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경비노동자 집단 실직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1. 3월 1일자로 안양시 동안구의 모 아파트의 경비원 16명이 집단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 아파트가 경비업체를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2. 경비업체 변경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나, 동대표단과 같은 아파트주민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합의해 결정한다. 물론 주민들의 투표를 받기도 하지만 주민들은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니, 특별히 아파트운영에 관해 관심있는 입주민이 많지 않은 이상, 대체로 대표자들이 “경비업체 바꿀려고 하는데 동의해주세요” 라고 엘리베이터에 공지를 붙이거나 경비초소에 명부를 갖다두면 대부분 동의서명을 해준다.
    때로, 경비업체의 방만한 운영이나, 아파트입주자대표자들과 심한 갈등이 생겼을 때 입주민들이 나서서 변경하자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아파트관리업체들은 요령껏 다음계약도 이어서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3. 아파트관리는 주택관리용역업체와 경비업체가 겸하는 경우도 있고 분리되는 경우도 있다. 관리용역업체는 관리사무실에 직원을 파견하고 경비용역업체를 선정해 하청에 하청을 주는 구조가 된다. 최근에는 관리용역업체가 경비업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업종이야 추가하면 될 일.
    그렇다 보니 이 용역업체는 아파트와 계약을 맺어야 직원을 파견할 수 있고, 그래야 직원의 급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상시고용을 해봤자 손해다. 계약을 따면 그제서야 사람을 채용해서 내보내면 된다. 그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맞는 체계다.
  4. 아파트 입주자들이 직영으로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는 형태가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과천에 이런 직영 아파트가 많다. 입주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시민의식이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평가하는데, 내가 보기엔 “집주인들이 많이 살아야” 가능한 얘기다. 세입자들이 더 많은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세입자도, 거기 살지 않는 집주인도 직영구조에 동의할 리 없다. 쌍방모두 무관심이 답이다.
  5. 경비원 16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 관리경비업체(이하 업체라고 하겠다)변경은 아파트 입주자대표들과의 계약이다. 새로 계약을 맺은 업체는 이전에 일하던 경비원의 고용승계를 할 의무가 없다. 새로운 업체는 자기가 고용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 업체에서 고용했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이전업체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6. 결과적으로 경비원들은 집단으로 일자리를 잃지만 사실상 “해고”라 볼 수 없다. 계약이 종료된 것이다. 경비원들은 고용이 아닌 계약직이기 때문에 “계약해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경비원들의 계약기간은 최악의 경우 1개월이고 3개월, 6개월, 12개월로 나뉜다. 2020년 경기중부아파트경비노동자 지원사업단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안양과천군포의왕 4개 시의 326개 단지를 방문해, 근로계약기간에 대해서는 291개 단지의 상황을 파악했는데 그 중 3개월 계약기간이 40.5%였고 (총 118개 단지), 그 중 안양시는 45%에 육박했다. 1년 이상의 계약기간을 유지하는 곳은 291개 단지 중에 48.1%였다. 1년 이상 계약인 곳이 3개월보다 많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지속적인 업무가 필요한 아파트경비직이 3개월 단기계약이라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아무 때나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미다.
  7. 아파트경비직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자계약갱신기대권”이라는 것이 있다. 사전에 계약해지(즉 해고통보)를 하지 않는다면 자동적으로 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인권보호의식이 담긴 권리이다. 최근 경비용역업체는 경비원과의 계약서에 “계약갱신기대권이 없음에 동의합니다”라는 항목을 넣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
  8. 2월 24일 오전, 경기중부아파트노동자협회가 이 아파트의 계약해지 집단실업 사태를 듣고 대책강구에 나섰다. 여러 곳에 기사를 보내고 정부기관과 면담하고 아파트입주자들과의 접촉도 시도할 것이다.
    경비와 용역업체들이 안양군포의왕과천지역에 “경비들 조직이 생겼다”고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업체들은 “경비들 조직”을 압박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9. 하지만, 신규업체에게 “고용승계의 의무가 있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신규업체는 자기들의 권리를 훼방놓는다고 할 것이다.
  10. 하청의 하청을 주는 사회구조는 개인을 공공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사적인 존재로만 머물게 한다. 공적인 인간,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라 그저 내 생활만 안전하게 유지하면 되는 존재가 된다. 결국 본인이 사회에서 도태되었을 때도 여전히 개인으로 남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먼지같은 존재가 된다. 이 말은 파커 J, 파머의 철학에서 빌려왔다.
  11.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아파트입주자 – 용역회사 – 경비원까지 3자가 모두 갈등에 휩싸인다. 아래에서 개싸움이 벌어지는 꼴이다. 승자는 없다. 모두 상처만 남는다.
  12. 아파트경비원의 고용승계는 “늙고 힘없는 아버지같은 사람들이 일자리도 잃는다니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보장해야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옳지 않다. 지속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가 되고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구조가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한 것이 세상의 규칙이 되면 우리 모두 부정해진다. 나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으로 살다 죽기 위해, 경비원들의 부당한 고용현실을 부정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경비원들은 늙고 힘없고 아버지같은 사람도 아니다. 경비원은 엄연한 직업인이다.
  13. 건조한 시선이 때로 명료하다고 생각한다.
  • 사진은 오늘 해당 아파트의 경비노동자들이 아파트 곳곳에 붙이고 있다는 전단이다. 해당 아파트는 20개동 1천여세대, 20년된 아파트로, 최소평수 30평형대부터 60평형대부터 있다. 평당 2천만원 정도로 거래된다.

관련기사 : http://www.mediapi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395

우수출판콘텐츠 지원사업 – 9억원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우수출판콘텐츠 지원사업”을 한다. 올해 들어 주변에 작가, 출판계 사람들이 많다보니 페친들을 통해 이 지원사업에 응모하는 분들을 많이 본다. 출판사가 지원하는 게 있고, 작가 개인이 지원하는 게 있다.
사실 나도 냈다.
암튼. 그렇게 지원선정되기 어렵다는 페친들의 토로를 계속 봤다. 며칠동안 봤다. 몇 년째다, 이번에도 안되겠지, 내가 성의가 부족했다, 내년엔 더 잘 써서 내야지.
근데 왜 다들 안된다고 할까.

기사를 검색해보니 2017년에 이 사업은 거의 로또 당선 수준이라는 논평이 실린 게 하나 있다.
지원사업 선정자는 (올해기준) 작가에게 300만원, 출판사에게 600만원의 제작지원금을 준다. 뭐 대단히 많은 돈도 아니지만, 늘 자금난에 허덕이는 출판사나, 1년 인세 19,000원 받는 작가에게는 고마운 돈이다.
올해 지원자가 얼마나 될 지 모르지만, 2017년에는 2500편 정도 응모했다고 한다. 지금 지원자들은 약 2천 편 이상이 응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서울의 어느 지역의 제본소는 계속 이 응모작을 제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올해 사업계획안은 다음과 같다.

■ 2021년 추진내용
◎ 지원자격 : 대한민국 국적의 개인 또는 출판사
◎ 지원분야 : 인문교양, 사회과학, 과학, 문학, 아동
◎ 지원대상 : 미 발간 국내 창작 원고(‘21.11.30.까지 도서로 발간 가능해야 함)
◎ 지원규모 : 총 100편, 편당 900만원(출판제작지원금 600만원+저작상금 300만원) 지급

  • 전체 선정편수 중 30%(30편) 이상 1인 또는 지역출판사, 청년(저자 또는 기업대표) 응모작 선정
    ◎ 추진절차 : 사업 공고 및 접수(2월) → 심사·선정 및 협약 체결(3~5월) → 선정작 도서 발간 및 유통(6~11월) → 선정작 홍보(12월)

자, 그러면 이 사업의 총 예산은 9억이다.
사업수행하는데 드는 제반비용까지 해서 10억이라고 치자.
전국에 있는 출판사와 작가들이 1년을 기다려 여기에 응모한다면, 이 사업의 예산을 늘려야 하지 않나?
100억도 아니고 꼴랑 10억이다.
전국단위 공공사업에서 10억은 하찮은 돈이다.

다른 부처의 사업단위와 좀 비교해보자. 1천만원도 안되는 돈 주고 생색은 난리도 아니다. 책에 여기저기 딱지붙고 모두들 이 사업을 주목한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저희가 지원받은 예산이 없어서” 라고 한다면, 국회 상임위를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야 할 거 아닌가. 돈을 더 내놓으라, 이렇게 전국에서 들썩이는 사업이 없다. 경쟁율이 20대 1이 넘는다 등등. 국회가서 좀 드러누우면 안되나?
여기저기 오피니언 리더들이고, 신문의 칼럼 쓰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이 전체 예산을 현실성 있게 안 늘리나?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체육관련 오만 데 다 건드린 최순실도 손 대지 않은 업계가 출판계인데 (왜겠나. 자금 규모가 너무 하찮으니 안 했겠지) 얼마 안되는 돈도 무조건 감사합니다. 떨어지면 내가 잘못했겠지. 라고 반성하며 그래도 작년보다 1억 올랐으니까, 그래도 작년보다 더 뽑네 하며 기다리는건가.

아 고구마 백만개.

올해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장은 도종환이다.
출판과 작가에 대해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사람.
다 같이 가서 드러눕자.

2021. 2. 24.

[기고]귀신이 하는 일

온라인 시대, 보이지 않는 비대면 노동에 관하여

2020년, 코로나19의 감염에서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의 절반은 사업계획서를 수정하는 일이었다. 그 중의 절반은 담당자에게 비용산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하는 일이었다. 

“온라인인데 왜 더 비싸요?”

“장소대관 안해도 되는데 이렇게 돈이 들어가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실시간 하시면 되잖아요”

“유튜브에 일주일에 한 건씩 업로드하면 되지 않나요? 애들도 한다던데”

“왜 꼭 해외 사이트를 사용하려고 하시죠? 국산 화상채팅앱도 있다던데요”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한 사람들의 80%는 공무원이었고, 정부지원자금을 받아 1년짜리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20% 정도 된다. 1인미디어의 시대, 4차산업혁명의 시작이라는 주제어가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꼬아놨는지 확인했다. 그 실타래를 푸는 작업으로 상반기가 다 지나간 셈이다.

“모바일 기기로 유튜브 실시간 방송을 시작하려면 일단 방송할 채널의 구독자 수가 1천 명이 넘어야 합니다. 계정도 없으시다고요? 유튜브로 송출하려면 발언자 소리가 잘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행사를 제대로 촬영하려면 적어도 3대의 마이크와 3대의 카메라와 이 기계를 잡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편집은 소프트웨어로 하지만 결국 사람 손이 갈 수밖에 없어요”라는 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정보와 콘텐츠의 소비자가 될 수 있고 생산자도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누구나 계정만 가지면 방송도 할 수 있고 책도 펴낼 수 있다.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나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사람들이 볼 만한 내용을 구성할 기획력이 있어야 하고, 그 기획에 따라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며,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살려낼 수 있는 기계와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기계의 힘을 빌려야 한다. 누구나 접근은 가능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의 품질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없다. 기계와 기술만 있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시간 송출이라는 건 안정적인 통신환경이 필요하다. 일정한 데이터가 기복 없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비슷한 용량을 가진 화면이 보이지 않는 통신선을 타고 내 눈앞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만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저 모든 장비와 기계와 통신선이 필요없이 한 장소에 모여 앉으면 되는 일이니까. 마이크를 굳이 갖다 놓지 않아도, 카메라 두 세대가 각도를 달리해서 따로 찍지 않아도, 통신선을 끌어와 장비에 연결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마이크가 없을 때는 듣는 사람은 귀를 기울이거나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면 되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성대와 배의 힘까지 이용해 소리를 키울 수 있는 만큼 더 큰 목소리를 내면 된다. 카메라가 없어도 고개를 돌리거나 잠시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으로 내가 원하는 각도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신체는 이다지도 위대하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던 것을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와 복원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투입되어 숙련된 기술과 비싼 장비를 써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온라인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지치기도 했다. 나름대로 어떤 사람들은 잔꾀를 부려 비용을 절감하거나 필요한 장비를 축소해서 진행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그에 응하기도 했으나 하반기로 갈수록 나도 배짱을 부렸다. “네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해요. 그렇죠.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요. 네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합니다. 안됩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19의 전염이 다음 해에도 지속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각종 행사의 온오프라인 병행은 2020년을 기점으로 자리 잡을 거라 판단했다. 초기에 시작되는 일들의 기준을 잡아둔다 해도, 일은 반복되면서 폄하되고 훼손되기 십상인데 조금 더 강력한 규칙을 적용해야 융통을 발휘할 범위도 생기지 않겠는가. 

기준이 없이 온라인 행사와 교육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다 보니 각 예산집행처의 담당자 권한도 강력해졌다. 담당자가 온라인 행사에 투입될 비용의 산출근거를 이해하면 결정권을 가진 상사의 결재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예산집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담당자는 온라인 회의 툴을 왜 미국산을 쓰냐면서 국산도 있다고 “국산품애용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공기관에서 해외결제를 용납해줄 리 없다고 체념한 어느 단체 담당자는 개인사비로 유료버전을 구매해 시비를 마무리했다. 

특강이나 교육프로그램 강의 섭외때에도 녹화했다가 쓰면 안되느냐는 질문이 빗발처럼 들이쳤다. 녹화영상을 어디에 배포할 것이며, 어느 플랫폼에 업로드할 것이며, 언제까지 사용할 것인지 계약서를 쓰고 얘기하면 모두들 없던 일로 하자고 말을 바꿨다. 녹화영상은 상호소통이 없어서 임기응변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온라인으로 전환해서 성공적인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곳도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그림은 방송국에서나 가능한 모습이었다. 

온라인시스템이 기계화되었다고 해서, 어플에서 모든 걸 해준다고 해서, 그걸 작동하는 사람이 카메라 뒤에 서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들 모든 걸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얘기한 기계와 기술이 필요 없이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대부분 해결되는 인체의 신비를 이해하지 않을뿐더러, 화면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스텝들과 실감이 나는 영상을 찍기 위해 동상과 열사병, 근골격계 질환을 감수하는 제작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에 올라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부를 때, 무거운 등짐을 지고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허술한 옷차림으로 걸어 올라가는 셰르파들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명 아니었을까. 

소프트웨어 하나를 만들려면 수많은 협업과 지난한 노동이 필요하다. 심심풀이로 했던 게임의 오류를 잡아내느라 밤을 새우다 죽어가는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소리 없이 사라질 때, 콤마 하나 더 찍어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홈페이지 때문에 애먼 상담원에게 분풀이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기계나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는 종사자가 아닌 이상 다 알 필요도 없고 다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변치 않은 단 한 가지 원리까지 무시하면 곤란하다. 2020년에 내가 접한 저 많은 황당한 질문은 모든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무시한 태도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된다는 게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계화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숙련된 노동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기계가 고장날 경우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없는 관리자들만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만든다. 기계는 오류가 나기 마련이다. 기계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원활하게 작동하며 그 가치를 빛낼 수 있다. 무대를 설치하고 의자를 깔고 내빈석이라는 글자를 출력해 종이에 붙이는 것만이 노동으로 보인 것일까. 촬영을 한 뒤 편집을 하고 업로드를 하는 것은 귀신이 하나? 

우리의 시공간을 연결해주는 작업은 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서 행사장에 앉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보이지 않는 타인의 노력만이 앉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덜 움직여도 되는 편리한 개인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노동을 깔고 앉아 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편리하고 빠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켜켜이 쌓여가는 소리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귀신같이 일한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사용자가 고개를 들어봐도 몸을 일으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말아야 한다. 

인류가 처음 기계로 영상을 봤을 때, 귀신의 짓이라 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노동들을 귀신으로 취급하며 2021년을 맞았다. 노동자는 이름이 있다. 그들의 노동은 귀신놀음이 아니다.

한국노동 기관지 노동과 희망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news.inochong.org/detail.php?number=2893&thread=22r07&fbclid=IwAR3LYyciM4Y2bev1LTRYcGohTPVsk6y6ywSKwcQBi12uh9bEOU5OT9BANPU

좋은 날 다시 오면

1.

아침일찍 욕실공사를 맡은 업체 사장님이 와서 콜타르와 비슷한 방수액을 바르고 갔다.
새벽까지 이제훈, 최우식, 박정민, 안재홍이 나오는 <사냥의 시간>을 절반정도 보다가 잤다. 첫 장면에 황폐해진 서울의 소공로가 나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저 풍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길 건너 목욕탕은 찜질방에 없어 한 번도 안 가봤다. 들어가니 매표소에 사람은 없고 무인발권기가 있었다. 아무리 코로나시대라도, 매일 목욕탕을 들르지 않으면 밥을 굶은 것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지라, 오늘도 너댓명의 직원과 너댓명의 손님이 있었다. 정기권을 끊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직원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목욕탕은 어딜가나 늘 뉴스를 틀어놓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3단계로 빨리 가야 한다고 봐.”
“뭐 먹고 살으라고.”
“딱 2주만 하고 빨리 잡자는거지. 홍콩이 그렇게 잡았잖아.”
“교회가 문제야 교회가.”
“교회 소모임을 다 못하게 해야돼.”
“아니 근데, 지금도 응? 이 와중에도 자기들은 병이 안 걸린다고 하잖아. 교회 다니는 분들은 그래.”
“아휴 그러게나 말이야. 교회를 싹 다 닫게 해야돼.”

격한 발언은 없었지만, 교회가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걸 들으니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 교회는 안 그래요!’하면서 침 튀기는 사람은 이 안에 없겠구나.
기독교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니, 이제 이 나라의 기독교는 끝까지 온 거 같다.

2.

원두가 떨어져서 고심 끝에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가서 블렌드 원두를 샀다. 블렌드 원두는 200g에 오천원이다. 이집은 원두를 살 때마다 커피 한 잔을 내려준다. 오늘도 뭘 드릴까요? 묻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았다. 신 나서 사진도 한 방 찍고 편의점에 들렀다. 아침거리로 간단하게 뭘 살까 고민하다가 마땅한 게 없어서 담배만 두 갑 샀다. 사장님이 아이와 통화중이었다.
“일어났어? 밥 차려놓은 거 먹고. 수업 듣고, 영어 숙제 하라고.”
나는 씩 웃음이 나서 우리 아들은 아직도 자고 있다고 얘기했다.
중학생라 새벽 서너시까지 안 자고 오후 한 시나 되야 일어난다고 했더니 “밥 차려놔도 챙겨먹질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편의점을 나왔더니 자전거가 무거운 가방 때문에 자빠져 있었다. 소중하게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바닥에 다 뿌려졌다.
자전거를 일으키는데 노년의 남녀가 헤어지며 “코로나 끝나면 밥 한 번 먹자.”는 대화를 하는 게 들렸다.

사무실에 들어와 쏟아진 아메리카노를 대신해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데 교육지원청 담당장학사에게 카톡이 왔다.
“국장님, 뉴스 들으셨지요? 9.11까지 원격수업이요. 저희도 방송을 통해 본 거라, 학교에서도 지금 고민이 많을 거 같습니다.”

3.

우리는 절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를 차차 늘려나갔고, 대면이 불필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도 청자의 표정이 보이면 어떤 생각을 하며 듣고 있는지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느끼는 기능은 강화될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게 긍정적이라 볼 수 있을까.
모두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수도권 병상이 7개 남았다는 뉴스 속보가 도착했다.
본 게임이 시작된 느낌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의 전쟁인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은 자꾸 “좋은 날 다시 오면”이라고 말한다.
그 좋은 날은 이제 끝난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혀에 대한 이야기

지난 2주 정도, 페이스북 때문에 상당히 불쾌했던 것 중 하나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에 대한 사실이나 보도보다,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1

여러 가지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했으니까, 굳이 나까지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폭로전, 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폭로전의 초기에는 정제하지 않는 포스팅도 올렸다. 그 이후에는 천천히 가라앉는 나를 봤다. 그리고 작년 오늘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다시 살피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혁신교육 1기부터 경기도 내 전 지역이 지역과 교육지원청+학교를 연결하려는, 마을과 학교 연계의 움직임이 있었고 성공한 곳도 있었지만 모두 실패한 것으로 안다. 지금은 그 끈이 모두 끊어졌다. 현재 민간과 교육지원청이 유연하게 진짜로 연결된 곳은 유일하게 안양뿐이다. 자랑스러운 일이고 이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국장의 노고다.’ 라는 지역 선배의 말을 들었다. 단 한마디에 5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전에 눈물을 좀 흘려야겠다.”

#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펴낸 만화를 저녁 내내 봤다. 눈물을 조금 흘렸다.
오늘도 나는 회의를 했다. 6월부터 시작해야 할 일들이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성이 무엇인지 알리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주된 나의 역할이다. 때로는 분담하고 때로는 전담한다. 때로는 그 일로 돈을 벌기도 하는데, 인건비에 준하지, 수익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늘도 윤미향이 29년간 시민단체를 운영하며 현금으로 집을 샀고, 전세 1500에서 시작해 자동차를 두 대 굴리고 수억 원대의 집을 가지고 있으니 수지맞는 장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얼마 전 페친을 끊은 한 사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공교롭게도, 윤미향의 재산증식에 대해서 말하는 두 사람은 자기 소유의 집이 있다는 걸, 내가 쓸데없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3.

2012년, 얼떨결에 이 판에 들어온 건, 완전히 이 판에 진입한 것도 아니고, 발 하나 걸친 상태로 기웃거렸다. 그 이후 2020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가정불화를 겪었고, 이혼을 했고, 독립했고, 위자료를 받아 독립기반을 마련했다. 시민단체 활동가이면서, 시민단체와 공공기관에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인 시민교육과 공익활동에 대한 컨텐츠를 제작하고 제공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금액이 큰 것도 있었지만 오래된 내 페친들은 알다시피, 가을부터 겨울까지 나는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자면서 일을 해야 내 생계를 꾸려나갈 비용을 번다.
내가 하는 일 중에 인건비가 가장 헐 한 것은 시민교육 분야의 학교수업이다. 작년에 내가 학교 수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1천만 원 정도 된다. 1천만 원의 수업료는 시간당 5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공기관 기준 2급 강사료에 해당하는 특강은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이 돈은 200시간 정도의 초중고등학교 강의를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그 외에도 내가 맡아서 돈을 벌었던 일들은 대부분 NPO나 NGO나 공공기관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시민운동을 이해하지 않는 사업자들이 잘 해낼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일이 온다. 더러 인건비를 초과하는 이익이 나기도 하고 더러 손해를 보기도 한다.

29년간 시민단체를 운영하며 차를 두 대 사고, 집을 산 것이 괜찮은 직장이라거나, 참여연대보다 정의연이 연봉이 높아 평균 2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활동가들이 있는 조직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활동가들의 내상이 깊어진다.

우리는 연봉 2천을 넘으면 안되고, 우리는 집을 사면 안되고, 성직자가 아닌데, 가족을 부양해도 안되는, 호모사케르 취급을 받아야 당신들의 속이 풀리겠다는 말로 읽었다.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자들이여.

#4.

이런 저런 위원회의 위촉장을 받을 때마다, 조심하자는 생각을 한다.
농반진반으로 출마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나는 굳게 다짐한다.
적당히 하고 10년 내로 이 판을 완전히 떠야겠다고.
피눈물이 난다.
작년에 나는 차가 두 대 있었다. 중간에 한 대 팔아버렸지만. 지금 평촌의 아파트 전세를 산다. 무리했지만. 아마 시민단체 일하는 게 수입이 괜찮다고 말하는 자들은 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할 만하다. 일감몰아주기로 특혜를 받아 부를 축적한 가짜 활동가라고 하겠지.

어쨌거나 나는 집 한칸 없지만 헐한 노동이라도 인건비를 받으면 고마워했고, 돈 바라보고 일하지 않았으며, 매달 여기 저기 후원금과 기부금을 보내고, 형편이 어려울 것 같은 출판사나 언론사의 잡지를 계속 꾸준히 구독한다.

활동가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며 간극을 메우고, 공무원의 실적을 올려주고 정치인의 업적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던가. 우리는 그렇게 파도처럼 왔다가 모래처럼 사라지는 것이 맞겠구나.
진보는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던 내 생각이 맞았구나. 우리는 그저 바람처럼 냄새없이 소리 없이 왔다가 사라져야만, 당신들이 편안하겠다는 확신이 든다.

내 주변의 몇몇 활동가들도, 말을 아낀다. 나는 지금 참담하다.

#5.

친친공개인, 그저 하소연으로 적어보려고 했는데 굳이 전체공개로 올려본다.
이글을 보고 “저격”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 덕분에 주제파악하고, 모래처럼 흩어지는 삶을 결심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사람의 말로 쉽게 상처받는 타입 아니다. 하지만 잘 알겠다. 무엇이 사회를 작동시키는 원리인지. 그건 좀 알 것 같다.

#6.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 글은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천하지 않는 자들이 “쉽게 씹어대는 말”에 대한 이야기다. 활동가는 직업이 아니다. 세무신고에서 활동가는 직업코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분류되지 못한다. 윤미향과 정의연이 시민단체 모두를 대표하지 않는데, 그 두 존재가 모든 공익활동가를 싸잡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혀에 대한 이야기다.

2020. 5. 30.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설명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설명>>

1. 배경

1979년 10월 26일, 1961년부터 18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의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대통령이 죽고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시민들은 독재가 끝났으니 새로 대통령도 뽑고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겨울, 대통령을 죽인 범인을 잡겠다며 군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군인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취소해버렸습니다. 나라가 위험해졌다며 군인들이 시민들을 감시하고 경찰을 대신했습니다. 소장계급이었던 전두환이 대통령처럼 굴었습니다. 최규하 총리는 자리에서 쫓겨났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인들이 정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군인들이 세상을 점령한 것입니다.

2. 왜 시작되었나?

1980년에 만일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면 대통령후보로 나올 만한 정치인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김대중은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박정희 대통령 때 정부에 반대하고 독재를 그만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과 군인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김종필과 시민들에게 존경받았던 김대중을 체포했고, 박정희를 반대했던 김영삼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거나 집안에 가둬버렸습니다.

옳은 소리를 해온 정치인들이 범죄자처럼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민주주의를 바랐던 시민들의 실망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절망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외쳤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먼저 시위에 나섰습니다. 현수막과 맨주먹으로 나선 학생들을 군인들이 마구 잡아갔습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주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힘으로 정부를 제압한 전두환은 물러가라, 더 이상의 독재는 싫다고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전두환과 군인들은 인기가 높았던 김대중과 김대중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 광주는 특히 김대중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시민들은 감옥에 갇힌 김대중을 석방하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3. 광주 민주화운동의 시작

5월 18일, 그동안 작은 시위를 이어가던 광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습니다. 바로 다음 날 5월 19일, 전두환과 군인들은 거칠고 사나운 부대를 만들어 광주에 보냈습니다. 군인들도 이유를 모르고 광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군인들의 대장은 전두환이었습니다. 광주에 가는 군인들에게 광주에 전쟁이 벌어졌고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무리들이 숨어있으니 누구든지 눈에 띄면 잡아서 가두고 죽여도 된다고 지시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군인들은 정말 전쟁터에 온 것으로 생각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 때리고 죽였습니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5월 21일부터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경찰서에서 총을 꺼내고 버스와 트럭으로 길을 막고 군인들을 잠시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더욱 뜨겁게 모이자 더 많은 군인들이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광주에 모여들었습니다. 군인들은 헬기에서 총을 쏘고 거리에서도 총을 쏘고 도망가는 시민들을 잡아 곤봉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광주로 가는 길은 모두 막혔습니다.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섬이 되어버린 삶의 터전에서 군인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다쳤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나서서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대에게 전달했습니다. 모두가 가족이고 하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렇게 한 마음으로 힘을 합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대동사상, 대동정신이라고 부릅니다. 광주의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아끼고 지켰던 정신이 바로 대동정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이 죄 지은 것도 없이 계속 죽어나가는 것도 모자라, 탱크까지 앞세워 시민들을 짓밟으려 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은 도청에 모여 광주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헬기까지 동원해 도청을 공격했습니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군인들이 광주에 몰려들어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 가뒀습니다. 5월 27일이었습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에서는 수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3천명 넘는 사람이 다쳤습니다. 죽은 사람들 중엔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이 열흘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4. 518민주화운동의 이름이 생기기까지

그때 군인들에 의해 집안에 갇혔던 김영삼은 1993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민주화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1998년에 김영삼대통령에 이어서 우리나라 15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여태까지도 518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전두환이 자기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죽이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사실이 아니라며 계속 발뺌하고 있습니다. 1980년 5월에 가족을 잃은 시민들이 모든 것을 기억한 채 살아있는데도 말입니다.

5. 우리의 할 일

이 끔찍하고 슬픈 사건은 1980년 전국을 뒤덮은 시민들의 열망, 민주주의를 원하는 움직임이었다는 뜻을 담아 지금은 “518민주화운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비극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기억해주세요.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바로 우리입니다.

 

작년에 써둔 것 보완해서 공유.

안양군포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설명을 담을 전시물이 필요한데,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걸 찾지 못해,
글쟁이의 쓸모를 발휘해 봄.
사실 왜곡이 있나 계속 검토중.
자극적인 묘사는 하지 않으려고 애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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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인증에 실패했습니다

시장 근처에 옛날통닭과 생맥주만 파는 집이 있다.
아이가 그 집 통닭이 제일 맛있다고 해서 가끔 가서 포장을 해 온다.

오늘은 통닭 두 개를 튀기고 지역화폐카드를 내밀었더니 통닭집 남자가 이거 어떻게 쓰느냐고 묻는다.
동사무소 가서 받아왔는데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고. 여기 돈 들어오면 문자 오는거냐고 물었다. 나는 ‘앱을 까시고 통장을 연결하셔야 한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앱을 깔아드릴까요? 물었더니 휴대폰을 냉큼 가져왔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여는데 연결이 잘 안되어 보니 로그인이 안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아, 구글 계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메일이 있어야 해서요.”
“아휴 나는 그게 뭔지 몰라요.”
“제가 해드릴까요?”
“아휴 그래주면 고맙죠.”

나는 다 튀긴 통닭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메모지와 펜을 받아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구글아이디를 하나 만들었다. 비밀번호는 쉬운 걸로 만들어 메모지에 적었다. 그제서야 내 앞에 앉아 있는 초로의 남자가, 사장이 아니고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주인인지, 또래의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 남자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구글계정을 일단 만들고 구글플레이스토어가 열려서 경기지역화폐 앱을 다운받았다.
“이거 다운받으면서 통장 연결해서 쓰시는 거예요. 통장 번호 기억하세요?”
“통장 없어요.”
“아.. 월급 들어오는 통장 같은거.. 전혀 안 쓰세요?”
“통장 없어요.” 라고 같은 대답을 하자, 주인여자가
“기초수급 들어오는 통장 있잖아요.”라고 말을 보탰다.
앱 다운로드가 완료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통장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앱이 열려서 이용약관에 동의를 하고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삼촌”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어느 통신사냐고 물으니 삼성폰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바탕화면으로 넘어가 앱을 몇 개 살펴보니 LG U+ 앱이 보여 통신사는 엘지신 거 같다고 하면서 본인인증을 시작했는데, 본인인증이 계속 안됐다.
기초수급이 들어오는 통장이 있다는 얘기가 떠올라,
“이 전화번호 삼촌꺼세요? 누구 명의로 되어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여동생이 해줬다”고 대답했다.

본인이라는 걸 인증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나는 그 사람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삼촌은 내 손에 들려 있던 자기 전화기를 살짝 잡았다.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아이고 됐어요. 닭만 다 식었네. 제가 내일 동사무소 가볼께요.”
나는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삼촌’에게 건넸다.
“이거 가지고 가시고요. 혹시 앱으로 뭐 해야된다 라고 하면 이거까지 했다고 얘기하시고요. 이메일 만드는거요. 본인인증이 안되면 상품권으로 받으실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받으셔도 될거예요. 아무튼 가서 물어보세요.” 나는 닭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인사를 하고 닭봉투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고서 자물쇠를 푸는데 주인여자가 나와 문앞에 서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장사하세요?”
“아.. 예.. 저 이런 저런거.. 글도 쓰고.. 시민단체 일도 좀 해요.”
“그래서 그렇게 착하시구나. 고맙네요. 이거 너무 어려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줘도 못 써요. 괜히 시간만 버리고 맛있게 못 드시게 됐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누군가에겐 앉은 자리에서 꿈적앉고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 되어간다. 본인인증을 할 수 없고, 자기 명의로 된 휴대폰이 없고, 자기 통장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두 선한 피해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과거를 자꾸 후회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나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말했던, ‘삼촌’은 잠을 잘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집엔 에어프라이어도 있어요. 집에 가서 덥혀 먹으면 돼요. 닭 식은 건 괜찮아요. 모두 해결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자전거를 타고 오며 못 다한 이야기를 혼자 머릿속에서 떠들었다.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이 왜 착한 척 하고 다니냐고 한다.
확 마…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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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와 시민사회단체에 관하여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 이제는 국회의원 당선인에 대한 별의 별 소리들이 돌아다니는 걸 며칠 지켜보며, 부글부글한 마음을 참다가 오늘에서야 적어본다.
(요즘은 부글부글 며칠 푹 고다가 쓰는 게 패턴이 되어가나)
1. 정의기억연대는, 그 초창기부터 정신대와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알리고 비인간적이고 비평화적인 폭력적 행태를 비판하고 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에 비전과 미션이 적혀 있다.
비전 :
우리 함께 손잡아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이 땅을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미션 :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
– 피해자 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조사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교육과 장학사업
– 기림사업과 국제연대 사업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
– 전시성폭력 피해지원

2. 시민사회단체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한다. 시민사회단체는 그 주체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당사자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연대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운동을 직접 실행하는 경우는 장애인인권운동, 노동운동이 대표적이다. 연대운동의 경우는 조금 더 추상적이고 거대한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교육운동, 환경운동등이 그 범주에 들어간다.
정의기억연대는 당사자와 연대체가 결합한 복합적 형태라 볼 수 있다.

3.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에서였다. 그 문제를 세상에 알린 것이 한국의 학자와 시민운동가였다. 알리기만 하고 사라지는 이슈들은 수두룩하게 많다. 단체를 설립하는 것은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다. 누군가 이 일을 붙잡고 있어야 계속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싸운다고 해서 개인의 생계가 해결되진 않는다. 대부분 초기에는 자기 사비를 털고 자기 시간을 털고 일상과 영혼을 갈아넣어 시작한다.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시민운동단체라 보기 어렵다. 돈이 모이는 이유는 투자대비 성과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익단체는 자본금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으나, 시민운동을 주로 하는 단체들은 초기에 절대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할 수 없다. “훌륭한 일 하십니다.”라는 칭찬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다.

4. 일본군성노예문제는 이제 국제적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은 아직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박근혜정권에서 저지르는 당사자 동의 없는 합의 때문에 일이 더 꼬였다. 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자가 행했던 일을 원상복귀하는 일이 어렵다. 한마디로 투표 잘못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십 년간의 노력이 작살난 것이다.
이번 일로 언급되는 문제들 중에 내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당사자들이 피해자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운동의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중에 김복동 어르신처럼 앞장 서서 나섰던 분도 있고 거부한 분도 있을 것이다. 모두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헤아려야 하는 부분이다. 수십 년 동안 집회에 나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또 말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왜 발생했는가.

누가 피해자를 평생 피해자로 살게 했는가. 누가 피해자를 죽을 때까지 피해를 말하게 만들었는가.
정대협인가, 일본인가?

일본이 사과를 했다면 정대협은 피해자로 말하기를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대협이 그 일을 중단했다면 일본은 이 모든 증거를 삭제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대협이 그 일을 중단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내 딸이 위안부로 갔어도 나는 일본을 이해한다’는 주옥순의 주장과 다른가? 그렇다면 정대협 외에 누가 그 일을 했을 것인가? 졸속으로 협상했던 한국정부가 그 일을 했을 것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믿을 수 있나? 아니. 행정기관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행정기관은 입법기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고, 입법기관은 당대의 요구에 따라 이기적으로 구성된다.

5. “이래서 시민단체에 후원 안 합니다.” 라는 댓글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정의기억연대는 피해자 지원을 하는 재단이 아니다. 정대협에서 정의기억연대까지로 이어진 일본군피해자 문제의 보상과 지원은 국가대 국가의 문제로 일본정부와 한국정부가 해결해야 한다. 정의기억연대는 피해보상금을 받아 피해자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에 후원하는 것은 조직이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다. 그 조직이 무너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는다. 상근자 급여 조금 더 가져가고, 밥이라도 사먹고, 교통비라도 하라고 후원하고 회비를 내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이전의 정대협이 구호단체이거나 복지단체인가?
국가대 국가의 피해보상 문제를 일개 단체가 집행하는 경우도 없다.

후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지역아동센터에 당신이 후원금을 낸다고 치자. 그 돈으로 쌀을 살 수도 있고, 아이들의 낡은 신발을 사줄 수도 있고 다 같이 읽을 책을 살 수도 있고, 활동가가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을 수도 있고 아픈 아이들 데리고 병원에 가느라 택시를 탈 수도 있다. 돈 좀 줬더니 길바닥에서 아이스크림 사먹더라고, 돈 좀 줬더니 돈 아깝게 택시 잡아타더라고, 비난하는 것은 마땅한가?

시민사회단체의 후원금은 대부분 운영비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비용으로 노동하는 활동가들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 최소한의 급여가 필요하다. 전국평균 활동가들의 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도 최저시급 이상의 비용을 받을 자격이 있고, 상여금을 받을 자격도 있고, 복리후생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돈이 그렇게 아까운가?
한겨레에서 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사가 있다.
http://www.hani.co.kr/…/society/society_general/918928.html…
나는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하고 있지만, 2014년부터 지금까지 무급으로 일했다. 교육운동 외 다른 단체의 간사역할을 하면서 2020년부터 월 20만원씩의 활동비를 받고 있다. 그게 내가 받는 급여의 전부다.

각 시민단체는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의 재정상황이 되면 홈페이지에 모든 재무상황을 공개한다. 홈페이지 운영도 어려운 단체는 총회를 거쳐 회계 내역을 공개한다. 내부자들이 자금을 유용하면 운영위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싸인 하나 맘 편하게 못 받는게 시민단체다. 모두가 감시자고 철저하길 원한다.

6. 활동가의 자녀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유학을 갔다고 시비를 거는 것에 대해 실소을 참지 못하겠다. 세상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며, 당신들이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인내심과 위기대처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 접시 닦으며 유학 생활 하는 사람 있고, 노숙자가 되면서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케이스도 봤다. 2년제 컬리지를 다녔다가 4년제로 점프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중국에서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해결하고 사업도 했다. 가진 게 없는 집구석에서, 부모는 운동한답시고 내 팽개쳐져 자란 아이들은 상상이상으로 강인하게 자란다.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알아서 크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돌파력은 보호받으며 자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다. 배경 없고 돈도 없는 자들이 신념을 가졌을 때,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가진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다. 년 소득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유학이라 놀라운가? 그만큼 대단한 의지의 인간들과 그 자녀들이 시민운동계에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서 버티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파들이 수십 년을 괴롭히고,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현실화 시키는 일이 만만해보이나? 그렇게 우스운 사람들 아니다. 운동가들은 돈과 명예를 떠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뭔지 안다면, 이들이 얼마나 강인한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7. 김복동 장학금은 한겨레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의 자녀들, 보호받지 못하나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쓰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장학금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44520.html
활동가는 시민단체에서 급여를 받는 사람만을 말하지 않는다. 급여 없는 활동가가 더 많다. 때로 활동가들은 과로사로 먼저 떠나기도 한다. 투쟁과정중에 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데 미약하나마 힘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이 적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만드는 장학기금들이 더러 있다. 운동에 빚을 진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기금이다. 김복동 장학금이 나눠먹기로 보였다면, 고인의 유지가 무엇인지, 그분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알고 떠드는지 궁금하다.

8. 정의기억연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알겠다. 어쨌거나 물어뜯고 공격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겠다. 본인의 낮은 자존감을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남은 삶에 행복이 있길 간절히 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첨언하자면.

그동안 시민운동은 정치, 행정과 시민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생계형 정치인이 늘어나고, 정치가 신뢰를 잃고, 언론도 돈을 쫓기 시작하면서, 운동은 뒷심이 부족해졌다. 믿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해도 찾아오는 언론사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운동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언론사도 만들고 직접 정치에도 뛰어들 수밖에 없다. 운동을 모르는 사람들은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판에 속한 자들의 사고방식은 좀 다르다. 모든 것이 운동의 일환이다.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이후에 변질되는 것은 개인의 운명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개인의 욕망까지 비난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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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2.

종교가 필요한 나라

2020년 4월 11일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나니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꿈꾸고 자기 공동체에서 정당한 댓가를 받는 경제 시스템까지 구축하길 원하는 정서가 매우 오랫동안 발현되어 왔다고 느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시스템이라 부르건간에, 사민주의나 민주주의나, 때로는 어떤 공산주의적 요소도 충분히 함의하고 있는 공동체들이 있었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구원자에 의해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길 오랫동안 염원해온 것이다.

정치와 반체제적 혁명 주체들이 이를 소화하지 못했을 때, 사이비종교가 나타나 그들을 구원한다며 나꿔채갔고 그들은 자기들만의 왕국에서 최면에 취한 채 살아갔다.
그 왕국은 부실하게 지어진 것이라 외부와 내부의 균열로 깨어지곤 했고, 세상에서 고립된 사람들의 공동체가 박살나면서, 갑자기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신천지와 그 이전의 종교들이 보여왔던 행태를 보면 분명 공산혁명, 또는 주체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일부의 형식만 빌려 왜곡된 형태로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1990년대에 시민운동의 한 갈래가 급진적 환경생태운동으로 분파되었을 때, 교조주의적이고 종교적인 기이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들 중 일부가 분명 신흥종교에 들어가 브레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의심한다. 유물론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겠는가 질문한다면, 내가 아는 한 87세대에서 유물론이나 막시즘을 잘 이해한 사람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저 시대 정서가 그랬기 때문에 합류한 얼치기들도 많았다.

사이비를 비롯한 신흥종교가 대를 이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욕구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마음을 사는 데 정확한 대응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판에서도 한 리더를 신화속 주인공쯤 되는 영웅으로 만들어 한없이 선량하고 깨끗한 그분으로 만드는 정서가 있다. 우리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추종자들이 그렇고 문재인을 지키는 것이 공적 약속이라고 말하는 일부의 문재인 지지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이전에도 도처에 있었다. 정치인을 하나의 권력지향적인 자연인으로 보지 않고 마치 신탁을 받아 아버지의 칼 반쪽을 가지고 대모험을 떠나는 어린 유리왕으로 보는 것이다. 권력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반인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암투를 견디고 버텨야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순전무결한 우리의 왕을 찾는 사람들은 신흥종교와 정서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시민으로서 가장 적절한 정치인을 찾는 것은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더 낫게 만들만한 무기를 찾는 것이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캐릭터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승률이 가장 높거나 내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뽑아내고 나는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 그 캐릭터를 길러내면 되는 것이지, 그 캐릭터를 숭배하거나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일부 열혈 정치 지지자들은 무단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은 단톡방에 초대해 집단 제사를 지내자며 울며 읍소한다.
그러나 언제나 선거판에서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캐릭터를 쓰고 버릴 각오를 하고 투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정의로워졌는가.
예전보다 부정한 것을 적발하기 쉬운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가. 싫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며 운명공동체다. 거래를 하며 사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거다. 그들을 어떻게 내 편으로 끌어당길 것인가는 각 신흥종교의 흥망성쇠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2020년 4월 12일

태안, 이후 12년

1년 정도 걸린 태안환경보건센터 백서의 마지막 파일을 보냈다.
아마 디자인파일이 나오면 한 번 더 검토를 하겠지만,
그 중 맨 마지막에 붙인 에필로그의 일부를 붙인다.

태안환경보건센터 백서는
태안에서 일어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건”에 대한 백서가 아니다. 이 백서는 그 사고 직후 설립된 환경보건센터가 지난 12년간 어떤 사업을 통해 주민의 건강을 지켰는지 정리한 백서이기 때문에, 책의 대부분이 건강검진 결과와 수치, 그래프를 포함한 연구자료로 만들어졌다.

비전공자인 나에게 이 일이 온 건 매우 특별한 일이다.
애초 기획했던 것은 조금 더 부드럽고 읽기 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읽기 쉬운 문장을 담으려면 연구결과들을 모두 담기 어려웠다. 수치와 생전 처음 보는 단위와 화학기호들을 적어넣고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연구결과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모르는 것은 전문가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태안 주민들에게 “재난에 지역명이 붙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물었을 때, 대부분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마을 리더 몇 사람은, 우리가 그만큼 피해를 입었고 전국민의 성원으로 극복했으며 이제는 자연환경은 거의 다 회복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태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바꿔말하면, 태안기름유출사고라는 이름이 없어지면, 자기들이 잊혀질까 두렵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국민들의 자원봉사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센터에서 진행한 사업들은 민간인이 제대로 된 방호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원유가 가득한 갯벌에 뛰어든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규명해야했다. 당시 방제작업에 장기간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코호트 관리되고 있다.

나는 태안의 일을 “국민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칭송하는 게 불편하다. 기름이 가득한 바다에 비전문가나, 민간인이 들어가 맨손으로 기름을 퍼내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10년이 지나 단 며칠 방제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건강은 회복되었겠지만 (대부분의 성분은 소변을 통해 배설되고 사람의 몸은 원형을 찾아가기 위해 애써서 독성물질을 빼내려고 작동한다) 남은 사람들은 다르다.

태안에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은 만리포와 천리포 사이에 있다. 이 사고에 대한 백서는 ‘극복백서’라는 이름으로 2018년 출간되었다. 아래 링크에서 PDF로 받아볼 수 있다.
http://www.chungnam.go.kr/memorial/content.do…

에필로그 중 일부 —————————————————–>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재난은 그렇게 온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펼쳐지고 사람들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도한다. 사람이 쓰러지고 그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달려간다. 어떤 재난은 눈앞에 죽음이 선연히 펼쳐지고 그 상황이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전 세계로 전파되기도 한다. 눈앞에서 죽음이 펼쳐지지 않는 재난은 공포를 전달한다. 사멸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절망한다.

한겨울 차가운 바다에 뜨거운 태양이 떠올라야 할 때에 태양대신 기름이 뿜어져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냄새가 불안을 전달했다. 곧 해결될 거라던 방제작업은 쉽지 않았고 날씨는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면서 삽시간에 해안가로 기름이 흘러들어왔다.

시커먼 기름이 바다를 뒤덮으면서 새들은 땅에 내려앉고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올랐다. 평생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 기름을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을 쓸 수 있는 연안가의 주민들은 살림살이를 챙겨들고 바다로 나가 기름을 퍼담았다.
2019년, 한 누리꾼이“국난극복이 취미인 국민”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남의 일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일에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태안으로 달려가 기름을 닦아냈다.

기름유출사고가 처음 있는 것도 아니다. 매번 반복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을 보면서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란 것은 아니었던가.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을 두고 “우리가 너무 무지했다.”라고 말했다. 기름을 치우는 것만큼이나 기름을 치우는 사람들의 건강도 중요하다. 사람이 저지른 일을 사람이 해결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고 다급한 사람들이 더 먼저 기름에 노출되었다.

세상엔 수많은 대형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지만 잊고자 하는 만큼 빨리 잊는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이 사건으로 인한 영향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연구와 환경보건서비스로 증명하고 있다.

환경보건분야는 아직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는 않다. 국가적으로 사고 이후의 치료와 응급지원체계, 공공의료에 대한 담론이 제기되었으나 환경을 미리 점검하고 환경으로 인한 집단질환 발병과 건강영향에 대한 체계적 시스템도 아직 부족하다.
환경보건계의 전문가는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보건시스템이 분산된 점을 지적했다. 노동환경 보건분야는 노동부에서, 어린이 청소년 등 학령대 인구에 대해서는 교육부에서,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환경부에서, 보건서비스는 보건복지부에서 나누어 맡고 있다. 통합시스템과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2000년대 이후 불거지는 환경문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것들이 크다. 태안환경보건센터가 마련되기 전 환경부는 폐광산과 산업단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국민환경보건문제를 제시했고 이전에 없던 환경오염물질로 인한 질환들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한 지역에 일자리를 제공하던 시설들이 환경오염물질을 뿜어내기도 하고 시설사용이 중단되면서 다른 환경오염요소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대형사고로 인한 환경건강영향평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 생태계 파괴는 많이 거론되었으나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은 유례없는 대규모사고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주거지를 덮친 사례다. 하루나 반나절 방제작업 자원봉사를 한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연인원 120만 명 이상이 유류에 노출된 셈이다. 일시적 증상과 노출피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때 기름을 닦았던 마을주민들은 대다수 아직도 태안에 살고 있다. 당시 대피조치는 전혀 없었으며 고약한 냄새에 위험을 직감했던 주민들이 자신의 어린자녀들을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 정도가 전부다.

태안환경보건센터의 과업은 사고이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은 일어나버렸고 그렇다면 그 다음엔 사회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름을 닦았던 사람들이 환경성 질환에 시달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미미한 증상들이 만성질환으로 전환되었고 아직도 마음에 남은 충격과 상처는 완전히 씻겨나가지 않았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아직도 기름 닦는 꿈을 꾸다 깬다는 주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태안환경보건센터는 설립 초기 급성건강영향평가를 통해 어떤 물질들을 중심으로 연구조사 해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해왔다. 주민들은 언제 자신이 질병에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태안환경보건센터의 건강검진에 대한 필요성에 동의한다. 기름은 닦아냈지만 이후의 바다생태계는 변했다. 태안 주변의 산업시설과 산업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유해물질들이 태안을 감싸고 돈다. 주민들은 새로운 환경요인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후략)

사진은 2007년 당시 의항리 밧고개 자원봉사 행렬

의항 밧고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