 된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1%는 대부분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숨어있다. 보이지 않는 불안한 악이 되어, 블레어 위치의 정체모를 영혼처럼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한비야의 다른 행보에 대해선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의 꿈에 대해 비난한 그녀의 가벼움은 철저히 비난하고 싶다.

왜 모두가 성공해야 하고
왜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바닥에 좀 납작 엎드려서 편하게 사는 게 과연 죄가 되는가.
세상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순조롭게 돌아간다.

한반에 25명을 몰아넣는 유아학교에서 “리더십교육” 운운하는 것도 지랄하고 자빠진 일이다. 모두가 리더십 교육을 받아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간지옥이지 학교인가 사회인가.

얼마전 딸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성적은 바닥이지만 태권도를 오래 했다.
전공은 정보컨텐츠학과인 실업계를 다니는 친구다.
전공에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 관심이 좀 있다고 했다.
하드웨어 쪽이냐 소프트웨어 쪽이냐 물으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뭔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너도 안철수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게 합당한가?

원대한 꿈은 인생의 좌절을 더 크게 맛보게 할 수 있다.
위인전을 많이 읽은 아이가 평생 과대망상증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해 준 말은 앞으로는 네트워크 보안쪽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와 태권도를 오래 했으니 알바도 쉽게 할 수 있겠다 라고 독려한 정도이다.

왜, 그게 나쁜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운동도 지속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행복 아닌가?

힘이 빠져 지쳐 자빠져 있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숨 쉬고 조금만 일어나보라고 손만 잡아보라고 거기까지만 하라고, 그 다음은 스스로 점진적으로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좀 가져주면 안되나.
당장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마라톤 나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모두 다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라.
욕심없이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학가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있다.
원대한 야망 따위 없이 그냥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 사는 게 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무가치한가.

한비야씨는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죽지 못해 살아남아야만 해서 스펙이라도 쌓으면서 사는 거 조차 너무 힘든 인생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고 생각해도,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요즘 청년들이 나약해서 군대가서 자살한다” 라고 한 얘기와 자꾸 겹쳐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의 잘못된 기독교 윤리, 인간의 나약함과 긍정의 배신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2012. 1. 18. 

대한민국 새판짜기

진보나 보수가 없는 이 나라에서 그러니까 지금 보수들은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가카와 기득권을 비판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보진영에 올라탄 꼴이 된다.

여론이나 파벌을 나누는 건 상당히 우스운 일이지만 굳이 규정하자면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이 나라는 군림하고자 하는 놈들과 군림당하지 않으려는 세력으로 나뉘는 것인데. 그나마 웃긴 건 이게 1%와 99%의 대도 아닌 것이 이 1%축에도 못 끼고 자기가 누구 때문에 삥을 뜯기고 사는지 잘 모르면서 마치 자기가 1% 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가 호위무사라도 된 듯 까부는 형국인데 대표적인 자가 강재천 되겠다.

사실 학문이라는 게 깊이 들어가다보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공산주의는 현실적용하는 거에 모두 실패했는데 그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유토피아적 발상 때문 아닌가. 그러다 보니 공부 좀 했다 하는 것들은 니들이 아는 게 이게 정답이 아닌 세상인데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줄테니 잘 들어봐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되니.. 이건 자본으로 군림하려는 새끼들을 깐다는 것들이 지식으로 또 군림을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잖아.

그러다 보니 이건 마치 피라미드처럼 군림하려는 자본가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앉아있고 그 밑에서 개뿔 가진 게 지식밖에 없는 지식분자들이 2차 군림을 꿈꾸면서 이들에 의해 선동된 자들과 반대하는 세력들이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꼬라지밖에 안되는 거다.
중국의 혁명과정에서 지식분자들을 죄다 노동으로 교화시켜야 한다며 하방운동을 시켜버린 공산당과 모택동의 심정이 바로 이런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렇다고 분쟁과 토론이 나쁘니까 서로 연대하고 까지 말고 싸우지 말자고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이겠다.
이 엄청난 역동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건 이 나라의 빈곤한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니 설령 이게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해도 조금 견디고 참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영화 도가니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가 부러지면 멍이 들고 부어오르고 그 멍이 빠지고 깁스를 하고 뼈가 다시 붙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소란스러운 우리의 이 나라도 그 모두 과정중에 서 있는 아주 올바른 현상 아닐까.

건국 60년중에 민주주의 한 게 몇 년인가.
친일과 독재를 청산하지도 못한 바로 오늘의 시점에서 얼토당토 않은 자가 대권주자로 나서는 여기는 아직도 군림하려는 자에게 “여지를 주는” 답답하리만큼 선량한 국민들이 있는 나라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있다는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기운은 잘 하면 뭔가 아주 혁신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다.

2012. 1. 4.

휴대폰에서 어썸노트에 끍적거린 건게 너무 길어져서 뭐 블로그에 올려도 돠겠다 싶어서 올립니다.

배틀로얄이 오고 있다.

1.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이런 혼란상을 이겨 낼 수 있는 강력한 생존 능력의 소유자로 만들기 ‘신세기교육개혁법(BR법)’이 공표된다. BR 법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매년 한 학급을 행동범위가 제한된 일반인이 없는 장소에 이송하여 한 사람씩 지도와 일정의 음식,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중 한가지씩을 나눠 주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한다는 법률이다. 제한 시간 3일 동안 위법 행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죽이되, 규칙을 어길 경우에는 툭수 목걸이가 폭파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수학여행을 위장하여 무인도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치 게임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경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결국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시작한다.

– 이 글은 영화 배틀로얄에 대한 포털사이트 다음의 영화소개에 적힌 줄거리이다.
심각해지는 학급붕괴와 범죄.

옴진리교 사린가스테러 사건 이후
97년도에 사키키바라 살인사건이라는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인한 사건 – 이후 범인은 2005년 풀려났다)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http://blog.daum.net/holongbool/8106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

배틀로얄은 2002년도 작품이다.
이 당시 일본은 이지매라 불리는 집단  따돌림 현상과 그 원인과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일명 “묻지마”살인사건의 유형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최근 벌어진 대구의 한 중학생의 자살사건, 집단 따돌림 폭행으로 지적장애가 생긴 여학생의 사건, 집단성폭행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제 보도된 바로 이 사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2/h2011122816580921950.htm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 집주인이 출국한 사이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들어간 아이들이 무단침입으로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

2.

얼마 전 눈이 온 다음 날 작은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초등학생 여자아이 둘과 함께 어울렸다.
작은 놈은 오늘부로 7살이 되었고 누나들이라고 좋아하며 노는데 지켜보니 떨어진 모자도 씌워주고 아이들이 동생이랍시고 잘 챙기는 듯 해서 기특하다 생각했다.
아들이 누나들이랑 우리집에 놀러가면 안되냐고 물어 집에 데리고 들어와 추운데서 놀았으니 장갑도 말리고 따뜻한 거 한 잔 마시고 가거라 하고 집이 어디냐 물으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에 몇시까지 가야하느냐 묻고 엄마가 안 기다리시느냐 물으니 3시까지 가면 된다고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유를 덥혀 코코아를 타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토요일이었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조금만 놀고 돌아가거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노느라고 그 말을 잊었다. 그렇다고 당장 쫓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하고 남편이 사온 분식을 나눠 먹이고 작은 아이 방에서 같이 놀게 했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쉬는 사이 이 아이들은 마치 자기네 집인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피아노를 쳐도 되느냐 안마의자를 하고 싶다는 등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각자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가 어딘지를 알리는 똑똑함을 보였으나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 예를 들어 “냉장고를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다”, “안방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예절은 습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가 퇴근해서 쉬고 계시니 방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너무 쫒아다니면서 제재를 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랑 같이 갖고 논 모래놀이 통을 닦겠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통을 닦고 드라이기를 꺼내 말리기까지 했던 것. 목욕탕에서 드라이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인데 나에게 허락을 받거나 묻지 않고 여섯살 난 아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갔고 놀이터에서 아들과 조금 더 놀다가 갔다.
나는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그 누나들이 너랑 잘 놀아서 좋았는데 집안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듯 하니 다음에 다시 만나더라도 집에 놀러오는 것은 좀 곤란하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도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3.

요즘 길을 지나거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멀리서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에게 내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는 일이 생긴다.

담을 넘으려는 아이들에게 어딜 넘어다니냐- 하고 소리를 치면 대부분 부리나케 도망을 가긴 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면 위험한데 뭣들 하는 짓이냐 라고 했을 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저희 여기 안살아요 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는 아이들,

차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야단쳤을 때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흡연구역에 가서 피우라고 했을 때는 당신이 뭔데 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에 띄면 띄는대로 야단을 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 내 자식같고 몇 다리 건너면 다 내새끼 친구겠거니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하도 나에게 위험하다고 주의를 줘서 고등학생 쯤 되는 큰 아이들이 세명 이상 몰려 있을 때는 경비아저씨를 부르거나 다른 수단을 강구하긴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 때문에 할머니나 엄마와 실갱이를 한다.
몇시까지 학원을 가야 하고 학원 갔다가 다른 학원을 가야 하는데 가방을 안 가지고 왔다는 등의 문제다.

엄마들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 지금까지 학원 안가고 왜 집에 있냐고 하기도 한다.
엄마는.. 어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거나
그 시간 사이에 뭘 먹거나 다른 일을 볼 수 있다는 시간에 대한 계산에 능숙하고
엄마에게 행선지를 알리거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일에도 노련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취약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범주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공부하느라 피곤하니까 라고 넘어가기 일쑤이고
시간에 쫒기고 집에 와선 스트레스를 푼다고 게임이나 티비에 열중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남의 집에 가서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들에 대한 꾸중을 듣고 반성을 하고 행동을 교정할 시간따위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안스러워서 몇 가지 실수를 그냥 넘어가거나
중학생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들의 폭력성 성향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외면한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뭐가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남의 집의 현관비밀번호를 알고 불쑥 들어가는 일에 유연한 사회,
사실 주변에도 친구네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어가 이런 난장판을 벌이더라도 괜찮은가보다. 라고 뻔뻔하게 굴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잘못한 일인가, 그게 왜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아파트 단지에서 내내 화단의 풀을 잡아 뽑으며 걷는 남자아이를 본 시동생이 이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한다는 대답이
저희 집은 전세 사는데요.
분명 초등학생이었단다.

우리는 높아지는 집값과 먹고 사니즘과 그로 인해 너희들도 안정된 직장과 연봉 얼마가 인생의 척도가 된다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교 1등도 술마시고 담배 피워요.
전교 1등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우리는 정말
“그 따위 전교1등은 개나 줘버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내 친구를 죽였어요. 
왜요? 짜증나서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만만하니까 시켰다. 
그 아이가 싫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성폭행도 하고 폭행도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어른들의 성폭행과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피해자는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질려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괜찮다고 말할 것인가.
너는 강자이니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4.

가장 쉬운 계도책으로 나는 학교에서 상황극이나 심리극등을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엄마들의 반발이 심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 나라의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줌마들은 모두 아이들의 성적에 목숨을 걸고 공부 하라고 안간힘을 쓰는 비인간적인 모성들인 것인가.

주변의 내 지인들 중엔 다행히도 무조건 인서울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엄마는 없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고 자식의 깜냥따위 신경쓰지 않고 학원 커리큘럼 외우고 다니는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 하는 건 학부형들이고 학부형들음 학교와 사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시간만 보내며 말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부쩍 자라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여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평촌이라는 곳은 나름 내 기준에선 “사교육의 메카”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형편이 뭐 대단히 좋아보이진 않는다.
다들 학원비에 허덕이고 조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그래도 두 세개씩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체능등의 사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이 아이가 학교공부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어에 소질이 있으니 영어학원을 보낸다고 치자.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천성이나 기질은 정말 달라서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할 놈은 하고 안 할놈은 안한다.
공부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취미가 있는 놈도 있고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고 지적인 유희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머리쓰면 머리가 아프니까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꺼야. 라는 부모의 속단속에
아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죽어버릴 거 같애. 라고 울고 있는거다.

학원에서 영업상 하는 말 “이 아이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시키면 될 거 같아요.”
낚이지 마라. 그게 우리 학원을 면쭉 보내세요. 성적이 안 올라가면 아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러는거고 성적이 올라가면 우리 학원 덕분이예요. 라는 말이다.

공부나 성적 올리기에 취미가 있는 아이는 그 쪽으로 밀어주면 되고 그게 아닌 아이는 그 아이의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길을 터줘야 한다.

학교에서는 있는 교과목 자습시간으로 돌리는 개지랄 떨지 말고 정확하게 주어진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정말 어이 없었던 일 하나는 딸아이의 중3 때 담임이란 여자가 (선생이라 칭하고 싶지도 않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끝나면 전화기를 딱 꺼버리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니까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니 결국 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 3 아이들 입시 1달 전에 남편이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며 인사도 없이 학교를 사직했다.
이런 선생. 하루 빨리 그만둬 주면 고맙다.

아이들이 성적을 올리고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면, 모교를 아름답게 빛내는 게 아니라 교직원 이상 교장이나 이사장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것이니 남의 승진에 악용당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으나. ..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제발 말하지 마라.
우리가 문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가르치지 않았으면서 배우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아이들을 살펴보라.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답답한지,
내 아이가 수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많이 말하지 말고 많이 듣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내 새끼만 쳐다보니 말고 남의 새끼도 좀 쳐다보라.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가 있으면 불러서 휴지통에 넣으라고 말하라.
성적이 잘 나온 것을 칭찬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라.

젠장.
내가 지금 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는 이제 고2가 되고 곧 있으면 사회인이다.
난 이 아이가 지옥의 학창시절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리고 본인도 슬픈 시절을 지냈으나 무사히 목적지까지 거의 다 온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큰 아이의 졸업과 동시에,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간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안간힘을 쓰고 적응하려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답답하다.

학교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니들 밥그릇 생각 그만하고 일을 해다오. 일을.

5.

배틀로얄이 영화 같은가.
이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전쟁터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전쟁하는 게 좋으면 아프리카 내전지역 가서 자원봉사나 하든가.

201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