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7 – 지원

웃고 있었다.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앞에 앉은 갈색머리의 남자도 호기롭게 웃었다. 지원의 큰 입은 웃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가지런한 치아, 붉은 입술, 넓게 퍼져 광대근육 바로 아래로 올라붙는 입꼬리가 시원했다. 앞머리를 길게 내리고 안경을 썼다. 사람들이 왜 안경을 쓰느냐고 물으면 그저 눈이 나쁠 뿐이라고 했다. 콘택트렌즈는 불편하고 무섭다고 대답했다. 이물감도 거추장스러웠고 눈 건강에도 해로울 듯 했고, 더군다나, 안경은 지원이 가리고 싶은 긴 얼굴을 감춰주었다. 지원이 바에서 나와 맥주잔을 들고 주방쪽으로 향해 가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엉덩이는 봉긋 솟아올랐고 허리는 잘록했다. 가슴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고, 맥주잔을 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캣워크를 하는 모델처럼 걸었다.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가리랬다고, 지원은 긴 바지나 긴 원피스를 즐겨 입었는데 하나같이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이었고 다소 짧은 종아리는 9cm가 넘는 힐로 감췄다. 하의가 신발 등위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키가 작은지, 다리가 짧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원이 그렇게 걸을 때는 모델을 하다 은퇴한 20대 후반의 여자로 보였다.

생맥주를 따라온 지원이 앞에 앉은 남자에게 컵받침을 새 것으로 바꿔주며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남자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지원도 “땡큐”라고 입술을 오므리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은 오늘 노란바탕의 딱 달라붙는 니트원피스를 입었다. 남자는 연신 지원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지원은 귀기울여 들었다. 금전출납기를 열어 돈을 넣고 닫을 때도, 웨이츄리스들의 주문을 받아 술을 만들 때도, 병맥주를 딸 때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지원이 보였다. 지원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야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은 없다. 가끔 만사가 귀찮거나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너무 바쁠 때면 웃지 않을 뿐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었다. 지원은 거의 모든 순간 웃으며 헬로, 라고 인사했다.

지원의 앞에 앉은 남자가 일어서서 계산을 하고 팁통에 만원짜리 하나를 넣었을 때 지원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자꾸 뒤돌아보며 문을 여는 남자에게 지원은 손을 흔들며 바이,라고 말했다. 주방에서 보조일을 맡고 있는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원 앞에선 청년은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누나, 함춘임이 누구예요?”

“왜?”

“이거 아까 낮에 대타 뛰다가 받은 건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나 하고..”

지원은 청년의 손에 든 봉투를 나꿔챘다.

“누구예요?”

“나야.”

“아, 누나 이름이 함춘임이예요?”

“옛날 이름.” 봉투는 등기우편이었다.

지원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청년은 웃으면 안되겠다는 걸 알아챘는지 뒤로 물러나서 잠깐 멈칫했다. 지원이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지원이야. 알았지?”

청년은 마음이 가벼워져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누나 오늘 정말 예뻐요.”

“땡큐” 지원은 다시 입술을 오므리며 발음한 뒤 입꼬리를 길게 올리고 미소지었다.

바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지원은 등기우편을 열어보았다.

 

지원의 주민등록지는 이 가게로 되어 있었다. 지원은 7년전 일로 다시 법원을 가고, 그 남자를 만나거나 마주보아야 한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짐도 없이 거리로 나왔다.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고 이도 몇 대 부러진 상태였다. 기억을 더듬어 옛 인연을 찾아 이 가게로 왔다. 춘임이었던 때, 찾아온 인연은 그녀를 내치지 않고 집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다 방을 구하기 위해 우사단 길을 걸었고 칵테일 만드는 법을 가르쳤으며 주민등록을 가게로 옮기게 했고 금전출납기와 장부를 맡겼다. 지원에게 장부를 맡긴 여자는 주방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주방장에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작은 키의 그녀가 주방을 돌아나와 지원에게 왔다.

“나 와인 한 잔만 줘.”

지원은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 길쭉한 와인잔에 따라 건넸다.

“아 예쁘네 이거. 이거 뭐야?”

“로제와인, 어제 장사장님이 신제품이라고 가져왔어.”

와인을 든 여자가 지원을 빤히 봤다.

“그거,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

“뭐?”

“아까 그 등기우편. 내가 성욱이한테 난 모르니까 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아 언니!”

여자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 새끼니?”

“어.”

“미친 새끼.”

키 작은 여자는 와인잔을 들고 총총히 걸어 주방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펴 놓은 매출장부로 쓰는 다이어리에 글자를 적었다.

‘쇼리언니 로제와인 1병 카를로로시– 장사장 증’

 

 

2014. 7. 6.

한 사람이야기 6 – 쑈리

쑈리는 어두운 방안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벌떡 일어나 커튼을 제쳤다. 창을 열자 비루한 햇빛이 쏟아졌다. 햇살이 좋은 모양이다. 눈 앞에 흰 먼지들이 날아다녔다. 쑈리에게 모든 창문은 너무 높았다. 담뱃재가 길어져 떨어지려 하자 쑈리는 바닥에 놓인 검은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방안에 불을 켰다. 궁상은 질색이다. 질색하는 궁상을 몇 시간을 떨고 있었던건가.

 

‘어디 못 배워 먹은 그지같은 년 데려다가 사람 만들어놨더니 니가 내 뒤통수를 쳐? 썅년같으니라고.’

 

17년이다.

한 가족처럼 지냈다. 언니가 아니어도 언니라고 불렀고, 형부가 아닌데도 형부라고 불렀다. 그 여자의 아이들은 쑈리를 이모라고 불렀고 낯선 이들은 자매간으로 알기도 했다.

17년이다. 자그마치 17년.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때였긴 하다. 그렇다고 빌어먹고 살진 않았다. 부모나 형제, 가족이 뭔지 알 필요 없이 지냈다. 하나뿐인 오빠는 고향근처 소도시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모양이었다. 내놓을 것도 없는데 괜히 나타나 번잡스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에 상처받았던가, 젊은 나이에 사랑에 상처 안 받는 인간도 있나. 20대였다. 처음 그 동네에 발을 들인 것은. 재치있었고 배짱이 좋았다. 체구와 다르게 손님들과 싸움도 잘 붙었다. 셈이 빨라서 거쳐 가는 곳마다 사장들이 좋아했다. 그런 쑈리를 발탁해서 자기 가게로 데려온 게 그 여자다. 짐을 싸는 뒷통수에 대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늙지도 않는다. 환갑이 되어가는데 어쩜 저래 기세가 등등할까.

쑈리는 담배를 물고 여자를 꼬나보았다.

“씨발 진짜 고만해 좀.” 여자는 지치지도 않은 지 쑈리가 트렁크 두 개에 옷 몇 가지 챙겨 나와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떠들어댔다.

쑈리는 계단 아래에 무거운 트렁크를 내려놓고 담배를 발로 비벼껐다.

“어따가 담배를 끄고 지랄이야 저 미친년이! 야!!!”

“잘 먹고 잘 사쇼. 염병 진짜. 니미 뽕이다 이 씨발년아.” 쑈리는 오래전 남자들이 했던 것처럼 주먹을 쥐고 왼손으로 팔목을 감쌌다. 손등을 아래로 한 작은 주먹, 검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워서.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17년을 한결같이 언니라고 부르며 살아온 여자였다. 자기는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남자 바꿔치워 아들 둘도 잘 키우지 않았나. 그럼 나에게 뭐 하나라도 넘겨줘야 옳은 거 아닌가. 가게 매상 하나만 내달라는 게 그렇게 부아가 나는 일이었나. 그럼 저년은 여태 나를 뭘로 본 건가. 내가 지 메이드(maid)야? 미친년. 호랑말코같은 썅년. 좆같은 년, 개보지같은 년. 쑈리는 길바닥에 서서 혼자 욕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남자가 쑈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쑈리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마침 지나던 택시가 있어 얼른 올라탔다.

 

이 호텔에선 그 동네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저 땅에서 몇 십년을 부쳐먹고 살았나. 마치 소작농처럼. 죽어라 노동을 해도 퇴직금은커녕 빤스 한 장 못 받고 쫓겨나다니 주방에서 스테이크 고기를 쌓아놓던 낡아빠진 양은 쟁반으로 그년의 머리통을 깨지도록 갈겨주고 싶었다.

 

146cm의 키, 몸무게 38키로, 나이는 마흔 넷, 쑈리의 이름은 영어 shorty에서 왔다. 키가 큰 남자들이 쑈리라고 불렀다. 영국애들이었다면 쑛티가 되었을텐데 이름을 부르는 놈들이 모두 입움직이는 것도 게으른 미국놈들이라 이름이 쑈리가 되었다.

 

쑈리는 1층 로비로 내려가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이 호텔은 아직 로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커피를 시키고 룸 계산에 달아달라 하자 웨이터가 영수증을 가져와 쑈리에게 방호수를 확인하고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쑈리는 담배를 물고 웨이터에게 펜을 달라고 손바닥을 펼쳤다. 웨이터가 건네주는 볼펜은 모나미였다.

“격 떨어지게 모나미가 뭐야?” 어린 웨이터의 얼굴이 벌개졌다. 쑈리는 영수증 밑에 싸인을 했다.

가 순 희. 그녀의 이름이다.

 

2014. 7. 5.

고양이는 대물이므로.

http://m.huffpost.com/kr/entry/5556985홈플러스 PB냄비 폭발사건

배상책임 담당자가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대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치자.
그의 신념이 그닥 굳건하지 않았다고 치자.
신념보다 언제나 회사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고 치자.

대물배상을 적용할 것인지 고객님의 소중한 반려동물은 법상으로 동산에 해당하나 저희 홈플에서는 이 법제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판단하여 모든 치료비를 배상해드릴 예정이오니 부디 고양이가 완쾌되길 기원합니다. 라고 했다고 치면.

이렇게 일을 처리한 직원이 칭찬받고 언론에도 알려지고 고양이 동호회에서 고양이 사료는 홈플에서! 라는 움직임이 일어나서 승진도 하고 포상도 받고 자긍심도 느낄 보장은 매우 미미한 반면

법적처리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배상책임보험이 안될 것이 뻔하고 회사내 손실로 처리를 해야 하고 상사에게 불려가 손실처리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하는데 담당상관이 고양이를 매우 싫어하거나 고양이는 동산이 아닌 생명이라는 것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

이 배상책임 담당자와 그 외 관련자가 이 문제로 회의를 했는지도 궁금하다.

중요한 건 신념이 확고하지 않은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당장 짤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일의 여파로 인한 퇴사까지 각오하고 “당신의 신념대로 행동하세요” 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잔인하다. 가장이 가족의 밥줄을 걸고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여기는.

시스템이 문제다.
법은 언제나 가장 늦게 움직인다. 고양이연대는 고양이 구조보다 고양이를 법상 동산이 아닌 생물로 인정하게 하는 법령을 마련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는 건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014. 7. 4.

한 사람이야기 5 – 성욱

세상 모든 만물은 다 이유가 있다.
수긍할 수 없는 말이었다. DJ박스에 한참을 앉아 있던 성욱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컨트리음악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성욱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혼자 그 말을 두 번 중얼거렸다.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며칠 째 하고 있었다. 낮에는 바텐을 보는 영상이가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성욱이 음악을 틀면서 교대하고 있었다. 컨트리 음악의 LP는 약 3천장쯤 되었다. 여태 작업한 양은 500장도 되지 않았다. PC통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컴퓨터가 과연 삶에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의심하던 처지였다. 자기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하는 사장이 이 일을 지시했다. 이 집에서 일을 한 지 6개월이 되었다.
낮에는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다. 11시쯤 출근을 하면 일찍 나온 동료들이 햄버거 패티를 한 장씩 싸고 있었다. 냉동된 패티를 불판에 올리고 간혹 스테이크를 굽기도 했다. 저녁에는 주방장이 출근하기 때문에 주방에 있던 성욱은 DJ 박스로 돌아가고 영상이는 바로 들어갔다.
하루종일 이 햄버거 가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큼큼한 고기 누린내는 익숙해졌다. 간혹 관심이 가는 웨이츄리스가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학연수를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성욱에게 이 곳은 매우 좋은 어학연수기관이었다. 사장내외는 한국인 여자와 미국 남자였는데 남자 사장은 단어가 현란하지 않으나 매우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음악을 틀고 있다 보면 DJ 박스에 와서 신청곡을 말하며 이런 저런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욱은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되물었다.
“두 유 노우 메탈리카?”

컨트리음악을 주로 틀기 때문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시대착오적인 옷을 입은 남자들도 꽤 드나들었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엔지니어라고 대답했다. 거의 다 엔지니어였다. 경영을 전공하는 성욱은 그들이 어떤 회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지도 궁금했다. 음악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음악을 틀어달라고 CD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로움, 15년이 넘은 지하 햄버거 가게에 눅진하게 늘러붙어 있는 정서였다.

9시가 되었다.
웨이츄리스들이 바 앞으로 모여 줄을 맞췄다.
미스박이 매일 노래를 정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새로 들어온 웨이츄리스들에게 미스박이 춤을 가르쳤다. 짧은 자주색 치마를 입은 젊은 웨이츄리스들이 라인댄스를 췄다. 매일 세 곡의 라인댄스를 췄는데 미스박은 오늘도 귀여운 글씨로 메모지에 노래 세 곡을 적어줬다. 이미 MP3로 만들어 저장해 둔 곡들이었다. 성욱은 오케이~! 라고 호기롭게 대답하며 노래를 틀었다. 새로 들어온 어린 웨이츄리스는 춤을 출 때마다 힘이 넘쳤다. 얼굴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춤추는 여자들은 모두 즐거워보였다. 성욱은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배워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세 곡의 라인댄스가 끝나고 바 앞으로 자리를 옮겨 춤을 구경했던 손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바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주방쪽으로 가는 새로 들어온 어린 웨이츄리스에게 성욱이 말을 걸었다.
“현아?”
눈이 동그란 아이는 성욱이를 빤히 보았다.
“바닥 꺼질 거 같애.” 성욱은 말이 끝나자마자 목소리와 안 어울리게 요란하게 웃었다.
여자애는 사람 좋게 씩 웃었다.
“너 성격 좋지? 그래 보인다.”
“성격 좋은 게 뭘까아요.?” 현아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주방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귀엽다. 10시가 넘어 손님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자 성욱은 음악을 걸어놓고 창고쪽으로 갔다. 주방에 있던 세 명의 청년도 창고쪽으로 나왔다. 목장갑을 끼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까만 봉투에 하룻동안 밀린 쓰레기를 쑤셔박았다. 빈 맥주병과 콜라병도 옮겨야 했다. 햄버거 가게는 지하 1층인데 창고쪽 문을 열면 골목의 계단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검은 쓰레기봉투를 전봇대 옆에 차곡차곡 쌓고 청년 넷이 쪼그려 앉아 별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며 담배를 피웠다.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만나기 힘든 친구들이었다. 화장실에 들러 손을 닦고 DJ 박스에 들어가 앉아 헤드폰의 한 쪽만 대고 있는데 현아가 DJ 박스 앞에 서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글씨를 적을 곳은 DJ박스 외에도, 여러 곳에 있었다.

“많이 벌었어?”
“아직 얼마 안 됬으니까 별로 없죠. 아까 스테이크 손님 있었는데, 3천원 주고 갔어요. 오늘의 빅팁.” 현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작은 수첩에 숫자를 적고 있었다. 성욱은 현아의 글씨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오빠.”
“응?”
“성욱이오빠죠?”
“아. 내 이름 몰랐어?”
“성욱이오빠. 오빠 송승헌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죠?”
성욱은 얼굴이 벌개지며 크게 웃었다.
“되게 쑥스러워하네.” 현아는 수첩을 들고 씩 사라졌다.
뻘쭘해진 성욱이 앉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현아가 다시 나타났다.
“숱댕이 눈썹 성욱이 오빠. 오빠 고대 다닌다면서요?”
“아.. 휴학중이야.”
“고대 다니는 사람이 왜 이런 데서 일해요?”
성욱은 다시 요란스럽게 웃었다. 쑥스러워요 라는 문장이 성욱에 얼굴에 반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재밌잖아.” 현아의 표정이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성욱의 얼굴은 씨벌겋게 달아올랐다.

물이나 마시려고 DJ박스의 쪽문앞으로 문을 숙였다. 선반이 길게 놓여 있고 그 아래 공간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몸을 잔뜩 웅크려야 했다. 쪽문을 나와 몸을 일으켜는데 다시 현아가 나타났다.
“오빠 되게 쉬운 사람이구나?” 성욱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멈춰 있었다.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곳이 아니면 저런 여자애는 어디가서도 만날 수 없을 것이었다. 눈이 길고 얼굴이 호빵처럼 동그란 저 아이는 어디서 왔을까. 성욱은 자기가 안암동이 아닌 조치원 캠퍼스라는 걸 얘기해도 모를 거라고 확신했다.
성욱은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들며 바로 가서 영상이에게 물을 한 잔 달라고 했다. 영상이 맥주컵에 물을 따라줬다. 단 숨에 물을 들이킨 성욱이 영상이를 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연애나 해야겠다.”
영상이 성욱을 빤히 바라보며 정색하고 대답했다.
“미친놈. 너하고 안 해 이 개새끼야.”
성욱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영상을 쳐다봤다.
“너… 너.. 게이야?”
“아니야 이 미친년아 물마셨으면 꺼져.”

#한사람이야기

 

2014. 7. 2.

기억을 비교하면

엄마는 출근할 때마다 20원을 줍니다.
나에게.
엄마가 멀리 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베란다에 혼자 서서
날지 못하는 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
지혜에게 갑니다.
종이인형 사러가자
지혜아빠는 목사님,
매일 매일 종이인형을 사러 가는 나를 미워해
나는 지혜하고 못 놀고
세탁소를 지나 문방구에 갑니다
20원을 내고 같이 놀 친구를 골라옵니다
친구를 오리고 나면 해가 뜨겁고
친구와 놀다 보면 해가 집니다
해지고 엄마가 돌아오면
내 친구는 삼양라면 박스로 들어갑니다
다시 만날 일 없어
박스 안에 들어가면 네 옷을 찾을 수 없어
안녕 안녕 영원히 안녕
너는 오늘 하루살이였어
내일은 또 다른 친구를 20원에 사올테야
다시 놀아달라고 하면 네 목을 뎅강
잘라버릴테다

안녕 안녕 영원히

_ 2009년 즈음에.
2009년에 썼던 메모를 어느 까페에 올려두었고 그걸 다시 발견했다.

네 목을 뎅강 잘라버린댄다.

생애사쓰기를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나의 생애사도 더러 여러 방식으로 정리해본다.

다른 사람들이 생애사를 쓰도록 돕고 그들의 문장을 약간씩 다듬어주기도 하며 작년에는 매우 어렵게 장애인부모들과 중도장애인들이 자기의 생애사를 쓴 글을 묶어 책으로 만들어 내놓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애사를 읽다가 내가 쓴 기억에 대한 이런 글을 읽으면 섬짓하다.

그토록 내 유년은 피비린내나는 지옥이었나.

오늘도 씁쓸하다.

2014. 7. 1.

한사람이야기 4 – 곤화

유리로 된 샷시문은 닫을 때마다 불안했다. 유리창에 반짝, 소주케틀이라는 맞은편 가게의 글자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험한 골목에 가게를 낸 것은 염려하지 않았으나 가게 문을 닫을 때마다 불안이 다시 떠오르곤 했다. 골목이 험하다는 건 드나드는 사람들이 험하기 때문이다. 험한 사람들이 드나들어서가 아니라 흥분한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흥분한 이유는 어두운 밤 좁은 골목길 현란한 간판과 더불어 소주케틀이라는 술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젊었다. 소주케틀은 과일맛이 나는 탄산음료에 소주를 부어 만든 소주 칵테일이다. 커다란 1.5리터 페트병의 윗부분을 잘라내어 탄산음료를 절반정도 담고 소주를 한 병 붓는다. 간단한 제조법으로 만든 소주케틀은 1개의 페트병에 2000원에 팔렸다. 주말에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샀다. 머리가 짧고 얼굴은 하얀, 더러 여드름도 난 미국병사들이 소주케틀을 들고 골목에 가득했다. 헌병은 맨 위 디스코클럽 앞에 서 있고 아이들이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는 청년들이 담배를 물고 주말을 가득 채웠다. 곤화는 소주케틀을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이 만 20세가 안 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곤화의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다. 2천원의 소주케틀로 밤을 홀라당 보낼 수도 있는데 4천원짜리 병맥주는 아이들에게 고급술이 되었고, 2천원짜리 라면을 먹으러 들어오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아직 골목은 반쯤 차 있었다. 반쯤 비어있다는 얘기도 된다. 다른 주말엔 새벽 4시까지 문을 열어놓지만 오늘은 일찍 닫는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곤화는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고 되묻는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하이, 하고 손 흔드는 아이들이 있다. 곤화의 치즈라면을 먹어본 아이들인 모양이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등뒤로 넘어가면 붉은 조명이 켜진 작은 바들이 아직 영업중이다. 더러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아주 오래전, 곤화가 이 골목에 들어서기 전에 저 바 뒷부엌에서 한 여자가 끔찍하게 죽었다. 곤화는 가끔, 그 여자의 꿈을 꾼다.

골목이 끝나자 다시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길을 메웠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에 얼굴색과 머리색이 다른 사람들이 서 있었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한 손은 호주머니에 꽂은 남자들이 많다. 곤화는 골목을 내려가 시장통으로 직진했다. 시장통 끝에는 기가 막힌 만둣국을 파는 집이 있다. 오늘도 만둣국집 아이들이 가게에서 자고 있다. 곤화는 어디선가 잘 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한다. 눈물 따위. 라고 입을 다물어도, 눈물이 마른 것은 아니다. 만둣국집을 지나 살인사건이 났던 햄버거집 2층으로 올라간다. 생각해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 죽었다. 유명해지는 죽음이 있고, 잊혀지는 죽음이 있다. 호텔 뒤에서 칼부림이 나 세 명이 죽었다는데 소문만 무성하고 보도되지 않았다. 어느 클럽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경찰은 오지 않는다.

머리를 양갈래로 내려 묶은 젊은 여자 앞에 곤화가 앉았다. 둘은 카스 맥주를 시켜 몇 병을 비웠다. 곤화 앞에 앉은 여자가 울었다. 곤화는 냅킨을 달라고 해서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곤화는 여자에게 올 해 몇 살이냐고 묻는다. 곤화의 얼굴근육은 움직이지 않는다. 너 많이 어렸구나 라고 말했다. 여자가 피식 웃는다. 눈가가 벌겋다. 곤화는 종업원을 불러 하이네켄 두 병을 시킨다. 여자와 곤화는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더러 웃기도 한다. 곤화가 가슴을 펴고 등을 의자에 바짝 붙인다. 앞에 앉은 여자와 거리를 만들고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곤화는 몸을 다시 숙여 젊은 여자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 본다.

“정말 돈 벌고 싶어?”
“벌어야 돼요.”
“너 먹고 사는 것만 벌면 되잖아.”
“동생 학교 보내야죠.”
“내년에 졸업이라며.”
“내년에 엄마가 출소해요. 방도 구해줘야 되고. 한 달에 삼백만원만 벌면 금방 될 거 같아요.”
“정말 그렇게 벌어야겠어?”
“안 그러면 어떡해요. 방법이 없는데.”
“그렇게 벌 수 있는데가 있긴 해.”
곤화는 맥주잔 앞에 놓인 땅콩을 입에 넣었다. 오물거리는 곤화의 입술이 더욱 작아보였다. 곤화는 땅콩접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 쉬는 날도 없고. 낮에도 일을 해야 되고.. 밤에는 더 바쁘고..내가 그걸 한 4년 했어. 그래서 지금 사는 집 전세잖아. 4-5천 정도는 모았지… 집을 살 정도까지 버는 건 아니고..”
“어딘데요?”
“말해주기 싫다.”
“예전에 저 아는 언니가 빠찡꼬에서 동전바꿔주는 거 하면 돈 많이 번다던데. 손님들이 잭팟 터지면 팁도 막 준다면서요.”
“……. 그런 거 아니야.”

곤화는 땅콩을 다시 입에 넣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랗고 붉은 네온사인들이 더러 꺼지고 더러 반짝였다. 곤화가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자 앞에 앉은 여자는 더 묻지 않고 맥주를 마셨다.

“언니는 그 루즈가 되게 잘 어울려요.”
“그래?” 곤화가 활짝 웃었다. 속쌍커풀진 눈은 강아지를 닮았고, 코도 입도 작았다. 하얀 피부에 굵게 말은 파마가 잘 어울렸다. 씨익 웃는 곤화의 표정은 매우 천진했다. 내일은 즐거운 소풍날, 이라고 말하는 듯한 웃음이다. 곤화는 젊은 여자와 이야기를 하다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웃을 때마다 빨간 립스틱이 반짝거렸다. 맥주잔에 묻은 곤화의 립스틱 자국도 반짝거렸다.

하늘끝이 파래졌다. 둘이 마신 맥주병이 창가에 나란히 서 있었다.
“야 해뜬다.”
곤화는 계속 땅콩을 먹고 있었다. 서너개를 한 번에 집어 입주변에 손을 대고 하나씩 까넣었다.
“미경언니 왔을라나..?”
“처 자고 있겠지뭐. 요새 만나는 사람도 없잖아?”
“스테디는 없지” 젊은 여자가 재미난 일이 생각난다는 듯이 웃었다.
“가자 야. 나 피곤하다.” 파란 하늘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파란 청바지를 입은 곤화는 계산서를 들고 빨간 핸드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사람이야기

2014. 7. 1.