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될까요

#발달장애청년생애사쓰기

♥ 사랑해도 될까요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쓸까? 하고 물었다. 이미 주제계획은 다 되어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의견을 자꾸 묻고 듣는 게 좋겠다는 생각때문이다.

희준 씨는 “곧 추석이니 추석이야기 쓰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오늘은 가족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다. 가족은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라 스토리가 많을 것이고, 참가자들이 길게 쓸 수 있는 소재일테니까 교육과정의 뒤쪽에 빼놓았다. 발달장애청년들은 자기 삶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이야기거리가 아주 많아야 다섯 개 정도의 문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 장애의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적게 얻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체장애인보다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는 더 묵살되기 쉽고, 언제나 ‘하지마, 안돼. 그만. ‘이라는 금지어가 매일 반복된다.

내 가족이 맘에 들 때, 맘에 안 들 때도 써보라고 권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것도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부정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라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에, 강사와 교감이 잘 형성된 뒤에나 가능하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발달장애인으로 교육받은 경우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낯선 사람에게 시간을 갖고 부정적 감정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수업에 들어가면 보영씨는 휴대폰을 들고 다가와서 나와 포켓몬을 한 마리씩 교환한다. 나는 보영씨와 포켓몬고 친구를 맺었기 때문에 매일 매일 선물을 주고 받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보영 씨와 포켓몬을 교환하고 있으면 다영씨는 1층에 내려가 커피를 가져와서 내 어깨를 토닥거려준다. 채은씨는 큰 소리로 인사를 두 번 이상 하고, 슬미는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줄줄줄 얘기한다. 지은 씨는 나에게 손수 만든 팔찌도 선물해줬다. 홍민 씨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경례를 해준다. 다훈 씨는 방학이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이제는 대답도 한다. 희준 씨는 사실 발달장애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정도라서 항상 가장 성숙하게 나를 응대한다. 이제 부정적인 감정을 건드려봐도 되겠다.

가족 이야기를 써보면서 채은이 헤어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슬미는 지능이 높은 자폐인인데 직설적인 화법 그대로, 채은이네 이혼했대요. 라고 크게 말했다. 나는 “그렇군요. 선생님도 이혼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채은과 슬미가 진짜냐고 물었다. “그럼. 재혼도 했지.”라고 대답하고 크게 웃었더니 슬미가 조금 당황했다.

“어때. 괜찮지?”라고 농을 걸었더니 “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했다. 슬미는 생활에 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나는 채은 씨에게 살짝 물었다. “이제 엄마 아빠 안 싸우니까 좋지 않아요?” 채은 씨는 “네. 맞아요. 안 싸우니까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채은 씨에게는 “선생님은 선생님 엄마 아빠도 이혼했어요.” 채은 씨가 웃었다.

바리스타 일자리를 옮긴 다훈 씨가 아침 7시부터 출근을 해서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바리스타인 다른 청년을 아느냐고 물어보려고 사진첩을 뒤지느라 휴대폰을 열어서 안경을 아래로 내렸더니 채은 씨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선생님 이제 눈이 잘 안보여요. 안경 이렇게 하니까 할머니 같죠?”라고 했더니 채은 씨가 책상을 두들기며 웃었다.

“할머니. 선생님 할머니. 아하하하하하.”

가족이야기를 모두 발표하고 난 뒤에 나는 청년들에게 돌발적으로 물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세 명은 결혼하고 싶다 하고 나머지는 아직 생각이 없단다.

슬미씨가 결혼해도 되냐고 물어서 “여러분은 성인이잖아요. 결혼할 수도 있고 연애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복지사 선생님이 살짝 울적한 표정이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말투에 묻어났다. “결혼할 수 있죠. 그럼.. 결혼할 수 있지…” 수업을 도와주는 복지사 선생님은 이들과 또래다. 한 참가자와는 같은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삶의 경로는 타고난 것에 의해 달라졌다.

채은씨는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싶다고 하길래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고 물었다.

“착한 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자고 하니 희준 씨는 “5개국어를 하는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나는 “이런 사람은 너무 바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희준 씨는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다들 이상형에 대해서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는 칠판에 몇 가지를 적었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나를 많이 칭찬하는 사람”

그 옆에는 “나를 울게 하는 사람, 나에게 뭘 자꾸 달라고 하는 사람,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 나에게 무엇을 고치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적고 여기에는 크게 가위표를 그렸다.

웃어주는 사람, 나를 많이 칭찬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슬미 씨는 칠판을 보면서 “저도 남자친구 사귀고 싶은데요. 제가 아직 뚱뚱해서 못 사귀어요.”라고 말했다. 슬미 씨는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 신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고, 늘 허리띠를 졸라매서 소화불량이 잦다. 나는 슬미 씨에게 “슬미 씨 그런 사람하고는 헤어져야 해요. 너는 뚱뚱하니까 살 빼고 와. 라고 하면 안녕 ~ 하고 헤어지고, 너 화장 좀 해. 너 머리 좀 길러. 라고 하는 사람하고는 안녕~ 하고 헤어져요. 슬미씨 그대로 예쁘다, 하는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사람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지은 씨가 “그런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보탰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날 거면 좋은 사람을 만나아죠.”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수업을 마치고 인사를 하기 전에 슬미 씨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뭐가요?”

“제 언니나 오빠 말고, 저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요.”

슬미 씨는 자신이 자폐인이고, 그래서 차별받았고, 자기는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기 세계가 뚜렷하지만 사회생활도 가능하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학습력도 좋고 의사소통도 잘 되는 편이다. “나는 장애가 심하지 않은데 학교 다닐 때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라고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분명히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잘 받아주지 않고, 발달장애인 공동체에만 묶어둔다. 이들이 어떤 집착이나 착취가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청춘들의 연애는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어려운 문제다. 가끔 연애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설레여하며 다시 만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 마음을 갖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사랑을 할 때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서는 안된다고, 그 정도는 얘기해도 되지 않겠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3년차가 되는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의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수업은 순항중입니다.

#민주시민교육포럼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민주시민교육포럼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못다한_이야기

작년부터 현장이 많이 힘듭니다. 혐오와 차별이 정치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아 골목과 교실 곳곳으로 스며들어 폭발하고 있습니다.
강사와 활동가들이 계속 다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들이 쓰러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전해야 하는 종교는 혐오를 팔아 돈을 벌고 힘을 모아 덩치를 키워갑니다. 십자가 아래 무한증식하는 악마의 현현을 보고 있습니다.
기이하게 폭발한 자유주의가 악성민원으로 둔갑했습니다. 행정은 이들의 공격에 계속 얻어터지며 차별과 투쟁하지 못합니다.
계속되는 갈라치기로 괴물을 키워낸 것은 정치와 미디어입니다. 괴물들의 발언을 착취하고 그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이득만 취하고 있습니다. 동료애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급진적 운동가들은 지역의 작은 단체들의 존립보다 가치를 내건 깃발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갈 곳을 잃은 것 같습니다.

영혼없는 좀비떼가 미래로 가는 열차를 탈취했습니다. 한줌도 안되는 활동가들은 어떻게 이 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지켜주십시오.
오늘도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리고 또 내일은 일어나겠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명한 운동가들과 정치인들은 당신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마다, 누군가 주저앉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십시오. 종교인들은 더 많은 사랑을 말해주세요. 같이 좀 삽시다.

토론문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1. 민주시민교육의 정치적 공정성중립성 확보 방안

한국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담론이 생성되고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성을 타진한 2020년 이전 수년 간 민주시민교육의 범위와 정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15년부터 현장활동가로 민주시민교육과정을 진행하고, 강사를 양성하여 학교에 보급해 온 활동가 입장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협약, 또는 정의, 범위를 정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봤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전국총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민주시민교육이 마치 자당의 행동강령인 것처럼 발언하기도 했다. 사석에서라도 민주시민교육을 잘 하면 20년 장기집권이 가능하다는 등 노골적인 언사가 상당히 불쾌했다. 초등학교에 민주시민교육을 하기 위해 출강하여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교과서의 표지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민주당에서 만든 것이냐’고 반문하는 일이 잦았다. 교과서의 정식 명칭, 표제는 ‘더불어사는 민주시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명칭이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며 시민교육 일체를 금지시키는 코미디같은 일도 있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보급하려는 교육행정가들은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조례제정이 어려운 기초단체들도 있었다. ‘민주’라는 단어때문이었다. 만일 지금의 ‘국민의힘’당이 ‘공화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우리는 민주공화교육으로 이름붙일 수 있었을까?

초기 민주시민교육담론 형성과정에서 정치교육으로 이름붙여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정치과 종교는 입에 올려선 안되는 말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사회의 불문율 때문에 이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2022년 전국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옮겨간 기초단체와 지방교육청은 서둘러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을 삭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당선인 임태희교육감은 헌법교육과 인성교육을 강조하겠다고 후보자시절부터 공언한 바 있고, 공약에 따라 미래인성교육과를 신설했다. 민주시민교육과를 굳이 삭제한다는 것은 전임교육감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민주시민교육이 사라질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시민권에 대한 논의와 동의는 수년에 걸쳐 축적되었으며 대한민국 헌법은 상당히 진보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시민권과 경제민주화의식도 담겨있기 때문에 간판만 바꿔단 것이지 민주시민교육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라 판단하지 않는다.

분단이래 한국사회의 정치적 대립은 끊이지 않고 있다. 통일한국이 되고 종전선언이 이루어진다고 한들 당장 하루아침에 이 대립이 중단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번 기회를 빌어 제안하건대, 절반의 국민이 그렇게 미워하는 ‘민주’라는 글자를 시민교육에서 빼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대립으로 인한 민간의 희생이 지나치게 컸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정치성향에 따른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정쟁, 특정 정당의 프로파간다로 치부되는 모욕, 한쪽 편에 서면 희생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반대하는 자들의 이유를 들으면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명칭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 노동인권과 보편적 인권, 연대의 가치에 대한 불만도 많은 편인데 이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계급의식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이 사회는 혐오와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 관심을 끌고 있으며 관심으로 인해 돈벌이를 하고 명성을 얻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만일 민주시민교육을 반대하는 쪽에서 그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인성교육이라면, 혐오와 차별을 줄여나가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원칙도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인지 제고할 필요가 있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철학을 바탕으로 더 넓은 분야로 퍼져나가야 하며,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시민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각계에서 펼쳐나가야 할 일이다. 누군가 그 명칭이 불편하다고 주장한다면 특정정당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민주’라는 말을 삭제해도 좋다.

기실 민주시민교육의 중립성을 묻는다면 지금의 민주시민교육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보편적 인권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가치를 알리는 것이 편파적이라면, 이 사회는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것은 소모적인 논쟁, 정파적 갈등인데, 만일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이 불필요한 논쟁을 계속 불러일으킨다면 과감하게 명칭변경을 시도할 필요가 있어보이며 더 폭넓은 시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육적 장치를 추가할 일이다.

2. 경기도 시군 민주시민교육센터의 역할 제안

경기도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으로 제안한 바 있지만 광역단체의 산하기관에서 이 역할을 맡았으면 그 장점을 극대화해 시민교육을 보급할 수 있다.

첫번째,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보장이 확실치 않은 만큼 경기도는 경기도교육청의 상황과 의지를 재확인하고, 지난 7-8년간 진행해온 민주시민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두번째. 민주시민교육 대중강좌를 진행해보면 민주주의와 시민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모인다. 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보다 심화된 시민성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낮은 편이다. 같은 구성원이 계속해서 비슷한 모임에서 마주치게 된다. 민간이 공공기관과 행정기관과 협약을 맺어 시민교육을 보급하는 것보다는 행정기관에서 예산을 지원하며 행정기관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경기도 차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범도민의 필수교육으로 재정립하고 그 과정에 대한 역할을 수립해야 한다. 각 지역의 우선 동의하는 곳부터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제, 아직 전환하지 못한 주민자치위원회, 또는 각 직능단체와의 연계교육을 실시하고 마을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세 번째. 두 번째 제안사항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제목과 내용 모두 중요하다. 반감을 일으키지 않을 워크숍 형태의 토론교육을 주로 하되 마을의제를 발굴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에 시민교육을 녹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각종 의제발굴, 정책제안에서 사용되는 워크숍을 활용할 수 있다. 문재인정권을 지내며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의지가 강렬해졌다. 참여의지가 기이한 형태로 폭발해 관심경제를 이끌어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민교육계에서는 부정적 시민성을 폭발시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식을 응집시켜 선순환을 이끌어낼 책무가 있다.

네 번째. 지금 이 사회는 지난 역사를 통해 법원에서 판결한 내용들까지 송두리채 뒤집으려는 욕구가 있다. 이들의 요구는 딱히 정당성이 있거나 명백한 논리가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고 선동을 통해 돈벌이를 하려는 미디어때문이다. 미디어리터러시교육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급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 성인이상의 시민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요구에 걸맞은 미끼도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간다는 게 가시적이어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수동적인 일방형 교육은 그 어디에서도 실현 불가능하다. 시민이 주체가 되고 스스로 담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