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죄

사람이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고 했던 건, 무학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게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공부를 한다는 건 적어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각성이 있는 양육자가 붙어있어야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이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불과 30-40년전만 하더라도 저학력이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양육자가 적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4-50대 중년여성들 중 고졸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을 간 여성들도 수두룩하게 많다.

무학이나 저학력의 약점은 고통스럽게 배우고 익혀본 경험이 적어서 배우는 힘이 약한거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공부도 해 본 놈이 잘 한다고, 남들 놀 때 어떻게든 탐구하고 책상에 붙어있어본 자는 일종의 짬밥이 생겨 다음 단계도 거기까지 못 간 사람보다 쉽게 넘어간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학습 숙련도가 높아지니 더 어려운 단계의 공부에도 접근하기 좋아진다. 그러나 학력의 기초단계 – 즉 초등학교 정도 – 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낑낑대고, 모르는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물어볼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 더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경우에서나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죄가 되는 경우는 권력을 쥐었을 때다.

그 말 한마디로 예산이 바뀌거나 누군가의 일자리가 사라질 때, 그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매달 받던 쌀 한 푸대가 두 달에 한 번씩으로 줄어줄 때, 권력자가 모르는 것은 죄가 된다. 책상에 앉아서 보고 싶은 서류나 들여다보고, 제 가족이 분통터졌던 일에 대해서 기관장을 불러서 되려 내가 갑질했냐고 협박이나 일삼는 자나, 나도 학교 다닐 때 국어가 싫었으니 지금도 영 교과과정이 별로일 거라고 확신에 차서 입을 놀리는 자는,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을 이미 쥐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침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되니까. 갈라치기와 혐오와 차별을 담아 떠들어도 당장 그 불손한 입을 가진 자가 어떻게 되진 않는다. 대중의 분노는 더디게 끓어오른다. 생계가 바쁜 경우도 있고, 그래도 권력자라면 나보다 많이 배웠을테니, 나보다 경험이 많을테니, 나보다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잘 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믿어주자는 선량한 마음과 귀찮은 마음이 뒤섞인다.

끌려내려오기 전에는 별로 불안감도 없을 것이다. 권력자들의 분노는 가볍고 하찮다.

모르는 게 죄가 되지 않은 경우는 알려고 할 때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모르는 것을 묻고, 현장의 소리를 듣고, 혼자 궁리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누군가 크게 소리치면 뛰어나가 물어보면, 모르는 게 죄가 되지 않는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모든 정치인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도 사람이고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는 착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쥐었을 때는 모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고 국가가 4대보험처리를 해준다면, 적어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해봐서 함부로 말하던 권력이 있었고, 아무 것도 안 해봐서 함부로 웃던 권력이 있었다.

권력을 쥔 정치인이 자기 세계에 빠져 제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며 잔소리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죄다.

이 이야기는 대통령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어느 기초단체 의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사고를 기다리는 일

내 사무실은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의 진출입로에 가깝다. 건물 뒷편에는 외곽순환고속도로의 고가가 보인다. 들고 나기 편해서 소규모 유통업체가 많다. 경수대로와 외곽순환도로를 맞대고 있는대신 지하철역이 멀고 안양천도 멀고 대중교통은 버스노선 한대뿐이라 임대비가 비교적 저렴하다. 건물1층에는 무인카페가 있고 바로 그 옆에는 무인카페의 1/4 정도 크기 사무실에 각종 자동차사고를 처리하는 업체가 들어와 있다. 우리 사무실의 절반만한 크기에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불은 늘 절반쯤 꺼져 있다. 가끔 주차 문제로 사무실 문을 열면 한 두명은 꼭 엉성한 포즈로 자고 있다.

근무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만해도 여덟 명쯤 된다. 이들 모두가 그 작은 사무실에 있는 건 아니다. 사무실에는 주로 한 두명이 있고, 두어명은 카페나 편의점, 차 안에 앉아있다. 더러 차 안에서 자기도 한다. 그 외의 사람들은 외근중이다. 업무특성상 이 사무실에서 쓰는 차가 여러 대다. 사무실 건물의 주차장은 총 8대를 대고 그 앞에 평행일렬주차까지 하면 11대 정도를 댈 수 있는데 이 건물의 사업장은 이미 12개가 넘으니 당연히 주차장은 늘 모자란다. 각 사무실별로 1대씩만 주차하는 게 규칙이지만 네 다섯대의 차를 가진 사무실에서 이걸 다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처리업체의 직원들은 한 두명을 빼고 모두 젊다. 대부분 갓 제대한 듯한 나이로 보이는데 대체로 키가 작다. 여름에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의미없는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네 고객님, 네 지금 위치가 어디쯤 되실까요.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라는 친절한 말을 내뱉는 이 청년들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고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 플라스틱컵을 그대로 놓고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담배를 끄고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철을 들고 주차해둔 차로 간다. 이들이 쓰는 승용차 뒤에는 ”교통사고 처리 업무 차량“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이 사무실과 연계된 카센터는 길 건너에 있지만 가끔 렉카차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 사무실에서 콜을 띄워주는 렉카가 몇 대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무실 부근에는 늘 서너 대의 렉카차가 서 있고 외곽순환도로 고가 아래에도 두어대씩 주차를 하고 있다. 현란한 치장을 한 렉카차가 사무실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어떤 렉카차는 신고번호가 444-4444다.

가끔 사무실이 꽉 차서 그런지, 한 두명은 차에서 의자를 제끼고 자기도 한다. 앞뒤로 서로 막아놓고 출차할 때는 차를 빼달라고 전화하며 사는 지라 가끔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하면 자다가 전화를 받은 목소리일때가 많다. 주차매너도 좋지 않다. 저들이 늘 시급하게 도로로 튀어나가야 하는 사정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협소한 주차장에서 적어도 두 세대쯤 대는 걸 모든 입주자가 이해하고 있다면 룰을 좀 지켜야 하는데, 자기 차 앞에 평행주차를 하지 못하게끔 일부러 차를 앞으로 길게 빼놓는 자도 있다. 수차례 얘기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종합하면, 이 사무실 하나로 인해 골목 전체가 교통사고 상시대기 상태에 돌입한 모양새가 된다. 주택가였다면 갈등이 더 심했을텐데 대부분 상가건물이고 2층부터 주거용 임대가 많아서 그럭저럭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다.

늘 피곤해보이는 이들이 기본적인 매너도 엉망이라 나는 이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전직 렉카차 기사가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잠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교통사고처리업체는 민간업체다. 렉카차의 경우 요즘은 도청 같은 걸 할 필요도 없다. 차 안에 모니터를 여러 개 설치해두는데 고속도로 CCTV몇 개만 돌려보면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요 며칠전처럼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그 이후에 강풍이 불거나 도로가 얼어붙은 날은 교통사고처리업체 직원들은 분주하다. 주차장에 업체 차량이 한대도 없으면 오늘 사고가 많은 날이라고 짐작한다.

우리도 거래처가 서울에서 안양으로 들어오는 길에 차가 퍼져버렸다고 연락을 받아 다급하게 이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멀리 여러 명이 여행을 가려고 렌트를 문의했는데 가격보다 훨씬 더 좋은 차를 가져다주어서 고맙게 쓴 적 있다. 그래놓고 주차문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들은 가끔 미워도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고, 내가 위급할 때 달려와줄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점이 이상하다.

왜 교통사고처리를 민간인들이 하는건가. 물론 교통사고보험을 사기업에서 책임지고 있으니 보험회사에서는 처리와 보상철차의 일부분을 계속 외부로 떠넘겨 외주의 외주를 확장하기 때문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왜 이들의 직업은 그 중요함에 비해 불법적, 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방치하면서 기본적인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험난한 노동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존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데, 이들은 경쟁해서 구조하고, 구난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신호를 무시하며 달리는 도로위의 무법자가 된다. 교통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한 밤중에 별 일이 없는데도 요란한 경광등을 켜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렉카차 기사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들은 정말 사고를 기다릴까. 사고를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걸까. 가끔 처참한 현장을 보기도 할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까. 어쨌든 저들이 하는 일은 공익을 위한 일인데 왜 경쟁하며 먹이를 낚아채는 하이에나처럼 살아야 할까.

국가는 왜 교통사고에 개입하지 않았나. 민간에게 저런 일을 맡기는 게 경제성장과 연관이 있는가. 만일 저런 일을 경찰이나 소방이 했다면, 저들이 경쟁하지 않고 신호를 무시하며 칼치기하며 달려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저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24시간 내내 대기하며 쪽잠을 자면서 누군가의 사고를 목격하고 카센터로 연결하고 정당한 노임을 받는 일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년 반동안 주차문제로 내내 모든 업체와 시비가 붙었던 이 처리반사무실은 내년에 계약만기라고 한다. 관리소에서도 주차때문에 골치아픈 눈치다.

전직 렉카차 기사는 유튜브 방송에서 직업에 관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건 시급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누군가 재수없게 걸려드는 노동이 되는건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 너무 많다.

포스트잇을 붙이다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서초에서 잠수교를 타고 넘어가는데 잠수교 북단 끝에 세 명의 남자들이 서 있는 걸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다. 낙엽을 치우는지 두명은 안전조끼를 입은 것 같고 안전관리자도 없고 경광봉이라도 흔들어야 하는데 차도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바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위치와 상황을 알려줬다. 결과를 듣겠냐고 물어서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겼다.

만두국을 사먹던 이태원시장 골목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살인사건이 있었던 옛날 버거킹 자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수북하게 쌓인 추모의 표식들은 비닐로 씌워놓았다. 비 바람이 예보되어 그런 모양이다. 추모공간을 지키는 경찰들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오래 전에 꽃집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았는데 지저분한 유리만 남은 공실이었다.

소방서 방향에도 꽃집이 없어서 일단 골목으로 올라갔다. 오래 전에도, 최근 몇 년 전에도 나는 이 골목으로 다니지 않았고 녹사평 방향의 두 번째 골목으로 주로 다녔다.

불법증축이 있었다는 해밀턴호텔의 벽은 추모의 포스트잇과 메모, 꽃과 인형 같은 추모 물품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 벽은 추모의 벽으로 남기면 좋겠다.

내가 가방에 들은 포스트잇을 꺼내 글자를 적는 사이 남편이 꽃을 사오겠다고 골목을 내려갔다. 카메라를 든 사내가 MBC에서 나왔다며 포스트잇을 붙이는 걸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사러 갔으니 조금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사이 용산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자원순환과 직원이라고 했다. 내가 다산콜센터에 전달한 내용을 확인하고 지점을 다시 물었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구청직원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눌렀다. 나는 구청직원에게 안전조끼도 모두 착용하지 않았던 것 같고 차도에서 일을 하는데 안전조치가 안 되어 있었으니 확인부탁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가 인터뷰도 가능하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했다.

– 오래 전에 여기 살고 일도 했었는데, 그때도, 최근에도 저는 많이 이용하지 않던 골목이거든요. 이 뒷길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이 골목으로 오지 않았다는 걸 알 겁니다.

– 길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안해야 하는데, 이 좁은 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희생되었다는 건, 지금 우리나라에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 MBC에서는 1029참사로 부르기로 했는데, 일부에서는 용산구나 책임의 소재를 묻기 위해 이태원참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재난은 우선 그 이름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사회적합의를 통해 호명을 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있어야 추도와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나는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듯이, 트라우마는 그저 안고 가는 역사의 일부가 될 뿐이다. 우리들의 세계와 시간은 수많은 재난으로 이미 뒤틀렸다. 구비구비 꺾어진 구간마다 억울한 죽음들이 깔려 있다. 기억하는 자들은 이 희생을 안고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기 삶의 끄트머리 단 한 톨의 공간에도 억울한 영혼이 내려앉지 못하게 혐오의 발언을 내 뱉는 자들의 비겁합과 비루한 마음과 두려움을 이해한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기억과 약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강남역 6번 출구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기억한다.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죽은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사발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얼마 전 신당역에서 있었던 스토킹 살인사건에도 포스트잇이 붙었다.

왜 우리의 추모는 벽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으로 끝나는가.

해가 뜨고 지는 사이 하루 하루 사람들이 까닭없이 죽어간다. 우리는 포스트 잇을 붙이며 이름없는 죽음을 밀어낸다.

– 용산구청에서는 자원순환과가 아닌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에서 신청건의를 처리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 이태원추모공간 자원봉사자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추모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itaewonmemorial.com/

침묵하라

행안부에서 내려온 지침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명시하고 위패나 영정은 놓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는 행안부 지침대로 진행했다가 시민항의, 의회의 문제제기로 갈팡질팡했다.

지방자치단체 즉 지방정부는 시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정당의 소속이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으나 공직자들은 단체장과 무관하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다.

사고 사망자 > 사고 희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안양시 (최대호시장, 더민주)

사고 사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군포시(하은호시장, 국민의힘)의 오늘 낮 사진이다.

거듭되는 항의로 행정안전부도 ‘사고 사망자’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1. 사회적 재난은 그 이름에 여러 의미가 중첩되기에 섣부르게 정부에서 공식화할 수 없다. 사건 규명이 되고, 가장 큰 책임이 누구인지 밝히고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름으로 명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가가 졸속으로 섣불리 참사의 이름을 바로 붙이거나 애도의 기간을 정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흔히 태안기름유출사고로 기억하는 사회적 재난의 정식명칭은 “삼성1호크레인-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다. 제주 4.3의 이름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2. 도로는 국가와 도시의 발전, 시민간의 소통과 산업을 위해 공공의 목적을 띈다. 따라서 도로를 관리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국가의 몫이다. 별도의 사유지가 없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이삿짐을 올리거나 내릴 때도 도로점유에 관한 허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에 특정한 가해자가 없다면 도로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도로의 안전과 관리는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의 책무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감정은 국가가 통제하거나 권한을 갖지 않는다. 현 정부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이다.

3. 이 도로위에서의 참사는 그 길 위에 서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죽이는 압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욱 비통하다. 고의로 목적을 갖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 길을 걸은 사람은 참사당일에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나의 몸 하나가 압력이 되어 누군가의 죽음에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생존자들이 있다. 이번 참사의 생존자를 각별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 참사는 그들 세대가 겪은 불도, 물도 아니었다.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없다. 그저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남은 이유를 말하고 떠들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4. 2-30년전, 세골목길이라 불렀던 해밀턴호텔 뒷길엔 가끔 살인사건과 폭력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길에 쌓이고 고인 수많은 피눈물을 떠올리며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10.29 경과

종합하면

● 사고 직전까지 112 신고는 79건.

● 참사 당일 양대 노총과 진보·보수단체 시위 등으로 서울 도심 곳곳에 81개 기동대, 경찰관 4천800여 명이 배치

● 사고 현장과 약 1.5km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근처 시위대 행진과 집회에 대비한 1천100여 명의 병력.

이들은 참사가 벌어지기 1시간 전쯤인 밤 9시쯤 시위가 끝나자 철수

●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137명 중 경비 및 안전 유지를 주업무로 하는 인력 0

● 마약단속 예고, 정복 경찰은 58명, 그 외 사복경찰

●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감찰하겠다며 위 내용을 11월 1일 윤희근 경찰총장이 언론에 공개

● 핼러윈때마다 이태원 상인들은 지구촌축제처럼 용산구에 해밀턴 호텔 앞 차도에 차량진입을 막아달라 요청, 그 외 안전조치 요구, 전날인 금요일에도 인파가 과도해 용산구청에 통제, 안전조치를 요구했다고 함. 용산구청은 묵살

● 2021년에 통제가 과도했다며 올해는 정복경찰을 줄여달라고 상인회가 요구했다는 일부 주장 제기됨.

● 용산구 핼러윈데이 대책회의 – 2020, 2021년 구청장 주도, 소방 경찰 참석, 2022년 부구청장 주재, 소방, 경찰 불참

● 최초 119 신고는 22:15. 119가 위치를 계속 물어 신고자가 답답해 함. 소방은 3분만에 경찰에 협조요청 – 경찰은 별다른 장비없이 인력 송출

● 모바일 통신상태 불량

● 소방이 23시 경찰에 교통통제 요청, 서울청 기동대가 자정 무렵 현장 도착

● 당일 사상자의 부상정도와 무관하게 병원에 분산이송, 이송병원의 거리 등의 기준 없음.

● 압사사건 발생은 22시 15분경으로 추정

● 정부발표에 따르면 22:15 상황접수, 25분 경과 후 22:40 대응, 22:43 대응1단계 발령, 23시경, 용산소방서장이 지휘권 발동, 23:13 소방청 대응2단계, 13:53 소방청 대응 3단계발령

● 사고 발생 이후 11시 45분경, 언론사 1차 보도와 동시에 SNS에 사고현장 사진과 동영상 유포

● 23:45 20여명 사상자 발생이라는 보도 발표

● 익일 00:33 해외언론 보도 시작

● 02:1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59명 사망, 150명 부상, 사망자 원효로 체육관으로 임시안치

●22:15부터 익일 00:56까지 약 100여건의 119 신고 접수

● 03:0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120명 사망, 100명 부상이라 발표

● 익일 실종신고 2300여건 , 정부 실종신고 전화번호 공개

● 10월 30일 – 정부, 국가애도기간 선포, 행정안전부 각 지역 분향소 설치 지침 전달, 참사 희생자 아닌 사고 사망자로 적시. 각 지역정당 거리 추모현수막 게첨. 민주당 이태원 참사로 명시, 국힘당 이태원사고, 핼러윈사고 등으로 명시.

● 11월 1일 11시 기준 사망 156명, 부상 151명으로 집계

● 11월 1일, 112 신고 녹취록 공개, 경찰청 시민단체 동향 파악 문건 유출

JTBC, 한겨레, SBS, MBC, MBN, 서울경제, 뉴시스, 연합뉴스 등 다수 언론사 보도 참고.

11월 1일 작성

제21회 안양시민축제 – 우선멈춤에 붙여

안양시민축제는 작년에 20주년을 맞았습니다. 20년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시민동아리가 참여해 무대를 빛냈습니다. 시민들은 한해동안 시민축제에 참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웃들과 기량을 갈고 닦으며 시민축제를 기다렸습니다.
코로나팬데믹 2년동안에도 시민동아리참여는 계속되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각 동아리의 공연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전문촬영팀이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화사한 조명과 무대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촬영한 영상이 평생의 추억이 되었다는 답도 들었습니다.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안양시민축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부터 기획한 “안양을 춤추게 하라, 우선멈춤”을 도시브랜드로 삼아 시민참여형 댄스페스티벌을 메인테마로 정했습니다.
시민동아리 참여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팬데믹 영향인지, 그간 연습을 많이 못했다며 참여 동아리의 숫자가 줄어들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시민동아리공연은 안양 평촌중앙공원과 삼덕공원 양쪽 무대에서 계속됩니다. 총 77개팀, 725명의 시민들이 공연자로 무대에 오릅니다.

올해는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많습니다.

  1. 포스터와 앰블럼을 전국대상으로 공모진행하며 시민축제의 개방성을 확인했습니다. 당선작이 없어 애석합니다만, 계속 도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2. 축제를 준비하며 시민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1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해주었습니다. 고견을 잘 검토해 축제에 반영되도록 노력했습니다.
  3. 단체와 시정홍보 부스 뿐 아니라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시민플리마켓을 처음으로 진행합니다. 안양외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습니다.
  4. 환경단체의 부스를 별도로 구성했고 친환경축제를 준비할 수 있는 시민서포터즈가 활동합니다. 기후위기와 축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5. 연성대학교 kpop학과재학생이자 프로댄서들 50명이 오프닝무대를 꾸립니다. 문화콘텐츠의 산학협력 가능성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 평촌중앙공원이 메인 행사장으로 꾸려진 것에 대해 만안구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향후 만안구만의 특색있는 스토리텔링을 더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되길 바랍니다.
  7. 안양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LS오토모티브에서 기업사회공헌 활동으로 시민축제에 부스를 마련해 바자회를 개최합니다. 이날 수익금은 안양시의 필요한 곳에 기부하며, 직원들의 헌혈등은 관내 종합병원에 기증합니다. 또한 한마음혈액원도 함께 참여해 홍보행사와 간단한 건강진단도 진행합니다. 기업도 안양시의 일원입니다. 안양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8. 수개월간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 이번 시민축제에서는 주류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시민축제에 걸맞게 건전하고 깨끗한 축제를 만들고 K-Culture의 대표축제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입니다. 안양시의 요식업, 상인회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9. 처음으로 학술대회를 엽니다. 축제 주제에 맞는 댄스포럼으로, 축제 전인 바로 내일 안양아트센터에서 연구자와 댄서들이 함께 모여 생생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10. 주 행사장에 38m의 오픈스테이지가 열립니다. 고퇴경의 랜덤플레이댄스와 세대를 아우르는 춤강습이 이틀동안 계속 진행됩니다. 안양 청소년수련관에서 처음 춤을 배웠다는 리아킴의 원밀리언 스튜디오에서 안양댄스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는 댄스나잇 DJ쇼가 안양평촌공원에서 열리고, 폐막 퍼포먼스는 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시민들과 함께 신나는 춤판을 펼칠 예정입니다.

이번 축제에 유명댄서들과 댄스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 인파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민축제추진위원회의 위원들과 시청직원들이 상시 대기하며 안전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년동안의 팬데믹 이후, 수많은 음향, 무대, 공연관련 업체가 도산했습니다. 물가는 올랐고, 업체는 줄어들었고, 축제와 행사는 늘어났고, 예산은 그대로라, 안양시민축제를 준비하는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담당부서가 많이 고생했습니다. 몇 명 안되는 인원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준 사업부와 최태규 축제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양시민축제는 9월 23일 금요일 저녁 개막을 시작으로 25일 일요일 저녁까지 진행합니다. 저는 23일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안양평촌중앙공원과 삼덕공원을 오가며 상주하겠습니다.

처음 기획위원장을 맡아서 부담도 되고 많이 설레입니다. 모쪼록 안전하고 신나는, 즐거운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댓글에 시민축제 홈페이지를 링크해두겠습니다. 주변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알려주셔도 좋고, 페친들도 환영합니다. 그럼 스물 한 번째 안양시민축제에서 뵙겠습니다.

안양시민축제 기획위원장 이하나 드림

힌남노가 남긴 것

포항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생존자가 주차장 입구까지 나와 제 두 다리로 선 것을 본다. 

1996년, 삼풍백화점 지하에서 들것에 실려나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물에 떠다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소떼도 떠오른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주, 주말을 지나 월요일 낮 하루종일 태풍뉴스가 미디어를 뒤덮었다. 

SNS에도 역대급 태풍이라니 걱정하는 글들이 그득했다. 지난 번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강남역이 침수된 이미지가 강렬했던 탓으로 봤다. 대책없이 당했던 것이 불과 한 달전이니, 이번에는 대체로 대처하자는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제주부터 시작되는 태풍의 경로가 시시각각으로 보도되었다. 각 언론사는 오래 전의 뉴스클립을 꺼내 재편집해서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매미와 치바때의 장면과 일본을 지난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연달아 재생되었다. 

포항의 지하주차장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몇 건 봤다. ‘지하주차장이 잠기고 있으니 차를 빼라’고 방송했다는 관리사무소의 소장에게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도한 모양이다. 관리소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더 말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한 것 같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처음엔 주차장이 괜찮은 것으로 봤다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차를 빼라는 방송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물이 얼마나 빨리 불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나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관리사무소는 보통 9시쯤 출근한다. 전날 태풍이 올라온다 하니 누군가 철야근무를 했을 수도 있다. 그 외의 시간엔 관리직으로 바뀐 아파트경비원들 등 야간조가 남는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뺐을 경우 그 많은 차가 밖으로 나와 빚어질 혼란이 걱정되었을 거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차가 침수되었을 경우에 책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주민들의 재산에 손실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일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일때, 사람은 10분 후를 예측하지 못한다. 게다가 아파트 옆의 개천은 수년간 물이 흐르지 않은 건천이었다. 물이 그렇게까지 들어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방송으로 누군가 사망하고 누군가 다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부담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을 맞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포항시는, 재해대책전문가들은 천이 범람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태풍에 대한 이야기는 3일 전부터 있었다. 그 주변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면, 지하에 들어가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없었을까. 월요일이 되는 새벽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시간이니,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걸까. 이미 몇 년동안 메말라 있던 건천에 물이 차고 넘쳐 아파트까지 밀려들어올 거라는 예상을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었을까. 

마른 땅에 물이 흐르고 그 물이 넘쳐 10분만에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나 예측능력이 뛰어난 현명한 사람이나 가능하겠다. 지하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오는 장면을 찍은 블랙박스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한 대의 SUV차량이 갈 길을 헤매 머뭇대는 사이에 2분이 지났다는 기자의 해설이 붙었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재난 그 자체를 책망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망실에 대한 격분을 쏟아내기 위한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언론은 이때 사람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 주고 조회수를 올려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파도를 찍던 유튜버나,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냥감이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이라면, 언론이라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황망함이 건강한 비판으로 승화되고 정당한 분노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게이트키퍼라는 이름은 이론과 교육에만 남았다. 

티비에서 재난을 생중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여름이면 동생과 나는 하루종일 티비를 켜놓고 재난방송을 봤다. 나의 모친은 그 특유의 성격과 정서적 문제 때문에 ‘다 떠내려가라’는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재난방송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우리를 위로했고, 곧 눈앞에 닥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잠시 잊었다. 나는 8월 말에 태어났고, 내 동생은 9월 말에 태어났다. 내 생일과 내 동생의 생일 사이에 수많은 태풍이 오고 갔다. 멍하니 재난방송을 보고 있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세상 모든 것 앞에 무력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때, 물이라도 쓸려와 강바닥을 뒤집어주길, 못된 것들을 밀어내길, 세상을 바꿔주길 바랐던 어리석은 마음. 그 마음들을 모여 어디로 흘러갈지는 각자의 마음에 도사리는 삶의 무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재난을 생중계하는 며칠간, 새로운 포르노그라피를 본 기분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댓글을 먹고 무서운 파도를 보여주고, ‘잘 대처해야 한다’라는 뻔한 말만 지껄이면서 공포를 팔아 덩치를 키우는 시대. 기후위기만큼이나 무서운 세상이다. 

더좋은안양기획단 활동소회

한달 반동안 민선8기 시정공약을 점검하는 “더좋은안양기획단”으로 활동했습니다. 각계전문가로 9인으로 구성된 “더좋은안양기획단”은 8월 31일로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성별비율과 연령비율의 아쉬움이 전달되었으니 향후 모든 위원회 구성에 지적사항을 잘 반영해 구성하기 바랍니다. 기획단은 172개의 공약사업을 점검하고 정리하며, 공약내용변경, 명칭변경, 통합, 추진 로드맵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기간에 속성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시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행정이 해야 할 일이 세밀하고 어렵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면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에서 제가 주력했던 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정책제안을 점검 정리하여 행정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전 제안한 정책제안을 행정에서 이해하고 추진계획을 세우기엔 어려워서 모든 정책제안을 사업화계획으로 구체화시켰는데 다행히 정책제안단과 행정기관 모두 동의가 있었습니다. 향후 각 정책제안의 핵심사업은 주요과제로 다루어 단계적으로 시정에 반영될 예정입니다. 이번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행정이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민사회의 단어는 때로 모호하고 추상적입니다. 행정의 언어는 그에 비해 실체가 분명하고 로드맵이 선명해야 합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데 많은 분들의 동의와 협조로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안양시는 수십 년째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이 화두입니다. 실질적으로 만안구 지역에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원도심의 한계로 시민들이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기획단뿐 아니라 안양시민축제 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만안구 주민들의 불만도 많이 들었습니다. 만안구는 안양의 기원이며 시작입니다. 향후 안양시의 시정방향은 만안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주력하길 바랍니다. 만안구는 동안구가 갖지 못한 유무형의 자산이 많습니다. 이 자원을 한데 묶어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지역으로 발돋움하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악성민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합니다. 안양시는 행정과 시민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습니다. 시정에 개입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이 직설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공직자를 보호하는 방법이 없어 행정수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차후 관련 조례 제정 또는 직원보호에 관한 원칙, 보다 폭 넓은 거버넌스 구축과 공론화과정으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안양시민들의 욕구는 다양하고 구체적이나 다소 편협합니다. 주민조직을 갖추어 진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합의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민원과 특정 집단의 요구로 인해 시정방향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지방정부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안양시는 지속적인 인구감소, 고령화, 산업기반유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예산투입은 늘어나고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양시는 이제 대도시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환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을 통해 공직자들이 보다 많은 복지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지역을 위해 애쓰는 공직자들과 더불어 잘 사는 도시를 위해 관심 갖는 시민 모두의 힘을 더해 안양다운 안양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저도 힘 보태겠습니다.

민선8기 더좋은안양기획단 위원 이하나

있는 그대로

안양천 생태이야기관 사이트에는 ‘경기남부 안양부근의 왕곡천, 오전천, 당정천, 산본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삼봉천 등 많은 지류가 안양천에 합류한다’고 적혀 있다. 안양시와 접하고 있는 의왕시의 백운호수쪽에서 학의천이 시작하고 이 학의천이 안양시의 중심부, 쌍개울이라는 곳에서 안양천을 만난다. 이 안양천은 안양시를 관통해 서울로 향한다. 광명시를 지나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 양천구에 이르면 서울이다.

내가 안양이라는 지명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때 엄마의 지인이 반월공단에 공장을 연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른들이 안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에는 안산이라는 지명이 없었는지, 안양 인근 지역을 안양이나 반월이라고 했다. 미군부대가 점령한거나 다름없는 의정부에 사는 사람들이 안양을 지칭하면서 안양깡패가 무섭다는 둥, 안양천 물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똥물이라는 등, 살기 어려운 동네라고 하는 걸 듣고, 안양이라는 동글동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삭막한 곳이라고 상상했다.

안양은 일제강점기에도 각종 산업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후 60년대 산업발달기에 공업지구로 각광받으며 각종 공장들이 들어선다. 먼저 섬유공장들이 들어섰는데 대표적으로 동일방직 공장도 있었고, 이어서 제지회사들도 천변을 따라 있었다. 약품회사도 꽤 많았다고 한다. 지금 평촌의 스마트스퀘어가 된 곳에는 대한전선이 상당히 큰 부지를 차지했다. 안양에 일자리가 많아지자 직장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마을을 확장하면서 도시가 팽창했다. 언급한 섬유, 제지 공장들은 안양천과 수암천, 학의천을 따라 줄 지어 섰다. 당시 산업폐수나 환경오염에 한 인식이 척박하던 시절, 이들이 하천을 따라 공장을 건설한 것은 물을 끌어쓰고 버리기 좋은 환경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폐수들이 안양천을 뒤덮었다. 증언에 의하면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정도는 아니었다’고도 하는데 뜰채로 물을 건져 햇빛에 말리면 슬러지가 생겨 종이벽돌을 만들 수 있었다는 증언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오염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1990년대 초반 신문기사를 보면 한강의 지천 중 최악의 오염도라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안양천은 90년대에 들어 환경운동가, 시민들, 안양시청의 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안양을 찾는 외지인들이 놀라워 할 정도가 되었다. 간헐적으로 공사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천변의 한쪽은 자갈과 흙이 그대로 살아있는 둘레길로 놔두고 한쪽에만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해두었다.

내가 안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5년이다. ‘안양천 똥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힌 채였다. 둘러보는 안양천은 대체 어디가 똥물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지와 안양천을 즐겨 걸었고, 징그럽게 많아지는 잉어떼를 보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고, 왜가리가 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을 괜히 숨죽여 구경했다가 감탄사를 쏟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이 왜가리가 어쩐 일인지 안양천과 꽤 떨어진 우리 집 베란다에 날아들었다가 휙 떠난 일도 있었다. 상상도 해 본 일이라 꽤 놀랐지만, 어쩐지 상서로운 일 같아서 으쓱하기도 했다.

안양천의 생태복원은 안양시의 자랑거리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이 넘치는데 하천과 도시의 경계가 꽤 움푹하다. 어제 폭우로 일부 피해구간은 있으나 안양천 전체가 범람하진 않았다. 천변이 잠길 정도로 비가 오면 안양시에서는 방송을 내보내고 문자를 보내 천변에 주차한 차들을 이동시키라고 사전에 예보한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쓰기도 하니까. 여름마다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은 한 번씩 범람한다. 둑을 매우고 잡풀들이 쓸려 내려간다. 이렇게 한번식 바닥을 쓸어주고 자연스럽게 생태가 복원된다고 한다. 내가 안양천을 지켜본 게 벌써 17년여가 되었는데 그 사이 안양천에 산다는 생물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이전에는 하천 범람으로 상습침수구역도 있었으나 그 횟수나 정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서 수해가 났을 때, 나는 굽이치는 안양천을 보며, 저렇게 내버려두는 척 하는 것이 안양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양시정에 관해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안양천에 대한 시의 정책은 늘 동의하며 칭찬해왔다. 학생들에게 안양의 역사를 설명할 때도 안양천 살리기 운동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안양천은 사실상 안양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들의 마을환경개선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안양천에 자꾸 뭘 만들어달라고 한다. 천변에 운동시설을 더 만들어달라, 조명을 더 밝혀달라, 길을 넓혀달라, 자전거도로를 확장해달라, 심지어 학의천과 쌍개울이 만나는 곳이 자전거 쉼터를 만들어달라고 하거나, 공연장을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한다. 저런 이야기를 멀쩡한 자리에서 듣고 있으면 4대강 사업은 이명박 혼자 추진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가뒀다 풀었다 옥죄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시민들의 요구를 다 반영한 게 수년 전 의왕시의 학의천 구간이었다. 학의천은 안양시 평촌동과 의왕시 내손동의 경계에 있다. 안양시와 의왕시의 경계에서 양쪽을 둘러보면 확연히 달랐다. 의왕시 구간은 반듯반듯하게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널직하게 구현되어 있고, 시민들이 모여서 공연을 보거나 운동을 할 곳도 많다. 이에 비해 안양시 구간은 투박해서 마치 방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구간을 지나는 시민들은 ‘안양시 공무원들이 일을 안한다’고 비난하는 것도 많이 들었다.

시민들이 조명을 밝혀달라 하면, 물고기도 자야한다고 대답하고, 안양시의 자전거도로를 넓혀달라하면 자전거에서 나오는 분진도 안양천을 망치는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공직자들도 있었다. 올해들어 안양천에 경관조성을 한다고 조명을 만들어붙이고 번쩍이게 만드는 걸 보고 마뜩치 않았다. 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해명이 있었고 이를 반기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자전거 도로를 넓혀달라고, 공연장과 체육시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계속되었다. 언젠가, 공무원이 질 것이다. 저렇게 자기 집 앞에 뭔가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요하다. 언젠가, 공무원은 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생각했다. 지고 말 것이라고.

이번 폭우는, – 폭우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도 하지만 – 안양에도 피해가 있었다. 안심하고 있던 신축아파트단지나 저층 다세대, 빌라주택에도 물이 차 올랐다. 도시를 만든 것은 인간이고 그 안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수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재해가 어찌 100% 자연재해겠나. 건들지 않았으면, 사람이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산을 깎고 들을 밀어내고 물길을 틀어서 도시를 만든다. 그 도시 안에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겠다고 선언하며 산 허리를 베어내고 물길의 무릎을 쳐냈으면 그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마구잡이로 자를 대고 죽죽 선을 그어 만든 도시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그나마 남아있는 물줄기와 그나마 버티고 있는 나무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물은 때때로 넘쳐야 한다. 그게 자연에 속해있을 때는 그렇다. 그러나 물줄기를 꺾어 인간을 불러들였으면 넘치는 물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치수하고 정치할 일이다. 자연에 빌어 도시를 만들어 산다면 어두운 물가에 불을 밝히지 말 것이며, 나무의 머리통을 잘라내지 말 것이며, 산의 심장을 도려내지 말 일이다. 매일 매일 환경을 파괴하며 산다. 내가 도시에서 쉬는 만큼, 도시를 지키는 이 하천도 마땅히 쉴 권리가 있다. 지켜왔던 자존심, 생태하천이라는 말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누구라도.

사진: 2022년 7월 30일 21:42 학의천 안양구간

내게 무해한 사람- 우영우

막상 회전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 문이 휙휙 돌아가는 리듬에 맞추려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고 있는 우영우를 보면, 길을 막고 섰다고 화를 내며 슬쩍 밀치고 지나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 이 땅은, 어설프고, 느리고, 둔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장애인 등급에 따라서가 아니고, 부족한 것, 느린 것, 어설픈 것을 쉽게 혐오한다.

이 사회에서는 어설프고, 느리고, 둔하면 쉽게 낙오한다. 이 나라에서는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혐오할 수 있다.

낙오자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데굴데굴, 굴러떨어질테니까, 그걸 잊고 살려고 간신히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너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굴러떨어지는 너를 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기억해내야 하니까, 그래서 더 힘을 내야 하니까.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거, 어차피 다 빤히 아는데. 내가 갖고 태어난 게 이것뿐이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80정도인데, 어떤 놈은 노력하는 힘 자체가 다르게 태어나서 조금만 페달을 밟으면 1200까지도 간다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잊고 있는데.

내 앞에서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짓을 하면, 당신이 낭떠러지에서 곧 굴러떨어질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신에게 손을 내밀지 못할 것이고, 이 무서운 세상에서.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거 싹 다 잊고 버텨야 하는데.

왜 자꾸 내 앞에서 문 하나 똑바로 못열고, 왜 내 앞에서 계산대 위에 펼쳐진 물건을 빨리 빨리 주워담지 못하고, 왜 내 앞에서 길을 막고 서서,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죽게 된다고,

왜 자꾸 나에게 무서운 사실을 각성시키냐고.

그러니까,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당신을 미워하지 않지만, 혐오한다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그만큼 약하고 힘들고 애타는 사람들의 혐오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회전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존경하지 않아도, 그냥 따라가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무해하지 않아도, 살아남으려면.

그러니까, 당신의 그 둔한, 어설픈, 느린 행동으로 이 세상의 잔혹함을 내가 다시 각성하게 만들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힘껏 혐오하는 땅, 여기에, 갖은 모양의 구름이 보기 좋게 떠 있던 하루였다.

사람들은 구름을 보며 고래 모양을 찾는다. 고래를 찾으며 우영우를 떠올리겠지. 완전히 무해한 장애인 우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